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리얼리스트 사토리얼리스트
스콧 슈만 지음, 박상미 옮김 / 윌북 / 201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도대체 '멋진 룩'이란 무얼까? 2008년~9년 <보그 걸> 잡지 부록인 <The Vogue Girl Book Of World Street Style>시리즈와  <The Sartorialist>시리즈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특히 <보그 걸> 부록인 스트릿 사진집 시리즈는 정말 평소 내가 좋아하지 않는 룩만 잔뜩 들어있었다. 정말 '이게 멋진 룩이란 말인가?'란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는 사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한 sns에 올리는 데일리룩 사진도 '별루에요', '이상해요'라고 하는 사람들의 댓글들. 이들 역시 내가 저 사진 화보집을 보고 든 생각과 동일한 느낌을 댓글로 표시했다는 걸 말이다. '멋지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기 때문에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 번 일깨우게 된다.


그런데 '패션'에서는(스타일이 아니라 패션이다) 어떤 권력을 가진 자의 평가가 대중의 판단을 마비시키는 것 같다. 아니 '패션 권력'(광고주라든가 브랜드 매니저 또는 패션 기자 등 패션 관련 전문가)을 가진 자가 대중에게 이미지를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거. (뭐, 어렵게 말하면 브르디외가 말한 아비투스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보다 사진을 보는 게 훨씬 이해가 빠르겠다. 한 동안 인터넷에서 회자됐던 박지성 수트 사진(2장)부터 봐 보자.

 

 

 

 먼저 스포츠 조선 사진은 2012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를 관람하기 위해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찾은  박지성의 수트 패션이다. 간만에 수트를 입은 박지성의 저 사진에 대해 기자는 '빅버드에 온 박지성, 블랙수트가 깔끔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다음 사진은  2015년 서울 모터쇼에 수트를 입고 참석한 박지성의  모습이다. 이게 데일리안에 실렸는데, 이상우 객원기자는 '콜린퍼스 못지 않네'라는 타이틀을 달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사진 속 박지성의 수트 핏은 정말 아니었다. 아무리 비싼 수트라고 해도, 박지성이 수트를 입은 게 아니라, 수트가 박지성에게 입혀져 있는 듯 보였다. 근데, 깔끔하다니느니, 콜린 퍼스 못지 않다는 평가는 우습기 짝이 없다.


더 웃긴 건 이 사진들을 보고 네티즌들이 한 마디 씩 하는 거였다. '남자는 역시 수트빨', '수트도 잘 어울리는 박지성', '정말 멋진 수트룩' 등등 상찬이 이어졌다.


영화 킹스맨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콜린 퍼스의 수트 입은 모습은 그냥 엘러강스 그 자체였다. 더블 브레스트 수트를 킹스맨의 콜린 퍼스만큼 멋지게 입을 수 있는 배우는 정말 드물다고 생각한다. 아니 영국과 이탈리아 전체를 뒤져도 그리 많지 않을 거 같다. 그런데 박지성의 수트 룩이 콜린 퍼스 못지 않다니,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영화 본 사람 중 나만 그리 생각하는 건가~--;;)

 

 

 

정말 미심쩍은 사람들은 위 박지성의 수트 룩과 콜린 퍼스의 수트 룩을 비교해 보면 그냥 답이 나오지 않을까. 박지성의 수트는 보면 볼수록 어색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박지성이 수트를 그리 많이 입을 일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축구선수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이었으니. 그에게는 맨유 유니폼이 곧 박지성의 아우라를 발산하는 룩 자체였을 것이다.


그런데 위 사진에 나온 박지성을, 기자들은 박지성이 맨유에서 플레이하던 아우라의 후광으로 덧입힌다. 전혀 멋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콜린 퍼스 못지 않다고 한다. 당시 나온 남성 잡지에서도 수트 입은 박지성을 등장시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멋진 수트를 강조했다. 물론 박지성이 입은 수트는 일류 브랜드다. 하지만 단언컨대 박지성의 수트 룩은 어색했다.(요즘 박지성의 수트 룩은 정말 많이 나아졌다)


이런 현상을 곰곰 생각해 봤다. 우리나라는 한 가지 분야에 유명하면(전문가이면) 두루 그 영향이 파급되는 것 같다.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사회비평 전문가로 행새할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니까. 변호사가 TV에 몇 번 나오면 수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나라니까. 그러니 유명인이 입은 유명 브랜드 수트는 당연히 멋있겠지. 아니, 그렇게 보이도록 포장해야 겠지. 그게 광고의 목적이니까.


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 내 시름을 더 깊게 한 건 스콧 슈만의 그 유명한 <사토리얼리스트> 스트릿 화보집을 보면서이다. 스콧 슈만은 스트릿 사진의 유명세로 미국에서 권위 있는 사진상을 수상하고, 여러 광고 매체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강의하는 유명 인물이 됐다. 내가 본 그의 첫 사진집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아주 중요한 사진들이 대거 들어가 있는 스트릿 사진의 보물창고였다.


단 2장의 사진때문에 나는 위의 문제를 좀 더 깊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취향은 아비투스인가?',  '멋지다는 경계는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아주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했다.

 

 

문제의 사진들이다.  <사토리얼리스트>(월북, 2014)를 펼쳐 넘기다 보면 400페이지와 358페이지에서 이 사진들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카드를 보고 있는 알라디너들은 위 두 장의 사진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모르겠다. 난 처음 볼 때, '이사람들의 사진이 왜 이 화보에 실려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 외에도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사진은 꽤 있었다. 멋있다고 보이지 않아서)

 

 

나는 저 사람들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저 룩을 보고 내리는 평가가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이게 대중의 평가다. --;;) 물론 옷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준다고 하지만, 이건 그와 몇 마디 나눠보고 난 후에야 알 수 있다. (난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야 룩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이 두 사진을 갖고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패션에 대해 잘 모르는 40~50대 이상의 장년층에게. 10이면 10 그냥 평범한 일반인의 룩으로 보았다. 이중 일부는 첫 번째 사진을 보고 공산당원 같다는 생각을 표했고, 두 번째 사진은 모두 왠 거지 사진이냐고 했다. 패션을 전공했던 한 여성분은 후자를 그런지룩을 구현한 것 같다고 했다.


사진을 처음 펼쳤을 때, 나 역시 이들 생각과 대동소이했다. 슈만의 글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로버트는 패션 편집자들 중에서 다음 시즌의 모습이 가장 기대되는 사람이다. 그의 스타일은 결코 고급스럽지 않으며 꼼꼼하게 신경 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진정으로 옷을 입고 있고(옷이 사람을 입은 것이 아니라) 옷 자체가 멋있다기보단 그 자신이 옷을 멋있게 만든다. 흔히 이렇게들 말한다. 여자들은 가장 최근에 산 옷을 좋아하고 남자는 제일 오래된 옷을 좋아한다고. 로버트가 바로 그런 남자가 아닐까. 이번 시즌 패션쇼에 올라가는 옷을 입기 보단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질감과 색을 조화시키는 데 관심이 있는 그런 남자이다." (p400)


첫 번 째 사진에 대한 슈만의 글이다. 사진 속 인물이 로버트다. 원래 옷을 잘 입고 옷에 대한 전문가적 인식이 있는 사람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질감과 색을 조화시켜 입은 룩이 바로 저 사진이다. 옷 자체가 멋있다기 보단 그 자신이 옷을 멋있게 만든다는 해석도 부가하면서 말이다. (정말 그런지 10번을 봐야 했고, 그냥 그렇다고 설득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첨 느낌은 어디로 간거지??)


한 마디로, 옷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전략적으로 입은 거라는 게 슈만의 설명이다. 두 번째 사진의 설명은 더 혼란스럽다. (사실 두 번 째 사진이 첫 번 째 사진 앞에 있었던 거다.)


"거리에서 사진을 찍을 때 나는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서 대상을 살피는 편이다. 그래야 눈에 포착된 사람을 찍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멀리서 걸어오던 이 신사를 발견한 순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남자가 점점 내 쪽으로 다가와 시야에 명확히 들어왔을 때 내 머릿속은 '저 사람이 거지일까 아니면 좀 특이한 사람일까?'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에겐 사람들이 흔히 호보 쉬크(hobo shic; 호보는 집 없는 부랑자라는 뜻으로, 호보 쉬크는 의도적으로 그런 사람들처럼 입는 스타일. 찢어진 스타킹이나 바지, 언뜻 보기에 마구 겹쳐입은 스타일 등이 그 예)라 부르는 요소가 상당수 있었다. 수염, 눌러쓴 모자, 그리고 기워 입은 카키 바지까지. 그가 바로 내 눈앞까지 왔을 때에야 비로소 그의 수염이 완벽하게 손질된 것이고, 카키 바지도 너무 멋들어지게 기워졌으며, 전체적으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빈틈없이 '허름'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알고 보니 그는 랄프 로렌의 통합 서비스국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이 사진을 찍고 1년 후 단지거 프로젝트 갤러리에서 열렸던 내 첫 개인전에 이 사진을 넣었는데, 이 전시를 본 한 신문 비평가는 '옷을 잘 입는 사람들과 함께 집 없는 거지 사진도 넣어 보기 좋았다'라고 평했다. 그 비평가에게 아마 그 '거지'가 당신보다 두 배는 더 벌 거라고 말할 자신은 없었다." (p358)


'멋진 룩'을 판단하는 아주 중요한 단서가 슈만의 설명 속에 들어있다. " 그 남자가 점점 내 쪽으로 다가와 시야에 명확히 들어왔을 때 내 머릿속은 '저 사람이 거지일까 아니면 좀 특이한 사람일까?'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는 부분이다. 패션 전문가인 슈만의 눈에도 룩만 보았을 때 그가 거지처럼 보였다는 고백이다.


바로 이어진 설명 "그가 바로 내 눈앞까지 왔을 때에야 비로소 그의 수염이 완벽하게 손질된 것이고, 카키 바지도 너무 멋들어지게 기워졌으며, 전체적으로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빈틈없이 '허름'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알고 보니 그는 랄프 로렌의 통합 서비스국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그가 의도적인 거지 차림을 했다는 거고, 결정적인 정보가 뒤따라 온다. 그가 랄프 로렌의 통합 서비스국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는 거.


그러니까 '쉬크함', '엘레강스' 등의 표현은 룩(기표)가 아닌 그 이면의 기의(시니피에)로부터 나옴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타자는 '주체의 전략'을 좀처럼 알 수 없다. 나는 네가 아니기에, 네 생각이 뭔지 거의 알 수 없다는 거다. 이게 '개인주의가' 태동된 근대의 기반이다. 개인주의가 깊어질수록(사실 패션은 이 개인주의의 극단화 중 하나다) 타자를 헤아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전문가인 슈만조차도 그의 직업을 알기 전까지 '거지가 아닐까'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가 비평가에게 말해주고 싶어했던 확신에찬 그 결정적 근거도 사진 속 인물의 직업이었다. 랄프 로렌 통합 서비스국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그 정도의 사람이니까 의도적인 호보시크 룩을 선보일 수 있었다는 거!


결국 슈만에 따르면, '패션 권력'이 그 룩을 멋지게 만드는 것이다. 이건 느낌이 아니라 해석이다. 우리는 겉만 보고 주체의 의도를 전혀 감지할 수 없기 때문에(물어 보지 않는 이상 나는 모를 거라고 확신한다), "옷을 잘 입는 사람들과 함께 집 없는 거지 사진도 넣어 보기 좋았다"라고 평론가처럼 말할 수밖에 없다. 이게 정상이다.


결론적으로 스트릿 룩에서도 '멋진 룩'과 그렇지 않은 룩의 경계는 권력의 귀속 여부다. 슈만의 눈과 해석이 '멋진 룩'을 만드는 거다. 대중의 생각과 느낌?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패션 권력의 눈과 해석 그리고 전략이 '멋진 룩'을 결정한다. 슬프게도 이걸 부인할 수 없을 거 같다.


젠장, 패션에 있어, 취향도 결국은 아비투스였구나...취향의 해체는 언제나 등장할런지..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곰곰생각하는발 2016-03-18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위의 모든 사진을 통틀어서 거지룩이 가장 멋있어보입니다.. 제 스타일이기도 하고요..

cyrus 2016-03-18 12:17   좋아요 0 | URL
거지룩에서 파생되어 나온 빈티지 패션 스타일이 벼룩입니다.

yamoo 2016-04-05 20:34   좋아요 0 | URL
아, 곰발 님 취향이실 거 같네요..^^;;

근데, 벼룩 스타일은...ㅋㅋㅋㅋㅋ

순오기 2016-03-18 0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지성 수트발을 콜린 퍼스와 견주다니...수트에 대한 모독으로 생각됩니다요.ㅠㅠ

yamoo 2016-04-05 20:34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순오기 님 생각에 동감 합니다요~!ㅎ

stella.K 2016-03-18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평점이 놓더라구요. 역시 야무님도 높은 점수를 주셨네요.
옷에도 그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이 베어있긴 하죠?
대충 입은 것 같은데 뭔가가 묻어나는 그런 연출이 정말 좋은 건데 말입니다.
저는 옷 가지고 이렇게는 못 쓸 것 같습니다. 대단하셔요!

그런데 저 왼쪽의 박지성 사진은 어깨 같습니다.ㅋㅋ

yamoo 2016-04-05 20:36   좋아요 0 | URL
슈만의 이 책은 사진 집으로서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는 거 같습니다. 슈만의 사진 가운데 좋은 것만 엄선해서 첫 책으로 묶인 것인데...슈만의 사진들 중 최고중의 최고만 모여있는 것 같습니다..ㅎ

이 책 살 가치는 충분합니다...스텔라 님도 한 권 비치해 두심이..^^;;
 
셔츠 매뉴얼 - 남자의 패션: 기본부터 완성까지
태인영 지음, 안웅철 사진 / 안나푸르나 / 201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셔츠 매뉴얼>(안나푸르나, 2015). 작년 여름에 반디 서점에서 들었다 놨다 했던 책이다. 가격에 비해 두깨가 하도 얇아(189쪽) 도서관에서 빌려보기로 했다가 잊힌 책이다. 근데 저번주 도서관에서 눈에 띄어 빌려 보았다.

 

 아, 근데 이거 구매해서 읽었으면 심하게 자책할 뻔 했다. 책이 부실해도 이만저만 부실한 게 아니라는 거. 15,800원이면 다른 책을 사서 보는 게 10배 낫다. 이 책은 매우 부실하다.

 

도대체 저자가 왜 이런 책을 냈는지 심히 의구심이 들 정도다. 저자는 외국어 고교 출신(불어 전공)에 학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대학원에서는 정외과를 전공하고나서 94년부터 방송 진행과 방송 출연을 해 오고 있단다. 국제 행사 전문 MC, 국제협상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세계를 누비고 있다고.

 

그냥 세계를 누비면서 협상 전문가로서의 이력이나 넓힐 일이지, 이런 책은 왜 냈나 싶다. 남성 패션, 그것도 '기본에서 완성'까지 안내해 준다는 사람이 책을 쓰면서 공부한자 하지 않고 자기 느낌대로만 내용을 채우면 뭐 하자는 건지. 남성 패션이 그렇게도 만만한 모양이다.

 

저자는 패션관련 업계에 있어본 적도 없고, 패션 관련 전공을 하지도 않았다. 미술 전공에 정치외교학과 대학원 나와 국제협상 이력을 가진 것이 전부다. 그렇다면 남성 패션에 관해서 전문가는 아닌 거다. 이력에서 한 눈에 드러난다.(책 날개에 이력이 나와 있음)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전문가의 입장에서 남성 패션을 코칭한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문외한이 이런 책을 쓰려면 적어도 공부를 해야한다. 그래야 기본은 간다. 더군다나 여자는 남성복을 입어 본 적도 없고 입어 볼 계획도 없지 않나.

 

어디서 보고 들은 건 많아가지고 이렇게 입어라 저렇게 입어라 하는데, 내가 볼 땐 아마추어의 어설픈 지적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남자에게 자기가 입히고 싶은 옷을 입히려고 습작한 스타일 연습장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저자는 남성복의 기본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비즈니스 웨어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조언하는 코디는 모래사장에다 글씨를 예쁘게 쓰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이 책 어디에도 비즈니스 웨어의 본질이 무엇인지 나타나 있지 않다.

 

왜냐, 타이틀이 <셔츠 매뉴얼>이기 때문이다. 셔츠는 남성 비즈니스 웨어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든 사람은 누구나 기대한다. 이 책이 캐주얼 웨어에 대한 안내가 아니라 비즈니스 웨어에 대한 안내서가 되리란 것을.

 

더군다나, 타이틀이 <셔츠 매뉴얼>이다. 그러면 적어도 책의 2/3는 셔츠 관련 내용으로 채우고 수트 코디와 엑세서리는 부차적으로 언급해야 책의 균형이 맞다. 헌데, 이 책은 셔츠에 관련된 내용이 50페이지도 안 된다. 189페이지 중에서 말이다.

 

나머지는 타이, 팬츠, 수트, 코트, 캐주얼, 악세사리에 관련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그것도 그냥 느낌의 나열이다.) 그냥 남성 패션에 대한 토탈 안내서 인듯한데, 왜 타이틀을 저따위로 붙였는지 모르겠다.

 

셔츠에 관한 내용도 별로 전문적이지 않다. 셔츠 카라만 해도 10여 가지가 넘고, 커프스 종류도 7가지가 넘는데, 이 책에서는 달랑 카라 3개와 커프스 2개만 언급했다.

 

셔츠 각 부분의 명칭도 없고, 하이엔드 셔츠와 기성 셔츠의 차이점도 없다. 목 둘레와 팔길이가 맞지 않아 고민이 많은 남자들에게 맞춤 셔츠와 기성 셔츠의 차이점과 특장점을 비교해 주는 것은 기본이다. 이런 정보, 물론 없다. 그냥 여성 잡지책에 나오는 수준에다 자기 기호를 더하여 내용을 구성한 게 전부다.

 

남성 클래식 스타일에서 수트 라펠의 넓이와 셔츠 카라의 조화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트를 입은 인상이 여기서 결정적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얼굴이 큰 사람과 마른 사람에 따라 조합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중요한 정보가 빠져있다.

 

그런데, 이런 건 애교로 봐주고 넘어갈 수 있다. 중요한 건 앞에서도 지적했다시피 저자가 비즈니스 웨어의 본질이 뭔지 모른다는 거다.  이는 코디로 제시한 스타일 사진에서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보면 화사하고 밝고 예쁘다. 데이트 룩이면 금상 첨화인 스타일이다. 매우 트렌디하고 패셔너블하다.

 

다시 강조하건대 비즈니스 웨어는 패셔너블한 옷이 아니다. 유행과는 철저히 유리되어 있기에 펑크 룩과 같은 안티-패션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그 이유는 수트가 전투복으로부터 유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질 자체가 보수적이고 유행과는 거리가 멀다. (남자들의 군복 이미지를 떠올리면 쉽다!)

 

그래서 비즈니스 웨어는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색상을 추천해야 한다. 절대로 핑크색 셔츠나 노란색 치노 팬츠를 권하면 안 된다. 비즈니스 전장에 나가는 사람에게 데이트 룩을 추천한다는 건 TPO에 맞지 않는 스타일이다.

 

뭐, 요즘은 비즈니스 캐주얼이 대세라 이런 차림새가 대세인줄 아는 모양인데, 이도 기본을 무시하면 안 된다. 전통적인 클래식 복장의 기본(트렌드에 민감하지 않다는 것)을 준수하면서 약간의 포인트를 주는 선에서 그쳐야지,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 남성복의 대세인양 호도하지 말자.

 

이 책은 여기에 그쳤으면 저자의 개성이 너무 강해서 그렇거니 하고 넘어갔을 거다. 하지만 서술 내용의 부실함은 책의 함량 미달로 이어져 저자를 불신하게 하는 결정적 요소였다. 책의 내용을 잠깐만 소개해 보겠다. 영국산 원단을 설명한 내용이다.

 

 

"영국산 원단은 힘있고 뻣뻣하지만 체형을 보완해 주고 내구성과 원형 보존 등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양복을 맞춘다면 영국산 원단에 도전해 봅시다. 처음에는 불편하다고 느끼다가도 몸을 바로 잡는 느낌을 받으면 그 마력에서 절대 헤어나지 못할 겁니다"(p105)

 

여자 스타일리스트들이 남성 스타일을 안내하는 책에서도 종종 보는 내용이다. 남자가 전투복으로써 양복을 맞출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살피는 것이 원단이다. 영국산 원단이면 원단 브랜드가 나와야 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이런 걸 취급하지 않는다. 그냥 '영국산 원단'이면 끝이다.

 

영국산 원단이 힘있고 뻣뻣한 것은 차고 습한 영국의 기후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은 따뜻하고 내구성이 강한 원단을 생산한다. 대표적으로 허더스필드 클로쓰와 찰스 클레이튼 그리고 도멜 회사에서 생산되는 무게 250~350그램 정도의 원단이 내구성과 원형 보존 등 장점을 두루 갖춘 좋은 원단이다.

 

하지만 단점은 이 원단이 겨울용으로만 적합하다는 거다. 가을과 겨울을 제외한 나머지 계절에는 입을 수 없다. 이럴 때에는 이테리 원단인 에르메네 질도 제냐나 우리나라 제일모직의 슐레인 급 원단으로 양복을 맞춰야 한다.

 

양복에서 가장 중요한 원단에 대한 정보가 쏙 빠진 내용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 더군나다 그것이 맞춤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공허한 내용은 계속된다.

 

책에 설명되어 있는 3가지 수트 스타일에 대한 내용이다. 브리티쉬 스타일과 프렌치 스타일을 설명한 부분을 보자.

 

브리티쉬 스타일

"전형적인 군복에서 모티프를 따온 수트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몸을 반듯하게 세워주는 느낌의 딱딱함과 불편해 보이리만큼 꽂꽂한 등선을 자랑합니다. 그냥 딱딱한 갑옷이에요. 불편해 보이지만 단단한 가슴과 바른 자세로 자신감을 부각시키는 스타일이죠. 수탉이 울기 전에 가슴을 부풀리는 상상해 보세요. 깃이 넓고 재킷 좌우를 깊게 겹치고 두 줄로 버튼을 나란히 단 더블 브레스트 수트도 떠오릅니다."

 

프렌치 스타일

긴 설명 안 하겠습니다. 지리적으로 영국과 이탈리아 중간쯤에 있는 만큼, 스타일도 중간쯤이라고 해 두죠. (p107)

 

수트 스타일을 설명하면서 어깨와 허리 그리고 포켓과 벤트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저자가 남자의 수트에 대해 문외함임을 나타낸다. 수탉 운운 하는 지점에서는 헛웃음이 절로 난다. 많은 설명을 한답시고 했지만 브리티쉬 스타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려주고 있지 않다.

 

브리티쉬 스타일의 특징을 아주 짧게 설명하자면 4가지만 언급하면 된다. '군복을 연상시키는 각진 어깨', 타이트하게 피트되어 긴장감이 느껴지는 허리', '체인지 포켓과 슬랫 포켓', '사이드 벤트' 정도면 끝.

 

프렌치 스타일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그냥 빵 터졌다. 모르면 공부라도 하고 책을 쓰던가. 사진 이미지를 서술한 부분을 잘 보면 알겠지만, 절반 이상이 주관적인 느낌의 나열이다. 참으로 함량 미달이다.

 

할 말이 더 많지만, 이쯤에서 줄이는 게 좋을 듯싶다. 너무 길어지고 이 정도만 언급해도 이 책에 대한 촌평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스타일에 고민이 많은 비즈니스맨들이 볼까 우려하여 좀 장황하게 썼다. 뭐, 자유업에 종사하는 분들은 봐도 무방하겠다.

 

하지만 이 책을 보느니 차라리 <맨즈웨어 도그>(RHK, 2015)를 추천드린다. 캐주얼에서 전투복까지 이미지만으로도 어떻게 입을 지 충분한 가이드가 된다.

 

<셔츠 매뉴얼>은 지금까지 내가 본 남성 스타일 안내서 중에서 최악으로 꼽는 몇 권의 책 속에 속한다. 절대 사서 보시지 마시라! 별 하나라도 준 건 안웅철 사진 작가의 멋진 사진 이미지 때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프롤로그


 

신경숙 표절 사건으로 순식간에 일명 ‘듣보잡’ 작가가 되어버렸던 미시마 유키오. 그래도 이 사건으로 인해 일문학의 매우 중요한 한 작가가 대중의 관심을 받는 데는 성공한 듯하다. 책과 친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도 미시마 유키오라는 작가를 알게 됐으니 말이다.


미시마 유키오는 매우 일본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일찍 생을 마감했지만, 그는 소수의 작품만으로도 일문학(뿐만 아니라 세계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매우 중요한 작가로 높게 평가받고 있다. 그 중에서 <금각사>는 단연 으뜸이지 않을까?


사실 내가 <금각사>를 읽었던 건 2008년 남대문 방화사건 직후였다. 토론 주제도서이기도 했지만, 시사적 이슈에 부합하는 타이밍이 절묘했다. 정말 감명 깊게 읽었고, 이후 지인들에게 최고의 소설이라고 떠벌이고 다녔다. (그래서 <금각사>를 읽은 분들이 꽤 된다!)


그리고 저번 달 독서 모임 주제 도서로 다시 올라와 3번 읽게 되었다. 이번에 보니, 이전에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남천참묘의 공안’이 <금각사>의 주제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메타포임을 다시금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전에도 이 부분을 <금각사> 이해를 위한 하나의 논제로 생각하고 있긴 했었지만, 그리 깊게 생각하고 정리하지 못했다. 도처에 넘치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더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가시와키와 미조구치가 보여주는 세계관의 대립도 한몫했다.


그런데 3번째 읽으면서, 나는 왜 작가가 남천참묘의 공안을 전체 플롯 구조에 적절하게 숨겨놨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공안의 내용은 미시마 유키오가 <금각사>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미(美)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적 답변이었다.


다음에 정리한 내용은 내 마지막 추론에 대한 근거라 할 수 있겠다.



1


이 소설에서 남천참묘의 공안은 전반부, 중반부, 후반부에 각각 3번에 걸쳐 나온다. 그런데 이는, 주인공이 금각사를 방화할 수밖에 없는 심경의 변화를 미학적 입장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우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금각사와 각 인물들 간에 얽힌 거대한 복합적 구조물로써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의 미학적 입장이 무엇인지 이 부분을 테마로 작품을 음미하는 것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작품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단어를 대라면 바로 미(아름다움)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남천참묘의 공안은 소설 속에서 매우 중요한 테마라 할 수 있겠다.



2


1945년 8월 15일 패전일. 천황의 안전을 기원하고 전몰자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긴 독경이 끝난 후 미조구치를 비롯한 절의 승려들은 노사의 방으로 불려가 강화를 듣는다.(p70) 노사가 선택한 공안(公案)은 무문관 제14칙의 남천참묘였다. 남천참묘란 벽암록에도 제63칙 ‘남천참묘아’, 제64칙 ‘조주두재초혜’의 둘로 나와 있다. 예로부터 난해하기로 소문난 공안이다.


<남천참묘의 공안>

절간 승려들이 모두 나와서 풀베기를 하고 있을 때, 이 한적한 산 속 절간에 한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나타났다. 신기한 느낌에 모두가 달려들어 이것을 사로잡았으나 그만 동서 양당의 다툼이 벌어졌다. 양당은 서로가 이 새끼 고양이를 자기네가 키우겠다고 다툰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있던 남천 스님은 당장에 새끼 고양이의 목덜미를 잡고 풀 베는 낫을 들이대며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들이 올바른 해결책을 구하면 살려 줄 것이고, 구하지 못하면 즉각 베어 버리겠다.” 중들은 대답이 없었다. 남천 스님은 새끼 고양이를 베어 버렸다. 날이 저물어 수제자인 조주가 돌아왔다. 남천 스님은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고는 조주의 의견을 물었다. 조주는 곧바로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서 머리 위에 올린 채 나가 버렸다. 남천 스님은 탄식하며 말했다 “아아 오늘 네가 있어 주었더라면 고양이 새끼도 목숨을 건졌을 텐데.”




그 제1. 노사의 해석 (p71)

남천 스님이 고양이를 벤 것은 자아의 미망을 끊어 망념과 망상의 근원을 제거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비정한 실천으로 고양이의 목을 자르고, 일체의 모순과 대립 그리고 자타의 확집을 끊은 것이다. 이것을 살인도라 일컫는다면, 조주의 그것은 활인검이다. 흙투성이가 되어 사람들에게 천대받는 신발을 무한한 관용에 의하여 올려놓음으로 해서 보살도를 실천한 것이다. (노사는 이렇게 설명하고는 일본의 패전에 대해서는 조금도 언급이 없이 강화를 끝마쳤다. 어째서 패전한 이날에 특별히 이 공안을 선택한 것인지 전혀 몰랐다.)



그 제2. 가시와키의 해석 (pp152-153)

(가시와키가 미조구치에게 퉁소를 준 답례로 금각사의 꽃을 꺾어다 줄 것을 원하자, 미조구치는 꽃을 꺾어 가시와키의 하숙집을 찾아간다. 대화를 하는 중에 미조구치는 이 남천참묘의 공안에 대한 가시와키의 해석을 유도한다.)

공안은 말이야, 그건 사람의 일생에 갖가지 형태로 모양을 바꾸어 몇 번이고 나타나는 거지. 그건 기분 나쁜 공안이야. 인생의 전환점에서 마주칠 때마다 똑같은 공안이 모습도 의미도 바뀌어 있거든. 남천 스님이 베어버린 그 고양이가 예사롭지 않지. 그 고양이는 아름다웠단 말야, 알아? 이를 데 없이 아름다웠지. 눈은 금빛에 털에는 윤기가 흘렀고, 그 작고 부드러운 몸에 이 세상의 모든 향락과 미가 용수철처럼 구부려진 채 간직되어 있었지. 고양이가 미의 결정체였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해석자들이 간과하고 있지. 바로 나를 제외하고 말이야. 그런데 그 고양이는 느닷없이 숲 속에서 뛰쳐나와 마치 고의적인 듯이 상냥하고 교활한 눈빛을 반짝이다가 붙잡혔지. 왜냐하면 미는 아무에게나 몸을 맡기지만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니까. 미라는 것은 충치와도 같은 거야. 그건 혀에 닿아 신경 쓰이고 아프게 하여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지. 더 이상 아픔을 견딜 수 없게 되면 치과의사에게 뽑아 달라고 하지. 피투성이의 자그마한 갈색의 더러운 이빨을 자신의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이건가? 고작 이런 거였나? 나에게 통증을 주고 나를 끊임없이 그 존재 때문에 고민하게 만들며, 또한 나의 내부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던 것이 지금은 죽어버린 물질에 불과하군. 하지만 그것과 이것이 정말로 같은 것일까? 만약 이것이 원래 나의 외부 존재였다면 어째서 무슨 인연으로 나의 내부와 연결되어 내 통증의 근원이 될 수 있었을까? 이놈이 존재하는 근거는 뭘까? 그 근거는 나의 내부에 있었을까? 하여튼, 나에게서 뽑혀 나와 내 손바닥 위에 놓인 이놈은 이건 분명 별개의 것이지. 결코 그것이 아니야.’ 알겠나? 미란 그런 거야. 그러니까 고양이를 벤 것은 마치 아픈 충치를 빼내서 미를 척결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로 그것이 최후의 해결책이었는지는 알 수 없어. 미의 뿌리는 근절되지 않았고 설령 고양이는 죽었어도 고양이의 아름다움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니까 이토록 해결이 안이했던 것을 풍자해서, 조주는 그 머리에 신발을 올려놓았지. 그는 말하자면, 충치의 아픔을 참는 이외에는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야.

<중략> 나는 다시 되물었다.

미조구치: 그러면 너는 어느 쪽이냐? 남천 스님쪽이냐 조주냐?

가시와키: 글쎄, 어느 쪽일까. 지금으로서는 내가 남천이고 네가 조주지만 언젠가는 네가 남천이 되고 내가 조주가 될지도 몰라. 이 공안은 그야말로 ‘고양이 눈처럼’ 변하니까. (결국 미조구치는 남천이 되어 금각사를 불태우게 된다.)



그 제3. 가시와키의 심화된 해석;

        인식 vs 행동 (조주의 행위에 대한 해석) (pp226-227)

(녹원사로 빌린 돈을 받으러 온 가시와키는 묘한 웃음을 흘리는 미조구치의 이상한 환대에 불편하게 반응하면서 미조구치의 방으로 안내된다. 거기서 가시와키는 미조구치에게 핵심적인 몇 가지 말을 하는 중 다시 남천참묘의 해석에 대한 부분을 들먹이면서 미조구치가 앞으로 행하게 될 방화의 예언적 기반을 마련해 주고 있다. 가시와키가 세계를 변모시키는 것은 인식이라는 말에 대해서 미조구치는 강하게 반발하며, 세계를 변모시키는 것은 행위라고 말한다. 그 말에 대한 반응이 바로 남천참묘의 변화된 해석이다. pp226-227)

“언젠가 말했던 남천참묘의 그 고양이 말이야. 비길데 없이 아름다운 그 고양이 말이야. 양쪽 중들이 다툰 것은 각자의 인식 속에서 고양이를 보호하여, 기르고, 편히 쉬게끔 하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하지만 남천 스님은 행위자니까, 단숨에 고양이를 베어 버렸지. 나중에 온 조주는 자신의 신발을 머리 위에 올렸지. 조주가 하려던 말은 이거야. 역시 그는 미가 인식의 보호를 받으며 지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개개의 인식, 각각의 인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인식이란 인간의 바다이기도 하고, 인간의 벌판이기도 하며 인간 일반의 존재양식이지. 그는 그것을 말하려 했다고 생각해. 너는 이제 와서 남천이 되겠다는 거니?  미적인 것, 네가 좋아하는 미적인 것, 그건 인간의 정신 속에서 인식에 위탁된 나머지 부분, 잉여 부분의 환영이야. 네가 말하는 ‘삶을 견디는 다른 방법의 환영’이야. 인식에 있어서 미는 결코 위안이 아니라구. 여자이고 아내이기도 하겠지만 위안은 아니야. 하지만 결코 위안이 아니면서 미적인 것과 인식과의 결혼에서는 무언가가 생겨나지. 덧없는 물거품과도 같은 아무 쓸모도 없는 거지만 무언가가 생겨나지. 세상에서 예술이라고 부르는 게 그거야.”

이 말에 주인공 미조구치는 드디어 말한다. “미는······미적인 것은 이미 나에게는 원수야.” (p227)



에필로그


결국, 남천참묘 공안의 해석으로부터 주인공 미조구치는 인식가에서 행동가로 변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조구치는 가시와키의 말대로 인식자, 줄곧 조주의 역할자였다. 하지만 여자와의 관계에까지 간섭하고 있는 ‘금각의 존재(=미의 화신)’로 인해 미조구치는 지치고 점점 변해간다. 급기야 “미는······미적인 것은 이미 나에게는 원수야.” (p227)라고까지 말한다. 이로부터 미조구치는 행동가인 남천의 역할 쪽으로 급선회한다. 남천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고양이를 죽였듯, 미조구치는 자신에게 있어 절대 미인 금각을 방화하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안다. 미조구치가 금각을 불태웠을지언정 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가시와키가 공안의 해석(조주의 행위)으로부터 나온 ‘미는 충치같은 거야’라는 말이 작가 미시마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해주고 싶어 했던 ‘미의 본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덧]

토론회에서 오고간 얘기들을 듣고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아무도 이 공안을 주목하지 않아 좀 아쉬웠다.

그리고 알라딘이고 예스고 무슨 리뷰를 보던지 간에 이 작품에서 이 공안을 언급한 리뷰를 본 적이 없다. 사실 봤다면 애써 쓰는 수고를 덜었을 것이다. 물론 <금각사>를 보는 시각을 여럿이 있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부분 언급이 없어 리뷰로 남겨 놓는다.


댓글(6) 먼댓글(1)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베버에 따르면...
    from Value Investing 2015-07-15 00:07 
    yamoo 님께서 이번에 소설 『금각사』를 무려(?) 세 번째로 읽고 나서 쓰신 '남천참묘의 공안'이라는 글 내용이 한동안 제 머리를 떠나지 않네요. 비록 그 소설을 전혀 읽어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지요. yamoo 님께서 올려주신 흥미로운 글들을 읽으니 마치 그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내용이 금방이라도 제 눈 앞에서 그려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랍니다. 그런데 저는 yamoo 님의 글을 읽으면서 생뚱맞게도 (제가 최근에 읽었던) 막스 베버의 글 내용 가운
 
 
oren 2015-07-14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도 yamoo님의 페이퍼를 통해 이 소설을 극찬하시는 걸 본 기억이 나네요. 이번에 다시금 흥미로운 시각으로 이 소설을 들여다본 글을 읽으니 더욱 관심이 생기고요. `남천참묘의 공안`이 벽암록에 나온다니 그 책을 다시 들여다봐야 겠습니다. 그 부분만요. 그 책은 너무 너무 어려워 도저히 통독이 불가능한 `벽` 같은 느낌이 들더라구요. 도저히 오를 수 없을 듯한 거벽 말이지요..

yamoo 2015-07-14 22:44   좋아요 0 | URL
<금각사>는 상찬받아 마땅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 작품이 최고의 소설 가운데 하나라는 걸 의심의 여지없이 수긍할 수 있어요. 네, 정말 그렇습니다. 꼭 읽어 보세요. 저도 지인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닥달을 받은 후에야 읽었는데, 이 소설을 읽으니 저도 그렇게 되더라구요..ㅎㅎ

벽암록이 그렇게 어엽다니, 전 아직 구경도 못했봤네요^^;;

붉은돼지 2015-07-14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엄청난 깊은 뜻이 있었군요.
저는 금각사 옛날에 읽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기억이 안나는군요. ㅜㅜ

yamoo 2015-07-14 22:45   좋아요 0 | URL
붉은 돼지님, 기억이 가물거리시면 일독해 주시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전3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좋았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5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그냥 불타는 금각사만 떠오르지, 전혀 생각 않고 있었는데 이거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yamoo 2015-07-16 19:30   좋아요 0 | URL
전혀 생각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읽은지 오래 됐다면 당연하겠지요. 기회가 돼서 다시 읽으시면 남천참묘의 공안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이 공안을 보는 시각은 다양하니, 곰발님만의 시각으로 다시 볼 수 있겠지요~^^
 
내가 공부하는 이유 - 일본 메이지대 괴짜 교수의 인생을 바꾸는 평생 공부법
사이토 다카시 지음, 오근영 옮김 / 걷는나무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여왕이라고 회자되는 사람 중 하나. 전 여자 탁구 대표팀 감독인 현정화. 그녀는 한국 탁구계에서 유남규, 유승민과 더불어 전설로 통한다. 왜냐, 바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이기에.

 

 

다른 종목이면 그러려니한다. 하지만 그 종목이 탁구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스포츠 종목에는 절대 아성을 쌓은 국가들이 있다. 양궁하면, 대한민국인것처럼, 탁구하면 중국이다. 한국 양국은 세계양국계에서 독보적인 1위를 수성하고 있다. 양궁이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한번도 세계선수권과 올림픽 우승을 놓친적인 없다. 적어도 여자 양궁에서는.

 

 

마찬가지로 탁구는 세계 1위가 중국이다. 70~80년대 유럽과 일본세가 대항마로 반짝 했지만 80년대 중반부터 중국 독주가 시작되었다. 중국을 이기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세계선수권이나 올림픽에서 남녀 종목 대부분의 금메달을 중국 선수들이 독차지 해 왔다. 그 와중에 간간히 중국 독주를 막은 게 그나마 우리나라였다. 특히 중국 여자 탁구는 한국 여자 양궁에 비견될 만큼 극강으로 적수가 없었다.

 

 

이런 세계 최강 중국 탁구계에 덩야핑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르지만 30대 중반 이후 사람들 중 덩야핑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 이유는 바로 현정화 때문이다. 현정화가 바로 이 덩야핑이라는 선수를 이기고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한 차례씩 땄기에.

 

 

당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과 같은 큰 대회에서 덩야핑을 이긴 유일한 선수가 현정화였다. 덩야핑은 세계탁구계에서 별명이 마녀로 통했다. 거의 무적이었다. 나가는 대회마다 모든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한 선수가 바로 덩야핑이다. 그녀가 세계대회에서 받은 금메달 수만 18개이고, 국내외 대회에서 우승한 횟수는 무려 132회나 된다.

 

이런 선수 앞에서 현정화도 작아질 수밖에 없었다. 수 많은 작고 큰 대회에서 현정화는 덩야핑을 만났다. 하지만 맨날 졌다. 1세트라도 따면 다행이었다. 역대 전적이 아마도 내가 기억하기론 20여 패 정도 됐다. 딱 2번 이겼는데, 그게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결승 이었다.

 

 

개인적으로 탁구를 매우  즐겼기 때문에 당시 대부분의 큰 대회 영상은 녹화를 떠서 보곤 했다. 내가 생각한 덩야핑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선수였다. 150 센티도 안 되는 키에 상대를 압도하는 눈매와 높은 스카이서브는 당시 모든 선수를 두려움에 떨게했던 덩야핑만의 전매특허였다. 빠르기는 얼마나 빠른지 도저히 칠수 없는 코스로 공을 보내도 그녀는 단숨에 따라잡아 이겼다고 여긴 상대선수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곤 했다.

 

 

세계탁구를 평정하다시피 한 그 덩야핑도 부침을 겪었다. 키가 너무 작아서 중국에서도 세계적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해 중국 대표로 선발하기를 꺼렸다고. 하지만 무서운 스피드를 발판으로 자기만의 색깔로 무장하여 결국 중국 대표 선발전에서 1등으로 통과했다. 그렇게 하기까지 그녀가 흘러야했던 좌절과 노력은 아마도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것이다.

 

그리고 스포츠는 항상 결과로 보여지기에 그녀가 어떻게 노력했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고, 오직 세계 최고라는 신화만 회자될 뿐이다. 모든 스포츠 스타가 마찬가지겠지만 그녀도 시간과 함께 추억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그녀의 이름은 간간히 탁구 중계에서나 들을 수 있을 뿐, 그녀가 현재 뭘 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가 현재 뭘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그런데, 그녀의 근황이 소개된 책이 있어 내 관심을 끌었다. 스포츠와 관련된 책이 아닌 공부에 관한 책이라서 매우 신선했다. 일본의 괴짜 교수로 널리 알려진 사이토 다카시의 <내가 공부하는 이유>(걷는 나무, 2014)라는 신간에서 였다. 한 달 사이에 6쇄나 찍었다. 읽어 보니 좋은 내용이 참 많았다. 자게서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인데도 불구하고 저자의 박식함과 독특한 이력이 개성과 맞물려 알찬 내용들이 줄줄 쏟아진다. 무엇보다 권위적이고 고리타분하지 않아 좋다.

 

그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덩야핑의 근황은 한마디로 압권이었다.

 

나는 신문에서 그녀의 소식을 다시 접했다. 그녀가 영국의 켐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는 소식이었다. 어린 시절 탁구 연습만하느라 제대로 공부할 시간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켐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딸 수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운동을 그만둔 뒤 중국 칭화대에 특기자로 입학했다고 한다. 그 당시 알파벳도 제대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영어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지독한 노력 끝에 졸업을 하고 영국으로 유학까지 떠난 것이다. 그녀는 켐브리지대학 800년 역사상 세계 정상급 운동선수 출신으로는 최초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인물이 됐다. (p216)

 

켐브리지 800년 역사상 엘리트 운동선수 출신으로 최초의 경제학 박사.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공부좀 한다는 사람들도 따기 어렵다는 영국 켐브리지 경제학 박사 학위를 운동만 한사람이 땄다?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나따위가 가늠할 수조차 없다.

 

중국에서도 나처럼 많이 놀란 사람이 많았나 보다. 그래서 한 기자가 지커닷컴[인민일보 계열 검색엔진] 총경리(CEO)로 변신한 그녀에게 "탁구와 박사 학위, 그리고 비즈니스 가운데 무엇이 가장 쉽고, 무엇이 가장 어려운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고 한다.

 

"세상에서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안 되는 일도 없다." (p217)

 

 

역시 탁구 마녀다운 답변이다. 안 되는 일도 없지만 불가능한 것 같은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노력, 그 지속적인 노력이 그녀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가 평생 공부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자세인듯하다. 그래서 마지막 장에 이 에피소드로 대미를 장식한 것 같다.

 

 

사실 이 책에는 평생 공부로서 득이 되는 말들과 사례들이 꽤 많다. 책을 읽으면서 줄도 많이 쳤다. 특히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는 멈춰서 음미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만의 개성, 바꿔 말하면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나만의 강점을 갖는다는 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강력한 무기를 하나 얻는 것과 같다. 누구도 회사에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살다가는 오래 버틸 수도 없다. 하지만 평생 공부를 하다 보면 오랜 시간 공부가 내 안에 쌓여서 누군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지식 세계, 나만의 아우라가 생긴다. 그게 바로 긴 인생을 살아야 하는 우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가 아닐까. (p107)

 

하지만 덩야핑의 사례만큼 강렬한 에피소드는 없는 듯하다. 6페이지에 걸쳐 있는 덩야핑 에피소드를 읽는 것만으로도 책값은 하는 책이다.

 

 

 

[덧글]

저자의 관심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이 자극받을 수 있는 에피소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분명히 자게서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이지만 결코 식상하지 않고 가볍지 않다. 더군다나 평생 인문학자로 살아온 교수가 인생의 선배로서 들려주는 자기체험적인 글이기에 솔직함과 학자로서의 아우라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몇 자 적어봤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yamoo 2014-10-21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어제 교보가서 이 책이 들어가는 입구에 싸여 있어 보니, 벌써 12쇄...ㅎㄷㄷ
예상을 깨고 선전하는 중..ㅎ

카알벨루치 2018-07-11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덩야핑 대단하네요! 우아~공부하는중이라 다카시의 이 책은 내가 읽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도서관에 어제 반납했었는데. 배울게 없는 책은 없네요!

young026 2019-06-03 0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정화는 덩야핑에게는 이긴 적이 없습니다. 올림픽 우승(단식은 아니고 복식)은 덩야핑이 국제무대 데뷔하기 전이었고 93년 세계선수권 우승은 덩야핑이 초반 탈락했을 때였죠. 결승 상대는 88년 올림픽 단식우승자였던 천징이었습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6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근 2년여 간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 1년에 많아야 2-3권 쯤 읽었나 보다. 읽고 나도 뭘 읽었는지조차 모를 정도이다. 물론 재미는커녕 감동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소설 읽기를 중단한 듯하다. 아니, 그냥 읽기 싫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겠다. 하지만 와중에 명작이라는 소설들은 계속 사재기를 하고 있었다.

 

2013년 1월 10일에도 역시나 습관 차 알라딘 중고서점 신림점에 들렀다. 콜렉션하는 책이 들어왔나 하고 둘러본 것이다. 한 주에 한 두 번 정도는 내가 원하는 아이템을 건지곤 한다. 이날도 그랬다. 위에서 밝혔다시피 소설은 좀처럼 읽지 않지만 수집은 꾸준히 하는 편이라 유럽 소설 코너에 자주 기웃거린다. 그러다가 열린책들의 미스터노 세계문학 시리즈 두 작품을 발견한 것이다. 체홉의 단편선과 까라마조프의형제들 2권(1권은 그 다음날 구매).

 

10일 날 알라딘에 들러 책을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집에서 나올 때 책을 챙겨 오는 걸 깜빡했기 때문. 버스에서 읽을 책을 꺼낼 순간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크로스백을 갖고 나오면서 백팩에 있던 문고본을 옮겨 넣는 다는 걸 잊었던 모양이다.

 

지하철을 탔을 때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알라딘에서 구매한 소설을 읽는 것 외에는 갖고 있는 책이 없으니. 뭐, 소설을 읽지 않고 멀뚱하게 가는 것 보다야 10배 쯤 낫다. 휴대폰 갖고 노는 것 보다는 2배 쯤 유익하고. 분량 상 비교해 보니, 딱 결정이 나 있었다. 체홉 단편선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3)을 보기로 했다. 단편집이라 짧은 호흡의 작품들 위주로.

 

이 책은 내가 읽는 첫 체홉 작품이다. 그가 어떤 소설들을 썼고 또 어떤 스타일의 작품을 쓰는 작가인지 전혀 몰랐다. 아는 것이라곤 체홉이라는 작가의 유명세 정도. 그래서 아주 오래 전 고전읽기 모임의 주제 도서였다는 사실 뿐. 당시 소설은 읽기 싫었기에 책은 사지 않고 모임도 패스했다. 그러하기에 책은 진작에 구입했어야 했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 체홉을 만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다. 그리고 새 책이 3200원 이라니, 얼마나 착한 가격인가!

 

어쨌든 신림역을 출발함과 동시에 펴든 첫 번째 단편이 「어느 여인의 이야기」였다. 전철에 그날따라 떠드는 인간들이 많아 읽는데 집중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러시아 사람 이름들은 왜 그렇게 길고 기억하기 어려운지. 그냥 데면데면 글자들을 읽고 줄거리를 대충 파악해 가며 읽고 있었다. 극히 짧은 분량(47면~51면)밖에 안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중간쯤에 이르니 처음 상황을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거다. 다시 집중해서 처음부터 읽어야 했다.

 

아, 그런데 당산역 부근을 지날 때 쯤, 줄거리를 완전히 파악하며 단편을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뭐시냐.....꽤 오래 전에 키냐르의 <혀 끝에서 멤도는 이름>을 읽은 직후의 느낌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직관적으로 느껴지지만 말할 수 없는 뭔가로 인해 한 동안 멍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3개의 역이 그냥 지나가 있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내가 어디 있고, 뭐 하러 가는지 까맣게 잊고, 오로지 ‘삶’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그리고는 심히 불편했다. 나만 홀로 멈춰 버린 듯한 삶의 실체를 마주하는 느낌 때문에. 급기야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살고’, ‘무엇을 위해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지’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삶의 비루함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간신히 참으며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그냥 무참히 서 있었다. 손에 든 책은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체홉의 소설은 그렇게 나에게 왔다. 단 다섯 페이지만을 읽고 나는 그가 천재 작가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주 심플한 이야기 속에 어떻게 삶의 본질적 단면을 담담히 담아 낼 수 있는지 놀랍고 놀라웠다. 평이한 이야기에 삶의 페이소스를 얹는 것은 아무 작가나 할 수 없는 재능이다.

 

이날 집에 와서 단편 몇 개를 더 읽어 봤지만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농담」과 「쉿」을 읽고 나서는 작가의 유머와 기지 그리고 풍자의 극한을 맛볼 수 있었다. 정말 그는 미시적인 이야기로도 거시적이고 보편적인 풍자를 능숙하게 플롯에 담아 낼 줄 아는 소설가 중의 소설가였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본 직후에는 ‘다른 작가의 작품은 모두 펜이 아닌 막대기로 쓴 것처럼 여겨진다.’는 고리키의 전언이 내가 하고 싶은 지점을 명확히 짚어 줬다. 체홉의 단편집을 읽고 나니, 내가 전에 그리도 열독했던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들이 그렇게도 초라하게 여겨지는 거다. (뭐, 이상문학상 수상작뿐이겠는가)

 

소설 읽기가 따분해 질 때 만난 체홉의 단편들은 소설 읽기의 재미를 다시 발견하게 해 주었고, 단편 소설의 매력을 다시금 일깨워주기 충분했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정신’을 온전히 드러내 준다. 그래서 돈이 제일이라는 이 시대에 적어도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갖는 가치를 생각하며 살 수 있게 된다.

 

[덧]

* 이 리뷰는 지난 1월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읽고 노트에 써 놓은 글을 옮긴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과는 두어 달 정도의 시간 차가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