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솔직하다.

너덧 살만 되어도 슬금슬금 거짓말을 시작하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하는 본능에 가까운 거짓말과 달리, 남을 배려하기 위해 하는 '선의의 거짓말'은 훨씬 늦게서야 배운다. 따라서 본의 아닌 팩폭을 날리게 된다.

내 보기에는 한참 젊고 예쁜 승무원을 지칭하며 "승무원 누나에게 부탁해 봐"라고 하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누나 아닌데?"하고는, 다시 한번 보고 "아줌마인데?"하며 의아해 하는 둘째..

(다행히 승무원이 근처에 있지 않았다..)

뜬금없이 아빠에게 "아빠도 어릴 때 저처럼 잘생겼었어요?" 하고 묻고는, 

시어머니가 "아빠 아기 때 예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예쁘다고 했어~" 하니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거짓말!!"이라 외치는 둘째.. ㅋㅋㅋㅋ 

하지만 나에게 와서는 "엄마는 예뻐요. 그냥 예쁜 게 아니라 엄청엄청 예뻐요" 하는 둘째. 

으하하하. 



자주 하는 쓸데없는 공상 중 하나.

램프 요정이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들어 주겠다고 하면, 무엇을 빌까?

빌 것은 차고 넘친다.

일단 세계 평화. 

성범죄 없는 세상. 

세상 사람 모두가 환경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것. 

아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야 사라져라. 

등등 기타 등등. 


그러나 이런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가 있을 리 없다. 

개인적인 소원만 들어준다고 쳐 보자. 

가족 포함 가능하다면, 우선 "나와 내 가족이 범죄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않게 해 달라"고 빌고 싶다. 

가족도 안 되고, 나 자신에 대한 것만 가능하다면? 

첫째는 무조건, 아주 강한 체력!! 

좀 더 욕심 내자면 '완벽한 건강'이고, 좀 더 구체화하자면 '하루 6시간만 자도 하루 종일 아주 명료한 정신 상태로 깨어있을 수 있는 체력을 달라"고 빌겠다(현재 8시간 자도 안 명료한 사람). 

둘째는 "평생 범죄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않게 해 달라"이고(가해자는 물론, 교통사고 가해자를 포함한다. 내가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제일 높은 분야),

셋째는, 이게 제일 고민스러운 부분인데(그렇다. 나 진지함) 

 "지금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과거로 가 다시 살게 해 달라."


여기에서 공상은 걷잡을 수 없이 치달아 가기 시작한다. 

과거 언제로 돌아갈 것인가? 과연 과거로 돌아가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물론 지금보다 멋진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다. 

현재의 삶에 크게 불만도 없으면서 이런 공상을 하는 이유는 내가 욕심쟁이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현재 내 직업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므로 직업은 그대로 갈 듯. 

제일 큰 문제는 결혼과 출산인데, 말이다. 



앤드루 포터는 '숨을 쉬어'라는 단편에서 다섯 살 아들이 물에 빠진 모습을 바라보며 얼어붙어 있던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구조된 아이는 괜찮아 보였지만 갑작스런 기침을 하곤 하는데, '이차성 익사'가 아닐까 싶어 계속 검색해 보는 화자는 불안에 잠을 이룰 수 없다. 아이의 상태를 지켜보며 새우는 밤, 아이가 묻는다. 

"아빠는 뭘 하고 있었어?(157쪽) 


얼마 전에 우리 둘째 아이도 물에 빠졌다. 

발버둥 치는 아이를 향해 다가가던 그 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남편과 나 또한 이차성 익사(마른 익사라고도 한다)를 걱정하며 하루를 보냈는데, 다행히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러나 상상해보게 되는 것이다. 만일 아이가 잘못되었다면, 그 후 우리가 겪었을 고통의 깊이를. 



"부모가 되면 사람이 바뀐다 어쩐다, 다들 얘기하잖아요." 린지가 말했다. "뭐, 물론 그렇긴 해요.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흔히 떠올리는 변화와는 다를 뿐이죠. 뻥 뚫린 마음이 채워진다거나 하진 않아요. 무언가를 해결해주진 않죠. 그저 달라질 뿐이랄까요? 때로는 더 좋게, 때로는 더 나쁘게.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전과 다르게."

(...) 사실은 부모가 되면, 적어도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더 불행해진다는 상당히 강력한 증거도 있다, 라고 말했다. ('실루엣', 181, 182쪽) 


앞으로도 기쁨과 걱정이, 행복과 고통이 들쭉날쭉 예고 없이 찾아오지 않겠는가. 삶의 다른 국면에 들어서 버린 사람으로서 감수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자발적으로 과거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내 뜻과 무관하게 돌아간다면,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이 망해 가는 세상에 아이가 겪게 될 어려움이 두렵다. 코로나 시국에 어린이집에서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이 사태를 미리 알았다면 아이를 낳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백부부>에서 장나라가 회귀 후 아들을 생각하며 통곡했던 것처럼, 그렇게 울게 될지언정. 


그러다 문득, 지금 이 순간-현재에나 충실하자, 하는 생각에 정신을 차린다. 미래 어느 순간에는 지금을 떠올리며 그때 더 잘해 볼걸, 하게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미련한 인간은 매번 이런다. 

'소원떡집' 시리즈의 아이들 소원은 귀엽고 소소하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몽글몽글 떠오르는 무지개떡'이라든가, '속마음이 조곤조곤 들리는 조롱이떡' 같은 것들. 나의 소원도 이런 식으로 바꾸어 본다. 


'꿀떡꿀떡 먹어도 배 안 나오는 꿀떡' .....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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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2-26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하 둘째ㅋㅋㅋㅋㅋㅋㅋ 둘째야 사랑해! ㅋㅋㅋㅋㅋ 근데 둘째야 너 엄마한테는 거짓말한다???!!!!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2-26 15:29   좋아요 0 | URL
사랑은.. 거짓말도 하게 하는 법 ㅋㅋㅋ

건수하 2024-02-26 17: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궁 얼마나 놀라셨을까요.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전 예전부터 독서괭님 직업이 궁금했지 말입니다..

독서괭 2024-02-26 17:47   좋아요 1 | URL
훗, 그것은..
비~밀
신비스럽고 싶군요 ㅋㅋㅋ
건수하님,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4-02-26 18:10   좋아요 1 | URL
잠사모 회장인데요?!
부업으로 다사모 회장도 뛰고 있읍니다~!!

건수하 2024-02-26 18:15   좋아요 1 | URL
알려주시리라 생각은 안 했구요 ㅎㅎ
만족스럽다니 참 부럽습니다 :)

독서괭 2024-02-26 18:17   좋아요 0 | URL
잠사모도 다사모도 돈이 안 되어서..
부업으로 다른 직업활동 중입니다. 흑.

잠자냥 2024-02-27 08:38   좋아요 1 | URL
돈은 안 들어와도 가끔 책은 들어오지 않나요??🙄

아 근데 가끔 책 반입이라니까 무슨 감옥에 책 넣어주는 거 같앜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2-27 09:37   좋아요 1 | URL
잠사모 회장, 결국 회비 횡령 발각되어 구속 사태… 구치소에 책 넣어준 잠자냥의 따스한 손길에 눈물.

은오 2024-02-26 17: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님 소원목록 보고 수치스러워진 은바오 ㅋㅋㅋㅋㅋㅋ 아 내 소원......ㅠㅠ
1. 무병단수 2. 평생 일 안해도 먹고살만큼의 돈 3. 엄빠건강
이것도 부질없다!! ㅋㅋㅋㅋㅋㅋㅋ

둘째아가도 괭님도 너무 놀라셨겠어요. 아이고 읽으면서 철렁.. 큰 일 없이 넘어가서 너무 다행입니다.

독서괭 2024-02-26 17:50   좋아요 1 | URL
왜 수치스럽죠?? 아, 무병단수 보고 웃음 ㅋㅋㅋ 근데, ‘단수‘가 어느 정도예요? 저는 80이 적당할 것 같...
남편이 실수를 잘 안 하는 편인데 이번 사고는 남편 실수라.. 저는 걱정만 했지만 남편은 +자책!
역시 아이들은 건강이 최고의 효도입니다! 그러니 은바오님도 건강 챙기세요!

은오 2024-02-26 18:03   좋아요 1 | URL
세계평화 범죄근절 소원 앞에서 무병단수 돈 외치려니 ㅋㅋㅋㅋㅋㅋ
인간의 자연수명이 마흔인가 30대 후반인다 그렇다던데 전 그게 지금 평균수명보다 좋은 것 같고.... 의학이 발달했으니 50까지도 괜찮을 것 같은데 80은 좀 깁니다!! ㅋㅋㅋㅋㅋㅋㅋ 80까지 살아야 한다면 괭님도 저도 무병하길 바라며 ㅋㅋㅋ
괭님이랑 건강하게 알라딘하는 것도 소원입니다~!!

독서괭 2024-02-26 18:18   좋아요 1 | URL
애가 있어서 80까진 살아야 할 것 같아요 ㅋㅋ 전 눈이랑 뇌가 멀쩡해서 책 읽을 수 있다면 그 정도는 살아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나 책을 못 읽을 상태가 되면 괴로울 듯..
우리 건강히 오래오래 알라딘 해요!!

거리의화가 2024-02-26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있으면 아프고 다칠까 그걸 가장 염려하게될 것 같아요. 아이가 무탈해서 다행입니다.
저는 체력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적은 있는데 그 이외에는 역시 현재가 좋은 것 같아요^^;

독서괭 2024-02-26 17:51   좋아요 1 | URL
화가님도 체력 ㅜㅜ 저는 과거로 돌아가면 지금 하는 모닝운동 그때부터 할 거예요..!! ㅋㅋ
현재에 만족하는 우리, 좋은 삶을 살고 있군요^^

페넬로페 2024-02-26 1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딸아이는 지금도 엄마 좋아, 엄마 예뻐라고 얘기해요. 그건 진심입니다.
독서괭님의 소원은 인류 평화적이네요.
저 같으면 로또 당첨이라고 말할텐데요 ㅎㅎ
그래도 무조건 건강이 최고죠^^

독서괭 2024-02-26 21:54   좋아요 1 | URL
페넬로페님처럼 저도 계속 그 말 듣고 싶어요 ㅎㅎ
이왕 소원 빌 거 지구적 차원으로.. ㅋㅋ 돈 많아도 아프거나 범죄피해 당하면 소용없으니까요 ㅠ 그래도 4개까지 빌 수 있다면 저도 복권 ㅋㅋ 하지만 로또 말고 통크게 파워볼로 가겠습니다!!

다락방 2024-02-27 08: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과거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 ‘지금의 기억을 갖고‘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과거로 돌아간다면, 에 대해 생각할 때 언제나 ‘안돌아가‘ 라고 하는 이유가 지금의 제 생각으로 돌아갈 것 같진 않기 때문이죠. 저는 사실 공부에 대한 미련이 많이 남아서 그런건데 만약 과거로 돌아가서 과거의 제 생각과 사고방식 이라면 돌아가봤자 공부를 또 안할 것 같기 때문에... 그러나 지금 돌아간다면 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또 공부 안해서 후회하는 게 너무 크기 때문에 할 것 같습니다.... 만 또 모르지요. 그래도 또 안할지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아이를 키우는 것은 정말 언제나 애씀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애씀보다 더한 염려와 걱정도 그렇고요. 저는 부모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린 조카들 때문에 늘 너무 사랑해 마음이 아픕니다. 혹여 어딘가에서 다치진 않을까 상처받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태산이에요. 그러다가도 그래, 상처를 받지 않는 삶은 없으니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야겠지 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저는 그런 면에서 부모들이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성격이라면 전전긍긍해서 굉장히 신경질적이 될 것 같거든요. 어쩌면 이런 성격이라 저는 애초에 이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그 모든 염려와 걱정을 가지고도 계속해 함께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또 돕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독서괭 님은 일도 하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영어 공부도 하고 ㅠㅠ 멋진 사람 ㅠㅠㅠ

독서괭 2024-02-27 14: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락방님!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가 아니고서는 아무 의미가 없을 듯 합니다. 또다시 대학시절 술 먹고 연애하고 책은 안 읽고 그러겠죠..? ㅜㅜ 그 시간 자체가 나쁜 경험은 아니었지만, 그걸 다 겪고 난 내가 다시 2회차 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욕심많은 생각을 자꾸 합니다 ㅋㅋㅋ 다락방님이라면 여성주의와 영어 공부는 열심히 하실 것 같은데요!!
다락방님 대범하실 것 같은데 전전긍긍 하시는군요. 저희 남편도 불안이 많은 사람인데 그래서 아이를 키우며 더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맨날 위험하다,그러다 다친다를 달고 삽니다 ㅎㅎ 그래도 잘 키우셨겠지만, 지금 조카들에게 이모/고모의 역할도 아주 중요하니까요! 육아의 일부를 담당하고 계신 겁니다.
다락방님처럼 멋진 알라디너가 되겠어요 ♥

단발머리 2024-02-27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81쪽, 182쪽의 문장에 무거움을 느낍니다. 불행과 행복 중에 무엇이 더 컸는가 물어보면 저도 뭐라 말하기 힘들거 같고요. ‘걱정거리‘라는 표현을 자주하거든요, 저희집은요. 자식은 평생의 ‘걱정거리‘다. 그게 걱정거리를 ‘준다‘거나 너 때문에 힘들다는 뜻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 자식 걱정을 한다는 의미에서요. 마지막 순간까지 매여 있을 수 밖에 없는....

전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오늘밤에는 좀 생각해 보고 싶어요.
깜짝 놀라셨겠어요. 다행히 지나가게 되어서 너무 다행이고요.
혹 아직도 가슴 쿵쾅거리시면 ‘우황청심환‘ 마시는 게 있더라구요. 그거라도.........

독서괭 2024-02-28 09:02   좋아요 1 | URL
걱정거리.. 정말 그렇습니다ㅜㅜ 늘 걱정, 또 걱정. 그 걱정을 또 너무 드러내면 안 될 것 같아서 몰래 걱정. 나의 책임인 사람이 늘어날수록 걱정도 늘기 마련인데, 또 아이들은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니까요.
과거로 돌아가는 것, 간밤에 생각해 보셨나요? ㅎㅎ 전 아무래도 이불킥 사건들은 좀 삭제하고 싶네요..
지금은 전혀 가슴 쿵쾅거리지 않습니다 ㅋㅋ 빠른 극복 ㅋㅋ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