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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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과 비극의 차이는 뭐지?

그건 삶의 슬픔이나 유머따위가 아니라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맞다. 그렇구나. 싶었다.

바라보는 사람이 서있는 위치, 그의 눈의 높이 그리고 그 순간 그가 가진 정서과 사고가 삶을 비극으로도 희극으로도 만들어버린다

 

결혼이라는 것과 그리고 이어지는 삶이라는 것이 대단히 스펙타클하다거나 로맨틱하지 않다.

통속적이고 진부하고 누구나와 다른 바 없는 비슷비슷한 상투성의 연속인데

사람들은 자기 삶만은 다르다고 믿고 싶고 스스로를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삶에 대한 올바르고 건전한 생각일 수도 있다.

내 삶이 진부하고 보잘것 없다고 믿는다면 긴 시간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이 책을 왜 읽었지?

책의 처음 몇장을 넘기면서 계속 생각했다.

모두가 최고의 책이라고 했고 심지어 오바마도 최고라고 했다는 말에 심하게 혹한게 아닐까 했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묘사들과 결혼생활이라는게 섹스가 중심이 되어 그것만이 전부인것처럼 이어지는 것도  불편했고  '운명'편의 주인공인 남자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이어지는 것도 지루했다.

그냥 반납할까 망설이다가 어느 순간 흐름을 타고 계속 읽게 된다

 

이야기는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남자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분노의 타이틀로 여자의 이야기를 쓴다. 남자의 이야기는 목적을 뚜렷하게 보여주며 일대기 방식으로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순간순간 위기를 겪으며 그것을 드라마틱하게 이겨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순수하고 누구에게나 사랑받아 마땅한 남자의 이야기는 지루하고 속물적이다.

1장에서  사람스러운 남자 랜슬럿  이름마저 주인공이 아닐 수 없는 토로는 멋지게 좌절하고 성공한다. 그리고 느닷없이 죽어버렸다. 사실 이렇게 빨리 죽을 지는 몰랐다.

그가 중심이 된 이야기속에 그의 아내 마틸드는 어떤 면에서는 쌍년이었다.

느딧없이 등장해서 아름다운 청년을 사로잡고 결혼하고 모두의 기대에 어긋나게 죽음이 갈라놓을때 까지 함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둘은 정말 진실로 서로를 원하고 사랑했다. 타인의 기대를 무참하게 깨버리면서

2장은  쌍년인지 내조자인지 헷갈리는 마틸드의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는 연대기가 아닌 뒤죽박죽 흘러간다

어릴적 모습이었다가 과부가 된 지금의 이야기였다가 다시 젊은 시절 혼자 살아내야 하는 시간의 이야기였다가 뒤죽박죽이지만 오히려 그런 구성이 그녀를 더 잘 보여준다.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성숙하지 못한 헛헛함이 두 사람을 만나게 했다.

어릴적 치기어린 행동으로 가족에게 버림받고 춥고 낯선 환경에 버려진 토로와 자기가 무엇을 잘못한지도 모른 채 가족에게 버림받고 여기저기 위탁을 다니며 어느 순간 스스로 삶을 책임지기 위해 가장 위험한 도박을 하는 여자가 만난다.

타인의 이야기로 듣는다면 더없이 드라마틱하고 멋진 플롯이 되지만 그것이 내 삶이 되는 순간 이보다 더 절망적이고 불안하고  피하고 싶은 삶은 없다.

 

아름다운 사람 무책임한 사람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

착한 사람 악한 사람 조용히 사람을 밟아버리는 사람 누구에게나 매력있고 순종적이며 내조하는 사람은 모두 같은 사람이다

세익스피어가 인용되고 신화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상징으로 등장하면서 어쩌면 멋지고 매력있게 보이는 문장으로 이어진다.

그 문장들속에 주인공의 삶은 드라마틱하고 멋지고 아름답지만 딱 거기까지....

읽는 동안 지루했고 재미있었고 긴장도 했지만  마지막을 덮으면서 그대로 잊혀질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다만 남는 것들은

어릴 적 애착관게는 앞으로 살아가는 시간에 많은 영향을 끼치겠구나 

잘못 형성된 애착관계와 도식들이 삶을 어떻게 흔들어가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고

우리가 남의 삶을 바라볼 때 결국 그건 내가 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타인의 삶을 바라본다.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고 살아가는지를 바라보면서 세상엔 내가 아는 것을 제외한 더 큰 세상이 존재하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인물 이외 더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운다.

내가 토로와 마틸드를 다 이해할 수 없고 그들만큼 매력적인 레이첼과 샐리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면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소개받고 알아가게 된다.

그들의 삶을 알게 되면서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을 내가 살 수는 없다.

결국 타인의 삶을 바라보는 한계도 함께 알아간다.

 

인물은 매력적이지만 이야기는 글쎄.... 호들갑스러운 찬사들은 나랑 맞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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