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 같다. 코로나 기간에 거의 읽지 못했던 책들을, 그뒤 틈틈이 읽어나가고 있다. 책이란 참 좋구나, 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몇 년 동안 열심히 읽지 못했/않았던 시간들이 아깝다.
연이은 일들로 좀 바빴다.
둘째의 엄마껌딱지 증상과 징징거림이 갑자기 심해져서 고생하던 가운데, 남편과 크게 싸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확진되었고, 둘째가 좀 나아지자 첫째의 똥고집/반항이 극에 치달았고, 나은지 얼마나 됐다고 첫째가 또 감기에 걸렸고.. 그렇게 명절을 보낸 후 간신히 숨을 돌린다.
하지만 얻은 것도 크다.
싸움이 좋은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와 배우자는 둘다 속으로 삭이는 편이지 그때그때 하고싶은 말을 하거나 감정표출을 즉각적으로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것. 특히 내쪽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더 못해왔는데, 이번에 좀 쏟아내고 나니 속에서 맴돌기만 하던 말들과 함께 쌓여있던 분노, 억울함, 서러움 같은 것들이 많이 사라졌다. 이런 결과는 내가 싸움의 우위에 서서 남편으로부터 잘못을 사과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남편이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속에 쌓아왔던 분노, 억울함, 서러움 같은 것들이 비록 근거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왜곡되어 있었으며, 나 스스로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이 독립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사실은 훨씬 의존적이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시간을 자유롭게 낼 수 없는 남편의 상황 때문에 일해야 하는 시간을 쪼개어 아이들을 케어하는 것은 늘 내몫이어서, 놀다 온 것도 아니고 힘들게 일하다 온 남편에게 신경질이 났고, 사실은 내가 좀더 부지런히 움직여 끝내놓을 수 있는 집안일도 슬쩍 미뤄놓고 아이들과 자러 들어가곤 했다. 남편의 훈육방식이 못마땅했고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도 미웠다. 결혼도 출산도 내가 선택해놓고는,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미루고 싶었다.
뜬금없지만 어쩌다보니 찾아보게 된 대법원 판례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혼인은 일생을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여 부부의 실체를 이루는 신분상 계약으로서, 그 본질은 애정과 신뢰에 바탕을 둔 인격적 결합에 있다.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는 혼인의 본질이 요청하는 바로서, 혼인생활을 하면서 부부는 애정과 신의 및 인내로써 상대방을 이해하고 보호하여 혼인생활의 유지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걸 보며 또 퍼뜩 깨달았다. 나는 가정생활의 기초가 되는 부부관계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나. 아이들 키우면서 아이들 양육에만 신경쓰느라, 혹은 그렇다는 핑계로, 남편과의 관계는 항상 뒤로 제껴놓았던 것이 아닌가. 속으로만 뭔가 개선해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상대와 나누지도 않은 채, 나는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여겼던 건 아닌가.
(...) 고통에는 순위가 없다는 걸. 괴로움에 순위를 매겨서는 안 되는데, 고통은 경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부들은 종종 이걸 잊는다. '나는 하루 종일 애들을 봤어.' '내 일이 당신이 하는 일보다 더 힘들어.', '내가 당신보다 더 외로워.' 누구의 고통이 승리하고, 누가 패할까. - 460쪽
남편이 한 말 중에 내게 정신을 번쩍 차리게 했던 말은 이거였다. 여자들은 부부 사이가 안 좋아지면 아이들에게 더 애정을 쏟지만, 남자들은 부부 사이가 안 좋아지면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고. 그 순간 내게 현실적인 위기감이 들었고, 이 가정을 지키고 싶다면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되뇌인다.
이 가정의 대장은 나다. 가정의 평화와 행복은 나에게 달려 있다.
나는 프랭클의 책에서 특히 이 구절을 좋아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반응을 선택하는 우리의 힘이 담겨 있다. 우리의 반응 속에는 우리의 성장과 자유가 놓여 있다.' - 398쪽
때마침 읽게 된 전영애 교수님의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에는 아름다운 시구와 노교수님의 성실하고 치열하며 넉넉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어 내 옹졸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넓혀 주었다.
가슴 열렸을
그때만 땅은 아름답다.
(...)
그대 그토록 찌푸리고 서 있었으니
바라볼 줄을 몰랐구나. - 65, 66쪽
멀리 저 밖으로 나가기를 그리워하면서 그대
민첩한 비상飛翔을 준비하고 있구나
자신에게 충실하라. 또 남들에게 충실하라
그러면 이 협소한 곳이 충분히 넓다. - 66쪽
독일문학 전공자인 전영애님은 괴테의 시집과 소설들을 번역하는 데 애써 오셨고, 현재 '여백서원'이라는 곳을 운영하면서 괴테 전집 번역에 힘쓰고 계시다고 한다. 이 분이 여성으로서 힘들게 공부해 온 사연을 보고 있자니 -교수님은 채찍질 의도로 쓰신 것은 아닐 것 같지만 ㅎㅎ- 나의 태만이 부끄러워졌다. 새삼, 내가 업무에도 육아에도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구나 하는 생각,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졸업하면서부터는 고등학교에 강사로 취직했고, 그러면서 대학원 석사과정을 다녔습니다. (...) 더구나 당신의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여자인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려 한다고, 어떤 교수님은 제게 웃지도 않고 "너는 비극의 씨앗"이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긴 세월 동안, 그 말이 얼마나 옳은 말씀이었는지 실감을 하며 살았습니다. (...) 조교가 되는 것이 '학문'을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 "비극의 씨앗"에게 주어진 것이니 더더욱 큰 특전이었는데, 그 특전이 1년 뒤 무참하게 회수되고 말았습니다. 1년이 지나고 조교가 유학을 떠나고 제가 조교가 될 차례가 되었는데, 갑자기 어떤 남학생이 군대를 마치고 돌아온 것입니다. 조교 자리는 바로 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
모르는 게 너무도 많았습니다. 배울 게 너무 많았습니다. 누군가가 손가락 하나, 새끼손가락 하나만 잡아주어도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세상은 손가락 하나를 잡아주기는커녕, 벼랑에 매달려 있는 사람의 손끝을, 밟는 듯이 무정했습니다.
(...)
그때 벽보 한 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생 모집공고였지요. 저는 집으로 돌아와 앞뒤 가리지 못한 채 미친듯이 서류를 만들어내고 주말에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 합격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또 문제였습니다. 내가 붙었으니, 학교의 전폭적인 추천을 받은 조교가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역린이었습니다. 어디서 살림하던 여자가 난데없이 나타나서 그때까지의 전통과 질서를 뒤흔든 것이지요. (...) 떠나야 할 때는 다가오고, 말은 못 하고 속만 타고 있는데, 그때 임신이 된 것을 알았습니다. 유산만 하다가.... 어떻게든 가진 아이를 낳아야 했습니다.
(...)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습니다. 내 눈물 속에서 태어난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가 두 달이 되었을 때 저는 떠나야 했습니다. 못 떠날 용기도 없었습니다. 떠나서는 어떤 때는 아이가 보고 싶어 현기증이 일곤 했습니다. (...)
(...)
돌아보면 그 캄캄하고 절박했던 세월이 내 인생의 초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막막하게 쭈그리고 앉아 읽고 손가락이 굳도록 적었던 것들이, 혼자 힘으로 무얼 읽고 읽어내는 일, 지금껏 제 자양분입니다. - 82~89쪽
나는 언제 한번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봤는가? 적당히 적당히 하면서, 내게 주어진 것들에 충분히 고마워하지도 않으면서...
그래서 요즘 시작한 '확언'에는 이 문장이 있다.
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근래 시작한 모닝루틴을 어떻게든 방해하는 둘째를, '주어진 환경'으로 받아들이고 방해해도 화내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한 해낸다는 목표 ㅋㅋ
모닝루틴은 유튜버 돌돌콩님을 우연히 알게 된 후 시작하게 됐는데, 이 분의 방법을 내 맘대로 적당히 요약해서 시행중이다. 그중 '확언'과 '감사일기'가 특히 좋은데, 자기계발서류 책이나 강의 등에 약간 콧방귀 뀌던 내 과거를 반성한다. 하나마나한 얘기들을 쓴 책들도 있지만, 좋은 책들을 골라 그걸 내걸로 만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걸 해내는 사람들의 마인드는 본받고 싶다.
싸움 후 남편이, 내가 터뜨린 불만점들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서 참 고맙다. 이 마음을 잊지 않고 계속 노력해간다면, 1년 후, 5년 후, 10년 후, 30년 후에도 서로의 존재가 고마울 수 있을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깨달아서 다행이다.
나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쌓아나갈 수 있는 시간의 결, 삶의 방식을 원했다. 물론 쌓아나가다 보면 안 좋은 것들도 같이 쌓여 떨쳐낼 수 없는 불순물이 많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불순물이 무색할 만큼 좋은 것들을 평생 잃지 않고, 쌓아내고,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가치 있고 온전한 행복을 주는 듯이 느껴진다. 오늘들, 가치 있고 소중하게 보낸 이 오늘들을 잃을 필요도, 잃을 수도 없다. 하루의 무게가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결혼한 것이 좋다. - 2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