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사회적 원자라는 방법론을 이용해 사회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모든 물체는 자유낙하 한다."라는 가정에 기반해 역학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와 닮았다고 본다. 자유낙하로 가정해 푼 문제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면 가정을 다듬어 더 정교하게 하듯이,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을 단순한 사회적 원자로 가정해 얻은 결과가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면 가정을 수정해 더 정교한 모형을 만드는 것이다. 사회적 원자는 물리학의 방법으로 사회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의 출발점일 뿐이다.

연구에서 관심을 둔 질문은 바로 "만약 구조의 최상층이 잘못된 의견을 가지고 있더라도, 전체 투표자가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최상층의 의견과 다른 의견으로 합의할 수 있을까?"였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의견이 그릇된 의견이고 어떤 의견이 올바른 의견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량적 모형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했다. 옳고 그름이라는 가치판단을 직접 물리학의 투표자 모형에 구현하기는 어려워 다른 간접적인 방법을 택했다.

먼저 상명하복의 계층 구조와 의사소통 채널이 다양한 민주적인 구조는 각기 일장일단이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상명하복 구조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계층 구조의 최상층의 의견이 아주 빠르게 전체의 구석구석으로 전달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체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의 수가 N일 때, 최상층의 의견이 모두에게 전달되는 시간은 N의 로그값에 비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의사소통이 활발한 민주적인 소통 구조는 달랐다. 사람들이 충분히 활발하게 의견을 소통한다면(p값이 1에 가까운 경우), 비록 최상층의 의견이 -1이더라도, 활발한 소통을 통해 전체 중 다수가 +1의 의견에 합의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명확히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가 항상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더 나은 의견에 합의할 가능성이 크지만, 합의에 이를 때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네트워크 사회학자들은 관계를 측정하고, 이 관계의 차이가 매우 다른 사회적 결과들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이 사회적 결과들은 경제적 소득, 생물학적 수명, 정치적 성공, 문화적 영향력 등을 포함한다. 따라서 개인이 보유하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의 양을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불렀다. 관계는 자본처럼 축적할 수 있고, 다른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쓸 수도cash-in 있다는 의미에서다

같은 이유로 공동체community를 이상화하는 고전 사회학자들은 하나같이 공동체성의 핵심을 관계의 양이 균일하게 분포된 것에서 찾았다. 관계의 평등은 집단 내 개인들에게 물적 자원이 고루 나누어지는 것의 선결 조건이다.

"사회는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뒤르켐Durkheim, 마르크스Marx, 짐멜Simmel)"는 사회학의 근본적 질문들 중 하나다. 사회학sociology의 본뜻이 ‘집단에 대한 연구study of group’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인간은 왜, 어떻게 집단생활을 영위하는가(스펜서Spencer, 헤겔Hegel)", "집단의 질서란 어떻게 가능한가(홉스Hobbes, 밀Mill, 루소Rousseau)", "촌락과 같은 작은 사회가 어떻게 국가와 같은 큰 사회로 성장하였는가(말리노프스키Malinowski,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 등도 사실상 같은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집단생활의 효용과 기능(래드클리프 브라운Radcliffe-Brown, 파슨스Parsons), 집단생활을 촉진시키는 특정 문화와 제도의 역사적 경쟁력(베버Weber, 머튼Merton) 등이 중요한 대답들로 제시되었다.

인간 사회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 중에 하나는 인간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혈족만으로 구성된 일부 생물을 제외하고는 가장 큰 집단 규모로 살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대형 유인원인 침팬지와 보노보의 평균 집단 규모는 각각 46마리와 23마리로 인간보다 훨씬 적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협동을 이끌어내는 규범으로 인해 이타주의자뿐만 아니라 규범을 잘 따르는 이기주의자 또한 번성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최근의 경제 실험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조건부 이타주의자다.

요약하자면, 인간의 마음 및 행동에 대한 진화론적 연구는 진화론 학계 내부 및 외부에서 공격을 받는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진화론적 행동 연구를 하는 학자는 여러 편견에 맞서서 싸우지 않으면 자신의 주장을 개진할 수 없다.

타인의 감정과 고통을 내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 도덕 관념의 시작이다. 거울뉴런은 타인의 감정과 고통이 어떻게 내 것처럼 이해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새로운 통찰을 준다. 도덕 관념이 문화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를 보일 수 있으나 기본적인 도덕 법칙들은 보편적이며, 그러한 것들은 대체로 타인의 감정 및 고통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

그렇다면 어째서 지능이 마키아벨리적이라는 것일까? 영장류 사회는 변화무쌍한 동맹 관계로 유지된다. 따라서 다른 개체를 이용하고 기만하는 행위 또는 보다 큰 이득을 위해 상대방과 손을 잡는 행위 등은 상대적으로 자신의 포괄 적합도inclusive fitness를 높일 수 있다. 이렇게 권모술수에 능하려면 무엇보다 다른 개체의 마음을 정확히 읽어 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힘들을 제어하고 공감의 반경을 넓혀서 여기까지 문명을 끌고 온 원동력은 주로 이성의 힘이었다. 그동안 인류는 인지적 공감과 공리주의적 발상 등을 발휘하여 점점 더 큰 조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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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 린드그렌 탄생 110주년 기념 개정판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15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잉리드 방 니만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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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린 시절, 흑백 TV에서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주근깨 가득한 얼굴을 한 소녀 '삐삐'를 주인공으로 했던 드라마가 있었다. 마치 얌체볼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말괄량이면서도, 나쁜 어른들을 보면 혼내주는 삐삐에 열광했던 추억이 있어서일까, 애엄마가 아이에게 읽어주는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의 내용이 지난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만, 그때는 나쁜 어른들에 맞서는 어린이 영웅으로 생각되었던 삐삐가 이제는 현자(賢者)처럼 다가온다.

"생각해 보렴. 네가 어른이 됐을 때 누가 포르투갈의 수도가 어디냐고 물어봤는데 대답을 못하면 기분이 어떻겠니?"
삐삐가 대꾸했다. "그런 것쯤은 대답하고도 남죠. 이렇게 대답하면 되잖아요.
'정 그렇게 포르투갈의 수도를 알고 싶으시면 포르투갈의 수도를 알고 싶으시면 포르투갈에 직접 편지로 물어보세요.'라고요."
"그래. 하지만 네가 포르투갈의 수도도 모른다는 시실이 부끄럽지 않겠니?"
삐삐가 말했다."그럴 수도 있겠죠. 그럼 난 틀림없이 밤에 잠도 못자고 누워서
'도대체 포르투갈의 수도가 어디지?' 하고 궁금해 할 거예요. 하지만 사람이 항상 즐겁게만 살 수는 없잖아요."
삐삐는 장난삼아 몸을 구부리더니, 물구나무서기를 했다.
"그리고 말이죠, 난 우리 아빠랑 같이 리스본에도 갔었어요."
삐삐는 여전히 물구나무서기를 한 채 조잘댔다. 그때 한 경찰이 삐삐한테 호통을 쳤다. "그만해! 네 멋대로 할 생각은 하지 마. 넌 반드시 어린이집에 가야 해. 그것도 지금 당장!" _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 p48

리스본에 가지 못했기에 알 수도 없는 많은 이들은 당연히 리스본에 대한 생생한 경험이 없다. 그렇기에 이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은 포르투갈의 수도, 항해왕자 엔리케와 마젤란, 리스본 조약 등 단편적인 사실이 담긴 단어만을 끈처럼 실체와 연결시킬 뿐이다. 그리고, 이처럼 많은 끈들을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저장하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었다는 것을 경찰의 말 속에서 깨닫게 된다.

그렇지만, 정작 삐삐에게는 이러한 끈이 필요없다. 사랑하는 아빠와 이미 리스본에서 가진 경험은 삐삐에게 경험으로 일부가 되었으니까. 그럼에도, 경찰은 삐삐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기존 체계로의 편입을 강제한다. 삐삐의 리스본에서의 경험이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누구보다 리스본을 잘 체험하고 있는데도 이를 인정받지 못한다. 어쩌면 우리는 지식을 배운다는 것에 열중한 나머지 현인이 가진 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닐런지.

이와 관련해서 어린 시절 같은 경험을 했던 기억도 함께 소환된다. 학교 급식이 없던 시기 어머니께서 싸 주신 반찬 중 '게맛살'이 있었다. 명태로 만들어진, 게살을 먹는 느낌을 주는 게맛살은 소세지와 함께 좋아하는 반찬이었는데, 어느 날 진짜 '게살'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들었던 생각. '와, 이거 게맛살과 맛이 같네.'... ㅜㅜ 흑역사지만, 삐삐를 읽으며 우리는 익숙한 것을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만 익숙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옮겨본다.

이와 함께, 삐삐와 선생님과의 대화도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교육의 목적이 크게 인간을 긍정하고,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면, 삐삐가 버릇이 없어 학교에 올 수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것을 선생님의 문제로만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처우를 합리화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할까.

선생님과 단둘이 남게 되자 삐삐는 선생님 책상 앞으로 갔다.
"저, 선생님. 학교가 어떤 곳인가 하고 와 봤는데, 참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이제 학교에 다니고 싶지 않아요. 겨울 방학이 있든 없든 상관없어요. 학교에선 사과니 고슴도치니 뱀이니 하는 얘기만 잔뜩 하잖아요. 정말 머리가 팽팽 돌 지경이라고요. 하지만 제가 학교를 안 다닌다고 섬섭해하지는 마세요."
선생님은 정말로 섭섭하다고 하면서, 삐삐가 얌전하게 굴지 않은 것이 가장 섭섭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삐삐같이 버릇없는 아이는 학교에 다니고 싶어 해도 받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_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 p71

시간이 흘러 요즘 아이들에게도 삐삐는 나쁜 어른들을 혼내주는 어린이들의 영웅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지만, 예전 그런 삐삐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봤던 세대들은 이제 삐삐가 더는 외롭게 편견과 싸우지 않도록 이제는 그의 곁에 있어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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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2-11-20 23: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처없이 방랑 생활을 하며 세상을 탐험하고 싶다고- 아이가 어렸을 때 이 작가 소설만 읽으면 졸랐어요.
같이 좀 떠나줄걸, 지금와서 생각하네요:-)

겨울호랑이 2022-11-20 23:43   좋아요 1 | URL
시간이 흘러 우리를 기다려주지 못하는 것은 부모님 뿐이 아닌 듯 합니다. 심지어 우리 자신들조차도 시간 속에서 변하는 것을 생각해보면서 부족하나마, 현재의 모습에 충실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닌가를 갱지님의 글을 읽으며 깨닫게 됩니다... 갱지님 편한 밤 되세요!

渼沙_常水 2022-11-21 0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엉뚱하면서도 당당했던 말괄량이 삐삐. 알반적으로 소신은 주머니에서 나온다고 하듯이 삐삐에게는 무시무시한 힘이 삐삐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었던것 같습니다
꾸밈없는 순수한 동심의, 50년 전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네요

겨울호랑이 2022-11-21 10:05   좋아요 0 | URL
네, 渼沙_常水님 말씀처럼 삐삐의 힘이 삐삐에 자유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삐삐의 자유로움이 삐삐의 힘을 무한하게 키우지 않았을까도 함께 생각해 봅니다. 미사_상수님, 즐거운 한 주의 시작되세요! 감사합니다. ^^:)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는 이러한 관찰에 근거하여 마음과 몸이 분리된 실체라는 심신이원론mind-body dualism을 주장했다. 데카르트는 몸과 마음이 뇌 속에 있는 송과선pineal gland을 통해 연결되고, 영혼이 ‘몸의 조종사’라고 생각했다.

심리학이 가능해졌고,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 즉 마음이란 고장이 날 수도 있고 고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서서히 몸과 마음은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견해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지각에 대한 뇌인지 연구는 무의식적으로 지각이 일어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 감각 역시 의식의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보였다. 감각과 지각은 더 이상 예전처럼 구분되지 않고, 의식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또 어떻게 정의해야 되는지 아직 확실하지 않다.

통계물리학을 공부하다보면 가장 먼저 배우는 주제는 상호작용이 없는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시스템이다. 상호작용이 없다면 전체의 특성은 구성 요소 하나의 특성으로부터 모두 결정된다. 이 경우 하나를 알면 전체를 알 수 있다.

이처럼 물질의 거시적인 상이 변하는 것이 상전이phase transition다. 정확히 같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고 상호작용의 꼴도 온도에 따라 전혀 달라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거시적인 물질의 특성이 급격히 변하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다.

우리 모두는 다른 이와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하며 살아간다. 상호작용이 존재하는 물리계는 입자 하나를 이해한다고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 전체를 부분의 합과 다르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상호작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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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칸타타에서 만날 수 있는 바흐의 가장 매력적인 습관 중 하나는 악기의 개성을 한껏 살린다는 점이다. 표정 있는 결말을 위해 그는 각 악기를 독립적으로 사용하거나 다양한 조합을 시도한다. 그의 손길 속에서 악기들은 특별한 효과나 분위기 이상을 만들어낸다.

「이도메네오」나 「돈 조반니」와 가장 유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음악이 바흐의 「요한 수난곡」 오프닝이다. 18세기 전반에 작곡된 오페라 서곡 중 내가 아는 한 이 곡에 필적하는 작품은 없다. 베토벤의 「레노오레」에 삽입된 세 곡의 프렐류드의 직계 조상으로서도
이보다 훌륭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빛과 어둠, 악에 대항하는 선, 영혼과 육신, 진실과 거짓 등 바흐는 요한이 자주
드러내는 극명한 사상의 양극성을 연결시킬 줄 알았다. 이 악장이 연주되면 우리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신과 같은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 사이가? 극명하게 갈라지는 양극성과, 인류를 위해 ‘영락하며’ 스스로 몸을 낮춘 그리스도의 모습을 깨닫게 된다

수난곡은 스토리텔링과 명상, 종교와 정치, 음악과 신학의 혼합물로서 당시에는 대단히 대담하고 복잡한 시도였고, 앞서 4장에서 찾아본 ‘음악 드라마의 정신’의 발현이 절정으로 표현된 것이었다. 그리고 바흐는 ‘수동적인’ 오페라-연극 청중이
아닌 정신적 자양분을 열망하는 루터교 신도들의 요구에 부응해왔다.

바흐의 음악은 내러티브와 해설, 성서 연대기와 신학적으로 형상화된 시적 텍스트가 서로 맞물려 있었으며, 이처럼 정교하게 음악적 깊이를 따라잡을 수
있는 이 또한 아무도 없었다

바흐가 이 경건주의 신학자가 윤곽을 잡은 여러 테마에 동화되어, 얼마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자신의 첫 번째 수난곡을 구성했는지는 실로 놀랍기만 하다. 그는 복수심에 불타는 군중과 투옥된 평온한 예수 사이의 극적인 대립을 기반으로 삼으면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을 그의 마지막 승리로 표현했다

요한의 수난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점은 바흐가 전략적으로 배치한 아리아들이다. 중요한 순간에 이 아리아들은 교리의 근원적 의미를 하나로 모아서 청중과 능동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드라마는 여전히 거침없이 펼쳐진다.

시간은 두 차원, 즉 과거(및 그에 대한 반응까지)를 암시하는 현재와 현재를 조건 짓는 과거 사이를 항상 오간다. 서사의 본질적인 시작과 끝을 알리고 동시에 신학의 근원적 테마를 조율하는 역할은
앞에서도 언급했듯 신중하게 선택되고 배치된 코랄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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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트가 말했듯이, 연주란 ‘일부는 과거고, 일부는 미래이며, 일부는 막 완성된 신작으로 볼 수 있다.’* 바흐가 악보에 포함시킨 엄청난 분량의 디테일한 장식음은 그의 실제 연주 경험과 관련된 것으로, 그가 즉흥적으로 작곡하고, 다듬고, 그리고 최초의 단순한 첫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데 사용했던 다양한 전략들이 가장 훌륭한 방식으로 압축되어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일부 해설자들은 1729~1730년경 바흐가 의무적으로 교회 칸타타 작곡하는 데 환멸을 느껴서 다른 작품들을 작곡하며 창조적인 시간을 보냈으며 심지어는 신앙의 위기까지 맞이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1950년대 알프레드 뒤르와 게오르크 폰 다델젠이 수행했던 법의학 연구에 대해 반응하는 (혹은 과잉 반응) 한 유형이었다.

전통적인 바흐의 이미지 중 그가 수정한 부분에 따르면 ‘그는 보다 세상물정에 밝고, 더욱 인간적이며… 온몸으로
동시대와 엮여 있던 사람이다. 그는 전도유망한 미래의 트렌드를 환영했지만, 칸토르라는 전통적인 직업에 귀속된 뒤에는 온 힘을 다해 충실하게 일했다. 그는 두 시대 사이의 경계에 서서 사실을 직시하는 사람이었다.’ 이를 반박하기는 어렵다. 그가 주장한 ‘점차 깊어지던 교회의 편협함에 대한 칸토르의 저항’*도 잘못되었다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칸타타 작곡이 위축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것 말고도 다른 설명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바흐는 1729~1730년 즈음에는 라이프치히 주요 교회에서 연주할 칸타타들을 충분히 작곡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라이프치히 지식층에 막 유입되기 시작하던 계몽주의부터 살펴봐야 한다. 이 사상은 훗날 도시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던 정통 루터교와 순식간에 결합했다. 헤겔은 아마도
독일식 계몽주의가 ‘신학 편’에 서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했던 것 같다. 이는 공연 예술에도 확실하게 적용됐다.* 바흐와 동시대 사람들은 예술에서도 도덕적, 종교적 혹은 합리적 의미를 분명하게 찾고자 했다. ‘아름다움’과 ‘숭고함’과 같은 미학적 개념이 예술적 개념과 과학 및 도덕적 개념으로부터 분리된 것은 이 세기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였다.

라이프치히에 정착하면서 바흐의 가치관은 프리드리히 에르하르트 니트*와 같은 음악가들의 ‘계몽된’ 표현 쪽으로 더욱 기울어졌다. 이들의 음악은 헌신과 교화뿐 아니라 미적 즐거움까지 아우르고 있었다.

요한 리스트의
찬송가는 신도들에게 매우 익숙한 선율이었지만, 바흐는 그 선율을 참신하고도 충격적으로 다룬다. BWV 21이 이전 해 신앙의 힘으로 영원을 열망하는 비전을 보여줬다면, BWV 20은 평안보다는 공포, 고문과 고통의 영원의 가망성을 냉담하게 메시지로 담고 있다. 이는 인간에게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라는 촉구다. 구원을 향한 유일한 길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바흐의 자필 악보에 남아 있는 수정 흔적에서는 서로 연결고리가 없는 구조와 그들을 어떻게든 화해시켜보고자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선순위가 충돌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 모든 일들은 촌각을 다투는 가운데 발생했다. 이처럼 곤란한 문제가 생긴 까닭은 음악이 이전 해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난해해졌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능력의 절정에 오른 위대한 작곡가를 만나게 된다. 그는 매주 스스로 선택한 도전을 마주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형식과
접근, 각 테마의 근간이 되는 음색, 자기 앞에 놓인 가사에서 떠오르는 각각의 상징과 은유를 적용시켰다. 작업의 규모와 속도도 그의 기교를 발전시키는 데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바흐는 루터의 찬송가가 오랜 전통의 프리기아 선율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선율은 다른 방식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구식 모테트 스타일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우주 전체가 신의 풍요로운 창조를 기념한다는 아이디어는 구상 능력이 뛰어난 작곡가 바흐에게 선물로 다가왔다. 이 아이디어로 그는 무한성의 의미를 숙고해서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세시대에는 대체로 거론되지 않았던 이 무한성이란 개념은 우주를 그 자체로 인식하고, ‘자연과 은총이 인류 전체에게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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