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타이틀에 ‘착각’이 들어간 시리즈를 모으고 있기 때문에, <읽었다는 착각>(EBS BOOKS, 2022)를 구매했다. 헌데, 이거 ‘읽은 책’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문해력’ 관련 책인 것을, 책을 받아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착각’에 관계된 책 중 내 의도를 완벽히 빗겨간 책이다.
교환 하려다가 그냥 읽기로 했다. 언제 읽을지는 모르지만. 그나저나 요즘 ‘읽었다는 착각’이 드는 책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는 더 심하다. 재작년부터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데, 본 영화나 드라마 리스트를 보면 너무 생소할 때가 있다.
읽었던 책 중에서는 <소립자>, <푸코의 추>, <정체성> 등의 줄거리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거다. 특히 에코의 에세이 책들이 그렇다. <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 <대중의 슈퍼맨> 등을 펼쳐 몇 페이지 읽었는데, 읽었다는 기억이 전혀 없다. 너무 새로운 책 같다.
영상물로 넘어가면 훨씬 더 심각하다. 하도 잘 잊혀져 영화나 드라마는 보는 즉시 제목을 적어 놓고 평점을 매겨 놓는다. 이 리스트가 200개를 넘어가니 제목 자체가 생소한 게 너무 많은 거다. 예컨대 이런 거. [조디악 ★★★★, 블랙 아일랜드 ★★]
제목만 보면 내가 이 영화들을 본 적이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뒤에 별로 평점을 남겨놔서 이걸 봤다고 생각하는 거지, 정말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물론 영화를 다시 보면 봤다는 생각이 나겠지만 제목만 보고서는 이걸 봤다는 기억이 전혀 없다.
그도 그럴것이 넷플릭스에 가입한 이후 영화를 보는 것이 너무 수월해 져서 하루에 3-4편을 보니, 당연히 제목을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제목을 기록해 놓지 못한 영화들의 경우 줄거리와 주제가 생각나는데,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아 연관된 영화를 기록할 때 여간 곤혼스러운 게 아니다.
얼마 전에 본 한국 영화 <원더랜드>의 경우, 분명히 올 초에 비슷한 미국영화를 넷플에서 본 기억이 생생하다. 죽기 직전에 기억(젊은 시절)을 서버에 저장해 놓아 평생 그 공간에서 지낸다는 설정이었고, <원더랜드>가 그 영화의 아류라는 걸 알았는데, 정작 그 영화 제목이 아직도 생각나지 않는 거다.
이런 현상이 정말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듯. 책은 오래 전에 구매했는데, 구매한 줄 몰라 또 구매한 책이 꽤 된다. 같은 책이 3권이 나왔을 때는 너무 허탈하다. 이제 나도 치매인가? ‘나 이제 노인으로 가는 거야’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읽는 인생이고, 보는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읽은 적이 없는 착각’과 ‘본 적이 없는 착각’ 속에서 살 수밖에 없나 보다. 오늘도 여전히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있지만 이게 언제 기억 속에서 사라질지 모르겠다. 그때를 맞이해야 하는 시각이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