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알코올 기운을 두르고 늦은 밤길을 걸어오는데, 나의 해방일지ost를 들어서 그런지 센치한 기분에 젖어

메모를 했더랬다. 그런데 다음 날 오전에 열어보니 없는 게 아닌가. 저장을 누르지 않고 닫았나 보다. 

별로 취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기억은 난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아주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 아주 중요한 회의를 하고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마친 후 

나의 해방일지ost를 들으며 돌아오는 길, 

문득 나 자신이 너무 하찮게 느껴지고, 

모든 것은 결국 시간 속에 사라질 일, 

이렇게 열심히 계획하고 이렇게 열심히 다투고 이렇게 열심히 도모하며 

그런데도 누구도 자신있게 행복하지 못하고... 


새우깡 찾는 S답지 않지만 가끔은 S에게도 이런 순간이 있는 것이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하며 집에 들어와 자고 있는 아이들 얼굴을 보니 

아침의 둘째 모습이 떠올랐다. 


아침, 식사준비를 하고 있는 내 곁에 온 둘째가 수줍게 말한다.
"어린이집에 가면, 다른 애들은 잘 노는데," 
응, 그런데? 하니 베란다 문 뒤에 가서 얼굴을 빼꼼 내밀더니 이런다.
"나는 엄마 생각만 해."
크흡- (마음 속 비명) 
"엄마 회사 가서 내 생각 많이 해~"
하고 씩씩하게 어린이집에 갈 듯 하더니, 준비하다가 결국 눈물이 터진다.
예전에 울 때 손수건을 주면서 비비면 아프니까 톡톡 두드려 닦으라고 했더니, 그 이후로는 눈물이 나면 손수건을 들고 다니면서 눈가를 톡톡 두드리며 흑흑 운다. 무슨 비운의 주인공인냥.. 그 모습이 또 너무 귀여워서 웃고 만다. 
저녁에 집에 오니 "엄마 하늘만큼 땅만큼 보고 싶었어요." 해서
"엄마도 하늘만큼 땅만큼 보고 싶었어." 했더니
"아니 나는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보고 싶었어요!"
크흡- (마음 속 비명2) 

너 나 추앙하니? 


물론 아이들과 이런 다정한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내 목청을 시험당할 때가 있다.. 

하지만 역시, 이게 다 무슨 의미일꼬..? 하는 순간에 나를 일으켜주는 건 사랑-

아이들이 양육자에게 보여주는 사랑은 원시적으로 순수한 것이어서 때로 무겁다. 

온 몸의 무게를 실어 내게 안겨들 때처럼 마음도 그렇게 온 존재를 실어서 준다. 

부모의 사랑은 가이 없다며 늘 칭송하지만, 과연 아이가 주는 사랑보다 양육자가 주는 사랑이 더 클까? 

양육자의 사랑도 처음에는 대체로 순수하다. 하지만 아이에게 점점 자기 의사가 생기면서 그 사랑에 조건이 붙어간다.

아이 역시 자랄수록 양육자에 대한 사랑의 순수함을 잃어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쁜 아기를 많이 사랑해주기 위해 아기를 낳아 키운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은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경험을 하고 싶어서 아기를 낳는 게 아닐까? 

조건이 덕지덕지 붙어가기 전에,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 사랑받는 기분을 누려야겠다. 



대상항상성이 생긴 뒤에는 엄마의 이미지가 내면에 새겨져 잠시 혼자 있더라도 위안을 느낄 수 있다. 이를 ‘위안의 내재화soothing introject’라고 하며, 성인의 정서조절 능력의 밑바탕이 된다. 92/388(전자책 기준)
대상항상성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애착대상이 관계 속에서 보여준 수많은 위로와 지지, 포옹과 애무의 느낌, 따뜻한 미소와 눈 맞춤, 같이 놀았던 경험 등이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서 만들어진 기억의 퇴적물이다. 눈앞의 현실과 손에 잡히는 감각만 존재하던 유아의 삶에 이제 기억이 자리잡고 과거라는 시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아이는 대상항상성을 머리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알고 있으며,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다. 93/388

문요한 작가의 <관계를 읽는 시간>은 밑줄을 엄청 그으며 읽은지 한참 됐는데, 갑자기 생각나 메모를 열어보니 참 육아에 와닿는 글들이 많다. 내게 가장 위로가 되었던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애착은 손상시키지 않는 것보다 회복이 중요하다고. 오히려 좌절은 꼭 필요한 요소라고. 

애착형성이 중요하다는 말이 많은 양육자들, 특히 엄마들을 옭아매고 죄책감을 주는데, 우리는 절대 완벽하지 않고 완벽할 필요도 없다. 


‘안정적 애착이란 애착손상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오해다. 그 누구보다 따뜻하고 지혜로운 양육자가 제아무리 애착손상을 주지 않으려고 애쓴다 해도 아이에게 애착욕구를 좌절시키지 않을 수는 없다. 초보 엄마일수록 더욱 그렇다. 처음부터 엄마인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애착손상을 주지 않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애착손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애착은 한번 깨지면 붙일 수 없는 유리그릇 같은 것이 아니다. 수없이 넘어지고 다치면서도 오히려 더욱더 단단해지는 인간의 몸과 같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 인간에 가까운 휴머노이드가 개발되더라도 인간의 굳은살을 흉내 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소재의 회복력이 좋으면 원형 복구까지는 되겠지만, 인간의 손발처럼 다치고 찢어지는 과정을 통해 더 단단해질 수는 없을 테니까.
애착은 그런 것이다. 한 번도 손상되지 않았기에 애착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깨지면서도 이를 다시 복구하고 연결시키기 때문에 단단해지는 것이다.  104-105/388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게는 ‘적절한 애착손상’이 필요하다.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애착손상이 전혀 없는 것은 애착손상이 심각한 것만큼 문제가 될 수 있다. ‘적절한 애착욕구의 좌절’은 세상을 헤쳐나갈 독립심을 주고, 자아중심성에서 벗어나 상호적인 관계를 맺어갈 기초가 되고, 대상의 좋은 면과 안 좋은 면을 바라보고 통합할 수 있는 시야를 준다. 좌절은 발달의 중요한 요소다. 107/388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상처를 주고받지 않으려는 것보다 관계의 상처를 잘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다.  108/388
부모라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부모들의 헌신으로 지금 우리 아이들은 행복한가? 아니면 나중에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삶의 주체로서 성장하고 있는가? 만일 아니라는 대답이 떠오른다면 즉시 자녀와 자신의 바운더리를 살펴보고 조절해야 한다. 부모의 생각과 달리 아이의 삶을 좌우하는 것은 부모에게 달려 있지 않다. 질병이 치유되는 본질적인 힘은 약물이나 의술이 아니라 사람의 내적 치유력인 것과 같다. 의술이나 약물은 그 힘을 도울 뿐이다. 부모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아이를 앞에서 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일 따름이다.  173/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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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6-10 16: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아이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엄마를 추앙하죠!!*^^* 괭님도 나의 해방일지ost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요즘 계속 즐겨들어요. ‘일종의 고백‘은 여성보컬 버젼도 좋아요 헨(Hen)이 부른거요

독서괭 2022-06-10 16:51   좋아요 3 | URL
미미님, 전 ost 들을 생각은 못하다가 누가 좋다고 해서 들어봤는데, 좋더라구요. 선선한 밤공기에 참 좋았어요. 찔끔찔끔 보는 중이라 아직도 끝을 못 봤지만요 ㅎㅎ 매 회 명대사가 나오네요. 일종의 고백 여성보컬 버젼도 들어볼게요^^

페넬로페 2022-06-10 17: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왕
독서괭님의 귀여운 둘째의 추앙!
넘 귀엽고 애틋하고 따뜻해요
제 마음이 뭉클해질 만큼요~~
대학생인 된 딸아이와 저는 요즘 대놓고
우리는 주고 받는 사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안엔 추앙의 맘이 깔려 있어요 ㅎㅎ
저에게 다시 과거의 한순간으로 돌아갈 기회를 준다면 저는 딸아이 어렸을 때 였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좋지만 그래도 그때도 좋았어요^^

독서괭 2022-06-10 17:43   좋아요 4 | URL
로페님, 둘째가 한창 떼부리고 난장 피우다가 그 시기가 지나니 너무 사랑스럽습니다..ㅎㅎ
대학생이 된 따님과 추앙의 맘이 깔려 있다고 하시는 말씀도 뭉클하네요^^
저도 애들이 커가며 제게서 떨어져나가는 건 당연한 과정이지만, 그 안에 그런 맘이 깔려 있으면 좋겠어요.
애들 좀 빨리 커서 혼자/혹은 부부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그때 되면 지금이 그립겠다 싶습니다.
지금 예쁜 시절을 잘 누려야겠어요^^

거리의화가 2022-06-10 17: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 부모님께 원시적인 순수함을 보였을 때가 있었겠죠^^; 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오래되서인지 떠오르지가 않네요-_-; 둘째의 그런 표현에 엄마로서 많은 감정이 드셨을 것 같아요~^^

독서괭 2022-06-10 17:46   좋아요 4 | URL
화가님, 주양육자에 대한 애착은 생존의 문제라 원시적이고 더 강렬한 것 같아요~ 위험한 상황에서 주양육자에게 다가가려는 게 본능이기 때문에 바로 그 주양육자가 나를 학대하더라도, 오히려 더 주양육자에게 의존한대요ㅠ 그 말 들으니 넘 슬펐어요. 가끔 이 사랑이 권력으로 느껴지거든요. 권력을 휘두르지 않으려고 애쓰려고요. ^^

잠자냥 2022-06-10 17: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둘째 말에 왜 제가 눈물 나죠? 주책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06-10 17:48   좋아요 4 | URL
오 자냥님, 감동 받으셨다~~^^

레삭매냐 2022-06-10 17: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알코올 기운을 두르고...

왜 이리 정겨운지요.

저도 낼 알코올 기운
두르러 간만에 출격합니다.

독서괭 2022-06-10 23:01   좋아요 1 | URL
취하는 정도보다 알코올 기운을 두른 정도가 딱 좋을 것 같습니다^^
매냐님 내일 한잔 하러 가시는군요.
알코올 기운 따스히 두르며 즐건 시간 보내세요^^

프레이야 2022-06-10 18: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왕 둘째 넘나 사랑스럽네요
아이가 엄마를 추앙해 줄 때가 있었는데 말이죠 ㅎㅎ 크면서는 엄마가 지들을 추앙해줘서 다 컸잖아요. 진심 연애하면 추앙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럴 때가 좋았는데 말이죵 ㅎㅎ

독서괭 2022-06-10 23:03   좋아요 4 | URL
프레이야님, 둘째가.. 애교가.. 아휴.. 말도 못합니다 ㅋㅋ
엄마랑 아빠가 세상 최고고 모르는 게 없고 뭐 그렇다고 생각할 때가 있죠 ㅎㅎ 이 시기를 누려야겠어요.
짝사랑하고, 연애 초기에는 추앙하는 것 같아요 ㅋㅋ 콩깍지..ㅋㅋ

새파랑 2022-06-10 19: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은 너무 사랑받으셔서 안센치하셔도 될거 같지만 쓰신 메모는 너무 좋네요 ^^ 사랑받는 엄마 너무 멋지십니다~!!

독서괭 2022-06-10 23:0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술과 밤과 음악이 섞이니 아무리 저라도 센치함이 몰려오더라구요! 인생 허무함은 애들 사랑으로 물리쳤습니다^^

햇살과함께 2022-06-10 23: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둘째 넘 귀엽^^ 저희집 둘째도 어릴 때 저를 너무 사랑해서 내가 이렇게 사랑받아도 되나? 생각한 적 많아요 ㅋㅋ 첫째는 저 닮아서 무뚝뚝한데 말이죠~

독서괭 2022-06-13 11:59   좋아요 2 | URL
햇살님도 둘째에게 많이 사랑받으셨군요! 둘째들이 대체로 첫째에 비해 애교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내가 이 사랑을 받을 자격이 되나 싶을 때가 많아요^^

공쟝쟝 2022-06-11 09: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인간이 가장 사랑할 수 있는 때는 바로 그때 주양육자에 대한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ㅋ (저는 기억나요 내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가 ㅋㅋ) 모든 성인 인간은 그런 담대한 사랑을 이미 해본 것이죠 ㅋㅋ 그리고 독립하여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하는 데… 고것이.. (눈물이 맺혀있다)

독서괭 2022-06-13 11:59   좋아요 2 | URL
엄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기억 나시는군요! 저는 그때의 마음은 잘 기억이 안 나네요 ㅎ 울 엄마는 애교를 부려도 받아주는 사람이 아니었... ㅠ ‘독립하여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하는데..‘ ㅋㅋㅋ 아니 왜요, 쟝쟝님 넘 잘하고 있는데!

mini74 2022-06-11 20: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예쁘고 설레요. 울 애도 그럴때가 있었지하며 아련한 ㅎㅎㅎ지금을 즐기십시오 ㅎㅎㅎ

독서괭 2022-06-13 12:00   좋아요 2 | URL
ㅎㅎㅎ 미니님, 그 시절 그리우실 때가 있죠? 지금을 즐기려 노력하겠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