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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 : 심훈 장편소설 ㅣ 한국문학을 권하다 5
심훈 지음, 이경자 추천 / 애플북스 / 2014년 6월
평점 :
<상록수>를 완독한 날은 세월이 흘러도 선명하다. 초등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둔 날이었다. 선생님이 중학교에 진학하는 사람은 ‘쪼가리’에 부모님 도장을 받아오라고 했다. 하필 그날 갱하이하고 나이가 뭐가 쪼매 안 좋았는지 분위기가 쌔한게 서로에게 도장 찍는 일을 미루는 거다. 어디에 있는지 잘 아니까 내가 그냥 꾹 찍어버리면 될 걸, 통 융통성이 없어서 그런 머리는 안 돌아가고, 그저 마루에서 어제 읽다 남겨둔 상록수를 읽었다.
그런데 아뿔싸, 저자님아! 주인공을 죽이면 어예노, 내가 너무 슬프잖나. 채영신이 세상을 떠나서, 박동혁이와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어서 나는 심리적 타격을 받고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어쩜 그렇게 끝없이 눈물이 나는지 그칠 수가 없었다. 갱하이는 내가 도장 때문에 우는지 알고 나이한테 지고 도장을 찍어주었다. 나는 훼손된 두꺼운 녹색 표지에 투명 테이프를 붙여 이사 다닐 때마다 근 40년을 함께 했다가 인연을 정리했는데 이번에 다시 샀다.
신간은 읽고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아서 옛날 작품 위주로 사게 된다. 그래서인지 무언가 감이 떨어지고 이게 늙는 건가 싶기도 하다. 물론 집에는 우리 아-가 사들인 신간이 넘치지마는 안 읽는다. 출판사는 무섭다. 띠지에 적힌 말을 믿고 집어 들고 왔다가는 속기 십상이다. 양귀자 작품은 보류해뒀는데, 덜덜 떨면서 손을 못 대는 것이다. 마지막 실망을 할 순 없기에... 그간 얼마나 속았으면...
심훈에게 내가 이런 토로를 하면 그는 나를 이상에게 데려간다. 병문안을 가면 이상과 심훈은 이런다.
아니, 작년에 죽은 사람이 어째 왔소? 임자 병문안 왔지. 성실하게 안 살고 이게 무슨 꼴이오. 지금 조선 시골에는 임자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콧구녕에 바람이 들어서 돌아 댕기고 있는 거냔 말이오. 곧 죽을 사람 앞에서 위로는커녕, 나무라시기요? 속상해서 그러지. 난들 이러고 싶겠나.
아, 뒷전에 앉은 저 이는 뉘요. 아, 알겠군. 고찌 이랏샤이, 이이상상, 내 두 배군. 나는 이상이오, 이제 반상이군. 고정관념에 묶이기 싫은 이상이고 반상이지. 좀 있다 내 숨이 넘어가면 멜론을 들고 가오. 사러 보냈으니 곧 올 거요. 대접할 건 그 뿐이니 아쉽군. 나는 못 먹소. 향기라도 맡으며 죽으면 족하지. 아니, 이 사람아, 조선 사람이 숭늉을 먹고 호박 잎 쌈을 먹어야지, 코오피를 먹고 이제는 멜론 타령인가? 양담배에 위스키 고량주 와인이 일상인 지금 조선은 말이 아닐세.
나는 이상의 호흡이 안정되도록 심훈을 말린다. 심훈이 옳고 심훈 말이 맞다. 그러나 이상은 멋지다. 곧 죽을 사람이 따박따박 대거리하는 폼이며 남긴 작품이며. 겨우 스물일곱임에도 성숙한 이상이 우러러 보이는 것이다. 심훈은 존경스럽고, 이상은 가깝게 느껴 진다. 나의 이십 대에 만났으면, 음악으로도 대화했으면, 더 좋았지 않을까 하면서 옛 시절을 돌아보는 것이다. 오오,서양 팝 가수들의 뮤직 비디오도 한 번 못 보고 죽은 이상...
갱하이하고 나이가 어렵게 보내주는 넉넉한 돈으로, 친구와 팝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보러 까페에 가서 파르페를 시킨다, 음악에 취하면 세상 걱정이 없다. 맑은 날에는 장미 다발을 사서 안고, 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좋으면 멈춰 서서 듣는다, 친구가, 니 저 테이프 살라꼬 물으면, 당연하다 하면서 산다. 비 오는 날에는 파르페에 꽂힌 우산을 빼서 쓰고, 메리 포핀스가 되어 집까지 날아간다.
이상상이 나에게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묻는다. 나는 용기를 내어 앙상한 그의 손을 잡고 말한다. 걱정 마세이. 작품 마이 알려 주께요. 뭐하러. 다 태워버려. 안 돼요. 아깝잖니껴. 좋아하는 사람 많는데요. 어떤 건 여혐 끼가 보이는데 지금 죽을 판이니 거론하긴 좀 글코요. 내가 다른 오감도도 써 봄 시더. 재해석 해가 내 식으로 한번 써 보께요. 이이상상은 말라꼬 글 쓰노. 그래 말이래요. 뭐 굳이 이유가 있다면 몇 가지 있는데 한 가지 알레드리죠.
손에 꼽을 만큼 밖에 안 만난 서른 이후의 갱하이를 떠올리면 눈물이 나고, 마지막 만났을 때 자주 오라 했는데 안 갔거든요. 그래가 미안하게 돼가 내 마음이 일단 되는데 꺼지만 해가 시를 썼니더. 요새는 신문기사도 시도 소설도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이잖니껴. 시로 일단 갱하이가 사망이 됐는데, 이제 서른 후가 걱저이래요. 다시 살려내가, 더 직시하고 정직하게 제 날짜에 죽여야 되는데... 그래가 더 정리해 나가다보이 천사도 이런 천사가 없니더. 그걸 심훈은 너무나도 잘 알제요.
자본주의에 휩쓸려 스러져간 농부, 평생 자전거만 탄 사람, 십 원 한 푼 안 받고 들길의 풀을 벤 사람, 도시로 떠나는 나를 보려고 버스 밖에서 두릿두릿 살폈으나 커튼을 쳐 못 본 사람, 도시 안 가고 흙을 지킨 사람, 농민신문을 읽던 사람... 간 지 딱 십 년 지났는데 생각이 나가 후회를 하니더. 내 보고 싶다고 그클 그랬는데 안 가고 제망아부지가를 여다가 쓰고... 이상상, 상록수 읽었니껴. 심훈 최고제요? 나는 인제 <상록수>가 농촌과 농민 이야기라 생각하니더. 영신도 아부지도 죽어서 슬픈 이야기지만요.
가을 학기가 되자 ㅇㅇ일보사에서 주최하는 학생계몽운동에 참가하였던 대원들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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