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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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모 토올스의 데뷔작 <우아한 연인>은 대단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원제인 <Rules of Civility>에는 들어가 있지 않은 '연인'을 제목에 넣었는데,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 중 일부에 불과한 '연애'를 중심적인 요소라고 착각하게 만든다. 원제를 더 살리는 제목이었으면 좋았겠다.


다 읽은 후 그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근래 읽은 가장 낭만적인 소설"이라고 100자평을 썼다. 그 낭만성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20대가 표상하는 젊음: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인물들은 대부분 20대이다.

1938년의 뉴욕이 가진 분위기: 대공황(1929~1939)에서 벗어나는 시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재즈클럽, 맨하탄의 밤을 밝히는 불빛들,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주는 도시. 

회상의 형식: 중년이 된 화자가 20대 시절인 1938년을 돌아보며 함께 했던 사람들을 추억하는 형식을 취한다. 

이상주의: 위의 모든 요소들이 결합하여 강렬하게 지향하는 이상주의적 삶에 대한 동경. 

이 책을 읽고나면 누구나, 20대의 나는 어땠지? 하고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혹은 있을 거라 믿을 수 있었던) 그 시절에 대한 향수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내게는 너무나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지금의 20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보스턴 출신에 예일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학에서 영문학 석사를 했으며 투자전문가로 일했던 작가 본인의 이력 때문인지, 부르주아적인 느낌이 있다. 뭐랄까, 부르주아가 노동자의 노동이나 거친 삶에 대해 갖는 막연한 동경? 낭만화? 같은 것이 느껴진달까. 미국의 빈곤층이 이 작품을 볼 때 어떻게 느낄지는 궁금하다. (마침 지금 읽고 있는 소설이 1938년 미국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모티프로 했는데 당시 미국 최빈곤층의 삶을 다루고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뉴욕이라는 도시다. 이 도시 자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번도 뉴욕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해봤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궁금해졌다. 


뉴욕에서는 이런 식으로 이름을 바꾸는 데 돈이 들지 않는다.  - 92쪽 

신문판매대의 노인이 조금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

"뉴욕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문제가 바로 저거야. 남들처럼 뉴욕으로 도망칠 수가 없잖아."  - 142쪽
"뉴욕은 정말 사람을 확 바꿔놓지 않아?"  - 184쪽
바람이 아무리 괴로워도 지금 이 자리에서 보는 맨해튼은 정말이지 현실 같지 않을 만큼 너무나 찬란하고, 밝은 약속들로 가득 차있는 것 같아서 평생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실제로 그곳이 손에닿지는 않을지라도.   - 500쪽





줄거리를 절반만 얘기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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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부의 분위기가 그야말로 내 취향이다.

1966년, "맨해튼에 사는 부유한 중년"인 '나', 케이티(캐서린) 콘텐트는 남편과 함께 사진전에 참석한다. 그 사진들은 1930년대 말 뉴욕 지하철에서 찍은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이다. 케이티는 그 안에서 아는 얼굴을 발견한다. 팅커 그레이. 그 얼굴로 인해 그녀는 19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작'이라는 소제목이 끝나는 부분에 "뉴욕, 1969년"이라고 써 있는 건 뭘까? 작가가 된 케이티가 이 글을 썼고 그 날짜가 1969년이라는 걸까? 작품의 현실성을 더하기 위한 장치인가. 처음 읽을 때는 몰랐는데 리뷰를 쓰려고 다시 보니 그런 것 같다.

추억을 소환하는 이 낭만적인 도입부에 끌린 나는 순식간에 이 책을 완독.. 하고 싶었으나, 여건상 찔끔찔끔 읽다가, 이래서는 빠져들지를 못하겠다 싶어 중반부터는 밤에 시간을 내서 쭉쭉 읽어나갔다. 그러자 너무 재밌는 거다, 특히 중반 이후는 자러 가면서 아쉬울 정도였다.


과거 소환은 1937년 12월 31일부터 시작한다. 케이티는 친구인 이브 로스와 함께 재즈바를 찾았다. 이날 이 재즈바에서 이들은 운명적으로 팅커(시어도어) 그레이를 만난다. 팅커는 "돈 있는 집에서 예절 교육을 받으며 자란 젊은이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의 호의를 의심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굉장한 미남"(31,33쪽)이다. 우연히 합석하게 된 세 사람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데, 팅커는 "매사추세츠 출신이고, 프로비던스에서 대학을 다녔으며, 월스트리트의 작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케이티는 "다시 말해, 보스턴의 백베이에서 태어나 브라운 대학을 다녔으며, 자기 조부가 세운 은행에서 일하고 있다는 뜻이었다."(38쪽)며 팅커의 말을 해석한다. 이걸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책의 후반까지 읽으면 이 부분의 의미심장함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세사람은 1938년을 함께 맞이하고, 우정을 이어간다. 팅커를 보자마자 관심을 표하며 '내 거'라고 선언한 것은 이브지만, 왠지 팅커와 케이트 사이에 교감이 형성되어 가는 와중, 세 사람의 관계는 자동차 사고로 급선회한다. 팅커가 운전하던 차에 셋이 함께 탔지만 그중 이브만이 얼굴에 큰 상처를 입는다. 얼굴의 흉터와 한쪽 다리를 절게 된 이브를, 팅커는 자신의 집에서 보살피게 된다. 케이티는 하숙집을 나와 방을 얻는다. 이 사고 장면이 있는 소제목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연극이나 소설에서 이야기가 꼬이고 막혔을 때 초자연적인 힘이나 전능한 신 등을 등장시켜 이를 해결하는 것)로 붙인 게 재밌다. 

이로써 팅커는 이브의 차지가 된다. 이브보다 케이티에게 마음이 있었던 것이 확실한 팅커가 한줄기 희망으로 케이티에게 키스를 하지만 케이티는 부드럽게 거절한다. 그렇게 그들의 관계는 고착된 것으로 보였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던 케이티는 승진 제안을 걷어차고 존경하는 편집자가 있는 출판사로 직장을 옮긴다. 그곳 직원들과 어울리면서 디키 밴더와일을 만나는 등 상류층 청년들과 어울린다. 출판사에서 잡지사로 이직도 하고, 디키 일행을 따라서 간 홀링스워스 집안 파티에서 월러스 월코트와 재회해서 가까운 사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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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이야기 아닌가? 

한 남자에게 호감을 품고 있던 친구인 두 여성. 한 사람이 남자를 차지하고, 다른 여자는 시기심에 이를 갈며 상류사회에서 다른 남자를 찾아.... 

이 책이 그런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중반 이후에 드러난다. 이브는 모두의 세속적 예상을 뒤엎는다. 케이티와 이브의 우정은 흔들리지 않는다. 팅커는 케이티가 넘겨짚었던 그런 인물이 아니다. 


더 이상의 줄거리는 스포일러가 되니 생략하고, 이 책의 매력을 꼽아보자.


1. 끊임없이 등장하는 책, 책, 책! 

  곳곳에서 책이 등장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헤밍웨이가, 펄 벅이, 디킨스가, 소로우가, 애거서 크리스티가...... 

  케이티는 늘 책을 들고 다니며 읽는다. 집에도 버섯처럼 책이 자라고 있다. ㅋㅋ 


"책이…… 아주 많네요." 마침내 그가 말했다.
"병이죠."
"혹시……… 치료를 받고 있나요?"
"아무래도 불치병 같아요."
그는 서류가방과 포도주를 아버지의 안락의자에 놓고 고개를 한쪽으로 살짝 기울인 채 방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건…… 듀이 십진분류법인가요?"

"아뇨, 그래도 비슷한 원칙이긴 해요. 그쪽은 영국 소설들이고요, 프랑스 작품들은 부엌에 있어요.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같은 서사시들은 저쪽 욕조 옆에 있고요."
(...)
월러스는 내 침대 밑의 책더미를 가리켰다.
"그럼 저…… 버섯들은?"

"러시아 작가들이에요."              - 296, 297쪽

 


2. 인물들의 매력 + 뉴욕의 매력

   각각의 인물들이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케이티는 러시아인 부모를 둔 이민자 2세로 노동계층에서 공부를 통해 자주성가하는 인물이라 볼 수 있다. 상류사회 인물들과 어울리며 부를 즐기는 등 세속적이랄까 현실적인 면이 있으면서도 그것을 목적으로 여기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이브는 중서부에서는 경제적으로 최상위층으로 꼽히는 집의 딸인데 아버지의 도움을 거절하고 마음대로 산다. 대담하고 거침없는 모습.


 "(...)몇 주 전 주말에 웨스트포트에 있는 저 인간 집에서 다 같이 파티를 했는데, 저녁 식사 후에 저 인간 아내가 피아노로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동안 (하늘도 무심하시지) 저 인간이 하녀한테 식품저장실에서 뭔가 보여줄 게 있다고 말하더라고. 나중에 내가 가보니까 저 인간이 그 아가씨를 빵 상자 옆의 구석으로 몰아넣고 막 목을 물려는 참인 거야. 그래서 내가 감자 으깨는 기구로 저 인간을 쫓아버렸지."

(...)

"네가 나타나서 그 아가씨도 운이 좋았다고."
이브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건 운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 내가 식품저장실까지 저 자식을 ‘미행‘한 거니까."
이브가 감자 으깨는 기구를 손에 들고 앵글로색슨계 백인들이 사는 뉴욕의 주택 복도를 배회하는 모습이 갑자기 머리에 떠올랐다. 그림자에서 그림자로 훌쩍훌쩍 뛰어 몸을 숨겨가며 비열한 인간들을 죄다 혼내주려고 나선 모습.
"그거 알아?" 내가 새로운 확신을 갖고 말했다.
"뭘?"
"너야말로 최고 중의 최고야."     
 - 190, 191쪽


팅커는 "불사조" 같은 인물인데, 1938년 당시에는 품위를 지키며 쳇바퀴 돌듯 열심히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끔 내 기분이 바로 그래요. 내 고객 중 절반은 알래스카를 향하고, 나머지 절반은 에버글레이즈를 향하고 있는데...... 나는 강둑에서 강둑을 오가고 있는 기분."   - 73쪽


앤 그랜딘 부인도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성공한 사업가로서 케이티에게 야망을 품으라고 말한다.


부인은 드 로셔의 박스석을 가리켰다.

"제이크 옆에 있는 서른 살의 금발 여자 보여요? 제이크의 약혼녀예요. 캐리 클랩보드. 캐리는 저 자리에 앉기 위해서 물불을 안 가리고 애를 썼어요. 이제 조금 있으면 세 채나 되는 집에서 부엌 하녀들과 상차림과 골동품 의자의 커버 교체 같은 걸 감독하며 행복해 하겠죠. 그거야 다 좋은 일이에요. 하지만 내가 당신 나이라면, 캐리와 같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쓰지 않을 거예요. 제이크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쓰겠죠."   - 180쪽 

 상류층 자제인 디키 밴더와일과 월러스 월코트도... 

 월러스 아파트에서 둘이 책 바꿔 보는 거 너무 좋았고(307쪽), 디키가 종이비행기 날리는 장면은 최고였다(451쪽). 종이비행기 이 장면을 읽으면서 아, 이 책 영화로 만들면 참 좋겠네 싶었는데, 영화는 아직 없는 듯.

 

 

3. 우정.. 우정!! 

  이브와 케이티의 우정이 팅커로 인해 흔들리지 않는 게 좋았다.


그날 밤 늦게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 복도가 유난히 조용한 가운데, 혼자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내 머릿속에 가장 또렷하게 떠오른 사람은 이브였다. 

지금까지 몇 년 동안은 오늘처럼 서로 적당히 의견이 어긋나기도 하는 사람들이 모인 디너파티에 초대받아서 다음 날 출근할 것을 생각하면 너무 늦은 시간까지 붙들려 있을 때, 베개에 기대앉아 내 이야기를 시시콜콜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을 이브의 존재가 내게 유일한 위안이 되어주었는데.....   - 157쪽 


이 작품 다음에 쓴 <모스크바의 신사>는 더 평이 좋던데, 무척 기대된다. 이 책보다 더한 벽돌이지만....^^  

이 책을 선물해 주신 분께 감사하며 마무리.



아버지는 살면서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아무리 풀이 죽고 기운이 빠져도, 자신이 언제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 처음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고대하는 한은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아버지가 내게 해준 조언이었음을 깨달았다.
(...) 사람은 반드시 소박한 즐거움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아함이나 박학다식처럼 온갖 화려한 유혹들에 맞서서 소박한 즐거움을 지켜야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게는 찰스 디킨스의 책들이 아버지의 커피 
한 잔과 같은 역할을 했다. 소외계층에 속하면서도 용감한 책 속의 젊은이들과 아주 적절한 이름을 지닌 악당들에게 조금 짜증스러운 구석이 있는 것은 솔직히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우울할 때도 디킨스 소설을 읽다가 정거장을 지나칠 만큼 책에 몰입할 수만 있다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209,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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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11-05 15:0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오 이 책을 제가 지금 읽었다면 과거의 그 때와는 또 다른 감상일 수 있었을 거라고 이 리뷰를 보니 생각하게 되네요. 책을 너무 잘 읽어주셨고 또 정리도 잘 해주셨어요. 멋진분 ㅠㅠ

에이모 토울스는 모스크바의 신사에도 그렇지만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서 좋아요. 모스크바의 신사에서는 주인공이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으면서 힘들어하는 게 나왔는데 그게 그렇게 꿀잼이에요 ㅋㅋㅋ

제가 이 우아한 연인 읽고 팅커가 바지 뒷주머니에 늘 꽂고 다니는 월든 을 샀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읽기는 몇 년 지나 읽었지만 말예요. 팅커가 케이티 우연히 만나서 아무도 모르는 비밀 하나만 말해달라고 하잖아요. 저는 그 장면 너무 좋아요 ㅠㅠ

독서괭 님 만세만세 만만세!!

독서괭 2021-11-05 15:10   좋아요 4 | URL
앗 만세만세를 외쳐주시다니 영광입니다 ㅎㅎ
저 딱 읽으면서 다락방님이 이 책 왜 좋았다고 하셨는지 알겠다 싶었어요. 책 얘기 많이 나오고 주인공이 어디나 책 들고 다니며 읽고, 먹는 데 진심이고 ㅋㅋ 여적여 없고.
저는 이미 월든은 몇 년 전부터 갖고 있지만 안 읽었네요.. 언젠가 읽긴 읽겠지요? 저는 이 책 읽고 나니 애거서크리스티가 문득 읽고 싶어지던데요. 10대후반~20대초반에 몇 권 읽고 못 읽어본 것 같아요. 추리소설을 많이 좋아하진 않아서요.
팅커가 아무도 모르는 비밀 얘기해달라 하는 장면 귀여워요. ㅎㅎ 얘네 연애 너무 귀엽게 하지 않나요. 전 디키가 좋더라구요. 종이비행기에 진심인 연하남, 귀여워~~
다락방님 만세만세 만만세!!!^^

scott 2021-11-05 15: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괭님의 리뷰 속에 담긴 < 우아한 연인 >들 속 인물들의 모습들이 너무 좋습니다.
이 작품은 뉴욕이라는 도시, 2차 대전의 전운이 전혀 감지 되지 않았던 들끓던 광란의 시기를 낭만적이게 그렸죠.
작가가 사전 조사를 아주 오랜 세월 걸쳐서 했다고 하네요(트럭 4대 분량 자료를 읽었다고 함) ㅎㅎ
저희 집에도 버섯 처럼 책이 자라고 있지만 ㅎㅎㅎ

모스크바의 신사들 두툽해도 괭님 11월 ! 가을 독서의 나날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 ^^


독서괭 2021-11-05 16:13   좋아요 5 | URL
우왓 트럭 4대 분량!! 굉장하네요. 한 책 쓰는 데 4-5년 걸릴만 합니다.
들끓던 광란의 시기라는 표현이 맞네요^^ 젊은 에너지가 넘쳐서 저까지 들썩들썩하는 기분이었어요.
스콧님 집에 자라는 버섯은 훨씬 더 많을 것 같은데요 ㅋㅋㅋ
당장 읽을 책이 쌓여 있지만 조만간 <모스크바의 신사>도 도전하겠습니다! ^^

페넬로페 2021-11-05 18:4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매력적인 내용인 것 같아요~~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뉴욕을 배경으로 한 것도 좋고 인물들이 신선한 것 같아요**
꼭 읽고 싶어요**

독서괭 2021-11-06 07:32   좋아요 2 | URL
스콧님이 이 작가에 대한 멋진 페이퍼를 쓰셨답니다^^ 1900년대 중반을 배경으로 작품을 쓰나봐요. 저도 첫 책 읽고 좋아서 <모스크바의 신사>와 이번 신간(아직 번역 안 됨)도 번역되면 읽어볼 생각이예요~ 페넬로페님도 고고~^^

새파랑 2021-11-05 1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장 낭만적인 소설인데다가 책속에 등장하는 책이라니~! 전 이 책 읽을꺼여서 실눈뜨고 리뷰 읽었어요 ^^ 역시 사람은 뉴욕으로~!!

독서괭 2021-11-06 07:34   좋아요 2 | URL
책속에 책 등장하면 좋아하는 플친님들 많겠죠?ㅎㅎ 새파랑님 읽으실 예정이군요!! 멋진 리뷰 기대하겠습니다. 뉴욕 언젠가 가보고 말거야~~

붕붕툐툐 2021-11-05 22: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등감이 있는 거 같아요. 20대, 부르주아, 연애는 제가 싫어하는 키워드거든요~ㅎㅎ 근데 독서괭님이 너무 매력적으로 잘 쓰셔서 혹하네용? 특히 마지막 발췌문 왤케 공감이 갈까요? 책으로 소박한 즐거움 느끼는 건 플친님들 다 동의하실 듯 합니다!ㅎㅎ

독서괭 2021-11-06 07:36   좋아요 2 | URL
20대와 연애는 피해갈 수 없지만..^^;; 연애하면서 나누는 이야기들이 귀엽고 매력 있어요. 부르주아 냄새가 난다고 썼지만 막상 화자인 케이티는 노동자 계급이라, 어떠실지… 궁금하니 일단 읽어보시면 어떨까요?ㅋㅋㅋ 책으로 느끼는 즐거움 동의 백번~^^
 




1964년, 만 18세의 여성 A씨는 집 앞에 찾아온 어떤 남자로부터 집요한 요구를 받고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자는 갑자기 돌변해 A씨를 쓰러뜨리고 키스를 하려고 했고, 도망가려는 그녀를 세 번이나 붙잡고 쓰러뜨렸다. 바닥에 쓰러진 A씨는 실랑이 끝에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온 남자의 혀를 깨물어 그 혀가 일부 절단되었다. 며칠 뒤 남자는 A씨가 자신의 혀를 끊었다는 이유로 10여 명의 청년들과 함께 그녀의 집에 침입하여 식칼로 A씨의 아버지를 죽인다고 위협했다."(36쪽) 성폭력범이 오히려 흉기를 들고 찾아와 협박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뒤 벌어진 일은 더 당황스럽다. "남자는 자신의 혀를 깨물어 자른 A씨를 중상해죄로 고소했고, 경찰은 그녀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판단했으나 검찰이 이를 뒤집었다. 검찰은 A씨 행위가 과잉방위라면서 그녀를 중상해 혐의로 기소하고 구속했다."(37쪽)

 법원의 판단 내용은 더욱 당황스럽다. 


법원은 A씨의 정당방위 주장에 대하여 강제키스로부터 처녀의 순결성을 방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젊은 청년을 일생 불구로 만들었고, 사춘기의 처녀가 범행 장소까지 자유로운 의사로 따라간 것은 이성에 대한 호기심의 소치이며, 이는 남자로 하여금 그녀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키스하려는 충동을 일으키게 한 데 대한 도의적 책임도 있다고 할 수 있는 점 등을 들어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법원은 A씨가 소리를 질러 구조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질책하였다.  - 37쪽

형량은? A씨는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남자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A씨가 더 중한 형을 받은 것이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재판과정에서 '어차피 이런 험한 일 당한 처녀가 혼인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남자도 불구의 몸으로 혼인이 어려울 것이니 둘이 혼인하라'는 설득이 지속되었다고 한다"는 부분이다. 오 마이 갓... 


다행스럽게도 1988년 일어난 유사한 사건에서는 1심이 여전히 혀를 절단한 여성에게 유죄를 선고한 데 반해 2심과 대법원은 무죄를 인정하였다. 정당방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사건은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의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64년도 사건의 피고인이자 피해자인 A씨는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하는 용기를 냈다. 

관련기사 링크 - https://www.yna.co.kr/view/AKR20200504115000051

그녀는 "나의 재심 청구로 아직 용기 내지 못한 여성이 당당하게 사실을 밝히고 상처를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난 2월 부산지법은 재심청구를 기각했고, 지난 9월 항고심도 항고를 기각했다. 

관련기사 링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08324

재심은 워낙 법률에 정해진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허용되는 것이라 어쩔 수 없다고는 하나 아쉬운 결론이다. 그래도 A씨가 내 준 용기 덕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금 잊혀졌던 피해자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2017년, 택시 기사인 여성 B씨(67세)는 승객으로부터 추행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초등학교 교감으로 근무하던 그 승객은 해임처분을 받았다. 교감은 해임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했다. 1심 재판부는 해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으나, 2심 재판부는 해임처분이 부당하다고 판단하면서, 그 이유로 '피해자가 사회 경험이 풍부한 60대 여성이고, 진술 내용상 성적 수치심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들었다(31쪽 참조).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가 사회 경험이 풍부하다거나 상대적으로 고령인 점 등을 내세워 사안이 경미하다거나 비위의 정도가 중하지 않다고 가볍게 단정 지을 것은 아니다"라면서 2심 판결을 파기했다.

관련기사 링크- https://www.yna.co.kr/view/AKR20200108129400004


최근에는 여성 버스기사들에 대한 직장내 성희롱 사건에서 버스회사 대표이사와 회사 측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이들은 성희롱 피해에 대한 사후조치에 대해 논의하다가 "내가 앞으로 과부는 절대 안 뽑는다.""여자들은 안 쓴다"는 발언을 하는 등 2차 가해를 했다.

관련기사 링크-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12349



64년도 법원의 '황당 판결'은 그저 이상한 개인이 내린 판단이 아니다. 당시 시대가 여성에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88년도 사건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된 것은 시대가 그만큼 변했다는 것이다. 2017년 교감해임처분 사건 2심을 맡은 고등법원에서 '사회 경험이 풍부한 60대 여성'은 수치심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은 여전히 사회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중년 남성들의 성폭력에 대한 편견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한편으로 대법원에서 그 판결을 파기했다는 것과 2021년 버스기사 성희롱 사건에서 사측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됐다는 것은 법원이 조금씩이나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저자가 서문에 쓴 이야기는 옳다. 우리는 한발씩 나아가고 있다.


여성들의 싸움은 돌을 굴려 산 정상에 올려놔도 내일 다시 또 굴리기를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스의 절망과는 다른 것이다. 같은 싸움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같은 싸움은 없다. 포기하지 않은 싸움에는 늘 한발 전진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 12쪽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내 말 이해합니까?"

 "릴레이 같은 거란 말씀이죠?"

 "(...) 물론 자꾸 잊을 겁니다. 가끔 미친 자가 나타나 그 돌을 반대 방향으로 던지기도 하겠죠. 그럼 화가 날 거야. 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조금만 긴 시간을 가지고 볼 기회가 운 좋게 소 선생에게 주어진다면, 이를테면 40년 쯤 후에 내 나이가 되어 돌아본다면 돌은 멀리 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돌이 떨어진 풀숲을 손 선생 다음 사람이 뒤져 다시 던질 겁니다. 소 선생이 던질 수 없던 거리까지."    - <피프티 피플> 380,3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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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1-03 16: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2쪽 인용문이 의미 있네요. 달라졌고 달라지고 있기를 바랍니다

독서괭 2021-11-03 17:33   좋아요 4 | URL
같은 싸움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에 계속 힘내서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scott 2021-11-03 17:3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처벌이 더 강해 져야 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강력 처벌과 엄벌의 의지에 힘을 모아야 합니다 !!

독서괭 2021-11-03 20:23   좋아요 4 | URL
넵 예전엔 범죄라고조차 제대로 인식이 안 되었던 행위들에 대해 제대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고 감시와 예방을 철저히 해야하겠습니다!!

새파랑 2021-11-03 19: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사건 아주 예전에 영화인가 드라마로 본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지금이 예전보다는 더 나아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하지만~!!

독서괭 2021-11-03 20:29   좋아요 3 | URL
오 보셨군요. 전 영상으로 못 봤어요. 나아진다는 것만으로 희망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21-11-03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1-03 2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1-11-03 20:1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책 출간과 비슷한 시기로 기억하는데 [왕진가방 속의 페미니즘] 이라고 추혜인 의사가 쓴 에세이가 있거든요. 혹시 독서괭님 벌써 읽으셨는지도 모르겠어요. 아주 오래된 유죄는 변호사, 왕진가방 속의 페미니즘은 의사. 이렇게 나와서 막 그 자체로 신났더랬어요. 여성들이 각자가 서있는 자리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써주는 일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저는 씐나서 두 권을 다 읽었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추혜인의 책이 좀 더 좋았어요. 이건 읽고 엄마와 여동생에게도 읽어보라 주었는데 여동생은 엄청 밑줄 그으면서 읽더라고요.

최근에 독서괭님도 읽고 쓰는 일을 계속하시고 계시잖아요. 그거 너무 좋아요. 어떤 책이든 부지런히 읽고 그에 대한 글을 부지런히 쓰는 것이 우리가 지금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합시다, 독서괭 님!!

독서괭 2021-11-03 20:43   좋아요 3 | URL
아 그 책 예전에 팟캐스트에서 소개하는 거 듣고 담아둔 지는 오래됐는데 아직 못 읽어봤네요~ 두 책이 비슷한 시기에 나왔군요. 왕진가방이 더 좋으셨다니 꼭 읽어봐야겠어요.
읽는 것도 쓰는 것도 근육이 필요한 것 같아요. 잘 안 되는 것 같아도 자꾸자꾸 해야 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노력 중입니다. 북플이 큰 자극이 돼요. 다락방님처럼 열심히 읽고 쓰는 분들 느릿느릿 따라가며 즐겁습니다~^^ 함께 힘내요 다락방님!!

붕붕툐툐 2021-11-03 22: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한발씩 나아가고 있다는 말씀에 완전 동의해요! 저 어린 시절에 비해서도 지금은 완전 나아졌다고 느껴요~ 어이없는 판결들을 보니 더욱 나아짐이 느껴집니다. 근데 저 피프티 피플 읽었는데 저 구절 너무 낯설어서 차암... 머리 속에 왕지우개가 있네용~

독서괭 2021-11-03 22:42   좋아요 2 | URL
최근 대법원이 특히 성 관련 문제에서 많이 진보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백래시에 지지 말고 계속 나아가기를!
왕지우개 ㅎㅎㅎㅎ 저도 뭐 마찬가지라 그저 공감한다는 말씀만😝
 
[eBook] 오셀로 :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오디오북)
윌리엄 셰익스피어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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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비극을 책으로 쭉 읽었을 때도, <오셀로>가 제일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나, 오디오북으로 들어도 오셀로가 제일 재미있다! 

이야고 역의 이인철님 연기에 감탄하며 듣다가, 중반 이후 오셀로가 이야고의 술수에 넘어가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오셀로 역의 오만석님 연기가 폭발한다. 와~~ 마음 같아서는 기립박수 치고 싶었다. 


이야고는 정말 역사상 최고의 악역이라 할만 하다. 처음부터 단지 '무어인'이라는 이유로 오셀로를 싫어하고, 부관 자리에 앉은 젊고 잘생긴 카시오를 싫어하고, 아내를 비롯한 모든 여성들에 대해 혐오를 서슴치 않는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이용하고 그들이 입는 피해는 안중에도 없다. 현대에서라면 싸이코패스로 분류될 인물이다. 나는 현실의 인물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나약함을 파고들어 그들을 파멸로 이끄는 악마, 그 자체를 형상화한 것 같다고 느꼈다. 

사람의 마음을 잘 간파하는 이야고는 오셀로나 카시오 앞에서는 누구보다 그들을 생각하는 척 하여 누구보다 정직하고 충직하다는 이미지를 쌓는다, 오셀로에게는 데스데모나와 카시오의 부정을 의심하는 기미를 슬쩍 슬쩍 흘리면서도 차마 이야기할 수 없다고 빼면서 '감춰진 진실'이 있음을 오히려 강변하는 전략을 쓴다. 오셀로는 이에 홀랑 넘어가고 만다. 특히 이야고가 은근슬쩍 구체적인 장면을 언급하면서(두 사람이 침대에 누워있다거나, 카시오가 올라탄다거나) 오셀로의 상상을 부추기는 부분은 진정 악마적이다. 오셀로의 머릿속에 이미 박혀버린 망상은 지워지지 않고, 데스데모나의 부정을 90퍼센트 이상 확신하는 상태에서 오히려 이야고와 공모하여 결정적으로 부정을 밝혀낼 전략을 짜기에 이른다. 사랑은 질투에 쉽게 무너지고, 남성연대만이 남는다. 그는 데스데모나가 무슨 말을 하든 이미 들을 마음도 믿을 마음도 없다.


셰익스피어가 정말 사람 심리를 잘 다룬다고 느꼈던 부분은 이거다. 

데스데모나는 베니스의 귀족으로 고결하고 정숙하기로 이름난 처녀였다. 오셀로는 베니스를 위해 많은 공적을 세운 훌륭한 장군이지만, 검은 피부의 무어인이라는 이유로 은근히(때로는 대놓고) 멸시를 당하는 처지다. 그럼에도 데스데모나는 오셀로의 파란만장한 모험담을 듣다가 그에게 사랑에 빠져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그와 몰래 결혼한다. 

바로 이 지점, 데스데모나가 아버지를 배신할 만큼 오셀로를 사랑했다는 것- 그것이 나중에는 데스데모나의 부정의 심증을 제공하고 마는데, 이는 데스데모나의 아버지 브라반시오가 결혼을 인정받고 전장으로 떠나는 오셀로에게 남기는 말에서 드러난다. 

 

브라반시오  이 애를 조심하게 무어, 눈여겨 보라고. 

               아버지를 속였으니 자네를 속일지도.       - 민음사판 <오셀로>, 53쪽


또한 데스데모나가 기꺼이 오셀로에게 모든 것을 바쳤다는 것이, 다시 또 부정의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전에 만난 남자(여자)들한테도 이랬니?" 

오셀로는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 보이지만, 백인들 사이에서 멸시받는 위치에 놓인 상태에서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없을 리 없다. 그 자신도 데스데모나의 선택을 받은 것에 확신이 없지 않았을까. 이야고는 그 점을 정확히 파고든다. 

 

이야고  부인께서는 장군님과 결혼하려고 아버님을 속인 분 아닙니까? 

          장군님 얼굴을 무서워할 때가 

          장군님을 제일 좋아할 때가 아니었습니까? 

오셀로  그건 그러네.

이야고  그래서 말인데요, 

         그렇게 젊으신 분이 가면도 쓰지 않고 

         장군님 장인어른을 속이신 거잖아요. 

         장인어른께선 장군님이 마술을 쓴 걸로 아셨잖아요.        - 오디오북 <오셀로>, 3막 3장 


위 부분은 내가 들으면서 받아 적은 것인데, 오디오 제작을 하면서 말을 얼마나 매끄럽게 다듬었는지 알 수 있도록 민음사판 오셀로의 이 장면과 비교해 보았다.


이야고  그녀는 당신과 결혼해서 아버지를 속였고

          떨리고 무서운 듯한 당신의 표정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오셀로  그랬었지.

이야고  아 그럼요,

          너무 어린 여자가 그렇게 시치미를 뚝 떼고

          자기 아버지 두 눈을 새카맣게 속여서

          그는 그게 마술인 줄 알았다니까요.        - 민음사판 <오셀로>, 111, 112쪽



4대 비극 중 다른 세 작품을 들으면서- 특히 <햄릿>에서- 여성혐오를 피할 수 없구나 싶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오히려 이야고가 대놓고 여성혐오를 하고, 이야고가 주장하는 "여자들은 음탕하여 쉽게 부정을 저지른다"는 인식 하에 오셀로가 쉽게 데스데모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였다. 무어인에 대한 인종혐오도 마찬가지다. 결정적으로 에밀리아라는 인물의 대사들은 셰익스피어가 나름대로 여성이 받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에밀리아의 명대사를, 조금 길지만 인용한다. 



데스데모나  에밀리아, 말해봐. (...) 

              정말로 자기 남편을 감쪽같이 속이고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는 

              그런 여자가 정말로 있을까?

에밀리아    세상에는 온갖 여자가 다 있어요. 물론이죠. 

데스데모나  에밀리아는 이 세상을 다 준다면 그렇게 하겠어?

에밀리아    세상 전부 준다면, 생각해 봐야죠.

데스데모나  난, 난 절대로 하지 않아. 달님께 맹세해.

에밀리아    저도 달님이 보는 데서는 하지 않겠지만, 

              어두운 데서야 어때요? (...)

(...)

데스데모나  난 이 세상을 다 준대도 

               그런 나쁜 짓은 절대로 할 수 없어. 

에밀리아     나쁜 짓이라고 해도 이 세상 안에서 일어난 일 아닌가요? 

               그 대가로 세상을 얻는다면 세상은 마님 것이 되고 바로 마님의 세상 안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나중에 바로 고치면 돼죠. 

데스데모나   그런 여자가 세상에 존재할까?

에밀리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을 걸요. 

               그런 짓으로 생긴 자식들로 세상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이 있어요. 

               하지만 여자가 잘못을 저지르는 건 남편 때문이에요. 

               남편 노릇을 소홀히 하고 아내에게 줘야 할 돈을 다른 계집 손에 쥐어주고 

               터무니 없는 질투에 사로잡혀서 여자들을 가두고, 때리고, 생활비를 줄이니까. 

               여자들도 화가나서 그러는 거죠. 아무리 정숙한 아내라도 복수하고 싶을 거예요. 

               남편들도 알아야 해요. 아내들에게도 남자들처럼 감각과 감정이 있다는 걸요. 

               눈도 있고 코도 있듯이 단맛이나 신맛도 똑같이 볼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왜 남자들은 이 여자에서 저 여자로 옮겨 다니죠? 재미로 그러나요? 정말 그러는 것 같아요. 

               남자들은 여색을 타고 났나요? 그럴지도 모르죠. 남자들 의지가 약해서 그런 게 아닌가요? 

               그런데 여자도 남자들처럼 열정도 있고 욕망도 있고 장난삼아 재미를 볼 수도 있잖아요? 

               우리 여자들도 의지가 약할 수도 있고 색을 밝힐 수도 있잖아요. 

               남자들도 우리 여자를 소중히 여겨줘야 해요. 

               세상에 여자들이 저지르는 모든 나쁜 짓은 원래 남편들이 먼저 저지르고 가르쳐준 게 아니고 뭐예요?

- 오디오북 <오셀로>, 4막 3장



에밀리아 언니 짱 멋져.. 완전 현자 수준.


다만 마무리는 다소 허망했다. 일단 이야고가 그렇게 쉽게 본색을 드러내다니. 어떻게든 거짓말로 에밀리아의 말을 덮어버릴 능력이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오셀로도 불쌍하긴 한데, 데스데모나랑 에밀리아가 훨씬 불쌍하고, 자기 연민에 빠진 대사들은 좀... 끝까지 자기 변명을 하나 싶긴 했다. 


아무튼 무지무지 몰입되고 재미있으니 많이들 들어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오디오북 많이 많이 제작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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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31 23: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께서 완전 강조하시니 11월 1일에 구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카드값 리셋 기념~!!)
저도 오셀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오디오북으로 꼭 다시 들어봐야 겠어요~!!

독서괭 2021-10-31 23:38   좋아요 6 | URL
헤헤 영업성공!!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닷~^^ 새파랑님의 감상평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청아 2021-10-31 23: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에밀리아 너무 좋았어요! 특히 오셀로에게 욕퍼부을때ㅋㅋㅋㅋ김치 싸대기아닌 욕 싸대기 맞고 드뎌 괴로워하기 시작한 오셀로의 양심ㅋㅋㅋㅋ 곳곳에 웃음 지뢰가득한 작품!

독서괭 2021-11-02 00:56   좋아요 2 | URL
ㅋㅋㅋ욕싸대기 ㅋㅋㅋ 속시원하게 퍼부어주죠! 전 중간에 에밀리아가 “그 악당”이 이야고인 줄 모르고 바로 옆에 이야고 있는데 “그 악당”을 마구 욕할 때도 넘 웃겼어요 ㅋㅋ

mini74 2021-11-01 00: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이아고 너무 싫어하는 ㅎㅎ 그만큼 인물표현이 대단! 한 것 같아요.

독서괭 2021-11-02 00:57   좋아요 3 | URL
이야고 정말 너무 간악하죠! 가증스럽고 음모 꾸미는 데 너무나 부지런 ㅎㅎ

붕붕툐툐 2021-11-01 19: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밌겠당~ 아직 안 들어서 기쁜 1인 요기요~ㅎㅎㅎㅎ

독서괭 2021-11-02 00:57   좋아요 2 | URL
ㅎㅎ기쁨을 남겨둔 툐툐님 부럽네용~^^ 정말 재밌어요~~
 
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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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과 가능성으로 가득한 1938년의 뉴욕, 밤을 밝히는 불빛들처럼 부지런히 삶을 향해 뛰어드는 20대들. 나의 20대는 어땠던가. 그 시절을 함께 한 존재들을 추억하게 만드는 소설. 근래 읽은 가장 낭만적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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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0-29 22: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괭님의 20대 풋풋하고 사랑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이 작가님 다음 작품도 강추! 괭님 서서히 모스크바로 ~@@@

독서괭 2021-10-30 08:15   좋아요 2 | URL
ㅎㅎ 모스크바 책은 가지고 있으니 시작만 하면 됩니다! 스콧님 소개해주신 신간 번역되어 나오기 전에 얼릉 읽어야겠어요^^

새파랑 2021-10-30 1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가장 낭만적인 소설이라니 ㅋ 근데 벽돌책이군요 😅 표지에서 낭만이 느껴져요~!!

독서괭 2021-10-30 11:00   좋아요 2 | URL
네 제법 벽돌인데 <모스크바의 신사>가 더 큰 벽돌이네요 ㅋㅋㅋ 책도 예쁘고 재미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퀴어이론 페이퍼.. 아이고 앞 내용 다 까먹겠네... 


3. 수행성: 우리는 어떻게 구조 안에서 살아가고 저항하는가

 3) "불가피하게 불순한 자원으로부터 미래를 만들어내는 어려운 노동"

  (1) 브리콜라주, 혹은 improvisation의 실천


   "젠더는 행위다doing" = "젠더는 규제의 장면 안에서 일어나는 a practice of improvisation이다"

   -> 위 영어 해석에 관해, 한글번역판 <젠더 허물기>에는 '즉흥적 실천'이라고 번역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improvisation'의 동사형 'improvise'에는 '임시변통으로 뭐든 있는 것을 끌어다 처리하다(만들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브리콜라주bricolage'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당해 보인다고 한다.


  ※ 브리콜라주가 무엇인가? 찾아보니, 네이버 지식백과에 이렇게 나온다.

접힌 부분 펼치기 ▼

 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그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서 신화()와 의식()으로 대  표되는 부족사회의 지적 활동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용어.

브리콜라주는 원래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 또는 '수리'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말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가 현대인의 논리적 사고와는 판이한 방식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을 묘사하기 위해 이 개념을 도입했다. 그에 의하면 원시사회의 문화제작자인 브리콜뢰르(bricoleur)는 한정된 자료와 도구로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임시변통에 능통한 사람이다. 이와 정반대되는 인물형은 현대의 엔지니어(engineer)이다. 그는 자기가 만들고자 하는 기계에 대해 정확한 개념과 설계도를 가지고 시작하며, 또 철저하게 청사진을 이용하여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브리콜라주 [Bricolage]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펼친 부분 접기 ▲


 어려워 보이지만, 저자의 이 설명을 보면 감이 잡힐 것 같다.


 (...) 우리를 둘러싼 권력 구조의 제약 안에서 일단 구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젠더를 수행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내가 접할 수 있는 한정된 자원으로 나를 특정 젠더 정체성으로 설명하더라도, 내가 입수할 수 있는 다른 자원이 더 많아진다면, 권력 구조에 균열을 내는 집단적 실천이 더 늘어간다면, 몇 년 뒤에 나의 젠더 정체성은 다른 이름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206쪽

 

 위 글을 읽으니 이 책이 생각난다.

 주제독서를 시작하면서 초반에 읽은 책인데, 아니 이렇게 많은 젠더들이 존재해?? 하고 깜짝 놀랄 만큼 이미 이름 붙여진 젠더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이중에 나는 어느 정도에 위치하고 있을까 유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다른 이름'으로 설명되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갈 것이다.












   (2) 불법 점유의 언어


     버틀러가 사용한 '불법 점유usurpation의 언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저자의 설명을 통해 내가 나름대로 이해한 바는, '규범에 들어맞지 않는 자가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규범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이 점에서 '불순한 자원'), 규범적 언어를 불법적으로, 즉 허락받지 못한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데이빗 라이머의 예를 든다. 지난 페이퍼에서도 썼던 이야기인데, 데이빗 라이머는 지정성별이 남성이었으나 생후 8개월 경 포경 수술을 하다가 의료사고로 음경이 거의 불타버렸고, 의사의 권유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받았으나 14세 무렵 정체성 혼란으로 다시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참으로 억울한 의료사고 피해자이다. 이 책에서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내내 의료진의 관찰 대상으로서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옷을 벗어 성기 발달 정도를 내보이라는 요구를 받거나 그의 쌍둥이 남자 형제와 유상 성행위를 강요당한 적도 있었다(209,210쪽)는 내용이 나와 더욱 안타깝다.ㅜㅜ 


    저자는 "트랜스섹슈얼이 자신의 성별을 재지정하기 위해 의료 조치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불법 점유의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고 적는다. (211쪽) 

   이 성별 재지정은 법원에 신청해서 허가를 받을 수 있는데, 그 허가요건에 대해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원의 결정이 변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성기 형성 수술을 받았을 것을 요구하거나, 전환할 성에 관해 전통적으로 요구되는 관습적인 모습으로 살아왔음(그러니까 FTM은 어릴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하고 칼싸움을 즐겨했고, MTF는 인형을 좋아하고 소꿉놀이를 즐겼어야 하는 것이다...)을 밝혀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성별 재지정을 원하는 트랜스섹슈얼로서는 성별이분법이 요구하는 바를 따를 수밖에 없고, 그것은 "트랜스섹슈얼의 의료 조치는 자신의 생존이 그 규범에 달려 있는 사람들이 규범의 틈새를 가로지르며 어떻게든 자신을 '살아도 되는' 존재로 설명하기 위한 필사적인 협상의 과정"(212,213쪽)이라는 것이다.


문득 얼마 읽지 못한 채 놓아둔 <보이지 않는 잉크>의 이 부분이 떠오른다.


  억압적인 언어는 폭력을 반영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폭력 그 자체입니다. 지식의 한계를 반영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식을 제한합니다.  - 28쪽 












   (3) 수행적 모순

     

    이 개념 설명을 위해 버틀러는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라는 대담집에서 2006년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난 미등록 이주자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미국 국가를 멕시코 국가와 함께 스페인어로 노래한 사건을 예로 들었다고 한다.(215쪽)












   '수행성'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래 인용글을 보자. 


버틀러에 따르면 아렌트는 인간이 온전히 인간다움을 간직하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의 권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① 삶의 터전을 가질 권리, ② 권리를 가질 권리, ③ 자유를 가질 권리. 이 권리들은 단순히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는 식의 권리가 아니다. 버틀러는 이 권리 개념들을 수행성과 연결시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자유는 자유에 대한 권리를 요청하는 행위에 앞서서 존재하지 않는다. [...] 오직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자유가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유를 요청하고 선언한다고 해서 바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행위는 자유가 무엇이며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유를 실행한다.   - 216쪽


    '모순'의 의미에 관해서는 아래 인용글을 보자. 


물론 미국 국가를 스페인어로 부르는 행동을 그 자체로 완전히 전복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 또 다른 민족주의로 귀결될 위험, 약간의 다양성들을 첨가한 뒤 다시 동질성을 확인하는 식의 다원주의로 귀결될 위험, 다시금 그저 다른 방식의 종속에 지나지 않을 위험. 그러나 여기엔 이러한 위험과 그 위험을 넘어설 가능성이 항시 공존한다는 모순이 있다. 버틀러는 바로 이 모순이 정치를 추동시킨다고 주장한다. (...) 권리에서 배제된 이들의 권리 요구는 지배적인 언어를 손상시키고 권력관계를 고쳐 쓸 수도 있다. 이러한 수행적 모순이 없다면 정치적 저항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 217쪽



4. 비판이란 무엇인가


비판이란 "삶의 다른 양식들이 가능해지도록, 삶을 규제하는 용어들이 무엇인지를 심문하는" 실천이다.  - 222쪽


2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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