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왜 그렇게 많이 죽이지?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89쪽)
전기도 수도도 없는 강원도 두메산골 너와집에서 홀로 사는 90대 농부가 있다. 엊저녁에 퍼둔 밥에다 손으로 씀바귀(?)를 뜯어 넣고, 맛소금을 (아주 조금) 솔솔 뿌려 휘휘 뒤적인다. 거기에 풋고추를 시판 된장에다 (아주 조금) 찍어 곁들여먹는다. 먹는 물은 고려시대 때도 있었는 약수터에서 지게로 져다 나르고, 그 외엔 빗물을 받아서 쓴다. 가마솥에 물을 붓고 불을 적당히 때고, 그 안에 들어가 목욕을 한다. 솥에 냄새 밴다고 비누는 안 쓴다.
산골에는 서너 시만 돼도 어두워지려 해 일찍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데, 밥 먹을 때 셰주도 한두 잔 걸치고는 일찌감치 누워 라디오를 들으며 적적한 밤(의 마음)을 달랜다. 파이프로 산의 물을 끌어다 쓸 수도 있건만, 그 조차 않는, 신경 쓴 듯 안 쓰는 친환경적 삶이다. 열여섯 가구가 살던 화전민 마을인데 모두 외지로 뿔뿔이 흩어지고, 이제 한 가구의 한 명만 남았다.
돈이 없어 못 떠나고 자식 교육도 못 시키고 겨우 살아왔지만, 어쩌다보니 오히려 잘 된 셈이어서, 장수를 즐기며 배짱 편하게 산다. 해준 게 너무 없어 아들네 집은 가 있어도 미안해서 못 있는다. 맑은 물과 공기 덕인지 피부가 깨끗하고 동안이며, 셰주를 마셔도 빨리 깨고 짚을 벽만 있으면 넘어지지도 않는 노익장을 과시한다. 전엔 시장에 땅콩을 팔러 산길을 내려가기도 했지만, 이땅콩은깐땅콩이래요안깐땅콩이래요안깐땅콩이래요안깐땅콩은까기귀찮아서안사요, 하면 상심이 커진다. 아랫마을에 ‘니리온’ 김에 경로당에 들어가면, 안면 있는 노인들이 반가워하며 음식을 주고, 인제 고마 이리로 아주 니리오라고 채근을 한다. 날이 갈수록 유튜버와 등산객들이 찾아와 유명세를 누리고 있으며, 셰주를 가-오고 지붕 고치는 걸 도와주면 기분이 좋아가 자고가라 한다. 일행들이 밤에 여러 질문을 하면 막힘없이 답을 하고, 믹스커피를 타주면 종이컵 끝을 뾰족하게 접고는 너무도 맛있게 ‘흡입’한다.
버몬트에 살 때 전기는 없어도 물을 끌어와 수도 시설을 만들고 지하창고에 음식재료를 보관했던 니어링 부부는, 간편한 설거지를 위하여 식사할 때 큼직한 나무그릇 하나만 사용했다. (아마 설거지가 귀찮으면 융통성을 발휘하여, 불타는 벽난로에 던졌지 싶다. 이것은 매우 응용가치가 높은 것으로써 언젠가 군불 때고 살게 될 때 써먹을 것이다. 손님 열 명이면, 혹은 많으면 많을수록, 한 백 명 쯤이라 쳐도, 백 개의 그릇을 장작 대용으로 쓰면 아랫목이 다 탈까? 방이 절절 끓어 등짝 지지기는 좋을 것이지만, 타는 불 속에 손님도 각자 먹은 그릇을 던져 넣어보라고 하면, 설거지 없는 멋진 삶이로군, 하며 진심 기뻐하는 사람, 그릇불멍에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사람, 자원낭비라고 속으로 흉보는 사람 등 종류별로 있기는 할 것이다. 따로 나무그릇방을 만들어 천 삼백 개쯤 쌓아두고, 안락한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것도 괜찮을 텐데, 한껏 우아하고 화려한 <(얇은) 나무그릇 한 개로만 식사>
용기 있는 용기 나무용기로 수프를 먹고, 다 먹으면 다음 차례로 샐러드도 먹고, 견과류나 과일도 먹고, 우유도 부어 마시고, 주스도 먹고, 물도 마시는 식이었던 모양이다. 그릇을 하나만 씻으면 되므로 좀 더 장기적이고 창의적인 일에 시간을 쓸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한다.
헬렌이 얇게 썬 생감자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올리브를 올려 손님들을 대접했을 때, 맛있게 먹은 손님들은 그게 생감자인지 몰랐다. (나는 이것을 응용하여 얇게 썬 생감자에, 껍질을 벗겨 얇게 썬 사과를 얹어 먹어보았는데 맛이 훌륭했다. 용기 있는 용기 나무용기는 없지만 용기를 내어 사과를 빼고 생감자만 썰어 먹어보니 식감은 고구마요, 당분은 더 낮으니 싹이 안 날 감자 철에 주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다음 날은 사과 없이 작은 생감자 한 알을 깎아 아침에 아작아작 씹어 먹어보니, 먹을 만은 한데 더 내키지는 않아서 물을 많이 마시고 어떤 증상이 있을지 기다려보았다. 나는 만성적 민감성 장기에 이제 끝물인 듯 다 돼가는 장기라, 무얼 먹든 참으로 바로미터라 이런 실험에 적당하니 어떤 증상일지 궁금했는데, 멀쩡했고 그냥 양이 적어서인지 허기가 졌다. 그 다음날은 가지를 생으로 먹어보니 절대 못,안 먹어야할 흉흉한 맛이다. 오이, 쑥갓, 상추, 토마토는 먹기 만만하였고, 양파는 간장과 식초를 살짝 넣어 삼분의 일 정도 먹고 남겼는데, 나중에 배가 싸르르 함에 생양파는 나에게 있어 패스, 단지 열을 가한 섭취가 옳겠거니.)
헬렌 부부는 일주일에 하루는 요리 없이 금식하고, 봄엔 위장청소도 할 겸 열흘 쯤 사과만 먹었다.(배 아픈 방식이니 이건 원하고 싶지 않군.)
그들은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정월 초하루, 부활절 등에는 과한 음식과 만드는 사람에 연민을 표하기 위해(=항의하기 위해) 물이나 주스만 마셨다. (스코트 니어링은 강연 하러 갔을 때, 자신이 온다고 (듬뿍) 차린 음식에는 손도 안대고, 자기 주머니에서 사과를 꺼내 먹었다더니 이런 이유였나 보다.) (매란시럽기는.)
샐러리와 (아이들 먹게하려고 동화책을 써서 회유키도 하는) 피망을 가장 좋아한 헬렌은, 조리를 하면 죽은 음식이 되고 오래 조리할수록 화장한 것처럼 재만 남는 것과 같다며, 최대한 가열을 적게 하라고 권한다.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이 있는 곳에 살며, 음식도 실험적으로 먹으며 살다간 그들이 안 아프고 오래 살았다고 해서, 생명에 가장 중요한 공기와 물이 좋지 않은 현재, 신선한 생채소를 똑같이 먹어본들 병치레 안 하고 오래 살지는 않을 것같다.
유전자의 영향도 있겠지만, 사상체질 팔체질 해샀는 한의학의 관점에선 저런 식습관을 어떻게 풀이하는지, 동양인에게 적용하기 적당한지 어떤지 궁금하다. 책에는 음식 조리법과 더불어 한의사 당부 같은 요긴한 게 많다. 빵은 그다지 만족스러운 음식이 아니다. 산성이라 배 속에서 요동치고 위장에 가스가 차게 하기 때문이다. 과일과 함께 먹으면 특히 그러하므로 가스가 잘 차는 사람은 하루 빵 섭취를 아주 소량으로 제한해야 한다. 빵과 음료를 줄인 후 가스 차는 증상이 사라진 사람을 나는 많이 봤다. K. G 헤이그 <식이요법을 통한 건강>·1913 (263쪽)
헬렌이 스코트와 일본 도쿄 어느 집에 매칠 묵을 때인데, 매일 샐러드와 구운 감자만 먹어야 했다. 평소 무얼 먹느냐는 질문에 부담을 안 주려고 샐러드와 구운 감자라고 답했다가 그렇게 되었는데, 한 달 정도 샐러드와 구운 감자를 삼시세끼 나에게 차려준다면 그것은 (소소한) 행복일 것이지만, 이제 생감자로(만) 먹(고살)으면 되니 딱 한 개의 나무그릇에 생감자나 세 알 담고, 안전하고 잘 드는 과도나 달라고 하면 서로 편하리라. 마주보고 담소하며 각자가 각자의 것을 깎아 먹고 나서, 딸기나 한라봉도 갖다먹고, 호두나 해바라기 씨도 몇 알 담아다 먹고, 현미녹차도 우려 마시고.
어떤 땐 각설이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할 테니, 벽난로의 장작이 활활 타고 있으면 금상첨화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