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사전 (보급판 문고본) - 기지와 해학 위트의 백과사전
앰브로스 비어스 지음, 정시연 옮김 / 이른아침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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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辭典)의 뜻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

사전적 정의상 사전은 분명한 책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전을 읽는다고 하지 않고 본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의미를 명확히 하거나 글을 쓰는데 어떤 도움을 받기 위해서 ‘찾아보는 책’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헌데, 보는 사전이 아닌 읽을 수밖에 없는 ‘이상한’ 사전이 있다. 1906년 앰브로스 비어스라는 작가가 쓴 <악마의 사전>(이른아침, 2008)이 바로 문제의 책이다. 이 책은 어느 모로 보나 ‘어떤 범위 안에 쓰이는 낱말을 모아 일정한 순서로 배열한’ 사전(辭典)이다.

사전이긴 사전인데 ‘악마’의 사전이다. 그도그럴것이 이 사전의 단어 풀이는 사악하고, 냉소적이며 발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지와 해학 그리고 풍자가 넘친다. 사전을 ‘읽고’있노라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면서 고개를 주억거리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다.

이 교묘한 이중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신랄한’ 비어스가 풀어놓고 있는 단어의 의미를 따라가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랬다.

가난  poverty  명
개혁을 주장하는 쥐들의 이빨을 갈기 위해 고안해 낸 줄칼. 가난을 없애겠다고 제안된 입안(立案)의 횟수는 가난에 고통 받는 개혁주의자들의 머릿수에다가 가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학자들의 머릿수를 보탠 것과 같다. 이 가난의 희생자들은 온갖 미덕을 몸에 지니고 있다. 그리고 가난이 존재하지 않는 번영의 땅이 있을 것이라며 자신들을 그곳으로 데려다주려고 노력하는 지도자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낸다.

나이  age  명
자신이 시도하기 어려운 악덕을 매도함으로써, 자신이 여전히 즐기는 악행을 상쇄하는 인생의 기간.  


돌봐주다  accommodate  동
은혜를 팔다. 장래에 억지를 쓸 수 있는 기반을 굳히다.   


망각  忘却  oblivion
사악한 인간이 악행을 그치고, 마음이 따분한 자도 안식을 얻는 상태. 명성의 최종 도착지인 쓰레기장. 고매한 이상을 넣어두는 냉동고. 야심만만한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자만하지 않고 자신의 것보다 뛰어난 작품에도 질투를 느끼지 않는 곳. 자명종 시계가 없는 기숙사.

 

무감동의  無感動  apathetic  형
결혼해서 6주일이 지난.  

 

불안  不安  fear  명
가까운 장래에는 완전히 몰락할 감각(感覺).  

 

뻔뻔스러움  impudence  명
대담과 야비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

 

수다  loquacity  명
상대방이 말하기를 원할 때, 자신의 혀를 제어할 수 없어 괴로워하는 질환.

 

심통  心痛  distress  명
친구의 성공을 본 것이 원인이 되어 걸리는 질환

 

온정  溫情  cordiality  명
우쭐한 기분을 당장 누리고 싶은 자의 태도에서 나타나는 특유의 간지러운 행동. 
 

절세미인  絶世美人  prodigy  명
그 아버지의 눈코를 물려받지 않은 신생아.

 

지인  知人  acquaintance  명
돈을 빌릴 정도의 안면은 있어도 이쪽에서 꿔줄 정도는 아닌 사람. 상대방이 가난하고 하찮을 때는 고작 얼굴이나 아는 정도라고 말하고, 돈푼이나 있고 유명할 때는 절친하다고 말하게 되는 우정의 정도.

 

친교  親交  intimacy  명
어리석은 자가 신의 섭리에 따라 서로를 파탄내기 위하여 휘말리게 되는 관계.

 

코러스  chorus  명
오페라 가수가 숨쉬고 있는 동안 관중의 넋을 빼놓는 고행승의 울부짖음.

 

타락  墮落  degradation  명
일반인 신분에서 정치 고위직으로 가는 도덕적 사회적 진보 단계의 하나.

 

투표  投票  vote  명
자기 자신을 바보로 만들고 자기 나라를 어렵게 만들고자 자유인이 행사하는 권리.

 

편애  偏愛  predilection  명
환멸의 준비 단계

 

학식  學識  erudition  명
텅 빈 두개골 속에 털어놓은 책의 먼지.

 

허무주의자  虛無主義者  nihilist  명
톨스토이 이외의 모든 존재를 부정하는 러시아인. 이 파의 지도자는 톨스토이.

 

2천 여 개에 달하는 단어들이 거의 이런 식이다. 그렇다고 품위 없는 풀이는 거의 없다. 문학 작품 속에서 사용된 표현을 사전 풀이에 절묘하게 대응시켜, 냉소와 위트 그리고 독설과 해학의 극한을 보여준다.

이제까지 누구도 시도할 수 없었던 풍자와 신랄한 비판이 돋보이는 20세기 최고의 사전이자 언어의 보물상자이다.

부디 악마적인 사전 ‘읽기’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기를...


[덧붙임]
1. 풀이가 영단어의 어원과 영미문학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꽤 된다. pun수준의 위트 있는 풀이도 있어 영미 문화에 정통한 사람이 보면 훨씬 더 절묘한 위트를 느낄만하다는 것이 주관적인 생각이다.
2. 고등학교 때 이런 사전을 만났다면 좋았을 것을...어려운 단어도 그냥 암기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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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9-08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덧붙임에서 확 끌리네 그냥~~
이건 손으로 쓰신 거 맞군요^^

yamoo 2010-09-08 09:43   좋아요 0 | URL
손으로 썼다고 봐주신 마기님께 감솨를~~^^

이 책 꽤 괜찮은 책 같아욤~ 책에 보면 좀 길게 돼 있는 풀이도 있는데요, 서양문학을 관통하는 위트있는 내용이 정말 좋더라구요~ 꼭 한번 일독해 보셔요~

책가방 2010-09-08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감동의)...ㅋ 완전 웃겨요...ㅎㅎㅎㅎㅎㅎㅎ

yamoo 2010-09-08 09:52   좋아요 0 | URL
무감동에 꽂히신 책가방님^^

제가 일일히 다 소개를 못했는데요, 이 사전 속에 있는 의미 풀이들이 재밌는 게 많습니다..고교시절 영어단어장이 저렇게 돼 있다면 정말 좋았겠다라는 생각이에요..ㅎㅎ 무감동의..라는 영단어가 그대로 암기될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ㅋㅋ

oren 2010-09-08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책에서도 가끔씩 등장하던 '악마의 사전'을 슬쩍 펼쳐 보여주시니 눈길이 확~ 당기네요.

저는 [학식 學識 erudition 명]과 [심통 心痛 distress 명]의 뜻을 제대로 알게되어 인상깊네요.

제가 조금 더 '인용'해 보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덧붙여 봅니다.
(여기서도 엠브로즈 비어스의 사전 내용이 포함되어 있답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인간의 비극 599

여러 시대에 걸쳐 인간의 조건을 관찰했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비극을 지적해 왔다. 사람들은 이웃들보다 낫다고 느낄 때 행복하고, 그들보다 못하다고 느낄 때 불행하다.

그런데, 아! 다른 사람의 눈으로 행복을 들여다보는 것은 얼마나 씁쓸한 일이냐!
- 윌리엄 셰익스피어(《뜻대로 하세요》5막 2장)

행복 [명사] 타인의 불행을 생각할 때 생겨나는 흡족한 기분.
- 앰브로즈 비어스

성공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실패해야 한다.
- 고어 비달

곱사등이가 즐거워할 때는 언제인가? 다른 사람의 등에서 더 큰 혹을 보았을 때다.
-이디시 속담

(이 책의 출처도... 지겹긴 하지만... 스티븐 핑커의 <마은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입니다.)

비로그인 2010-09-08 14:25   좋아요 0 | URL
아~~셰익스피어....
단 한마디의 비수로 가슴을 찌르는군요.
오렌님이 댓글에도 추천~~~

yamoo 2010-09-08 21:38   좋아요 0 | URL
음...셰익스피어도 비어스와 비슷한 표현을 쓰는군요!ㅎ

사전에 행복에 대한 풀이 그대로 있습니당~~

근데, 진짜 스티븐 핑커의 책을 얼마나 읽으셨길래 이런 인용이 가능한가욤?? 대단!
아, 근데요...인간의 비극 599..이게 뭐에요? 인용하신 부분에 항상 있어 궁금해서요~

마녀고양이 2010-09-08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움베르트 에코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 생각나는 책이군요.
솔직히 저는 한바퀴씩 꼬아놓은 말이나 책, 즉 말장난을 싫어해서,
반 읽다가 치워버렸습니다만..... ^^
흥미는 있네여.

그리고, 오렌님의 댓글 역시....... ^^

yamoo 2010-09-08 21:42   좋아요 0 | URL
에코도 슬쩍 뒤짚는 표현들을 많이하지요..ㅎㅎ <바보들에게~>이 책은 잼나게 읽었습니다만..ㅎㅎ 근데, 말장난 같은 표현은 별로 없구요...제가 기억하기론 엎어치고 메치는 내용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읽다가 때려친 책들을 주워사 다시 읽어보면 2가지 결론이 나옵니다..다시 때려치든가, 아니면 재미의 재발견 이든가...후자가 간혹 나오긴 해요..ㅋㅋㅋ

양철나무꾼 2010-09-08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런 류 좋아해요.
젤 먼저 마기님이 생각났다는~~~
이젠 그런 류의 시 안쓰시남여?

저도 다른 책에서 종종 봤던 내용이 있네요~
암튼,장바구니에 쏘옥~입니다.

비로그인 2010-09-08 14:25   좋아요 0 | URL
내가 뭐, 응?
푸히히~

yamoo 2010-09-08 21:44   좋아요 0 | URL
오호~ 마기님이 그런 시를 쓰셨다구요?
웅~~~근데, 요즘은 왜 안쓰실까나~~~ㅎ

나무꾼님, 읽으시고 리뷰남겨 주세여~~헤~~

마기님, 시 쓰셔야종~~기대기대~~^^

oren 2010-09-09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티븐 핑커의 책을 얼마나 읽으셨길래 이런 인용이 가능한가욤? 인간의 비극 599..이게 뭐에요? 인용하신 부분에 항상 있어 궁금해서요]

---> 정확하게는 '두 번' 정독했구요. 최근에 별도로 (언제든지 리마인드하거나 혹은 인용하기 쉽도록) 밑줄친 부분을 중심으로 '요점 정리'까지 상당 분량을 타이핑해서 갈무리해놨기 때문에... 어떤 유형의 문제(?)가 나와도 쉽게 해답을 찾아 쓸 수가 있을듯 싶어요..ㅎㅎ(추후에도 불쑥 불쑥 인용하는 일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하시기를 '미리' 청합니다.)

'인간의 비극'은 제가 임의로 작은 타이틀을 붙여본 것이구요. '599'는 책의 해당 쪽수랍니다. 책 내용의 특정 부분만을 인용하게 되면 가끔씩 뜻이 왜곡될 수도 있겠다 싶어, 혹시라도 전후좌우의 문맥을 찾아 읽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라도 쪽수는 밝혀두는 게 좋을 듯 싶어서요...



yamoo 2010-09-09 21:41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군요..핑커의 책은 엄청 두껍던데..

저는 블로그에 오렌님이 하셨던 작업을 했다가 귀찮아서 그만 뒀었어요..근데, 다시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불~끈! ㅎ

언제나 좋은 인용을 해 주셔서 넘 감사드립니다~

pjy 2010-09-09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지인'에서 빵 터졌습니다ㅋㅋㅋ

yamoo 2010-09-09 21:40   좋아요 0 | URL
하하, 그 부분도 인상깊죠..^^

김용의 소오강호를 보면 사대악인이 나오잖아요...그 사대악인이 하는 말이 아마도 저럴거에요~ pjy님도 재밌게 보실수 있을 거 같아욤~
 
모짜르트가 살아 있다면
김미진 지음 / 민음사 / 199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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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아주~ 오래 전에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이다. 책을 읽은 지가 너무 오래 돼서 기억도 가물가물 하다. 다시 기억을 되살려 이 리뷰를 남길 수 있게 한 동력은 지하철에서 한 처자가 이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저녁에 퇴근 후 없는 약속을 만들어 코엑스로 향했다. 신림에서 지하철을 탔는데, 내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처자가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무슨 책을 그리 열심히 읽나 봤더니, 아...예전에 내가 읽었던 김미진의 <모차르트가 살아있다면>(민음사, 2000)이다.

어!? 이 오래된 책을 아직도 읽는 사람이 있다니! 넘 반가워 처자를 유심히 봤다. 엄청 집중해서 읽고 있다. 음...재밌나 보다... 맞다, 이 책은 실로 우아한 흡입력을 갖고 있는 김미진의 첫 장편소설이다.


2.

집에 와서 얼른 <모차르트가 살아 있다면>을 찾아 쭉~ 훑어 봤다. 역시 열심히 읽은 티가  팍팍 난다. 꽤 감동적으로 읽었나보다. 밑줄도 여러 개 쳐져 있고, 단상들도 여백에다가 마구 적어 놨다~ (나에게 김미진이라는 소설가를 각인 시켜 준 작품이다.)

중간에 보니 찢겨진 대학 노트에 뭘 써놨는데, 이 책에 대한 단상이다. 하도 날려 써서 무슨 내용인지 글씨를 뚫어지게 쳐다봐야 파악이 됐다. 이 리뷰는 7년 전 내 단상의 그림자다.  

 


3.

“마지막 한 문장이 이 소설을 살렸다.” 작가 조성기가 이 소설을 평한 말이다. 솔직히 이 작품을 읽기 시작한 것은 이 말을 검증해 보기 위해서였다.

개인적으로 여류소설가라는 분들의 책을 꽤 읽어왔다. 오정희, 신경숙, 김정란, 서하진, 하성란, 최윤, 공지영, 김형경 등등...

문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그녀들의 소설은 이상하게도 다 읽고 나면 막 반박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그리고 뭐랄까, 답답하다고나 할까. 뭐, 그런 느낌을 종종 받았다.

하지만 김미진의 이 소설은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시선은 생각을 유보하게 하고, 다음 장면을 위해 활자를 찾아 헤맨다.

비슷한 시기에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란 단편을 읽었더랬다. 이 소설의 주제는 ‘만나고 헤어짐’에 대한 ‘문학적 성찰’ 비스무리 한 거였고, 논평도 그런 쪽에 호평을 쏟아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으로 최윤은 그해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냥 평범한 독자의 입장에서 똑같은 주제를 놓고 봤을 때 김미진의 작품이 최윤의 작품보다 훨씬 더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주제를 감각적인 문체로 잘 담아낸 것 같다.

헌데, 한 작품은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한 작품은 문단에서 그리 깊은 조명을 받지 못했다. 요상했다. 김미진의 작품이 상을 받기에는 진짜 그저 그래서 그런가..

<모차르트가 살아있다면>은 ‘점’, ‘선’, ‘면’ 그리고 ‘보이지 않는 풍경’이라는 4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각각의 부는 쌍, 지후-글라스, 윤-쿠키, 지니-류 등의 인물을 축으로 각자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단편으로 봐도 무방한 각 부의 독립된 에피소드들은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볼티모어의 어느 미술학교로 수렴한다. 그리고 4명의 주인공들은 서로 미묘하게 얽히고설키면서 그들 간의 '관계'를 드러낸다.

작품의 주제는 위에서 말했듯이 최윤의 <하나코는 없다>와 유사하다. 하지만 그 구성과 표현방식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에서 사람 간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인한 상처가 좀 더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각 부가 단편인 듯 보이지만 느슨하게 연결되어 장편소설이 되고, 끝은 마지막 문장으로 인해 처음과 연결되면서 ‘뫼뷔우스의 띠’구조를 완벽하게 구축한다.

이만한 작품이 문단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가 계속 궁금했더랬다. 헌데 책 말미에서 이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작가가 미국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어휘력에 상당한 제한을 받았다나 뭐라나... 작가 조성기의 비평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 그런 사소한 것보단 소설의 완성도를 더 주목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이 작품은 어휘력에 제한을 받지도 않았거니와(그런 것 못 느꼈다!)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흡입력이 엄청나다. 빠른 사건 전개와 감각적 문체 그리고 수체화처럼 뿌려지는 묘사는 독자를 볼티모어의 쓸쓸한 겨울풍경에 그대로 데려다 준다.

“마지막 한 문장이 이 소설을 살렸다.”라는 조성기의 이 말은 “마지막 한 문장으로 인해 작가는 새로운 소설의 지평을 열어젖혔다” 정도로 바뀌어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결국, 소설가의 수준을 만드는 건 평론가의 취향이라는 건가? 정말 그런 것인가?..라는 씁쓸한 생각을 막을 수 없었다.


[덧붙임]
쳇, 아무개 소설가는 김미진보다 훨씬 더 프랑스물 먹은 것을 소설 속에다가 자랑질 해 놨는데.. 평론가들은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 반구도 하지 않고 왜 김미진만 걸고 넘어졌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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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9-04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품절작을 이렇게 멋지게 소개해 놓으시면...이건 얄미운 짓!

yamoo 2010-09-04 21:46   좋아요 0 | URL
헛~ 거의 실시간 덧글을...@_@

품절이라 안타깝고, 김미진 작가가 이 때의 포스를 발휘해 주기를 바라는 염원에서..ㅎㅎ 이후 2작품을 더 봤는데..재밌긴 하지만 좀 실망스러웠구요..
리뷰를 남긴 것은 순전히 지하철에서 봤던 그 처자때문이었습니다..ㅎ

전 이상하게 읽은 대부분의 책들이 품절이나 절판된 책이더군요..ㅎㅎ 저도 신작을 읽고 리뷰를 쓰고 싶은데...그게 잘 안되네요..

그냥 발로 쓴 리뷰를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비로그인 2010-09-05 00:15   좋아요 0 | URL
발로 쓴 리뷰가 이 정도면 손으로 쓴 리뷰 좀 보여줘봐요~
읽고 좀 까무러치게~~

yamoo 2010-09-05 22:18   좋아요 0 | URL
아...저는 항상 손으로 쓰지만 항상 끝에 가서는 발로 쓴 글이 됩니다..거참 이상하지요~~
저두 손으로 쓴 리뷰를 쓰고싶다고요~~~-ㅜ

마녀고양이 2010-09-0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마지막 한문장이 뭐예요?
난 그게 궁금해여~~
좋은 리뷰입니다!

yamoo 2010-09-05 22:20   좋아요 0 | URL
음...마지막 한 문장은 디게 평범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아, 쌍이라고 당신은 모르는 사람이야." 입니다..
요 문장 때문에 끝의 에피소드가 처음과 연결되고 있습니다..ㅎ

좋게 봐주셔서, 감솨~!

하루 2010-09-05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이 책은 어떻게 구해서 읽어야 하는겁니까!!!!!!!

yamoo 2010-09-05 22:22   좋아요 0 | URL
음...헌책방에 가면 구하실 수 있구요..
도서관에 가도 비치되어 있습니당~~^^
제가 읽은 여류소설가들 작품 중에서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멋진 작품입니다~
일독하시길 강추드릴게욤~ㅎ

양철나무꾼 2010-09-06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제목이 멋지구리 해서 읽었었던 기억이 나는데,내용은 가물가물 하다는~
이래서 리뷰라는 게 필요한가 봅니다~^^

yamoo 2010-09-06 00:30   좋아요 0 | URL
오~~이 책 읽으셨군요! 저두 가물가물 해서 이렇게 정리를 했습니다요..ㅎㅎ

근데, 진짜 모차르트 얘긴 하나두 없더라구요..ㅋ

차좋아 2010-09-06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저 이거 샀어요^^(알라딘 중고방) <은밀한 생>도 다음달 살 예정이에요 ㅎㅎㅎ
<은밀한 생> 목차를 봤는데 간심이 가더라고요. 야무진 추천입니다 ㅎㅎㅎ

yamoo 2010-09-07 22:55   좋아요 0 | URL
앗! 그렇군요~^^ 와~~ 읽고 리뷰 남겨주셔욤~~^^

은밀한 생...정말 대단한 책이에요..일반 소설이라고 볼 수 없지만...밑줄을 그을 수 밖에 없는 대단한 문장들...
저 이 책 3번 읽었는데, 넘 좋았어여~ 차좋아님두 일독하시구 얼른 리뷰 올려주세염~~

달쓰별쓰 2010-09-07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책 제목이 멋지네요!
막 읽고 싶어지는 책입니다ㅋㅋ 아마 학교 도서관에 있을 거 같네요~
한번 빌려서 읽어봐야겠어요ㅋㅋㅋ

일단 방학을 한 뒤에......- ㅠ

yamoo 2010-09-08 09:39   좋아요 0 | URL
학교 도서관에 분명히 있을 거에요~^^ 방학을 한 뒤에 시간이 여유로우시면 꼭 일독해보세여~ㅎ
음...지하철용으로도 괜찮습니다만..ㅎㅎ
 
윈터스쿨 상
이석범 지음 / 살림 / 1996년 11월
평점 :
절판


휴가 마지막 날, 이사를 하고 책장을 들여놓은 이후 처음으로 책을 정리했다. 아무렇게나 꽂혀져 있는 책을 이리저리 구색에 맞춰 배열했다. 이리저리 하도 움직여서 발바닥이 아플 정도였다.

분주히 옮기는 와중에 어딘가에서 툭 책이 떨어졌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보니 <윈터스쿨>(살림, 1996)이다.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다. 상상문학상 수상작이라는데, 이 문학상이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헌데, 분명히 기억하기론 당시 이 책을 무지 재밌게 읽었더랬다. 어디서 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무심코 책을 폈다. 아, 그런데 끝까지 읽게 되었다. 책이 널부러져 있는 상태에서 그냥 죽치고 앉아 읽어 내려갔다. 눈을 들어보니 밖은 그새 어둑어둑 해 져 있었다. 

예전에 정운찬 전 총리가 설대 총장하던 시절, 학벌철폐와 설대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정 총장은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했었다. 당시 그 발언을 듣고 정 총리가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었는데, 총리직을 수행했던 정운찬을 보니 그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설대 전 총장이었다는 것! 

정 총리의 당시 발언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신문이 있었다. 그 신문에 연재되었던 시리즈 가운데 ‘수평사회를 만들자’라는 기획기사를 꽤 관심 있게 본 기억이 있다. 기사의 요지는 ‘설대 중심의 사회를 재편성하자’라는 것. 신문은 얼마나 많은 사회의 요직을 설대 출신들이 차지하는 지 각종 지표로 보여줬다. 기사는 대충 이랬다.

『사회의 모든 기득권 세력의 60퍼센트 이상이 설대출신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각 방송국의 핵심 자리 70%, 정치가의 70%, 법조계의 85%(특히 헌법재판소 재판관9인중 8인이 대법관14인중 12인이 설대출신), 경영 쪽의 50%이상이 바로 설대출신 이다. 그 밑으로 일명 명문 사학이 차례로 지분을 차지한다.』


이 사실은 바로 강준만 교수가 그의 책 <서울대의 나라>에서 멋지게 파해쳤던 게 아닌가?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역시 사회에서 설대 출신 비율은 변하지 않고 있다. 얼마 전 MB정부의 인사만 봐도 이 나라는 ‘서울대의 나라’임을 다시금 입증하고 있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걸작 중 걸작이다. 우리 교육의 신랄한 비판서이자 우리 사회의 변혁을 요구하는 문제작이다. 겉잡을 수없이 책에 빠져들었던 이유도 아직까지 하나도 바뀌지 않은 우리나라의 실상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수능이 100일도 안 남았다. 수많은 학원과 과외, 경시대회 그리고 각종 시험의 얽게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학생들과 그 불쌍한 학생들을 등쳐먹는 과외선생들. 부장검사가 자식의 과외를 위해 사표를 써야하는 이 나라의 현실이 소설속의 상황과 맞아 떨어져 메가톤급 재미를 선사한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찌도 이리 판에 박은 듯 똑같은지..) 

한번 손에 들면 절대 놓을 수 없는 마력. 작가 양귀자가 해야할 일을 까마득히 잊고 이 소설 읽기에 몰두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하는 책이다. 

이런 작품이 왜 소리 소문 없이 잊혀졌는지 모르겠다. 한국 사회의 현실을 너무도 리얼하게 소설화켜서 그런가? 아님, 예언서라서? 여튼, 이 책은 강준만 교수의 역작 <서울대의 나라>의 소설본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이니, 도서관에서라도 빌려보길 강추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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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8-24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10대였을때 읽었던 기억이~

yamoo 2010-08-25 00:1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매버릭꾸랑님..반갑습니다~^^

10대 때 읽었다면, 이 책을 읽었다면 더 재밌었을지도...전 졸업하고 읽었는데도, 무쟈게 재밌더라고요..강준만 교수의 <서울대의 나라>를 넘 재밌게 읽고 난 후 이 책을 봐서 그런지 완전 쌍둥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더 재밌게 봤는지도 모릅니다. 두 책의 비판의 타겟은 완전히 동일했습니다..이런 정도의 작품이 잊혀지는 게 안타깝군요~ㅎㅎ

마녀고양이 2010-08-25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대 갈 정도의 머리도 실력도 안 되는 저는,,
소위 서울대 출신들과 일을 하면 어렵더군요.

일단 머리 회전이 빠른 것도 따라가기 힘들고,
어려운 용어 써대는 것도 따라가기 힘들고,
자신의 머리 회전에 맞추어 상대의 속도는 무시하고 진행하는 것도 힘들고,
제일 힘든 것은.... 우월 종족답게 자신의 주장이 너무나(!) 확고하다는거죠.
대화가 어려우니, 타협 및 해결도 어렵고. 솔직히 같이 대화하기 싫어서 피하게 되고.

물론 저의 편견입니다만!
그리고 우월한 분들끼리 뭉쳐서 정치와 법과 행정을 하게 되면 아마 잘 하리라 생각합니다. ㅋ

yamoo 2010-08-25 09:54   좋아요 0 | URL
저두 설대 출신 분들하고 일해봐서 압니다만...마고님이 경험하신 것과 거의 동일한 경험을 했는지라.. 그 마음 잘~압니다요 ^^

그 우월한 분들끼리 뭉쳐서 정치와 법 그리고 행정을 하니...나라 꼴이 산으로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ㅋㅋ 전 패거리 정치라는 게 딴대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같은 대학 출신이 많은 집단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 같습니다. 뭐, 국가의 상층부도 거의 설대 동문회는 뭐...ㅎㅎ

stella.K 2010-08-25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판된 책이네요.
이해는 하겠는데, 서울대 자체가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나 서울대 알아주지 세계에 나가면 100위에도 들어가지 않는다잖아요. 그게 또 필리핀의 마닐라 대학이나 중국의 유수한 대학과 쨉이 안된다는군요.
그거 생각하면 우리나라도 세계에 필적할만한 적어도 100위 안에 드는 대학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중요한 건 사람의 자질의 문제겠죠. 서울대 나왔다고 모든 면에서 뛰어날거다란 이 맹신이 문제인 것 같아요. 우리가 못 먹고 못 살던 세월이 너무 길다보니...
하긴, 내가 이 책을 읽지도 않고 뭐라 말하는 건 그렇긴 하다...ㅜ
저도 서울대 사람 무조건 좋아하는 건 아니고 친하게 지낼 마음은 없는데, 서울대 사람 중 나름 인상 좋은 사람도 있더라구요.

yamoo 2010-08-25 16:13   좋아요 0 | URL
넹~ 절판된 책입니다. 그치만 아직도 도서관에서는 건재하지요^^

저는 회사다니는 동안 설대 출신들에게 하도 많이 당해서 어떤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어제는 일때문에 한 분을 만났는데, 설대 출신의 양과를 패쓰한 교수분 이었습니다. 그 분이 얼마나 겸손하고 인간미가 좋은지...태어나서 그런 분은 첨 만나봤습니다. 설대 나오신 분들 중에 그런 분도 있더군요. 정말 존경할 만한 분이었습니다.

위의 글은 뭐, 일반적인 것이구요..성급한 일반화일수도 있지만 개인적인 경험이 많이 담겨 있기에 가감해서 보시면 될 것입니다~ 스텔라님이 마지막에 말하신 '설대 사람 중 나름 인상 좋은 사람도 있더라구요'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은하철도의 밤 - Night on the Galactic Railroa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겐지의 봄- 미야자와 겐지 탄생100주년 기념 작품> 
         감독: 가와모리 쇼지

1.

 내가 이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99년 9월. 학교에서 있었던 일본 애니메이션·영화축제 에서였다. 한 시간 미만의 짧은 어둠속에서, 난 그때 말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시적인 대화와 몽환적인 영상들.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 수가! 그 속에서 던져지는 수많은 은유와 보편적 메시지들을 접하면서 영상언어라는 힘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때 나를 압도했던 영상의 잔해들이 너무도 강력히 각인되어 있어서 인지, 나는 어제 한 번 더 이 작품을 보게 되었다. 다시 보았지만 역시 명작은 세월의 흐름에 퇴색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 전에 흘려보냈던 겐지의 말들을 음미하면서 보니 더욱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미야자와 겐지 탄생 100주년 기념 작품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솔직히 이전에 ‘미야자와 겐지’라는 작가이름만 알았지, 그가 어떤 작품을 썼는지 조차 몰랐다. 아직도 겐지의 작품을 접하진 못했다. 하지만 미야자와 겐지가 일본 문학에서 끼친 영향이 대단하다는 것.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겐지의 작품들이 속속 번역 소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전혀 몰랐던 사람을 이 작품을 보고 최소한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었다는 점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고양이 겐지를 통해 미야자와 겐지가 평생 무엇을 추구 했는지, 그리고 그의 이상과 현실사이의 고뇌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는 사실. 한 작가의 전기를 이렇게 에니메이션이라는 매체에 빼어나게 담아 전달할 수 있는 가와모리 쇼지 감독의 역량이 돋보였다. 

 현란한 영상과 아름다운 시적 언어의 유희를 한껏 즐길 수 있는 이 작품을 좀 더 소개해 보고자 한다. (의도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사람은 고양이로 대체되어 있다.)

2.

 겐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그는 독특한 스타일로 아이들을 가르쳐 아이들 사이에서 이상한 선생님으로 간주되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겐지가 가르치는 내용들은 생생한 생명을 전달하는 삶의 지식이다. 인간이(고양이지만)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연의 한 부분으로 동화되어야 한다는 물아일체의 정신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항상 작은 것 속에서 의미를 찾고 이 세상의 가장 본질적인 것은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달아 알게 하려는 것이 그의 가르침의 출발점 이었다. 교사로서의 그의 삶은 '참 교육의 정신' 그 자체였다.

 하지만 겐지는 냉혹한 현실에서 한 없이 작아지는 소극적인 지식인이었다. 그가 쓰고 또 쓴 글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읽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조차도 그를 버렸다. 그의 글들은 그 나름대로의 세계를 보는 정신의 궤적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를 이해해주는 단 두 사람이 있었다. 그가 사랑했던 토시와 그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었던 카나이라는 사람이다. 두 사람은 그의 후원자 이자 영감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토시가 지병으로 눕게 되고 카나이가 자신과의 다른 길을 가게 되자 겐지는 좌절하게 된다. 특히 카나이와의 결별은 좌절의 깊이를 더했다. 사실 이 작품에서 카나이와 겐지의 관계는 짧게 나타나지만 상당한 무게를 갖는 만남이고, 이후 겐지가 갈등하는 전제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카나이: 난 언젠가 꼭 천상계처럼 아름다운 농장을 지어서 거기서 연극이나 축제를 하고 새로운 농촌예술을 만들어 내 보고 싶어. 어의 너의 꿈은?  

 겐지: 나의 꿈은 이 세계의 배후에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 진실한 힘의 수수께끼를 풀어 밝히고 그 길을 나아가고 싶어. 
 카나이: 멋진 꿈이군. 하지만 어떻게 해서 그 길을 가는데....? 
 겐지: 아직 그 방법을 찾지 못하겠어. 
 카나이: 그래? 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찾을 수 있을거야. 
 겐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카나이: 물론 그 길을 함께 갈 수 있으면 좋겠군.   


   (3년후) 겐지는 도서관 어느 한적한 곳에서 군인이 된 카나이와 조우한다. 
 

겐지: 어째서 함께 갈 수 없다는 겁니까? 
 카나이: 이 세계에 정말로 위대한 힘이 작용하고 있다면 왜 사람은 서로 다투는가? 왜 생물은 서로 죽이고 서로 먹는 것인가? 
 겐지: 그 그것은... 그것도 또 진실한 힘의 의지인지도.. 아니 그 대답을 찾기 위해 같이 가지 않았습니까? 
 카나이: 당신은 마치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것 같군요. 이상이라는 구름 위를...  


 그렇다. 카나이와 겐지가 서로의 꿈을 이야기할 때부터 이런 이별은 예견된 것이었다. 카나이의 꿈은 농장을 지어 농촌예술을 만들어 내는 현실지향적인 것이었고 구체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겐지는 세계를 움직이는 배후의 진실한 힘을 찾겠다고 했다. 너무 이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이 두 사람이 같은 길을 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카나이는 현실을 냉혹히 바라보는 군인이 되었고 겐지는 이상을 찾아 헤매는 작가가 되었다.  

  카나이의 와의 결별과 함께 겐지의 높은 눈은 땅을 향하게 된다. 그는 정식 교사를 그만두고 현실에 발을 붙이기 위해 농사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밤이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한다. 이상만을 추구하던 겐지에게 땅의 일은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다. 주위사람들의 비아냥거림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농사를 위해 그가 들인 모든 노력들은 비와 바람으로 망쳐지기 일쑤였다. 비와 바람을 피해 일궈놓은 농작물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둑맞아 버린다. 그를 도와 농사일을 도왔던 학생들에게 그는 말한다. "표시를 세우면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무엇인지 모르게 되어 버렸다. 열심히 황무지를 일구고 소중히, 소중히 야채를 기르고 있었다고 생각해도 우리가 그것을 먹는다고 하는 것은 야채의 목숨을 뺏앗는 것과 아무것도 다를 게 없는 것이 아닐까요?" 

 어느 음산한 날, 밭을 갈던 겐지는 땅에 쓰러진다. 그리고 또다시 환상에 젖어들며 독백한다. '거봐 역시 허수아비조차 되지 못했군. 끝이 무거워 땅속으로 가라않는 것 같군. 조금이라도 모두가 같은 것을 먹으려하거나 하늘나라 사람과 결혼한다던가 허세부려보기도 하고, 하지만 모두 진실은 아니었는지도 몰라. 분명 그걸로 뭔가 쫓는 일이 있는 게 아닐까하고 마음속에서 생각하고 있었던 거겠지.'

(환각이 계속된다) '나도 여기 까지인가? 땅바닥에 붙은 저 새까만 구름속... 나로서는 안돼는 것인가? 컴컴한 큰 것을 나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인가? (환각 계속) 깜박이고 있는 것은 나인가? 세계인가? 빛은 그대로 있으나 그 전등은 잃어 버리고, 이것은 변합니까? 이것은 변합니다. 이것은 변합니까? 변합니다. 이것은 어떻습니까? 변하지 않습니다. 아니요 변합니다. (그의 살아온 행적이 오버랩 되어 스쳐지나간다) 결국  모두가 말하는 대로인가? 토시... 잘 되지 않아.'

 이제 이야기는 종착역을 향해 치닫는다.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에서 겐지는 괴로워한다. 이상을 추구하던 그가 현실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그를 무능한 지식인으로 몰아간다. 멍하니 누워있는 겐지의 귀에 빗물을 떠서 갖다달라는 토시의 환영이 들린다. 토시를 위해 눈을 떠먹이는 겐지를 또 한명의 겐지가 보고 있다.

숨을 거두는 토시. 슬픔과 비통함이 교차하는 마음을 담아 "새로운 시대의 코페르니쿠스여! 숨막히는 중력의 법칙으로부터 이 은하계를 풀어놓아라."라는 겐지의 외침과 함께 이 영화의 가장 압권인 영상이 화면을 수놓는다. 땅의 철로가 갈라지면서 땅속에서 열차 두 대가 하늘로 올라간다. 

 어디까지라도 진정한 행복을 찾으러 갔지만, 눈덮힌 밭에서 깨어난 겐지. '분노의 씁쓸한 그리고 푸르른 4월의 기층의 빛 저 아래를 침 뱉고 이를 갈고 왕래한다. 나는 한 사람의 수래인 것이다.' 아련하고 신비한 음악과 함께 겐지는 뛰기 시작한다. 4계절의 변화가 그가 뛰는 길을 수놓으면서... 


                                                                3.

 서른일곱 살의 나이에 요절한 작가. 순수한 열정과 진정성 넘치는 이타심으로 짧은 생을 불꽃같이 살다간 미야자와 겐지. 그가 추구한 이상과 현실이 어떤 것이었는지 환상적으로 보여주는 미야자와 겐지의 전기다.

 김훈의 에세이를 보는 것처럼, 작고 평범한 사물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시적인 표현들이 작품전체를 수놓고 있다. 정말 놀라운 작품이다!



[덧붙임] 
 작품을 보고 감동한 것만큼 글에 담지를 못해 한탄스럽습니다. 하여간 이 작품은 굉장한 작품입니다. <메모리즈>의 '대포의 거리'를 연상시키는 강한 상징적 영상들로 가득 차있지만 작품 색깔이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내 청춘의 아르카디아호>, <은하철도 999 극장판>, <우주왕립군> 등 캐릭터의 대화들이 아포리즘을 방불케하는 몇 작품들이 있지만, 화려하고 상징적인 영상과 함께 전달하는 이 <겐지의 봄>에 비교해서는 그 주제의 진정성과 소재의 중량감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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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8-20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헙, 저는 저 애니를 보지 못 했어요. 급 땡기는군요...

yamoo 2010-08-20 09:08   좋아요 0 | URL
이거 완전 대박입니다! 만화책도 있는데, 만화책은 한 권 짜리구요...애니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이 영화는 겐지의 전기에요! 것두 수준높은 전기! 마크로스 감독한 감독이 만든 작품인데, 저런 영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작품입니당~ 마고님 꼭 구해보시길~ 후회 절대 안할 거라 보장합니다!ㅎ

stella.K 2010-08-20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는 IP TV에서 하면 당장 볼텐데...OTL

yamoo 2010-08-20 13:42   좋아요 0 | URL
ip티브로는 보기 힘들어여~~ 렌탈 숍 가면 있습니다. 빌려 보도록 하시와여~~^^ 이건 케이블티브에서도 안하더군요..이상하게시리..
 
뱀파이어 헌터 D - Vampire Hunter 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카와지리 요시아키 감독의 작품 중에서 4번째 만나는 작품이다..

요시아키 감독 작품을 마지막으로 본게 2003년 <쥬베이풍첩>이었으니 햇수로는 7년만인가...하여간 오랜만에 요시아키 감독의 캐릭터를 보니 반가웠다~

오래 전 대학 에니메이션 축제 때 이 작품을 봤었는데, 화질이 넘 구려 어떤 내용인지 거의 생각이 안났었는데...다시 보니 내가 예전에 이 영화를 봤었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사실..ㅎㅎ 

감동보다는 비주얼 위주의 재미를 선사하는 감독답게, 역시 요시아키 감독이라는 찬사를 날리게 한다~ 정말 그는 오락영화의 대부이다. 넘 재밌게 봤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영화 <블레이드>는 이 영화를 보고 베낀게 분명한거 같다..아니면, 말구..ㅎㅎ

아무튼...재미 만빵이니 모두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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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08-14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 대학 에니메이션 축제 때 이 작품을 봤었는데, 화질이 넘 구려 어떤 내용인지 거의 생각이 안났었는데...다시 보니 내가 예전에 이 영화를 봤었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사실

어떤 영화일지 느낌이 팍~오는걸요.
이런게 좋은 영화평일 듯~!!!

yamoo 2010-08-14 22:29   좋아요 0 | URL
글세요..이런게 좋은 영화평인가요~ ^^;; 이런 건 영화평이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을까요~ ㅎㅎ 진짜 생각나는 거라고는 볼 당시 화질이 넘 구렸다는 정도였습니다. 내용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고, 역시나 영화를 보고도 기억을 되살릴 수 없었다는~ 단지 주인공 캐릭터만 친숙했슴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