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퀴어이론 페이퍼.. 아이고 앞 내용 다 까먹겠네...
3. 수행성: 우리는 어떻게 구조 안에서 살아가고 저항하는가
3) "불가피하게 불순한 자원으로부터 미래를 만들어내는 어려운 노동"
(1) 브리콜라주, 혹은 improvisation의 실천
"젠더는 행위다doing" = "젠더는 규제의 장면 안에서 일어나는 a practice of improvisation이다"
-> 위 영어 해석에 관해, 한글번역판 <젠더 허물기>에는 '즉흥적 실천'이라고 번역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improvisation'의 동사형 'improvise'에는 '임시변통으로 뭐든 있는 것을 끌어다 처리하다(만들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브리콜라주bricolage'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당해 보인다고 한다.
※ 브리콜라주가 무엇인가? 찾아보니, 네이버 지식백과에 이렇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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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그의 저서 『야생의 사고』에서 신화(神話)와 의식(儀式)으로 대 표되는 부족사회의 지적 활동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한 용어.
브리콜라주는 원래 프랑스어로 '여러 가지 일에 손대기' 또는 '수리'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말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가 현대인의 논리적 사고와는 판이한 방식으로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을 묘사하기 위해 이 개념을 도입했다. 그에 의하면 원시사회의 문화제작자인 브리콜뢰르(bricoleur)는 한정된 자료와 도구로 다양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임시변통에 능통한 사람이다. 이와 정반대되는 인물형은 현대의 엔지니어(engineer)이다. 그는 자기가 만들고자 하는 기계에 대해 정확한 개념과 설계도를 가지고 시작하며, 또 철저하게 청사진을 이용하여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는 사람이다.
어려워 보이지만, 저자의 이 설명을 보면 감이 잡힐 것 같다.
(...) 우리를 둘러싼 권력 구조의 제약 안에서 일단 구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젠더를 수행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내가 접할 수 있는 한정된 자원으로 나를 특정 젠더 정체성으로 설명하더라도, 내가 입수할 수 있는 다른 자원이 더 많아진다면, 권력 구조에 균열을 내는 집단적 실천이 더 늘어간다면, 몇 년 뒤에 나의 젠더 정체성은 다른 이름으로 설명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206쪽
위 글을 읽으니 이 책이 생각난다.
주제독서를 시작하면서 초반에 읽은 책인데, 아니 이렇게 많은 젠더들이 존재해?? 하고 깜짝 놀랄 만큼 이미 이름 붙여진 젠더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이중에 나는 어느 정도에 위치하고 있을까 유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다른 이름'으로 설명되는 사람들은 계속 늘어갈 것이다.
(2) 불법 점유의 언어
버틀러가 사용한 '불법 점유usurpation의 언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저자의 설명을 통해 내가 나름대로 이해한 바는, '규범에 들어맞지 않는 자가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규범의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이 점에서 '불순한 자원'), 규범적 언어를 불법적으로, 즉 허락받지 못한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데이빗 라이머의 예를 든다. 지난 페이퍼에서도 썼던 이야기인데, 데이빗 라이머는 지정성별이 남성이었으나 생후 8개월 경 포경 수술을 하다가 의료사고로 음경이 거의 불타버렸고, 의사의 권유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받았으나 14세 무렵 정체성 혼란으로 다시 남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참으로 억울한 의료사고 피해자이다. 이 책에서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내내 의료진의 관찰 대상으로서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옷을 벗어 성기 발달 정도를 내보이라는 요구를 받거나 그의 쌍둥이 남자 형제와 유상 성행위를 강요당한 적도 있었다(209,210쪽)는 내용이 나와 더욱 안타깝다.ㅜㅜ
저자는 "트랜스섹슈얼이 자신의 성별을 재지정하기 위해 의료 조치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언어"도 불법 점유의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고 적는다. (211쪽)
이 성별 재지정은 법원에 신청해서 허가를 받을 수 있는데, 그 허가요건에 대해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원의 결정이 변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성기 형성 수술을 받았을 것을 요구하거나, 전환할 성에 관해 전통적으로 요구되는 관습적인 모습으로 살아왔음(그러니까 FTM은 어릴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하고 칼싸움을 즐겨했고, MTF는 인형을 좋아하고 소꿉놀이를 즐겼어야 하는 것이다...)을 밝혀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성별 재지정을 원하는 트랜스섹슈얼로서는 성별이분법이 요구하는 바를 따를 수밖에 없고, 그것은 "트랜스섹슈얼의 의료 조치는 자신의 생존이 그 규범에 달려 있는 사람들이 규범의 틈새를 가로지르며 어떻게든 자신을 '살아도 되는' 존재로 설명하기 위한 필사적인 협상의 과정"(212,213쪽)이라는 것이다.
문득 얼마 읽지 못한 채 놓아둔 <보이지 않는 잉크>의 이 부분이 떠오른다.
억압적인 언어는 폭력을 반영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폭력 그 자체입니다. 지식의 한계를 반영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식을 제한합니다. - 28쪽
(3) 수행적 모순
이 개념 설명을 위해 버틀러는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라는 대담집에서 2006년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난 미등록 이주자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대규모 거리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미국 국가를 멕시코 국가와 함께 스페인어로 노래한 사건을 예로 들었다고 한다.(215쪽)
'수행성'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래 인용글을 보자.
버틀러에 따르면 아렌트는 인간이 온전히 인간다움을 간직하면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의 세 가지의 권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① 삶의 터전을 가질 권리, ② 권리를 가질 권리, ③ 자유를 가질 권리. 이 권리들은 단순히 이미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는 식의 권리가 아니다. 버틀러는 이 권리 개념들을 수행성과 연결시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자유는 자유에 대한 권리를 요청하는 행위에 앞서서 존재하지 않는다. [...] 오직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자유가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유를 요청하고 선언한다고 해서 바로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행위는 자유가 무엇이며 무엇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유를 실행한다. - 216쪽
'모순'의 의미에 관해서는 아래 인용글을 보자.
물론 미국 국가를 스페인어로 부르는 행동을 그 자체로 완전히 전복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 또 다른 민족주의로 귀결될 위험, 약간의 다양성들을 첨가한 뒤 다시 동질성을 확인하는 식의 다원주의로 귀결될 위험, 다시금 그저 다른 방식의 종속에 지나지 않을 위험. 그러나 여기엔 이러한 위험과 그 위험을 넘어설 가능성이 항시 공존한다는 모순이 있다. 버틀러는 바로 이 모순이 정치를 추동시킨다고 주장한다. (...) 권리에서 배제된 이들의 권리 요구는 지배적인 언어를 손상시키고 권력관계를 고쳐 쓸 수도 있다. 이러한 수행적 모순이 없다면 정치적 저항이란 불가능한 것이다. - 217쪽
4. 비판이란 무엇인가
비판이란 "삶의 다른 양식들이 가능해지도록, 삶을 규제하는 용어들이 무엇인지를 심문하는" 실천이다. - 222쪽
2장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