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이 끝나고 쉬고 있는 중입니다. 갤러리 관장님이 두 달 정도는 무조건 쉬어야한다고, 일절 작업을 하지 말라고 해서 책 보며, 드라마 보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진짜 늦으막히 개인전을 하다 보니, 여러 상념들이 교차합니다. 개인전은 정말 중요한 행사구나 하는 생각이 참석해 주신 지인들을 보며 새삼 들었습니다. 정말 축하해주시는 분들.


개중에는 신선한 자극을 받으신분들도 계셨습니다. 자신도 이런 개인전을 열고 싶다고. 타분야에서 활동하시는 분들도 더 열심히 뭔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제게 전해주었습니다. 


하나같이 대단하다고 칭찬해주셨는데, 시간이 어떻게 나서 이런 작품활동을 하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다수였습니다. 전 그냥 창작하고 싶어서, 그리고 싶어서 작업을 했는데, 보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다르게 보이는 부분이 있었나 봅니다. 


어쨌거나 지인분들이 예상외로 많이 보러 와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더욱이 그림이 팔리기까지 했으니! 개인적으로는 그림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응원의 차원에서 구매해 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림을 사주신 것보다 더 고마운 것이 제 전시를 보시고 리뷰를 써 주신 분이 무려 3분이나 계셨다는 거! 개인전을 보고 그 개인전 리뷰를 써주는 감상자들을 거의 본 적이 없는데, 모임에서 와서 리뷰를 남겨 주셨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그분들의 리뷰를 여기에 갈무리 해 놓습니다.


A님 리뷰(현직 미술 작가이신 분)

“쿠르트 슈비터스는 버려진 파편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찾았다. 전쟁과 혼돈의 시대를 거치며 형성된 그의 아비투스는, 무가치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예술로 변환됐다. 그의 ‘메르츠’는 해체와 재구성 속에서 한 인간의 정체성이 시대와 대화하는 방법이었다.”

야무님의 콜라주는 그의 작품의 영감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삶의 잔해를 모아 다시 짜 맞추는 행위 속에서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했고, 그 정체성은 또다시 그의 작품 속에서 그의 고민과 철학이 표현되었다. 광고지의 부분, 오래된 책의 일부, 인쇄된표지판 조각, 인쇄된 돈, 이름을 잃은 글자들…

그는 그것들을 모아, 세계가 부여한 가치와 체계를 조용히 해체한다. 그의 손끝에서 한 장의 평평한 평면 위에 새로운 질서를 향해 흘러간다. 그 해체한 파편들은 작가의 아비투스 속에서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나는 동시에 작업에 몰두하며 행복해 했을 그의 모슴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 안에는 집중이 주는 깊은 가치와, 창조의 순간이 안겨주는 순전하고 만족한 즐거움이 깃들어 있었다.

전시를 보고 돌아오는 길, 나는 추상화에 대한 생각을 했다. 나 역시 한때는 추상 작업을 했지만, 끝없는 고민과 작품에 대한 책임감 속에서 점점 구상으로 옮겨갔다. 그 시절에는 그것이 마치 작가로서의 의무인 듯 느껴졌다. 추상 작업의 회피적 감정, 불안, 그러나 동시에 그 속에서 피어나는 우연의 결과와 그 우연이 안겨주는 감상의 자유. 나는 언젠가 다시 추상화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 질문을 품은 채 집에서 이 글을 쓴다.


M님 리뷰
안국역 전시관에 도착해 하얀 벽에 걸린 빼곡한 작품들을 보고
와~ 경력 많으신 중견작가님이시구나(그러나 나중에 야무님의 이력을 듣고 더욱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세 되었죠)
그분의 예술 철학을 경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아비투스’!
후기자본주의에서 아비투스를 축적하는 세 가지 핵심 요소 텍스트, 화폐, 태어난 곳(지도) 이 3가지를 테마로 하여 다양한 아름다운 색감의 작품들을 창작하셨더라구요.

알고 보니 야무님은 2022년부터 부캐로 화가의 길을 걷고 계셨어요. 취미로 배운지 1년만에 작품성을 인정받기 시작해 급기야 국전에 입상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신!

현대미술에서는 자신의 예술 철학을 잘 설명하고 형상화하는 과정이 아주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철학을 전공하신 다독가이면서 직접 본인에게 어울리는 옷을 제작해 입으실 정도의 미적 감각이 있으신 야무님이라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지역의 다양한 문자, 자본주의가 무르익은 1960년대 미국의 흥미로운 광고 포스터, 전세계 화폐 도안, 세계 각국의 지도 등 주제를 암시하는 흥미로운 자료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우리가 그림 속 소재를 가리키며 의미를 물으면 막힘없이 대답해 주시는 과정이 이어졌어요. 작가님의 설명을 직접 들으니 더더욱 귀를 쫑긋하고 듣게 되더라구요.

야무님의 작품을 구입하시고 작가의 꾸준한 활동과 성장을 응원하시는 ㅇㅇ님의 모습에서 언어,화폐,지역의 삼요소가 아비투스를 형성하는 과정을 뚜렷이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J님 리뷰
이 책 저 책 읽다보면 입에 딱 붙지 않는 단어들이 좀 있는데 예를 들면 '테세우스의 배' 'uncanny valley' '루빈의 항아리' 등 개념적 단어들은 몇 번을 기억해야 어렴풋이 잔상이 남는 단어가 되더라구요.

아비투스(Habitus)도 그 단어 중 하나였는데 아비투스는 “몸에 밴 문화적 습관"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오늘 야무님의 작품들이 이 단어를 주제로 형상화되어서 살짝 어떤 의미로 풀어나가셨을까 궁금했었습니다.

야무님 설명을 조금 듣고 이해가 살짝 ~^^
한줄로 줄이면  '글 /화폐 / 장소 로 야무님의 세계관을 표현하고 의미를 담으신 걸로 이해' 가 되었네요. 심오한 생각을 너무 단순하게 정리했나요? ^^;;; 죄송!!

개인적 느낌은 그림들은 섬세한 작업과 독창적인 콜라쥬 구성이 돋보였습니다. 화면 속 세밀한 표현이 관람객을 작품에 갇히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으신 것 같아요.

가볍게 접근해 보면 군데군데 숨겨진 월리를 찾듯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이였어요. 1926년산 메캘란 위스키 이스라엘 화폐 50년대 광고 일러스터 이미지 등 많은 자료들을 모으고 찾는 시간도 엄청나셨을 것 같은데 3~4개월만에 저 많은 작품을 다 만드셨다는 게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림 중에 '나의 문화적 취향이 내가 속한 계급을 말해준다' 라는 글이 작품에 콜라쥬되어 있어서 잠깐 생각에 빠져버렸습니다. 사실 이 문구때문에 그림에 온전히 빠지질 못했어요.

나의 계급은 어느 수준일까? 문화적 취향에 계급이 있는 걸까? 어떤 취향이 더 높은 계급을 만드는건가?등등 머리속에 온갖 상상의 나뭇가지가 자라나며 온전히 그림을 즐기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ㅜㅜ 글쟁이 출신이라 그런지 작품 내내 저 문구에 꽂혀서 ㅎㅎ 계급이라는 단어가 주는 알러지도 있구요~^^


제게 이 리뷰만큼 큰 상도 없을 듯합니다. 초보 작가의 전시를 보고 이런 리뷰를 3분이나 써주셨다니!! 이 서재 공간을 빌어 감사함을 전합니다.


부가적으로 화분도 많이 주셨고, 먹거리도 많이 주셔서 전시를 끝내고 한 주 동안은 먹거리 걱정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개인전은 제게 너무 과분했던 거 같아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덧]

무조건 쉬고 있는 중이라 읽고 있는 책 중 하나가  몽테뉴의  <좋은 죽음에 관하여>. 내용은 매우 좋은데 가독성은 심하게 떨어진다. 왜 그럴까? 비문도 별로 없는데...참 신기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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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22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황리에 개인전 마치신걸 축하드립니다. 야무님 작품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신거겠지요. 정성가득한 리뷰도 뿌듯하셨겠습니다.

yamoo 2025-08-23 13:26   좋아요 0 | URL
돌아보니, 정말 성황리에 마친 거 같아요. 비수기이고 비도 며칠씩 왔으며 무더웠기에 지인 몇 명 인사동 지나다니는 행인 몇 명 이렇게 관람하는 개인전이 될 줄 알았는데, 첫날 더욱이 둘째날과 마지막날 지인들이 대거 방문해 축하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무엇보다 저 리뷰를 써 주신 분들...세 분 모두 처음 봰 분들인데 정성가득한 리뷰를 써주셔서 제 개인전 최고의 상이 되었습니다! 인사동의 대단한 작가들의 전시를 둘러봐도 이런 리뷰를 써 주는 분들이 있을까요? 관련 평론임은 몰라도 일반 관객이 리뷰를 남긴다?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3줄 정도겠죠. 어쨌거나 초보 신진작가에게는 무한한 영광입니다..ㅎㅎ

그리고 바람돌이 님과 더불어 알라딘 서재에서 축하해주신 알라디너 님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잉크냄새 2025-08-22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중에 부캐로 하신다는 내용이 참 의미있네요. 좋아하는 것에 빠져보는 것도 인생의 큰 즐거움이 아닐까 합니다.

yamoo 2025-08-23 13:32   좋아요 1 | URL
네..저는 그 분을 그날 처음 뵈었고, 그 모임에 처음 나오신 분이었는데 저런 리뷰를 써주셔서 넘 감사했다는..^^

저는 좋아하는 것에 빠진 게 아주 많아요. 우표 수집, 탁구, 볼링, 테니스, 골프, 스피드 스케이팅, 애니메이션 객원 기자 등등. 그런데 뒤늦게 빠지게 된 회화는 앞에 열거했던 취미활동과는 그 결이 완전히 다른 듯해요. 무언가 즐기면서 부산물이 나오는데, 그게 나의 창작물이라는 거. 그리고 전국 공모전에서 거의 매번 상을 타고 창작 행위를 고무케 하는 거...이건 글을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성취감을 갖게 합니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너무 많지만 그림은 내 개성을 더욱 강하게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에 글보다 더 매력적인 데가 있습니다. 늦었지만 회화의 세계에 발을 들인게 정말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작업하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몰라요. 이처럼 재밌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ㅎㅎ

weekly 2025-08-22 2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개인전 여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저야 노가다를 워낙 중시하는 사람이라 일단, 개인전을 채울 정도의 양과 질의 작품들을 꾸준히 뽑아낼 수 있었다는 점에 감탄합니다. 리뷰 쓰신 분들도 그에 호응하여 정성껏 써주신 듯 합니다. 읽어보려 했는데 지금의 무거운 머리로는 무리네요.:< 나중에 다시 들를께요~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요. 수고 많으셨습니당~

yamoo 2025-08-23 13:37   좋아요 0 | URL
네! 인사동 갤러리에서 정식 제 조형언어를 발표하게 됐어요~~
감사합니다! 작업을 할 때에는 힘들 줄 모르는데, 뭔가 전시를 하려면 각종 노가다 비슷한 활동을 수반합니다. 생각보다 훨씬 귀찮고 번고롭고 그래요. 초대전 형식이지만 부가적인 돈도 의외로 많이 듭니다. 작품 이동비, 액자비, 도록을 만들면 도록비 등등. 한도 끝도 없어요. 그치만 연간 1번 정도 하는 행사라 다들 하는 거 같은데...저도 동참은 했지만 너무 번거롭고 귀찮아서 다음번 하게 되면 큰 작품 위주로 깔끔하게 할까 합니다. 담에 하게 되면 소식 전해드릴게욤!^^

카스피 2025-08-23 0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셨다니 축하드립니다.앞으로도 화가로써 더욱 더 이름을 널리 알리길 기원합니다^^

yamoo 2025-08-23 13: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카스피님. 앞으로 갈길이 먼데, 이름을 알리려면 뭔가 운이 따라줘야 됩니다. 절대 혼자는 안되요. 언론에 오르내리고 미숩잡지에서 비중있게 다뤄줘야 하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작품도 좋아야 겠지만 미술인들의 눈에 들어야 해서 제 일 밖이에요. 뜨건 안뜨건 제 작업에 충실하고 제 서사가 잘 담겨 좋은 그림을 그리는 게 제 목표입니다. 다른 건 전혀 생각지 않고 있어요~~ㅎㅎ

새파랑 2025-08-23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십니다. 역시 알라딘에는 엄청난 분들이 많으신거 같아요~! 언젠가 시간이되면 두번째 전시전에 꼭 가보고 싶습니다~!!

yamoo 2025-08-23 13:43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처럼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전시회 오셔서 해 주는 말 중 가장 많은 말이 ‘대단하셔요~‘라는 말이었어요. 저는 이게 대단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어떻게 개인전을 하게 된 건데 모두 놀라는 반응을 보여주셔서 좀 더 열심히 작업해야지..하는 결심을 하게됐습니다.

모두 격려 차원으로 이해하고 감사함을 전합니다~~

니르바나 2025-08-23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인전 잘 마치신 것 축하드립니다.
이제 yamoo화가님이라고 불러드러야겠습니다.
개인전 과정을 말씀하신걸 보니 복잡다단한 과정의 연속이었네요.
참참참 수고하셨습니다.^^

yamoo 2025-08-25 09:28   좋아요 1 | URL
반갑습니다! 니르바나 님..^^
아직 화가라고 하기에는 경력이 일천합니다. 한국미술협회 가입이 되어야 정식화가로 인정됩니다..ㅎㅎ

개인전 과정은 생각외로 할 게 많고 돈과 노가다가 듭니다. 이런 귀찮고 번잡한 일을 한 해에 한 번꼴로 해야 한다는 점이 싫습니다만...작가의 숙명이라고 합니다. 통과의례 정도 되나 봅니다. 해마다 견뎌야 겠습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25-08-24 2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 yamoo님, 개인전 준비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개인전 보러 올 거라고 댓글로 약속했는데, 약속을 못 지켜서 죄송합니다. 사진으로나마 yamoo님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쉬면서도 다음 작품을 구상하시겠죠? ^^

yamoo 2025-08-25 09: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사이러스님. 뭐 약속을 지키지못했다고 사괴하실 필요까지야...^^::
어데까지나 이런 참여는 부차적이니까요. 사정상 못오시는 분들이 훨씬 더 많을 거고, 약속했다고 해서 중요한 약속도 아닌데 참석 의무는 없다고 봅니다. 그런 인사만으로도 고맙죠. 부산에 내려가면 하번 뵈었으면 하네요~^^

댄스는 맨홀 2025-09-14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너무 너무 멋지셔요. 전 그저 감탄만하게 되네요.

yamoo 2025-09-15 06:5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제는 과거의 한 페이지가 됐네요...ㅎㅎ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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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서 한 지인이 그랬다. 자기는 우울증이 있어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고. 다른 건 다 호전 됐는데 한 가지가 떨어지지 않는단다. 그래서 우리가 물었다. 그게 뭐냐고. 그랬더니 자살률이 98%가 나온 이후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나. 항상 언제 죽을지만 생각한단다.

 

매우 쾌활하고 생활에 여유도 있어 근심 걱정 없는 분인 줄 알았는데 그런 내막이 있는 줄은 몰랐다. 본인이 그랬다. 그렇게 우울증이 걸린 게 자기 어머니 때문이라고. 치매 말기라 자기가 어찌해야 좋을지 매일 번아웃과 같은 증상이 쌓여 지금의 상태가 됐다는 전언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만고불변의 진리다. 다만 그 시기만 문제가 될 뿐. 어떤 사람은 100세까지 장수를 누리다가 편안하게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갖은 병치례를 하며 80세에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요즘은 치매로 요양원에서 죽는 비율이 점점 높아진다고.

 

기분 처지게 왜 죽는 얘기로 시작하는가 하니, 본 책 <에브리맨>(문학동네, 2012)늙어감죽음에 대해 얘기해 주기 때문이다. 사전 정보 없이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본 책이 죽음에 관계된 책이라는 걸 책을 덮고 나서야 알게 된다.

 

보통 이런 우울한 책은 읽는 게 힘들어 선뜻 손에 잡기 어렵다. 다른 재미있는 소설도 많은데 굳이 죽음에 관한 책을 읽는다니, 내키지 않는 분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책 타이틀로부터 이를 감지하기는 쉽지 않다. 필립 로스라는 브랜드는 일단 믿고 보는 저자다.

 

그렇기에 읽어 가며 약간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자꾸 무덤과 장례식 장면이 나오기 때문. 처음 시작부터 주인공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이게 텀을 두고 반복된다. 책을 다 읽으면 그 이유가 선명하게 보인다. 본 작품의 주제가 늙어감죽음이기 때문이다.

 

책의 타이틀이자 본문에 등장하는 에브리맨은 중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운영했던 보석 상점의 간판 이름이자 모든 보통 사람을 상징하는 단어이기에. 이 소설의 이야기는 곧 주인공의 일대기나 다름없다.

 

그래서 필립 로스는 주인공 캐릭터에 이름을 부여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라는 3인칭 대명사만을 고수한다. 그 이유가 모든 보통 사람의 삶을 소설 주인공의 삶으로 환원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설을 읽는 사람은 누구든 주인공의 비애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태어나서 유아기-유년기-청소년기-청년의 시기를 거쳐 중년 그리고 노년의 삶으로 이어지는 보통 사람의 시간 속에서 통상적으로 겪는 삶의 경험은 보편성을 담보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3번 결혼하는 예외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 속에서 겪는 인간의 고뇌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는 거.

 

그것이 바로 생로병사로 요약된다. 태어나서 죽되 그 과정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이 거세되면서 육체가 점점 시들어 간다는 점. 그에 수반되는 질병은 인간의 생의 의지를 갉아 먹는다. 결국 노인은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이제는 수많은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점점 줄어드는 과정에 있었으며, 종말이 올 때까지 남아 있는 목적 없는 나날이 자신에게 무엇인지 그냥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목적없는 낮과 불확실한 밤과 신체적 쇠약을 무력하게 견디는 일과 말기에 이른 슬픔과 아무것도 아닌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일. 결국 이렇게 되는 거야. 그는 생각했다. 이거야 미리 알 도리가 없지.”(P167)

 

이렇게 말하는 주인공은 키가 190의 장신에 좋은 마스크를 갖고 있고 광고계에서 나름 유력한 인물이다. 한마디로 많은 돈과 출중한 외모는 그 어떤 여자도 마음만 먹으면 가질 수 있는 연애 시장의 포식자다. 그렇기에 그의 신체가 시드는 것은 그에게 말할 수 없는 상실감과 우울감을 갖게 한다.

 

필립 로스는 주인공을 대신해서 말한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P162) 그래서 이 한 문장은 너무도 강력하다. 이 책의 주제를 집약한 언명이자 우리 시대 모든 노인들을 대변하는 말이다.

 

주인공은 부모의 무덤 앞에서 외친다. 그의 어머니는 여든에 죽었고, 아버지는 아흔에 죽었다. 그는 소리내어 말했다. “저는 일흔 하나에요. 당신네 아들이 일흔하나라고요.” 그리고 주인공은 그 다음 날 심장 수술을 받다가 심장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여 심정지로 생을 마감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노년의 삶에 대해서 다시금 깊게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다가올 나의 미래. 그것은 필립 로스가 주인공을 대신에서 말했던 대학살의 시기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죽음만을 기다리는 고독하고 수동적인 삶. 가족이 없다면 학살의 칼을 온 몸으로 받아야겠지.

 

소설 속 주인공은 순환기에 이상이 있어 60이 넘어 매년 수술대에 올랐지만, 나는 어떨까. 치매로 기억이 없어지며 벽에 똥칠하다가 고독사하는 건 아닐까. 차라리 71세에 나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게 나을까. 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는 분명히 혼자일 터인데 누가 나를 돌보며 누가 나의 시신을 거둘까.

 

이따위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1인 가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나와 같은 이 빌어먹을 망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걸 의미하겠지. ‘대학살기(大虐殺期)’가 오고 있다(왕좌의 게임 ‘Winter is coming’의 바로 그 버전). 소설을 읽고 어떻게 될지 미리 알긴 하지만, 이건 도저히 피할 수가 없을 듯하다.

 

인간은 모두 늙어 죽는다는 이 평이한 명제가 학살 당하기 위해 시나브로 나이를 먹어가는 과정이라니, 정말 무시무시한 소설이라 아니할 수 없구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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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8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년이 대학살이라고 표현하다니... 그만큼 노년이 주는 고통과 고독이 크다는 얘기일까요? 기분이 너무 업되었다 싶을 때 읽어야겠습니다.
집안에 매 시간 보살펴야 하는 환자가 있으면 우울증이 올만큼 힘들거예요. 부디 친구분이 평안해지시길요. 아무 도움 안되는 말이지만요

yamoo 2025-08-19 17:18   좋아요 1 | URL
책 162페이지에 나온 표현입니다. 그냥 읽어도 돼요. 한 사람의 일대기이니까요. 단지 나이든다는 걸 새삼스럽게 반추해 볼 수 있어 서사의 힘이 이런 것이구나...하고 느껴볼 수 있어요. 뻔한 얘길 이렇세 이야기로 형상화할 수 있은 작가는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가라하지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팔힙 로스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 빼고는 그리 감흥있게 릵은 작품이 없어요..^^;;

저도 위 지인의 건강을 염원합니다!

stella.K 2025-08-20 1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0년 아니, 5,6년 전만해도 안 읽었을 것 같은데 웬지 읽어보고도 싶네요.
다 나이 탓이겠죠? 저의 엄니도 정말 황혼이시고,저도 더 이상 젊지 않으니.
필립 로스를 예전에 하나 읽은 것 같기도 한데 좀 칙칙하긴 하지만 글은 정말 잘 썼던 것 같아요.
그 지인 분 치매 어머니 때문에 번아웃이 왔다면 문제를 알고 있다는 건데 고비를 잘 넘기셨으면 좋겠네요.
미디어에선 자살을 극단적 선택이란 순화된 단어를 쓰는데 그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에겐 더 안 좋을 수 있다고 해서 쓰지 말자는 하더군요. 자살을 자살로 직면해야지 극단적 선택이라면회피나 선택이란 쪽으로 몰아가서 더 부추기는 꼴 밖에 안 된다고. 일리있는 말이란 생각이 들어요.
본인의 상태를 스스로 얘기할 정도면 아직 희망은 있다는 건데 조금만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yamoo 2025-08-20 17:54   좋아요 1 | URL
나이가 들어가면 부모님의 나이도 들어가고 노년의 말기에 이르기에 이 책이 더 의미있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필립 로스는 매우 남성적인 시각에서 철저하게 작품을 쓰기에 페미니즘 관점에서는 매우 거부감이 들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늙은이가 젊은 여자와 연애하는 걸 공공연히 그리는걸 봐서는 뭐...여기 본 책의 주인공은 곧 로스의 분신처럼 여겨지죠. 그래서 좀 거부감이 많이 듭니다. 여전히 대부분의 작품이 그래요~ 그래서 읽다 말았는데, 이 책은 로스의 책 중에서 가장 괜찮은 작품이라 리뷰를 남겼습니다..ㅎㅎ

저도 지인의 번아웃을 보면서 다가올 미래라 예사롭지 않아요. 저도 그분이 완전히 회복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토욜 갤러리 관장님과 디피 및 설치를 하고(그림 포장해서 옮기는데 죽는 줄 알았음..ㅜㅜ) 오늘부터 전시를 시작했습니다. 오픈 14시. 오프닝따위는 없습니다..ㅎㅎ 원래 인사동은 월욜이 전시 설치날이라 대부분 휴관입니다.


그렇기에 가족들과 같이 둘러보고 관장님과 인사한 뒤 밥을 먹고 왔는데, 계속 카톡 문자가 울리는 겁니다. 보니 갤러리 관장님의 문자.


전시 첫날인데, 그림이 계속 팔린답니다..^^;;

전시된 작품에 왼쪽 제 프로필 그림이 좋은지 저 그림을 넣어주면 구매하겠다는 분이 계셔서 연락 주셨다고, 또 한 시간 있으니 또 한 작품에 훈민 정음 글자 넣어줄 수 있으면 구매하겠다고 선금 걸어 놓고 가셨다네요. 헐~~


또 얼마 후 40호 그림 80만원만 깍아서 줄 수 있는지(관람객이 깍아달라고 했다네요..--;;) 문의하시는 관장님...


2시 오픈 하고 6시 되기 전에 오늘 벌써 6작품이 팔렸습니다!!

이건 정말 예상을 가뿐히 넘어버렸어요.

그 전에 관장님께서 제 그림 두 점을 구매하셨는데, 여기서 수 없이 많은 작가들 전시회를 했는데, 관장님이 소장하려고 구매한 건 제가 2번째 라네요!!


그만큼 그림이 좋다고 하셨는데, 관장님 촉이 맞았나 봅니다. 관람객들이 계속 문의를 한다네요... 세상에나~~

뭐, 어쨌든 마지막날까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10점만 팔려도 대성공인 신진작가 개인전에서 첫날 6점 팔렸으니...정말 고무적이고 열심히 그려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오지 못하시는 분들을 위해 갤러리 전경을 올려봅니다.




참고로 이번 개인전에는 47점을 냈는데, 갤러리가 생긴 이후 개인전 작가로 가장 많은 작품을 출품했다는 전언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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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 2025-08-11 2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축하합니다 yamoo님. 얼마나 뿌듯하실까요. :)

yamoo 2025-08-12 10:54   좋아요 1 | URL
뿌듯하기보다는, 궁금증 반, 걱정 반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구매할까? 왜 구매할까? 입니다. 그리고 약간 무서운 감이 있습니다. 담번 전시에서 팔리지 않으면 어쩌지...라는...ㅎㅎ 김칫국 마시는 중..ㅎㅎ

잉크냄새 2025-08-11 21: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축하드립니다.

yamoo 2025-08-12 10: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5-08-11 22: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첫 개인전에 47점이라니 어마어마한걸요. 정말 멋지세요.

yamoo 2025-08-12 10:56   좋아요 1 | URL
75점 그렸는데, 완성도가 약간 떨어지거나 종이 그래도 붙인 작품도 있는데, 그런 건 전부 제외했습니다. 한지와 화지 위주의 작품만 추려서 낸 건데, 마지막에 사진 찍지 못한 40호 3점을 발견해서, 그건 이벤 전시에 빠졌어요..ㅎㅎ

감사합니다, 바람돌이님!

페넬로페 2025-08-12 0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축하 드립니다.
개인전도 대단한데 그림 판매량도 많으시고!
이런걸 대박이라고 하나요 ㅎㅎ

yamoo 2025-08-12 10:58   좋아요 0 | URL
대박인지 아닌지는 끝나봐야 알 거 같아요. ^^;;
초반 스타트는 무척 좋은 것만은 분명한 듯합니다..ㅎㅎ
저도 대박났으면 좋겠습니다!ㅎㅎ

hnine 2025-08-12 04: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정도면 성공인거죠? 박수 짝짝! ^^
전시장의 그림 배열이 독특한 것 같아요. 직접 가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아쉽습니다.
축하드립니다.

yamoo 2025-08-12 10:59   좋아요 0 | URL
전시장 그림...소품이 많으니 관장님께서 저런 기획력을 보여주셨어요..ㅎㅎ
콜라주 작품이라 작품으로 콜라주를 해버리셨다는...ㅋㅋ

감사합니다!

stella.K 2025-08-12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놀랍습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언제죠? 재작년인가 저한테 그림 선물해 주신다고 하셨을 때 넙죽 받을 걸 그랬습니다. 그때 제가 무슨 정신으로 괜찮다고 했는지 지금 생각하니 후회되네요. ㅎㅎ
암튼 정말 잘됐네요. 축하합니다!! 전시회 대박나시기 바랍니다. 🙏

yamoo 2025-08-13 09:3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ㅎㅎ
한사코 사양하셔서...드리고 싶어도 못드렸다능!ㅎㅎ
근데 지금 급후회를...ㅋㅋ

감사합니다! 끝나봐야 아는데, 예술 모임 회원분들이 다녀가셔서 관람 후기 남겨 주신거 읽고 여기다가 공유할까 합니다.ㅎㅎ 누가 알지 못하는 작가 개인전 후기나 리뷰를 남겨 주나요..ㅎㅎ 3편이나 써 주셔서 갈무리하고 여기 공유할 예정~~^^^

새파랑 2025-08-12 15: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시회 대성공이네요~!! 많은 작품들이 팔린것도 좋고, 많은 사람들에게 yamoo님 작품이 인정받고 있다는것도 좋고~! 대단하십니다~!!

yamoo 2025-08-13 09:34   좋아요 0 | URL
작품이 팔리는 것도 좋긴 하지만, 제 개인전 보고 후기나 리뷰를 남겨 주신 분이 있다는 거가 더 대박입니다!! 알지 못하는 신진작가 개인전을 보고 리뷰를 남긴 글이 3편이나!!!

카스피 2025-08-12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전시회 축하드립니다.게다가 작품들도 많이 팔리신다고 하니 많히 기쁘시겠네요.전시된 작품이 모두 팔려서 야무님 대박다시길 기원합니다^^

yamoo 2025-08-13 09: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림이 팔리는 것도 신기하긴 하지만 제 개인전 보고 리뷰를 남겨주신 분들 때문에 개인전의 의미가 남다른 거 같아요. 중견 작가 개인전하고도 리뷰하나 없는 게 우리네 미술시장의 사정인데, 저는 3개나!!! 관객의 리뷰는 개인전에서 정말 드문 일 중 하나입니다~~

그레이스 2025-08-13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축하드려요
늦게 간 사람은 못보는 그림이 많겠네요

yamoo 2025-08-13 17:5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님!
맞아요. 이미 팔린 그림은 없어져서 다른 그림으로 그 공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다행히 작품수가 많아 걸지 못하고 밑에 디피해 뒀거든요~ㅎㅎ

페크pek0501 2025-08-13 16: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야무 님, 나중에 유명해지셔서 저, 모른 척하기 없기, 입니당~~
벌써 유명한 작가 대열에 끼신 것 같지만... 축하합니다. 추카추카!!

yamoo 2025-08-13 17:55   좋아요 1 | URL
이름이 나려면 신문에 기사가 나거나 외국에 초청되어 소개되거나....뭐 그래야 됩니다. 아미면 국내에서 개인전 했다하면 완판! 그럼 인근 갤러리에 소문나서 유명해 집니다..ㅎㅎ 그런 기린아가 이희준 작가였죠. 1회 개인전에 무려 완판시킨 작가. 물론 큰 갤러리가 마케팅한 것도 크긴 하지만 이희준과 같은 케이스는 매우 드물죠. 30대 초반 1회 개인전에서 완판시켰으니...이희준 정도 돼야 신진작가 중에서 유명한 작가 대열에 듭니다. 저는 이제 막 스타트 한 걸음마 작가에요..^^;;

감은빛 2025-08-17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축하드립니다! 야무님. 첫 개인전과 첫날의 판매실적 모두요. 대단하네요. 앞으로 점점 더 실력을 인정받아 유명해지시겠어요. 야무님의 멋진 작품 활동을 응원합니다.

yamoo 2025-08-18 11:3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ㅎㅎ
개인전 끝나고 많이 생각이 들더라구요.
좀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 개인전을 준비해야 겠어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와서 축하해 주셨어요..^^

자목련 2025-08-19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진 전시에 판매까지!!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아지겠네요^^

yamoo 2025-08-19 18:51   좋아요 0 | URL
판매까지 된 건 순전히 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작품도 역시 팔릴 수 있는 매력적인 형상이어야겠죠. 노력해야할밖에요..^^;;

감사합니다, 자목련님!!

댄스는 맨홀 2025-08-21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지십니다. 축하드립니다. 몸살나지 않으셨을런지~ 건강조심하셔요.

yamoo 2025-08-22 12:12   좋아요 0 | URL
이제 시작입니다..ㅎㅎ
다행이 몸살은 나지 않았지만 설치와 철거날은 정말 힘들었어요. 이런 짓을 매해 해야하다니...담번에는 좀더 쉬운 방법을 탐색해 보게 됩니다..^^
여튼 감사합니다!!
 

정희진이 작년인가 영어교육에 대해 칼럼을 썼나 보다. 정희진 좋아하는 누군가가 얘기해서 칼럼을 읽어 봤는데, 뭐 뻔한 내용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영어 잘해서 대통령까지 한 사람으로 최규하 전 대통령을 언급했었는데, 최규하가 영어 하나 잘해서 대통이 됐을까. 당시 상황상(권력 구조 승계 구조상) 어쩔 수 없었다는 게 중론인데, 영어 하나로 대통령이 된 사람으로 언급하다니, 침소봉대가 아닐까.

 

진짜 영어 하나 기깔나게 잘해서 고위 인사가 된 사람이 있다. 이승만. 이승만은 배재고보 다닐때부터 영어를 기가막히게 잘했다. 20살 무렵부터 독립운동을 했었는데, 그게 우리말을 외국어로 번역하여 해외에 알리는 뭐 그런 거였다. 그래서 임정 연통부에서 활동한 거. 이승만 정도 되면 그래도 영어 하나 잘해서 대통 됐다고 할 수 있겠다. , 장면도 추가.

 

영어 잘하면 출세길이 열렸던 지난 시절. 영어 잘해서 대통령과 수상이 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후진국이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뭐 요즘은 이상하게도 법조인들이 다 해먹는 세상이 돼서 미국 따라가는 국가가 되는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변호사 출신 대통령만 3명 이상이고, 법조인으로 확대하면 훨씬 더 많다.

 

어쨌거나 내가 하려는 얘기는 영어다.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까지 영어와 수학 과목은 정말 절대적이다. 이 두 과목을 잘하면 일류대는 따 놓은 당상이다. 그중에서 영어는 졸업 후 취업 너머까지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과목이다. 진짜 무소불휘하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수학이야 혼자 잘하면 장땡이지만 영어는 문화의 한 부분이기에(혼자 하기 쉽지 않다) 사회 계층을 나누는 하나의 문화자본이 된 지 오래다.

 

우리나라에서 20세 후반 청년들이 토익, 토플, 텝스에서 좋은 점수를 갖지 못하면 아예 취업 기회가 없다. 원래 좁은 취업길도 원천 봉쇄된다. 그만큼 외국어 중에서 영어란 놈은 하나의 언어 이상이다. 일본어를 못해도, 스페인어를 못해도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왜냐하면 외국어는 필요에 의해서 배우는 기능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해서 자격증을 따는 것처럼.

 

일본어나 독일어 못한다고 해서 자살하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영어를 못하면 전체 수능 성적이 낮아져 자살 충동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은 줄로 안다. 기준 점수의 공인 영어 성적이 없으면 공무원도 되지 못하는 세상이다. 이건 정말 아니다. 왜 영어만 공인 영어 점수를 요구하나? 일본어나 스페인어는 왜 안되나? 그러니 영어는 하나의 과목이 아닌 거고, 일반적인 외국어도 아닌 계층을 나누는 기준이 된 거다.

 

공인 외국어 성적 얘기를 해 보자. 우리나라에서 실시하는 공인 영어 시험은 토익, 토플, 텝스, 지텔프 등이 가장 대중적이다. 이 시험은 각종 공무원 시험에서 영어 과목을 대체하는 공인 시험들이다. 나는 학부 4학년 때 토플 시험을 친 이후 오랫동안 공인 영어 시험 성적이 없었다. 딱히 필요하지 않아 응시할 필요가 없었는데, 나를 아는 지인들은 영어 점수 하나 없는 루저라고 놀리기 일수였다.

 

개나 소나 토익 900점 시대. 진짜 물어 보면 죄다 토익 900은 기본이라기에 2010년 쯔음 한 번 응시해 보았는데, 600점을 간신히 넘긴 정도. 200문항에 맞춰 연습을 하지 않으면 절대 기준 점수를 획득할 수 없을 정도로 쉽지 않았다. 900점은 시험을 계속 봐서 가장 좋은 점수를 내는 것이 자기 점수라고.

 

공인 영어 점수가 필요하지 않아 내 토익 점수는 620점으로 박제됐다.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미는 쪽팔린 점수였는데, 이를 안 것도 시험을 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험 삼아 응시해 본 토익이라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집에서 툭하면 이 점수를 들먹거리는 거다. ‘영어도 못하는 넘이라고. 평생 공인 영어 시험 성적이 없을 이상한 사람 취급해서 할 수 없이 공인영어 시험공부란 걸 대학 졸업 이후 처음 했다.

 

이게 2019년 무렵이다. 코로나 터지기 직전. 토익시험 공부가 너무 짜증이 나서 단기간에 공부하여 기준 점수 이상(토익 800점 정도) 넘을 수 있는 시험을 탐색하던 중 지텔프라는 셤을 알게 됐다. 교재를 사서 2개월 간 정말 빡세게 공부했다. 영어만 공부한 건 대학 졸업 후 이때가 처음이었다. 1개월 빡세게 공부하니 61점이 나왔다. 근데 토익 700점과 같은 점수는 65점이라네?! 그래서 또 1개월을 빡세게 공부했다. 그리고 나온 최종 점수 76(토익 800점 이상).

 

그리고 더 이상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됐다. 지텔프 76점 확보 이후 집에서 영어 못한다는 소리를 한 번도 안 하는 거다. 공인 영어 점수 없는 이상한 사람 취급도 안 했다. 어쨌든 난 뭘 해도 영어 기준 점수 이상을 확보한 사람이라는 거. 각종 시험 응시 자격을 충족(지텔프 65)하고도 남았다. 뭐 나하고 하등 관계가 없는 듯한 시험의 자격 요건 이지만 그래도 기분은 꽤 좋았다.

 

이 빡세게 공부한 시간에 독해력 향상을 위해 다시 본 책이 김영로의 <영어순해>였다. 엔날 학부 1학년 때 입학과 동시에 사 두었던 빨간색 고려원판 <영어순해>. 강의 테잎도 있었는데, 이사 다니면서 없어졌다. 김영로가 편저한 이 전설의 영어 독해책이 여전히 알라딘에서 판매하는 거다! 표지만 산뜻하게 바뀌어서 말이다. 이 책은 김정기의 <거로 보카>와 더불어 대학가의 필독서 중 필독서였다

(바로 아래 책이 고려원에서 나온 전설의 빨간 영어순해 책!)

당시 이 <영어순해> 책을 다시 보면서 새삼 느꼈지만, 영어에서 어려운 문장들은 죄다 모아 놓은 독해책이었다. 그 옛날 <성문종합영어>에 나오는 독해보다 훨씬 어려운 내용이 즐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타임지나 뉴스위크지에서 어려운 부분만 발췌하여 실어 놨으니 당연히 어렵겠지. 이런 책을 십수 번 보느니, 챕터북을 보는 게 훨씬 이롭다는 걸 나는 이전에 이미 알았지만 공인 시험 성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거.

 

알라딘에서 우연히 <영어순해책을 본 순간 안 좋은 기억들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면서 옛 기억을 되살려 놓았다이 책이 아직까지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영어에 얽힌 여러 기억들이 교차해서 페이퍼로 남겨 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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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8-04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문종합영어> <맨투맨> <영어의 맥>, 기라성 같은 책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ㅎㅎ
그래봤자 토익은 예전 과장 진급 마지노선이던 650이 최종 박제 점수입니다.

yamoo 2025-08-05 18:21   좋아요 0 | URL
오~~~ 맞다, <영어의 맥>도 있었지요...고3때 이걸로 공부한 적도 있었는데..맥시리즈...이광용 저..ㅎㅎ 기본서는 엄청 두꺼웠다는...
잉크 님두 650점 박제였군요...ㅎㅎ 토익은 공부하기 정말 싫더라구요~ 공부하기는 텝스가 재밌긴한데, 점수가 무쟈게 안나오고..ㅎㅎ 토플이 제 성향상 가장 잘 맞더라구요. 근데 넘 비싸서 안보게 된다는..^^;;

바람돌이 2025-08-04 21: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영어 너무 싫어서 대학 갈 때 영어 안해도 되는 과 찾아서 간 사람 저요. ㅎㅎ 그래서 지금은 남들이 막하는 원서 읽기도 쳐다도 안 보는데 그래도 야무님은 이런 도전을 해보다니 대단하셔요.

yamoo 2025-08-05 18:27   좋아요 2 | URL
아니, 바람돌이 님이 영어를 너무 싫어한다니...의외이고 새로운 사실을 알았네요!! 뭐, 영어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좋아하는 사람들보다 싫어하는 사람들이 배 이상 많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어 싫어서 영어 안해도 되는 과를 찾아가셨다라...그게 더 대단한데요..ㅎㅎ

저는 수학이 그렇게도 싫었는데...아주 친했던 중학교 동창넘도 수학이 싫어서 대학갈 때 수학 안하는 과가 뭐지...하면서 찾다가 응용통계를 썼는데, 이게 4년 내내 수학하는 거라 얘가 미쳐버려서 전공 때려치구 소프트웨어 쪽으로 나갔다는...ㅎㅎ
저두 대학갈 때 수학 영어 법 등이 싫어서 피하다 보니 갈 수 있는 과가 거의 없더라구요...어문계열도 싫어서 찾아보니 철학과 행정으로 좁혀져 할 수 없이 행정을 택했는데, 드럽게 재미가 읎어서 철학과로 갈아탔죠..ㅋㅋ

바람돌이 2025-08-05 19:17   좋아요 2 | URL
수학 영어 법 다 싫어서 마지막 종착지가 철학이라니... 야무님이 진짜 윈입니다. ㅎㅎ

yamoo 2025-08-06 10:28   좋아요 1 | URL
어린 마음에 학과 선택 시 타협점이 없었는데, 들어가서 배우고 보니 재밌더라구요..ㅎㅎ 대학원이 아닌 학부로 철학은 다른 과 보다는 훨씬 제 적성에 부합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졸업하고서도 계속 철학책을 읽었던 거겠지요..ㅎㅎ 철학과 졸업해서 한 가지 좋았더 점은 철학원서에 대한 문턱이 매우 낮아 읽고 싶었던 걸 읽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해하는 건 별개의 문제였지만요..ㅎㅎ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1장을 읽고 어느 정도 이해하기까지 10년 조금 넘게 걸렸네요..ㅎㅎ

꼬마요정 2025-08-04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와 대단하십니다. 저도 예전에 시험 치려면 토익 점수가 필요해서 토익에 매달렸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구요. 그냥 필요 점수 턱턱 넘기는 사람들 부러웠죠. 저는 영어 싫어합니다ㅠㅠ 어릴 때 엄마가 수학만 시켰어요. 그래서 영어는 잘 못했고, 또 유인도 없었고, 어쨌거나 계속 수학만 시키고...ㅠㅠ 전 문과인데 말이죠ㅠㅠㅠㅠ

yamoo 2025-08-05 18:32   좋아요 1 | URL
보니까 토익은 강의듣고 주구장창 문제연습하면 되는데, 그 연습 기간이 좀 길어보입니다. 제가 보긴 그래요. 필요점수 획득하기 가장 좋은 인증 셤은 지텔프같습니다. 근데 지텔프는 듣기가 너무 어려워서 80점 획득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많큼 힘들어요. 그래서 고득점 맞기 위해선 토익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걍 계속 1년간 주야장천 셤보고 학원 가서 강의들으면 얼추 900점은 근처는 가더라구요~ 600점 부터 시작해서 1년간 영어만 공부한 친구들 대부분 900점 넘어서....토익은 영어실력이 아니라 문체푸는 기교연습뿐이 안됩니다. 900넘는 친구들 중 대화 잘하는 사람 하나 없다는..ㅎㅎ

아니 근데 꼬마요정님 어머님은 정말 특이하시네요. 문과인데 왜 수학만 공부시키는지...근데 수학 잘하면 등급이 뽝~ 뜨지 않나욤??ㅎㅎ

꼬마요정 2025-08-05 22:35   좋아요 1 | URL
이게 말입니다. 영어가 죽 쒀서 국어랑 수학이 등급 잘 나와도 진짜 좋은 데는 안 되더라구요. 게다가 전 수학 역배점에 당해서 말입니다ㅜㅜ

엄마의 언니인 이모네 아들 딸이 수학 못해서 서울대를 못 갔거든요. 엄마의 오빠인 삼촌네 아들이 수학 땜에 재수했거든요. 막내인 엄마는 이 상황을 보더니 주구장창 수학만 시켰어요 ㅋㅋㅋ 결과는 서울대는 무슨 ㅋㅋㅋㅋ

yamoo 2025-08-06 10:31   좋아요 1 | URL
어머니의 욕심이 대단하셨던 듯합니다. 그러기 쉽지 않은데...ㅎㅎ
그래도 시도는 아주 신박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승자는 어머니시네요. 진짜 수학에 올인시킨 학부모가 있다는 걸 듣긴했는데, 꼬마요정님 어머니이시네!!!ㄷㄷ

hnine 2025-08-05 15: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 저도 대학생때 빨간 색 영어순해 책 가지고 공부했고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분철해서 가지고 다녀서 몇 조각이 나있답니다. 책 속 예문에서 가끔씩 만나는 명문장들 만나는 재미에 붙들고 있을 수 있었지요. 거의 25년전 이야기 …^^

yamoo 2025-08-05 18:35   좋아요 0 | URL
와우! 엣지나인님두 갖고 계시군요!! 여기 명문장이 얼마나 있는지는 저는 전혀 모릅니다. 예~ 전혀 몰라요...ㅎㅎ
야~~ 명문장을 만나는 재미에 이 책을 못버린다니, 엣지나인 님은 영어를 잘하셨군요!
저는 1학년 가을 토플 아침 수업 때 have가 동사냐구 물었습니다...ㅎㅎ 강사가 할 말을 잃더라구요..ㅋㅋ

transient-guest 2025-08-08 0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라의 근간인 국어와 국사, 더해서 수학을 기본으로 잡고 과학, 세계사, 정치, 경제 등에 주안점을 두고 언어는 아무리 영어가 국제공용어라고 해도 다른 외국어와 동일하게 취급해서 교과과정과 점수에 반영하도록 해야 하는데 광복 이후 지금까지도 미국의 영향력이 크다 보니 이런 기형적인 교육이 되어 버린 것 같아요. 영어 말고도 사실 스페인어나 중국어를 잘해도 그 쓰임이 엄청난데 말이죠. 전 지금도 문법은 꽝이랍니다.ㅎㅎ 다행이 문법보다는 컨텐츠가 중요한 것이 제가 하는 분야의 일이라서 그리고 요즘은 tool도 좋아져서 큰 문제는 없습니다만...ㅎ

yamoo 2025-08-11 10:44   좋아요 1 | URL
트랜스 님의 의견에 격하게 동의합니다. 영어는 하나의 언어일 뿐인데,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 프랑스어 스펭인어 등 타 외국어에 비해 엄청나게 특화된 과목이라 생각합니다. 단위수를 줄이고 한국사와 세계사를 역사과목으로 통합하여 과학과목과 함께 이수 단위를 늘리고 중점과목화 시켜야 앞으로의 시대에 부합하는 인재 양성 기본 교육이 될 듯합니다. 현재 외국어로서 영어 과목은 너무 기형적이라 생각됩니다.

트랜스 님두 문법은 꽝이시군요!ㅎㅎ 미국서 생활하며 영어를 비즈니스로 사용해도 문법은 어렵긴 마찬가진가 봅니다..^^

transient-guest 2025-08-11 14:37   좋아요 1 | URL
제가 공부가 젤 어려웠던 사람이라서 ㅎㅎ 궁금하긴 한데 문법을 다시 공부해야만 하는 이유를 못 찾고 있습니다 ㅋㅋ

yamoo 2025-08-11 17:36   좋아요 1 | URL
수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문법을 공부하기는 정말 쉽지 않죠. 한국어 문법은 영어 문법과 비교해 체계가 없고 예외가 너무 많아 규정집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한국어 문법은 몰라도 살아가는데 하등 문제될 게 없는데, 자기가 번역을 한다거나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쓴다면 문법 공부는 필수입니다. 근데 인문 사회 번역가 중에서 한국어 문법 공부한 사람 거의 못봤네요. 공부하면 그런 번역 문장이 나올 수 없거든요. 헌데 한국어 문법을 공부한다는 건 보통의 결심 갖고는 안됩니다. 공부하기 제일 짜증나는 분야거든요. 거의 다 아는 것 같은 내용을 다시 공부한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아서 입니다...ㅋㅋ 막상 공부하면 죄다 몰랐거나 자기가 틀리게 쓰고 있다는 거..ㅎㅎ
 

우연찮게 예스24 중고서점에서 건진 책 가운데 걸출한 책이 있어 간략하게나마 소개해 본다.




<마음과 철학>(서양편 하). 이게 철학사 책인줄 읽어 보고 알았다. 다만 한 사람의 저자가 쓴 책이 아니라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가 엮어낸 일종의 철학자별 논문집인데 그게 플라톤부터 시작해서 데이비드 차머스까지다. 주제는 마음의 본성에 대한 탐구. 즉 색다른 세계 심리철학사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나는 고중세 철학 보다는 근대나 현대 철학에 관심이 많기에 하편부터 읽었다. 하편은 니체부터 시작한다. 여기에는 철학사에서 누누히 보아온 현대철학자들이 줄줄이 나열된다. 근데 다른 현대철학자들을 다룬 철학사와는 좀 결이 다르다.


프로이트, 라캉, 데이비슨, 설, 데넷, 차머스 등은 다른 철학사 책에는 거의 볼 수 없는 철학자들이다. 프로이트와 라캉은 정식분석학자들인데 여기 포함된 이유가 이 책이 마음(심신)에 대한 철학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당당히 재미철학자 김재권이 한 챕터를 장식하고 있다. 물론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소장학자들이 엮어낸 책이기에, 그리고 심리철학 분야이기에 김재권이 중요 철학자로 선택된 듯도하다. 하지만 데이비슨이 한 장을 차지하고 있기에 김재권이 들어가는 건 당연한 순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부수현상론 시비에 대한 김재권과 데이비슨 간의 논쟁때문이다. 수반이론을 여기서는 부수현상론이라고 하는 듯한데, 어쨌든 김재권이 데이비슨의 무법칙적 일원론이라는 주장(정신 속성을 인과적으로 무력하게 하는 부수현상론)을 반박하고, 이를 데이비슨이 재반박한 논문으로 학계에서 유명해진 논쟁이다.


그러니 심신문제에서 데이비슨을 선택한다면 김재권은 반드시 검토해 보아야할 철학자인 것. 김재권은 미국 현대철학사 그것도 심리철학 분야에서 매우 탁월한 업적을 쌓은 미국철학자이다. 그래서 어찌보면 여기 포함되는 게 당연한 듯하다. 문제는 그가 한국철학자가 아니라 미국철학자라는 사실이기에 그 부분에서는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이름 자체가 쟁쟁한 서구권 학자들과 동일선상에서 다루어진다는 것이 신선하다 할 것이다.


여러 소장학자들이 참여해서 쓴 철학사여서 체계가 없을 듯하지만 마음의 문제로 한정해서 집필된 책이기에 심리철학 역사에 훌륭한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떤 논제로 마음의 문제가 철학사의 주요 화두가 됐는지 읽어보면 체계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 특히나 각장 말미에 붙어 있는 '더 읽을 거리'의 서지 정보는 정말 좋다. 관련 분야의 핵심 추천 리스트 역할을 하기에.


개인적으로 한국철학사상연구소에서 펴낸 책들을 신뢰하는 편이다. 책을 읽어보면 각 분야에서 열심히 연구하는 학자들이라는 인상이 짙다. 밀도가 높으면서도 어렵지 않고 풍부한 서지 정보를 알려주는 책은 많지 않은데 서울대 철학연구소가 펴낸 책들은 대부분 이를 충족하고도 남는다.








본 책 <마음과 철학>(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8)은 그 중에서도 아주 잘 엮어낸 철학자들의 편집판. 관심있는 분들이 일독하셨으면 좋겠다. 고전적인 심신문제의 논의가 어떻게 현대철학으로 연결되어 심화되는지 그 발달 과정을 따라가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라 사료된다. 마음을 바라보는 개념틀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우리는 과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마음의 본성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지만 심리 현상에 대한 자연과학적 탐구의 성과는 아직 빈약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수학적 모형이나 과학적 실험이 아니라 마음을 바라보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철학적 개념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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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5-08-02 2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웬만해서 책 좋다고 말씀하시지 않는 야무님께서 이리 말씀하시니 마음이 가네요.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찜해놓겠습니다. ㅋ

yamoo 2025-08-04 10:16   좋아요 2 | URL
이 책 별로 어렵지도 않고 논점 파학하기도 좋아요. 철학사 책 치고는 평이합니다. 물론 핵심 개념들은 어렵긴한데, 철학자 소개와 그들이 중요하게 펼친 이론들을 주마간산하기는 아주 좋습니다.

카스피 2025-08-03 0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러 종류의 책들 중에서 철학사 책들이 가장 읽기 어려운 것 같아요^^;;;

yamoo 2025-08-04 10:43   좋아요 0 | URL
철학사 책들이 무척 두껍기 때문일거에요. 그리고 철학자별로 또는 시대별로 이론들을 주제에 맞게 시대순으로 정리한 책이라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