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書經)》에 말하였습니다.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고 무리를 지음이 없으면 왕도(王道)는 호호탕탕하다.’ 또 말하였습니다. ‘큰 나라는 그 힘을 두려워하고, 작은 나라 그 덕을 품는다.’ 세종은 이에 가깝습니다.’

신 사마광이 말씀드립니다. 어떤 사람이 신에게 물었습니다. ‘오대(五代)의 제왕 가운데 당의 장종(莊宗)과 주(周)의 세종(世宗)은 모두가 영웅적인 무력을 가졌다고 칭찬하는데, 두 주군 가운데 누가 현명합니까?’ 신이 이에 응답하였습니다.
‘무릇 천자가 만국을 통치하는 까닭은 그들 가운데 복종하지 않는 것을 토벌하고, 그 중에 미약한 자를 어루만져주며 그 호령을 시행하며 그 법도를 하나로 하고, 신의(信義)를 두텁게 밝히며 억조나 되는 백성을 아울러 아끼는 것이다.’

왕박이 상소하였다. "예(禮)는 형체를 검사하는 것이고, 음악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인데, 형체는 밖에서 순리에 맡도록 하는 것이고, 마음은 안에서 평화롭게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고도 천하가 다스려지지 않는 것은 아직 없었습니다. 이리하여 예와 악이 위에서 닦아지면 만국은 아래에서 교화되니, 성인의 가르침은 엄숙하지 않아도 이루어지고 그 정치는 엄격하지 않아도 잘 다스려진 것은 이 도를 사용한 것입니다. 무릇 음악은 사람의 마음에서 생겨나고 소리는 물건에서 이루어지는데, 물건의 소리가 이미 이루어지면 다시 능히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황제(黃帝)는 9촌(寸)이 되는 관(管, 관악기)을 불다가 황종(黃鐘)의 정성(正聲)을 찾아냈는데, 이를 반으로 하면 청성(淸聲)이 나고, 이를 배로 하면 원성(援聲)이 되며, 셋으로 나누어서 이것을 더하거나 덜어내어 12율(律)을 낳습니다. 12율이 돌아서 궁(宮)이 되어 7조(調)를 낳아서 1균(均)을 만듭니다. 무릇 12균·84조(調)가 되면 다 갖추어진 것입니다. 진(秦)이 만나서 학문을 없애는 일을 만나니 역대로 음악을 다루는 사람을 채용하는 일이 아주 적었습니다.

회남에 기근이 들어서 황상이 쌀을 그들에게 대여하라고 명령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백성들은 가난하여 아마도 갚을 수 없을까 걱정입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백성은 나의 자식인데 어찌 아들이 거꾸로 매달려 있는데 아버지가 그들을 위하여 풀어주지 않겠는가? 어찌 그들에게 반드시 갚으라고 책임 지우려는데 있겠는가?"

종모는 기공(紀公) 이종선(李從善)과 함께 사절의 책임을 받들고 주에 갔었음으로 서로 두텁게 잘 알아서 당주에게 말하였다. "이종가는 덕이 가볍고 뜻이 나약하며 또 석씨(釋氏, 석가모니)를 지독하게 믿으니 인주(人主)의 재질이 아닙니다. 이종선은 과감하고 신중하니 의당 후사(後嗣)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당주는 이로 말미암아서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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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장혜경 옮김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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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우리가 삶을 사랑한다면 삶의 과정이, 다시 말해 변하고 성장하며 발전하고, 더 자각하며 깨어나는 과정이 그 어떤 기계적 실행이나 성과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_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p27/160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 ~ 1980)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Lieben wir das Leben noch?>은  저마다 다른 주제를 다룬 독립된 저자의 유작 8편을 묶은 책이다. 그렇지만, 책을 읽다보면 각 편들의 내용을 하나로 연결하는 고리를 발견할 수 있고 이 연결고리를 통해 개인부터 현대 사회의 공통된 문제와 해결방안을 발견할 수 있다. 프롬은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 집중할 것을 강조한다.


 이는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삶의 목적을 미래의 행복에 두지 않고, 지금 눈 앞의 현실에서 발견하는 자세는 수단과 목적을 원래자리로 돌려놓는 것과 같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언어적이며 추상적인 것 대신 비언어적이며 구체적/경험적인 것을 긍정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며, 또다른 '코페르니쿠스적 전회(Copernican revolution)'이기도 하다.  


 현대의 다른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한 가지만 강조하고 싶다. 그 무엇보다 우리는 수단을 실제로도 수단으로, 목적은 실제로도 목적으로 놔두어야지 둘을 뒤죽박죽 섞지 말자고 결심해야 한다. 인간이 모든 것의 목적이라는 서구의 종교와 인문주의 전통에 진심을 다하자고 결심해야 한다. 진심을 다하지 못하겠다면 적어도 그 전통에 찬동은 해야 한다. 지금은 사물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다시 인간에게 윗자리를 돌려주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_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p30/160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살아있는 것이다. 고통은 인생의 최악이 아니다. 최악은 무관심이다. 고통스러울 때는 그 원인을 없애려 노력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 감정도 없을 때는 마비된다(p29)... 창조적인 화가의 자세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자기 나무나 꽃, 풍경을 보는 화가는 나무가 예쁘냐 아니냐에는 관심이 없다. 나무의 이름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가 훨씬 더 마음에 두는 것은 나무를 남김없이 직접 경험하는 것, 그 나무의 본질을 경험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무를 보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_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p30/160


 순전히 개념으로만 인지할 경우 그 나무는 개성이 없으며 그저 '나무' 종 중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나무가 추상의 대변인에 그치는 것이다. 하지만 완전하게 인식할 경우 추상이 없다. 나무는 완전한 구체성과 더불어 그것만의 유일성을 띠게 된다. 그럴 경우 세상엔 나와 인연을 맺고 내가 바라보며 응답하는 이 한 그루의 나무만 존재한다. 그 나무가 나의 고유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나 미래에 산다. 하지만 실제 경험으로서의 과거나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여기만이 존재한다. _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p64/135


 에리히 프롬은 그 첫째로 눈 앞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것을 강조한다.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른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진실(眞實)을 발견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서는 창조성이 필요하며, 창조성에 바탕을 을 둔 긍정하는 태도는 '사랑'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진정한 사랑은 인간을 목적으로 긍정하며, 수단으로 착취당하면서 발생하는 부정적 감정(증오 등)을 대신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대규모 인간소외를 조장하는 현대사회 문제의 해결책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현재의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감성과 지성의 분리를 극복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인간 전체를 재발견해야 한다. 혹은 내가 좋아하는 표현을 써서, 우리는 진정한 인간을 재발견해야 한다. 나는 정신과 몸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p33)... 현대의 윤리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떠안아야 할 두 번째 과제는 창조적 인간이 되어 수비와 수용의 태도를 극복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창조성이란 하나의 태도, 하나의 성격, 인간과 세계를 대하는 하나의 자세로서 창조성이다. _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p34/135


  사고와 감정으로 자기 경험의 현실성을 확신하고 그것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용기와 믿음이 없다면 창의성도 없다. 따라서 창의적 자세를 키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용기와 믿음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둘을 장려해야 할 것이다...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 최고의 대답은 이렇다. 창의성은 보고 (혹은 의식적으로 인지하고) 대답하는 능력이다. _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p64/135


 나는 여기서 사용한 긍정이 전적으로 주관적인 것은 아니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싶다. 사랑은 삶과 성장, 기쁨과 자유의 긍정과 같은 뜻이므로 당연히 악, 그러니까 부정, 죽음, 강제는 사랑할 수 없다. 분명 주관적 감정은 신나는 흥분의 감정일 수 있고, 흔히 이것을 의식적으로 '사랑'으로 이해한다. 당사자는 그것이 사랑이라 믿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심리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그 주관적 경험은 내가 사랑이라 부르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다. _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p38/135


 에리히 프롬은 사회적으로 권위주의적 체제를 부정적인 제도로 해석한다. 프롬의 관점에서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은 신(神)에 부여된 권위에 더해 자본(資本)이라는 우상을 '물신(物神)'으로 만들고 인간소외의 현실을 은폐시키는 부정적 도구다.  소외된 인간이 느끼는 결핍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은폐시킨다. 경제적으로 자본주의는 '소비자 주권'이라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는 '국민 주권'을 통해 개인이 주도권을 갖는 양 호도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기에 현대인은 불행할 수 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 또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와 맞닿아있다.


 민주주의는 개인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지성과 감성, 관능의 가능성을 모두 갖춘 자아를 긍정할 깊은 감각을 키울 만큼 개인을 지지하지 못했다. 개인에게 자신을 부인하고 생산과 이윤의 요구에 복종하라고 강요한 청교도주의와 프로테스탄티즘의 유산은 파시즘이 대두할 조건을 마련했다. _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p63/135


 인간은 '소비하는 인간(호모 컨슈멘스 homo consumens)'으로 변해버렸다. 인간은 만족을 모르고 수동적이며 날로 더해가는 끝없는 소비로 텅 빈 마음을 보상하려 한다. 과식, 구매, 음주가 우울증과 불안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나는 메커니즘과 관련해서는 수많은 임상적 사례가 존재한다(p101)... 최대 소비에서 최적 소비로 이행하는 것은 생산패턴의 극적인 변화가 될 것이며 나아가 뇌를 세척해 탐욕을 점점 더 부추기는 광고의 급격한 감소를 불러올 것이다(광고의 제한과 공공 부문 생산의 증가는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거의 생각할 수가 없다). _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p102/135


 인간은 자본주의 생산 시스템 때문에 다양한 이유로 불안과 소외감을 느낀다. 이 시스템이 날로 커져가는 경제적, 관료적 거인을 만들어내며, 그 거인과 마주 선 개인은 작고 무력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개인은 날이 갈수록 시회의 사건에 적극 참여할 수 없으며, 중간 시민계급에서 그 아래 시민계급에 이르는 폭넓은 계층에 커다란 불안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_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p109/135


 인간은 최고의 자산, 즉 경제적/기술적 진보에 쓰이는 도구가 된다. 존재가 아니라 소유해 쓰이는 도구가 된다. 따라서 인간이 어떤 동기에서 활동적인지가 중요하지 않고 결과가 중요하다(p124).... 수동성의 결과는 무엇일까? 바로 소비하라는 강제, 소비하는 인간이 되라는 강제다. 소비하는 인간은 내면이 공허하고 수동적이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더 많은 것을 안으로 불어넣어야 한다... 실제 그의 분주함과 게으름은 같은 것이다. 즉 내면 활동성의 결핍이다. _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p125/135


 정치적 수동성에서도 똑같은 것을 목격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척하며 거기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선거와 이런저런 후보에 대해 열을 올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에 무관심하며 완벽하게 숙명론적이다.... 활동적인지 않은 민주주의, 가난한 로마 시민들이 서커스나 검투 경기를 볼 때나 요즘 사람들이 경마를 볼 때와 똑같이 수동적인 관중의 자세를 취하는 민주주의가 무슨 민주주의란 말인가? 물론 그렇게 된 데는 TV 같은 기기의 역할이 크다. _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p125/135


 저자 에리히 프롬은 이러한 문제점 해결을 위해 잠시 현재에 머물 것을 권유하며,. 'Laissez faire'라는 시장방임주의 대신 'Let It Be'를 말한다. 결핍을 채우기 위한 소비가 아닌, 자신가 직면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바쁨에 휩쓸려가지 않고 자신의 내면과 진실을 바라볼 것을 말하는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작은 것으로부터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프롬의 주장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고도 단순하기에 감동과 신선함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작은 행동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현대인의 삶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작은 결핍이 오늘날의 큰 문제를 일으켰다는 저자의 지적에 공감하게 된다. 이와 함께 서양 기독교가 낳은 자본주의라는 현대의 병폐를 동양의 선(禪)으로 넘으려는 내용 안에서 현대 사상의 큰 흐름을 확인하며 리뷰를 갈무리한다....


 나는 수동성을 의식하고 이 수동성이 인간에게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작은 깨달음이다. 다음 걸음은 진정한 활동성의 연습이다. 아마도 그 시작은 한번 가만히 앉아 바라보려는, 들어보려는, 명상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_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 p126/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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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씨가 말하였다. "세금이란 관부(官府)의 물건입니다. 공께서는 절도사이시니 먼저 세금을 내시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아랫사람들을 통솔하시겠습니까? 또 혼자서만 이정(里正)이 되어서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세금을 내어 초달(楚撻, 매섭게 달고 치는 것)을 면하였던 때를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어떤 사람이 주행봉에게 유세하였다. "공의 얼굴에 글씨가 새겨 있으니 아마도 조정의 사자에게 웃음거리가 될까 걱정이니 청컨대 약으로 그것을 없애시오." 주행봉이 말하였다. "내가 듣건대 한(漢)에 경포(?布)가 있었는데, 영웅이 되는 데는 방해되지 않았다 하니 내가 무엇을 부끄러워하겠소?"

황상이 말하였다. "근래의 왕조에서는 대부분이 진실로 믿고 제후들을 대우하지 아니하니 제후들 가운데 비록 충절(忠節)을 다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길로 말미암지 못하였다. 제왕 된 사람은 다만 그 신의를 잃지 않을 수만 있다면 어찌 제후가 마음으로 귀부하지 않을까 걱정하겠는가?"

"도적들로 하여금 스스로 서로 까발리어 고발하게 하여서 그 고발한 재산의 반을 그에게 상으로 주고, 혹은 친척이 그들[도적]을 위하여 자수하게 하면 그 무리들의 패거리들을 논죄(論罪)하고 그 자수한 사람을 사면하십시오. 이와 같이 하면 도적은 모일 수 없을 것입니다."

1년 시간 동안에 그의 직무를 살피시어 만약에 과연 능히 알맞게 감당할 수 있으며 그의 관직이 이미 높다고 한다면 평장사(平章事)로 제수하시고, 아직 높지 않다면 조금씩 바꾸어 승진시키고 권지(權知)의 일은 예전처럼 하게하십시오. 만약에 알맞지 않는다면 그들의 정사(政事)를 처리하는 것을 거두시고 그 천거한 사람에게 책임 지우십시오.

무릇 정치를 하는데 먼저 해야 하는 것은 신의를 두텁게 하는 것 만한 것이 없으며 신의가 진실로 드러난다면 전지(田地)는 넓어지지 않는 일이 없을 것이고, 전지가 넓어지면 곡식이 많아지고 곡식이 많아지면 이를 백성들에게 쌓아 두는 것은 마치 관부에 쌓아 두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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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사마광이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에 주의 세종(世宗, 후주의 2대 황제인 곽영)과 같이 한다면 인(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의 몸을 아끼지 않고 백성들을 아꼈으니 만약에 세종과 같다면 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무익(無益)한 것으로 유익(有益)한 것을 폐기한 것이 아닙니다.

무릇 현명한 사람을 나아가게 하고, 불초(不肖)한 사람을 물러나게 하는 것은 그 재주를 거둬들이기 위함인데, 은혜로 구휼하고 진실하게 믿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묶기 위함이고, 공로를 이룬 사람에게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은 그들의 힘을 다 쏟게 하기 위함이며, 사치한 것을 버리고 쓰는 것을 절약하는 것은 그 재물을 풍성하게 하기 위함이고, 때에 맞추어 부리고 거둬들이는 것을 적게 하는 것은 그 백성들을 커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 재주 있는 사람이 이미 모여지고, 정치적인 일들이 이미 잘 다스려지며, 재물의 쓸 것이 이미 충분하고, 사민(士民)이 이미 붙어있기를 기다리고, 그런 다음에 들어서 이를 사용하면 공로는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무릇 공격하여 빼앗는 도리는 반드시 그 가운데 쉬운 것을 먼저 처리하는 것입니다. 당(唐)과 우리는 경계를 맞댄 것이 거의 2천리나 되는데, 그 형세는 쉽게 시끄럽게 됩니다. 이를 시끄럽게 하는 것은 당연히 아무런 대비가 없는 곳에서 시작하여야 하는데 동쪽을 대비하고 있으면 서쪽을 시끄럽게 하고, 서쪽을 대비하고 있으면 동쪽을 시끄럽게 하면 저쪽에서는 반드시 분주하게 다니며 이를 구원할 것입니다.
분주하게 다니는 사이에 그들의 텅 빈 곳과 알찬 곳 그리고 강한 곳과 약한 곳을 알게 되고 그런 다음에 알찬 곳을 피하고 텅 빈 곳을 치며 강한 곳을 피하여 약한 곳을 치는 것입니다. 아직은 반드시 대규모로 거병하지 말고 또 경무장한 군사들로써 이들을 시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황상이 시중드는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경들은 불상을 훼손(毁損)한다고 의심하지 말라. 무릇 부처는 선한 도리를 가지고서 사람을 교화하는 것이니 진실로 선에다 뜻을 두면 이것이 부처를 섬기는 것이다. 저들 구리로 만든 모양이 어찌 이른바 부처이겠는가? 또 내가 듣기로는 부처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데 있다 하니 비록 머리나 눈이라도 오히려 버려서 보시(布施)하는데 만약에 짐의 몸이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다면 역시 아까워 할 것이 아니다."

능히 사람을 알고 공정한 사람을 선발하여 재상(宰相)으로 삼고, 백성들을 아끼며 하소연 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수령(守令, 태수와 현령)으로 삼으며, 재물을 풍부하게 하여 먹을 것을 넉넉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금전과 곡식을 관장하게 하고, 원래의 정서를 알 수 있고 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형옥(刑獄)을 관장하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 폐하께서는 다만 명당(明堂)에서 팔짱을 끼고 그들의 공로와 허물을 보아 상을 주거나 벌을 준다면 천하가 어찌 다스려지지 않을까 걱정하겠습니까? 왜 반드시 군주의 존귀함을 내려 신하의 직분을 대신하며 귀한 지위를 낮게 하여 천한 일을 친히 하시니 마침내 정치를 하는 근본을 잃는 일이 없겠습니까?"

황제가 고평에서의 전역(戰役)23을 통하여 비로소 그 폐단을 알았는데, 계해일(12일)에 시중을 드는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무릇 군사는 정병(精兵)을 만들기에 힘써야지 많게 하기를 힘쓸 것이 아니고, 지금 농부 100으로 갑사(甲士) 한 명을 기를 수 없는데 어찌 백성들의 기름진 것을 빼앗아 이러한 쓸데없는 물건을 길러야 하겠는가? 또 건장하고 나약한 것이 구분되지 않는데 무리들에게 어떻게 권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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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주는 근년에 군사를 출동하였으나 공로를 세우지 못하자 마침내 군사 활동을 쉬고 백성들을 쉬게 하는 문제를 논의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바라건대, 폐하께서 수십 년 동안 군사를 사용하지 않으시면 소강(小康, 조그만 안정)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당주가 말하였다. "장차 죽을 때가지 사용하지 아니할 것인데 어찌 수십 년이라 하시오?"

"영전(營田) 가운데 비옥한 것이 있으면 이를 팔아 수십만 민(緡)을 얻어서 국가에 보탬이 되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황제가 말하였다. "이익이 백성들에게 있는 것은 마치 국가에 있는 것과 같은데, 짐이 이 돈을 어디다 쓸 것인가?"

애초에, 당 명종(明宗) 시절에는 재상인 풍도와 이우(李愚)가 판국자감(判國子監) 전민(田敏)으로 하여금 《구경(九經)》을 교정(校正)하여 판각(板刻)으로 새겨서 인쇄하여 이를 팔게 하라고 주청하니 조정에서는 이를 좇았다. 정사일(9일)에 판각이 완성되어 이를 헌납하였다. 이로부터 비록 난세(亂世)라 하더라도 《구경》이 전해지고 퍼진 것이 아주 넓게 되었다.

황제가 이 소식을 듣고 임오일(7일)에 제장들을 침전(寢殿)으로 불러서 그들을 나무라며 말하였다.
"짐은 즉위한 이래로 나쁜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고, 오로지 군사들을 넉넉하게 하려고 생각하였고, 부고(府庫)에 축적된 것과 사방에서 공헌해 온 것은 군사들에게 먹이는 것 이외에는 남은 것이 거의 없는데, 너희들은 어찌 이를 알지 못하는가! 지금 마침내 흉악한 무리들을 멋대로 내버려 두어서 입을 놀리며 인주가 부지런하고 검소한 것을 돌아보고 국가가 가난하고 모자라는 것을 살피지 아니하며, 또 자기가 무슨 공로를 세워서 무슨 상을 받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고, 오직 원망하는 것만 아니 너희들은 편안한가?"

황제는 누차 진왕에게 경계하여 말하였다.
"옛날에 내가 서쪽으로 정벌하면서 당(唐)의 18능(陵)
을 보았는데, 발굴되지 아니한 것이 없었으니, 이것은 다른 것이 없고 오직 금과 옥을 많이 넣어 두었던 연고이다. 내가 죽거든 마땅히 종이로 만든 옷을 입히고, 와관(瓦棺)으로 거두는데, 신속하게 장사를 지내고 궁중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지 말라. 광중(壙中)은 돌을 사용하지 말고 옹기(甕器)로 이를 대신하는데, 공인(工人)이나 역도(役徒)는 모두 고용하고 백성들을 번거롭게 하지 말라. 장사를 끝내면 능 근처에 있는 백성 30호만을 모집하여 그들의 잡된 요역을 면제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이를 돌보게 하며, 하궁(下宮, 지하 무덤의 궁전)을 만들지 말라. 능을 지키는 궁인(宮人)을 두지 말고, 돌로 된 양·호랑이·사람·말을 만들지 말라. 오직 돌에다 새겨서 능의 앞에다 두는데, ‘주(周) 천자는 평생 검약(儉約)하기를 좋아하였고, 명령을 남겨서 종이옷과 와관(瓦棺)을 사용하라고 하여 사천자(嗣天子, 천자를 이어받은 사람)는 감히 어기지 못하였다.’라고 하라. 네가 혹 나의 말을 어기면 나는 너에게 복을 주지 않을 것이다."

황제가 말하였다. "옛날에 당 태종은 천하를 평정하면서 일찍이 스스로 가지 않은 적이 없는데, 짐이 어찌 구차스러운 편안함을 행하겠소?"
풍도가 말하였다. "폐하께서 능히 당 태종처럼 될 수 있는지 아직은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황제가 말하였다. "나의 병력이 강함을 가지고 유숭을 깨뜨리는 것은 마치 산으로 달걀을 누르는 것과 같을 뿐이오."
풍도가 말하였다. "폐하께서 산과 같이 될 수 있는지는 아직 살피지 못하였습니다."
황제는 기뻐하지 않았다. 오직 왕부(王溥)만이 가기를 권고하였다. 황제는 이를 좇았다.

경신일(17일)에 태사·중서령인 영문의왕(瀛文懿王)
풍도(馮道)가 죽었다. 풍도는 어려서 효도로써 이름이 알려졌고, 당(唐) 장종(莊宗)시대에 비로소 귀하고 드러나게 되었으며, 이로부터 여러 왕조에 걸쳐서 장수·재상·삼공·삼사(三師)의 지위를 떠나지 않았는데, 사람됨은 깨끗하고 검소하며 관대하고 넓어서 사람들은 그가 기쁜 것인지 화내는 것인지를 헤아리지 못하였고, 말을 잘하고 지혜가 많아서 뜨고 지는 것을 받아들였고, 일찍이 《장락노서(長樂老敍)》를 저술하여 스스로 여러 왕조를 걸치며 영광을 맞이하였던 상황을 서술하였으니, 당시의 사람들은 왕왕 덕행과 도량이 있는 사람으로 그를 추대하였다.

구양수(歐陽修)가 논평하였습니다. ‘예의염치(禮義廉恥)는 나라의 네 가지 강령이다. 네 가지 강령이 넓혀지지 않으면 나라는 마침내 망한다.’
고 하였다. 예의는 사람을 다스리는 큰 법도이고, 염치는 사람을 세우는 큰 절도인데, 하물며 대신(大臣)이 되어서 염치가 없다면 천하에 그 혼란이 없을 것이며, 국가에 그 망하는 일이 없겠는가! 풍도의 《장낙노서》를 읽어보니 그는 스스로 서술하면서 영광으로 생각한 것을 보고서 그가 염치가 없는 사람이라는 알 수 있었으니 그런즉 천하 국가가 좇아갔던 것을 알겠다.

신 사마광이 말씀드립니다. 하늘과 땅에는 지위가 만들어져 있는데 성인은 이것을 모범으로 삼고 예(禮)를 만들어 법도를 세우니, 안으로는 부부(夫婦)가 있고, 밖으로는 군신(君臣)이 있습니다. 지어미는 지아비를 좇다가 죽을 때까지 고치지 않는 것이며, 신하가 임금을 섬기다가 죽는 일이 있어도 두 마음을 품지 않는데, 이것이 사람으로서의 큰 도리입니다.

풍도가 재상이 되어 다섯 왕조와 여덟 성을 거쳤는데, 만약에 여관에서 지나는 손님을 보는 것과 같이 하여 아침에는 원수의 적(敵)이었지만 저녁에는 군신(君臣)관계가 되어 얼굴을 바꾸고 말씨를 변조하면서 일찍이 부끄러움이 없는데 큰 절개가 이와 같다면 비록 조금의 훌륭한 일을 하였다 하여도 어찌 칭찬할 만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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