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생활자의 책장' 팟캐스트를 한창 들으며 손희정님에게 마음의 하트를 뿅뿅 날리던 때(그런 것치곤 책은 안 샀....), '을들의 당나귀 귀'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시고 책으로 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권은 못 사고 2권만 샀네. 손희정님과 한국여성노동자회가 함께 기획했다.
'고루한 세계를 돌파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라는 부제가 마음에 든다.
내용은 더 마음에 든다. 한명씩 게스트를 초청하여 나눈 대담을 정리한 것인데,
학자, 에세이스트, 영화감독 등 다양한 게스트들의 '고루한 세계를 돌파하기 위한 분투'를 잘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마지막, 난민 문제를 다룬 김현미 교수편, "'여기'를 확장하는 정치를 꿈꾸며"가 가장 인상적.
# 아직도 짐만 싸면 신이 나 - 장영은
얼마 전 읽은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을 엮은 문학연구자. 프로필을 보니 저서가 꽤 많다. 나혜석 책을 감명깊게 읽었기에 더욱 마음에 닿았던 인터뷰. 이미 일부를 페이퍼에 옮겼었는데, 그중 일부만 다시 인용한다.
영은 (...) '사람은 누구한테나 자기만의 힘이 있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아무리 가진 것 없고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자기만이 고유하게 가지고 있는 힘이 한 가지, 혹은 두 가지가 있다.' 이런 말도 해요. 저는 그 말이 어떤 글보다도 크게 다가왔어요. 이혼 후 아이들까지 다 뺏기고, 하는 일마다 망하고, 정말 생계가 막막해지죠. 그래도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게 있는 힘이 뭘까?'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았고, 끝까지 쓰고 그렸죠. 생의 마지막에 양로원에 있으면서도 엄청나게 많이 썼다고 해요.
(...) 끝까지 뭐라도 하려고 노력했던 나혜석의 모습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사람들이 흔히 나혜석이 폐인이 되어 길 위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 그렇게 무기력한 모습은 아니었다는 거죠. - 42쪽
지금 읽고 있는 <페미니즘의 도전>에도 나혜석 이야기가 나와서 반갑다. 나혜석과 비슷하게 무연고자로서 병원에서 생을 마친 이중섭에 대한 평가와 나혜석에 대한 평가가 방향을 달리한다는 것.
장영은님이 쓴 다른 책들. 이외에도 공저로 쓰신 책들이 여럿 있다.
# 우리가 몸속에 품은 수많은 동사들 - 김혼비
김혼비!! 내가 좋아하는 작가 아닌가. 이 책을 처음 배송받았을 때도 제일 먼저 김혼비 작가 부분을 펼쳐 보았었다(읽지는 않...).
어떻게 축구를 하고 그 얘기를 글로 옮기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은 무엇인지 등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있어 좋았다.
혼비 (...) 이 책에서 하고 싶었던 건, (...) 몸을 쓰는 재미를 알게 된 여자들이 그라운드를 넓게 쓸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였어요. - 52쪽
혼비 (...) 여자다움이라는 미션이 여자아이들에게 내면화되는 순간, 움직임부터가 확 쪼그라드는 것 같아요. - 60쪽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사이렌: 불의 섬>을 2회 보고는 더 못 보고 있지만(재미없어서는 결단코 아니다..ㅠㅠ), 출연한 인물들의 면면에 가슴이 뛰고 막 몸이 근질거리는 느낌이었는데, 소방팀 리더 김현아님의 경향신문 인터뷰를 보고 너무 멋져서 쓰러질 뻔.
- 여성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제가 그럼 좀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이야기할게요. 포기하지 마세요. 체제는 뒤집으라고 있는 거예요. 체격은 키울 수 없어도 체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 변화시키고 개혁하세요. 저도 항상 먼저 뛰어들겠습니다."
언니...!! 멋있으면 다 언니다.
# 이 세계의 스테레오 타입은 너무 지루하지 않은가 - 전고운
# 익숙하지 않은, 예상되지 않는 - 이경미
# 페미니스트 감각이 다큐멘터리가 된다면 - 김일란
# 마음의 능력을 믿는 영화 - 윤가은
영화감독 전고운. 영화감독 이경미. 영화감독 윤가은. 영화 별로 안 보는 나도 이 분들 이름은 들어봤다. 전고운님은 <소공녀>로 팟캐스트 출연하셨을 때였나.. 이경미님은 책 <잘돼가? 무엇이든>으로 김하나의 측면돌파에 출연하셨던 기억이 난다. 윤가은님은 어디 나오셨더라.. 혼밥생활자였나? 아무튼 이분의 <우리들>은 귀에 익다.
김일란 영화감독은 이름은 낯설지만 용산참사를 다룬 <두 개의 문>은 들어본 듯.
지가 영화까지 보기엔 너무 시간이 없어요.. 언젠가 꼭 볼게요 ㅠㅠ
윤가은 감독님 영화들은 어린이 내지 청소년을 다루고 있어서 아이들이 초고 쯤 되면 같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희정 (...) 예술은 내 고통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세상의 고통에 대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경미 내 고통으로부터 출발하더라도, 내 고통에 머물면서 그것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고통으로부터 출발해서 내 고통이 누군가의 고통과 닿는 순간을 찾아서 그걸 바라볼 줄 아는 시선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131쪽
일란 (...) 저에게 페미니즘은 정체성이기도 하고 삶의 지향이기도 하고, 또 계속 훈련해 온 인식론이거든요. 무엇보다 질문을 만드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두 개의 문>을 구상할 수 있었던 건 페미니즘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었어요. 왜냐하면 피해와 가해의 이분법을 넘어서 보려고 했기 때문에 국가 폭력의 문제가 눈에 들어온 거니까요. - 161쪽
전고운 감독님 책들
이경미 감독님 책
윤가은 감독님 책
#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질문한다 - 배윤민정
친인척 사이 호칭 차별 개선을 위내 싸우는 과정을 담은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로 알려진 작가. 휴, 남편 및 시가 식구들과 호칭 문제로 다투다니, 생각만 해도 나는 피곤한데, 그냥 넘어가고 싶은데, 이걸 해내시다니 대단하다고 느꼈다.
지혜 서열과 위계가 반영되어 있는 호칭에 대해 비판하면서, 그런 관습에 저항하는 까닭은 그 관습이 우리의 사랑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쓰셨어요. 누군가 보기에는 시끄럽게 만드는 사람이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
민정 한 사람이 불만을 꾹 참고 나머지 사람들만 하하호호 웃는 모습이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그런 행동이 사랑을 지키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관계를 포기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는 갈등을 너무 두려워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요. 저는 이런 것을 '갈등' 대신에 '역동'이라는 말로 바꾸고 싶어요. - 222, 223쪽
민정 저는 싸우자고 결심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방향타를 딱 잡고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같은 사건을 놓고 더 많은 경험을 얻은 쪽이 이기는 거죠. 갈등이 있을 때 내가 상대를 바꿔야만 이긴 걸로 생각하지 말고, 이 갈등을 통해서 내가 또 누구와 연결되고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가고, 또 그 과정에서 내가 무엇을 발견하고 얻는가에 집중한다면 우리가 싸움을 해도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231쪽
그런데 2021년 출간된 <아내라는 이상한 존재> 소개를 보니 이혼 과정을 담았다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그때까지 이분이 원없이 노력했겠구나 싶기도 하다. 이 책에 대해서는 평이 많이 갈리던데, 어떨지.
배윤민정님의 책
# 내 '이야기'가 정치적 '담론'이 될 때 - 은하선
TV 안보고, 인터넷 기사도 별로 안 보는 나도 EBS 방송 '까칠남녀'의 성소수자 회차에 대한 이슈는 들어 알고 있다. 은하선님이 바로 그 회차 출연진 중 한명이었다. 그 여파로 겪은 일들을 조곤조곤 풀어 놓는데, 참 우리 사회 갈길 멀었다.
희정 최근에 한 선배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싸움, 투쟁, 운동이란 거는 내가 싫은 걸 끌어내리기 위해서 하면 오래 못 간다. 네가 사랑하는 걸 지키기 위해서 해야 오래간다." - 265,266쪽
은하선님의 책(이외에도 공저로 여러 권의 책들이 있음)
# '소녀'와 '할머니'의 이분법을 넘어 - 허윤
소제목 보면 느낌 오시겠는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챕터. 위안부 문제에 얽힌 논쟁들이 많고, 저변에 깔린 논리가 매우 반페미니즘적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페미니즘의 도전>에 나오는 위안부 누드 사건이 문제를 잘 보여주는 듯.
허윤 (...) 사실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은 강력한 역사의 행위자로서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왔는데, 소녀상이 그분들을 '돌보고 지켜 줘야 하는 소녀'로 고착시키는 효과가 분명히 있으니까요. <아이 캔 스피크> 같은 영화가 특별하다고 하는 게, '위안부' 피해자 여성이 욕쟁이 할머니로 그려진 적이 이전에는 없었거든요. - 285, 286쪽
허윤님의 책들(그 외 여러 공저들과 옮긴 책들이 있음)
검색하니 최근에 발간된 <지금의 균형>이라는 책이 제일 위에 뜨는데 전혀 다른 분이다.
오 <1950년대 한국소설의 남성 젠더 수행성 연구> 흥미로워 보이지 않나요?(누구한테 말하냐)
# '여기'를 확장하는 정치를 꿈꾸며 - 김현미
다른 주제와 비교할 때 난민 부분은 관심도가 떨어지는 편이었는데, 이 챕터가 굉장히 좋았다. 난민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공해준달까.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들에게 정부가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을 때, 제주도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원센터를 만들고 일자리를 찾아주고, 그렇게 애썼다는 내용은 감동적이다.
현미 '무임승차론'은 가짜 뉴스에 의해 확산되었지만,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평등, 다양성, 인권 존중같은 내재적 가치가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난민과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사회의 포용성을 높이는 노력을 하다 보면, 한국 사회의 폐쇄적인 국민 중심주의도 극복하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도 높아지겠지요. 저는 난민들을 우리에게 다양한 질문을 제기해 주는 중요한 사회적 행위자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윤옥 사회의 민주주의를 성숙시킬 수 있는 중요한 행위자라니, 난민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네요.
현미 적대와 환대의 감정은 고정된 것이 아니에요. 낯선 것과 대면하면 히스테리적 적대감을 품게 되죠. 하지만 서로 알아 가는 과정에서 적대를 멈추는 순간이 오게 되고, 그 순간 환대가 일어나는 거잖아요. 환대와 적대가 그렇게 극단에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 324, 325쪽
김현미님의 책들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은 출간되었을 때 담아두었던 것 같은데, 이분 책이었군!
주제별로 깊은 사유를 담고 있는 그런 페이퍼.. 였다면 좋았겠지만, 능력부족으로 정리만 해둔다.
멋진 페미니스트들의 존재를 아는 것은 그 자체로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