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롭게 컨셉을 정하여 그리고 있는 주제가 있다. '시간의 현재성에 대한 탐구'(처음 가제는 '시간의 실재성에 대한 탐구'였다). 물론 이것도 베르그손 철학에 경도되어 있는 내 기호를 반영한 시리즈다.
철학사에서 시간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철학자는 아마도 헤라클레이토스이지 않을까 한다. 학부 철학 개론 시간에 숙제로 부여 받은 최초의 내 페이퍼가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와의 비교였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파르메니데스보다는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무척 끌렸었고, 아마도 그쪽으로 편향되게 결론을 내렸던 걸로 생각된다. 만물이 유전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언급은 변화로 연결되었고 그런 인식이 막연히 좋았다.
중세철학을 공부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아우렐리우스의 책을 읽었지만 이 두 철학자가 '시간'에 대해 말했는지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억도 못했다!)
그러다가 베르그손 철학을 읽으면서 '시간철학'에 대한 중조가 아우구스티누스였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정작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수록된 시간에 대한 논의는 매우 미미한 편이었다. (다시 찾아서 읽어보니 아주 짤막했다!)
그로부터 철학사에서 그 의미를 건져올린 학자들이 대단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짧은 언급에서 '시간성에 대한 의미'를 해석하고 그것을 헤라클레이토스와 연결짓는 학자들의 탐구정신이 놀라울 뿐..
어쨌든 지속하는 시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은 베르그손부터 시작됐고, 그것을 기억과 물질로 논의를 확장한 학자는 베르그손이 유일했다.
지금 '순간'을 사는 사람에게 있어 시간의 현재성은 너무도 중요하게 생각되기에 베르그손을 거듭 읽었던 듯하다.
특히 <물질과 기억>은 8회독 정도 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1장에 대한 이해도가 좀 떨어진다. 1장만 10회독 이상은 한 듯한데, 여전히 명확하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머리의 우둔함을 탓하지 ㅇ낳을 수 없다.)
베르그손에 대한 환기를 다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내 그림의 주제 '시간의 현재성에 대한 탐구'로 그린 그림 두 점이 해외로 나가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순수의 전조'보다 훨씬 좋다고 하셔서 바로 낙점됐다!)
(시간의 현재성에 대한 탐구, 캔버스에 아크릴, F3, 2023)
또 다른 하나를 꼽자면, 아주 오래 전에 서재 친구인 위클리 님에게 베르그손의 책을 권해드렸는데, 지금에서야 위클리님이 <물질과 기억>을 읽고 있다고 해서이다.
다시금 <물질과 기억>을 들춰봐야 할 때가 온 듯하다. 좀더 섬세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한 번쯤 더 읽어야 할 듯해서다. 후설의 시간 개념과 비교하면서 읽으면 더 없이 좋은 공부가 될 듯하다.
[덧]
1. 위 그림은 처음으로 컨셉을 잡을 때 F3 캔버스에 연습용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의 호응이 매우 좋아 같은 크기로 20여 개 정도 그릴 예정이고 이걸 100호 크기의 판넬에 붙여 100호로 만들 예정이다.ㅎㅎ
2. 영국으로 건너갈 그림은 7S호 정도 된다. 35*35센티. 원래는 '순수의 전조' 2작품을 보낼 예정이었는데,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여분의 두 점을 더 갖고 오라고 해서 설 연휴에 부랴부랴 그린 건데 그 두 점이 낙점이 됐다.
3. 그림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진사가 있다는 걸 첨 알았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