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여자가 유모차를 끌고 있다.
‘삐약삐약, 병아리, 음매음매 송아지.’
음정 박자 전혀 안 맞는 노래를 아이는 잘도 알아듣고 따라 부른다.
빛바랜 흰색 티셔츠에 긴 청바지를 싹둑 잘라내 걷어 입은 바지, 그리고 오랫동안 신고 다닌듯한 스포츠 샌들, 유모차에 버거울 정도로 치렁치렁 달린 비닐들. 아마도 시장을 보고 가는 모양이다.
얇다란 잡지를 둘둘 말고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가던 나는 그 여자를 보며 한 아이를 떠 올렸다.
그 아이. 그 아이가 맞나?
옷차림이나 퉁퉁한 몸매는 그 아이라 할 수 없지만 구부정한 뒷 모습에서 풍겨나오는 느낌이 그 아이가 맞다.
이 동네 사나?
결혼했구나
사랑을 했겠구나.
얼마나 대단했을까
이상하다. 이상하게 샘이 나고 갑자기 화가 난다.
시간은 어느새 이십년 전이니 그 아이는 당연히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한지도 그러고 보니 이십년이다.
내가 그 아이를 좋아했었나? 혹여 그런 마음을 먹을까 겁내하던 때도 있었다. 그 아이에 대해서가 아니라 내가 교사 초임 가르쳤던 아이들에 대해서 그랬다.
나이를 먹지만 나는 그대로인 것 같아도 내 아이 크는 건 둘째 치고, 기억 속 아이들이 아저씨 아줌마들이 되어 나타나서는 자기 아이들을 소개하는 걸 보면 내가 확실히 늙는 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너무나 당연한 삶의 일상, 거기서 한 시절 스승이 되었다고 내가 딱히 무얼 얼마나 그들의 인생에 참여한 게 될까. 긴긴 인생에서 보면 말이다.
그런데 그 당연한 모습에 나는 그 아이는 넣어두지 않았다.
그 아이가 이 동네 사는 구나.
나는 그 아이가 나를 볼까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보통은 선생인 나를 피하는 건 제자들이다. 졸업해서 잘된 제자들은 내가 뜨악해할 정도로 다가와 거들먹거리며 아는 척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먼저 피하기 일쑤다. 그런 걸로 볼 때 그 아이는 나를 피할 게 뻔하다. 그에 앞서 내가 미리 피하는 게 차라리 낫다. 나는 편의점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선생님 멋있어요.’
그 아이가 한 말이다.
나는 나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변했겠지, 당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