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을 대비하여 스파링

 

1

 

전반적으로 무료한 인생을 살아왔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끔 정말 아무런 바람도 불지 않는 기간이 잠깐씩 찾아오곤 했다. 요즘처럼. 매실차 온더락이나 마시고, 멍뭉이와 멍뭉어로 멍뭉멍뭉 대화나 나누고, 동네 빵집에 뭐 맛있는 빵이 나왔나 순찰이나 하고 다니는 느긋한 시간. 그러나 이런 다음에는 꼭 뭔가 몰아치곤 했다. 미리 짐작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방학식 날 교문을 박차고 달려 나오는 초딩 떼처럼 쉴 새 없이 분주하게 밀려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무적이듯이, 이 사건들 역시 아무리 단단한 마음을 갖추고 기다려도 현명하게 돌파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냥 실컷 얻어터지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어쩐지 지나치게 평화롭더라니.

 

얻어터지다 보면, 죽지 않을 만큼만 괴롭히고 시간은 간다. 생선 구이를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리면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남은 밥을 다 먹는다. 먹다 보면 밥이 밀어내든 국물이 씻어내든, 위장행 음식물 열차가 가시를 싣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다. 가시가 목구멍을 애절하게 붙들고 끝끝내 버티어 낸다면? 그땐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겠지만 그건 그때 일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남은 밥을 먹는 동안 목에 걸린 가시에게 관심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칵칵거리거나 과량의 물을 들이켜면 가시에게 오래 머물 빌미를 제공하기 쉽다. 가시놈도 제가 시방 얼마나 위험한 짐승인지 눈치를 채고 나면 아무래도 기세가 등등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혹은 이런 일은 너무 잦아서 하찮다는 듯, 쿨하게 식사를 마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가시도 낙담하여 터덜터덜 십이지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어쨌든 얻어터지다 보면, 시간은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눈두덩이가 눈세덩이 눈네덩이가 될 때까지 퉁퉁 붓고 옥수수가 우수수 털려나가도 짐짓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우겨본다. 간지럽군. 너의 펀치는 내게 전혀 데미지를 주지 못하고 있지. 보아라, 아직 살아 있는 나의 이 현란한 풋워크를.

 

한복판에서 나를 또 얼마나 맵게 쥐어 패려고, 올 가을은 초입에 이렇게 아늑한가.


 

 

2

 


-가와카미 :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신 거예요?

-무라카미 : 그저 내키는 대로 썼을 뿐이지요.

-가와카미 : 우와, 정말요?

-무라카미 : . . 이러이러한 일이 있어서 저러저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요러요렇게 쓰기 시작했더니 저절로 그러그러하게 되더군요.

-가와카미 : 역시 무라카미 선생님이세요.

 

전체적으로 이런 구도의 대화가 자꾸 발견된다. 내키는 대로 썼는데 이래. 그게 나, 무라카미지.

 

 



 문득 어떤 기억들은 황인숙

 

 산탄총이 되어 관자놀이에

 방아쇠를 당기는 거예요.

 산산이 뇌세포를

 부숴버리는 거예요.

 지져버리는 거예요.

 

 자욱한 포연 속에서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거예요.

 새들도거리의 소음도 비틀거리며

 막 분홍빛이 되는아침이 비틀거리며.

 

아픔이 기필코 행복의 뒷자리를 고집하는 것은, 바로 거기가 가장 아픈 자리임을 잘 알아서 그러는 거지. 제 딴에 평생 잊기 힘든 아픔이 되려고 애쓰는 거지. 우리는 수많은 아픔을 만나 최선을 다해 아파하지만 이내 흘려보내고, 가장 아팠던 아픔 몇 개만 잘 골라서 평생 간직하거든.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아픔은 잊힌 아픔이니까, 아픔도 제 깜냥에는 머리를 쓰는 거지. 행복의 뒤에 숨어 낙차를 이용하는 거지. 최대로 큰 행복 뒤에서 최대로 큰 눈물의 위치에너지가 되려는 거지. 행복도 그리 밑지는 장사는 아니야. 가장 큰 아픔이 찾아오기 직전이 바로 가장 큰 행복의 자리거든. 그렇게 행복과 아픔은 오랫동안 묵직하게 추억되려 손잡는 거지. 그러면 우리는 그 무게에 눌려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거야. 부숴도 지져도 잊히지 않으니 끝도 없이 부수고 지지는 거지.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깨닫는 거야. 부수고 지져서라도 잊고 싶다고 생각하는 어떤 기억들을 사실은 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끝없이 자신을 부수고 지지고 있다는 이상한 진실을. 잊고 싶어서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는 게, 잊지 않고 싶어서 잊고 싶은 기억이라는 게 있다는 서늘한 현실을.

 

 

 

3

 

무라카미 하루키와 가와카미 미에코의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샤를 보들레르의 샤를 보들레르 :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임승수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황인숙의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박완규가 풀어 쓴 홉스의 리바이어던』, 이사카 고타로의 『악스』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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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인난견難人難犬

 

1

 

syo는 멍뭉이를 좋아하고 멍뭉이는 syo를 좋아한다. 그래서 늘 우리의 만남은 그저 만남이 아니라 상봉이라 부르는 게 적당하다 싶은 광경을 낳는다. 아구우우이뻐어어우우어어우워어(syo) 헥헥헥할짝할짝(멍뭉이) 아코하짝하짝해떠요으구으구(syo) 갸르르으으우왕깡깡(멍뭉이깡깡짖어떠요으구이귀요미녀석같으니(syo) 헥헥헥헐떡헐떡(멍뭉이) 헥헥헐떡헐떡(syo뭉이)...... 나는 이러면서 몇날 며칠을 보낼 수가 있다. 쑥과 마늘을 주면 동굴 속에서 사람이 될 때까지 강아지와 물고 빨고 놀 수가 있다......

  

벼락아때려라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유리벽을 부수어다오.....


잔망


 

2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이 두 개의 벽에만 수천 권의 책이 꽂혀 있고그것도 나와 아주 가까이 있었지만 빈곤한 내 일생을 통틀어 흡수할 기회가 전혀 없을 지식이 담겨 있었다당시 내 나이가 겨우 스물둘이기는 했으나 설사 내가 백 살을 산다 해도 이 책들의 문자를 배울 가능성은 희박했다여기바로 여기에나와 절연된 인류 문명의 유산이 우뚝 서 있었다.

양자오자본론을 읽다

 

양자오가 내놓은 입문서들이 다 그렇듯 이 책 역시 자본론 입문서로서 자체 훌륭하지만, 왜 이 책을 권하느냐고 syo에게 묻는다면, 저자 서문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대표적인 반공국가인 타이완에서 태어나 배우고 자란 양자오 선생. 선생은 금서 자본론의 일어판, 영어판을 손에 넣기 위해 대학 도서관 지하서고에 숨어들고, 금서를 대출해 줄 호구를 물색하고, 대출이 안 되면 남의 시선을 피해 복사기를 착취했다. 이런 작전(?)의 역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책을 사랑하는 자들은 왜 이렇게 남 보기에 별 거 아닌 일로 스스로 고달프고, 고달픈 일로 변태처럼 행복한 인생을 이어나가야만 하는지 생각하느라 코끝이 다 시큰해진다. 명색이 알라디너라면 이 마음을 전혀 모를 수는 없다.......

 



그리하여 계몽의 원칙은 어떤 계율로 굳어진 것이 아니라생활 속에서그래서 삶의 나날의 경험현실 속에서 다시 실행되고 검증되어야 한다그러면서도 영원하고 불변적인 근본 규범이 없는 것은 아니다말하자면 계몽의 정신은 하나의 보편적 법칙이면서 동시에 부단히 보완되고 수정되는 경험적 규칙이다그것은 이념과 역사규범과 일상을 오고 가고조금 더 크게 말하여보편성과 구체성 사이를 오고 간다이렇게 오가면서 그것은 자신을 부단히 갱신해간다그러므로 진정한 계몽의 사유는 생활 속에 녹아 있고이 생활 속에서 구현되며그러면서도 동시에 생활 너머의 이상적 차원으로 나아가야 한다그리고 이렇게 나아가면서 그것은 삶의 가능성과 조건을 부단히 문제 삼는다.

문광훈스스로 생각하기의 전통

 

영원하고 불변적인 것은 없으면 불안하고 있으면 불편하기 쉽다. 또한 자신의 규범을 보편 안쪽으로 진입시키기 위해 생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이 있고, 제게 유리한 규범이 보편 바깥으로 밀려나는 것을 막기 위해 온갖 몽니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은 안에 있는 사람들도 한때는 밖에 있었다. 지금 밖에서 두드리는 이들도 안에 들어가면 조금씩 변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럴 바엔 울타리를 아예 걷어버리고 다 함께 불편하고 다 함께 불안하지만 동시에 누구도 누구보다 나은 규범을 제시하지 않는 열린 공간을 원하는 이들이 생긴다.

 

보편의 권좌는 매력적이다. 상식이라는 말을 휘둘러 때리고, 역사니 본성, 윤리니 하는 말로 상대의 입을 막을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그 자리는 맹목적인 자리다. 보편성 밖에 서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규범을 검사하고 고쳐나갈 때 생활 영역 안에서 생각한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특정한 누군가에게, 구체적으로 이런 말,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던가.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결과가 더 좋지 않았을까? 그러나 자신의 규범이 보편의 옷을 입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상 속에서 구체적인 규범 도전을 받아도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링에서 결투를 벌이기를 좋아한다. 아니, 지금 표현의 자유를 핍박하자는 건가? 아니, ‘차별철폐하자는 사람들이 왜 다른 차별에는 눈을 돌리지 않지? 그건 집단이기주의아닌가? 이래야 자신에게 덤비는 이들을 보편적 진리에 덤비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자들로 치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래야만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그건 지킬 만한 것이 못된다. 지킬 만한 것이 못 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만 보편 규범이 필요한 것이라면, 보편 규범 역시 지켜줄 만한 것이 못 된다. 결국 우리는 우리가 지킬만하고 지킬 수 있는 보편, 영원, 불변의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이들이 그 권능을 함부로 전용하지 못하게 할 장치를 고안해야 한다. 일이 점점 커진다.

 

 

 

3

 

양자오의 자본론을 읽다, 문광훈의 스스로 생각하기의 전통, 임승수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강화길이 짓고 키미앤일이가 그린 우리는 사랑했다, 샤를 보들레르의 샤를 보들레르: 현대의 삶을 그리는 화가, 김중현의 루소가 권하는 인간다운 삶, 무라카미 하루키, 가와카미 미에코의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리링의 『집 잃은 개 1』, 한형식의 『맑스주의 역사 강의』를 읽었다. 3일을 읽었는데, 여전히 읽고 있는 녀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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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9-18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자오 선생님께 저도 충격 받았습니다. 그 어렵다는 <자본론>을 일본어와 영어뿐 아니라 독일어로 읽고 중국 사람이니 중국어로도 읽었겠지요. 입문서로 무척 읽기 쉽지만 이러한 내공으로 단 한문장도 깊이가 엄청나게 느껴졌습니다. ^^

syo 2018-09-18 20:43   좋아요 0 | URL
스물 몇에 벌써 자본론으로 외국어 공부를 하고 그랬다니, 멋잇는 미친 사람이네요.....
꼴랑 요런 거 읽으면서 스스로 빨갱이라고 외치고 다니는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서니데이 2018-09-18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아지 실제로 보면 더 예뻤을 것 같은데요.
유리창 안에서 구조하고 싶은 마음이 막 생길 것 같아서 빨리 도망쳐야겠어요.
syo님, 편안한 저녁시간 보내세요.^^

syo 2018-09-18 20:44   좋아요 1 | URL
ㅠㅠ 귀여워 죽을것 같아요. 30초 짜리 영상을 찍었는데 틈날 때마다 계속 돌려보고 있어요 ㅎㅎㅎ

서니데이님도 하루 마무리 잘 하시구요^-^

idahofish 2018-09-18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쉬신다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사람은 따라갈 수 없는 독서량... ㅎㅎ
‘보편의 권좌’에 대한 일설이... 와닿습니다.

syo 2018-09-18 23:36   좋아요 0 | URL
아아... 오늘도 또 오늘의 뻘소리를 하고 말았습니다ㅎㅎㅎ 보편의 권좌라니...

transient-guest 2018-09-19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원래 여러 권을 읽어야 좋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저도 대학생 때 갖고 싶은 절판된 책을 구할 길이 없어서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복사기를 돌린 기억이 있네요. 한 3권인가 그리 했는데 아직도 갖고 있답니다.ㅎㅎ

syo 2018-09-19 10:44   좋아요 1 | URL
아. 복사기에 얽힌 추억 하나쯤 있어줘야 되는 건데.....ㅠㅠ
 
강원국의 글쓰기 - 남과 다른 글은 어떻게 쓰는가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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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는 달변이었다. 중학교도 제대로 못 마친 시골뜨기가 아무리 악바리처럼 일을 했대도, 그 혀가 능란하지 않았다면 짧은 한 때의 영화나마 누려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결혼도 그 혀에 꿀을 발라 해치웠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의 말 속에 예전에는 있었다던 그 단맛은 이미 온데도 간데도 없었다. 엄마의 넋두리 속에 화석처럼 남아있는 단서를 통해 그 말들의 거대했을 몸집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결혼이라는 송곳에 찔려 허망하게 쪼그라든 말의 외피. 지켜지지 않은 약속의 흔적이 낳는 통증. 나는 애증이 난무하는 부모의 삶을 지켜보며 두 가지를 배웠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얻는다. 그리고 말을 잘 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잃지 않는다.

 

뜻밖에도 아버지의 약점은 글이었다. 말을 겁내지 않는 아버지가 쓰는 일을 두려워했다. 아버지의 펜은 항상 느렸고, 자주 절뚝거렸고, 가까운 곳에도 한 걸음에 도달하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의 책상에서는 가로로 세 개의 줄을 그어 써놓은 단어를 덮는 세 줄기 소리가 자주 들렸다. 간택 받지 못한 활자들의 시체가 동그랗게 말려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꼴을 지켜보며 나는 역시 두 가지를 배웠다. 결국은 글을 잘 써야 한다. 그리고 말을 잘 하는 사람이 한글을 안다고 해서 곧바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꽤 어릴 적부터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아이였다.

 

 

 

2

 

나는 아버지를 닮아 말을 곧잘 하는 아이였다. 게다가 누굴 닮았는지 책을 좋아했으므로 자연히 글을 곧잘 쓰는 아이기도 했다. 시작과 동시에 이미 말과 글은 나의 힘이었다. 일상 바깥으로부터 무언가를 따서 가져올 만큼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아이가 되진 못했으나, 일상의 안쪽 영토에서 결코 손해를 보지 않을 만큼은 혀와 손을 놀릴 줄 알았다. 그 정도면 조그만 욕심을 채우고도 남음이 있었으므로, 말과 글을 손에 쥐고 세상 밖으로 나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말의 날을 갈지도, 글의 녹을 닦아내지도 않았고 자라는 대로 그저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벼락처럼 이런 글을 만났다.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마 동무 삼아 따라가면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저것 봐저것 봐네보담도 내보담도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전문행갈이 제거.

 

그리고 이틀 밤낮을 말 그대로 앓았다. 앓고 나서 알았다. 세상에는 사람을 앓게 하는 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욕심이 났다. 저 글을 가지고 싶다. 내 이름 박은 글을 누군가의 마음에 집어넣어 그를 아프고 앓고 열이 나게 만들고 싶다. 어떤 벼락은 인간의 내면을 뒤집고, 어떤 소년은 그 벼락에 맞아 사춘기를 시작했다. 그때 나는 매일 다섯 시간 수학 공부를 했고, 세 시간 과학 공부를 했고, 그리고 다른 과목들을 공부하느라 수학보다 적고 과학보다는 많은 정도의 시간만 잘 수 있었기 때문에, 박재삼이 되는 일을 어른의 일로 미루어 두었다. 독서도 사랑도 할 만한 여유가 없는 껍데기뿐인 사춘기가 바삐 지나갔고, 나는 문제집이나 시험지 속 아름다운 시를 만나면 잠깐 일렁였다가 다시 샤프를 고쳐 잡으며 그 시간을 보냈다.

 

 

 

3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박재삼이 아니었고, 박재삼의 글은 박재삼이 쓰니까 박재삼의 글인 것도 또한 당연했고, 박재삼이 아닌 내가 박재삼이 될 수 없는 것 역시 당연한 일임을 깨닫는 데 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으나 결국은 받아들일 수 있었고, 내 마음에 남은 것이라곤 박재삼이 던진 벼락에 불탄 자국뿐이었다. 그러나 불 놓은 밭에서 이듬해 풀이 돋듯, 내 글은 그 흉터에서 시작되어 그 흉터의 모양대로 자라났다.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자기가 평생 쫓아가 안길 아름다움의 모양을 결정하는 순간을 맞닥뜨린다. 자의든 타의든, 벼락처럼 결정된 아름다움은 그보다 더 거대한 벼락을 만나도 쉽사리 색을 바꾸진 않는다. 취향이라 부르기도 하고, 감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것을, 나는 첫 문신이라고 부를 때가 있다. 살며 두 번째, 세 번째 문신이 다시 새겨지겠지만, 그 아이들은 모두 첫 문신에 복종하며 태어날 것이다.

 

 

 

4

 

좋은 글은 어떤 글일까를 항상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진선미를 고려해보면, 진실한 글, 선한 글, 아름다운 글이 좋은 글일 것 같다. 글의 진실함을 판단하는 잣대는 글, 글쓴이, 읽는 이의 바깥에 있다. 글의 선함을 판단하는 잣대는 글쓴이와 읽는 이의 마음에 있고 바깥세상에도 있다. 그러나 글의 아름다움을 재는 저울은 오로지 한 군데, 읽는 이의 안에만 있다. 내게 아름다운 글이 내게 아름다운 글이고, 네게 아름다운 글이 네게 아름다운 글이다. 두 사람이 말하는 아름다움은 어떤 글에서는 겹치기도 하고, 또 어떤 글에서는 서로 등을 돌리기도 한다. 아름다움의 영역에서만큼은 내게 아름다운 글이 네게 아름다운 글보다 훨씬 좋은 글이다. 내게만 아름답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답지 않은 글은, 내게는 아름답지 않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글보다 덜 좋은 글이 아니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를 판단할 때, , , 미를 각각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고려할지는, 글의 장르에 따라 정해지는 바가 어느 정도는 있겠으나, 결국은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박재삼에서 태어난 독자와 리영희에서 태어난 독자가 글을 보는 눈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좋은 글을 쓰는 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은 가끔씩 다른 곳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피할 수 없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자기가 평생 추구하며 살아온 삶을 좋은 삶이라 주장하며 당신들도 나처럼 살라고 충고하는 책에 맞서 내 삶을 옹호하기 위해 반대하듯이, 나는 내 글을 지키기 위해 대단히 많은 글쓰기 책을 반대하며 살고 있다. 그게 다 박재삼 때문도 아니고, 박재삼에서 나온 사람들이 다 이러지도 않겠으나, 어쩐지 나만큼은 평생 내 글의 목을 죄는 좋은 글지침서들에 맞서 싸우며 살아야 하는 운명 같다.

 

 

 

5


글을 읽는 사람은 글쓴이가 얼마나 잘 쓰는지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관심 없다그들이 관심 갖는 것은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얘기가 뭔지그 얘기가 내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하는 것이다그러므로 내가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그것이 독자에게 어떤 효용이 있는지에 집중하는 게 맞다. (23쪽) 

 

아니다. 나는 내가 읽을 글이 잘 쓴 글이기를 바라고, 내가 읽은 글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이의 손끝에서 나온 글이길 바란다. 내가 읽은 글이 말하고자 하는 얘기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하는 것만큼이나, 글의 아름다움에 감정이 들썩들썩하기도 하고, 글에 묻어나는 글쓴이의 지성에 자극받아 더 열심히 책을 읽기도 한다. 요컨대, 저자는 글을 읽는 사람이라는 집단을 굉장히 편협하게 보고 있다. 그 역시 한명의 글쓴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할 때,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을 얼마나 얕보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독자들이 오로지 자신이 하고자하는 말, 그리고 그 효용만을 따지며 읽을 거라고 예측하는 저자는 얼마나 궁핍하고 무책임한 글을 쓸까. 애초에 독자들이 글쓴이가 얼마나 잘 쓰는지에 관심이 없다면, ‘글 잘 쓰는 법을 강론하는 이 책은 대체 뭐지?

 

무엇보다 아는 체하고 싶은 욕심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은 단순 반복의 미니멀리즘으로 성공한 경우다글쓰기도 미니멀리즘을 지향할 수 있다단문으로 쓴다복문포유문중문을 지양한다수사적인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수사법 사용을 절제한다최대한 짧게 쓴다군더더기 없이 할 말만 쓴다독자에게 잘 보이겠다는 생각을 자제한다그것도 소유욕이며 미니멀리즘에 역행하는 일이다. (26쪽)

  

문화평론가들이 욕을 먹는 이유는, <강남스타일>이 그렇게 성공할 것임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으면서, <강남스타일>이 어떻게 성공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입을 다물지 않고 한 마디씩을 거든다는 데 있지 않을까. 하물며 문화에 대단한 식견을 가진 전문가도 아니면서, 미니멀리즘으로 성공했다고 단언하는 글이 우습다. 우습다고 단정적으로 내가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저자 자신이다. 이런 말씀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 무엇보다 아는 체하고 싶은 욕심을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령 정말 그렇다 하더라도, 세상에는 <강남스타일>보다 더 성공한 노래가 얼마든지 있고, 그 노래들이 죄 미니멀리즘을 지향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우리는 글쓰기에 미니멀리즘을 지향해야 할까? 미니멀리즘에 역행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일까? 단문으로 쓰라는 이야기는 어떤 글쓰기 책을 펼쳐도 피하고 지나가기 어려운 말인 것을 보니 진리인가 싶다가도, 그런 말을 하는 이들보다 이름난 대가들이 길고 긴 문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써대는 걸 보면 또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세상에는 정말 더없이 아름다운 단문으로 이루어진 글들이 많이 있다. 더 이상 적확할 수 없으리만큼 제 자리를 맞게 찾은 단어들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런 문장들을 눈앞에 놓고 있으면 정말 수사나 기교는 벗어던져야할 넝마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글을 만났을 때 느끼는 짧은 글은 정말 아름답다는 감정은 참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명제가 참이라고 해서 곧바로 그 명제의 역이 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짧은 글은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경험할 수는 있지만, 그 경험을 곧바로 정말 아름다운 글은 짧은 글이다로 변환할 수는 없다. 아름다운 짧은 문장이 정말 아름답듯이, 아름다운 긴 문장 역시 정말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문장의 길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아름다운 문장이 아름답다.

 

긴 문장을 추구하는 이들은 짧은 문장의 아름다움을 부인하는 일이 적다. 그러나 짧은 문장을 다루는 이들은 긴 문장에 눈살을 찌푸린다. 편견이다. 그리고 짧은 문장을 쓰면 누구나 아름다운 문장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만이다. 정말 아름다운 짧은 문장을 만드는 일은, 정말 아름다운 긴 문장을 만드는 것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글쓰기 책에서 짧은 글을 강조하는 이유를 안다. 긴 문장은 다루기 어렵고, 쉽게 읽히도록 다루기는 더더욱 어렵다. 실수는 빈발할 것이고, 욕심을 부려놓은 흔적은 글 잘 쓰는 이들의 눈에 어설프게 칠해놓은 화장처럼 흉하게 보이기도 할 것이다. 짧은 글은 안전하다. 꼭 필요한 문장요소들의 자리만 비워두고 몇 가지 선택지에서 잘 고르면 읽기도 좋고 보기도 좋은 문장이 태어난다. 초심자들에게 가르칠 만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긴 문장을 도외시하고 사문난적 취급하는 성향까지 심어준다면, 그건 초심자들이 나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향을, 결코 열등하지 않은 방향을 삭제하는 만행이 된다. 긴 문장을 쓰는 힘과 긴 문장을 읽는 힘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

 

 군 시절내무반 고참 서넛은 취침 소등 후에 당직사관의 눈을 피해 라면을 끓여 먹었다물론 그들은 먹기만 했다나는 국물 맛이라도 볼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라면 끓이기를 자청했다전열 기구 사용이 금지돼 있던 터라 들키면 '외박 금지정도는 불사해야 했지만 라면을 끓여 갖다 바쳤다설거지를 명분으로 주변을 서성거리는데 고참이 불렀다.

 "강 일경이리 와봐."

 드디어 올 게 왔구나나도 한 젓가락 할 수 있겠구나 싶어 한걸음에 달려갔다그런데 다짜고짜 머리를 박으란다.

 "대가리 박고 앞으로 전진넌 살인미수야."

 깜깜한 내무반에서 끓이느라 스프 봉지 쪼가리가 라면에 들어간 것이다.

 

 일명 원산폭격이라는 얼차려를 받고 있는데도 웃음이 났다머리를 박으라고 하는 고참이나 라면을 탐하다가 머리를 박고 있는 나나 웃기기는 마찬가지였다그 사건은 재밌는 추억이 되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웃음을 자아낸다.

 

 재미는 글의 첫 번째 요건이다. (100-101쪽)


내겐 정말, 너무 재미가 없어서 웃어야 되는 포인트를 짐작하기 어려운 글이다. 술자리에서 윗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싹하다. 애를 써 본다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웃음을 자아낸다.’ 부분에서 어이없음을 모아서 조금쯤 웃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재미는 글의 첫 번째 요건이다라는 문장은 반전이 있어서 조금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겠다.

 

결국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식견에 달려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웃긴 글을 쓰고 싶어도, 아직까지 최불암 시리즈에 빵빵 터지는 수준의 감을 가지고서는 21세기 이 살벌한 개그판에서 1초도 생존할 수가 없다.

 

전체적으로 저자는 자신의 미적 감각도 개그 감각도, 일절 의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좋은 글이 좋은 글이고, 내게 웃긴 글이 웃긴 글이라고 생각하며 이 책을 지은 것 같다. 글쓰기와 관련하여 저자가 지닌 눈부신 경력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글, 그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글이 점령한 세상을 생각해보면, 난 왜 앞이 캄캄할까.

 

 

 

6

 

진과 선에 비해, 미는 낮고 하찮고 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어떻게 되먹은 일인지는 몰라도, 사적인 것이 사적인 것으로 남도록 지켜주기보다, 사적인 것이므로 함부로 고치고 교정해도 괜찮다는 풍조가 있다. 그렇게 살지 말라고 충고하는 일이 무례를 동반함을 잘 아는 이들도, 그게 뭐가 예쁘냐는 말은 아무렇지 않게 한다. 아 물론 네 개인의 취향이니까 존중은 하지만, 이라는 마음에도 없는 예쁜 말을 덧붙여 도덕성을 확보해가면서.

 

좋은 삶을 말하는 책처럼, 좋은 글을 알려주는 책 역시 월권이 되기가 쉽다. 이런 글이 좋은 글입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으려면 다양한 제반사항을 미리 한정해야 한다. 장르를 밝혀야 하고, 상황을 상정해야 하고, 예상 독자도 지정해야 한다. 그 모든 제한을 통해 좁고 세밀해진 범위 안에서만 좋은 글을 조심스럽게 주장해볼 수 있다. 만능열쇠처럼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 좋은 글은 없다. 아름다운 글은 더 그렇다.

 

글은 개별적이고, 각자 다른 지문을 지닌 것처럼 우리는 각자 다른 글을 쓴다. 자기의 길을 걷는 물줄기가 사방으로 뻗을 것이고, 그래야 온 세상을 고루 적실 수 있다. 내 글에 좋은 글의 왕관을 씌우는 것이 타인의 글을 불모지로 만들 수 있음을 알면 좋겠다. 사막은 사막 밖의 세상도 한소끔 더 건조하게 만든다. 자신의 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늘도 조용히 세상의 사막에 물을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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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7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7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18-09-17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부터 나이가 들어서인지, 주변과 생각이 달라서인지 웃음코드가 이상해요ㅜㅜ 남들이 웃을 때 난 왜? 이러고, 남들이 읭? 할 때 전 막 웃고... 갑자기 라면 일화를 보다보니 생각이 나네요. 저 상황이 우습지 않은 건 syo님하고 같아서 조금 안심입니다. 나이보단 생각의 차이인가... 싶네요. 젊게 살기도 힘들어요. (갑자기 얘기가 삼천포로..^^;;)

전 syo님 글이 좋아요. 재밌어요. 길어도 다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요. 부러워요.^^

syo 2018-09-17 10:51   좋아요 0 | URL
자기의 웃음코드를 지켜가면서, 내 코드 안에서 더 잘 웃길 줄 알고 더 잘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면 그걸로 좋을 것 같아요. 개그는 사실 기세인 것 같더라구요.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한 번 형성된 사람은 별 말 안 해도 재미있고, 한 번 재미없다고 인식된 사람은 똑같은 말을 해도 재미가 없고 ㅎㅎㅎ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글 읽기가 긴 글 쓰기보다 더 쉬운 일이 결코 아니잖아요^-^

카알벨루치 2018-09-17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젯밤에 읽었는데 넘 좋아요~syo 님 생각하게끔 하는 글입니다 또 읽어봐야겠네요 ㅎ

syo 2018-09-17 10:53   좋아요 1 | URL
부족한 글이라 한 번 읽고 지나가는 것도 낭비입니다, 카알님.
안 그래도 읽으실 책이 산더미실텐데, 시간 낭비는 최소화하시는 것이? ㅎ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9-17 11:09   좋아요 1 | URL
쉬엄쉬엄^^ 굿뜨~

stella.K 2018-09-17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욉니다. 스요님이 이런 책을 읽다니...
이미 남과 다른 글을 쓰고 있는데.
이런 책은 나 같은 사람이 읽어야하는데
대통령의 글쓰기도 읽다만 저는 언감생심입니다.ㅠㅋ

syo 2018-09-18 00:53   좋아요 0 | URL
항상 자기 글은 못마땅한 법이니까요 ㅎㅎㅎㅎ
버젓한 작가님께서 이게 웬말씀이세요.
저같은 나부랭이는 어떻게 고개를 들라고 이러십니까.....

stella.K 2018-09-18 14:14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고개를 들 것을 허하겠습니다.ㅋㅋㅋㅋ

모름지기 책은 비판 정신을 가지고 읽어야 하는데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죠.
특히 내가 잘 모르고 저자는 그 분야에 전문가일테니
처음 읽을 때부터 먹히고 들어가요.

솔직히 저자의 <대통령...>는 좋긴한데 이 사람은 연설문 전문가잖아요.
근데 뭔가 좀 답답한 게 있었는데
스요님 글 읽으니까 벙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달의 당선작으로 점쳐봅니다.
아니면 제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ㅋㅋㅋ

syo 2018-09-18 15:09   좋아요 0 | URL
뭘 또 장까지요 ㅎㅎㅎㅎㅎ
글 쓰고 욕 안 먹기도 어렵지만, 글 쓰기 책 내고 욕 안 먹는 건 더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악독하게 굴었나 싶기도 하구요 ㅎ
 

 

녹아라, 녹아라



1

 

당신의 눈물을 저울에 올려 헤아리기 위해 나는 간신히 눈물을 돌려세우는 중이었습니다. 어쩌면 세상은 이렇게 각자의 어깨에 내려앉는 것일까요. 무거움을 나눈다는 것은 한낱 속이는 말에 지나지 않는 걸까요. 수없이 읽은 책 속에 당신의 열린 눈가에 발라줄 말, 당신의 무너지는 마음에 감아줄 말 한 마디가 없었으니, 나는 오늘을 위해 무엇을 읽어온 걸까요. 아무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그 방에서 울음과 울음으로 그득히 만나고, 우리는 서로의 등 뒤에 버티고 선 벽에 끝없이 서로의 눈물을 바르며 그저 안으로만 자꾸 외쳤습니다. 녹아라, 녹아라.

 

때로는 이것을 사랑이라 부르는 일이 부끄럽습니다.

 

 

 

누군가 내 가슴을 열고 갈비뼈 속에 새를 키우고 있다.

그 새가 허파를 쪼는 바람에 별이 뜨고우는 소리 때문에 바람이 분다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갈빗대를 옮겨 앉는 새를 내 몸이 다 허물어지기 전까지는 놓아줄 도리가 없어서날마다 밤이 온다.

새들은 어둠 속에서 날개를 잊는다.

신용목우리는 이렇게 살겠지


불행을 버리고 가면불행과 함께 남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불행을 버리고 사람을 끌어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그런 기술을 배우고 싶다사람의 말과 불행의 말을 구분하는 법사람의 마음과 불행의 마음을 알아보는 법그것을 안다면 예의 없이 손을 내미는 불행에게 완벽한 거절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불행한 사람을 구하러 갔다가 불행에 빠져 죽지 않고 사람만을 건져오는 법지금 우리에게는 그것이 절실하다.

신유진열 다섯 번의 밤


고통이 고통스러운 것은 그것이 계속된다고 믿기 때문이다인생에서 그 어떤 것도 계속되는 것은 없다모든 것은 변한다인생무상이라는 말은 인생이 허무하다는 뜻이 아니다인생에는 상()의 상태가 없다는 것즉 삶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의미이다그것을 어찌 붙잡을 수 있겠는가.

정희진혼자서 본 영화


난처하다고 굴복할 수는 없다정직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것이다이 세상에 정직한 것이 이기지 못하고 달리 이기는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라오늘 밤 안에 이기지 못하면 내일 이기면 된다내일 이기지 못하면 모레 이기면 된다모레도 이기지 못하면 하숙집에서 도시락을 가져오게 해서 이길 때까지 여기서 버틸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도련님


 

 

2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카를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 김성은의 인간을 위한 약속 사회 계약론, 문광훈의 스스로 생각하기의 전통,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론/크리톤/파이돈/향연, 이승환 등의 고전 강연 1, 데카르트의 성찰, 윌리엄 고드윈의 최초의 아나키스트』, 임승수의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 을 읽었다.


혼자 힘으로 고전을 읽어내는 것은 분명히 기쁘고 권할 만한 일이다하지만 자신의 역량을 너무 믿지 않는 것이 좋다잘 읽는 이들의 도움이 없다면그 좋은 책을 다 읽어도 수없이 많은 것을 놓치고 지나갈 것이다믿을 만한 것은 읽는 힘이 아니라 고집이다다른 사람이 먼저 읽고 소화한 생각이 아무런 필터를 거치지 않고 바로 내 생각을 덮어버리는 일은 흔히 생기지 않는다그만큼 약한 인간이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입문서와 개론서는실제로 그 원전을 읽지 않는 이에게는 최악의 선택이 될 여지도 있으나언젠가 원전을 읽기만 한다면 결코 원전 자체만 읽는 것보다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다.


 



 

다음 책, 그리고 또 다음 책. 그리고 언젠가 한번은 반드시 까고 지나가야 할 남자, 데카르트를 깔 준비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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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9-15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레드스타킹에 남자 멤버 한 분 새로 들어오셨는데, 그 분은 혼자 헤겔의 책을 읽었다고 해요. 이 모임에 마르크스를 읽는 syo님도 가세하면 좋겠네요. ^^

syo 2018-09-15 12:32   좋아요 0 | URL
혼자 헤겔이라니, 그분은 거의 꾼(?)이시네요 ㅎㅎㅎㅎ 레드스타킹 어마어마하다....

서니데이 2018-09-16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시험 끝나고 나서는 도서관에서 과목이 달라진 공부를 하고 계신 것 같아요.
페이퍼에 소개되는 책만 살펴보아도 매일 부지런히 읽지 않으면 어려울 분량인 것 같습니다.
편안한 일요일 저녁시간 보내세요.^^

syo 2018-09-16 21:4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이제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날도 너무 시원하잖아요^-^
 


내가 선명해질수록 네가 흐릿해지는 

 

1

 

이하준의 오래된 생각과의 대화, 이정모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 박홍규의 불편한 인권, 도메 다쿠오의 지금 애덤 스미스를 다시 읽는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카를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을 읽었다.

 



  만약 당신이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면당신은 거대한 사회에 진입한다는 생각에 위축감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며밤늦게 당신의 원룸으로 돌아가면서 전화를 걸어 친구나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을 것이다하지만 취업의 문제는 오직 내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무거운 인식그리고 오로지 세상에 혼자 서 있는 듯한 강렬한 정소로 인해 당신은 고독을 느꼈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중년의 남자라면당신은 아내와의 대화가 줄어들고 자신이 가정 내에서 소외된 것을 느끼던 어느 날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거나하게 술 한잔 하고 들른 사창가에서 기계적인 섹스를 하고 허무함을 느꼈을 것이다당신이 느낀 외로움과 허무함의 실체가 실은 진심 어린 대화를 필요로 했던 것임을 어렴풋이 느끼며 집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 먼 길은 당신이 그 언젠가 당신이고자 했던 당신이 아님을 알게 되는 고독의 먼 길이다.

  만약 당신이 직장에 다니는 여성이라면당신은 아부에 능하고 줄을 잘서는 회사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접대 웃음과 가식적인 칭찬을 늘어놓고 홀로 돌아오는 길에서 쓸쓸함을 느꼈을 것이다나만의 목표를 갖고 타인의 평가에 상관없이 나만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했던 순간이 당신이 만난 고독이다.

_ 이하준, 오래된 생각과의 대화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친구와 카페에서 만났던 날, 그는 syo에게 언제 결혼할 거냐고 물었다. 의지도 있고 사랑도 있으나 돈이 없어서 못하는 거라고 대답했다. 친구는 다시 말했다. 자기도 돈 없이 결혼한 거라고. 우리 집도 있는 집 아니라고. 자기도 전세로 시작할 거고, 아직 차도 없으며, 예물 같은 것들도 최대한 줄여가며 식을 치렀다고. 중요한 건 마음이지, 돈이 아니라고.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마음만 있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친구야, 참 미안한데, 너는 가난하다는 게 어떤 건지 잘 모르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진짜 가난해 본 사람은 가난의 이빨에 발목을 채인 타인에게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남자는 빚만 남기고 죽었다. 여자는 평생 사회가 어떤 데인지 모르고 살다 갑자기 백혈병을 만났고, 완치는 되었지만 하루의 절반 조금 모자란 시간을 잠으로 채워야 하는 후유증을 앓는다. 아들은 철없이 청춘을 탕진하고 가능성을 연소시키기만 하다가 인생의 한구석에 몰려 책 속으로 숨어들었고, 딸은 자기 앞가림하기에도 벅찬 희한한 세상을 맞닥뜨려 고군분투중이다. 그렇게 모인 가족은 그저 하루를 위해서 하루를 살 뿐이고, 하루는 하루 만에 먼지가 되어 흩어질 뿐, 결코 축적되지 않는다. 오늘의 양식을 걱정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마음의 이야기를 쉽게 꺼낸다. 누구나 가난을 겪었으되, 누구에게나 가난이란 것은 자기가 겪은 것 이상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 너머는 단지 상상의 영역이다. 못 먹어 배가 나오고 다리가 썩어 들어가 환부에 파리가 꼬이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영역이다. 그 사이 공간은 없다. 당신이 아프리카의 기아들처럼 사는 건 아니지 않느냐. 그런 게 아닌 어지간한 가난은 나도 다 겪어 봤노라.

 

기아와 자신이 겪은 수준의 가난 사이에 빈 공간이 있다. 그리고 그 공간은 어디에나 있다. 성차나 정체성의 영역에도 있고, 인종의 영역에도 있고, 학벌이나 성취의 영역에도 있다. 겪은 것과 겪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뻔한 것들 사이에 숨은 광대한 영토를 개척하는 것은 오롯이 공감과 상상력의 몫이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읽고, 열심히 듣고, 열심히 겪는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오히려 방해가 될 때가 많다. 많이 읽은 사람은 읽은 것이 많아서 도리어 자신의 상상력이 비어있음을 상상하지 못한다. 이룬 것들이 도리어 많이 이룬 사람들의 공감력을 묶고, 이루지 못한 이들의 증언에 귀 막게 한다. 많이 알고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깨닫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든다. 내가 모른다고? 내가 틀렸다고? 그럴 리가. 만약 내가 그랬다면, 내가 어떻게 지금 이만큼 알겠어. 내가 어떻게 지금 이만큼 이뤘겠어. 누구나 무의식에 그런 순환논리를 품고 있다. 크기의 차이, 혹은 감각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상상력이 부족하다.

 



 

 

2

 

어제 검색을 하다 우연히 발견하고 사랑에 빠졌다. 이 책들을 다 작살내고 나면, 그야말로 알라딘 마을의 파파 스머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5600페이지가 넘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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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3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3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8-09-13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 너무 좋아요~~
많이 읽은 사람은 읽은 것이 많아서 도리어 자신의 상상력이 비어있음을 상상하지 못한다. 많이 알고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깨닫는 데 더 많은 에너지가 든다.
오늘도 한수 배우고 갑니다.

syo 2018-09-13 15:48   좋아요 0 | URL
가르쳐 드릴 위치도 아니고 가르쳐 드린 것도 없는데 알아서 배워가신 독서괭님께 한 수 배웁니다 ㅎㅎ

2018-09-13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3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9-13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렇게 훌륭한 ‘새’파란 책이 나왔네요. ㅎㅎ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읽으신 후 말씀 부탁드립니다. ^^

syo 2018-09-13 22:23   좋아요 1 | URL
북다님도 어쩐지 저 책들 읽으실 것 같네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