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안톤 슈낙 지음, 차경아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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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옛 친구를 만났을 때, 학창시절의 친구 집을 방문했을 때. 그것도 이제는 그가 존경받을 만한 고관대작, 혹은 부유한 기업주의 몸이 되어, 몽롱하고 우울한 언어를 조종하는 한낱 시인밖에 될 수 없었던 우리를 보고 손을 내밀기는 하되, 이미 알아보려 하지 않는 듯한 태도를 취할 때.

 

사냥꾼의 총부리 앞에 죽어가는 한 마리 사슴의 눈초리. 재스민의 향기, 이 향기는 항상 나에게 창 앞에 한 그루 노목(老木)이 섰던 나의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공원에서 흘러오는 은은한 음악 소리. 꿈같이 아름다운 여름 밤, 누구인가 모래 자갈을 밟고 지나는 발소리가 들리고 한 가닥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는데, 당신은 여전히 거의 열흘이 다 되도록 우울한 병실에 누워 있는 몸이 되었을 때.

 

달리는 기차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스름 황혼이 밤으로 접어드는데, 유령의 무리처럼 요란스럽게 지나가는 불 밝힌 차창에 미소를 띤 어여쁜 여인의 모습이 보일 때.

 

화려하고 성대한 가면무도회에서 돌아왔을 때. 대의원 제씨(諸氏)의 강연집을 읽을 때. 부드러운 아침 공기가 가늘고 소리 없는 비를 희롱할 때. 사랑하는 이가 배우와 인사할 때.

 

공동묘지를 지나갈 때. 그리하여 문득 "여기 열다섯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 잠들다" 라는 묘비명을 읽을 때. 아, 그녀는 어린 시절 나의 단짝 친구였지.

 

하고많은 날을 도회(都會)의 집과 메마른 등걸만 바라보며 흐르는 시커먼 냇물. 숱한 선생님들에 대한 추억, 수학 교과서.(10∼12쪽) 

 

 

 * * *

 

 

오랫동안 사랑하는 이의 편지가 오지 않을 때. 그녀는 병석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편지가 다른 사나이의 손에 잘못 들어가, 애정과 동경에 넘치는 사연이 웃음으로 읽혀지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녀의 마음이 돌처럼 차게 굳어버린 게 아닐까? 아니면 이런 봄밤, 그녀는 어느 다른 사나이와 산책을 즐기는 것이나 아닐까?

 

초행의 낯선 어느 시골 주막에서의 하룻밤.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 곁방 문이 열리고 소곤거리는 음성과 함께 낡아빠진 헌 시계가 새벽 한 시를 둔탁하게 치는 소리가 들릴 때. 그때 당신은 불현듯 일말의 애수를 느끼게 되리라.

 

날아가는 한 마리의 해오라기. 추수가 지난 후의 텅 빈 논과 밭, 술에 취한 여인의 모습. 어린 시절 살던 조그만 마을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당신을 알아보는 이 없고, 일찌기 뛰놀던 놀이터에는 거만한 붉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는데다 당신이 살던 집에서는 낯선 이의 얼굴이 내다보고, 왕자처럼 경이롭던 숲도 이미 베어 없어지고 말았을 때.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12쪽)

 

(나의 생각)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 마을에서 너무나 자주 보았던 풍경이 '추수가 지난 후의 텅 빈 논과 밭'이었다. 그곳은 찬바람이 쌩쌩 부는 한겨울에는 연을 날리는 장소였고,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이면 눈싸움 장소였다. 추운 겨울에 하루 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기엔 너무나 따분한 날, 거기선 개구장이 녀석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훔쳐 낸 성냥불로 불장난도 치곤 했다. 어른들처럼 몰래 잎담배를 말아 피워보기도 했다. 내가 입대하기 전까지 살았던 고향 마을 우리 집에는 30여 년 전에 우리 식구가 서울로 떠나올 때 이웃 마을에서 이주해 온 그 식구들이 아직도 거기서 눌러 살고 있다. 나는 고향에 갈 때마다 그 옛날에 우리 집이었던 그 집을 찬찬히 둘러 보고 오지만, 여태껏 단 한 번도 그 옛날 우리 집이었던 그 집 안으로 선뜻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돌아선다. 그 집은 이미 남의 집이기 때문이다. 이미 30년 이상이나 남의 집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남의 집으로 남아 있을 그 집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슬프기보다는 안타깝고 아련한 느낌부터 맛본다. 내가 한 때 몹시도 사랑했던 사람이 내 곁을 떠나 다른 낯선 사람과 함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 * *

 

 

하지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어찌 이것뿐이랴. 오뉴월의 장의행렬(葬儀行列),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색과 검정색. 그리고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 징소리, 바이올린의 G현. 가을 밭에서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 있는 비둘기의 깃. 자동차에 앉아 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 가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때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만월(滿月)의 밤, 개짓는 소리. '크루트 함순'(1859∼1952: 노르웨이 작가. 1920년 노벨문학상 수상. 가난, 방랑, 노동이 그의 작품의 주제다)의 두세 구절. 굶주린 어린아이의 모습. 철창 안으로 보이는 죄수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 ㅡ 이 모든 것 또한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이다.(13쪽)

 

(나의 생각)

 

'가을 밭에서 보이는 연기'를 바라보는 느낌은 슬프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한 게 아닐까. 한 해 동안의 고된 노동이 비로소 마무리되고, 이제는 거기서 무언가를 불에 태울 정도로 한결 여유롭다는 느낌부터 들지 않는가. 고요한 한밤중에 시골 마을에서 가끔씩 들려 오던 '컹컹' 개짖는 소리 또한 슬프기보다는 뭔가 아련한 느낌부터 먼저 떠오르는 소리가 아닐까. 그 개가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짖는 지와는 상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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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8-12-31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 새해 복많이 받으셔요*^^*

oren 2019-01-01 13:45   좋아요 0 | URL
카스피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정원의 한 모퉁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가을의 따사로운 햇빛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다가 가을비는 쓸쓸히 내리는데 사랑하는 이의 발길은 끊어져 거의 한 주일이나 혼자 있게 될 때.

 

아무도 살지 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삭은 나무 위에는 "아이세여, 네 너를 사랑하노라……" 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 있음을 볼 때.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씌어 있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소행들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밤을 잠 못 이루며 지새웠는지 모른다 ……." 대체 나의 소행이란 무엇이었던가. 하나의 치기 어린 장난, 아니면 거짓말, 아니면 연애사건이었을까. 이제는 그 숱한 허물들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는데, 그때 아버지는 그로 인해 가슴을 태우셨던 것이다.(9∼10쪽)

 

 - 안톤 슈낙,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중에서

 

 

 * * *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집어들고 여기 저기를 펼쳐 보다가 오늘은 문득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예전에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저 아무런 생각없이 스쳐 지나갔을 게 분명한 어느 대목에서 갑자기 딱 멈추고 말았다. 안톤 슈낙이 말한 '숱한 세월이 흐른 후에 문득 발견된 돌아가신 아버지의 편지' 때문이었다. 비록 나는 돌아가신 아버님의 편지를 단 한 통도 간직하고 있진 않지만, 이 대목을 읽으면서 괜시리 울컥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돌아가신, 37년생인 아버지의 학력은 국졸이 틀림없다. 중학교까지 다녔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가 아버지로부터 받아 본 최초의 편지는 아마도 1978년 봄쯤이었던 듯하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부모님의 품을 떠나 안동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한 한기에 겨우 두 번쯤 고향엘 다녀왔을 뿐이었다. 중간 고사 끝나고 한 번, 기말고사 끝나고 또 한 번. 그 사이사이를 메꿔주는 게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께 드리는 문안 편지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전화기는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물론 내가 자취하던 주인댁의 안방에도 떠억하니 전화기가 있었지만, 그래봐야 우리 동네엔 동장댁에만 딸랑 한 대의 전화기가 있을 뿐이었다. 그 당시 전화기는 아주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전보처럼 긴급히 사용하는 비상 통신 수단에 가까웠다. 내가 동장님댁으로 '내게 걸려온 전화'를 받으러 달려갔던 것도 딱 한 번뿐이었다. 고입 시험 합격 통지를 받을 때였다. 내 앞으로 전화가 와 있다는 동장님의 방송을 듣고 그 전화를 받으러 종갓집 못둑 위를 마구 내달릴 때 내 얼굴에 부딪혀 오던 차디찬 겨울 바람의 느낌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때 안동에서 3년을 보낼 동안에 내가 아버님과 주고 받은 그 많은 편지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3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 덕분에 어느새 익숙해진 아버님의 필체를 다시 마주한 건 삼척에서 신병 훈련을 받을 때였다. 6주 동안의 신병 훈련은 대체로 견딜 만했지만 생각보다는 몹시 빡센 것도 사실이었다. 하필이면 내 생일이었던 6월 29일에 입대해서 여름 더위가 절정을 넘긴 8월 14일이 되어서야 신병 교육대를 빠져 나올 수 있었으니, 삼복 더위를 온통 거기서 다 보낸 셈이었다.

 

1983년 여름의 어느 밤, 삼척의 바닷가 후진 해수욕장에서는 보니 엠의 <Rivers Of Babylon>이라는 노래가 흥겹게 흘러나오고, 밤바다를 훤히 밝히는 온갖 불빛들이 저 멀리서 산 아래 바닷가에서 아롱거리고 있었다. 바로 그 시간에 우리 신병들은 이름도 모를 어느 야산의 훈련장에서 평생 동안 잊지 못할 아주 가혹한 '얼차례'를 받고 있었다. 야간 각개 훈련의 마지막 훈련이었는데, 우리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모른 채 '철모 위에 원산 폭격'을 무려 1시간 가까이 받았던 것이다.(나는 악으로 깡으로 버텼지만, 결국 머리가 다 짓이겨져 그날 밤 의무대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나중에 자대 배치를 받고 나서야 반창고를 떼어냈고 이내 손바닥만 한 딱지가 앉았는데, 그 여파로 머리카락이 쏙 빠지는 바람에 한동안 발모제를 사다 발라야 했다.) 극한에 가까운 얼차례를 받고 난 뒤에 뒤따르는 카타르시스는 대개 '어머님 은혜'를 부르는 것이었다. 다들 첫 소절도 다 부르지 못하고 목이 메어 꺼이꺼이 울면서 그 노래를 겨우 따라 부르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그 노래를 다 부르고 나면 가슴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훈련소에 있을 때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총기 수입까지 다 마치고 나서 잠깐씩 한가한 틈에 주어지는 '편지 쓰기 시간'이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다들 효자 심정이 되는지, 볼펜만 붙잡으면 편지지를 너댓장씩 꽉꽉 채우며 온갖 참회의 심정들을 열정적으로 마구 쏟아냈더랬다. 매번 편지의 시작은 똑같았다. '아버님 전상서, 기체후 일향만강하옵신지요? 대소간의 어르신들도 두루 건강하시겠지요? ' 하는 투였다. 그때 부모님과 주고 받은 편지가 얼마나 구구절절했던지는 제대하고 나서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들은 바로는, 내 편지를 받아보실 때마다 아버님께서 장문의 편지를 손수 어머님께도 읽어 주셨으며, 그 때마다 두 분이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얘기를 듣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쓴 편지 때문에 부모님께서 눈물까지 흘리셨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더랬다. 군복무때 내가 쓴 편지가 몇 통이었는지, 내가 아버님으로부터 받은 편지가 또 얼마만큼이었는지는 조금도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 편지들이 지금 단 한 통도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만은 참으로 아쉽게 느껴진다. 그 옛날엔 사랑하는 사람들과 주고 받는 편지 때문에 우표값도 적잖이 들었던 듯한데, 까마득한 옛날의 소인이 찍힌 그 많은 편지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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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12-31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님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oren 2018-12-31 14:28   좋아요 1 | URL
한 해 동안 겨울호랑이 님 덕분에 서재 생활이 즐거웠습니다.^^
겨울호랑이 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요~~

cyrus 2018-12-31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올해 마지막 날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oren 2018-12-31 14:29   좋아요 0 | URL
cyrus 님께서도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내년에는 더욱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세설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50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송태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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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자키 준이치로(1886∼1965)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나쓰메 소세키(1867∼1916)보다 20년쯤 늦게 태어났다. 나쓰메 소세키가 메이지(재위 1868∼1912)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였다면,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그보다 한참이나 뒤늦게 활동했던 작가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는 메이지 유신 이후 다이쇼 시대를 거쳐 점차 팽창하는 제국으로 변모하던 쇼와(재위 1926∼1989)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작가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의 국력이 한창 기세좋게 뻗어나가던 시기에 부유한 도쿄 상인의 집에서 태어났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가난에서 미처 벗어나지도 못하던 시절에 이미 고도로 서구화된 도쿄의 도회적 분위기를 만끽하며 자랐으나, 도쿄제국대학 졸업을 앞둔 무렵에는 급작스럽게 가세가 기울어 등록금조차 대지 못해 퇴학을 당했다.

 

그의 인생은 관동 대지진이 일어난 1923년(38세)을 기점으로 크게 변한다. 당시 요코하마의 외국인 거주 지역에 살았던 그는 대재난의 충격 때문에 아내와 자식까지 버리고 혼자서 오사카로 이주하는데, 그때부터 간사이 문화에 깊이 매료된다. 오사카는 도쿄보다 일본의 전통 문화를 지키려는 보수적인 경향이 강했고, 서구풍의 유행과 패션이 넘쳐나고 물질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던 도쿄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는 이내 열렬한 오사카 매니아로 변모한다.

 

작가의 이같은 독특한 인생 내력은 차츰 당대의 일본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종의 문화적 긴장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간다. 일본 전통 문화에 대한 짙은 향수와 물질 문명 중심의 서구 문화에 대한 반감은 때로 『여뀌 먹는 벌레』(1928년)에서 보듯이 전통과 현대의 갈등을 견디지 못하는 결혼 생활로 그려지기도 하고, 『세설』(집필 1942∼44년, 발표 1946∼48년)처럼 간사이 문화에 대한 짙은 애정이 담긴 결혼 풍속 소설로도 그려졌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성(性)과 결혼 문제를 다룬 소설을 유난히 많이 발표한 덕분에 '동양의 D H 로렌스'라는 별칭까지 얻을 정도였다. 그의 대표작인 『세설』 또한 그런 명성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전세계의 주요 문학 작품 가운데 '결혼 문제'를 다룬 작품만을 따로 헤아려 본다면 이 소설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작품 속의 등장 인물들 대부분이 '혼기를 놓친 노처녀의 결혼 문제'에 온통 매달려 있는 데다가, 혼담이 있을 때마다 온 가족들이 매번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비상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보자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못지 않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세설』속에는 혼담을 통해 신랑 후보감이 신규로 등장할 때마다 매번 반복되는 온갖 세밀하고도 까다로운 사전 조건 탐색이나, 맞선 이후로 바쁘게 전개되는 관련 인물들 사이의 분주한 대화와 서신들, 혹은 만남이 진척될수록 더욱 복잡하고도 미묘하게 굴절되는 심경 변화와 심리 묘사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의 무대는 오사카와 고베 사이에 낀 아시야라는 좁은 동네가 중심이지만, 넓게 보면 오사카와 고베뿐 아니라 교토와 나라 등지를 포함하는 간사이 지방 일대를 두루 아우르고 있다. 그 지역이야말로 도쿄와 요코하마로 대표되는 간토 지역과 뚜렷이 대비되는 특별한 고장이며,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이 끊임없이 불편을 느끼고 긴장감을 늦추지 못했던 도쿄와는 달리 언제나 한가로운 기분으로 옛 추억들을 떠올리며 안온하게 살 수 있는 장소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오사카에서 대대로 부유한 상업 가문으로 명성을 떨치다가 이제 막 쇠락으로 접어든 마키오카 가(家)의 네 자매들이 핵심이다.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 미묘하면서도 꽤나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을 떠안고 있다. 가업을 이을 상속자가 없어 양자 신분으로 입양되었다가 마키오카 가(家)의 맏딸과 결혼한 다쓰오 부부는 자식을 여섯이나 두는 바람에 가문의 대소사를 챙길 여력조차 부족하다. 둘째인 사치코는 경제적 능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는 든든한 남편과 함께 딸 하나를 키우며 살지만, 미혼인 두 여동생까지 거두느라 신경 쓸 일이 한둘이 아니다. 셋째인 유키코는 아리따운 외모를 지녔지만 성격이 활달한 편이 아닌 데다가 혼기마저 놓친 노처녀로, 주위에서 걸핏하면 혼담을 주선하지만 번번이 허사가 되면서 사람들의 애를 태운다. 막내인 다에코는 네 자매 가운데 가장 활달하고 재주도 많아서 사회 생활도 왕성하지만, 10대 시절에 벌써부터 겉멋만 번지르르한 부잣집 아들과 애정의 도피 행각까지 벌일 정도로 철부지인 데다가, 미혼인 언니한테 가로막혀 결혼도 못하고 차츰 집안의 골칫덩이로 전락한다.

 

이 소설 속엔 등장 인물들 사이의 극심한 갈등이나 드라마틱한 사건 전개와 같은 요소는 별로 없다. 그래서 네 자매의 일상이 계절따라 꽃잎이 피고 지는 것처럼 아주 평화롭고도 차분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준다. 바깥 세상이 온통 전쟁통에 난리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고요하고도 평화로운 분위기는 더욱 극적으로 대비된다. 그래서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독자 스스로가 세밀한 감각으로 문장들 사이로 흐르는 미세한 결들까지 음미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가령, 다음의 짧은 대목 하나만 보더라도 작가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문장들의 틈새 사이로 쉽게 흘려 넣으면서도 사태의 미세한 차이들을 얼마만큼 능숙하게 표현해 낼 줄 아는 것인가.

 

사치코의 바로 아래 동생 유키코가 어느새 혼기를 놓치고 벌써 서른이나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이렇다 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면, 큰집 언니 쓰루코도, 사치코도 또 본인인 유키코도 노년인 아버지의 호화로운 생활, 마키오카라는 오래된 집안의 명예, 요컨대 지체 높은 집안이었다는 옛날의 격식에 사로잡혀 집안에 어울리는 혼처를 바랐다는 데 있었다. 처음에는 혼담이 빗발쳤으나 모두 어딘가 좀 아쉬운 듯해서 거듭 거절해 버리자 그 뒤로는 사람들도 점차 정나미가 떨어졌는지 혼담도 뜸해졌고, 그러는 동안 가세도 더욱 기울어 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일은 생각하지 마시라>는 이타니(미용실 여주인이자 중매인)의 말은 정말이지 상대를 위해서 해준 친절한 충고인 셈이었다.(16쪽)

 

 

이런 식으로, 잊을 만하면 어디선가 불쑥 등장하는 '새로운 혼담'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도 매번 특이한 신랑 후보자와의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모처럼의 부푼 기대와 어이없는 불운과 느닷없는 교착으로 이어지다가 끝내 파경을 맞는다. 그러면서도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 다른 작품에서는 흔히 느낄 수 없는 몇 가지 특이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 느낌들 가운데 첫 번째로 꼽고 싶은 건 바로 이상하리만치 짙게 풍겨 나오는 <여류 문학풍>의 소설 분위기이다. 소설을 이끌고 가는 핵심 인물들이 (수시로 화장을 고치고 옷을 갈아 입는) 네 명의 자매들인 데다가, 유키코의 혼담을 진행하는 과정이나 막내인 다에코의 연애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숱한 인물들도 거의 대부분 여성들이 중심을 이루며, 심지어 네 자매들과 교류하며 지내는 몇몇 외국인들조차 거의 대부분이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슈토르츠 부인이나 그녀의 딸 로제마리, 혹은 러시아 처녀 카테리나 등등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다니자키 문학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 바로 일본 문학에 면면히 흐르는 에로티시즘의 전통이고, 거기에 혼재된 이상 성욕이나 악마주의적인 경향까지도 포함하는 '여성 숭배'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런 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특히나 '위대한 예술은 통속적이면서도 고급 문학이어야 한다'는 게 다니자키의 예술론이고 보면 '여자들'을 제쳐두고 도대체 무슨 문학이 가당키나 했던가 싶은 작가의 생각도 염두에 둘 만하다.

 

미시마 유키오는 「다니자키 준이치로」라는 글에서 <만일 천재라는 말을, 예술적 완성만을 기준으로 삼아 결코 자기 자신의 자질을 오판하지 않고 계속 그것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80 평생을 통해 자기 자신의 자질을 오판하지 않았던 다니자키야말로 천재>라고 했다. 그리고 이토 세이의 말대로 <남성이 여성을 숭배하는 것도 사상>이라면 다니자키의 소설들은 <남성이 여성을 숭배>하는 그 하나의 사상으로 수렴된다. 그의 실제 인생도 오로지 그 사상을 현실화하는 데 바쳐졌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그가 숭배하는 대상, 즉 그를 둘러싼 여성들을 보지 않을 수 없다.(924∼925쪽)

 

 - 다니자키 준이치로, 『세설』, <다니자키와 여자들, 그리고 발> 중에서

 

 

이쯤에서 문득 다니자키의 실제 결혼 생활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해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다니자키는 맨 처음엔 한때 기생이었던 치요코와 결혼하는데, 결혼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치요코는 다니자키보다 열 살 아래였다. 치요코는 다니자키의 기대와 달리(?) 현모양처였던 탓에 사이가 멀어졌고, 그때 나타난 사람이 치요코의 여동생인 열네 살의 세이코였다. 이때 다니자키의 집에 드나들던 문인 사토 하루오가 남편 한테 구박 받던 치요코를 동정하게 되고, 두 사람은 결국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그 유명한 <오다와라> 사건이다.

 

 

이번에 우리 세 사람이 합의하여 치요코는 준이치로와 헤어져 하루오와 결혼하기로 하였기에 알려 드리오며, 준이치로의 딸 아유코는 어머니와 같이 살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쌍방의 교류는 종전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가까운 시일 안애 적당한 중매인을 내세워 결혼 피로연을 갖고자 하며, 그 일은 추후 통지해 드리겠습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치요코

           사토 하루오

(「아사히 신문」 1930년 8월 19일자)

 

 

이 사건이 있고 난 이듬해인 1931년에 다니자키는 도미코와 두 번째로 결혼한다. 그녀는 문예춘추사 기자였고, 다니자키보다 스무 살 연하였다. 이 결혼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고, 1935년에 마침내 '숙명적인 사랑'을 느낀 네즈 마쓰코와 세 번째로 결혼한다. 다니자키는 그 결혼을 <주종 관계>를 맺는 것으로 표현했고, 식사도 한 식탁에서 하지 않고 그녀의 식사 시중을 든 후에 혼자 먹었다고 한다. 『세설』 또한 마쓰코 부인의 자매들을 소재로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의 이상적인 여성은 어머니 '세키'였다고 한다. 소문난 미녀였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며, 그 어머니와 가장 닮은 여성이 마쓰코 부인이었다고 한다.

 

『세설』이 여느 소설들과 다른 두드러진 특징을 하나 더 꼽자면 그건 '시류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 소설이 쓰인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이었고, 소설 속 시간들은 대략 1936년부터 1941년까지였다. 그 기간 동안에 일본은 중일전쟁(1937∼1945)이 한창이었던 데다가 나중에는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었고, 유럽에서는 나치 독일이 전세계를 상대로 거대한 전쟁을 벌이던 때였다. 『세설』속에도 어쩔 수 없이 '세상이 온통 전쟁에 휩쓸린 분위기'가 느껴지긴 하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는 토막 뉴스에 불과할 뿐이다. 전쟁 자체가 온갖 풍성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다른 작품들과는 너무나 달라 독자들이 도리어 당황스러울 정도다. 다니자키는 이 작품을 통해 시종일관 간사이 지방 특유의 느낌이 가득한 '당시의 풍속'을 잔잔하게 전할 뿐이다. 다른 목적은 없다.

 

『세설』은 무척 세심하게 쓰인 소설이다. 극적인 사건보다는 사계의 흐름과 함께 실제 생활처럼 소설 속의 시간도 천천히 지나간다. 봄의 벚꽃 구경, 여름밤의 반딧불이잡이, 가을의 단풍 구경, 후지 산, 가부키, 피아노, 인형, 프랑스어 교습, 무용 교습, 무용 공연, 각기병, 장티푸스, 주사, 약, 만주, 홍수, 기모노, 사진기, 전화, 도쿄 말과 간사이(오사카) 사투리, 미용실, 파마, 호텔, 병원, 학교, 셋집, 독일인, 백계 러시아인, 갖가지 일본 음식들, 피아노, 커피, 제과점, 백화점, 신혼여행, 해수욕, 온천, 기차, 연애, 맞선, 여객선 등이 계절의 변화와 함께 쓰루코, 사치코, 유키코, 다에코의 주위를 파노라마처럼 지나쳐 간다. 그런 세세한 풍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부끄러워서 걸려 온 전화조차 받지 못하는 유키코가 여동생 다에코에게 설교를 해대는 당찬 모습, 그리고 맞선을 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진행시켜 나가는 유키코의 의뭉스러운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930쪽)

 

 

『세설』이 다른 소설들과 구별되는 또다른 특징이라면 '자연에 대한 묘사'가 극히 절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계절 따라 바뀌는 다양한 바깥 풍경들을 자주 묘사하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계절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통해 '시간이 좀 더 흘렀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쪽에 훨씬 가깝다. 정원에 핀 가지각색의 꽃들이나 교토의 벚꽃놀이를 묘사할 때조차 풍경 자체보다는 그 풍경 속에 담긴 등장 인물들의 내면에 대한 심리 묘사가 중심일 정도로, 작가는 등장 인물들의 '세심하고 복잡한 마음 속 미로'를 탐구하는데 집중한다.

 

특히나 셋째인 유키코의 혼담을 두고 양가의 중매인들이나 가까운 가족 구성원들이 주고 받는 대화나 편지 속에는 '말해야 할 것과 숨겨야 할 것'에 대한 미묘한 선택지들이 얼마나 구불구불한 선들을 따라 미세하게 이어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세설』이 일본판 『오만과 편견』이라는 평을 듣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싶다. 소설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길게 이어지는 '유키코의 다양한 혼담 진행 상황'을 보노라면, 마침내 한 쌍의 커플이 결혼에 골인할 때까지 검토될 수밖에 없는 온갖 미묘하고도 세세한 고려사항들이 총망라된 느낌이 들 정도다.

 

『세설』과 외견상 비슷한 느낌을 주는 소설로는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도 빼놓긴 어려운데, 두 작품 모두 유서 깊은 상업 도시에서 '사업'으로 오랫동안 번창했던 가문이 몰락하는 모습을 다룬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무척이나 닮았다. 그러나 토마스 만의 소설이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시 말해서 오랫동안 번창했던 가문이 마침내 '어떤 원인과 과정'을 통해 몰락하게 되는가를 (유전적인 분석까지 포함하여) '남자들의 세계'를 중심으로 세밀하게 그려냈다면, 다니자키의 소설에서는 이제 막 가문의 쇠락이 시작될 무렵의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만을, 그것도 여성들의 세계를 중심으로 섬세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극명하게 비교된다.

 

『세설』은 서구 문학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일본 특유의 전통과 문화와 아름다움이 녹아 있다. 벚꽃놀이 하나만 하더라도 오사카와 교토의 풍경이 다르고, 교토에서도 기온의 밤벚꽃 다르고 헤이안 신궁이 또 다르다. 후지산의 풍경 또한 어디서, 누구와 함께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매번 달라진다. 일본의 다양한 전통 무용과 악기와 의상들에 대한 느낌도 그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오사카 지방 고유의 사투리나 억양, 혹은 고베의 도미맛까지도 도쿄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세세한 차이까지도 아주 세밀하게 그려놓은 작품이 『세설(細雪)』인데, 일본을 그저 주마간산 격으로 몇 차례밖에 구경하지 못한 독자로서는 그런 차이까지 두루 자세히 음미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다니자키가 몇 년만 더 살았더라면 그가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을 뻔했다는 말은 결코 지어낸 풍문이 아니다.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작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그는 다니자키가 죽은 뒤 3년이 지나서야 그 상을 받았다. 그런데 다니자키가 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려 5년 연속으로 노벨상 후보에 올랐던 작가는 정작 다니자키였다고 한다. 사르트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사 제쳐놓고 교토 근교에 있는 다니자키의 묘에 참배했던 것도 그의 문학적 위상을 반증한다. 제국 시대의 일본은 중국과 미국까지도 한꺼번에 맞붙어 상대할 정도로 욱일승천의 기세였다. 그런 난리통에 이처럼 고요하고도 세심하면서 아름다운 작품이 쓰였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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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12-29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의 대립이 있었던 17세기 이전부터 오사카로 대표되는 관서지방과 관동지역의 문화에는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이처럼한 나라 안에서도 다른 자연환경으로 인해 생기는 문화차이를 보자면, 자연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

oren 2018-12-29 20:25   좋아요 1 | URL
생각해 보면 일본만큼 지방색이 저마다 뚜렷하게 구별되는 나라도 드물지 싶어요. 나라의 생김새부터가 아래위로 길쭉하게 펼쳐져 있으니까요. 단지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런 차이를 그들만큼 자세히 구분할 줄 모를 뿐이겠지요. 『세설』을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들이 가장 애를 먹는 것도 그런 지역적인 차이들, 가령 ‘간사이 사투리‘ 하나만 하더라도 그걸 제대로 옮길 방법이 없다는 것이더군요.^^
* * *
「여자는 나이 들면 모두 강심장이 되지. 내가 아는 기타(北)의 게이샤가 있는데, 그 사람은 벌써 마흔이 넘은 노기야. 그런데 도쿄에 가서 전차를 타면 일부러 오사카 사투리로 <내립니더> 하고 큰소리로 외친다나. 그러면 반드시 내려 준다는 거야.」(216쪽)

syo 2018-12-29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 혹시 다른 매체나 지면에도 투고하고 계신가요?? 알라딘 서재에만 무료로 풀어놓기에는 아까운 글을 항상 쓰시니까요....

oren 2018-12-29 20:34   좋아요 0 | URL
여기서도 어쩌다 한번씩 겨우 글을 올리는 형편인데, 어딜 감히 다른 델 기웃거릴 여력이나 있을까 싶습니다^^

박균호 2018-12-29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알라딘 서재에 흔히 보이는 트렌디(?)한 서평 비스무리한 글과는 차원이 다르군요. 품격있고 지성미 넘치는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이래야 알라딘 서재인데요.

oren 2018-12-29 20:41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박균호 작가님. 신통찮은 제 글에 너무 과분한 글을 남겨주셔서 제가 도리어 당혹스럽습니다.

알라딘 서재든 어디든, 요즘엔 쌔고 쌘 게 서평글이고 독후감인지라, 어떻게든 남들과는 조금이라도 다른, 저만의 감상을 담은 글을 써 보려고 애써 보지만, 늘상 그게 쉬운 게 아니라는 사실만 더욱 절감하고 있답니다.^^

격려의 댓글 담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균호 2018-12-29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님이 추천하신 책을 정신없이 담았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광란의 쇼핑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oren 2018-12-29 20:50   좋아요 1 | URL
와... 제가 흥미롭게 읽었던 책들을 박균호 작가님께서도 한꺼번에 왕창 사들이셨다니, 저도 몹시 기쁘고 기대됩니다.^^
 
알라딘 연간 통계 리포트

 

 

시간 단위는 단순한 약속일 뿐이야. 시간에는 눈금이 없지. 세기가 바뀔 때 총을 쏜다거나 종을 울린다든지 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뿐이야.

 - 토마스 만, 『마의 산』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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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연말은 기분이 영 꿀꿀하다. 그렇다고 올해 빼고는 매년 연말마다 기분이 뿌듯했던 것도 아니다. 올핸 경제도 연말로 올수록 점점 더 내려앉는 듯한 느낌인 데다가, 기분 좋은 뉴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구경조차 하기 어렵다.

 

오늘은 괜히(?) 알라딘에 들어 왔다가 '서재 결산' 때문에 꿀꿀한 기분이 살짝 더해졌다. 최근 몇 년 동안 해마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번쩍 나타나던 '서재의 달인 앰블럼'조차 나를 외면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못 태연자약하게 '내 이럴 줄 알았지' 라고 말할 기분도 아니다. 예년에 비해 서재활동이 영 부실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를 아예 저버리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내가 쓴 글이 확실히 적기는 했다. 통계상으로는 총 111개의 글을 올렸다고 하지만, 밑줄긋기로 올린 글이 무려 7할이나 되고, 내가 손수 지은 글은 고작 35개에 불과했다. 그러고도 무슨 앰블럼이 붙길 바랬나 싶다.

 

2018년 oren님이 작성해주신 글은 총 111개이며, 작성해주신 글자수는 2,153,982자 입니다. 이는 <엄마를 부탁해> 같은 단행본으로 만든다면 18.7권을 출간할 수 있는 분량입니다.
oren님은 전체 알라디너 중 399번째로 글을 많이 작성해주신 알라디너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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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oren님이 작성해주신 글은 총 151개이며, 작성해주신 글자수는 2,851,134자 입니다. 이는 <엄마를 부탁해> 같은 단행본으로 만든다면 24.75권을 출간할 수 있는 분량입니다.
oren님은 전체 알라디너 중 233번째로 글을 많이 작성해주신 알라디너십니다.   

 

 

그런데, <알라딘 서재 / 북플 결산 2018> 코너에 갔더니, 뜻밖에도 < 방문자가 많은 서재>에 내 서재가 네 번째 순위에 올라 있었다. 이게 무슨 변고인가 싶었다. 1년에 고작 35개의 글을 올린 게으른 서재가 어찌 감히 1년에 수백 편씩 혹은 수천 편씩 글을 올리는 다른 분들의 서재를 제치고 감히 그 자리에 올라설 수 있다는 말인가.

 

너무나 의아하여 방문자 통계를 찾아 봤더니,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1년간 총 방문자는 327,857명이며, 방문자가 가장 많았던 날은 8월 7일(화)119,614명이 방문하셨습니다.

 

 

알라딘에 자리를 튼 지 10년도 넘었지만, 여태까지 쌓인 누적 방문자수가 668,885회에 불과한데, 지난 여름 몹시도 뜨겁던 어느 하루에만 무려 119,614명이 내 서재를 방문했던 것이다! 어쨌든 알라딘 통계는 결코 허위와 조작을 하지는 않을 텐데, 그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연유로 내 서재를 방문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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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나? 어쩌면? 했던 얌체스런 앰블럼에 대한 헛된 기대는 이제 깔끔하게 사라졌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위로할 만한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다. 경제적 효익이라는 측면에서는 뜻밖에도 쏠쏠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밑줄긋기 형식으로 올린 글을 제외하면, 꼴랑 35편의 글만 올리고도 무려(!) 15편의 당선작을 냈으니 말이다. 암튼, 이제는, 마지막 꼬랑지밖에 붙들 게 없는 개같은(어쨌든 戊戌년은 개年이니) 18년은 이쯤에서 깔끔하게 떠나 보내고, 다가올 19년이나 씩씩하게 맞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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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o 2018-12-20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님이 엠블렘을 달지 못하셨다는 사실이 엠블렘의 가치를 의심스럽게 만드네요..... 다른 것도 아니고 서재의 ‘달인‘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서는 누구보다 ‘달인‘에 부합하는 oren님을 선정하지 않다니......

    oren 2018-12-20 01:17   좋아요 0 | URL
    아이고... 그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을요...
    서재를 매일같이 뜨겁게 달구신 ‘달인‘ 분들이 얼마나 많으신데요...
    저는 서재를 늘 서늘하게 식힌, 말하자면 그 누구보다 ‘안 달인‘ 축에 드는 사람일 뿐입니다요.^^

    syo 2018-12-20 01:33   좋아요 1 | URL
    말도 안 되는 ‘과공‘이십니다. 알라딘의 그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거구요ㅎㅎㅎ

    그리고 어차피 이런 허울에 동요하지도 않으시겠지요ㅎㅎㅎㅎㅎ

    바람도 자는 겨울밤입니다. oren님 오늘도 이달도 한 해도 잘 마무리하시길^-^

    oren 2018-12-20 11:54   좋아요 0 | URL
    알라딘 나름의 선정 기분이 있고, 저는 그 기준에 미달된 거 뿐이니,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아무쪼록 syo 님께서도 올 한 해 잘 마무리 하시길요.^^

    카스피 2018-12-20 02: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쉽게도 엠블렘을 달지 못하셨지만 15개의 당선사실이 당당히 서재의 달인이라는 것을 증명하는것이라고 샤료됩니다^^

    oren 2018-12-20 12:01   좋아요 0 | URL
    제 스스로 돌아 보더라도, 올핸 알라딘 서재 활동에 소홀했다는 걸 많이 느꼈답니다.
    올린 글을 살펴 봤더니, 금년 5월과 7월에는 아예 단 하나의 글도 올리지 않았더군요.
    어떤 달은 딸랑 글 하나만 올렸었고요.
    그런데도 저렇게 자주 당선작으로 뽑아주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지요.^^

    2018-12-20 0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2-20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12-20 06: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18년 oren님의 글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가야할 길을 확인했습니다. 항상 감사드리며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oren 2018-12-20 12:04   좋아요 1 | URL
    제가 드릴 말씀을 겨울호랑이 님게서 다 해 주셨네요.^^
    늘 성원해 주셔서 감사드리고, 내년에도 더욱 좋은 한 해 만드시길 바랍니다.^^

    카알벨루치 2018-12-20 09: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님이 서재의 달인이 아니시라는 사실이 조금 놀랐습니다 너무나 깊고 견고한 글들을 써주시는데, 단순히 빈도 탓이라니 씁쓸합니다만, 그 Oren님의 내공이 어디가겠습니까? 알라딘에서 Oren님을 만난 것도 저에겐 행운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로 많은 도전 주시길 바랍니다 ^^

    oren 2018-12-20 12:20   좋아요 1 | URL
    알라딘에는 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내공이 깊으신 분들도 많은데, 서재의 달인 선정 기준 때문에 그런 분들이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는 듯해서 살짝 아쉬울 때도 있더라구요. 알라딘 서재 활동 기준이 요 몇 년 사이에 북플 활동 위주로 너무 급작스럽게 바뀐 탓에, 북플 기능을 잘 쓰지 않는 분들이 알게 모르게 자꾸만 뒷전으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도 들고요. 알라딘의 정책이 그러하니, 그저 그려려니 합니다.^^

    카알벨루치 2018-12-24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렌님 알라딘에서 소통하게되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늘건강하시고 즐거운 성탄절 되십시오!

    oren 2018-12-25 14:05   좋아요 1 | URL
    제가 카알벨루치 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요.
    아무쪼록 카알벨루치 님께서도 즐거운 성탄절과 연말 보내시길요.^^
     
    탄허록 - 미래사회를 이끌어 갈 주인공들에게 남긴 100년을 내다본 지혜 모음
    탄허 지음 / 휴(休)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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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줄긋기)

     

    우리나라에는 우주의 기본 원리를 밝힌 비책 《천부경》이 있다. 단제(檀帝; 탄허 스님은 여러 역사적 기록을 들어 중국이 우리의 단제檀帝를 단군檀君이라고 칭호를 붙인 것은 소국小國이라고 얕잡아 본 것이므로 단군이 아니라 단제라 이름 붙여야 한다고 봄-편집자주) 때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는 《천부경》은 신라 최치원이 한자로 번역하여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책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 선가仙家 사상의 연원이 되었으며, 《주역》의 시원을 이룬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천부경》은 총 81자로 된 아주 짧은 내용이지만 매우 난해하고, 역학의 원리와 공통점이 많다. 물론 유교의 원리는 그 깊이가 방대하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지만, 《천부경》은 역학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천부경》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일一은 시작인데 시작하지 않는 1一이요,

    또 일一은 끝냄인데 끝냄이 없는 일一이다.  

     

    천天은 양陽이므로 1一이며, 지地는 2二, 인人은 3三으로 되어 있다. 태극太極에서 시작된 수數는 삼극三極, 즉 무극無極·태극太極·황극皇極을 거쳐 1로 귀일歸一한다는 것인데, 1의 사상은 천하는 둘이 아니라는 불교의 원리와 부합하며, 역학의 원리와도 부합한다. 일설에는 《천부경》으로부터 역학의 시원이 이루어졌으며, 단제 민족이 우주의 근본 원리를 밝힌 사상으로 중국의 기본 사상을 이룬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내가 알기에는 《천부경》의 시원은 중국의 요순과 동일한 시대다. 그러므로 《천부경》이 먼저 나오고 그 뒤에 복희씨의 팔괘가 나왔으며, 그 뒤에 문왕의 《주역》이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천부경》이 단제 때 만들어진 것이라면 우리 민족의 위대한 사상이 중국으로 전해져서 중화사상으로 꽃피워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이 사상에 의해 세계는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김정배 교수가 쓴 논문 〈한국 민족 문화의 기원〉에 보면 복희씨 때 황하 유역에 살던 민족과 단제 시대의 고조선 민족은 같은 고古아시아 족으로 형제지간, 즉 구이족九夷族이고, 그 후로 주周나라 때부터 한족漢族이 황하 유역의 고아시아 족을 몰아냈다고 한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이제까지 역학이 중국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졌다는 종래의 일반적인 의견은 틀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역학의 시초는 《천부경》이고, 단제의 지배 영역은 전 동아시아 일대였으며, 여기에서 발생된 문화가 동아시아 전체에 파급되었다는 발상도 해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토인비 교수가 말했던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시대의 전개는 중국이 아닌 바로 우리나라로 볼 수도 있다. 즉 현재 한반도는 지구의 주축에 속하고, 한민족은 ‘간艮’의 시종始終을 주도하고, 《천부경》 사상은 새로운 세계의 근본이 된다고 할 때, 앞으로 세계의 중심은 우리나라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우리나라는 중국의 말초신경 정도에 해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나라와 중국은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수십억 인구를 가진 중국보다 우수한 인재가 월등히 많이 나왔다. 그뿐인가. 우리 민족사에는 중국 대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록이 얼마든지 있는데 그런 것들이 이러한 사실들을 증명해 주고 있다. 《천부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하나가 모여서 열이 되고, 우주의 기틀이 갖추어지되 모두 셋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말은 복희씨가 팔괘를 요순시대에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구절로, 《천부경》이 복희씨의 팔괘보다 좀 더 빨리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단제의 《천부경》이 나올 때 음陰의 문자와 양陽의 문자가 함께 사용되었는데, 중국은 양이기 때문에 음만을 수용할 수 있어서 음의 문자인 한문을 쓰게 되었고, 양의 문자는 그대로 우리나라에 남아 구어口語로만 전해 오다가 세종대왕 때 한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중국의 한문자漢文字도 우리나라에서 건너갔다고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을 제시한 사람도 있다.문자에 관해서는 이러한 일설을 수긍할 수도 있다.

     

    그보다 여기서 꼭 밝혀 둘 것이 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도 요즘 표현으로 한다면 한국계 만주인이었다고 한다. 그가 명천자明天子에 즉위하자 신하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폐하의 계보를 어느 곳에서 찾을까요?”

     

    그랬더니 명천자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장검長劍을 잡고 남쪽으로 오니, 그 선조는 ‘모른다’고 써라[長劍南來 其先莫知].”

     

    물론 요순시대의 황하 유역 민족이 고조선족과 같은 고아시아족이므로 복희씨도 한민족이었음에 틀림이 없다고 볼 것이고, 오늘의 중국 역사가 주나라 때부터를 한족漢族으로 치고 있는 것으로 보았을 때 그 이전,즉 복희伏羲·신농神農·요순堯舜 등 삼황오제三皇五帝가 있었던 하은夏殷 시대는 우리와 같은 민족이었을 것이다.

     

    또한 일설에 의하면 노자의 《도덕경》이 단제에게 전해 내려온 비책秘冊을 체계화해서 저술한 것이라 하는데, 이 또한 상당히 설득력 있다.

     

    노자는 생사가 분명치 않는 인물이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따르면 그는 80년 동안 모태母胎에 있다가 태어났는데, 나오자마자 머리가 백발이 되어 ‘노자老子’라 불렸다고 한다.

     

    노자가 지금으로 말하자면 도서관장으로 있을 때 어떤 비책의 자료를 발견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도덕경》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천부경》과 《도덕경》뿐만 아니라 그동안 소외시켰던 동양 사상을 중심으로 정신무장을 해야 한다. 그리하여 동서양이 지닌 부조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역학적易學的 정치 철학이 필요하다.(58∼62쪽)

     

    (나의 생각)

     

    여러 해 전에 《天符經》이라는 비책을 우연한 기회에 선물로 받은 적이 있었는데, 81자의 내용이 너무나 난해하여 따로 해석해 놓은 내용을 읽어도 도무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펼쳐봤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책이 이토록 중요한 책인 줄은 확실히 알겠다. 내가 가진 책에 소개된 <천부경이 전해온 길>을 일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 *

    천부경은 9000여년 전 桓國(환국)으로부터 口傳(구전;말로 전해지는 것)으로 전해져 오던 것을 6000여년전 桓雄天皇(환웅천황)께옵서 神市開天(신시개천)을 여시고 배달국을 세우신 후에 神誌赫德(신지혁덕;벼슬 이름)에게 일러 鹿圖文(록도문:사슴 그림문자)으로 기록하여 전하여 주신 것을 4345년전 檀君聖祖(단군성조)께옵서 篆書(전서)로서 碑文(비문)에 새겨 남기신 것이다.

     

    이를 신라말 유,불,선에 大覺(대각)을 이루신 고운 崔致遠(최치원) 선사께서 우리글인 韓字(한자)로 새로이 번역하여 비석에 새기고 서첩으로 만들어 후세에 전해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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