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다는 것은 맹목적일 수 밖에 없다.

믿는다는데 이유가 들어가는 순간 그건 믿음이 아니게 된다.

 

그냥 변명이 된다.

 

고백하자면 책을 먼저 읽었을 때 앞부분을 대충 넘겨버렸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신에 대한 이야기랑 동물원을 정리하는 이야기를 그냥 넘겼던 거다.

주인공이 힌두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다 믿게 되었다는 팩트만  인지하고

인도의 사정으로 캐나다로 이주하기로 결정한 아버지가 동물원의 동물들을 팔았고 그 동물들과 가족이 함게 배를 타고 간다는 사실만 또 주입했다.

눈으로 보며 이해하는게 역시 쉬웠다.

주인공이 세가지 종교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와 믿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가 긴긴 항해와 연결이 되고 두가지 버전의 이야기로 이어진다는 걸 영화를 보며 이해했다..

 

채을 띄엄띄엄 읽으며 이야기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극한에 몰린 사람이 기대하는 건 막연한 희망도 바닥을 치는 절망도 아닐것이다.

그냥 이야기 지금 이순간을 견디게 해주는 이야기가 힘이 될 때가 더 많다고 믿는다.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마주했을 때. 스스로가 바닥을 치고 있다고 생각될때

내가 점점 내가 아닌 괴물이 되어가는게 아닐까 싶을때

어딘가 절실하게 매달리고 싶어진다.

그게 신이든 무엇이든

 

여담이지만 지난 몇달동안 종교에 매달린 경험을 가졌다

살면서 한번도 종교에 이렇게 오래 몸을 담근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입시라는 게 역시 대단한 힘을 가졌다는걸 다시 깨달은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고 생각하고 다니기 시작했는데

결국 모든 건 내 욕심이고 나로부터 출발한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신 혹은 절대자  아니면 조상에게라도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순간에도 순수한 기도(가 뭔라고 정의해야할지는 모르겠지만)의 시간보다 무언가를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내가 나이롱 신자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기도하는 방법을 몰라서일 수도 있다.

그냥 신에게 누군가에게 하소연을 하고 내가 바라는 상상을 들려주고 나중에는 급기야 협박에 거의 맞짱 뜨자는 시비까지 술술 나오더라

결국 무언가 구원을 바라는 순간 (나라는)인간은 신과 이야기에 매달리게 된다.

내가 상상하는 이야기. 바라는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그냥 술술 나온다

그게 기도랑 통하는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파이도 상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일이 견디는 일이고 그게 신에 대한 기도였을 것이고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기도 했을 것이다.

조리사와 선원과 엄마라는 아픈 상황대신 얼룩말과 오랑우탄과 하이에나와 뱅골 호랑이가 더 견디게 해주고 스스로를 용서하고 이해하는 방법이기도 했을 것이다.

어떤 버전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무조건 믿어버리는 순간이 맹목이고 광신도같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무조건 믿고 매달리는 순간이 어쩌면 가장 순수한 순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영화를 보면서 내내 한다.

고난을 주었고 견디는 힘도 주는것이 신이라면

견디는 힘을 어떻게 행동으로 실행할지는 결국 사람의 선택이다.

이야기를 상상하며 스스로가 괴물이 아니라고 자꾸 말해주는 일이 신의 축복일수도 있겠다

 

결국 이야기 초반의 신에 대한 이야기 종교와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끝에서 다시 마무리 된다.

파이가 견뎌낸 동물들의 이야기들이 결국은 믿음의 한 방법이었다.

 

믿는다는 것

견디는 것  그리고 관게를 맺는다는 것

다양하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었다.

마지막 성인이 된 파이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던 건 믿음에 대한 확신이 아니었을까

좋은 작품은 이렇게 볼 때 마다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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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명의 엄마들의 이야기

서로 관계를 맺는 일에 대한 이야기

부탁을 하고 부탁을 받는 입장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어떤 말 앞에서도 강하게 부정하지 않는 선한 사람들의 이야기

 

서른 두살의 효진은 죽은 남편의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엄마가 되어본 적이 없는 그녀는 덜컥 열여섯 소년의 엄마가 되어야 한단다.

그녀에게 동욱을 부탁하는 시동생이 너무 무례하고 폭력적이라고 느껴졌다. 사실 남남 아닌가?

이미 형도 죽고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그 아이를 키운다면 효진이 당연한거 아니냐고 아주 뻔뻔하게 말하며 느물거리며 밀어붙이는데 화가 났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면 어쨌든 엄마는 맞긴 하다. 아버지와 결혼한 여자라면 법적으로는 엄마는 맞다.

혈육이 아니고 함께 산 기억도 시간도 없는 사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오갈 데 없는 동욱과 매사가 무기력해져버린 효진은 함께 어설픈 모자가 된다.

 

효진의 친구도 엄마도 이런 상황을 반대했고 어처구니없이 여기지만 동욱을 받아들이기로 한 효진은 담담하다.

망설이는 시간이 길었을 뿐이지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면 아무 조건없이 받아들이는 효진의 자세가 좋았다. 그렇다고 성급하게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냥 그렇게 공간만 함께 사용할뿐 정서적으로는 천천히 느리게 존중한다고 해야할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서성인다고 해야할지 그렇게  어색하고 무덤덤한 동거가 이루어진다.

 

동욱을 거부하고 싶었던 효진은 어쩌면 이 상황이 죽은 남편의 부탁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언뜻언뜻 보이는 동욱에게서 남편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이게 맞는 거라고 받아들인다.

모두가 아니라고 했고 본인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거부하지 않은 것

그것은 효진만의 일은 아니다.

딸아이의 인생을 생각해서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했던 효진의 엄마도  자신의 거부를 조금씩 허물어뜨린다.

정깊은 잔소리를 퍼붓던 효진의 친구도 결국 그녀의 선택을 인정하고 몇가지 도움도 준다.

그렇게 누군가의 부탁을 모두 아닌데 하면서도 받아들인다.

결국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포기하는 일이므로

동욱의 친구 주미도 느닷없는 임신을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아이를 위한 선택을 한다.

이건 윤리적이 아니라거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시선속에서 오롯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일까만 생각한다.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싶었던 성급하고 정의로운 동욱도 결국은 포기함으로써 받아들이는 것을 배운다.

 

엄마가 아무리 온몸으로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부르짖어도 자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아니었어도 엄마는 엄마가 원하는대로 살지 못했을거라고. 누구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가 선택한 삶이었다고 뼈를 때리는 소리만 들을 뿐이다.

그래도 엄마들은 자식은 특히 딸만은 나와 다르게 살기를 바란다.그게 그들 방식의 사랑이다.

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여자도 아이가 생기면 어쩔 수 없이 엄마가 된다. 힘들고 고단하지만 그 노동을 기꺼이 감수한다. 비록 입으로 끊임없이 투덜거림이 나올지라도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주미도 타인을 위한 선택을 할 줄 안다.

나중에 후회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믿는 쪽으로 움직인다.

모든 것을 가지고도 아이가 없는 여자도 그저 선하고 애닮다.

그리고 예전 아이를 두고 떠났던 여자도 낳지는 않았더라도 엄마는 엄마였다.

세상은 다양한 엄마가 있고 그 마음의 뿌리는 같더라도 싹이 나고 꽃피우는 방법은 다 다르다.

 

 

동욱을 데려오기 전부터 무기력하고 몸이 좋지 않음을 느끼는 효진에게 상담을 해주는 정우는 효진의 모든 문제는 마음의 문제라고 말한다.

마음이 몸을 아프게 하고 늘어지게 하고 의욕을 잃게 한다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효진은 갑상선이 좋지 않아 그 모든 증상들이 나타났다는 걸 알게 된다.

뭐 마음의 문제가 전혀 아니지는 않겠지만

효진은 자기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받은 후 해결책도 알게 된다.

정해진 시간에 약을 챙겨먹는 것

문제를 직면하면 해결이 생기기 마련이다.

동욱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의 인생에 자꾸 끼어들게 되고 신경이 쓰이기 시작하면서 가족이라는 관계를 만들어가면서 효진은 문제를 직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너무 미안해서 울지도 못했던 그 장례식장에서의 어정쩡함을 동욱에게 처음 고백한다.

그때 너도 울지 않아 참 다행이었다고

그렇게 이제 가족이 되어간다.

뭐 사실 가족이 된다고 대단할 것도 없고 앞으로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앤딩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잘 안다.

가족이 얼마나 구질구질하고 귀찮고 아무도 모르게 저주할 수도 있는 존재라는 걸 점점 깨달아갈 수도 있다. (이건 저주인가?)

그럼에도 받아들이고 시작하기로 했다는 건 중요하다.

 

영화를 먼저 보고 찾아보니 만화로 나왔다는 걸 알았다.

영화를 먼저 봐서인지 책은 조금 밋밋했다.

영화의 장면과 다르지 않았고 영화에 담기지 않은 효진의 동생이라든가 다른 이야기들이 조금 더있어 인물의 입장이 조금 더 잘 설명되어있긴 하지만

친절하지 않고 인물들의 사연이 숨겨져 있는 영화가 더 깔끔하고 좋았다.

대사들이 배우를 통해 더 풍성해지고 표정과 행동이 함께 표현되면서 이야기가 더 애틋하고 아름답다.

모두가 힘을 빼고 자연스러운 연기도 좋았던거 같다.

임수정의 엄마 역할이 괜찮을까 싶었지만 효진같은 엄마라면 충분했고 또 그런 엄마도 현실에는 존재할 테니말이다.

 

마지막 에필로그처럼 붙은 동욱과 연화의 에피가 뭉클했다.

엄마가 아닌걸 알지만  내가 버려진것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었던 동욱과

아들이 아니지만 엄마였던 연화의 대면

그리고 포옹과 연화의 울먹임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동욱은 그 말 한마디가 그리워서 그렇게 연화를 찾아다녔던 모양이다.

내가 괜찮다는 말 내 탓이 아니라는 것

 

그러고 보면 인물들은 모두 내탓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던거 같다.

딸이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사는게 내탓같은 효진의 엄마

남편이 죽고 이렇게 무기력한게 역시나 내문제인가 하는 효진

임신한 아이를 이렇게 보내는 게 맞는지 계속 고민했을 주미와

자기의 의사와 관계없이 어른들의 결정에 이리저리 옮겨야 하는 동욱의 불안이

모두 자기에게 문제가 있어서 자기가 잘못해서일까 하는 마음들

물론 나의 문제는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지만 꼭 내가 잘못은 아니라는 것

그 말이 누구나 절실하지 않을까

괜찮다. 그럴 수 있지. 나도 미안해 하는 말...

 

선택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포기해야하는 일이라는 말

그말과도 닿지 않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다.

그리고 책도 영화와 함께라면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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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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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쓴다는것 그건 아무것도 하지 않은것보다 낫고 마음을 버린다는것 보다는 서서히 녹아 스며들거나 사라지거나 하는게 낫지. 더디 걸리고 아프더라도. 단편이거나 중편이면 더 좋았을 텐데 상수와 경애의 마음에 오롯이 집중하기엔 다른 이야기가 넘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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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소설을 읽고나면 쉽게 지친다.

환절기 으슬으슬 몸살이 오는 순간처럼 온몸에 기운이 빠지면서 그저 드러누워 아무 생각없이 멍하게 오돌오돌 떨고 있고 싶어진다.

제발... 왜자꾸 이러는데.. 라고  부탁하고 싶을 만큼  힘들다.

 

아이를 잃고 남편을 잃고 오래 사귄 연인과 헤어져야만 하는 순간이 다가오고 기다리는 임용에서는 떨어지고 누군가의 부고를 드고 가장 가까운 이를 의심해야하는 일이 생긴다.

상실은 절망을 부르고 사는 일은 나를 바닥까지 끌어당긴다.

주위에서 악이 없이 재미로 오르내리는 구설수는 당사자들에게는 뼈를 때리는 아픔이다.

원망의 대상은 없어지는데 억울한 마음은 점점 커진다.

견뎌내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 무조건 이불 뒤집어 쓰고 땀을 내면서 견디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다 열병으로 뇌가 상하거나 탈진하거나 어찌 되건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너무 가까워져도 아프고 멀어지면 서럽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가 마지막 작품이어서 다행이었따.

부재와 애도를 원망하지 않고 공감하기 시작한 주인공에게 박수를....

지난 작품집의 마지막 수록작 <서른>은 너무 아프고 아파서 힘들었따.

건강하고 안전한 거리에 대해 생각한다.

부재. 슬픔 원망 죄책감에 대해 때로는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멀어지고 모른 척 해버리면 인간이 아니지만 너무 가까이 해도 인간으로 살 수 없다.

인간은 좋은 인간과 나쁜 인간으로 나뉘는게 아니다.

인간이거나 인간도 아니거나. 그렇게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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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수를 한 적이 있다.

도안에 그려진 밑그림을 보고 칸 수를 세어가면 아무것도 없는 흰천에 십자모양의 수를 채운다.

도안의 칸을 잘 세어서 흰천위에 하나둘씩 수를 채워넣다 보면 그림이 완성된다.

바느질을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

정확하게 수를 세어서 틀림없이 알맞은 색으로 채워나가다 보면 그림이 완성된다.

다만 지루하고 눈이 침침해질 수가 있다.

소설을 읽으며 십자수를 떠올린다.

어떤 이야기인지 전체적인 맥락을 알지 못한 채 그냥 읽는다.

더구나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펼쳣는데 에세이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하다.

그냥 넋두리인가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대목에서는 어떤 광기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11년째 식물인간으로 누워있는 여자의 간병인으로 무대에서 발작을 일으켜 내려온 전직 배우가 온다. 같은 나이의 두 여자는 자매처럼 닮았다는 말을 듣는다.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않은 여자를 돌보면서 화자인 여자는 자신에거 혹은 그 여자에게 쓴 편지처럼 내용이 흘러간다. 아니 편지라기보다 독백에 가깝다.

여자가 배우여서일까.

모놀로그 무대위에선 배우처럼 독백하고 몸짓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그저 배경처럼 왔다가 지나간다

내가 나로 산다는 것

서로에게 닿는다는 것

본다는 것과 보여진다는 것

생각은 생각으로 이어진다

병원속 다양한 인물들도 당연히 등장한다.

약이 끔찍해진 같은 병실의 정옥 아줌마

전쟁통에 조카를 잃어버렸다는 비밀을 평생 간직한 노인

뇌로 전이된 암때문에 장작이 둘로 쪼개지는 아프을 느끼며 결국 마지막 선택을 해버린 남자

한때 유도 관장이었으나 사고로 마비가 와 그의 유도관 학생이었던 물리치료사에게 걷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하는 노인

남편이 죽고 다른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는 고백을 하는 감포 아줌마

생과 사를 함꼐 겪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마주쳤다가 스쳐가고 서로를 알지못하지만 서로의 존재에는 익숙해진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끝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읽다보면 문장이 말처럼 흐르고 리듬을 타고 흘러내리고 굽이친다.

(누군가의 목소리로 듣는다면 더 멋질거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이 사람들이 이 생각들이 어떻게 될까?

말이 없고 누워만 있는 여자를 돌보고 만지며 화자는 그녀가 자기인지 자기가 그녀인지 혼란스러워진다. 오로지 한사람의 대상만 바라보고 몰입하는 시간이 계속 흐른다면 그리고 스스로를 고립시킨 상황이라면 둘 사이의 교감은 어쩌면 한사람의 그것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그 여자는 요양소로 가게 되었을까?

능앞에서 혼자 걷기 연습을 하던 그 노인은 여전히 뚝뚝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을까

왜 하필 그 장소가 경주였을까?

한없이 낮고 수줍고 고즈넉한 그곳이 독백과 잘 어울린다고 느낀 건 나만의 생각일까

 

그리고

마지막 문장을 읽은 후

마침내 눈이 아리게 칸을 세고 그 칸에 맞는 숫자의 색실을 찾아 바늘을 꿰고 한땀 한땀 떠내려간  십자수는 완성이 된다.

과연 도안의 그림이 제대로 완성이 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그저 근시안적으로 지금 당장 채워야 할 칸만 세고 색을 찾기에 급급했던 십자수는  멋진 그림으로 완성된다.

이거 였구나

누군가에게 닿으려는 손짓

누군가를 보려는 행동 보여지고 싶은 욕망

그것들이 켜켜이 알게 모르게 쌓여서 관계가 되었다.

스치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어져 있었다.

그 여자. 그리고 그 곳 사람들

그속에 나는 나처럼 살고 있었다.

 

아직도 소설인지 시인지 에세이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몽환적이고 긴 독백으로 이어진 한편의 극을 보고난 느낌이다.

두시간을 꼬박 어두운 극장에 있다가 나온 뒤에 느끼는 피로감이 남는다.

내가 읽으며 무대를 상상하고 소리를 상상했던 특이한 독서 경험이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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