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 사회를 넘어서 - 계획적 진부화라는 광기에 관한 보고서
세르주 라투슈 지음, 정기헌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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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노트북이 3대다. 데스크 탑을 치우고 장만한 노트북. 10년 사이에 컴퓨터를 4대나 장만한 셈이다. 이상하게도 컴퓨터는 쓰면서 계속 고장이 났다. 고장의 원인은 웹상에서 유포되는 악성 파일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부품 결함 때문이었다. 노트북을 산 후 약 2년 안에 보드나 램 또는 다른 장치에 이상이 생겨 수리를 반복 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단종된 모델은 수리비가 매우 비쌌다. 저가 새 노트북을 구입하는 가격에 육박했다. 프린터도 마찬가지였다. 비싼 카트리지를 사 가며 써 봤지만, 이상하게도 1년에 2-3번은 수리 기사를 불러야 했다. 1달 동안 기사를 무려 3번이나 부른 적도 있다. 그러다가 결국 2년도 되지 않아 다른 기종으로 교체하게 된다.

 

잠을 잘 때 요긴하게 쓰는 담요의 경우 요즘 1만 원 정도면 구매할 수 있다. 문제는 세탁비다. 담요를 세탁하는 요금이 1만원이다. 새 담요가 1만원이니, 세탁할 바에는 차라리 새 상품을 구입하게 된다. 그렇게 내다 버린 담요만도 서너 장은 된다. 휴대폰의 경우 2년 이상 쓰면 모델이 단종 된다. 그러면 액정 하나만 수리해도 10만 원을 가뿐히 넘는다.

 

옷은 말할 것도 없다. 멀쩡한 티셔츠나 면바지 또는 청바지를 수도 없이 헌 옷 상자에 담아 버렸다. 유니클로 같은 저가 브랜드에 가면 티셔츠 한 장에 5천 원 뿐이 안한다. 바지 역시 마찬가지. 유행에 맞게 이것저것 사다보면 옷이 사정없이 늘어나고,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을 정리해서 버리게 된다.

 

정말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30여 년 전만해도 가전제품은 완전 고장이 나지 않는 한 버리지 않았고, 옷 또한 헤질 정도로 입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쳐 쓰거나 입지 않는다. 수리하는 곳도 없거니와, 수리비가 새 상품 가격을 넘은 경우도 많다. 대개 버리고 새 상품을 사는 순환을 반복한다.

 

도대체 요즘 가전제품의 수명은 왜 이리 짧은 것이며, 고장은 왜 이리 잘 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도서관에서 <낭비사회를 넘어서>(민음사, 2014)라는 얇은 책을 만났다. 사실 ‘낭비사회’의 원인이 궁금해서 책을 찾던 중 우연히 눈에 띈 책이다. 다소 생소한 프랑스 학자였는데, 주제 또한 매우 생소했다.

 

페이지를 넘겨 몇 줄 읽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계획적 진부화’라는 학술 용어가 튀어 나왔다. 헌데 저자인 세르주 라투슈가 겪은 경험이 나와 거의 비슷하여 책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알려주는 ‘계획적 진부화’의 실체를 알아갈수록 경악을 금치 못했다. 프린터나 만년필이 2년을 넘을 수 없게 제조회사가 계획적으로 그리 만든다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 책의 중심 주제인 ‘계획적 진부화’는 인위적으로 수명을 단축하거나 결함을 삽입하는 방식을 말한다. 제작자가 상품을 설계하는 단계에서부터 특수한 장치 등을 이용해 미리 수명을 제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린터를 제작할 때 인쇄 매수가 1만 8000장이 넘으면 자동으로 작동을 멈추게 하는 마이크로 칩을 삽입한다든지, 제품 보증 기간이 끝나자마자 고장이 나도록 기계를 설계하는 식이다." (p 34)

 

사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눈을 비비고 두세 번 거듭 읽어야 했다. 거짓말 같았기 때문이다. 설마 했는데, 뒤로 갈수록 그 놀라운 실체를 보니, ‘설마가 사람을 잡는’ 꼴이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조금만 생각했더라면, 예견된 일이었는데, 물고기가 물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 살며 이를 간파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를 지속하지 않으면 문제를 일으키는 체제다.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생산된 상품의 소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이 전제 때문이었다. 자본주의가 성장하지 못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바로 인플레이션과 실업이 발생한다. 우리가 목도했던 ‘그리스 사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런 패닉 상태를 막기 위해 자본주의는 광고라는 매개를 사용하여 끊임없이 사람들을 소비하게 한다. 쓰레기가 산더미같이 쌓여도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그래야 자본주의가 굴러간다. 그래서 저자의 다음과 같은 주장이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 왔다.

 

 “소비 사회는 성장 사회의 종착점이다. 성장 사회는 성장하기 위해 성장하는 사회다. (……) 생산을 무제한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소비를 무제한적으로 부추겨야 하며, 새로운 욕망을 무제한적으로 불러일으켜야 한다. 종국에는 오염과 쓰레기가 늘어나 지구 생태계가 파괴된다." (pp 16~17)

 

‘계획적 진부화’로 인한 쓰레기 문제는 지구환경을 엄청나게 파괴하고 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계획적 진부화’와 ‘지구환경 파괴’는 인과관계로 확고하게 연결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를 전혀 눈치재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평균 18개월 정도 사용되고 버려지는 휴대 전화는 비소, 안티몬, 베릴륨, 카드뮴, 납, 니켈, 아연 등 생물체에 유해한 다량의 독소를 포함한 쓰레기 더미들을 만들어 낸다. 이것들을 소각한다는 것은 다이옥신과 푸란, 그 밖의 오염물질을 대기 중으로 뿜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미국에서는 2002년 여전히 작동 가능한 휴대전화 1억 3000만 대가 폐기 처분됐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p 99)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다. 이런 추세가 더욱 심해진다니. 그런데 ‘계획적 진부화’의 문제가 진행되면서, 인류는 또 하나의 엄청난 재앙에 직면해 있다. 이 현상은 ‘사회적 문제’라기 보다는 재앙에 가깝다. 학문적으로 아직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분야는 아닌 듯하다. 바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문제다. 소위 인권의 본질(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가치하락. 인간의 가치가 땅에 떨어진 근원적 이유가 바로 ‘계획적 진부화’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저자는 아직 ‘인권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하고 있지 않다. 이에 대한 탐구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행한바 있다. 그는 (‘계획적 진부화’로 인한) 낭비 사회를 ‘쓰레기가 되는 삶’이라고 명명했다. 바우만의 논의를 따라가면 결국 비정규직의 삶이 곧 쓰레기가 되는 삶의 시초다. 세르주 라투슈는 이에 대해 “결국 계획적 진부화가 진행되면서 윤리 자체도 진부화하고 있다.”고 설파한다. 인간 역시 진부화되지 않을 수 없다는 귀결이다.

 

 “이른바 ‘발전된’ 사회는 쇠퇴를 대량 생산한다. 다시 말해 가치의 상실, 상품을 넘어 인간까지 포함하는 일반화된 퇴락을 양산한다. ‘일회용’ 제품이 갈수록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상품은 쓰레기로 버려지고, 인간은 소외되거나 사용 후 해고된다. 실업자, 노숙자, 부랑자, 그 외 각종 ‘인간쓰레기’에서부터 최고 경영자와 관리자들까지 예외는 없다.” (p 86)

 

현재 전 세계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을 사람답게 대접하지 않고 유통기한이 정해진 부품처럼 취급하는 근원적 실체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바우만이 지적한 ‘쓰레기가 되는 삶’의 근원적 주범이 바로 ‘계획적 진부화’였던 것이다. ‘계획적 진부화’가 가속화되면, 인간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전락될 수밖에 없다. 이건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우리가 장님, 귀머거리, 병신, 기형아 등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것처럼, '윤리적 진부화‘는 부지불식간에 우리 삶에 들어와 ‘인권 의식’ 자체를 마비시킬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직면한 새로운 재앙이다.

 

작금에 대두하고 있는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협적이다. 비정규직 차별은 정말 빙산에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예방 법규가 구비되지 않으면, 국민의 인권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헌법과 세계인권선언은 ‘차별 금지’와 ‘노예제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규정들은 현실을 반영하는데 매우 미흡하다. 규정과 현실의 갭이 너무도 크다. ‘노예’에 대한 새로운 표현이 요구된다. ‘계획적 진부화’에 의해 쓰레기로 전락하는 층을 산업사회의 새로운 ‘노예 층’으로 포섭하는 규정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으면, 인권의 가장 근간을 이루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 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매우 얇다. 144쪽 분량 밖에 안 된다. 하지만 이 책에 담겨 있는 내용은 가히 치명적이다. ‘계획적 진부화’와 ‘환경 파괴’ 그리고 ‘인간의 진부화’로 이어지는 인과의 고리는 너무도 확고하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이 문제에 대해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책이 아니면, 이 무시무시한 상황을 파악할 수도 없다니 모골이 송연해진다.

 

사실 환경문제는 인식하지 않으면 좀처럼 실천으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쉽다. 공정무역 상품 구입하기, 1회용품 쓰지 않기, 친환경 물품 구입하기 등은 실천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런 캠페인을 벌이는 단체들도 많다. 하지만 환경 파괴의 근본적 원인이 ‘계획적 진부화’라는 사실과 이로 인해 인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책을 통해 이러한 보이지 않는 근원적 문제점을 확인하는 것만큼 의미 있는 독서는 없을 것이다. 뭐든지 알아야 실천이건 뭐건 할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의 가치는 실로 크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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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1-04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 님 이게 얼마 만입니까. 왜 그동안 이리 뜸하셨슴꽈...
하여튼.. 반갑습니다. 새해 복 마니 받으십시요..

yamoo 2017-01-13 19:40   좋아요 0 | URL
주로 다른 데에서 놀아서뤼...^^;;
요즘 책을 많이 읽지 못하는 관계로 알라딘 서재는 뜸했습니다.
여튼 저도 반갑습니다..ㅎㅎ 곰발 님 서재 간만에 방문해 보니, 닥그네를 끊임없이 씹는 그 엄청난 페이퍼들을 봤습니다.ㅎ 정말 대단하신 거 같다는!! 그 정도로 지속적으로 집요하게 까기도 쉽지 않은데 말이죠. 필력이 더해 더 신랄한 거 같습니다!!!

곰발 님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amor fati~

cyrus 2017-01-04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했지만, 저자가 제시한 일상적으로 실천 가능한 대안을 따르기가 망설였어요. 공감보다는 실천이 중요한데, 저는 실천을 시작하기 전에 소극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맙니다. ^^;;

yamoo 2017-01-13 19:41   좋아요 0 | URL
저두 오랜 말이 뵈어요~~ㅎ
그쵸, 공감보다 실천이 훨씬 중요합니다. 하지만 공감하지 않으면 실천도 없지요. 실천은 언제나 어렵습니다~ ^^;;

사이러스 님두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세요~~

stella.K 2017-01-04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어요. 잘 지내시죠?
새해 복도 많이 받고 계시고 있죠?
올해도 변함없이 빕게되길 바랍니다.^^

yamoo 2017-01-13 19:48   좋아요 0 | URL
스텔라 님, 반갑습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재밌게 놀다보니, 알라딘 서재에는 뜸했네요.ㅎ

스텔라 님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올 해에는 알라딘 서재 활동을 최소한으로만 할 거 같아요. 다른 곳이 워낙 재밌어서 말이쥐요..^^;;

감은빛 2017-01-05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뭐든 오래 쓰는 편이예요.

지금도 가끔 쓰는 데스크톱은 거의 20년이 다 된 놈인데,
좀 느리긴 해도 아직 쓸만합니다.
노트북은 3년쯤 되었는데,
열었다 폈다 하는 이음새 한 쪽이 벌어진 걸 빼면,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가요.
아마도 앞으로 5~6년은 문제없이 쓸 것 같아요.

이불은 대부분 10년 이상 된 놈들이고,
옷도 한 번 사면 어딘가 튿어지거나 구멍날 때까지 입어요.
지금 입는 옷 중에는 15년 이상 된 옷들도 좀 있어요.

그런데 휴대폰은 정말 3년 이상 못 쓰겠더라구요.
2년만 넘으면 꼭 어딘가 이상이 생기더군요.

yamoo 2017-01-13 19:50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감은빛 님!

감은빛 님은 요즘 사람 같이 않게 느리게 사는 기술을 잘 터득하신 거 같습니다. 저도 최소한의 물건들로, 그 물건들을 오래오래 사용하고 싶습니다요~ㅎ

휴대폰은 약정 넘으면 바꿔야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약정 넘어 고장나면 수리비가 정말 장난 아니거든요~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보슬비 2017-01-0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 경악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대한 오래 사용할수 없으니 불편하더라도 많이 소유하지않려 노력하고 있어요. 오랜만에 오셔서 반가웠습니다.

새해에 안보이는 분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더 반갑네요.^^

yamoo 2017-01-13 19:5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보슬비 님! 오랜만입니다~

이 책 읽으셨군요~ 저도 많이 경악했더랬습니다. ㅎ 적게 소유하고 최소한의 사물로, 그 사물들을 오래오래 사용하고 싶습니다.ㅎ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
 
결핍의 경제학 - 왜 부족할수록 마음은 더 끌리는가?
센딜 멀레이너선 & 엘다 샤퍼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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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번 주 한 권의 주문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가 올 봄에 사서 중고도서로 올려놓은 <결핍의 경제학>을 누가 주문한 것이다. 자주 그렇지만, 주문이 들어오고 나서 그 책을 훑는 습관이 있다. 촉이 오면 팔지 않고, 촉이 오지 않으면 그대로 주문을 접수받고 발송하는 방식. 이게 내가 알라딘에서 중고책을 파는 나만의 방식이다. ‘무조건 최저가’로라는 건 암묵적 전제.

 

 

어쨌거나 나는 <결핍의 경제학>(RHK, 2014)을 올 봄 무렵 굿윌스토어 신정점에서 2천원에 구매했다. 매우 저렴하게 구매해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게 중고책 판매 목록에 올려뒀었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 주문 때문에 책을 열어 봤는데, 참으로 괜찮은 책이 아닌가! 그래서 그냥 읽기로 했다.

 

 

베르그손의 주저들을 읽는 와중이라, 이 책은 이동 중에 아주 집중하여 보기로 했다. 책의 초반 내용은 매우 흥미진진했다. 이 책의 공동 저자들은 2차 세계대전 때의 ‘굶주림에 관한 연구’에서(이후 미네소타 대학의 실험에서) 배고픔이 어떻게 사람의 정신 맨 위에 위치하는지를 아주 새롭게 해석해냈다.

 

 

재밌는 사실은 두 저자가 서로 전공이 다른데, 센딜 멀레이너선은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이고, 엘다 샤퍼는 프린트턴대 심리학 교수이다. 센딜과 엘다는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행동경제학으로 해결하기위해 의기투합하여 이 책을 썼다는 사실(어디까지나 내 추측). 왜냐하면 이들은 여러 사회문제를 행동경제학적 설계를 통해 해결하기 위해 ‘아이디어42’라는 비영리조식을 공동설립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들이 해석해 낸 것은 아주 새로운 결과였다. 미네소타 대학의 굶주림 실험(실험 참가 인원 36명)을 통해서 저자들은 다음과 같은 아주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의 변화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거였다.

 

 

지역 식당에 있는 메뉴판이나 요리책에 집착하는 현상을 보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신문 저 신문을 비교하면서 채소와 과일의 가격을 살피느라 몇 시간씩 보내기도 했다. 또 본격적으로 농사를 지을 계획을 세운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식당 주인이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 실험 이전에는 학자가 되겠다던 사람도 이제는 요리책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도 음식이 나오는 장면에만 집중했다. p18

 

 

실험의 결과를 통해서 저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였다. ‘결핍’(배고픔; 음식에 대한 결핍)이 사람의 행동을 바꾸어 놓는다는 것. 이 실험의 결과로부터 저자들은 경제학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희소성의 법칙’을 ‘결핍’으로 환원한다. 결핍 이론으로 인간의 다양한 행동을 설명하고자 하는 의도가 이 책의 목적이다. 이는 35페이지에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기도 하다.

 

 

이 책은 ‘형성중인 미완성의 어떤 과학’을 설명한다. 이는 결핍의 심리적 토대를 드러내고 아울러 이 지식을 이용해서 다양한 사회적·행동적 현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대학교의 심리실험실, 쇼핑몰, 그리고 기차역에서부터 뉴저지의 무료급식소, 인도의 사탕수수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진행된 독창적인 연구 조사에서 비롯되었다.  p35

 

 

결핍을 빈곤과 연결해서 설명한 부분에서는 무릎을 치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했다. 하지만 조직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시간의 결핍’을 사례와 함께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뭔가가 이상했다. 모든 것을 결핍으로 환원해서 실험의 결과를 유의미하게 끌어내려고 하는 저자들의 원대한 의도가 좀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

 

 

음식의 결핍으로부터 인간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것처럼, 저자들은 조직에서 인간이 행동이 변하는 동기를 시간의 결핍으로부터 도출하고자 한다. 전혀 다른 이 두 사례가 타당성 있게 설명되면, 이후 일상 속에 숨겨진 각종 결핍에 대한 사례가 무리 없이 연결될 수 있다. 한 마디로 ‘결핍 이론’은 강력한 이론적 도구가 된다는 거. 거의 모든 인간 행동을 ‘결핍 이론’으로 환원할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나.

 

 

그래서 나에게는 ‘음식의 결핍’이 ‘시간의 결핍’과 동일한 환원 구조를 갖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었다. 이 두 양상이 저자들이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같은 정도의 유비라면, 인간 행동의 당양한 양상을 ‘결핍’으로 환원하여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시발점이 된 부분은 51페이지에 설명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굶주림 연구에서 배고픔이 배고픈 사람의정신의 맨 꼭대기에 음식을 올려놓았던 것처럼 마감시한(회사에서 회의나 프리젠테이션)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과제를 정신의 맨 꼭대기에 올려놓는다. 회의 시간이 몇 분 남지 않았든 혹은 대학생활이 몇 달 남지 않았든 간에 마감시한은 매우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해당 과제에 좀더 많은 시간을 투여하고 온갖 산만한 생각들에는 덜 빠져든다. 써야 할 원고의 마감시한이 코앞일 때는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지 않는다. 회의가 막 끝나려고 할 때는 대화가 안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시간이 부족할 때면 사람들은 그 남은 시간에서 좀 더 많은 것을 얻어 낸다. 우리는 이것을 ‘집중배당금(focus dividend)’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바로 정신을 사로잡는 결핍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결과이다. p51

 

 

내가 베르그손의 인식론에 빠져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위 부분을 읽으면서 든 의문을 떨치지 못하겠다. ‘음식의 결핍’과 ‘시간의 결핍’은 완전히 다른 양상인데, 저자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같은 차원에 놓고 아무 거리낌 없이 설명하고 있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사람이 배가 고파지는 현상은 매우 자연스러운 거다. 음식을 먹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배가 고파지게 마련. 배가 고픔에도 먹지 못하는 상황은 시간이 좀 더 지나 시장기가 더 강화된 상황이다. 책에 나와 있는 미네소타 대학의 실험에서 보인 굶주림이란 이런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전제된 것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사람이 시간의 지속적 흐름 속에 있다는 거다. 꿀물을 마시려면 꿀이 물에 녹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사람이 굶주린 상황에 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이 흘러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음식의 결핍이 있기 위해 사람의 몸은 일정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말이다. 이 상황은 매우 물질적(신체적)이다.

 

 

이 물질적 상황이 사람의 행동을 바꾸어 놓는다. 이런 경험(굶주림)을 통해 사람의 행동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딴지를 걸 마음은 없다. 신체적 상황이 정신을 지배할 수 있다는 점을 실험으로 입증한 것만으로도 신선했으니까.

 

 

헌데, 2시간 동안 회의를 하거나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상황은 어떤가? 모두 인위적으로 시간을 막아 두고 있다. 여기서 느끼는 시간의 결핍은 가공된 것이다. 생존의 차원이 아니라 부수적인 차원이다. 무엇보다 이 행위들은 정신적 활동이다. 회의를 하거나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행위는 아무리 소박하게 생각해도 정신 작용의 일환이지 신체 작용에 따라 이루어지는 활동은 아니다.

 

 

‘무언가의 결핍’으로 묶기에는 차원이 너무 다르다. 전통적인 철학적 도식으로 구분해 보면, ‘음식의 결핍’은 물질의 영역이고, ‘시간의 결핍’은 정신의 영역이다. 이를 같은 선상에 인위적으로 놓고, ‘음식의 결핍과 시간의 결핍은 인간 행동을 결정짓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라고 주장하는 건 매우 우스꽝스러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전자의 도식을 후자에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 봐도 무리라는 걸 알 수 있다. ‘결핍’으로 모든 것을 환원하고자 하는 욕구가 너무 강한 나머지, 저자들은 각 실험 사례들의 유비적 엄밀성을 따지는 데 실패한 듯하다.

 

 

물론 이 책이 결핍을 가난으로 연결하여 사람들의 선택과 행위를 분석한 면은 상찬 받아 마땅하다. 더군다나 경제학의 ‘희소성’을 ‘결핍’으로 재정립하여 경제학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점에서는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다만, 물질의 영역(개인)과 정신의 영역(조직인)을 엄밀히 따지지 않고, ‘결핍’으로 환원하기 위해 같은 선상에 놓고 적용했다는 점은 학문적으로 재점검 해 봐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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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8-04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어요. 저는 뭐 경제학은 좀...
어디 휴가는 다녀오셨습니까?^^

yamoo 2016-08-07 22:51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스텔라님^^

휴가는 6월 중순에 이미 갔다 왔습니다요~ 일찍 갔다와서 좋긴 한데, 넘 더워서 하루하루 보내기가 괴롭네요..^^;;

스텔라 님은 잘 지내시는지...휴가는 어디로 갔다 오셨는지 궁금하네요~

cyrus 2016-08-04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 때 책을 많이 사지 못했던 일이 많이 아쉬워서 그런지 책을 많이 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단 책을 가지고 있어야 마음이 편해져요. ^^;;

yamoo 2016-08-07 22:52   좋아요 0 | URL
흠...그 병에 걸리면 클납니다..ㅎㅎ
돈이 남아나질 않아요...ㅎㅎ

그림책에 많은 욕심을 내실거 같다는^^;;
 
온전히 나답게 - 인생은 느슨하게 매일은 성실하게
한수희 지음 / 인디고(글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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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가만히 <베르그손>의 주저들을 독파할 생각이었다. 그저그런 책들은 이제 더이상 읽고 싶지 않다. 6월부터 계속 다른 책들을 열어보고, 넘겨보고 했지만 책을 선택해서 읽지는 않았다. 내게는 현재 <물질과 기억> 한 권으로도 벅차다.

 

6월1일부터 지금까지 총 3회독. 가장 어려운 1장은 6회독 쯤 한 듯하다. 읽을수록 번역으로 인해 열불이 나곤 한다. 이 더위에 진짜 이 뭔 쌩 지럴인지 모르겠다. 아, 더워도 너무 덥다. 이 높은 불쾌지수에 기름을 붙는 번역본이라니, 썅 소리가 절로 나온다~

 

간만에 퍼스에 대한 책을 검색하는 와중에(9월 이후 읽기 위해서) <온전히 나답게>(인디고, 2016)란 책이 관심을 끌었다. '나'를 온전히 살기 위해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물질과 기억>이다. 그래서 이런 류의 책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다.

 

어떤 책인지 살펴나 볼 겸 맛보기 몇 페이지를 넘겨봤는데, 이건 뭐 시덥지 않은 에세이라는 인상이 짙었다.프롤로그와 304페이지에 있는 글을 보면서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고, 나는 이 책을 사서 보면 안 될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하찮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생이 된다는 것. 하찮아 보여도 그게 인생이라는 것. 그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나는 살아가면서 배웠다. 그래서 그런 일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런 일들에 대해 쓴 것들을 모으니 온전하게,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 제목의 책이 되었다.  -프롤로그

 

인생이 하찮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되는 것인가? 삶이란 하찮은 일과 의미있는 일이 뒤섞이고, 희로애락이 시간 속에서 몸과 기억에 새겨지는 과정이다.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삶을 전혀 온전히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인생의 즐거움과 비참함은 '하찮음을 다루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즐거움'과 '비참함'이라는 감정은 현재가 기억의 파편 속에서 순간 순간 만나 스펙트럼처럼 펼쳐지는 과정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생을 살아가는 과정속에서 무수히 맞딱뜨리는 감정이다.

 

이런 감정은 살아가면서 교훈을 통해 배우는 것처럼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다. 직관적으로 시간속에서 단숨에 느끼는 거다.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 질수도 있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배웠다'는 건 시간과 기억 그리고 감정을 나누어 지성화(공간화)했다는 거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써 모으면 그것이 온전한 자기가 된단다. 화석화 되고 조작화된 기억이 '온전히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인다'니, 더이상 말해 뭘할까.

 

아주 러프하게 생각해도, '나답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밝히고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제데로 된 에세이다. 이런 중요한 전제가 빠진 채 한 권의 책을 쓴 다는 자체가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왜냐하면 허술한 전제로 어떤 얘기를 펼치든지 무리수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304페이지를 보면 이 책의 성격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나는 버스를 세 번,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좋아하는 카페를 기어이 찾아가는 타입의 여자다. 내게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일할 대는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나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남편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타입이다. 그에게 장소는 별 상관이 없다. 어제보다 더 나아지는 데도 관심이 없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자신이면 그저 족하다. 어쩌다 그런 여자와 그런 남자가 마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 그 아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자라게 될지 궁금하다.

 

저자에 따르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 버스를 세 번,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좋아하는 카페를 기어이 찾아가는 것"이다. 이게 '온전히 나답게'사는 지표 중 하나다. 그러니 '하찮은 것들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겠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임종국은 누추한 방안에서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까지 <친일문학론>을 완성했다. 그에게 삶은 단 하나, 역사에 가려져 있는 친일 문학자를 세상에 드러내는 거였다. 온갖 회유와 탄압 속에서, 살아 가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 속에서,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것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욕망. 그게 바로 '온전히 나답게' 산다는 것일 게다.

 

이런 취지를 생각하고 펴들 예정이던 <온전히 나답게>는 아주 적은 페이지만 봤지만 함량미달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뭐, 에쿠니 가오리의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 류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냉큼 읽어도 문제는 없겠다~

 

 

[덧]

1. 구입해서 읽지도 않을 책에 대한 리뷰라니 참 거시기 하다.

2. 나처럼 어떤 기대감을 갖고 읽어볼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책선택의 도움이 될까해서 리뷰란에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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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8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31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8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역시 야무 님이십니다. 왜 그동안 뜸하셨습니까. 자주 글 좀 올려주십시오..

yamoo 2016-07-31 11:23   좋아요 0 | URL
ㅋㅋ 감사합니다!ㅎ
곰발 님처럼 부지런해야 하는데, 제가 좀 겔러서요~ㅎ 베르그손 책을 완독(삼독 사독)할 때마다 번역에 대해 투덜거려 보겠습니다!ㅎ

2016-08-03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3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6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07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읽기이론 이론읽기 - 라깡, 데리다, 크리스떼바
마이클 페인 지음, 장경렬 외 옮김 / H.S MEDIA(한신문화사)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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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말 아주 웃긴 일이긴 합니다만, 책을 처분하기 위해 선별하는(책 읽는) 작업에서 의외로 대어를 낚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처분할 책 더미(물론 이 책들은 전에 읽을 만하다고 생각해서 사들인 책이지만)에서 책을 빠르게 훑고, 발췌독을 하면서 진짜 처분할 책인지 그렇지 않으면 읽고 소장할 책인지 마지막 점검을 합니다.

 

 

대개는 그냥 처분해야 할 더미에서 처분할 박스로 담기지요. 하지만 개중에는 간간히 처분하면 큰 일 날 뻔한 책들을 발견하곤 합니다. 조세희 작가의 <침묵의 뿌리>(열화당, 1985)가 그랬고, <곰에서 왕으로>(동아시아, 2005)가 그랬습니다.

 

 

 

 

모두 헌책방에서 너무도 저렴하게 구입한 책(2000원 씩)이라, 그리고 평소 즐겨 읽던 분야가 아니라 처분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알아보고, 넘겨보고, 발췌독 해 보니 이건 소장해야 될 책이라는 걸 직감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살아남은 책들입니다.

 

 

어제와 그제 다시 한 번 솎아낼 책을 정리하다가 정말 대어를 낚았습니다. (인문학의) 좋은 책들이지만 번역이 좋지 않거나 앞으로 읽을 가능성이 희박한 분야(평론 분야)를 정리하는 와중에 만난 책입니다. 모리슈 블랑슈의 <미래의 책>, 만프레드 파랑크의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그리고 롤랑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을 과감히 처분할 박스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뒤따라 오는 마이클 페인의 <읽기이론/이론읽기>(한신문화사, 1999)이란 책을 감별하려고 손에 들었지요. 겉 표지도 없어 보이고(디자인이 매우 구립니다), 개인적으로 읽을 일이 없겠다 생각하고 있는 라깡, 데리다, 크리스테바와 관계된 책이었습니다. 이들 세 학자의 텍스트를 심도 있게 해설하고 비평하는 책이라 시큰둥하게 넘겨보았지요.

 

 

아, 근데 이 책은 책장을 넘겨 읽어 갈수록 처분해 버리면 안 될 거 같은 예감을 받았습니다. 라깡의 <에끄리>, 데리다의 <기록학에 관하여>, 크리스테바의 <시적 언어의 혁명> 등 각 텍스트를 아주 심도 있게 해설해 주고 있는데, 문외한인 제가 봐도 바로바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번역이 탁월했습니다.

 

 

라깡과 데리다의 책들을 읽어 본 결과 번역 때문에 관심이 확 줄었는데, 번역만 좋다면 그 사상에 빠져들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이론들이었습니다. 왜 황당한 번역으로 명작들을 망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동문선, 1997)이 그런 사례지요.

 

 

어쨌든, 라깡 추종자들과 데리다 추종자들이 괜히 많았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줬습니다. 문외한인 저로서는 각 텍스트를 살짝만 맛본 상태였지만 이 책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고, 이 텍스트들이 왜 중요한지 단번에 알 수 있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지금까지 읽어 본 프랑스 철학 번역서 중에서 <들뢰즈-존재의 함성>과 함께 최고의 가독률을 자랑한 책이었습니다. 읽으면서 바로바로 이해되긴 처음~

 

 

물론 단일 역자가 번역한 게 아니라 3인(장경렬, 이소영, 고갑히 공역)이 책의 3부분을 나눠 번역했기에, 아쉬운 역자도 있었습니다. 라깡 <에끄리>를 번역한 이소영 씨 번역이 가장 떨어졌지만, 그래도 읽을 만 했습니다. 데리다와 크리스테바 부분에서 이상한(?) 문장이나 단락으로 인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없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이 책으로 인해 포우의 <도둑맞은 편지>를 다시 펴 볼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1장에 소개된 ‘라깡의 <도둑맞은 편지>에 관한 세미나’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왜 문학자들이 텍스트 비평에 매달리는지 보여주는 시금석과 같았다 랄까요.

 

 

1956년 당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문학 해석에 관한 가정을 수정하도록 요구한 그 시도가 바로 이 세미나였다는 군요. 현재는 이미 문학 비평의 대세로 자리 잡은 모양새라 이 땅에서 라깡의 위세를 실감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깡의 주저인 <에끄리>는 번역되어 있지 않은 현실이지요. 그래서 간접적으로나마 이런 라깡의 텍스트를 다룬 비평서나 해설서에서 라깡의 이론을 접해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책에서는 몰라도 이 책에서는 아주 쉽고 명확하게 라깡의 가치를 알 수 있지요. (물론 저는 라깡이 수학식으로 도배하기 시작하는 그 시점부터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이 책은 라깡만 다룬게 아닙니다. 번역 때문에 골치를 앓는 데리다의 텍스트도 쉬운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기록학에 관하여>는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지 않은데, 마이클 페인은 상당한 분량으로 <기록학에 관하여>를 분석/비평 해 주고 있습니다. 데리다가 루소, 워버튼, 비코, 콩디악 등의 텍스트를 어떻게 읽고 차용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페인이 난해하기 이를 데 없는 라깡과 데리다를 쉽게 이해하여 쉬운 영어로 써서인지, 아니면 역자들이 우리말 구사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정말 쉽게 이해됩니다. 사실 라깡과 데리다에 관계된 논문이나 해설서를 이렇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매우 이례적인 듯합니다.

 

 

크리스테바의 <시적 언어의 혁명>도 라깡과 데리다의 텍스트 연장선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크리스테바가 여러 저서들을 내 왔지만, 이 책이 가장 중요하고 빼어나답니다. 크리스테바의 국가박사 학위 논문이기도 하다는 군요. 반갑게도<시적 언어의 혁명>은 번역본이 나와 있습니다. 페인의 이 책과 크리스테바의 <시적 언어의 혁명>을 같이 읽으면 긍삼첨화 일듯합니다.

 

 

 

 

<읽기 이론 / 이론 읽기>를 소장하기로 하고, 알라딘에서 검색을 해 보니 이 책에 대한 리뷰가 한 건도 없군요. 우리나라에 라깡과 데리다의 추종자들이 그리도 많은 거 같은데, 이 책을 읽고 리뷰를 쓴 사람이 없다는 게 많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합니다. 도서관에서 라깡과 데리다 관련 코너의 입문 책들은 전부 많이 빌려본 흔적이 뚜렷하여, 그만큼 인기를 실감하게 하는 데 말입니다.

 

 

라깡, 데리다, 기호학, 프랑스 철학, 문학 비평 이론서나 입문서 등을 보면 하나같이 번역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태반이라 그냥 책을 손에 들었다가 던지게 됩니다. 그만큼 이 분야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 매우 한정돼 있다는 거겠지요.

 

 

제가 본 바로는 내용이 어려운 게 아니라 비문을 쏟아내어 원문을 암호화한 역자들 때문입니다. 제대로 번역되어 만나는 프랑스 철학자들의 주저들은 읽어 이해 안 될 내용이 없습니다. 이미 <들뢰즈-존재의 함성>을 보고 경험 해 봤습니다.

 

 

마이클 페인의 <읽기 이론 / 이론 읽기>는 좋지 않은 프랑스 사상 역서계(譯書系)에 단비와도 같은 책입니다. 이런 좋은 책이 왜 널리 읽히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유명한 라깡, 데리다, 크리스테바를 다룹니다! 그럼에도 술술 읽을 수 있습니다. 입문자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구요!

 

 

적어도 라깡, 데리다, 크리스테바가 어떤 주저를 썼고, 그 책이 다루는 핵심 내용이 뭔지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입문서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읽어서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암호문은 없으니까요.

 

 

라깡, 데리다, 크리스테바의 주요 핵심 사상이 뭔지 알고 싶으신 분은 이 책을 읽으세요.

라깡, 데리다, 크리스테바의 관심사가 뭐였는지 알고 싶으신 분 역시 이 책을 선택하세요.

라깡, 데리다, 크리스테바가 어떤 이론적 관련을 맺고 있는지 알고자 하는 분 역시 이 책을 잡으세요.

 

 

후회하지 않고, 알고 싶은 것을 성취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더군다나 기호학으로 그림을 분석하는 ‘그림 읽기’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문학 비평을 위한 이론적 도구로 그림을 읽을 수 있는 방식을 보여 줍니다. 그림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도 유익할 것입니다.

 

 

여기에 <라깡이 이용한 프로이트의 독일어 용어들>과 <크리스테바의 용어들>이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들 학자에게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분명히 도움이 되는 자료들이겠지요.

 

 

근래에 보기 드문 좋은 번역서인데, 리뷰도 없고, 100자 평도 없기에, 저라도 리뷰를 부가 해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리 소문 없이 절판될 듯해서요.

 

 

덧.

다음이나 네이버 책 검색 사이트, 그리고 교보에도 뜨는 책 이미지가 왜 알라딘에는 없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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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5-30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팔기 전에 신중하게 정리하면서 분류해야합니다. 팔았던 책이 중고가가 높게 나오는 희귀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면 땅을 치게 됩니다. ㅎㅎㅎ

yamoo 2016-05-30 21:4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정말 신중하게 잘 분류해야지요..ㅎ 그래서 팔기 전에 희귀본을 잘 골라 내어 후회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ㅋㅋ 사이러스 님 몬가 좀 아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5-31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곰에서 왕으로.. 시리즈 가지고 있습니다. 총 4권으로 된...
이 책 재미있습니다..ㅎㅎ 반갑네요. 여기서 보다니.. 후후..

yamoo 2016-06-01 15:40   좋아요 0 | URL
호~ 이 시리즈를 갖고 계시군요! 2권 있었는데, 한 권은 처분하고 이 한권을 마저 처분하려다가 관뒀지요. 재밌다니, 4권을 모두 기대하면서 소장해야 겠습니다..ㅎㅎ

2016-05-31 15: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01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6-01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바주 시리즈라고 해서 책장 보니 5권이 한 세트네요.. 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의외로 재미있었어요. 생각하지 안ㄶ았는데 말입니다..

yamoo 2016-06-01 17:31   좋아요 0 | URL
헐~ 5권이나 된단 말입니까!! 흐미~~ 5권을 언제 모은다냐..--;;

열매 2017-01-03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리다의 《기록학에 대하여》는 그 유명한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라는 책을 말하는 것입니다.한국어판으로는 김웅권(동무선), 김성도(민음사) 2개의 번역본이 있구요.몰라서 그렇게 번역한 건 아니고 gramme이라는 문자/기록의 의미를 최대한 살리려는 고민이 것 같습니다. 그라마톨로지라는 조어가 더 낯서니까요..
 
그림자를 판 사나이 열림원 이삭줍기 3
아델베르트 샤미소 지음, 최문규 옮김 / 열림원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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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에게 있어 그림자는 무얼까?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열림원, 2002)를 읽고 ‘그림자’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나 오래 붙잡고 있는 내가 좀 우스워 보이긴 한다. 인간에게 그림자는 그림자일 뿐, 아무것도 아니기에.

 

플라톤의 철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그림자는 실체가 아닌 허상이라는 걸 초등학생도 안다. 그냥 빛을 받는 유기체가 드리우는 실체의 흐릿한 모사일 뿐이다.

 

그런데 소설 한 권이 잊고 있던 인간의 ‘그림자’에 대해 성찰을 촉구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재미있고 멋진 우화를 통해서, 자본주의 시대에 인간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사실, 이 소설은 자본주의 비판서로 평가받아 온 듯하다. 물론 플롯 구조상 인간의 가치와 돈을 대비시키고 있기에 이런 평가는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소설 속 ‘그림자’로부터 인간의 가치를 생각하면서 노자 사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의 사상 말이다.

 

<도덕경>에서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는 ‘유무상생(有無相生)’과 상통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우주 만물은 유와 무의 대립과 긴장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단다.

 

있음은 없음을 전제로 하고, 없음은 있음을 전제로 한다. 침묵이 없으면 말(언어)이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한다. 말은 침묵을 전제로 가치를 갖는다. ‘쓸모 있음’도 매한가지다. ‘쓸모 없음’이 있어야 비로소 그 ‘쓸모 있음’의 가치가 생긴다.

 

 

 

2

 

 

인간의 그림자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림자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림자가 고뇌를 덜어주지도 않는다.

 

바쁜 일상생활에서 인간이 그림자의 존재를 생각할 겨를은 거의 없다. 도시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소설의 주인공 슐레밀은 무가치한 자신의 그림자를 악마에게 쉽게 내 준다. 그 대가로 슐레밀이 얻은 것은 금화가 무한하게 나오는 행운의 가죽 주머니. 슐레밀은 이 주머니로 갑부가 된다.

 

하지만 그는 태양이 뜨는 밝은 날을 피하게 된다. 그림자가 없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게 된다. 이 나라에서는 그림자가 없을 경우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그림자 없는 슐레밀을 보고 수다스런 청년들은 빈정거린다. “성실한 사람은 태양 아래서 걸어갈 경우 자신의 그림자를 잘 간직하는 법이지.” (p32)

 

슐레밀은 금화를 사용해 명성을 누리지만, 그 자신은 그가 지은 성 안에 꼭꼭 숨어서 지내다 태양이 사라진 밤에만 돌아다닌다.

 

급기야 그림자가 없다는 단 하나의 사실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하인에게 빼앗기고 그는 절망한다. 그제서야 그는 절실히 깨닫는다. 쓸모 없던 그림자의 가치를.

 

그림자는 그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명예를 얻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였다. 선한 일에 돈을 쓰고, 그로 인해 명성을 얻었지만, 그림자가 없다는 사실로 그 모든 가치가 하루아침에 신기루처럼 없어지는 경험은 슐레겔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가 그림자만 보여주면 혼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고, 하인이 태양아래 주인님의 그림자만 보여주면 충실한 하인으로 남겠다고 단언한다. 그럼에도 슐레겔은 그럴 수 없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가슴이 타 들어가는 순간만을 경험해야 했다.

 

슐레겔은 이전에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모든 재산을 바쳤지만, 지금은 오로지 그림자만 없기 때문에 가치 있는 모든 것을 눈앞에서 잃고 있다. 그는 스스로 묻는다. “이제 나는 이 지상에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p33)

 

 

 

3

 

 

이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를 갖고 있지만, 곱씹어 볼수록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림자’가 갖는 상징적 위상을 계속 돌아보게 한다.

 

천민자본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직장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이 가진 ‘그림자’를 모두 저당 잡히고 있다. 회사 밖에서는 일말의 가치도 없는, 그리고 눈에 잡히지 않는 업무를 위해 나의 시간과 정열을 모두 소진시키고 있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아침에 일어나기 싫고, 회사에 가기 싫지만 돈을 벌기 위해 나는 가야한다. 상사의 갑질과 거래처의 갑질을 견디지 않고는 하루가 지나가지 않는다. 마른 걸레에서 구정물을 뽑아내고 나면, 나는 점점 닳아 없어진다.

 

그러면서도 놀라운 건 우리 스스로가 슐레겔이 자기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을 좀처럼 던지지 않는다는 거다. “이제 나는 이 지상에서 어떤 사람이 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오후 3시의 햇살을 받으며 여의도 공원을 걸어보는 자유.’ 샐러리맨들은 누려볼 수 없다. 이 산책은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치 있는 일도 아니다. 태양 빛에 드리우는 그림자와 같은 거다.

 

10년 간 대기업 산하 연구소 연구원 생활을 하고 직장에 사표를 던진 한 여자가 그날 오후 3시 여의도 공원을 산책하면서 느낀 지점이다. 그녀는 감격에 눈물을 흘리며 자기가 뭘 위해 살았는지 모르겠노라고 했다.

 

그렇다. 이 기본적인 인간의 자유를 샐러리맨들은 누릴 수 없다.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를 누릴 수 없는 사람을 우리는 노예라고 한다. 그런 면에서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샐러리맨들은 모두 노예다.’라고 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일까.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서 수없이 회자되는 ‘그림자’는 현대 사회에서 돈과 바꾼 ‘인간의 가치’와 정확히 유비될 수 있다. 돈을 벌기 위해, 무가치한 듯 보이는 ‘자신의 그림자’를 얼마나 희생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4

 

 

인간은 쓸모 있는 부분과 쓸모 없는 부분이 서로 섞여 있는 존재다. 자신을 이루는 쓸모 없는 부분이 무용하다고 해서 돈과 바꿔버리는 순간(여가를 일로 바꾸는 순간) 자신의 가치는 없어져 버린다.

 

잊지 말자. 소설의 주인공이 마지막으로 전하는 귀중한 메시지를.

 

“벗이여, 만약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이라면 부디 무엇보다도 그림자를 중시하고, 그 다음에 돈을 중시하라고 가르쳐 주게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더 나은 자네 자신을 위해 살고 싶다면 말이지.”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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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5-04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낯설지가 않네요. 저도 읽은 것 같기도한데 말입니다.
제목만큼 아주 재미었던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확실히 기억을 못하는 걸 보면...ㅠ
그런데 야무님 글을 읽으니 정말 그렇게도 이해될 수 있었던 책이군요.
탁월하십니다.^^

yamoo 2016-05-10 16:02   좋아요 0 | URL
전 이 소설을 처음 읽었는데, 본래 아동용 동화로 많이 편집돼서 출간되었던 모양입니다~ 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근래 들어서 그냥 휘리릭~ 읽었던 소설은 이 작품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흠...제 독후감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6-05-04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림원 이삭줍기 시리즈를 모으는 중인데, 유독 샤미소의 작품은 찾기 힘드네요. 어린이용 번역본은 사기 싫어요. ^^

yamoo 2016-05-10 16: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 이삭줍기 시리즈 거의 다 모았는데, 3번 샤미소의 이 책은 구할 수가 없네요..ㅜㅜ

어린이용 번역본이 많나 봅니다..ㅎㅎ

transient-guest 2016-05-10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비슷한 이야기를 만화로 본 기억이 있네요. 83-84년 무렵의 `보물섬`이란 어린이만화잡지였어요.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고...세부적인 디테일은 다르지만요...

yamoo 2016-05-10 16:05   좋아요 0 | URL
저도 보물섬 구독했었는데요...거기서 저는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작품을 본 기억이 전혀~~~없습니다. 몇 작품은 생각나는게 있지만 제목은 전혀 생각나지 않네요..ㅎ

그나저나 보물섬이라...추억의 만화잡지죠. 어깨동무, 아이큐 점프와 함께 구독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만...^^;; 트랜스님 때문에 엔날 생각이 나래르..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