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개정보급판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 옮김 / 청아출판사 / 202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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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에서 나하고 친한 팀장님 한 분이 있다. 나보다 선배고 세 살 정도 연상이다. 직장에서 꽤 친한 선후배 사이인데, 몇 년 전부터 독서에 매우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다가 책과 관련된 TV 프로그램과 책 콘텐츠 등을 찾아보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게서로 시작해서 교양서 위주로 열심히 읽고 있다.

 

내가 추천해 준 책들도 꽤 읽었다. 작년부턴가는 문학책도 꾸준히 읽으시는 듯하다. 지난 달인가, 점심을 먹으면서 내게 강력히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 있단다. 궁금하고 반가워서 뭐냐고 하니,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청아출판사, 2020)랬다. 엄청 감동적으로 읽었고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고.

 

추천 책을 듣고 책 표지가 떠 올랐다. 몇 년 전에 보급판으로 저렴하게 나온 걸 헌책방에서 천 원 주고 데려온 책이 바로 <죽음의 수용서에서>였기 때문. 읽고 있는 책이 있어 다음에 읽을 요량으로 옆 책더미 위에 엊어 놓았는데, 추천받아 읽으려고 찾아보니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거다. 할 수 없이 하드커버 책을 다시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출퇴근용으로 읽었는데, 의외로 좋은 책이었다. 솔직히 기대치가 거의 없었는데 삶의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는 지점이 있어 일독할 가치가 충분했다. 나치 생존기는 좀 식상한 면이 없지 않고(아우슈비츠 생존수기는 많다), 더군다나 정신분석 쪽이라 사례 위주의 이론서 인줄 알았다. 헌데 본 책은 담담한 체험으로부터 명확한 정신-심리적 치료법을 평이하게 제시해 주는 책이라 신선했다.

 

책 후반부에 정신분석학적 담론과 철학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전혀 현학적이지 않다. 수용소의 체험으로부터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도록 서술되어 있어 거부감 없이 사유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래서 저자가 이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로고테라피의 본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재밌는 점은 정신분석학에서 제3의 학파라 일컫는 '로고테라피'가 니체 철학에서 엄청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

 

(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딜 수 있다.” (p137)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에 나오는 니체의 말이다. 저자가 인용한 이 말은 본 책에서 매우 중요하다. 플랭클린 박사가 수용소 체험에서 살아 돌아와 로고테라피라는 정신 치료 요법을 제창하게 된 이론적 뿌리와 같은 언명이기에. 니체의 이 명제로부터 플랭클 박사의 의미 치료 이론이 도출될 수 있었다. 로고테라피의 핵심이 바로 의미 치료라고 할 수 있기 때문. “심리치료와 정신 위생학적 치료를 하려는 사람에게 귀감이 되는 말”(p137)이라고.

 

<죽음의 수용소>는 읽어보니 정말 좋은 책이다. 음미해 봐야 하는 문장들이 꽤 된다. 특히 2부인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에 저자의 핵심 사상이 집중되어 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의사 선생이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위해 쓴 최적의 안내서라 할만했다. 힐링 분야의 책으로 분류할 수도 있겠지만 본질은 정신분석학 이론서(임상서). 1부 수용소 체험이 반을 넘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물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p181)

 

행복은 얻으려고 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알다시피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함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 할 수 있다.” (p221)

 

읽기를 잘한 책이고, 줄도 많이 쳤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지점도 매우 좋았다. 하지만 2로고테라피 개념을 읽으면서 로고테라피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 커졌다. 의미 있는 지점도 있었지만, 수긍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이후 서술할 내용은 로고테라피에 대한 내 개인적인 비판점이라 하겠다.

 

의미를 찾는 의지력이 인간 존재의 근원이라면, 수용소에서 그냥 죽음을 택한 사람들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것을 삶에의 의지로 설명한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실험이자 시험장이었던 강제수용소에서 어떤 사람들이 성자처럼 행동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돼지처럼 행동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내면에 두 개의 잠재력을 모두 갖고 있는데, 그 중 어떤 것을 취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있다.”(p215)

 

정말 간편한 발상이다. 사람의 내면에는 성자와 돼지(카포)가 되려는 잠재력이 있고 이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건 전적으로 그 사람의 의지에 달려있다니, 이런 도식화는 정말 그럴듯하게 많이도 보아 왔다. 특히 정신분석학 이론들이 그렇다. 항상 그럴싸하지만 증명할 길이 요원한 뭐 그런 거. 비슷한 논증으로 내가 현재 이 모양 이 꼴로 있는 건 과거의 어느 한 순간에 어떤 결정을 해 버렸기에 그렇다는 거와 비슷한 맥락이다.

 

이 결정은 좋은 길과 나쁜 길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불확실한 무수한 선택의 갈림에서 최선으로 당시의 순간 내가 택한 결정이다. 좋은 반대편 길이란 현재의 순간에는 없다. 항상 과거를 돌이켜보아 내가 선택하지 않은 (좋은) 길을 재구성하여 상정할 뿐이다. 우리의 뇌는 이러한 편견에 자주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다.

 

프랭클 박사가 말하는 사람의 내면에 잠재해 있다는 성자와 돼지가 의지를 통해 발현된다는 건 신화에 가깝다. 성자가 되겠다는 의지가 강하면 성자가 된다는 건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좀 우스운 감이 없지 않다. 이건 '범죄의 탄생'에서 이미 밝혀진 통론을 정면으로 뒤집는 이론이다. 극악무도한 범죄자(배트맨에서의 조커)는 환경적 요인이나 사회적 구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자신이 악한이 되겠다는 의지에 차서 범죄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내면에는 성자적 측면과 돼지적 측면(악한 측면)이 있긴 하겠지만 복합적으로 섞여 있을 것이라 사료된다. 환경에 따라 적응하면서 성자적 측면이 나타날 때도 있고, 돼지적 측면이 나타날 때도 있을 것이다. 잠재적 한 면만이 의지로 발현된다는 건 환경을 도외시한 발상이다. 저자가 수용소라는 특별한 환경의 체험을 통해 이를 발견하여 이론화했지만, 장소의 특수성이 너무 크게 작용한 듯하다.

 

무엇보다 플랭클 박사는 인간의 성향에 대한 면을 너무 간과했다.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면 내면의 의지보다는 성향의 차에 의해 생존 방식을 달리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두 가지 성향 차이를 보인다. 위험을 선호하는 성향과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 어떤 사람은 새디스트적 경향을 띠지만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이러한 성향의 차가 많이 좌우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희망을 발견하는 것조차 힘들 수 있다.)

 

아주 쉽게 말해서 컵에 물이 반이 있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컵에 물이 반만 찼다고 보고, 어떤 사람은 물이 반만큼이나 있다고 본다. 이 성향의 차이가 삶을 대하는 방식을 가른다. 어떤 사람은 삶의 부정적인 면을 많이 보고, 어떤 사람은 삶의 긍정적인 면을 많이 본다. 포기가 빠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수용소에서도 이런 성향의 차이가 생존 경향을 갈랐을 거라고 본다. 이는 내면의 성자 - 돼지 측면과는 별로 관계가 없을 듯싶다.

 

사람의 내면에 성자적 측면과 돼지적 측면이 있다는 발상은 프랭클 박사에게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발상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박사가 수용소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느냐에 달려있었기에, 내면의 '성자 - 돼지' 유비는 로고테라피 이론을 정립하는데 매우 좋은 도식이 될 수 있었을 듯해서다.

 

아울러 로고테라피는 인간의 의미 추구 동기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삶의 의미를 찾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사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가 쉽지 않음), 모든 상황에 의미를 부여하려다 보면 의미를 위한 의미를 찾게 될 수도 있다. 일부 정신분석 이론에서는 의미를 가볍게 받아들이고 흘려보내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극단적인 환경에서 개인의 선택권만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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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책을 뒤늦게 읽은 감이 없지 않다. 좋은 책인데 거의 모든 리뷰가 찬사 일색이라 이 책에 대한 비판점을 좀 부각해 보고 싶었다. 로고테라피가 만능은 아닐진대, 책을 읽으면 모든 것을 의미로 환원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듯한 내용이라 여기에 좀 반박을 해 볼 요량이었다. 

2.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정하기도 쉽지 않다. 사람마다 삶의 의미는 다 다르기 마련이고, 삶의 의미는 다차원적인 개념이다. 근데 이 책에서는 삶의 의미만 찾으면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요법이라,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정할 수 없으면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삶의 믜미는 '당신은 누구입니까?'에 대한 답을 찾는 것과 같은 차원이라 확정하기 매우 어렵다.)

3. 음미해 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자신이 실업에 처해 있거나 수년간 입시나 입사에 실패한 사람이라면 본 책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자신이 터널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강력히 권해줄 수 있는 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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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5-10-19 0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딜 수 있다.”한국의 자살율이 높다고 하는데 그런 분들이 마음속에서 음미해야 할 글귀가 아닌가 싶어요

yamoo 2025-10-20 09:47   좋아요 0 | URL
네, 우리나라에서 방황하는 분, 번아웃 오신 분, 실업에 처해 있는 분들이 이 책을 보시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좋은 책이에요~

잉크냄새 2025-10-19 1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환경에 의하여 성자와 돼지로 구분되는 것이 잠재력의 문제는 아닐지라도 인간의 의지에 깊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아우슈비츠의 또 다른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는 매일 이를 닦고 단테의 신곡을 수도 없이 외운 것이 최소한 인간으로서 남기 위한 처절한 절규였다는 것에 수긍이 갑니다.

yamoo 2025-10-20 09:50   좋아요 1 | URL
환경에 의해 개인이 영향을 받고 인간의 의지가 작동된다는 거라면...환경결정론자인 저도 충분히 이해했을 거고, 의문점이 들지 않았을 거에요. 근데 분명히 이 책에서는 인간의 잠재력이 순수한 의지로 발현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극단적 환경에서 발견한 이론이기에 보편적이지는 않은 듯합니다. 저는 그렇게 느꼈다는..^^;;

페크pek0501 2025-10-19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삶은 운, 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 인상 깊었어요. 이 책의 저자가 운 줗게도 자기가 치료해 준 적 있는 사람을 만나 덕을 보는 경우와 같이, 또는 딴 사람은 운 나쁘게 폭력을 잘 쓰는 사람 밑에서 일해야 하는 나쁜 자리에 배치되는 경우와 같이.
그리고 최악의 샹황 속에서 어째서 짐승 같은 악질이 있을 수 있는지 의아했어요. 인간에 대한 연민이 왜 없을까 하는... 인간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에요.^^

yamoo 2025-10-20 09:53   좋아요 1 | URL
그렇죠. 저자도 자기 바로 옆 줄(자기가 서 있었던 줄에서 옆 줄로 옮겨졌음)이 이동한 곳이 아우슈비츠 가스실이었다는 걸 담담히 서술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순간의 결정과 이동으로 죽음이 한순간에 결정된다고..
실제 일상적 삶도 우연이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1인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운이 좋은 거죠. 저는 환경결정론자이기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맞습니다. 이 책은 저자의 인간관철 기록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