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열린책들 세계문학 46
존 르 카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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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르 카레 소설은 헌책방에서 발견하는 즉시 한 권씩 구매했다. 그 결과 번역본을 거의 다 갖추게 됐다.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너무도 재밌게 봐서 원작 소설을 찾아 보고 르 카레 전집을 구입하기 소망했다. 그리고 영화를 본 지 약 8년 만에 번역본을 거의 다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르 카레 전집을 생각나는 대로 읽어가는 중이다. 그런데 <에이전트 러너>를 읽은 게 약 2년 전이다. 6 작품을 읽었다. 로버트 러들럼과는 결이 다른 재미다. 독서토론 때문에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열린책들, 2010)를 다시 읽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옛날에 읽었던 세부적인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거다. 역시 리뷰를 써 놓지 않으면 금방 잊혀진다.

 

주인공 이름과 결말은 생각이 났어도 플롯 구조는 정말 처음 보는 것처럼 재밌었다. 그리고 처음 읽었을 때는 몰랐지만, 엄청나게 정교한 플롯 구조에 혀를 내둘렀다. 이런 스파이 소설은 그레이엄 그린의 말마따나 첩보 소설 장르에서 독보적이다. 로버트 러들럼의 작품보다 좀 더 고급지다고 해야 할까.

 

정교한 플롯 구조로 내게 각인 된 작품이 하나 있다. 스탠리 포틴저의 스릴러 소설인 <4의 절차>. 아주 세밀한 플롯 구조에 경탄을 금할 수 없었던 작품이다. 르 카레의 <추나돌스>는 여기에 버금가는 엄청난 플롯 전개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플롯 구조 자체만으로 미학적 완성도를 자랑한다.

 

주인공 리머스(영국 첩보원)가 계속 진실을 은폐하고 관리관과 미리 약속된 공작이 진실인냥 그 역할을 다하다가 갑자기 상대(문트)에게 휘말려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는, 즉 고통스럽게 작전의 전모를 실토하면서 자신은 끝났다고 말하는 순간 모든 퍼즐이 완성되면서 영국 첩보부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이 구조, 그러니까 주인공 리머스가 관리관과 미리 짜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루트 이외에 관리관은 리머스가 결국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게 하는(결국 자신의 의지로) 루트를 조지 스마일리와 조심스럽게 구축한 거다. 리머스가 끝까지 자신의 임무를 철저히 완수하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야기의 전모(全貌)는 이렇다. 영국 첩보부는 피들러(문트의 부하)가 문트를 의심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문트가 영국을 위해 일하는 이중 스파이라는 의심을 완전히 제거하고자 관리관과 스마일리는 리머스라는 충실한 장기말을 통해 이 위험한 작전을 성공시킨 것. 성공의 전제는 리머스가 끝까지 문트는 동독을 배신할 이가 없다는 거였다.

 

실제로 리머스는 작전의 본질을 몰랐다. 몰라야 했다. 그래야 성공하니까. 사문회의 마지막 변론이 끝나자 리머스는 알았다. 자기가 철저히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리즈(리머스의 연인) 역시 철저히 이용당했다. 리머스와 리즈에게 피들러는 충실했고, 문트가 이중 스파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피들러는 리머스를 보호하고 리즈를 영국에 돌려보내 줄 인물이었다.

 

하지만 영국 첩보부의 목적은 피들러의 제거였고, 아울러 리즈의 희생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건 리머스의 선택이었다. 장벽에서 리머스는 스마일리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동독 지역에 떨어져 죽어 있는 리즈의 시신을 택하였고 결국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는 알았다. 영국에 충성한 대가가 배신이었고, 돌아가느니 차라리 사랑(죽음)을 택하겠다고.

 

이 비극적 결말은 스파이 소설의 전형적 결말을 전복시킨다. 전통적인 스파이 소설은 작전을 성공시킨 주인공이 조용히 사라지거나 은둔하는데, 본 작품은 스파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걸 찾았다는 데 있다. 그것이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사랑일지라도.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문학적 메시지를 강렬히 전달한다.

 

리머스는 리즈가 자기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명확히 깨달았다. “그것은 하찮은 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었다. 평범한 생활이 가치가 있다는 믿음. 빵 부스러기를 종이 봉지에 넣고 해변으로 걸어가 갈매기들에게 던져 주는 소박함. 하찮은 것에 대한 관심은 리머스가 이제껏 가질 수 없었던 것이었다. 갈매기에게 던져 줄 빵이든 사랑이든, 다른 무엇이든 간에, 그는 돌아가서 그것을 찾을 것이다.” (p106)

 

아울러 르 카레가 보여주는 문장들은 군더더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힘이 있다. 이는 개인이 사상(이데올로기)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관념을 이야기로 보여주는 데에 있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데올로기(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이 통렬하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손님들로 붐비는 식당에 폭탄을 던져도 좋다는 건가요? 그게 당신들이 막무가내로 활동해도 좋다는 근거가 될 수 있느냔 말입니다.” 리머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우리라면 그게 통합니다.” 피들러가 말을 이었다. “우리를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나가게 해 준다면 나는 식당에 폭탄을 던지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대차대조표는 나중에 만들면 되니까. 많은 여자와 아이들이 희생되었지만, 그만큼 많은 진보가 이루어 졌다고.” (p144)

 

도대체 뭘 불평하고 있는 거지?” 리머스가 (리즈에게) 거칠게 물었다. “대중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킨다고 말하지. 사회주의의 현실은 밤낮으로 싸우는 것이다. 그 무자비한 전투. 그게 공산당이 말하는 거잖아? 적어도 당신은 살아남았어. 나는 공산주의자들이 인명의 고귀함을 역설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어.” (p245)

 

정교한 플롯 구조, 캐릭터를 통한 신랄한 이데올로기 비판, 그리고 수미쌍관된 배경(소설의 처음과 끝이 장벽이다!). 소설 구성의 3요소가 스파이 소설 장르에서 이처럼 잘 구현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장르 소설을 넘어 세계문학의 고전 반열에 오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볍지 않고 신중하게 사건이 전개되다가 사문회 이후 숨막히게 치달리는 플롯 구조는 독자들에게 첩보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벽에서 허물어지는 두 주인공을 보면서 비극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이야기는 좋은 소설이 갖추어야 할 미덕의 전형이지 않을까? 나는 그렇다고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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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1-23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60년대의 스파이소설은 이언 플레밍과 존르 카레가 쌍벽을 이루고 있지요.상업적 성공은 영화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흥행한 007시리즈가 더 유명하지만 문학적 성취는 존 르 카레의 소설이 휠씬 위인것 같습니다.이는 국내에서 조차 007소설을 읽는이도 출간하는 곳도 없지만 르 까레 소설은 지금도 꾸준히 출간되고 읽히는 것에서 잘 알수 있는것 같아요.

yamoo 2026-01-23 10:59   좋아요 0 | URL
대중적 장르적 소설은 이언 플레밍이 가장 유명했죠. 그러다가 80년대 냉정시대를 맞이하여 첩보소설의 열풍이 불었습니다. 잭 히긴스와 프레드릭 포사이스의 첩보소설들의 인기는 대단했지요. 모두 영화와 됐고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물론 당시에 르 카레와 로버트 러들럼의 소설도 인기있었죠. 그레이엄 그린, 서머셋 몸 등도 첩보서설을 썼지만 히긴스와 포사이에 비해서 서스펜스가 많이 떨어지는 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순수문학에서 보여주는 호흡의 길이가 장르 소설에서 보여주는 빠른 전개를 보여주지 못했던 듯합니다. 그런데 르 카레는 이들의 특징을 모두 흡수해서 작품활동을 한 듯보여요. 그래서 지금 재평가를 받아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게 아닌가 합니다..ㅎㅎ

카스피 2026-01-23 13:27   좋아요 1 | URL
죽은자에서 걸려온 전화를 읽어 보셨나요.제 기억에 아마 최초의 르 카레 스파이 소설이고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의 전작에 해당 할 겁니다.오래전 르 카레가 국내에서 인지도가 거의 없을 적에 사자로부터의 전화라고 국내 초역본(7~80년대 번역)을 본 기억이 나는데 나중에서야 추운 나라에서 온 스파이의 전작(실제 추운나라에서 온 등장인물과 이야기들이 죽은자에서 걸려온 전화와 연결되어 있음)이란것을 알았지요.
르 카레 스파이 소설의 모든 토대를 다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yamoo 2026-01-23 13:56   좋아요 0 | URL
당연히 읽었습니다. 데뷔작도 훌륭했지만, 추나돌스가 훨씬 완성도가 높고 재밌더군요. 팅커 테일러도 좋았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6권 중 단연 으뜸은 추나돌스라고 생각합니다..ㅎㅎ

그레이스 2026-01-23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는 안읽어 봤는데,,, 플롯을 칭찬하시니 ...^^

yamoo 2026-01-23 14:51   좋아요 1 | URL
오오~~ 이 유명한 작품을 아직 안 읽어 보셨군요! 강추드립니다! 정말 플롯이 정교하고 재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