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소설을 생각한다
수하님이 로판을 읽으시는 것 같기에 말을 좀 얹고 싶었던 마음 + 먼댓글이라는 걸 얼마전 다른 서재에서 보고 한번 써보고 싶었던 마음이 합쳐져,
드디어 먼댓글 기능을 써보게 되었습니다..ㅋㅋ
인용해주신 아래 부분이 최근 웹소의 로맨스/로판 경향과는 좀 다른 것 같아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웹소 끊은지 1년 되어서 최최근 경향은 아닐 수 있는데다가 수하님이 읽으시는 것들과 경향성이 다를 수도 있으니 가볍게 읽어주세요~
인기 있는 로맨스 소설은 평범한 주인공에게 무지갯빛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우리의 평범성을 값지고 특별한 것으로 보이게 한다. ...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던 흔한 인물이 사랑의 힘으로 단숨에 빛나는 별이 되는 것,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져 남달리 사랑받는 것, 우리에게 설렘의 감각을 일깨우고 충만감을 안겨주는 로맨스 소설의 힘이다.
- <평균의 마음> 1부, '인기있는 로맨스 소설의 비결' 중
위 인용문은 아무래도 웹소설이 아니라 전통적(?) 로맨스 소설이나 이성애 사랑을 다룬 문학에 관한 것이 아닌가 싶다.
2년 여간 카카페를 이용하며 내가 파악했던 웹소의 로맨스/로판의 메인 스트림은 '평범한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기 때문이다(내가 주로 읽은 건 로판이므로 아래에서 얘기하는 건 거의 로판 관련이다). 미모는 말할 것도 없고, 특별하거나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주가 대부분이다. 불운한 처지에 놓여 고생하는 여주들도 있지만, 부유한 고위 귀족인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이 부분이 나는 많이 의아했다. '나'를 주인공에 이입하여 이런 '평범한 나'가 완벽한 남자로부터 사랑받는 걸 꿈꾸고 싶다면 평범한 여주를 내세워야 하는 게 아닐까? 왜 사람들은 처음부터 다 가지고 태어난 금수저 여주, 혹은 그런 소설 속 캐릭터에 빙의하는 여주가 나오는 로판을 읽는 것일까?
내 나름대로 찾은 답은 이거다.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 나 자신을 가지고 완벽한 로맨스를 꿈꾸는 건 글렀다. '완벽한 로맨스'를 꿈꾸는 게 아니라 '완벽한 나' 또는 회귀하여 완벽해지는 나를 보고 싶다. 빙의물과 회귀물이 그토록 유행하는 이유가 그거 아닐까. 별거 없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걸로는 모자라다. 나 자신이 대단해지고 싶다. 그런데 현실의 내가 대단해지기에는 애초에 금수저도 아니고 능력의 한계도 있는데다가, 생활에 너무 지쳤다. 그래, 지.쳤.다.
웹소설의 미덕은 현실과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그걸 모두 잊게 해주는 데 있다. 잠시 다른 세계로 가자. 그곳에는 거울을 볼 때마다 거슬리는 뾰루지들도 없고, 개수대에 쌓여 있는 설거지감도 없으며, 전세살이의 설움도 없고, 두둑한 배를 두드리며 소파에 정물화 된 남편도 없다(웹소의 독자들 중에는 기혼자가 많다). 그곳에는 단지 거대한 음모, 암투, 목숨을 건 사랑, 아름다운 남자들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심각한 위기에 처한 여주라 해도, 매일 청소에 빨래에 음식하고 애들과 씨름하는 나의 현실과 비교하면, 하녀들 시중받아 목욕하고 향유 바르고 드레스 골라 입고 티타임 하고 가끔 하인/하녀들에게 너그럽게 대하면(주로 빙의물에서) 좋은 주인이라고 칭송받을 수 있는(대부분 로판이 계급사회- 주로 유럽 중세와 비슷함-를 배경으로 한다. 대체로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1도 없다는 것도 재밌는 점이다) 그곳은 부러울 만 하다.
웹소가 결코 문학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나는 문학이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그것이 제아무리 더럽고, 추잡하고, 찌질하다 할지라도- 직시하면서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건져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웹소는 직시하지 않는다. 도피한다. 웹소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부분(애초에 빙의니 회귀니가 비현실적이지만 그건 차치하고)은 두 가지다.
1. 남주의 캐릭터
- 이건 뭐, 잘생기고 몸 좋은 건 기본, 싸움도 잘해야 하고 머리도 좋아야 하고 요리도 잘해야 하고, 밤일도 잘해야 하고(이거 되게 중요하게 취급됨;;) 여주에게 한결같아야 하고 등등. 그 비슷비슷한 조건 속에서 이 남주만의 특징과 매력을 창조해내는 것이 작가의 능력이다. 외모가 무척이나 강조된다는 점이 또 문학과의 큰 차이다. 특징이 아니라 완벽함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2. 사랑의 모습
- 문학 속 사랑과 가장 큰 차이. 로설/로판 속 사랑은 한치의 부족함도 허용하지 않는다. 오해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등등의 과정이 물론 있지만 그 와중에도 사랑의 마음은 한결같아야 한다. 특히 남주는. 여주는 흔들릴지언정 남주는 그러면 안 됨. 가장 중요한 것, 웹소 속 관계에는 '짜증'이 없다. 분노, 슬픔, 좌절, 질투, 그런 거 다 있지만 우리가 현실에서 관계를 망치는 요소인 '짜증'이 없다. 짜증은 딱히 상대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닌데도 나의 힘든 상황이나 안 좋은 감정을 상대에게 전가하면서 발생한다. 여주에게 짜증내는 남주를 좋아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이 짜증 없음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생활 없음'이다. 로설도 좀 그렇지만, 특히 로판에서는 생활의 냄새가 없다.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소소한 일들, 밤늦게 퇴근했는데 어질러진 집안, 윗집에서 쿵쾅대는 발소리 같은 거 말이다.
최근 로판에서는 페미니즘적 요소들도 상당히 보인다. 애초에 여성이 주체적으로 전면에 나서는 것이니 여성주의적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남자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성공하는 똑똑한 여주들, 심지어 로판만이 가능케 하는 전투능력에서 남주를 앞질러버리는 여주도 등장한다. 그런 소설을 읽으며 현실의 암울함에서 도망갈 수 있다. 그걸 누가 비난할 수 있을까.
웹소를 문학이라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웹소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거기에는 그 나름대로의 미덕이 있다. 가끔 기대 이상으로 잘 써내려간 작품을 만나면 기쁘다. 하지만 그 한 작품을 만나기 위해 버려지는 시간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나는 웹소를 끊었다.
내가 좋아했던 작품들은(기억이 잘 안 나서 찾느라 애먹음)
여주의 성장을 섬세하게 그려낸 것 - <에보니>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해 나가며 발전하는 사랑의 모습을 그려낸 것 -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며 맞춰나가고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낸 것 - <다행인지 불행인지>, <너의 의미>
그러고보니 로판에 제목 이상한 거 진짜 많은데 내가 좋아했던 작품들은 대체로 제목이 무난하네?
혹시나 읽어보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이중 하나만 꼽아 추천하라면, <당신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를 꼽겠습니다.
<에보니>는 좀 웅장하고(로판 읽으며 운 유일한 작품), <다행인지 불행인지>랑 <너의 의미>조금 소소하고 귀엽고 즐겁습니다.
길티 플레저건 뭐건 어떤가요, 지친 우리에게 잠시 휴식을 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