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오셀로 :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오디오북)
윌리엄 셰익스피어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대 비극을 책으로 쭉 읽었을 때도, <오셀로>가 제일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나, 오디오북으로 들어도 오셀로가 제일 재미있다! 

이야고 역의 이인철님 연기에 감탄하며 듣다가, 중반 이후 오셀로가 이야고의 술수에 넘어가 질투와 분노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오셀로 역의 오만석님 연기가 폭발한다. 와~~ 마음 같아서는 기립박수 치고 싶었다. 


이야고는 정말 역사상 최고의 악역이라 할만 하다. 처음부터 단지 '무어인'이라는 이유로 오셀로를 싫어하고, 부관 자리에 앉은 젊고 잘생긴 카시오를 싫어하고, 아내를 비롯한 모든 여성들에 대해 혐오를 서슴치 않는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이용하고 그들이 입는 피해는 안중에도 없다. 현대에서라면 싸이코패스로 분류될 인물이다. 나는 현실의 인물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나약함을 파고들어 그들을 파멸로 이끄는 악마, 그 자체를 형상화한 것 같다고 느꼈다. 

사람의 마음을 잘 간파하는 이야고는 오셀로나 카시오 앞에서는 누구보다 그들을 생각하는 척 하여 누구보다 정직하고 충직하다는 이미지를 쌓는다, 오셀로에게는 데스데모나와 카시오의 부정을 의심하는 기미를 슬쩍 슬쩍 흘리면서도 차마 이야기할 수 없다고 빼면서 '감춰진 진실'이 있음을 오히려 강변하는 전략을 쓴다. 오셀로는 이에 홀랑 넘어가고 만다. 특히 이야고가 은근슬쩍 구체적인 장면을 언급하면서(두 사람이 침대에 누워있다거나, 카시오가 올라탄다거나) 오셀로의 상상을 부추기는 부분은 진정 악마적이다. 오셀로의 머릿속에 이미 박혀버린 망상은 지워지지 않고, 데스데모나의 부정을 90퍼센트 이상 확신하는 상태에서 오히려 이야고와 공모하여 결정적으로 부정을 밝혀낼 전략을 짜기에 이른다. 사랑은 질투에 쉽게 무너지고, 남성연대만이 남는다. 그는 데스데모나가 무슨 말을 하든 이미 들을 마음도 믿을 마음도 없다.


셰익스피어가 정말 사람 심리를 잘 다룬다고 느꼈던 부분은 이거다. 

데스데모나는 베니스의 귀족으로 고결하고 정숙하기로 이름난 처녀였다. 오셀로는 베니스를 위해 많은 공적을 세운 훌륭한 장군이지만, 검은 피부의 무어인이라는 이유로 은근히(때로는 대놓고) 멸시를 당하는 처지다. 그럼에도 데스데모나는 오셀로의 파란만장한 모험담을 듣다가 그에게 사랑에 빠져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그와 몰래 결혼한다. 

바로 이 지점, 데스데모나가 아버지를 배신할 만큼 오셀로를 사랑했다는 것- 그것이 나중에는 데스데모나의 부정의 심증을 제공하고 마는데, 이는 데스데모나의 아버지 브라반시오가 결혼을 인정받고 전장으로 떠나는 오셀로에게 남기는 말에서 드러난다. 

 

브라반시오  이 애를 조심하게 무어, 눈여겨 보라고. 

               아버지를 속였으니 자네를 속일지도.       - 민음사판 <오셀로>, 53쪽


또한 데스데모나가 기꺼이 오셀로에게 모든 것을 바쳤다는 것이, 다시 또 부정의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 "전에 만난 남자(여자)들한테도 이랬니?" 

오셀로는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 보이지만, 백인들 사이에서 멸시받는 위치에 놓인 상태에서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없을 리 없다. 그 자신도 데스데모나의 선택을 받은 것에 확신이 없지 않았을까. 이야고는 그 점을 정확히 파고든다. 

 

이야고  부인께서는 장군님과 결혼하려고 아버님을 속인 분 아닙니까? 

          장군님 얼굴을 무서워할 때가 

          장군님을 제일 좋아할 때가 아니었습니까? 

오셀로  그건 그러네.

이야고  그래서 말인데요, 

         그렇게 젊으신 분이 가면도 쓰지 않고 

         장군님 장인어른을 속이신 거잖아요. 

         장인어른께선 장군님이 마술을 쓴 걸로 아셨잖아요.        - 오디오북 <오셀로>, 3막 3장 


위 부분은 내가 들으면서 받아 적은 것인데, 오디오 제작을 하면서 말을 얼마나 매끄럽게 다듬었는지 알 수 있도록 민음사판 오셀로의 이 장면과 비교해 보았다.


이야고  그녀는 당신과 결혼해서 아버지를 속였고

          떨리고 무서운 듯한 당신의 표정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오셀로  그랬었지.

이야고  아 그럼요,

          너무 어린 여자가 그렇게 시치미를 뚝 떼고

          자기 아버지 두 눈을 새카맣게 속여서

          그는 그게 마술인 줄 알았다니까요.        - 민음사판 <오셀로>, 111, 112쪽



4대 비극 중 다른 세 작품을 들으면서- 특히 <햄릿>에서- 여성혐오를 피할 수 없구나 싶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오히려 이야고가 대놓고 여성혐오를 하고, 이야고가 주장하는 "여자들은 음탕하여 쉽게 부정을 저지른다"는 인식 하에 오셀로가 쉽게 데스데모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였다. 무어인에 대한 인종혐오도 마찬가지다. 결정적으로 에밀리아라는 인물의 대사들은 셰익스피어가 나름대로 여성이 받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에밀리아의 명대사를, 조금 길지만 인용한다. 



데스데모나  에밀리아, 말해봐. (...) 

              정말로 자기 남편을 감쪽같이 속이고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는 

              그런 여자가 정말로 있을까?

에밀리아    세상에는 온갖 여자가 다 있어요. 물론이죠. 

데스데모나  에밀리아는 이 세상을 다 준다면 그렇게 하겠어?

에밀리아    세상 전부 준다면, 생각해 봐야죠.

데스데모나  난, 난 절대로 하지 않아. 달님께 맹세해.

에밀리아    저도 달님이 보는 데서는 하지 않겠지만, 

              어두운 데서야 어때요? (...)

(...)

데스데모나  난 이 세상을 다 준대도 

               그런 나쁜 짓은 절대로 할 수 없어. 

에밀리아     나쁜 짓이라고 해도 이 세상 안에서 일어난 일 아닌가요? 

               그 대가로 세상을 얻는다면 세상은 마님 것이 되고 바로 마님의 세상 안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나중에 바로 고치면 돼죠. 

데스데모나   그런 여자가 세상에 존재할까?

에밀리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을 걸요. 

               그런 짓으로 생긴 자식들로 세상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이 있어요. 

               하지만 여자가 잘못을 저지르는 건 남편 때문이에요. 

               남편 노릇을 소홀히 하고 아내에게 줘야 할 돈을 다른 계집 손에 쥐어주고 

               터무니 없는 질투에 사로잡혀서 여자들을 가두고, 때리고, 생활비를 줄이니까. 

               여자들도 화가나서 그러는 거죠. 아무리 정숙한 아내라도 복수하고 싶을 거예요. 

               남편들도 알아야 해요. 아내들에게도 남자들처럼 감각과 감정이 있다는 걸요. 

               눈도 있고 코도 있듯이 단맛이나 신맛도 똑같이 볼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왜 남자들은 이 여자에서 저 여자로 옮겨 다니죠? 재미로 그러나요? 정말 그러는 것 같아요. 

               남자들은 여색을 타고 났나요? 그럴지도 모르죠. 남자들 의지가 약해서 그런 게 아닌가요? 

               그런데 여자도 남자들처럼 열정도 있고 욕망도 있고 장난삼아 재미를 볼 수도 있잖아요? 

               우리 여자들도 의지가 약할 수도 있고 색을 밝힐 수도 있잖아요. 

               남자들도 우리 여자를 소중히 여겨줘야 해요. 

               세상에 여자들이 저지르는 모든 나쁜 짓은 원래 남편들이 먼저 저지르고 가르쳐준 게 아니고 뭐예요?

- 오디오북 <오셀로>, 4막 3장



에밀리아 언니 짱 멋져.. 완전 현자 수준.


다만 마무리는 다소 허망했다. 일단 이야고가 그렇게 쉽게 본색을 드러내다니. 어떻게든 거짓말로 에밀리아의 말을 덮어버릴 능력이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오셀로도 불쌍하긴 한데, 데스데모나랑 에밀리아가 훨씬 불쌍하고, 자기 연민에 빠진 대사들은 좀... 끝까지 자기 변명을 하나 싶긴 했다. 


아무튼 무지무지 몰입되고 재미있으니 많이들 들어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오디오북 많이 많이 제작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10-31 23: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께서 완전 강조하시니 11월 1일에 구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카드값 리셋 기념~!!)
저도 오셀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오디오북으로 꼭 다시 들어봐야 겠어요~!!

독서괭 2021-10-31 23:38   좋아요 6 | URL
헤헤 영업성공!!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닷~^^ 새파랑님의 감상평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미미 2021-10-31 23: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에밀리아 너무 좋았어요! 특히 오셀로에게 욕퍼부을때ㅋㅋㅋㅋ김치 싸대기아닌 욕 싸대기 맞고 드뎌 괴로워하기 시작한 오셀로의 양심ㅋㅋㅋㅋ 곳곳에 웃음 지뢰가득한 작품!

독서괭 2021-11-02 00:56   좋아요 2 | URL
ㅋㅋㅋ욕싸대기 ㅋㅋㅋ 속시원하게 퍼부어주죠! 전 중간에 에밀리아가 “그 악당”이 이야고인 줄 모르고 바로 옆에 이야고 있는데 “그 악당”을 마구 욕할 때도 넘 웃겼어요 ㅋㅋ

mini74 2021-11-01 00:2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이아고 너무 싫어하는 ㅎㅎ 그만큼 인물표현이 대단! 한 것 같아요.

독서괭 2021-11-02 00:57   좋아요 3 | URL
이야고 정말 너무 간악하죠! 가증스럽고 음모 꾸미는 데 너무나 부지런 ㅎㅎ

붕붕툐툐 2021-11-01 19: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재밌겠당~ 아직 안 들어서 기쁜 1인 요기요~ㅎㅎㅎㅎ

독서괭 2021-11-02 00:57   좋아요 2 | URL
ㅎㅎ기쁨을 남겨둔 툐툐님 부럽네용~^^ 정말 재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