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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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폐허를 연상시킨다. 불타 버린, 인적 없는, 누구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하지 않는 폐허. 

스베틀라나 알렉스예비치는 아무도 없는 그곳에 가 잿더미를 뒤적인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던 거기엔 조용히 잊혀져 가던 형상들이 있다.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목소리들이 있다. 더 깊이 파헤칠수록, 꺼져가던 불티가 날린다. 아직도 뜨거운 그 잿더미가 그녀는 무섭지 않았을까. 얼마나 많이 손을 데이고 마음을 데었을까. 

독자는 이 책을 두가지 방법으로 읽을 수 있다. 작가가 정성스레 모아둔 잿더미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그 뜨거움을 느끼는 것, 한발짝 물러서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 한가지 방법을 고수하기는 힘들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너무 고통스러워 독서를 지속하기 어려웠다. 한 걸음 물러서면 책 속의 목소리들은 유령처럼 쉽게도 흩어졌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먼나라 일처럼 바라보게 되면 이 독서는 무용하다. 그걸 알기에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며 적정거리를 찾으려 애썼지만, 적정거리라는 게 과연 있을까 의문스럽다. 결국 마음을 데여가며 천천히 읽어나가는 것이 이 책의 올바른 독법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기한에 맞춰 바쁘게 읽은 이번 나의 독서는 실패라 해야겠다. 



나는 왜 살아남았을까? 무엇을 위해? 생각해보면...... 그건 아마 지금 이렇게 그때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 187쪽


나는 전쟁을 모른다. 겨우 열 몇살짜리 소녀들이 전쟁에 필요한 게 무언지도 모르면서 조국을 지키겠다고 최선전으로 달려가게 만드는 신념도 모른다. 동상이 무엇인지, 굶주림이 무엇인지, 고문이 무엇인지 모른다. 내 가족을 죽인 이에 대한 들끓는 증오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몰라도 여성으로서, 딸로서, 어머니로서 이들이 토로하는 고통에 감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전쟁 상황이 아니어도 느낄 수 있는, 나 역시 경험한 내용도 있었다. 바로 여성성을 버리라는 요구와 지키라는 요구 사이의 갈등, 그 사이에서 정체성이 분열되는 고통이다. 


"우리는 애를 참 많이 썼어...... '여자들이 그렇지 뭐!'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그리고 우리가 남자들 못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남자들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했어. (...) 그렇다고 우리가 어떻게 남자가 되겠어? 그럴 순 없는 거지. (...) 진군할 때였는데...... 여자병사들 200명 정도가 앞서가고, 남자병사들 200여 명이 그 뒤를 따랐어. 푹푹 찌는 날씨에 30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걸었어. 자그마치 30킬로미터를! 그렇게 계속 걷는데 우리가 지나간 자리, 모래 위로 빨간 얼룩들이 남는 거야...... 붉은 자국들이..... 그러니까 그건...... 왜, 우리 여자들의 그거 있잖아...... (...) 바지가 다리 위에서 그대로 말라붙는 바람에 꼭 유리바지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어. 살이 베어서 상처가 났더라고. 가는 내내 피냄새가 진동을 했어. 그런데도 우리에게 지급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 - 356, 357쪽


직업을 가지게 되면, 물론 직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소위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서 요구되는 덕목들이 있다. 문제는 개인의 매력이라든지 사적인 영역에서 요구되는 덕목과 그것이 남성들에게는 (대체로) 일치하지만 여성들에게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치하기는 커녕 대척점에 있다. 적극적이고, 자기 주장을 잘 관철하고, 남자들과도 스스럼 없이 어울리고, 술을 잘 마시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육체적으로 강한 여성은 업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다만 그 와중에도 비슷한 남성은 있는 그대로 칭찬을 받는 반면 여성은 '저래가지고 결혼은 못하지', '여자가 저렇게 드세가지고' 등등 뒷말을 듣는다). 그러나 여성으로서의 매력평가(주로 남성들에 의한) 면에서는 그 반대되는 특질들이 요구된다. 엄마로서의 이미지도 마찬가지다. 남자 옆에서 조용히 미소지으며 그를 드높여주는 여성이 '현모양처'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많은 여성들이 남성과 비교당하지 않기 위해 분투한다. 그러나 어쨌든 여성인 우리는, 남성과 똑같아질 수는 없다. 남성 중심으로 구축된 세계에 들어간 여성들은 자기 자신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어렵다. 남성 중심 세계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군대, 그것도 전시의 군대에는 여성들을 위한 자리가 없었고 그것은 남성병사는 몰라도 되는 여러 가지 불편과 괴로움을 여성병사는 겪어야만 했다는 뜻이다. 


사실 그거 말고도 힘든 건 또 있었어. 여자라서 겪는 어려움이었다고나 할까. 나중에 분대장이 됐는데, 분대원이 전부 어린 남자병사들인 거야. 우린 하루종일 발동선에서 지낼 때가 많았거든. 그런데 아휴, 배는 작지, 화장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지, 병사들이야 남자니까 배 밖으로 볼일을 해결하면 그만이었지만 여자인 나는? 참다 참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바다로 뛰어든 것만 몇 번이었다니까. 그러면 병사들이 '하사관님이 물에 빠졌다!'고 소리치면서 나를 끄집어올려주는 거야. 그래, 그런 사소한 어려움들이 있었어..... 하지만 그게 정말 사소한 일이었을까? 나중에 나는 그 일로 치료까지 받았는걸......  - 195쪽 


가장 가슴 아픈 건 그네들의 노력과 고통이 전혀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러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선에서 싸워 조국을 지켜냈다는 자부심과 동지의식이 있었던 전쟁터와 달리, 전쟁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자 소녀병사들은 외면당한다. 남성들은 이들을 모른 척하고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더 천진하고 아름다운 여성들에게로 간다. 같은 여성들마저 이들을 적대시한다. 다만 전장에서 만나 결혼하여 삶을 꾸려간 이들도 있다. 이 책은 이런 다양한 개인의 경험들을 임의로 분절하여 주제별로 모으지 않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언어 그대로 전달한다.  


- 하지만 그 여자들이 고국을 지킨 건 사실이잖아요? 조국을 구해냈다고요......

- 그건 그렇소만...... 그런 여자들이랑 정찰은 같이 갈 수 있을지 몰라도 결혼은 하지 않을 거요. 그게, 그래요...... 우리 남자들은 여자들 엄마나 아내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요. 결국은 아름다운 숙녀에게 익숙하다는 거요. (...) 전쟁은 남자들의 일이오. 그런데도 남자들 이야기는 그렇게 쓸 게 없는 거요?  - 166쪽


처음에 우리는 과거를 숨기며 살았어. 훈장도 내놓지 못했지. 남자들은 자랑스럽게 내놓고 다녔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어. 남자들은 전쟁에 다녀왔기 때문에 승리자요, 영웅이요, 누군가의 약혼자였지만, 우리는 다른 시선을 받아야 했지. 완전히 다른 시선...... 당신한테 말하는데, 우리는 승리를 빼앗겼어. 우리의 승리를 평범한 여자의 행복과 조금씩 맞바꾸며 살아야 했다고. 남자들은 승리를 우리와 나누지 않았어.   - 221 쪽


조국이 우리를 어떻게 맞아줬을 것 같아? 통곡하지 않고는 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 40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뺨이 화끈거려. 남자들은 나 몰라라 입을 다물었고, 여자들은...... 여자들은 우리에게 소리소리 질렀어. '너희들이 거기서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아! 젊은 몸뚱이로 살살 꼬리나 치고..... 우리 남편들한테 말이지. 이 더러운 전선의...... 군대의 암캐들아......' 우리는 정말 온갖 말로 모욕을 당했어......  - 429쪽


전쟁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힘들었어. 그런데 전쟁 후에도 고통을 겪어야 했지. 또 한번의 전쟁을 치러야 했으니까. 앞선 전쟁만큼이나 끔찍한 또 한번의 전쟁. 무슨 이유인지 남자들은 우리를 저버렸어. 모른 체했지. 전쟁터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 550쪽 


초반에는 소녀병사들이 동료병사들로부터 당했을 법한 성적 위협이나 적국의 여성을 상대로 한 강간 등 이야기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후반부에는 조금씩 언급되었는데, 아마도 그런 이들은 여전히 입 밖에 내기 어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살아남기 위해 사랑하지 않는 사람 곁에라도 있어야만 했던 절박함.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어. 좋은 사람이었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안 생기더라고. 하지만 몇 달 후에 그 사람 막사로 거처를 옮겼지. 달리 어떡해? 사방이 남자들인데, 그 남자들이 무서워 떨며 지내느니 한 남자랑 같이 사는 게 낫잖아. 오히려 전투에 나가는 건 무섭지 않았어. 전투가 끝나고, 특히 전선을 재정비하면서 쉴 때가 무서웠지. 총탄이 빗발치고 포탄이 불을 뿜을 땐 나를 '누이! 누이!'라고 부르다가도 전투만 끝나면 나를 어떻게 해보려고 다들 기회만 엿봤으니까..... 밤이면 막사에 틀어박혀 아예 나가질 않았어......   - 411쪽


"독일군은 여자병사들은 포로로 잡지 않았어...... 바로 총살해버렸지. 아니면 자기 병사들 앞에 끌고 나와 '자, 여기 이것들은 여자가 아니다. 추악한 괴물이다'라고 하거나. (...)

우리 간호병 하나가 독일군에게 붙잡혔어...... 하루가 지나 우리가 그 마을을 공격해 들어갔는데 사방에 죽은 말이며 오토바이며 장갑수송차 등이 나뒹굴고 있더라고. 독일군에게 잡혀간 우리 간호병을 찾아냈지. 세상에, 눈알이 도려내지고 가슴이 잘려나가서는...... 놈들이 말뚝에 박아놓았더라고. (...) 그 아이는 겨우 열아홉 살이었어. 우리는 그 아이 배낭에서 가족이 보낸 편지들과 고무로 된 작은 파랑새를 발견했어. 애들이나 가지고 노는 장난감 고무새를......"   - 243쪽


이 부분은 가장 울컥했던 내용이다. 장난감 고무새를 소중히 간직하고 전쟁터에서 버티던 열아홉 소녀... 다시 읽어도 눈물이 난다. 모진 전쟁, 모질다. 독일군이라고 해서 특별히 잔인한 괴물일까? 열아홉살 소녀를 말뚝에 박아놓는 것은, 그것이 독일의 문제일까? 아니다. 러시아군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가장 잔혹한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생각나...... 성폭행당한 독일 여자를 봤어. 여자는 알몸으로 바닥에 누워 있었어. 다리 사이에 수류탄이 박힌 채...... 지금은 부끄럽지만 그때는 그걸 보고도 수치심을 느끼지 못했어. (...) 독일인 아가씨 다섯 명이 지휘관을 찾아왔어. 흐느껴 울더라고...... 산부인과 의사가 아가씨들을 검진했더니 여자들 그곳이 많이 상해 있었어. 심하게 찢겨 있었지. 팬티는 온통 피로 물들고...... 밤새 성폭행을 당한 거야. 병사들이 줄을 서서 그 짓을 한 거지...... 

(...)

용서하는 게 쉬웠을 거라고 생각해? 멀쩡하고...... 새하얀....... 벽돌지붕의 집들을 보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을 거 같냐고...... 장미가 탐스럽게 핀 집들...... 나는 그들도 고통스럽기를 바랐어...... 당연히...... 그들의 눈물을 보고 싶었지...... 한순간에 착한 사람이 될 수는 없어. 올바르고 선한 사람이. 지금 당신처럼 그런 훌륭한 사람이.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기까지 나는 수십 년이 걸렸어......   - 517, 518쪽


전쟁의 참혹함은 밤새 성폭행을 당해 피로 물든 여성들을 보면서도 이들이 적국의 여성들이라는 이유로, 내 조국을 엉망으로 만든 적국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조차 상실하게 만든다. 

지옥도 한복판에서도 엿보이는 연민과 사랑은 더욱 값지다. <완벽한 아이>에서 저자가 사랑 한점 받지 못하며 감금과 학대 속에 살아가면서도 개나 말 같은 동물들과 교감을 나누며 버텨나가는 모습이 마음에 많이 남았는데, 이 책에 나온 고양이 이야기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우리는 4년 동안 난방화차를 몰았어. 아들도 데리고 다녔지. 우리 아들은 전쟁 내내 고양이도 한번 못 보고 지냈어. 그러다가 키예프 근처에서 우연히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한 거야. 폭격기 다섯 대가 우리 기차를 향해 무차별 공격을 퍼붓고 있는데, 우리 아들은 고양이를 꼭 껴안고 그랬어. '아유, 착한 우리 고양이, 너를 만나서 내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여기 우리 말고 아무도 없으니까, 자, 내 옆에 앉아. 내가 뽀뽀해줄게.' 애는 애였어...... 아이는 언제나 아이다운 법이지...... 아들은 '엄마, 우리한테 고양이가 생겼어요. 우리도 이제 진짜 집이 생긴 거예요'라며 잠들곤 했어.   - 502쪽 


그네들의 세계에서는 일상과 존재가 하나였고, 따라서 존재의 흐름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전쟁도 평범한 삶의 한때일 뿐이었다. 그네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사소한 것이 위대한 것을 압도하는 순간을 여러 번 목도했다. 역사마저 간단히 제압해버리는 순간을.   - 338쪽


이 책이 전쟁에 관한 거시적 시각은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평도 있던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른다. 

전쟁이 어떤 정치적 이유로 일어났고, 어떻게 진행되었고, 어떤 여파를 미쳤고 등등은 이미 많이 다뤄졌다. 그런데 아주 큰 부분이 통째로 빠져 있었으니, 전쟁을 겪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그것이었고, 저자는 그 부분을 캐치하여 집중 조명함으로써 부족분을 채워 전쟁을 더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전쟁은 남성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총들고 싸우는 것만이 전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빨래전담 병사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저자는 전선에 가지 않고 집에서 가족을 지켜낸 이들의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우리 남편은 전쟁터로 가면서 서럽게 울었어. 어린 자식들을 차마 두고 갈 수 없어 가슴이 찢어졌지. 하지만 우리 애들은 너무 어려서 아직 자신들에게 아빠가 있는지조차 몰랐지. 중요한 건 모두 보살핌을 받아야만 했던 아이였다는 거야. 막내는 너무 어려서 내가 안고 다녀야 했어. 남편이 막내를 받아 안더니 가슴에 꼭 끌어안았어. 나는 남편을 쫓아 달려나갔어. 밖에서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지. '전원 일렬종대!' 남편은 막내를 품에서 떼놓지 못하고 그대로 안은 채 정렬했어...... 군인 한 명이 남편에게 소리소리를 지르는데도 남편은 아이를 안고 눈물만 펑펑 쏟았지. 아이의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 밖까지 남편을 쫓아갔어. 아마 5킬로미터는 달렸을 거야. 다른 마을 여자들도 마찬가지였어. 우리 애들이 넘어지는데도 나는 막내를 안고 계속 달렸어. 남편은 자꾸 뒤를 돌아보고, 나는 그런 남편을 따라 달리고 또 달렸지.   - 459쪽 


나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어...... 가족들도 모두 무사했지...... 엄마가 온 가족을 살리셨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살리고 여동생과 남동생을 살렸지. 그리고 나도 살아 돌아왔고......

1년 후에 아빠도 돌아오셨어. 훈장을 여러 개 받아오셨더라고. 나도 훈장 하나와 메달 두개를 받아왔지. 하지만 우리 가족의 결론은 그랬어. 우리집에서 진짜 영웅은 엄마라고. (...) 결국 엄마가 가장 가혹하고 끔찍한 전쟁을 치른 셈이지. 아빠는 단 한 번도 훈장을 달지 않으셨어. 훈장약장도 달고 다니신 적이 없지. 아빠는 엄마 앞에서 훈장을 내놓고 자랑하지 않으셨어. 부끄럽다고 하셨지. 불편해하셨어. 엄마는 훈장도 메달도 없었으니까......   - 535쪽


전쟁은 남자들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여자들은 조국을 지키는 일에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 전쟁과 영웅과 총과 탱크에 대한 아주 조금의 로망이라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나도 찬찬히 이 책에 다시 접근해보고 싶다. 하지만 그때에도, 내내 고통을 감당하며 물러서지 않을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덧) 읽다가 깜짝 놀란 부분! 


게토에 우리집은 따로 없었어. 어느 낯모르는 사람의 집 다락방에 얹혀 지냈지. 아빠는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제일 값나가는 물건인 바이올린을 내다팔려고 했어. 나는 후두염이 심하게 와서 누워 있었는데...... 열이 펄펄 끓고 말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었지. 아빠는 바이올린을 팔아서 먹을 걸 사올 요량이었어. 아빠는 내가 죽을까봐 두려워했지. 엄마도 없는데 내가 죽을까봐...... 걱정 어린 엄마의 말 한마디 못 듣고 따뜻한 엄마 손길 한 번 못 받고 죽을까봐. 당신의 귀한 응석받이 딸이...... 사랑스러운 딸이...... 아빠가 돌아오길 3일을 기다렸어. 아는 사람들이 와서 아빠가 살해됐다고 알려주기 전까지. 사람들 말이, 아빠가 바이올린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거야......  - 131쪽


아니 이것은...!! <나는 고백한다>가 떠오르지 않는가? 스토리가 다르긴 하지만. 유대인, 비싼 바이올린, 바이올린 때문에 살해당한 아빠... 저 바이올린이 실화속 비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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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8-05 13: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엇보다 여성이라고 무시당하고 전쟁이 끝나고 돌아가서도 냉대받았던 그들의 이야기였어요. 너무 속상하더군요. 전쟁터도 하나의 사회구나~ 자기들의 무리에 껴주지 않고 비하하거나 조롱하는 태도가 괘씸했어요. 결국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구조도~ 이 책은 깊게 담그어야 얻을 수 있는 바가 많은 책임에 동의합니다.

독서괭 2022-08-06 10:10   좋아요 2 | URL
맞아요~ 그렇게 아무것도 여성에게 준비된 것이 없는 환경에서 버텨가며 조국을 지켰는데, 남성들이 영웅대접을 받는 것과 달리 여성들은 오히려 숨겨야 했던 상황이 넘 속상했어요 ㅜㅜ 이런 문화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데 남자들만 군대가서 고생한다는 둥의 이야기랑도 같은 맥락 같아요. 화가님 공감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2-08-05 13: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의 글을 읽으며 전혀 실패한 독서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요.
이 정도의 글을 쓰려면 그만큼 책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는 거예요.
이 책 읽으며 제가 놀라고 경악했던 부분이 다 떠올라요.
여러 가지 쇼킹하고 슬픈 사연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 소련군이 독일에 입성해서 한 행동들요.
인간들은 꼭 당한만큼 돌려준다는 그 마음들이 힘들었어요~~
바이올린, 진짜 나는 고백한다가 떠오르네요^^

독서괭 2022-08-06 10:13   좋아요 4 | URL
페넬로페님, 실패한 독서가 아니라는 말씀을 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전쟁터에서 시신이 나뒹구는 참혹함, 부상병 이야기들도 많았지만 리뷰에는 많이 담지 않았어요. 소련군은 독일군과 달리 독일군 부상병들도 치료해줬다는 에피소드도 많이 나오지만 약간은 조국미화가 있지는 않을까 의심이 들었는데, 독일 입성해서 저지른 강간 이야기에 역시나 싶었습니다 ㅠㅠ
바이올린 이야기 재밌었어요. 자우메 카브레가 혹시 여기서 모티프를 얻었나?? 싶고 ㅎㅎ

단발머리 2022-08-05 13: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으셨을 때도 힘드셨겠지만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는 일도 쉽지 않았을텐데 수고많으셨습니다, 독서괭님!
누이! 누이! 부르며 같이 전투에 참여하던 남자들이 밤마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접근한다는 이야기가, 저도 오래 기억에 남아 슬펐습니다. 그리고는 다른 여자들과 결혼하겠죠. 여성은 끝까지 군인이라 여겨지지 않았던 현실, 하지만 여성들은 실제로 군인의 일을 감당했던 거고요.
전쟁의 추악함, 그 잔인함을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주는데 이 책이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너무 좋은 리뷰였습니다. 혹.... 이 책이 부담되어 못 읽으시는 분들이라면 독서괭님의 이 리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잘 읽고 갑니다!!

독서괭 2022-08-06 10:19   좋아요 3 | URL
누이! 라고 부르다가도 어떻게 해보려고 했다는 말이 저고 슬프게 느껴지더라고요. 말하는 여성들조차 “남자들이 여자 없이 4년을 보내는 건 쉽지 않다”는 다소 정당화하는 말을 전제로 깔더라구요. 그건 욕망의 문제가 아니라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힘과 권력의 문제인데.. 그래도 비열한 짓을 저지르지 않고 소녀병사들을 잘 챙겨준 남자들도 많아보여 다행스럽긴 했어요. 당장 우리나라에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봤는데 여자들 군대 가면 당장 주변 남자들에게 성폭력 당할 것 같다고 예상되어 착잡하더라고요.ㅠㅠ
단발머리님 과분한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 리뷰로 충분하지 않으니 꼭 직접 읽어보시라 말씀드려야겠네요 ㅎㅎㅎ

청아 2022-08-05 14: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괭님 잘 읽었습니다. ^^*
전쟁영화들이 참 많지만 전쟁속 여성의 비극을 주제로 한 영화는 최근에 와서야 더 만들어지고,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그런 영화중 한편의 댓글에도 어떤 남성이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더라구요. 남성들의 전쟁 이야기는 넘치는데 여성의 서사는 그것과 달라서 이해되지 않는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아 마치 부재한것처럼 여겨지고 멸시받던 여성의 목소리가 그 나름의 형태와 색체를 가지고요.

독서괭 2022-08-06 10:22   좋아요 3 | URL
어떤 남성들은 여성의 목소리를 부인하고 보는 것 같아요. 여성의 고통이 인정되면 남성의 고통은 인정을 못 받는다고 생각하는 건지 뭔지.. 자기가 결코 알 수 없는 종류의 고통 앞에서는 겸허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예요.
“나름의 형태와 색채를 가지고” 라는 말씀이 좋네요. 미미님 공감 감사합니다^^

건수하 2022-08-05 21: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리뷰를 제가 좋아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좋아요.

독서괭님 리뷰를 보고 나면 아 나는 정말 머리로만 생각하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마음을 쓰며 읽고, 그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그걸 쓰시는게 좋아요.

독서괭 2022-08-06 10:26   좋아요 3 | URL
앗 수하님 제 리뷰를 좋아하신다니, 이런 과찬을 해주시니 넘 감사합니다😳 수하님 글 보면 머리로만 생각한다는 느낌 아닌데, 그런 생각을 하셨다니..! 여성주의책읽기 도서 리뷰는 좀더 공들여 쓰기는 합니다 ㅎ 분량도 많고, 읽으며 느껴지는 바가 많아서 머릿속에서 며칠 굴리다가 정리해요. 리뷰쓰고 나면 확실히 머리에 많이 남아 좋네요! ^^

책읽는나무 2022-08-06 1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늘 최선을 다하시는 괭님은 실패한 독서가 아닌 거죠^^
읽을 수록 또 세세하게 책 내용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그만큼 괭님의 리뷰는 자세하고, 친절합니다.
수류탄 이야기는 아직도 끔찍합니다ㅜㅜ

근데 마지막 인용문 저도 그땐 그냥 읽고 지나갔었는데 <나는 고백한다>를 읽고 있으니 저도 순간 바이올린 이야기에 착각하며 읽었네요. 이 바이올린이 그 바이올린인 줄...작가는 혹시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소설을 구상한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소름 돋네요!!

독서괭 2022-09-04 13:47   좋아요 1 | URL
수류탄 끔찍하죠 ㅜㅜㅜ 늘 최선을 다한다고 칭찬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책나무님!^^
그쵸, 나는 고백한다 비알 얘기랑 이 얘기랑 비슷하죠!ㅎㅎ 근데 전에 작가인터뷰 하나 봤는데 왜 바이올린이냐는 질문에 특별한 계기는 없다고 했던 것 같아요. 우연의 일치?? 아무튼 재미납니다. 2권 읽고 계신가요? 저 2권 첫부분이 젤 헷갈렸는데 다시 읽으니 좀 이해가 되네요 ㅎㅎ
라고 아래 대댓글이 아닌 그냥 댓글로 달아버린 걸 단발님이 알려주셔서 다시 답니다😅

독서괭 2022-08-07 17:3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수류탄 끔찍하죠 ㅜㅜㅜ 늘 최선을 다한다고 칭찬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책나무님!^^
그쵸, 나는 고백한다 비알 얘기랑 이 얘기랑 비슷하죠!ㅎㅎ 근데 전에 작가인터뷰 하나 봤는데 왜 바이올린이냐는 질문에 특별한 계기는 없다고 했던 것 같아요. 우연의 일치?? 아무튼 재미납니다. 2권 읽고 계신가요? 저 2권 첫부분이 젤 헷갈렸는데 다시 읽으니 좀 이해가 되네요 ㅎㅎ

단발머리 2022-09-03 08:43   좋아요 1 | URL
독서괭님! 안녕^^ 이 댓글 따로 달려서 ㅋㅋㅋㅋㅋㅋ 책나무님은 이 댓글의 존재를 영원히 모를 수 있다는 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려드립니다. 아침에 독서괭님 방에서 놀다가 발견했어요^^

독서괭 2022-09-04 13:47   좋아요 1 | URL
앗 제가 왜 그랬을까요 ㅋㅋ 복사해서 다시 달아야겠네요 ㅋ
감사합니다 ㅎㅎ 글이 안 올라오는 방이라 민망하네요..🫣

책읽는나무 2022-09-04 15:53   좋아요 0 | URL
모르고 넘어갈 뻔했는데 단발님 덕분에~ㅋㅋㅋ
역시 지적인 단발님!!!^^
괭님은 이제 코로나 괜찮아지셨나요?
울 아들 딱 괭님 리뷰 올리신 이즘 코로나 걸려서 방에다 격리시키고 관찰했는데 좀 심하게 하고 넘어가던데...괭님은 어떠셨나? 걱정됐어요^^
암튼 모두 자나깨나 건강 챙기기!!!

독서괭 2022-09-04 16:19   좋아요 1 | URL
크흑 나무님 저는 첫째가 먼저 걸렸는데 어려서 격리가 안 되니 저랑 둘째도 며칠 뒤 걸려서요. 곧 8월 마무리 페이퍼와 함께 안부 전할게요~!

scott 2022-08-09 00: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님의 리뷰를 찬찬히 읽으니
이 책을 처음으로 읽었던 그 순간이 떠오릅니다

작가님이 인터뷰 하실 때 눈가에 눈물이 가득 ㅠ.ㅠ

현재 루마니아에서 피난 온 우크라이나 여성과 아이들 돕고 계신다고 하네요..


이분의 아연의~
책 읽으시면
괭님 가슴이 타들어 갑니다 ㅠ.ㅠ

독서괭 2022-08-12 14:56   좋아요 1 | URL
오 스콧님, 작가님 인터뷰를 봐야겠네요. 현재도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을 돕고 계시다니 대단한 분이세요!
<아연 소년들>이었나요? 스콧님 페이퍼에서 본 것 같은데,
가슴이 타들어간다니 섣불리 손대면 안 되겠네요ㅜㅜ 전쟁 이야기는 좀 시간을 두고 읽어야겠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