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왜 그렇게 많이 죽이지?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89)

 

전기도 수도도 없는 강원도 두메산골 너와집에서 홀로 사는 90대 농부가 있다. 엊저녁에 퍼둔 밥에다 손으로 씀바귀(?)를 뜯어 넣고, 맛소금을 (아주 조금) 솔솔 뿌려 휘휘 뒤적인다. 거기에 풋고추를 시판 된장에다 (아주 조금) 찍어 곁들여먹는다. 먹는 물은 고려시대 때도 있었는 약수터에서 지게로 져다 나르고, 그 외엔 빗물을 받아서 쓴다. 가마솥에 물을 붓고 불을 적당히 때고, 그 안에 들어가 목욕을 한다솥에 냄새 밴다고 비누는 안 쓴다.

산골에는 서너 시만 돼도 어두워지려 해 일찍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데, 밥 먹을 때 셰주도 한두 잔 걸치고는 일찌감치 누워 라디오를 들으며 적적한 밤(의 마음)을 달랜다. 파이프로 산의 물을 끌어다 쓸 수도 있건만, 그 조차 않는, 신경 쓴 듯 안 쓰는 친환경적 삶이다. 열여섯 가구가 살던 화전민 마을인데 모두 외지로 뿔뿔이 흩어지고, 이제 한 가구의 한 명만 남았다.

 

돈이 없어 못 떠나고 자식 교육도 못 시키고 겨우 살아왔지만, 어쩌다보니 오히려 잘 된 셈이어서, 장수를 즐기며 배짱 편하게 산다. 해준 게 너무 없어 아들네 집은 가 있어도 미안해서 못 있는다. 맑은 물과 공기 덕인지 피부가 깨끗하고 동안이며, 셰주를 마셔도 빨리 깨고 짚을 벽만 있으면 넘어지지도 않는 노익장을 과시한다. 전엔 시장에 땅콩을 팔러 산길을 내려가기도 했지만, 이땅콩은깐땅콩이래요안깐땅콩이래요안깐땅콩이래요안깐땅콩은까기귀찮아서안사요, 하면 상심이 커진다. 아랫마을에 니리온김에 경로당에 들어가면, 안면 있는 노인들이 반가워하며 음식을 주고, 인제 고마 이리로 아주 니리오라고 채근을 한다. 날이 갈수록 유튜버와 등산객들이 찾아와 유명세를 누리고 있으며, 셰주를 가-오고 지붕 고치는 걸 도와주면 기분이 좋아가 자고가라 한다. 일행들이 밤에 여러 질문을 하면 막힘없이 답을 하고, 믹스커피를 타주면 종이컵 끝을 뾰족하게 접고는 너무도 맛있게 흡입한다.

 

버몬트에 살 때 전기는 없어도 물을 끌어와 수도 시설을 만들고 지하창고에 음식재료를 보관했던 니어링 부부는, 간편한 설거지를 위하여 식사할 때 큼직한 나무그릇 하나만 사용했다. (아마 설거지가 귀찮으면 융통성을 발휘하여, 불타는 벽난로에 던졌지 싶다. 이것은 매우 응용가치가 높은 것으로써 언젠가 군불 때고 살게 될 때 써먹을 것이다. 손님 열 명이면, 혹은 많으면 많을수록, 한 백 명 쯤이라 쳐도, 백 개의 그릇을 장작 대용으로 쓰면 아랫목이 다 탈까? 방이 절절 끓어 등짝 지지기는 좋을 것이지만, 타는 불 속에 손님도 각자 먹은 그릇을 던져 넣어보라고 하면, 설거지 없는 멋진 삶이로군, 하며 진심 기뻐하는 사람, 그릇불멍에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사람, 자원낭비라고 속으로 흉보는 사람 등 종류별로 있기는 할 것이다. 따로 나무그릇방을 만들어 천 삼백 개쯤 쌓아두고, 안락한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것도 괜찮을 텐데, 한껏 우아하고 화려한 <(얇은) 나무그릇 한 개로만 식사

 

용기 있는 용기 나무용기로 수프를 먹고, 다 먹으면 다음 차례로 샐러드도 먹고, 견과류나 과일도 먹고, 우유도 부어 마시고, 주스도 먹고, 물도 마시는 식이었던 모양이다. 그릇을 하나만 씻으면 되므로 좀 더 장기적이고 창의적인 일에 시간을 쓸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한다

헬렌이 얇게 썬 생감자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올리브를 올려 손님들을 대접했을 때, 맛있게 먹은 손님들은 그게 생감자인지 몰랐다. (나는 이것을 응용하여 얇게 썬 생감자에, 껍질을 벗겨 얇게 썬 사과를 얹어 먹어보았는데 맛이 훌륭했다. 용기 있는 용기 나무용기는 없지만 용기를 내어 사과를 빼고 생감자만 썰어 먹어보니 식감은 고구마요, 당분은 더 낮으니 싹이 안 날 감자 철에 주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 다음 날은 사과 없이 작은 생감자 한 알을 깎아 아침에 아작아작 씹어 먹어보니, 먹을 만은 한데 더 내키지는 않아서 물을 많이 마시고 어떤 증상이 있을지 기다려보았다. 나는 만성적 민감성 장기에 이제 끝물인 듯 다 돼가는 장기라, 무얼 먹든 참으로 바로미터라 이런 실험에 적당하니 어떤 증상일지 궁금했는데, 멀쩡했고 그냥 양이 적어서인지 허기가 졌다. 그 다음날은 가지를 생으로 먹어보니 절대 못,안 먹어야할 흉흉한 맛이다. 오이, 쑥갓, 상추, 토마토는 먹기 만만하였고, 양파는 간장과 식초를 살짝 넣어 삼분의 일 정도 먹고 남겼는데, 나중에 배가 싸르르 함에 생양파는 나에게 있어 패스, 단지 열을 가한 섭취가 옳겠거니.)

 

헬렌 부부는 일주일에 하루는 요리 없이 금식하고, 봄엔 위장청소도 할 겸 열흘 쯤 사과만 먹었다.(배 아픈 방식이니 이건 원하고 싶지 않군.)

그들은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절, 정월 초하루, 부활절 등에는 과한 음식과 만드는 사람에 연민을 표하기 위해(=항의하기 위해) 물이나 주스만 마셨다. (스코트 니어링은 강연 하러 갔을 때, 자신이 온다고 (듬뿍차린 음식에는 손도 안대고, 자기 주머니에서 사과를 꺼내 먹었다더니 이런 이유였나 보다.) (매란시럽기는.)

샐러리와 (아이들 먹게하려고 동화책을 써서 회유키도 하는) 피망을 가장 좋아한 헬렌은, 조리를 하면 죽은 음식이 되고 오래 조리할수록 화장한 것처럼 재만 남는 것과 같다며, 최대한 가열을 적게 하라고 권한다. 맑은 공기, 깨끗한 물이 있는 곳에 살며, 음식도 실험적으로 먹으며 살다간 그들이 안 아프고 오래 살았다고 해서, 생명에 가장 중요한 공기와 물이 좋지 않은 현재, 신선한 생채소를 똑같이 먹어본들 병치레 안 하고 오래 살지는 않을 것같다.

 

유전자의 영향도 있겠지만, 사상체질 팔체질 해샀는 한의학의 관점에선 저런 식습관을 어떻게 풀이하는지, 동양인에게 적용하기 적당한지 어떤지 궁금하다. 책에는 음식 조리법과 더불어 한의사 당부 같은 요긴한 게 많다. 빵은 그다지 만족스러운 음식이 아니다. 산성이라 배 속에서 요동치고 위장에 가스가 차게 하기 때문이다. 과일과 함께 먹으면 특히 그러하므로 가스가 잘 차는 사람은 하루 빵 섭취를 아주 소량으로 제한해야 한다. 빵과 음료를 줄인 후 가스 차는 증상이 사라진 사람을 나는 많이 봤다. K. G 헤이그 <식이요법을 통한 건강>·1913 (263)

 

헬렌이 스코트와 일본 도쿄 어느 집에 매칠 묵을 때인데, 매일 샐러드와 구운 감자만 먹어야 했다. 평소 무얼 먹느냐는 질문에 부담을 안 주려고 샐러드와 구운 감자라고 답했다가 그렇게 되었는데, 한 달 정도 샐러드와 구운 감자를 삼시세끼 나에게 차려준다면 그것은 (소소한) 행복일 것이지만, 이제 생감자로() (고살)으면 되니 딱 한 개의 나무그릇에 생감자나 세 알 담고, 안전하고 잘 드는 과도나 달라고 하면 서로 편하리라. 마주보고 담소하며 각자가 각자의 것을 깎아 먹고 나서, 딸기나 한라봉도 갖다먹고, 호두나 해바라기 씨도 몇 알 담아다 먹고, 현미녹차도 우려 마시고.

어떤 땐 각설이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할 테니, 벽난로의 장작이 활활 타고 있으면 금상첨화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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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촛불과 호롱불을 들고 방이며 곳간이며, 뜰에 있는 웅덩이를 샅샅이 뒤졌다. 이윽고 우리가 그렇게 찾아다녔던 거북을 구월이가 가마솥에서 찾아냈다. (...) 수암은 1미터 높이의 언덕이 될 때까지 오후 내내 삽질을 했다. 나는 거북을 무덤으로 옮기기 위해 굵은 나뭇가지 두 개와 새끼줄로 들것을 만들었다. 거북은 움직이지 않고 하루 종일 거기에 누워 있었다. 우리는 죽은 영혼의 안식을 위해 산신령과 놀이 친구에게 술을 대신하여 물을 한 잔 바쳤다. 그리고 해가 떨어지자 죽은 거북을 땅에 묻었다.(67~68쪽)




나는 의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여태껏 방석에만 앉았기 때문이었다.(92쪽)




다음 날 아침, 나는 경성의학전문학교 입구에 서 있었다.  (...)  그들은 모두 ‘의학’이라는 글자가 박힌 황금색 배지를 단 감청색 교복을 입고 있었다. 신입생들은 아직 각자 자기 나라의 복색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한국 학생들은 흰색 옷을, 일본 학생들은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학교 사무실로 가서 학생증과 시간표, 그리고 교복과 모자에 달 배지를 받았다.(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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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쇠다이사할 때 안다. 서너 권씩 잡고 상자에 넣을 때의 너낌, 상자를 옮길 때의 너낌!

재생지여서 가벼우면 반갑고, 잉크향이 독하면 실망이다맨 뒷장에 재료 성분 표시가 있다면 무엇이 들었는지 아니까머리맡에 안 두거나아기가 못 만지게 할 수 있다화장지 표백 갖고도 따지는데책 성분은 뭔지도 모른 채 그동안 너무 쉽게 용인돼 왔다.


요사이 책 한 권을 우편함에 두고오가며 산책 시킨다

옆구리에 끼고 걷다가한적한 곳에서 들고 흔들면서 냄새를 뺀다그러면서 생각한다컴퓨터그래픽 영화는 ‘CG’영화라고 공표하지만인공지능 합작인지 알지 못하는(알리지 않는책을집에 그만 들일 때가 다가온다고다음 생은 염소가 될 것이다까만 염소누렇게 변색된 향기롭고 바삭한 책을 별미 삼아 먹겠다책벌레도 못 살 정도로 독한 표지에변색도 잘 안 되는 책은 무슨 맛이겠는가. 염소니까 먹기는 먹겠지만 할 수 없이 먹는 것이다그러고는 장소 구애 없이 선 채로 후두둑 혹은 촤르르 초코환약 열 알을 메에에에에

 

경향신문 박은하 특파원(2024.12.27)에 의하면 중국이 전기차를 위해그 거대한 싼샤댐의 3배 크기를 티베트에 건설한다고 한다물이 흐르지 않으면 주변국도 고통을 겪는다휘발유를 대신하는 전기차는 지구를 살리는가앞으로도 압록강은 계속 흐르게 둘 것인가글쎄...! 이러는 중에 중앙일보 서정민 기자(2025.2.15.)의 조천현 사진전 기사를 본다. 바로 저것이다, 무릎을 친다미래는 (경쟁력은무동력에 있는 것이다. 저 사진전은 한국을 관광대국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전 세계 환경정책을 견인할 것이다.

 

미루어 짐작건대 보리 출판사, 조천현의 <뗏목>(압록강 뗏목 이야기)는 환생염소에게 맛난 책은 아니다글 보다 사진에 최적화됐기 때문이다비록 선호하는 가벼운 바디감은 아니지만염소 눈에도 이 책에는 억만금의 가치가 들어 있다는 것이 보인다..

베네치아는 노 젓는 곤돌라로 관광객이 미어터져 문제고마카오는 호텔 안에 베네치아 운하와 똑같이 만들어놓고 곤돌라를 태우는데줄을 선다고 한다베트남이나 태국의손수 노 젓는 배도 관광객을 매료시킨다쿠바의 어떤 바나나 농부는 야생 줄기로 배를 뚝딱 만들어강을 따라 바나나를 옮긴다강원도 영월 뗏목도 축제로써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사람들은 노 젓는 무동력 배를 사랑한다작을수록 더 사랑한다. (태워다 주고갈 때는 노를 젓지 않고 모터 소리 내며 빠르게 사라지는 것에 어안이 벙벙해 본 적이 있다.)  

 

전에 이 책을 샀을 때나 이번 기사를 봤을 때나뗏목 소식은 그저 반갑다. 휘발유도 배터리도 없이 이동을 하는 것이다책에 얼굴이 나온 이들은세월이 지나서 그만 뒀거나사망했기에 부담이 덜해 가능했지 싶다

압록강이 맑은지 탁한지 물 빛깔을 확인하고 싶다. 이의경미륵의 압록강이여뗏목꾼들의 압록강이여 흘러라. 그들이 지나갈 때 물어보면 좋겠다. (원더염소!)는 궁금한 것이다되돌아 갈 때도 무동력으로 가니껴어예 가니껴여자는 바지 입고 남자는 치마 입고, 성의 장벽을 깨나가면 어떨니껴노 젓는 작은 뗏목들로 서울한강공원에서 관광객 받으면 어떨니껴.   

 

전 세계 어디나 세련되게 축소 개조한 뗏목은 인기를 끌게 돼 있다게다가 개량이더라도, 우리들이 한복을 입고 길에 나다니면 내외국인 모두 기절한다아름다워서. 그러나 이것은 일단 실패할 것이다. 마음이 동해야지, 운동으로 되는 게 있는가. 그렇다. 그래서 각 운동들은 실패한 것이다.

결국 염소의 독후감은 정책 제안인 바, 나라 경제도 살리고 지구를 살릴 묘안을 브레인스토밍 형식으로 적어두는 것이다. 뜨거운 염소 마음. 메에에에에

강물에 기름이 떠서야 되겠는가버슬랑 밖에 두고 관광객들이 들어가 대기하면서한 잔에 이천 원 숭늉라떼를 홀짝홀짝삼천 원 수정과를 홀짝홀짝메에에에에.       



 

한반도에서 가장 긴 물줄기
압록강 이천 리 물길엔
지금도 뗏목이 뜹니다(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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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은 이상하고, 너는 그에게 이상해.”

 

롤랑 마나르는 비 내리는 날 고향으로 돌아온다. 차창으로 주룩주룩 흐르는 빗물은 카메라 빛에 어리어, 마치 그의 뺨에서 흐르는 눈물처럼 (우리에게) 보인다. 창 밖에는 우산을 쓰고 성당 계단을 내려오는 신랑신부와 거기 참석한 동생이 보이지만, 그는 버스에서 내려 달려가지 않는다. 십 오년에서 오 년 감형된 십 년 형을 채우고, 이제 막 감옥에서 출소한 것이다. 단 한 번의 면회도 오지 않은 동생, 그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감옥행을 택했던 그는, 동네에 다다라서야 버스에서 내리고, 능숙하게 산등성이 지름길을 택해 자신의 집으로 간다


형의 존재에 대해 왜곡된 사연을 들은 적 있는 여자는, 출소 후 그가 자신의 집으로 온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다. 남편인 제라르를 피로연장에 남겨두고, 칭얼대는 아이만 데리고 집으로 왔다. 재우려고 안고 섰는데, 낯선 이가 눈앞에서 몸을 밀착하며 다그친다. 여자는 공포에 휩싸여 얼어붙는다. 자신과 아이의 평화를 깬 침입자로부터 되려 질문을 받게 된 것이다. (내 집에 무단 침입해 있는 지금 당신은) “누구세요?”

 

프랑스 북부 아미앵 근교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제라르마나르농업회사를 운영하는 ‘They’는 아내와 세 살 된 딸과 살고 있다. 농촌의 넓은 농지를 가졌지만 별 뾰족한 수 없이 역시나 쇠락의 길을 가는 중이다. 회사라는 명칭을 붙였지만 직원이라곤 고작 자신과 조수 한 명인데, 그로써 충분하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서 대형 제초기트랙터에 올라타고 달리기만 하면, 자동으로 순식간에 풀이 깎이기 때문이다

조수는 적재함차량으로 그와 호흡을 맞추며 옆에서 나란히 달린다. 깎인 풀은 잘게 분쇄되어 원통형 굴뚝으로 뿜어져 나와, 옆 차량의 적재함에 쌓인다. 거칠고 메마른 정서를 가진 제라르는 짙은 풀 향내가 나는 그 순간의 음미도, 굉음과 대형 칼날이 지나가면서 불가피하게 짓이기고 파괴한 다른 종의 세계에 대한 일말의 내적 갈등도 없다. 그저 심란하여 행동이 더 난폭해질 뿐이다. (오 년이나 일찍) 형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롤랑이 돌아온 그날은, 파리에서 와 이곳에 정착한 지 십 년이 되는 이태리인 수의사 베리노의 결혼식이 있었다. 제라르가 그와 매우 오랜 친구인 듯 행동해서 아내는 속아왔지만, 그들이 은밀하고 석연찮은 관계임이 계속 복선으로 깔린다. 제라르 집 냉장고에 붙은 모든 결혼사진엔 제라르와 아내, 베리노, 셋이 있다. 롤랑은 그것을 보고 그것을 간파한다

제라르는 형에게 진실의 일부만 말한다. 형의 주장이 옳았노라고. 소들은 아팠고 뇌수막염에 고기는 썩었고, 베리노가 보험을 위한 서류를 해주는 대신, 자신은 그의 정착을 돕고 고객을 모아주었노라고

음흉한 롤랑에게 성적으로 이끌리는 제라르의 아내는, 그의 짐을 뒤지다가 들킨다. 롤랑은 짐 속 책을 꺼내 설명해준다. 미국인들의 점령에 맞서 싸운 플로리다 족장 오세올라의 죽음을. 원주민들은 고속도로에서 팔찌를 팔거나 히치하이커들이라고. 그것은 자신의 신세와 같음을 암시한다.


제라르는 자신의 자가용 겸 풀 깎는 기계인 노란색 트랙터 둘레에, 전구를 칭칭 감고 거칠게 밤길을 돌진한다(사람인 형이더라도, 형이 없었으면 싶은 그의 심정을 담고). 그의 트랙터가 달리면, 매달린 전구들은 크리스마스트리의 그것처럼 아름답게 반짝인다. 전구가 꺼지면 동시에 파티도 끝나고, 의무뿐인 집 문을 여는 일만 남았다

십 년 청춘을 날리고, 범죄인 평판 낙인이 찍힌 형이 돌아오는 바람에, 그나마 있던 가정의 안온함도 깨졌다. 무섭고 불편한 객식구인 형을 내보내라는 아내와 손찌검도 오가며 싸우지만, 그에겐 형에 대한 부채감이 있다.


우리(추측건대 자신과 베리노)가 여기서 행복한 게 수치스러워서 면회를 안 간 거라고, 형이 뭘 원하든 (그것이 내 아내인 너의 몸이더라도) 줘야 한다고 아내에게 말한다

형뿐 아니라, 아내 또한 형에 대한 감정이 심상찮음을 눈치 챈 제라르는 형에게 (줄 것 중에) 내 가족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형과 동생의 아내는 선을 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족 간 불협화음과 오가는 폭력이 괴로운 형은,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떠난다.

 

형이 멍청해서, 아버지가 농장 대신 제빵견습생이 되게 한 거라고 형에게 쏘아붙이지만, 여러 장면에서, 사람과 동물을 잘 다루는 진실하고 훌륭한 조련사로서의 면모를 형 롤랑은 보여준다. 하지만 그것은 늘 불안하고 아슬아슬하다. 감독은 롤랑이 유희를 목적으로 드라이브할 때 나란히 달리던 개를 치어, 차바퀴가 생명을 죽인다는 단호한 메시지를 낸다.


마지막 날, 롤랑이 지나는 차를 얻어 타고 떠나려고 길에 섰는데, 그녀가 달려와 붙잡는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만, 아이와 같이 떠나자고 하자 제수씨는 망설인다. “아미앵까지 태워줄게요.” “처음부터 짙었던 당신 눈썹은, 내가 떠나는 게 낫다는 뜻이에요.” 히치하이커 롤랑은 대형 트럭을 얻어 타고 떠난다. 

 

날은 어둑하고, 제라르가 트랙터를 몰고 오다 멈춘다. 흙바닥에서 혼자 노는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데려가려 한다. 장난감을 집어 올렸으나, 머리 부분이 쏙 빠진다. 그것은 장난감 윗부분과 아래 부분이 분리된 것을 모르는 무심한 아빠를 의미한다. 또한 십 년 전 그날, 제라르의 과오로 불에 타 죽은 농장일꾼의 딸로서, 최근 목을 맨 알코올 중독자 카롤린 불레의 목을 의미한다. 부부사이의 종말이며, 형제간 파탄이고, 아주버님과 제수씨라는 족쇄의 박탈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제 형에 대한 부채가 소멸되고, 그것으로부터 분리됨을 의미함은 물론이다.  


제라르는 그간 사람들의 표준에 맞춰 산 덕에 입방아에 오르지 않았으나, 꺄페와 주스와 아르마냑을 파는 인간적인 사람인 아미르네 꺄페든 어디든, 동네사람들 수군거림을 들을 것이다. 그녀는 갔니더시즈곤, 엘레빠띠. 몸과 마음의 소리에 경도되어 둘 중에서만 고르느라, 여럿 중에 고르는 것도 방법이라는, 바람에 실려 온 소리는 안/못 듣는 그녀는, 그러므로 갔니더. 작고 다부진 그만이 이 세상에서 오로지 멋진 것이다.

 

 

 

원제:Peaux de Vaches(Thick Skinned)무정한 사람
Patricia Mazuy감독 1988년 프랑스영화
출연_ Sandrine Bonnaire, Jacques Spiesser, Jean Francois Steve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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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는 세계의 온갖 인종들이 다 모인 곳이었다.  

... 사람들은 모두 이리저리 막 몰고 다니는 자동차에 치이지 않기 위해서 앞을 다투어 뛰어다녔다. 사람들이 그렇게 긴장 상태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자동차는 자동차대로 사정없이 달리고 항구의 배들도 그리고 큰 건물의 지붕 위에 달린 선전물들과 사람들의 마음까지 서두르게 하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고 집중하지 않으면 큰 일 나는 세상 같았다. 행동이 민첩하고 강한 자가 생존경쟁에서 승자가 되고, 그렇지 못하고 느릿느릿하며 약한 자는 패자가 되는 그저 난폭하고 매정한 인간들이 사는 곳이었다. 

그러니 사람들은 울 시간도 웃을 시간도 없을 정도였다.(146~147쪽)



... 수백 명의 품팔이꾼들은 손수레를 끌면서 자기네끼리 방향이나 속력을 서로 말하기 위해 이상스러운 소리들을 지르며 달렸다. 짐꾼들은 목적지에 도달하면 품삯을 받지만 그 돈으로는 담배 한 갑도 살까말까 하는 박한 노임이었다. 돈이 적다고 짐 주인에게 몇 푼 더 달라고 손을 내밀다가는 어떤 때는 뺨을 한 대 얻어맞는 수도 있고 때로는 들고 있던 지팡이로 정수리를 얻어맞는 일도 간혹 있었다.그러면 이 불쌍한 일꾼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서서 도망쳐버리곤 했다. 이 일꾼들은 벌써 직업적으로 귀가 밝아서 어디서 짐꾼을 부르는 소리가 나면 얼른 알아듣고 손수레를 끌고 좋아서 누가 부르는 쪽으로 달려갔다. 일꾼들은 대부분 상의를 벗고 짐을 끌기 때문에 오늘같이 비가 오는 날에는 몸에서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다.(147~148쪽)








1910년 8월 28일, 일본의 군인이며 정치가였던 데라우치(데라우치 마사다케. 1852~1919. 1910년 당시 초대 조선 총독)에게는 대단히 중대한 문서가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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