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빛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8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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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억에 관련된 소설을 좋아한다그 이유는 내가 베르그손 사상(특히 <물질과 기억>)에 경도되어 있기에 그렇다기억에 관련된 소설은 무척 많다그중에서도 파트릭 모디아노의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나 알랭 로그브리예의 <되풀이정도의 작품들은 정말 인상 깊게 읽었다고 할 수 있다여기서 인상 깊다라 함은 내 취향에 부합한다는 말과도 같다.

 

물론 줄리언 반즈의 기억의 파노라마’ 작품 세트도 재밌게 읽었다특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11페이지에 나오는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라는 문장은 이 소재의 모든 작품 해석의 치트키라 할 수 있다기억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해설 틀이기에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여기 기억을 소재로 하는 또 하나의 작품 <오래된 빛>이 있다노벨 문학상 후보에 언제나 회자되는 작가 중 한 명인 존 밴빌의 장편소설알라딘 소설 장인 뽈님이 별 다섯 개를 준 불후의 명작 중 하나그래서 무조건 읽어야 할 리스트에 포함하여 읽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대실망내가 가장 싫어하는 소설 분야인  누보로망 계열과 비슷한 전개로 나를 당혹케 했다작가는 도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사랑의 무의미함?' 아니면 '사랑과 상실?' 또는 '기억의 속임수에 대한 섬세한 탐구?' 뭐 인물들 간의 관계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작가가 이 작품을 왜 썼는지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

 

역자의 해설을 보면 이 소설이 앨릭스와 캐스 클리크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라나그래서 의미는 있겠다 싶다하지만 전작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작품만 읽으니 궁금증만 증폭되고줄거리와 관계없는 외부 풍경 묘사나 행동 하나하나를 지리할 정도로 늘어뜨려 묘사하는 스타일은 질린다. 알랭 로그브리예의 <질투>을 연상시킨다.

 

나는 이런 작품을 정말 싫어한다재미가 정말 없기 때문욘 포세만큼은 지루하지 않지만 그래도 읽기가 고역이다뒤에 뭔가가 있겠지’ 하며 던져 놓은 떡밥 때문에 꾸역꾸역 읽는 정도이런 류의 소설이 문체는 좋다고 하는데아포리즘과 같은 멋진 문장은 만나볼 수 없다진짜 줄 친 부분이 단 한 줄도 없다.

 

사실 소설 초반부를 읽고 매우 느낌이 좋았다이 책을 추천하는 분들도 대부분 좋다고 하고알라딘 평점이 무려 9.2라서 기대가 정말 컸다. <타타르인의 사막>과 같은 기대를 갖고 봤다더군다나 소설의 첫 부분은 너무도 매력적으로 시작해서 몰입도가 컸다. 초반부 읽고 나도 여기저기 추천을 해댔다.

 

빌리 그레이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나는 그의 어머니와 사랑에 빠졌다사랑은 너무 강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이 경우에 적용될 더 약한 말을 나는 알지 못한다이 모든 일은 반백 년 전에 일어났다나는 열다섯 살이었고 미시즈 그레이는 서른다섯 살이었다.” (p13)

 

15살 소년과 35살 유부녀의 육체적 사랑 놀음(불완전한 기억). 이것은 볼만했다전체 플롯에서 뭔가 상징적 메타포가 숨겨져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었고현실의 인물과 영화적 서사(주인공이 출연하는 영화)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뭔가가 있을 거라는 기대 말이다.

 

여기에 주인공 알랙시 딸 캐스의 죽음과 영화 주인공(알랙시가 연기하는 인물인물과의 어떤 관계가 그려져 과거 알랙시의 왜곡된 사랑이 어떻게 딸의 죽음에 영향을 미칠지 궁금했다작가가 어떻게 플롯의 구조를 짤지 계속 기대하면서 봤는데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실망감은 커졌고 마지막 장을 덮으며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이건 중간에 덮었어야 했다.

 

15세 때 미시즈 그레이와의 짧은 사랑, 딸 캐스의 죽음 그리고 돈 데번포트와의 영화 이야기가 완전히 따로 노는 느낌이 너무 강했다과거의 이상한 사랑은 현실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딸은 도대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도 제시되지 않는다알랙시는 딸이 죽은 곳으로 왜 데번포트과 같이 갔을까도무지 알 수가 없다.

 

물론 미시즈 그레이와 벌였던 15세 알랙시의 기억은 미시즈 그레이의 딸에 의해 왜곡된 기억으로 밝혀졌지만 그 왜곡이 사건을 전복시키지도 딸의 죽음을 밝혀주는 메타포로도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독자는 그런 것을 기대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작가의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는 말씀내가 전작을 읽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아니 읽었다 하더라도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여러 소설 속 장치들을 들여다보는 수고를 들여야겠지해설을 읽으니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이런 재미없는 작품을 두 권을 더 읽느니 차라리 읽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듯하다.

 

이 작품을 읽고 쓸쓸한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정말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독자들일 거다윌리엄 트레버 작품을 보면 쓸쓸한 아름다움이 뭔지 단박에 느낄 수 있는데이 소설은 정말 그런 느낌이 아니다흐릿한 안개 속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이마를 땅에 찢는 그런 느낌이다.

 

이제 그는 백만 — 십억 — 일조— 마일을 거쳐 우리에게 도달하는 은하의 오래된 빛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그가 말했다. “여기이 테이블에서도 내 눈의 이미지라는 빛이 선생님 눈에 도달하는 데는 시간아주 작은 시간극소량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걸립니다따라서 어디를 보든어디에서나우리는 과거를 보고 있는 겁니다.” (p254)

 

그래과거를 봐서 어쩌라고?! 과거의 사랑과 상실이 쓸쓸한 삶의 현재를 구축한다는 이 진부한 주제를 아름답게 포장해도 내용이 없다면(심리 그 자체가 내용이라면) 공허하다.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든 생각이다.

 

 

총평 정말 무의미하고 재미없는 작품이다.



[덧] 소설을 읽고 좋다고 하는 건 매우 주관적이다. 내게는 좋은데 다른 이들에게는 별로인게 이 주관성의 특성이다. 헌데 내가 읽고 좋아 추천했는데 다른 이들도 좋다고 하면 더욱이 그 수가 많으면 주관의 객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 나는 좀 이 부분이 항상 신기하다. 그렇다라도 누구나 좋아할 수는 없다. 다른 이들이 다 좋다고 해도 내가 별로인 작품은 항상 출현한다. <오래된 빛>은 내게 바로 그런 소설이다. 추천받은 작품들은 대체로 좋다. 하지만 완벽한 예외도 있다. 그래서 개인의 특수성은 여전히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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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2-08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시 한번 느낀 거지만...저는 이런 심리를 이미지화하는 소설을 싫어하는 듯합니다. 아니 극혐하는 쪽이 맞다고 할 수 있겠네요. 사건과 갈등 대신 인물의 심리를 지루하게 서술하고 묘사하는 소설은 정말 적응하기 힘듭니다. 철학적 성찰도 없는 건 덤...밴빌의 추리소설은 어떨지..

페크pek0501 2025-11-21 11:56   좋아요 1 | URL
저는, 남들이 다 좋다는 소설인데 나는 별로인 경우 내가 뭐 잘못 읽었나, 뭔가 놓쳤나 이런 생각을 하는데 야무 님은 훌륭하십니다. 소신을 갖고 주관적인 느낌을 쓰는 자세, 배우고 갑니다.^^

yamoo 2025-11-24 10:50   좋아요 1 | URL
옛날에는 저도 페크님처럼 그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지만..
지금은 걍 내 취향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습니다. 남들은 다 좋은데 나만 싫다는 리뷰는...자기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래, 내가 놓친 부분이 있지 않을까하는 사람들의 찜찜한 생각을 날려주는 순기능도 있는 거 같기에...이런 리뷰는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알라딘에서는 책을 좀 부정적으로 보는 리뷰를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듯합니다. 저는 그런 리류가 훨씬 좋은데 말입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