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소설뒤에 추모 산문은 없는게 차라리 나을 뻔했다.

다른 작가들의 글은 그랬다.

남편의 글은 그의 작가로서의 치열한 삶과 생활인으로서의 정갈함을 잘 보여주어 작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소설가 정미경은 독자인 나에게 다가오는 그 모습 그대로 충분했다.

"너만  힘든 건 아니었지? 다들 마찬가지지

  사람때문에 외롭고 서럽던 것들이 결국 사람에게서 위로받고 치유받아야 한다는게 참 지랄 맞은 일이야"

조용히 속삭여준다.

 

내가 알지만 내가 잊고 있는 혹은 잘 드러내지 않고 모른 척 했던 내 모습이 무의식적으로 불쑥 올라오는 상황이 작품속에 서늘하게 묘사된다.

모든 것을 놓아버림으로써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는 금희 그녀는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가오는 것을 막지 않고 떠나가는 것을 잡지 않는다.

유순하고 있는 듯 없는듯 존재감이 희미한 그녀가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다.

동물병원에서 냉정하게 돌아서 나오고 세차장에서 다시 올까 하는 그의 말에 무심하게 대답한다

"다음? 다음은 없어"

그런 모습은 지레 포기하고 욕십내지 않은 그녀의 습성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단호하고 냉정하다. 한 번 뱉고 돌아선 이상 절대 되물릴 수 없는 단단함

다양하고 의외의 모습이 모두 일관된 금희

그래서 그들의 만남이 끝났을 때 이상하게 환하고 좋았던 순간은 금희가 만들어 낸 순간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못>

 

중산층 아니 상위층의 허위?

보여주기 식의 삶속에 숨은 속물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이 드러난다.

그건 나쁘다라기 보다 익숙하다는 점에서 더 무섭다

< 엄마 나는 바보예요>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불행과 불안을 드러내면 위로와 공감이 오는 것이 아니라 약점을 공개하게 되고 뒷말과 무시가 따라올 뿐이다.

누가 가르쳐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요즘 가장 강한 사람은 자신의 약점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사람이다.

어떤 공격에도 자신이 있지 않으면 가장 가까운 이에게 드러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니까

공감과 위로 뒤에서 내가 그래도 낫구나 하는 우월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사이에서

자기의 약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가지고 있으면서 성장한 송이는 나중에 거인이 된다.

그래서 옛 성현들도 나를 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을까?

 

그렇다면

멀리있는 알지 못하는 이에게 털어놓는 내속은 어떨까?

어쩌면 그건 배설에 가까울 것이다.그냥 털어내고 비워버리고 싶은 마음

다시 되돌려 받을 필요 없고 뒷말이 있다해도 내 귀에 닿지 않는다. 염려없는 편안함

그러다 불쑥 돌아오는 타인의 속내는 쿵! 하는 경계로 바뀔 수도있다.

이런게 아니었는데

결국은 거기까지...

가까워지게 되면 기대하게 되고 기대하게 되면 약해진다.

결국 내가 견딜 일이다.

나만 견딜 일이다.

그게현실이다.

<새벽까지 희미하게> <목놓아 우네>

 

사랑스러운 쉼표같은 이야기

희망적이라는게 부질없지만 캔디가 영양가는 없어도 가끔 절실하게 필요하듯이 단순하고 희망적인 이야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장마>

 

그녀의 이야기를 더 이상 읽을 수 없다는 것이 몹시 슬프다.

그곳에서 편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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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목소리
시오타 타케시 지음, 임희선 옮김 / 비앤엘(BNL)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흠뻑 빠지 읽지는 못했다.

읽어나가다 보면 앞부분이 기억나질 않고 이 사람이 저 사람인 헷갈리기만 했는데

중간에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막 다음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것도 아닌데

읽다가 다른 일이 생기면 주저없이 책을 덮고 튀어나갈 만큼의 흥미지만 끝까지 읽고 싶었다.

한 페이지를 몇일이나 계속 읽기도 하고 몇일동안 일지 않기도 했다.

두 주인공 이름이 비슷해서 이게 누구인제 좀 분간이 안가다가

이 사람들을 두 주인공 중 누가 만났었는지 혼란스러운건 나이탓일 거다.

 

토시야가 사건을 파헤치다 그만 둔 건 납득이 갔다.

가족이 얽혀있다면 그리고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할 가족이 있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저 뺀질거리는 문화부 기자라고 봤던 야쿠쓰가 취재를 해가면서 기자로 성장해가는 것도 재미있었다. 취재가 깊어지면서 과연 야쿠쓰는 어떤 시각으로 기사를 쓸지가 궁금했다.

누가 범인인가라는 사실을 추리해나가는 취재에서 점차 윤곽이 드러나고 거대하고 미해결로 마무리된 사건  게다가 경찰과 언론이 크게 비웃음을 당한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들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궁금해하다가 그게 실소조차 할 수 없는 인간들이라는데 이르러면서 취재의 방향이 궁금했다.

결국은 사람. 그들의 장난같던  혹은 허무맹랑한 대의사이에 낀 사람들 특히 자기 결정권이 없던 어린아이들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추적해가기로 한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그 사건의 규모와 원인 결과에 시선을 빼앗기느라

정작 그 사건에도 사람이 관여되어있음을 잊는다.

가해자와 피해자 이외 그들과 얽힌 사람들 그들의 가족 친지 혹은 무관하지만 그 순간 그곳에 있어서 우연히 끌려들어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잊는다.

지루한 르뽀처럼 이어지는 글이 결국 사람이다.

 

이전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사카린 살포 사건에서 사건보다 그 사건에 연루된 무관하지만 무관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결국은 사람들이었다.

기억을 하든 잊히든 혹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이 항상 있었다.

 

오사카 여행을 가면 늘 인증샷을 찍은 촌스런 런닝셔츠 차림의 달리는 아저씨 구리코 가 이 소설속 깅만사건의 실제 모델이라니... 참.. 알고 갔더라면 좀 달랐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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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렇게 계속 살아간다.

 

두 권의 책을 읽고 든 공통의 생각.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진실을 알아버렸는데도, 내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졌으니 모른 척 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의외로 사람은 독하고 동시에 무심하다.

죽을 것 같은 큰 일을 겪어도 배가 고프고 요의를 느끼고 피곤하고 졸리다.

잊어야 겠다. 그건 지워야 한다고 마음 먹는다면 통째로 블랙아웃시켜 저 깊은 무의식으로 밀어넣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살아 갈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모든 걸 기억하고 두려워하고 고민하고 죄의식에 시달린다면  수명은 지금보다 3분의1은 더 단축되었을 것이다.

 

내 아이의 비행을 감추다고 문제가 아닌건 아니다.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이미 사건은 일어났고 그것때문에 디너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다만 내가 원하는 해결 방향과 다른 부모가 원하는 해결방향이 다를 뿐이다. 그가 원하는대로 하는 것은 그에게는 정의이고 신념이겠지만 그럼 아이에게는 큰 고난이고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된다. ..... 고 화자는 생각한다.

초반 끊임 없이 독백을 들려주며  화자가 어떠한 인물인지를 어필한다

그건 자기 입장에서 하는 자기 변명이라는 건 나중에 꺠닫는다.

화자는 자기 입장밖에 말할 수 없다. 객관적으로 말한다고 하지만 그건 그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온 그의 입장이다. 그가 속물이라고 권력덩어리라고 바라본 그의 형의 반전은 그래서 오히려 신선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읽은 나는 누구편도 들지 못하겠다

반전에 놀라고 어이없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떤 방향으로 수습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정의롭게 지은 죄에 대해서 벌을 달게 받겠다는 것은 옳은 말이지만

어디까지가 죄인가 그리고 그에 합당한 벌이란 어떤 것인가로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짚고 넘어가는 순간 몹시 헷갈린다

이미 아이는 자기 일에 죄의식을 느끼고 미안해한다면 이미 벌을 받은 것이 아닐까

사죄해야할 대상은 이미 없어졌고 대중의 관심이라는 건 시간이 해결해줄 일이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무조건 드러내는게 능사는 아니라는 것에 자꾸 마음이 간다.

가끔 덮어주는 부모의 아량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흔들린다.

큰 고난이 닥쳤지만 우리는 누구하나 상처 입지 않고 잘 해결했다.

우리 가족은 괜찮을 것이다.

소설은 그렇게 마무리된다.

찜찜하지만 그래서 다른 대안은 뭐지? 라고 한다면 어렵다.

 

진실을 내가 원하는 모습이어야 한다.

약하지만 이기적이고 어리석은 피해자도 피해자이다.

남편에게 기만당하고 가스라이팅 당한 여자와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여자

마당있는 집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그런 집을 꿈꾸며 자유롭기 위해 두 여자는 결국 손을 잡았다.

내가 하는 일은 정당하다.

사실 일을 저지르는 순간은 수없이 고민하고 주저하지만 일단 저질러진 일 앞에서 누구나 정당함을 찾기 바쁘다.

그가 폭력을 했고  이미 죽은 그가 모든 것을 뒤집어 써야 해결이 원만해지는 것이고

아이보다는 남편이 저지른 일이라고 믿는 것이 더마음이 편하다는 것 그게 납득이 가능하다는 것에서 모든 사건은 뻗어가고 마무리된다.

원하는 선에서 믿고 싶은 선에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진실은 그대로 그들의 입맛대로 이루어졌다.

아무렇지 않다.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들이 살아온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반만큼 시간이 흐른후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다.

그때도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까?

아니 아무렇지도 않게 살고 있을까?

그러면 안되는데.. 하는 마음과 함께 왠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마음이 반이다.

흡입력이 강한 두 소설이지만 마무리는 계속 오래오래 남는다.

씹어도 씹어도 삼켜지지 않는 질긴 무언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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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말 어느 날 야밤에 한 십대 청소년이 쌍발 산탄총을 들고 숲속으로들어가 누군가의 이마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것은 어쩌다 그런 사건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는 호기심을 끌면서 시작된다.

누가 왜 누구를 향해 산탄총을 쏘았을까?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초반 이야기는 지루하게 하키 이야기로 이어진다.

하키에 살고 하키에 죽는 남자들 이야기 그리고 그 관습을 그대로 이어받은 폭력을 폭력인 줄 모르고 행사하는것이 전통이 되어버린 하키팀의 소년들 이야기 주변 여학생들 이웃들 선생님들

그리고 폭력 사건이 발생하고 하키에 의한 하키를 위한 하키의 마을이 쑥대밭이 된다.

 

1. 모두에게 모두 나름의 이야기가 있고 그것들은 납득이 가능하다

   단 그들에게서만....

 

등장인물이 참 많다.

읽으면서 내내 미미여사의 '솔로몬의 지혜'가 생각났다. 물론 한두줄로 언급된 인물도 있지만 적어도 등장인물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제각각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이해하지 못할 게 없고 그럴 수 밖에 없겠다.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행동은 모두 이유가 있다.

미치거나 충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없다.

설령 그렇게 보이더라도 그 행동이나 말 이면에는 깊은 빙산처럼 숨어있는 내면과  삶과 감정과 관계들이 얽혀서 그런 모양새를 보여준다.

하키팀 코치와 단장 사장 그리고 후원자들 이사진들 모두 제각각의 계산이 있고 정의가 있고 자기들끼리의 으어리~ 가 있다. 그래서 그 입장에서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 각자의 입장이 부딪치는 순간 갈등이 생기고 누군가의 천하의 악당이 될 수 밖에 없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되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다른 입장들이 존재한다.

주연은 아니지만 프락의 입장이 그리고 보보 부모의 입장에 참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살기위해  집단에 끼기 위해 내세워야 하는 정의가 다를 수도있다는 것과

객관적인 입장이라는 것이 소극적인 입장 더 나아가서는 방관자적인 입장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준다.

빌리엄의 엄마와 필리프의 엄마는 참 많이 다른 결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그들은 자식앞에서 의기투합하게 되고 엄마니까..어쩔수 없다는 강하면서도 모순적인 입장을 고수한다.

캐빈의 엄마와 마야의 엄마도 다르면서 같다.

아이의 변화를 엄마가 모를 수 없다 다만 모르고 싶고 모른 척 하고 싶다.

자식앞에서 바닥을 칠 수 없는 죄인이며 동시에 자식을 위해 누구보다 뻔뻔해져야 하는 사람이 엄마다. 그래서 엄마는 한없이 숭고하면서 동시에 그럴 수 없이 뻔뻔하고 몰염치하다.

 

2. 이것은 폭력이다. 그것도 집단 폭력이다.

사실은 캐빈이 미야를 성폭행했다는 사실이다.

앞뒤 좌우의 문맥을 다 자르고 펙트만을 놓고 본다면 그건 벌어진 일이며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 사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일어났으되 보이지 않는 것이며  누군가 상처를 받았지만 아무도 관심이 없다.

베어타운 사람들은 오로지 하키가 전부다.

하키는 마을 구원할 유일한 수단이고 마을 사람들의 자부심이며 살아가는 낙이고 희망이다.

내가 하키를 했고 내 가족이 하키를 했었거나 하고 있고 내 자식이 하키를 하고 있다.

하키는 그들에게 소속감을 주고  의리를 가르치고 팀웍을 가르치고 살아갈 이유가 되며 내가 왜 성공해야하는지의 척도이고  모든 길로 통하는 만능열쇠가 된다.

그 가운데 캐빈이 있다

캐빈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우승이 가능하며 마을을 다시 되살릴 수 있고 모두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펼 수 있다. 그 앞을 가로막은 마야는 그저 장애물이고 걸레가 되어버린다.

누가 상처를 입었는지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의 입장에서 제각각 계산기를 누르고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갖고 싶은 것만 본다.

 

그래서 리모나의 말은 강하게 울린다.

하키가 무슨 죄가 있겠는가? 그저 그 하키에 미친 남자들이 문제다.

 

폭력을 폭력이라고 인정해버리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고 다들 믿는다.

어쩌면 팔랑거리는 나비의날개짓에 모두가 벌벌 떨면서 대단한 빅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 속에서는 그게 호들갑인지 모른다. 대단힌 사태일 뿐이다

그들 밖에 있는 리모나가 알고 프락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기도 하고 보보의 엄마가 생각할 뿐이다.

 

3. 성폭력은 참 예민한 문제다.

이건 위계에 의한 강압적인 폭력이 맞다.

마야는 캐빈을 좋아한다

캐빈은 외모도 좋고 집안도 좋고  하키의 영웅이며 우등생이기까지 하다.

모두가 좋아하고 숭배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 남자가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면 그건 정말 행운이다.

다른 여자들의 조언이나 충고는 질투이고 시기일 뿐이다.

그가 하키 경기에서 이기고 그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마야를 초대한다

엄마에게는 친구 아나네 집에서 잔다고 하고 간다.

엄마도 딸의 거짓말을 안다 자기도 그 나이때 다 해 본 짓들이다

멋질 엄마가 되기 위해 그리고 반대를 해도 소용없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 인생선배로서 딸아이의 거짓말을 알고도 넘어간다.

안전한 마을이며 서로가 누구인지 다 알고 있는 좁은 동네에서 별일이 생길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리고 마야는 모두의 시기속에  캐빈과 웃고 술을 마시고 히히덕거린다.

그리고 함께 방을 구경가고 그의 방에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키스를 한다

딱 거기까지가 불안하지만 스릴 있고 짜릿한 일탈이다

거기서 멈춰야 했는데 캐빈의 목적은 그게 아니다.

여기까지 따라와놓고 나와함께 침대에 누워놓고 그만두라는 건 말이 안된다.

그리고 폭력이 행해졌다.

 

결국 죄책감은 그날 그곳에서 그렇게 행동했던 마야의 몫이고

자기 자식을 지키지 못햇던 그의 부모 미라와 페테르의 것이다.

캐빈에게는 우승에 따르는 당연한 행위일 뿐이다.

하키팀이 늘 외치는 구호  두번째로 원하는 것은?  떡치기!!!

원하는 누구와도 떡칠 수 있다. 우승만 한다면....

이건 세대를 이어져 전해지는 폭력의 계승이다.  염병할...

결국 가해자는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는 천하의 쌍년이고 걸레고  개인적인 감정으로 하키팀 전체를 그리고 마을 전체를 물먹인 죄인이 된다.

내 일이 아니므로 내가 조금의 피해를 입었으므로

사람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모두가 하나가 된다

공포감을 주는 혐박을 하고 없는 말을 만들어서 퍼뜨리고 마야는 인격이 없는 대상으로 취급하며 그 일을 그저 있을 수 있는 하나의 우승 헤프닝을 본다.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금 여기 한국이나 저기 스웨덴이나 다를게 없다

그들도 선진국은 아니다.

적어도 세상의 절반에게는

 

4. 결국 모든 일은 이유를 붙이기 나름이다

사람들은 교묘하게 일을 비틀어버린다

하키를 할 수 있다면 내가 변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것을 그대로 지킬 수 있다면 굳이 베어타운에서 하키를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들이 그렇게 부르짖은 베어타운의 곰~ 이라는 구호도 자기 이익앞에서는 헌신짝처럼 버려진다.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이는 하키만 할 수 있다면 그곳이 베어타운이든 헤드 이든 상관이 없다. 하키만 할 수 있고 우승할 수 있다면 말이다.

게다가 그 놈들이 신뢰하고 따르는 코치가 헤드로 옮긴다. 이유는 충분하다

아이를 사랑하고 하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

내 아이는 사랑하지만 남의 아이는 사랑하지 않는다.

내 아이가 입은 고통은 뭐든 아파 미치겠지만 타인의 고통은 무감각하다.

결국 베어타운은  그대로 남는다.

여자 하키팀이 만들어지고 다시 아이들을 모으며 하키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수 있게 시작한다.

그리고 하키 하나로 뭉쳐진 무서운 광기를 없애기 위해 다른 스포츠도 함께 시도해본다.

내가 하는 행동 선택은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된게 아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이유가 붙는다.

모든 일이 그렇다.

일단 행하고 이유를 나중에 생각한다. 가장 그럴듯한 것으로

 

5. 그럼에도

유약해보이던 에아네테 선생이 격투기 선수였다는 설정은 어이없지만 통쾌하다.

다비드의 선택을 찬성할 수 없지만 그의 입장은 이해가 된다

캐빈의 엄마가 무릎을 꿇고 울며 마야에게 사과하지만 변한건 없다는 것도 그럴 만하다.

그럼에도 벤이가 자기의 정체성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보보가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를 행동으로 옮길 줄 알게 되었고 동시에 부모와도 소통하게 된다.  아맛이 친구를 잃지 않아서 다행이다.

무엇보다 꼰대 아저씨같던 프락이 누나를 향해 욕을 날리는 아들을 후려치며

'너는 그런 인간이 되면 안 돼. 내가 용납하지 않는다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 너는 아빠보다 나은 인간이 되어야지.'라고 말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현실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해피했다가 새드했다가 새드새드하다가 해피 할뻔 하기도 하고 돌아보니 해피일 때도 있고 그저 끝날줄 모르는 새드의 연속이기도 하다.

소설의 마무리도 그렇다.

이게 잘 된건지 잘 못된 건지 모르겠다.

산다는게 그런 거니까

 

집단 광기와 폭력을 이보다 더 현실감있게 보여주는 묘사는 없다 싶어 적어뒀다

정말 두려운건 그것들이 폭력이라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 정의를 위해서.  전체를 위해서... 라고 생각한다는게

진정한 폭력이다.

 

그들은 술과 마리화나에 대해 물을 것이다. 영원히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바닥 모를 공포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평생 벗어나지 못할 전축과 포스터ㅏ 있는 이 방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이다. 어딘가로 굴러간 블라우스의 단추와 평생 그녀를 따라다닐 두려움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깔린 채 소리없이 흐느끼고 그의 손으로 입을 틀어막힌 채 침묵의 비명을 지른다.              p245

 

 

가해자의 성폭행은 몇분이면 끝나는 행위다. 피해자에게는 그칠 줄 모르는 고통이다.

                                                        p245

 

 

아직까지는 캐빈이 나한테만 상처를 줬잖아. 하지만 내가 입을 열면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까지 상처를 받게 돼 그건 감당이 안돼.

                                                            p311

 

 

 

말은 하찮은 것이다, 다들 얘기하길 말로 일부러 상처를 주려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다들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한다. 경찰들은 그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는 그냥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그래서 그 남자아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들은 여자아이가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말허리를 자르고 그녀가 어떻게 했는지 질문을 퍼붓는다. 그녀가 앞장서서 계간을 올라갔는지 아니면 뒤따라 갔는지 자발적으로 침대에 누웠는지 아니면 강요에 의한 것이었는지 블라우스 단추를 직접 풀었는지 그에게 먼저 입을 맞추었는지 아니면 그가 입을 맞추었을 때 반응을 보였는지 술을 마셨는지 마리화나를 피웠는지 싫다고 했는지 분명하게 의사를 밝혔는지 충분히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는지 충분히 열심히 저항했는지 왜 곧바로 멍 사진을 찍어놓지 않았는지 왜 다른 학생들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파티장을 도망쳤는지

그들은 똑같은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열 번씩 반복해 여자아이의 대답이 달라지는지 체크하며 모든 정보를 취합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그러면서 혐의 제기 자체가 문제라도 되는 듯이 이건 심각한 혐의제기라고 한다. 그녀는 어떤 부분에서 잘못을 했는지 훈계를 듣는다. 너무 한참 뜸을 들어다 경찰에 신고한 것. 입고 있었던 옷을 버린것 샤워를 한 것 술을 마신 것 그런 상황으로 자신을 몰고 간 것. 이층의 그 방으로 따라가서 그에게 착각을 심어준 것. 그녀가 옆에 없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도 않았을 텐데 왜 그 생각은 하지 못했느냐고 한다.

그녀는 열다섯살이니 부모의 동의 없이 성관계를 맺을 수 있는 나이라고 하고 그는 열일곱살이지만 다들 '어린애'라고 표현한다. 그녀는 '젊은 아가씨'다.

 

말은 하찮은 게 아니다.

 

                                    p323

 

 

피해자가 다른 사람들의 심정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편하고 끔찍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나중에 누군가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았느냐고 물으면 마야는 고개를 끄덕일 테고 모든 감정 중에서 죄책감을 가장 크게 느낄 것이다. 그녀를 가장 사랑한 사람들에게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잔인한 짓을 저질렀을니 말이다.

 

일이 벌어진 후 모든 부모가 인정하기 가장 두려워하는 그 문장

 

"우리 아이들을 우리 손으로 지키지 못했어"

                                                                 p325

 

 

리더가 되면 가장 먼저 터득하는 것이, 리더는 무슨 말을 할지 선택하는 것 못지 않게 무슨 말을 하지 않을지 선택하는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p 335

 

 

증오는 매우 자극적인 감정일 수 있다.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친구와 적 우리와 그들 선과 악으로 나누면 세상은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휠씬 더 덜 무서워할 수 있다. 한 집단을 똘돌 뭉치게 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어렵다. 요구사항이 많다. 증오는 간단하다.

그래서 갈등이 벌어지면 우리는 제일 먼저 편을 정한다. 양쪽의 생각을 같이 하는 것보다 그러는 편이 더 쉽게 때문이다. 그런 다음 우리의 믿음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는다. 평범한 일상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위안이 될 만한 증거를 찾는다. 그런 다음에는 적에게서 인간성을 거세한다. 그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이름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몇 날 밤이 찾아오고 소문이 번지자 베어타운에서는 어느 누구도 휴대전화나 컴퓨터로 '마야'라고 쓰지 않고'M' 아니면'그 아이'라고 한다 아니면 '그 걸레'라고 한다 어느 누구도 '성폭행'을 운운하지 않고 다들 '그 주장'이라고 한다. 아니면 '그 거짓말'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로 시작해서 '무슨 일이 있었다 한들 자발적이었다'로 발전하고 한술 더 떠서 '자발적이 아니었다 한들 그 아이가 자초한 일이다 술을 마시고 그의 방에 같이 들어가다니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거냐'로 수위가 높아진다. '그 아이가 원해서 한 거였다' 로 시작해 '당해도 싸다'로 마무리된다.

어떤 인간을 더 이상 인간으로 보지 말자고 서로를 설득하는 건 금방이면 된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많은 시간동안 침묵하면 목소리를 내는 소수가 너 나 할것 없이 악을 쓰는 듯한 인상을 풍길 수 있다.

 

                               P 374 

 

 

이런 망할......... 남자들이란. 당신 잘못은 없다 이거지? 이 아이들을 키운 장본인이 하키가 아니라 당신들이라는 걸 언제쯤 인정할래? 자기들이 멍청한 짓을 저질러 놓고 자기들이 창조한 쓰레기 탓으로 돌리는 남자들은 어딜가나 있다니까? 종교때문에 , 전쟁이 벌어진다는 둥, 총기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둥, 다 똑같은 개소리잖아!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수네는 변명을 하려고 하지만 그녀가 다시 손찌검을 하려고 들자 고개를 숙여서 피한다.

 

내가 말할 때는 입다물고 있어. 염병할 남자들 같으니라고! 당신들이 문제야! 종교는 싸우지 않고 총기는 죽이기 않아. 그리고 씨발 똑바로 알아두라고 하키는 지금까지  아무도 강간한 적이 없어. 그런데 누가 그러는지 알아? 누가 싸우고 죽이고 강간하는지 알아?

수네는 헛기침을 한다   

남자들?

남자들! 항상 염병할 남자들이 문제라고

 

                                                             P445

 

 

그는 오늘 열여섯살이 되었고 평생 놀림과 따돌림에 시달렸다. 모든 면에서 그랬다. 외모. 생각, 말투 집 주소, 모든 곳에서 그랬다. 학교에서, 로커룸에서, 온라인에서, 그러면 결국에는 인간이 마모된다. 주변 사람들은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거니 생각하기 때문에 잘 모른다. 하지만 아니다. 이런 건 절대 익숙해질 수가 없다. 끊임없이 불길처럼 이글거린다. 도회선의 길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당자자도 모를 뿐이다.

                                                                       P 446

 

 

 

베어타운에서 여자아이는 하키를 조금이라도 좋아하면 안된다. 전혀 좋아힞 않아야 이상적이다. 하키를 좋아하면 레즈비언이고 하키선수를 좋아하면 걸레다. 아나는 옆집 할아버지를 벽에 붙여 놓고 그 아이들이 앉아서 실없는 농담 따먹기를 하는 로커룸이 그들을 보존하는 깡통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알려 주고 싶다. 그 때문에 더디 성숙하고 일부는 심지어 그 안에서 썩는다고 말이다. 그들은 여자 친구도 없고 이 지방에는 여자팀도 없기 때문에 하키가 그들만의 것이라고 학습하고 코치들도 여자아이들은 '기분전환용'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그들은 여자아이들이 오로지  '떡치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학습한다. 그녀는 이 마을의 모든 나이 먹은 남자들이 그들을 가르켜 '투지가 넘치'고 '물러설 줄 모른다'고 칭찬할 뿐 여자가 싫다고 할 때는 정말 싫은 거라고 가르쳐 준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았느냐고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 마을의 문제는 어떤 남자아이가 어떤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수준을 넘어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가 그런 짓을 하지 않은 척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남자아이들까지 그의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으니 그럴 수 밖에 아나는 지붕위로 올라가서 외치고 싶다

"당신들은 마야에 대해 쥐똥만큼고  관심도 없지? 캐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 왜냐마면 당신들에게 인간이 아니라 그냥 값나가는 물건이니까 그리고 캐빈이 마야보다 몸값이 휠씬 비싸고,"

                                                          P 450

 

 

아이들은 사냥을 익힐 때 숲속에는 두 종류의 동물이 산다고 배운다. 포식동물과 먹잇감이 산다고 배운다. 포식동물들은 먹잇감에 주목해야하기 때문에 눈이 가운데로 몰렸고 정면을 바라본다. 반면 먹잇감들은 뒤에서 다가오는 포식동물들을 간파해야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눈이 양옆에 달렸다.

아나와 미야는 어렸을 때 몇시간씩 거울 앞에 서서 그들이 둘 중 어느 쪽인지 고민하곤 했다.

                                         P 453

 

 

싸움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걸 시작하고 멈추는게 어려울 뿐이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거의 본능적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싸움을 벌일 때 까다로운 부분은 첫 방을 날리는 용기와 이기고 난 뒤에 마지막 한 방을 참는 자제력이다.

                                                                            P 468

 

 

'의리'처럼 설명하기 힘든 단어도 없을 것이다. 의리는 항상 좋은 걸로 간주된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푸는 수많은 호의가 의리에서 비롯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저지르는 가장 나쁜 짓도 바로 그 의리에서 비롯된다는 거다.   P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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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누군가  다른 남자를 만나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은 이해가 가능하지만

빈 공간에서 홀로 있을 자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남자는 가족들을 생각하고 간식거리나 혹은 음식을 사간다

함께 먹으며 즐거워할 가족들을 생각하며 뿌듯해하고 식사준비를 해야하는 아내의 수고를 덜어준다는 마음에 꽤 괜찮은 남편이라고 스스로 자부한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음식을 건네고 자리에 둘러 앉아 먹긴 하지만 상상했던 분위기가 아니다.

아내는 고마워하지 않는다. 굳이 이런걸 안사와도 되는데

아이들은 즐거워하며 재잘거리지 않는다

마저못해 먹는 듯한 태도에 팍 빈정이 상한다

내가 얼마나 저희들을 생각하며 사왔는데 이런 무례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태로라니

남자는 스스로의 존재가 부정당한 기분이고 권위가 땅에 떨어진 참담함이며 화가 난다

자신의 화가 정당하다고 스스로 믿는다.

 

시간을 내어 휴가를 간다.

남편은 가족을 데리고 먼 길을 운전하고 좋은 장소를 알아보고 멋진 곳을 미리 조사했다

여름이니 당연히 해는 뜨겁고  사람은 많다.

기껏 바다에 와서 수영하지 않겠다는 가족이 기가 막히고  나도 더운데 운전도 하고 이렇게 길도 찾아가는데  시큰둥하고 늘어진 태도에 화가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다만 남자는 모든 기준값이 자기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베풀어주는 것 내가 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없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그 남자가 서운할 것이다.

나만 먹고 싶은 것도 아니고 나만 가고싶은 곳도 아니었다.

나도 해주는 밥상을 받고 싶고 그냥 널부러져 쉬고 싶지만 가족을 생각해서 여자를 생각해서 한 행동인데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대도 그렇게 생각할까?

내가 지금 먹고 싶어 사간 음식이 가족들도 좋아하면 좋겠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음식이 보기도 싫을 수도 있고 배가 부를 수도 있고 다이어트 중일 수도 있다.

함께 간 여름 휴가가 즐거워야 마땅하지만

하필 그때가 생리중일 수도 있고 너무 더워 그냥 시원하게 쉬는게 더 좋을 수도 있고

성격이 따라 좋아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 다 다를 수도 있다.

내 기준에 따라 적확한 표현이 아니고 만족스러운 반응이 아니라고 화를 내거나  절망하는 건

결국 내 기준값으로 세상을 상대를 재단하는 일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 특히 남자들은 모두 자기기준으로 세상을  특히 여자를 바라본다

내가 유혹하면 당연히 넘어와야 하는 것이고

저렇게 대낮에 누가 보라고 벌거벗고 있는 건  함부로 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저지른 외도는 이해받을 수 있지만 상대의 외도는 힘들다.

아내는 집에서 아내로 엄마로 주부로  그냥 그렇게 익숙하게 살아주는게 좋은 거지

집을 비우고 집을 불편해하며 혼자만의 공간을 갖는 건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세상의 상식이 되는 기준값이 기울어져 있는 곳에서는 어디도 쉴 곳이 없다.

모든 걸 가지고 있고 완벽한 조건에서 외롭거나 불안한다는 건 배부른 짓이다.

 

이거은 지성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롤링스 부부의 결혼생활은 지성에 발목을 붙잡혔다.

 

우아하고 세련된 부부

중상층 이상의 수준을 가진 부부

서로를 잘 알고 배려하고 감정적인 소모없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지성적으로 인내하는 부부의 이야기

사회의 가치나 기준에 대해 의심없이 받아들이며 당연하게 여기고 모든 것을 거기에 맞출 줄 안다.당연히 주위에서는 찬사를 보내고 부러워한다.

사실 남편 입장에서 아쉬울 것은 없다.

결혼이라는 제도때문에 가족이라는 무게를 짊어지긴 했지만 사회생활은 여전히다르지않고

가장으로서의 대우도 만족할만한다.

가정은 쉬는 곳이고 행복하고 안락한 곳이다.

 

아내도 만족한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으면 염치없는 사람이 된다는 것도 안다.

자신의 느끼는 불안감이 사치라고 생각하고 누른다

남편이 있고 아이가 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제 아이들도 커서 홀가분하며 살림을 해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불안하고 불편하고 어딘가 안식처를 갖지 못하는 마음은 여전하다.

머리에 꽃을 꽂고 미친 여자처럼 되지 않은한 모든 것이 옥좨고 답답하다.

그렇지만 미친 여자가 되는 일도 쉽지 않고 용납되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는혼자만의 방을갖는다

많은 방이 있는 집에서 안락하고 쾌적한 방도 안정을 주지 못하고

어느 정도 값어치를 하는 시내 호텔방도 불편하다.

결국 여자는 허름한 모텔의 19호실에서 안정을 얻는다.

주변의 착각이나 편견이 걸리지 않는다.

어떻게 보든 보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남편의 은근한 폭력에 그 방을 잃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극단적인 선책을 한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것은 그게 유일한 방법이므로

 

불륜을 저지른다는 오해가 차라리 낫다고 믿을만큼 혼자만의 방이 갈급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마구마구 공감한다.

여자는 자기가 될 수 없을거라고 믿었던 미친년이 되고 만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유와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결국 첫문장처럼  세련되고 지성적인 성격이 극단으로 이끌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타인의 이해못할 선택에  지독히고 절실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모든 단편에서 인물들이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행동을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미친 스토커같은 남자를 피했더라면

옥상에서 굳이 선탠을 해야했나

그렇게 실연을 하고도 사랑이 하고 싶을까

남의 부부일에는 끼지말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뭘까

배부르고  윤택하면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나의 기준점 역시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게 받아들여진 것들이다.

그게 편했으므로

 

노작가의 영국의 상황이 지금 21세기 한국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게 슬플 뿐이다.

세상의 절반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기준점은 지금도 여전히 단단하고 유효하다.

그래서 별을 많이 주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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