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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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괜찮은가, 괜찮지 않은가, 그것이 문제로다.

 - 셰익스피어, 『햄릿』 중에서

 

 

나쓰메 소세키(1867∼1916)

 

 

 * * *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작가'다. 그가 사망한지 벌써 100년도 더 지났지만 그의 명성이나 위상이 흔들린 적은 거의 없다. 그의 작품은 중고생들의 교과서에서 세대를 바꿔가며 끊임없이 읽혀졌고, 그의 얼굴은 1,000엔 권 지폐를 가장 오랫동안 장식했다. 무슨 이유로 그는 이토록 일본 사람들의 존경과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을까.

 

그는 동경제국대학을 졸업한 뒤 일본 문부성이 서양 문물을 직접 배워오도록 영국으로 파견한 국비 유학생의 원년 멤버였다. 비록 신경쇠약으로 중도에 귀국하기는 했지만 그때의 유학 경험은 작가에게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나쓰메는 유학 시절에 이미 선진 문물을 모방하고 뒤따라가기 바쁜 조국의 모습에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 터였다. 그는 일본이 피상적인 근대화를 추구한 나머지 서양에 대한 정신적인 예속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일본 학계는 그의 논설과 강연을 이내 '문명 비판'이라는 층위로 격상시켰고 그는 점차 국민적 지식인으로 떠올랐다.

 

국민 작가라는 칭호는 자연스레 정치적인 이념과 결부되기 마련이었다. 민족 공동체의 문화적 정체성 혹은 국가적 신념과 결부된 나쓰메의 작품들은 차츰 '소세키 신화'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인들은 어느 공동체든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고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를 나쓰메의 문학 작품들 속에서 찾아내기 시작했다.

 

일본 열도가 러일 전쟁의 승리에 한껏 들떠 있던 바로 그 즈음 처녀작인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년)로 뜻밖의 성공을 거둔 나쓰메는 그 직후 잇따라『도련님』과 『풀베개』 등을 써냈고, 도쿄제국대학의 영문학 교수라는 명예로운 자리마저 가볍게 내던지고 《아사히 신문》에 소속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좀 더 원대한 포부를 향한 걸음을 내디딘 셈이었다. 창작을 통해 자신의 삶의 목표를 구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배 위에서 스스로 맹세했네. …… 단지 엄청나게 격변하는 요즈음 세상에서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얼마만큼 나의 감화를 받고, 내가 얼마만큼 사회적 존재가 되어 다음 세대 청년들의 삶과 피가 되어 존속할 수 있을지 부딪쳐 보고 싶다네.

 

한 자루의 붓을 들고 낡은 세상을 뜯어고치고 자신이 꿈꾸는 멋진 세상을 그려보고픈 당찬 포부가 그대로 묻어나는 이런 출사표야말로 나쓰메의 본심이었다. 그는 문학을 통해 일본인들의 자의식을 일깨우고 그들로 하여금 서양 문명을 극복하도록 부단히 독려했다. 비록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이 총칼을 들고 서양과 직접적인 전쟁에 나선 적은 없었지만 문화 전쟁에서는 늘 그들에게 뒤처져 있다는 열패감이 그를 지배했고, 그는 문학을 통해서라도 서양에 대적할 정신적인 힘을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고 여겼다.

 

1914년에 발표된 『마음』은 여러 다른 인기작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인정받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나쓰메 문학의 본령은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일본 근대 문학의 선구자라는 상징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고, 이 작품이야말로 작가 특유의 시대적 불안과 문화적 소외감이 등장 인물들을 통해 고스란히 투영된 작품일 뿐만 아니라, 작가가 이상화하고 싶었던 인물들의 성격적 특징들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리고 싶었던 이상적인 성격적 특질들을 『마음』을 바탕으로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꾸준히 용맹 정진하고, 추호도 비겁하거나 비굴하지 않고, 금욕적이면서도 도의적이고, 향상심을 잃지 않고 맹진하는 인간 유형. 이런 유형은 작중 인물인 '선생님'을 통해 자신의 더 나은 미래를 암중 모색하는 '나'에게서는 아직까지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선생님'의 경우도 성격과 자질은 충분히 갖춰졌지만 여전히 실현되지는 못한다. 거의 모든 면에서 언제나 선생님보다 앞서 있었지만 끝내 '사랑 때문에' 자결로 생을 마감한 K의 경우가 바로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성격적 특질들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그런 K의 안타까운 죽음이 선생님의 삶을 끊임없이 압박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로 보여진다. 작가가 『마음』을 통해 일본의 독자들에게 부단히 일깨우고 호소하고 싶었던 것도 바로 그런 두 사람의 '참을 수 없는 안타까운 죽음'에 있었던 듯싶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그분을 늘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러니 여기서도 그냥 선생님이라고만 쓰고 본명을 밝히지는 않겠다. 이는 세상 사람들을 의식해서 삼간다기보다 나로서는 그렇게 부르는 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나는 그분을 떠올릴 때마다 바로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진다. 글을 쓸 때도 그런 마음은 같다. 어색한 이니셜 따위는 도무지 쓸 마음이 들지 않는다.(16쪽)

 

이렇게 시작되는 『마음』의 전체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화자인 '나'는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는 생기발랄한 학생이다. '나'는 여름방학때 친구들과 함께 놀러간 가마쿠라의 해수욕장에서 우연히 어떤 중년 남자를 알게 된다. 그저 막연한 호기심 때문에 그를 관찰하던 나는 며칠 후부터 그와 함께 해수욕을 즐길 정도로 가까워진다. '나'는 나중에 도쿄에 돌아와서도 선생님 댁을 다시 찾게 된다.

 

선생님은 이렇다할 직업도 없이 아름다운 부인과 함께 도쿄의 주택가에서 조용하고 단촐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선생님은 대체로 비사교적인 데다가 사람들에게 냉담한 편이다. 그의 일상에서 주목할 만한 유일한 특징이 하나 있다면 매달 어김없이 정해진 날짜에 조시가야 묘지에 성묘를 간다는 점이다. 물론 선생님은 그 묘지의 주인공을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 소설속 주인공이 일부러 거기까지 찾아오는 것조차 거북해 한다.

 

선생님은 처음부터 나를 싫어한 것이 아니었다. …… 가엾은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려는 사람에게, 가까이할 만한 사람이 아니니 그만두라는 경고를 보냈던 것이다. 남이 반가워하는 것에 응하지 않는 선생님은 남을 경멸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경멸한 것 같다.(24∼25쪽)

 

선생님의 마음은 도무지 오리무중이다. '나'는 선생님의 부인으로부터 '학생이었을 때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선생님이 왜 지금과 같은 성격으로 바뀌었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가 대학생일 때 겪었던 친한 친구의 갑작스런 변사가 한 원인이 아닐까 막연하게 추측만 할 뿐이다.

 

주인공인 '나'는 도쿄에서 학업을 마치고 잠시 고향에서 지내기 위해 낙향한다. 더군다나 아버님은 최근에 신장병으로 쓰러진 적이 있는데 병세가 위중했다. 병환 중에도 아버지는 매일 배달되는 신문을 아주 꼼꼼히 읽는다. 그러다가 어느 여름날 메이지 천황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나서는 아버지의 병세도 갑자기 악화된다.

 

그 무렵 신문은 사실 시골 사람들이 날마다 기다릴 만한 기사로 가득했다. 나는 아버지 머리맡에 앉아 꼼꼼하게 읽었다, 읽을 시간이 없을 때는 슬쩍 내 방으로 가져와 빠짐없이 훓러보았다. 나는 군복을 입은 노기 대장과 궁녀 같은 차림을 한 부인의 모습을 오랫동안 잊을 수가 없었다.(132쪽)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멀리 타향에 나가 있는 형과 매형이 불려오고, 하루하루 병세가 위중한 가운데 어느날 선생님으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는다. '양복 입은 사람만 봐도 개가 짖는 곳에서는 전보 한 통조차 대사건이었다." 전보에는 잠깐 만났으면 하는데 올 수 없겠느냐고 간단히 쓰여 있었다. 주인공인 '나'는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부탁에 응할 수 없다는 상세한 설명을 담은 긴 편지를 보내지만 그 후로 별다른 답장을 받지 못한다.

 

아버지의 병환이 마지막 일격을 앞둔 시점에 뜻밖에도 선생님으로부터 매우 두툼한 편지가 등기로 배달된다. 그 편지에는 뜻밖에도 자신의 자살을 암시하는 문장이 들어있다. 주인공은 만사를 제쳐두고 황급히 도쿄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품안에서 다시 꺼내 찬찬히 읽기 시작한 편지는 결국 '선생님의 유서'였다. 거기엔 자신의 지나온 과거가 소상히 담겨 있었다.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으며 왜 지금에서야 죽기로 결심했는지 하나도 숨김없이 담겨 있었다.

 

나는 수천만 명이나 되는 일본인 중에 오직 자네에게만 내 과거를 이야기하고 싶네. 자네는 진실하니까, 자네는 진실하게 인생 자체에서 살아 있는 교훈을 얻고 싶다고 했으니까.

 

나는 어두운 인간 세상의 모습을 기탄없이 자네에게 보여주겠네. 하지만 두려워해서는 안 되네. 어두운 것을 가만히 응시하고 그 안에서 자네에게 참고가 될 만한 것을 붙잡게. 내가 어둡다고 한 것은 물론 윤리적으로 어둡다는 것이야.(151쪽)

 

편지 내용은 길게 이어진다. 선생님은 스무살도 안 되어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다.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부모를 잃고 나서 한동안 숙부가 자신을 살뜰하게 보살펴 주는 줄 알았지만 나중에야 도리어 숙부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이후로 그는 인간 부류를 통째로 불신하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의 유산을 정리한 그는 고향을 영영 떠나 홀로 도쿄에서 대학을 다닌다. 적당한 하숙집을 물색하던 그는 청일전쟁때 전사한 남편 때문에 마땅한 수입이 없던 아주머니의 집으로 들어간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학교에 다니던 외동딸과 하녀와 함께 셋이서만 살고 있다.

 

다다미 여덟 장이 깔린 널찍한 하숙방으로 이사한 뒤로 조금도 불편한 점 없이 학교에 다니던 그는 이내 한 집안 식구처럼 그 집에서 지낸다. 주인 아주머니와 아가씨와도 곧잘 차를 함께 마시며 담소를 나눌 정도가 되면서 선생님은 차츰 하숙집 아가씨를 사랑하게 된다. 그런데 하필 그 무렵 그의 운명을 뒤흔들어 놓을 중대한 변화가 찾아온다. 같은 고향 출신이자 같은 대학에 다니던 K라는 친구가 부모와 갈등 끝에 의절하다시피 하면서 오갈데 없는 처지로 내몰리자 그 친구를 하숙집으로 데려온 것이다. 그게 바로 운명적인 사건의 발단이었다.

 

남몰래 아주머니의 딸을 사랑하기 시작했다가 어느새 아주머니로부터 자신의 딸을 '빨리 치워버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들었던 그로서는 K가 자신의 연애 경쟁 상대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K는 태생부터 스님의 아들이었던 데다가 보통의 승려보다 훨씬 승려다운 성격을 지녔고, 스스로도 장차 종교적인 방면이나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려는 고상한 인품을 지닌 친구였다.

 

K는 악인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그는 스스로 끊임없이 정진하는 인물이었고, 그의 머리속엔 온통 훌륭한 사람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었다. 과묵하면서도 사교에 서투른 그런 친구를 보다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 바로 그의 친구였고, 하숙집 아주머니와 아가씨였다. 그런 노력의 결과는 전혀 엉뚱한 데서 문제를 일으킨다. 선생님의 눈에 비친 K의 행동들은 차츰 의심스러운 것들로 가득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는 이제 영락없이 오셀로의 처지로 내몰린다. 질투심에 사로잡혀 결백한 아내 데스데모나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그 오셀로 말이다. 다음 대목만 읽으면 인간의 정념 중에서 가장 지독하다는 질투심이 이제 막 독기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눈앞에서 선하게 보이는 듯하다. 

 

어느 날 나는 간다에 볼일이 있어 귀가 시간이 평소보다 훨씬 늦어졌다네. 잰걸음으로 대문 앞까지 와서 격자문을 드르륵 열었지. 그와 동시에 나는 아가씨의 목소리를 들었네. 목소리는 분명히 K의 방에서 들리는 것 같았지. …… 나는 들어와 바로 격자문을 닫았네. 그러자 아가씨의 소리도 금방 그치더군. 나는 그때부터 하이칼라여서 벗는 데 시간이 걸리는 편상화를 신고 있었는데, 내가 허리를 굽히고 구두끈을 푸는 동안 K의 방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더군. 나는 이상하게 생각했지. 어쩌면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평소처럼 K의 방을 지나가려고 장지문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거기에 두 사람이 앉아 있더군. K는 여느 때처럼 이제 오나, 라고 말했지. 아가씨도 앉은 채 "오셨어요?" 하고 인사하더군.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그 간단한 인사가 내게는 좀 딱딱하게 들렸네. 내 고막엔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어조로 울렸지.(205쪽)

 

 

이때부터 급작스럽게 조성된 선생님과 K 사이의 팽팽한 긴장 상태는 늦여름에서 이듬해 봄에 이르기까지 숨막힐 정도로 길게 이어진다.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된다. 의심은 의심을 낳고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한 질투심은 꺼질 줄 모른다. 그렇다고 아무런 증거도 없는데 무턱대고 K를 추궁할 수도, 그와 담판을 벌일 수도 없다. 자신의 마음을 먼저 친구에게 털어놓거나 아주머니에게 고백하고도 싶지만 끝내 결행에 이르지는 못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어느 날엔가 K로부터 청천벽력과도 같은 충격적인 고백을 듣게 된다. 자신이 하숙집의 아가씨를 사랑하고 있는데 어떡하면 좋겠느냐는 얘기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숙집 안주인과 아가씨에게까지 직접 자신의 사랑을 고백할 정도로 상황이 진척된 게 아니라는 사실뿐이었다. 자신의 연인을 한순간에 빼앗길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 선생님은 온 신경을 곤두세워서 K를 경계하기 시작하고, 심지어는 그가 아가씨를 포기하도록 잔인한 말까지도 서슴치 않는다. "정신적으로 향상심이 없는 인간은 쓰레기다."라는 K의 평소 지론까지 곁들이며서.

 

교묘한 방법으로 K를 궁지로 몰던 선생님은 마침내 자신이 먼저 선수를 칠 계획에 골몰한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아주머니에게 딸을 달라고 요청한다. 아주머니도 시원스럽게 두 사람의 결혼을 승낙한다. 당사자의 의견은 확인할 필요도 없다면서. 그런데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며칠 지나지 않아 K는 자신의 방에서 자살하고 만다. 그가 친구에게 남긴 유서에는 아가씨에 대한 언급은 한 마디도 없었다. 단지 "의지와 실천력이 박약해서 도저히 살아갈 희망이 없다'는 고백만 있었을 뿐이고, 친구에게는 도리어 그동안 자신에게 베풀어준 후의에 감사를 표한다는 내용까지 덧붙였다.

 

사건은 원만하게 수습되지만, 자신의 비열한 행동 때문에 친구가 세상을 등졌다는 죄책감에 사로 잡힌 선생님은 그 누구에게도 친구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밝히지 못한다. K의 자살에 대해서라면 그 어떤 내막조차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던 하숙집 아가씨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채 선생님과 결혼한다. 결혼 이후 아내와 함께 할 때마다 언제나 그 두 사람 사이에 K의 죽음이 개입되어 있다는 느낌 때문에 선생님은 뿌리 깊은 죄의식에 시달린다.

 

결혼할 때 아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둘이서 K의 묘에 다녀오자는 말을 꺼내더군. 나는 까닭도 없이 그저 가슴이 철렁했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거냐고 물었지. 아내는 둘이서 묘를 찾아가면 K가 무척 기뻐할 거라고 하더군.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는데 왜 그런 얼굴을 하느냐는 아내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지.

 

아내가 바란 대로 둘이서 조시가야에 갔네. 나는 K의 새 묘석에 물을 끼얹어 깨끗하게 씻어주었지. 아내는 묘 앞에 향을 피우고 꽃을 꽂았지. 우리는 머리를 숙이고 합장을 했네. 아내는 필시 나와 결혼한 전말을 알리면 K가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겠지. 나는 속으로 그저 내가 잘못했다고 되풀이할 뿐이었네.(262쪽)

 

 

아름다운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는 건 그저 외관에 그칠 뿐이고, 친구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을 극복하지 못한 그는 매달 한 번씩 친구의 묘소를 찾을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는 한편 숙부로부터 당한 배신감 때문에 인간들을 경멸했던 자신이 바로 그런 경멸의 대상이 된 점을 깨닫고 부끄러워한다. 그런 불행한 삶을 하루하루 이어오던 그는 메이지 천황의 병사 소식과 노기 장군의 순사(殉死) 보도를 접하고 마침내 자신도 죽기로 결심한다. 그가 낙향해 있는 '나'에게 전보를 보낸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그런데 여름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메이지 천황이 서거했네. 그때 나는 메이지의 정신이 천황으로 시작되어 천황으로 끝났다는 생각이 들더군. 메이지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받은 우리가 그 후에 살아남는 건 결국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는 느낌이 강렬하게 내 가슴을 쳤네. 나는 분명히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지. 아내는 웃으며 상대해주지 않았지만 무슨 생각을 한 건지 갑자기 나에게 그럼 순사라도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놀리더군.(271쪽)

 

 

나쓰메의 소설에 깊이 매료된 일본 독자들은 아마도 이런 대목에서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깊은 공감과 감동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데 역사 의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 우리 독자들은 묘한 반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앞서 등장했던 '나'의 아버지도 병환 중에 들려온 천황의 붕어 소식에 충격을 받고 급작스레 죽음을 의식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 무렵에 배달된 선생님의 편지 속 내용에서 그런 모습이 거듭 반복되기 때문이다. 기억의 밑바닥에서 가라앉은 채 썩어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순사(殉死)라는 말이 선생님과 강하게 결부된 모습은 다음 대목에서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그러고 나서 한 달쯤 지났지. 천황의 장례식이 치러진 날 밤 나는 여느 때처럼 서재에 앉아 예포 소리를 들었네. 나에게는 그것이 메이지 시대가 영원히 사라졌음을 알리는 소리로 들렸지. 나중에 생각하니 노기 대장이 영원히 떠난 것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네. 나는 호외를 들고 무심코 아내에게 순사다, 순사다, 하고 말했지.

 

나는 신문에서 노기 대장이 죽기 전에 써서 남긴 글을 읽었네. 세이난 전쟁 때 적에게 깃발을 빼앗긴 이래 사죄하기 위해 죽자, 죽자, 하면서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의미의 구절을 보았을 때 나는 무심코 손가락을 꼽아 노기 씨가 죽을 각오로 살아온 세월을 헤아려 보았지. 세이난 전쟁은 1877년에 일어났으니 1912년까지 35년의 거리가 있네. 노기 씨는 그 35년간 죽자, 죽자, 하면서 죽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야. 나는 그런 사람에게 그때까지 살아온 35년이 고통스러울지, 아니면 칼로 배를 찌른 한순간이 더 고통스러울지를 생각했네.(272∼273쪽)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선생님은 죽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는 일이 '인간을 아는 일'에 헛수고는 아닐 거라며, 모든 것을 자네 가슴에 묻어두라는 부탁을 끝으로 편지를 맺는다.

 

이 작품은 독자에 따라 읽는 방법이 다양할 수 있지만, 대체로 '선생님'과 'K'라는 두 젊은이의 내면에 자리잡은 이기심과 윤리 의식 사이의 맹렬한 투쟁, 그리고 친구의 죽음으로 빚어진 뿌리깊은 죄의식이 압권인 소설이다. 혈기왕성한 젊은이들 사이에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삼각관계에서 자신의 사랑을 관철시키기 위해 온갖 책략들을 동원하는 일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또한 경쟁자가 있든 없든, 그 과정이 조용하거나 떠들썩하거나 관계없이, 구애 과정은 언제나 자연계를 지배하는 가장 강렬한 본능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그런 싸움에서 돌연 패배한 친구의 급작스런 자살이 행복을 구가해야 마땅할 나머지 두 사람마저 끝내 비극으로 몰아간다는 이야기는 너무 암울하다.

 

그런데, 소설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부분에 등장하는 천황의 죽음과 노기 대장의 순사 이야기는 너무 낡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봉건적 군신 관계를 상징하는 '순사' 풍습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아버지와 '선생님'의 자살 동기에 동시에 드리워져 있다. K의 죽음만 순수할 뿐 나머지 두 사람의 죽음엔 마치 충군애국의 이념이나 명예를 위한 자기희생의 색깔이 너무 짙게 채색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천황과 선생님과 아버지의 죽음을 동일선상에 놓고 본다는 생각이야말로 군사부 일체라는 케케묵은 충효사상의 재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미 지적했듯이,『마음』은 정진, 자활, 맹진, 금욕, 도의, 향상심 등으로 대표되는 K의 덕목들을 적잖이 강조한다. 그는 그토록 권장할 만한 훌륭한 성품들을 두루 지녔으면서도 끝내 실연의 고통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하지만 최후의 순간까지도 의연한 모습으로 스스로를 탓할 뿐이다. 선생님 또한 자신의 삶에 그 어떤 오점 하나라도 남길 수 없다는 결연한 자세로 자신의 비겁함과 죄과를 참회하는 구도자적 모습을 보이긴 마찬가지이다. 이런 점들을 주목해서 살펴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쓰메는 메이지 천황의 죽음 이후에 쓴 『마음』을 통해서 비로소 오래 전부터 자신이 그토록 열망했던 마음 속의 다짐 일부를 이룩한 게 아닐까 하고. '다음 세대 청년들의 삶과 피가 되어 존속할 수 있을지 부딪쳐 보겠노라'던 그 다짐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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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을 하나만 덧붙이고 싶다. 이 책의 말미에 붙은 어느 문학평론가의 해설 가운데 어느 한 문장이 도무지 마음에 걸려 내려올 줄 모르기 때문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에는 사실 마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275쪽)

 

이게 정말 사실일까? 이게 사실이라면 내가 읽은 소설 속에 담긴 그 무수한 '마음'이라는 단어는 도대체 무슨 말을 번역해 놓은 괴물이란 말인가. 이 소설 속엔 (잘만 찾아보면) 마음이라는 단어가 정말로 자주 등장한다! 또한 마음이라는 넓은 범주 안에 얼마든지 포함될 수 있는 마음과 비슷한 어휘들도 무수히 많이 등장한다. 답답한 마음에 일부러 찾아 봤다. 내가 불과 60쪽 이내에서 찾아본 마음 비슷한 어휘들만 나열해도 이렇게나 많다!

 

질투심, 비겁, 담판, 결심, 의심, 고백, 회한, 정진, 이기심, 양심, 정직, 각오, 고집, 인내, 용서, 의혹, 번민, 오뇌, 교활, 통절, 참회, 슬픔, 행복, 속죄…. (208∼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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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2-17 2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의 전체 내용을 다 읽지 않아 모르겠지만, K는 죽음을 통해 자신의 친구에게 최대의 복수를 한 것 같습니다... 그만큼 소중했을 수도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작은 모욕에도 칼을 뽑거나, 할복을 통해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는 근대 이전의 일본 정신 ‘무사도‘를 K의 모습 속에서 발견할 수도 있지 않나 추측해 봅니다...

oren 2019-02-17 23:43   좋아요 1 | URL
K의 죽음이나, 선생님의 죽음이나, 노기 장군의 순사나 모두 ‘일본 사무라이 정신‘이 깊숙히 드리워져 있는 건 부정하기 어렵죠. 그런데 나쓰메가 세심하게 묘사한 ‘K의 모습‘에서 자신의 죽음을 통해 친구에게 복수한다는 듯한 뉘앙스는 조금도 발견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K는 어쨌든 고결한 구도자의 역할을 떠맡고 있는 인물이니까요.^^

겨울호랑이 2019-02-18 00:02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 oren님 말씀을 들으니 참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좋은 작품이라 여겨집니다. 좋은 작품을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oren 2019-02-18 11:48   좋아요 1 | URL
별말씀을요.^^

『마음』은 ‘마음‘에 다가가는 일의 어려움을 형상화한 소설로도 읽힌답니다.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K와 선생님이 ‘장지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같은 하숙집, 같은 대학, 같은 고향 출신이면서도 끝내 서로의 속마음을 툭 터놓고 지내질 못하는 모습도 그렇고, 하숙집 아가씨 또한 결혼한 이후에도 남편의 속마음을 (그가 죽을 때까지도, 어쩌면 죽고 나서도 영영) 알지 못하는 측면도 그렇고요. 마음의 문을 열기 어려운 ‘인간의 고독‘을 그린 소설로 읽어도 재미있습니다.^^

cyrus 2019-02-18 1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평론가가 ‘마음’이라는 단어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닐까요? 일반적으로 독자들은 책의 제목을 보고 그 제목이 뭘 의미하는지 궁금해 하고, 나름대로 그에 대한 의미를 찾아냅니다. 나스메 소세키가 남긴 작품들의 제목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하게 만들죠. ^^

oren 2019-02-18 18:33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입니다. 『마음』이라는 소설은 제목이 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이지요. 그런데 평론가가 단정적으로 표현한 저 문장(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에는 사실 마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은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딱 알맞은 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떨치기 힘들더군요. 나쓰메 소세키가 정말로 ‘마음‘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도 <제목이 ‘마음‘일 수밖에 없는 걸작>을 쓴 게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그래서 저도 사족을 덧붙였던 거고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그 부분을 통째로 덧붙여 놓겠습니다.
* * *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에는 사실 마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은 <선생님과 나>, <부모님과 나>, <선생님의 유서>의 세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왜 소설의 제목이 『마음』이어야 하는지 저절로 이해하게 된다. 『마음』이 『마음』일 수밖에 없는 까닭, 그게 바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을 읽는 첫 번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그 많은 작품들 가운데 여태껏 내가 읽은 작품은 하나도 없다. 정말? 정말!

 

그런데 이렇게 내 독서 경험의 좁고 얕음을 빤히 드러내도 괜찮을까. 물론이다. 괜찮고 말고! 내 마음이 불편했다면 이런 글을 애시당초에 쓰지도 않았을 터. 그런데 이런 뻔뻔함이 다 나이 탓이라는 걸 소세키는 이렇게 표현한다.

 

"간단히 말하면 늙어빠졌다는 거네."

 

"선생님은 왜 예전처럼 책에 흥미를 가질 수 없는 거죠?"

 

"딱히 이유는 없지만……. 말하자면 아무리 책을 읽어도 그만큼 훌륭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 탓이겠지. 그리고……."

 

"그리고 또 있습니까?"

 

"또 있다고 할 만한 이유는 아니지만, 예전에는 사람들 앞에 나선다거나 사람들의 질문을 받고 모르면 수치인 것 같아서 거북했는데 요즘에는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러다 보니 무리해서라도 책을 읽어보려는 마음이 안 생기는 거겠지. 간단히 말하면 늙어빠졌다는 거네."(75∼76쪽)

 

 

나쓰메 소세키의 특징들은 『마음』 하나만 읽어도 금세 알 것만 같은 착각도 든다. 그의 글이 독자들의 마음에 아주 쉽게 와닿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고 형체도 없는 사람의 마음을 참 잘도 건드리고 다독이고 어루만진다. 그가 왜 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지 알 것도 같다. 비록 그가 셰익스피어처럼 기가 막힌 대사들을 시적으로 화려하게 펼쳐놓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의 작품의 또다른 특징 하나는 책 뒷면에 커다랗게 박힌 글씨 대로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이야기"로 들린다는 점이다. 그런 느낌을 나는 『마음』을 읽는 동안에 너무 자주 맛보고 있다. 가령, 다음의 대목 하나만 읽어도 그렇다.(그 대목을 잠시 뒤에 인용하는 점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소세키의 문장을 인용하기 전에 이쯤에서 뭔가 끼워넣어야 할 것만 같은 우리들의 현재 사정들에 관한 얘기가 있어서 그렇다.)

 

요즘처럼 취업난이 심각한 때가 도대체 언제였던가. 젊은이들의 취업난은 너무나 심각해서 차마 글로 옮기기가 두려울 정도다. 주변에서 매일같이 들리는 이야기가 '청년들이 취업이 안 된다.'는 얘기 뿐이다. 뉴스에 보도되는 취준생들과 공시생들의 규모만 봐도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다. 옛날엔 이런 적이 없었다.

 

중장년층들의 어려움도 사정이 좀 다르긴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만 보면 별반 차이가 없다. 50대에 평생 직장인 줄로만 알고 다니던 회사에서 짤리는 순간, 특별한 능력과 스펙을 갖춘 사람이 아니라면 다른 일자리를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공인중개사니 공동주택관리사니 온갖 자격증을 따놓은 사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파트 관리소장 한 사람 뽑는데 4,50 명씩 지원한다니, 도대체 무슨 수로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내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겠는가. 자식들은 거의 다 컸지만 그네들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니, 다니던 직장에서 밀려난 늙은 애비라도 일자리를 얻어 딸린 식구들을 부양해야 할 처지인데, 그것조차 도통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아무리 사정이 나빠도 옛날엔 이 정도로 나쁘진 않았던 듯하다.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조혼 풍습도 한몫 했던 터여서 50대에 설사 은퇴를 하더라도 30대의 자녀들이 당연하다는 듯이 부모를 부양했었다. 물론 반드시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가. 50대가 아니라 70대, 80대가 되어도 자식들에게 부양의 의무를 지우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노후는 노인들이 알아서 해결하는게 보편적 상식이 되었다.

 

많이 꾸물거렸다. 다시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로 돌아오자. 작가의 말대로, 『마음』은 1914년 4월부터 8월까지 도쿄와 오사카의 《아사히 신문》에 동시에 연재한 소설이다. 지금으로보터 무려 105년 전에 일간지에 연재된 소설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어떻게 된 게 요즘은'으로 시작되는 옛 어른들의 푸념섞인 말투가 요즘 사람들이 들어도 어쩌면 그토록 생생하게 들어맞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정말? 정말!

 

9월 초가 되어 나는 드디어 도쿄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당분간 지금까지처럼 학자금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여기서 이렇게 있어봐야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나는 아버지가 바라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도쿄로 가겠다고 말했다.

 

"물론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만요." 하고도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일자리가 아무래도 내 머리 위에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 물정에 어두운 아버지는 어디까지나 그 반대로 믿고 있었다.

 

"그야 얼마 안 되는 기간일 테니까 어떻게든 마련해보마. 그 대신 길어지면 안 된다. 적당한 일자리를 얻는 대로 독립해야지. 원래 학교를 졸업한 이상 다음 날부터는 남의 신세 같은 걸 지면 안 되는 거니까. 요즘 젊은 사람은 돈을 쓰는 것만 알지 버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더구나."

 

아버지는 그 밖에도 이런저런 잔소리를 했다. "옛날에는 자식이 부모를 부양했는데 어떻게 된 게 요즘은 부모가 자식을 먹여 살린다니까" 하는 말도 했다.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121∼122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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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2-15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재밌게 읽었어요. 유머가 있고 짠하게 만드는 게 있고 통쾌한 부분도 있고
교훈도 있어요. 무엇보다도 도련님의 따뜻한 마음이 감동으로 전해 와서 좋았어요.

oren 2019-02-15 21:44   좋아요 0 | URL
『나는 고양이로소이다』(1905)와 『도련님』(1906)이 워낙 유명한 덕분에 그 작품부터 읽은 분들이 많을 듯해요. 그런데 어떤 평론가는 ‘전작은 재기가 너무 과다하게 발휘되고 있고, 후작은 감상이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평을 남겼더라구요. 자신으로서는 『마음』이 가장 마음에 와 닿는다나요. 그래서, 저도 『마음』부터 읽어보기로 마음먹고 그 책부터 읽어보고 있어요.^^

겨울호랑이 2019-02-17 2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많이 접하질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사실, 다른 작가들 작품도 마찬가지긴 합니다만.ㅜㅜ) 작가의 글이 시원하다는 느낌을 oren님께서 소개해주신 글을 통해 느껴 봅니다.^^:)

oren 2019-02-17 23:32   좋아요 1 | URL
저도 나쓰메의 작품들을 읽어본 게 없어서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탁월한 문장가임엔 틀림없는 듯합니다.^^
 

 

놀라워라!

잘생긴 인물들이 여기에 참 많기도 하구나!

인간은 참 아름다워! 오 멋진 신세계여,

이러한 종족이 살다니.

 - 셰익스피어, 『템페스트』, <5막 1장> 중에서

 

올더스 헉슬리(1894∼1963)

 

 * * *

 

올더스 헉슬리는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두루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탁월한 지성의 소유자였다. 그가 지닌 독특한 지성의 면모를 생각하면 『멋진 신세계』와 같은 작품이 결코 우연히 탄생한 게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그는 문학과 철학은 물론 과학과 심리학을 비롯한 온갖 학문 분야에 두루 박학다식한 인물이었고,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를 언제나 근본적으로 사색하고 규명하려고 평생 동안 애쓴 인물이었다.

 

그의 지성적 면모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집안의 가계도를 잠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는 영국의 저명한 과학자 집안과 문학가 집안의 피를 고루 물려받았다. 더구나 그의 할아버지는 다윈 이후 가장 유명한 생물학자였던 토머스 헨리 헉슬리였다. 그의 아버지는 교육자였고, 어머니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시학 교수이자 『교양과 무질서』로 유명한 매슈 아놀드의 조카딸이었고, 그녀 스스로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여류시인이었다. 올더스의 형인 줄리안 헉슬리는 저명한 생물학자이면서 초대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지냈고, 이복동생인 앤드류 헉슬리는 노벨 의학상을 수상한 유명한 생리학자였다.

 

할아버지인 토머스 헉슬리에 대해서는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찰스 다윈이 쓴 『종의 기원』의 서문에도 등장할 정도로 탁월한 생물학자였다. 그는 단테를 원어로 읽기 위해 이태리어를 배울 정도로 학구열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그는 다윈의 『종의 기원』 발표 이후 종교계의 극단적인 반발과 반론을 최선두에서 가장 논리적이고도 효율적으로 반격한 중심 인물이었다. 인간의 조상이 동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담은 그의 대표작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는 훗날 헉슬리 가문을 관통하는 중요 연구 관심사가 되었으며, 올더스 헉슬리의 세계관에도 영향을 끼쳤다. 왕립학회 회장을 지낸 그는 존 러스킨, 틴덜, 매슈 아놀드, 토머스 칼라일 등과도 두루 교류했다.(찰스 다윈, 토머스 헉슬리, 틴덜은 버지니아 울프가 쓴 『댈러웨이 부인』에도 함께 등장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아버지는 토머스 헉슬리와 친구 사이였다.)

 

올더스 헉슬리의 아버지 레오나드 헉술리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재학중에 부인 줄리아 아놀드와 만났다. 그녀는 옥스퍼드 영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훗날 시집을 출간하여 삼촌인 매슈 아놀드로부터 찬사들 받기도 했다. 레오나드는 시골에서 학교 교감으로 지냈지만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공방에는 늘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들 부부의 3남 1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난 올더스 헉슬리는 14세에 어머니를 잃고 큰 충격에 빠진다. 시력이 나빠져 또다른 충격을 받은 그는 각막염 수술을 받았고, 나중에 옥스퍼드 의대에 진학했다가 결국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연극·예술 비평가로 사회 생활을 시작한 그는 작품 활동 내내 언제나 사물의 궁극적인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 집요한 노력을 기울인 끝에 온갖 난해한 주제에 대한 엄청난 백과사전적 지식을 습득하게 되었다.

 

과학 문명의 발달이 초래할 암울한 미래상을 그린 작품은 『멋진 신세계』 말고도 『원숭이와 본질』 같은 작품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진심으로 동경해 마지않는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회를 그린 작품도 아예 없지는 않았다. 『섬』이라는 작품이 대표적이다. 그 작품을 두고 그가 스스로 논평한 글은 다음과 같다.

 

“위대한 역사, 폴리네시아 인류학, 산스크리트어와 중국어로 된 서적, 그리고 불교 경전, 약리학, 신경생리학, 심리학, 교육에 관한 논문들, 더불어 소설, 시, 비평, 기행문, 정치 논평, 철학자에서부터 배우, 정신병원의 환자로부터 롤스로이스를 타고 다니는 재벌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람들과의 대화, 이 모든 것이 나의 유토피아적 방앗간의 깔때기 속으로 곡물이 되어 들어가 이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 하나에 대한 그의 관심 분야가 이 정도로 폭이 넓었으니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관심 분야가 얼마나 다양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다.

 

온갖 분야에 두루 해박한 지식을 지녔던 천재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그려낸 『멋진 신세계』는 과연 어떤 세계였고, 그런 세계가 미래에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또 얼마나 될까.

 

포드 기원 632년으로 설정된 '멋진 신세계'의 시대 배경은 대략 2540년쯤이다. 과학 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세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첨단 생명공학의 발달이다. 인간들은 더이상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모든 인간들은 시험관에서 수정되고 조건에 맞게 배양되어 조건반사 양육을 받으며 자라난다. 소설에 맨 처음에 등장하는 회색 빌딩의 중앙 현관 위에는 '런던 중앙 인공부화 · 조건반사 양육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방패 모양의 현판에는 '공유 · 균등 · 안정'이라는 세계 국가의 표어가 달려 있다. 이 두 가지가 '신세계'를 상징한다.

 

인간들이 인공부화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는 사실로부터 인간의 삶은 근본적으로 변화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필요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번거로운 자녀양육 의무가 뒤따르는 결혼제도도 사라진다. '만인은 만인을 위한 공유'가 세계 국가의 이념이다. 격정을 유발하기 마련인 '연인 관계'라는 것도 없다. 자유 연애가 보편적인 사랑의 형태이고, 섹스 파트너를 오래 독점하는 연인 관계는 사회적 지탄을 받거나 금기로 여겨진다. 첨단 의학의 발달 덕분에 인간의 신체는 육십이 되도록 젊음을 유지하지만 그 이후에는 '시체 처리소'로 직행한다. 죽음은 더 이상 회피하거나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점은 양육 과정에서 세심하고 철저하게 주입식으로 교육된다. 더군다나 부모, 자녀, 친인척이 따로 없는데 그토록 죽음을 슬퍼하고 연연할 이유 자체도 이미 사라지고 없다. 미래 세계는 강력한 중앙 통제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무엇보다 공유와 균등과 안정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미래 세계의 또다른 특징은 철저한 계급 사회라는 점이다. 전세계 인구는 20억 명으로 제한되며, 피라미드 식으로 이뤄진 각각의 계급에 필요한 인원은 철저한 사전 계획에 따라 생산되고, 조건반사 양육소에서 '각각의 계급에 가장 알맞은 정도로' 양육 받는다. 이러한 과정은 물론 오랜 시행착오 끝에 검증되고 정착된 시스템이다.

 

겨우 34층밖에 되지 않는 나지막한 회색 빌딩에서 시작된 미래 세계는 '런던 중앙 인공부화 · 조건반사 양육소' 소장의 안내를 받는 견습생들 덕분에 '첨단 생산 시설'을 두루 살펴보는 행운이 뒤따르지만, 센터 내부의 분위기는 실험실용 플라스트와 니켈과 스산하게 빛나는 도자기류뿐이다.

 

모든 것이 살벌함을 겨루고 있었다. 거기서 근무하는 자들은 흰 작업복을 입었고 손에는 시체같이 창백한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조명은 차갑게 죽어 있었다. 유령 바로 그것이었다.(7쪽)

 

도무지 등장 인물들 사이의 대화 조차도 없을 듯한 숨막히는 세계에서도 사건들은 일어나고 갈등이 생겨난다. 알파 계급에 속해 있으면서 최면교육 전문가로 근무하는 버나드 마르크스와 감정공학 대학의 감성교육 엔지니어인 헬름홀츠 왓슨은 신세계의 통치체계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약간의 반감과 혐오를 품은 인물들이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일종의 과잉상태에 있으며 스스로의 개성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몰개성적인 통치 체계에 종종 비판적인 견해를 표출한다. 그들은 서로가 공감대를 가진 부분이 있다는 걸 발견하고 차츰 그런 감정들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버나드는 성격마저 우울하고 소심한 데다 사교성이 부족한 탓에 또래의 여자들과 제대로 사귈 기회도 갖지 못한다. 사교적이면서 발랄한 처녀인 레니나는 수줍음이 많은 버나드에게 거꾸로 대쉬하지만 그녀를 쉽게 수용하지 못하고 겉으로만 맴돈다. 이들 커플은 좀 더 친밀해지기 위해 휴가 기간 동안 뉴멕시코의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함께 놀러갈 계획을 세운다. 야만인들은 고도로 문명화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는 철저히 분리된 지역에 사는 원주민들이며, 오랜 옛날의 생활 습관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격리된 채 살고 있다. 안내자들을 따라 조심조심 야만인들의 풍습을 둘러본 두 사람은 자신들의 방식과는 너무나 다른 생활 습관을 지닌 '야만인들의 풍속'에 기겁을 한다. 그곳은 몹시 불결할 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흉측한 늙은이들도 많았고,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 기우제를 올리는 기이한 원시 풍속 등 어느 하나 낯설지 않은 게 없었다. 비록 레니나에게는 극도로 혐오스러운 모습일지 몰라도 예민한 감성을 지녔던 버나드는 도리어 그런 삶의 모습에 깊은 흥미를 품는다.

 

그들은 거기에서 오래 전에는 문명세계에 속해 있다가 언젠가 우연한 사고 때문에 거기서 정착해 살고 있는 린다라는 늙은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25년 전에 인공 부화 센터 소장이던 남자 친구와 함께 '야만인 보호구역'으로 놀러 왔다가 그만 길을 잃는 바람에 끝내 실종 처리된 여성이었다. 베타 계급에 속했던 그녀는 거기서 존이라는 아들을 낳아 키웠지만 원주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온갖 간난고초를 겪으며 어렵게 생활해 왔던 터였다. 

 

그녀는 그곳 생활이 힘겨울 때마다 아들에게 문명 세계에서 지냈던 행복한 지난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곳으로 되돌아갈 날을 꿈꾸며 아들에게 글과 노래까지 가르쳐 준다. 그때 존이 심취해서 읽은 책이 셰익스피어 전집이었다. 존은 비록 책 속의 모든 내용을 전부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온갖 다채롭고 풍성한 감성들이 넘쳐나는 인간미 넘치는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 버나드와 레니나는 린다와 존을 설득시켜 그들을 마침내 문명 세계로 이끌고 나온다. 무료한 대중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연구 대상이 될 것임을 확신하면서.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어머니와 함께 핍박받고 따돌림을 당하며 살아오던 존에게는 '런던으로 가겠느냐'는 버나드의 제안이 더없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문명세계로의 이주 제안에 대해 존이 감격에 벅차 내뱉은 대답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서 미란다가 외쳤던 말이었다. 멋진 신세계!

 

"오오, 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존이 말했다. 그의 눈에서는 광채가 났고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얼마나 많은 훌륭한 피조물이 여기에 있는가! 인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피조물인가!" 그의 홍조는 갑자기 더욱 깊어졌다. 그는 레니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진한 초록색 인조견 옷을 입고 피부는 젊음과 영양크림으로 윤기 있고, 포동포동하고 자애롭게 미소짓는 천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음성이 더듬거리고 있었다. 

 

"오오, 멋진 신세계여!" (177쪽)

 

버나드와 레니나 덕분에 '야만인 보호 구역'에서 문명 세계로 끌어올려진 존과 린다는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도리어 더욱 난처한 상황에 처하고 만다. 린다는 늙고 뚱뚱한 데다가 모습마저 추하게 일그러져 문명세계에서는 한낱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전락한다. '야만인 씨'로 불리는 존도 마찬가지다. 체제 부적응자로 분류된 버나드는 언제라도 험지 아이슬란드로 전출당할 위기를 의식하고 있었고, 그런 좌천 발령을 모면하기 위해서라도 존을 활용한 실적 쌓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영문도 모르고 이리저리 불려다니는 존은 문명 세계로 올 때부터 미모에 이끌렸던 레니나에게 차츰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자신도 모르게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를 자주 중얼거리면서.)

 

촉감 영화관에서 존과 함께 데이트를 즐긴 이후로 레니나는 존이 자신을 연모하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알아챈다. 자유 연애에 익숙한 레니나는 오래 고민할 겨를도 없이 적당한 기회를 틈타 야만인의 방으로 먼저 찾아간다. 그러나 정작 충분한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태였던 존은 제발로 찾아온 그녀를 극도로 혐오하고 도리어 밀쳐낸다. 연애 단계에서 반드시 거쳐야만 마땅할 듯한 섬세한 밀당 단계가 생략된 걸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런 희극적인 모습이야말로 가치관이 전도된 문명 세계와 야만인 사이에 펼쳐지는 '아이러니의 극치'다.

 

"기절할 때까지 키스해줘요. 오! 내 사랑, 안아주세요. 아늑하게 ……."

 

야만인은 그녀의 팔목을 잡더니 어깨를 잡았던 그녀의 손을 풀고 팔을 뻗어 그녀를 거칠게 밀었다.

 

"오! 아파요! 당신은 나를…… 오!" 그녀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공포로 인하여 고통도 잊은 상태였다. 눈을 떴을 때 그의 얼굴이 보였다 ㅡ 아니, 이것은 그의 얼굴이 아니었다. 전혀 낯선 인간의 창백하게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미친 듯한 분노로 경련하는 얼굴이었다.(245∼246쪽)

 

존은 문명 세계의 사람들이 불편한 감정을 잊고 행복감에 빠져들도록 도와주는 '소마'를 배급하기 위해 모여든 인조 인간들을 향해 분노를 가득 담아 외친다. 소마는 행복을 주는 약이 아니라 독약이라고. 그렇게 소동을 부린 끝에 존은 버나드와 헬름홀츠와 함께 서유럽 통치자인 무스타파 몬드에게 불려간다. 총통의 서재로 안내된 야만인 존은 도리어 총통을 향해 '인간다운 삶'을 역설하고, 몬드는 한편으로는 야만인의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감정의 기복조차 느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정된 문명세계가 더 행복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행복을 위해서는 예술, 과학, 종교까지도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신의 존재까지도. 그들 사이의 격론은 야만인 존이 마침내 다음과 같이 외칠 때까지 계속된다.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그렇지 않아." 총통이 말했다.

 

"우리는 여건을 안락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네."

 

"하지만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

 

"그러니까 자네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고 있군 그래."

 

"그렇게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야만인은 반항적으로 말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305쪽)

 

야만인은 마침내 그곳을 견디지 못하고 멀리 외딴 데로 도망친다. 그러나 그곳도 끝내 안전한 곳은 되지 못했다. 언론의 집요한 추격을 피하지 못한 그는 열광적인 취재 열기에 시달리다 끝내 자살하고 만다. 그가 은신처로 피난하기로 결심하면서 버나드에게 했던 말은 이랬다.

 

"나는 문명을 먹었어."

"문명이 나에게 독을 먹였어. 그래서 나는 오염되고 말았어."

 

『멋진 신세계』는 1949년에 쓰인 조지 오웰의 『1984』보다는 조금 덜 우울하다. 오웰의 작품에서 나타난 1984년의 세계는 실제 세계보다 훨씬 더 암울하게 그려져 있다.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고도의 전체주의 지배 체제 하에서는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스크린을 통해 철저하게 감시받고 통제되며, 체제에 순응하지 못하는 반체제 인사들은 사상 경찰들을 통해 색출되고, 혹독한 고문을 거쳐 개조되거나 끝내 흔적도 없이 제거된다. 거기엔 어떠한 자유나 방임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올더스 헉슬리가 그린 미래 세계는 비록 전체주의 지배 체제인 점에선 닮아 있으나, 과학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끝에 도래하는 '인간 본연의 삶이 파괴된 황량한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기술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욱 강조되기 마련인 공유와 안정 같은 가치들이 도리어 궁극적으로는 인간다운 삶 자체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기울고 만다는 헉슬리의 경고는 미래로 나아갈수록 점점 더 강한 설득력을 얻을 주제임에 틀림없다. 또한 헉슬리가 내다본 까마득한 미래 세계는 우리의 생각보다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시험관 아기는 어느새 보편적인 자녀 획득 방식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유전공학을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은 질병과 노화에 대한 극복 능력을 갈수록 확대하고 있으며, 인간 생활의 편리함과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생명공학이라도 기꺼이 감수할 정도로 첨단 과학 기술에 대한 숭배가 과도한 측면도 간과하기 어렵다.

 

올더스 헉슬리가 쓴 『멋진 신세계』가 출판된지 겨우 87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세상은 온갖 혁신적인 기술들로 넘쳐나는 판국이다. 멋진 신세계에서 주인공들이 즐겼던 '촉감 영화관'은 현실 세계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과 같은 실감형 기술들도 앞을 다투듯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나 자율주행과 인공지능에 기반을 두고 움직이는 미래 기계 문명은 사소한 사고 하나로도 끔찍한 대혼란을 일으킬 위험을 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인은 만인을 위해 공유한다'는 공유 이념 또한 마냥 좋을 리만은 없다.

 

『멋진 신세계』는 탄탄한 서사가 뒷받침된 멋진 소설이라기보다는 예언적 우화에 가까운 소설이다. 또한 작품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작품 속엔 작가 특유의 유쾌한 아이러니가 곳곳에 가득하다. '멋진 신세계'를 꿈꾸며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벗어나 고도 문명 사회로 뛰어든 존이 도리어 그 세계를 지배하는 총통에게 대들듯이 싸우며 '과학과 철학과 종교의 가치를 역설'하는 장면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홀로 독학하다시피 셰익스피어를 탐독한 그는 인간 삶의 궁극적인 본질들을 절묘하게 꿰뚫는 듯한 명대사들을 아무 때라도 주저없이 쏟아낸다. 그때마다 문명인들은 야만인 청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 한다. 야만인 존은 비록 문명세계로부터 격리된 곳에서 외계인 취급을 받을 정도로 고통을 겪으며 자랐지만 셰익스피어로 상징되는 문학의 힘을 통해 인간 삶의 본질을 터득한다. 인간의 행복이란 결코 그저 얻어지는 알약 같은 것이 아니며, 행복과 고뇌와는 표리관계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끝내 문명 세계의 공기를 견디지 못한 야만인이 목을 매고 자살하는 결말이 너무 비참하게 여겨졌던 탓일까. 올더스 헉슬리는 이 작품을 출간한지 14년이 흐른 뒤 이 소설의 재판본 서문에 작가의 입장을 새롭게 추가했다. 『멋진 신세계』를 처음 쓸 때만 하더라도 야만인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 밖에 없었다고. 문명국에서 미치거나 야만국으로 컴백하거나. 그러나 다시 그 작품을 쓴다면 제3사회의 존재를 설정하겠노라고. 문명국으로부터의 망명자나 도망자들이 건설하는 세계를. 그런 작업으로도 부족했던 것일까. 작가는 1958년에 기어이 새로운 작품을 하나 더 썼다. 그 작품의 이름은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였다. 인간의 주요 관심사들에 대하여 그처럼 빠짐없이 의견을 표명한 인물도 찾기 어렵다. 미래의 고도 문명 사회가 어떠한 모습일지 궁금한 독자들은 한번쯤 올더스 헉슬리가 창조한 '멋진 신세계'를 다녀올 필요가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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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2-15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984』는 읽었는데『멋진 신세계』는 읽지 못했어요.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합니다.˝(305쪽) - 그야말로 뒤집힌 생각이네요. 우리 고정관념의 반전을 보여 주네요.


oren 2019-02-15 14:35   좋아요 1 | URL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1984』는 이미 지나간 과거를 ‘다가올 미래‘로 그린 소설이 되어버렸지만,
『멋진 신세계』는 여전히 다가올 미래를 그린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 오래 살아남지 싶어요.^^
그렇다고 조지 오웰의 작품이 올더스 헉슬리보다 덜 뛰어나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두 작품 모두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세계의 모순‘을 적나라하면서도 심오하게 파헤친 작품이나까요.

외유내강 2019-07-02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930년대에 미래를 예언한 소설이기만 하지만 과학과 기술 등의 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측면에서는 예측이 딱 들어맞는거 같아요. 인간의 행복이 단순히 알약하나로 얻어지는 미래세계가 읽는사람 입장에서는 지구 밖에서 객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무섭게 느껴지지만 정작 내가 그 속에 살고 있는 알파나 베타 같은 사람이였다면 그게 무서운지도 모르고 훈련받은대로 만족하며 살았을꺼 같아요...모든 사람들이 회의를 품지 않는 안정된 틀 속에서 의심을 품거나 의식을 가지고 체제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을듯 하거든요..어쩌면 우리 모두 점점 멋진 신세계로 우리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진입하고 있는지도 모를거란 생각이 듭니다.

oren 2019-07-02 18:10   좋아요 0 | URL
쓰여진지 100년 가까이 지난 소설인데도 오늘날의 여러 ‘실제 상황들‘을 날카롭게 예견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놀라운 소설임에는 분명한 듯합니다.^^
 

 

나는 25세와 35세 때의 내 초상화를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지금의 것과 비교해 본다.
이미 몇 갑절이나 내가 아니게 되었던가!
 - 몽테뉴

 

 * * *

 

우리가 지나온 세월을 잊어버리기는 얼마나 쉬운가.

 

몽테뉴는 『수상록』을 쓰면서 유난스러울 정도로 나이에 대한 흥미로운 단상들을 자주 내보였다. 그가 재치있는 말로 풀어 놓은 각각의 나이에 대한 느낌들은 음미할 때마다 새롭다. 그는 카메라와 같은 기막힌 물건은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웠던 시대를 살았다. 그러니 자신을 그려 놓은 옛 초상화를 보면서 자신의 변화를 깨닳을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사람들이 젊을 때의 한 순간을 붙들어 매는 작업이란 얼마나 번거로운 일이었을까. 초상화를 그려줄 화가부터 찾아야 했고, 예약 날짜를 잡아야 했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꼼짝도 못하고 자리를 지켜야 했을 터이니 말이다.

 

그에 비하면 오늘날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이제는 자신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식은 죽 먹기보다도 더 쉬울 지경이다. 더군다나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순식간에 여러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전파할 수도 있다. 수단은 도처에 널려 있다. 단체 카톡방,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페, 블로그, 인터넷 서재 등등 도처에 SNS는 넘쳐 나니까.

 

그러나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사정은 지금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카메라는 대표적인 귀중품이었고, 사진을 찍는 데는 적잖은 돈이 들었다. 필름값 따로, 현상비 따로, 인화비 따로, 때로는 사진을 조금 더 크게 확대하는 데에도 별도의 비용이 들었다. 그러니 사진을 남기는 일은 아주 특별한 때에나 생각할 일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추억 속으로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초상화나 사진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다. 특정한 장소, 특정한 음악, 특정한 음식, 특정한 사물만 있어도 우리는 단숨에 과거로 뛰어들 수 있다. 그런 사물들 가운데 책이 빠질 수는 없다. 맞아, 맞아, 바로 그 무렵에 내가 그 책을 읽었었지, 하는 느낌이야말로 그 순간으로 되돌릴 수 있는 강력한 사다리가 아니고 무엇이랴. 더군다나 그 책을 읽은 기록까지 더불어 발견한다면!

 

그런 기록들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물건 하나가 바로 일기장이다. 옛날엔 노트조차 귀한 물건이어서 일기장 따로, 독서 노트 따로, 하는 식으로 여유를 부릴 계제도 아니었다. 아무튼 일기장에 담긴 독서 기록이야말로 특정한 사람들에겐 아날로그로 남겨진 최고의 기록 문화 유산이 아닐 수 없었다.

 

어제는 겨울호랑이 님의 글을 읽다가 홀연 '채근담의 추억' 속으로 빠져들었다. 채근담을 내가 언제쯤 읽었더라,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게 너무 까마득한 과거였기 때문이다. 아마 30년은 족히 지났음에 틀림없었다. 찬찬히 따져보니 아직 40년은 지나지 않았다.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채근담을 읽은 건 대학교 2학년 진학을 코앞에 둔 무렵이었다. 책 내용이 그 당시 내 마음에 얼마만큼 쏙 들어 왔던지, 한자 공부를 겸한다는 마음으로 하루에 얼마씩이라도 꼬박꼬박 일기장에 옮겨 보자는 생각까지 했더랬다. 그런 마음이 아직까지도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아... 그런데 저 책 속에 담긴 내용은 어느새 내 기억 속에 가물가물하기만 하다.

굳은 결심마저 느껴지는 한자 또한 까마득히 낯선 글자로만 느껴진다.

어느새 내가 이토록 그때의 나 자신과 멀어졌단 말인가.

 

 

 

 

두 번째 문장을 보니 더욱 기가 막힌다.

점염, 기계, 연달, 박로, 곡근, 소광 등등이 모두 딴 세상의 낱말 같다.

도대체 언제 내가 저런 한자를 쓴 일이 있기나 했던가 싶다.

 

 

 

 

아하, 옥온주장(玉韞珠藏)이라는 말도 있었구나!

 

 

 

 

이 대목은 이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얼마나 다행인지!

 

 

 

 

만일 말마다 귀에 기쁘고, 일마다 귀에 쾌하면,

이는 곧 인생을 들어 짐독(鸩毒) 속에 묻음이니라.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짐독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낯설고 멀고도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짐새는 도대체 어떻게 생긴 새이길래 깃에 있는 독이 그토록 맹렬하단 말인가.

 

 

 

 

이날 하루는 진도가 꽤 나간 듯하다. 이런 날도 있어야지.

 

 

 

 

이날도 성과가 그리 나쁘진 않다. 아무튼 하루라도 건너뛰는 일은 없어야 옳다.

 

 

 

 

불궤라는 말도 다 있구나.

불궤(不匱) : 다함이 없음, 오래 지속됨.

 

 

 

 

여전히 어려운 말들로 가득하구나.

 

 

 

 

그래도 꾸준히 여기까지 이어져 온 모습만은 좋아 보인다. 어쨌든 작심삼일과는 거리가 머니까.

 

 

 

 

이날 적은 기록은 아무래도 '채근담'과는 별 상관이 없는 듯하다.

고교 수업 시간에 배웠던 한시 중에 암송하고 있는 시들을 한자로 그냥 한 번 써 본 듯하다.

 

 

 

 

이 무렵에 읽었던 소설 중엔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형제들』도 있었다.(사진은 채근담을 기록한 일기장의 맨 뒷쪽 부분이다.) 목차 속에 천연덕스럽게 보이는 한자들이 지금은 영 낯설기만 하다.

 

아, 참. 채근담의 추억을 떠올려 준 겨울호랑이 님의 글 속엔 마침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도 끼어 있었다. 나는 그 책을 군복무 시절에 읽었었다. 대략 84년쯤이었던 듯하다. 그런데 지금은 그 책의 내용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때의 독서 기록은 아마도 PX에서 구입한 노트에 적었지 싶은데(유난히 볼펜똥이 많이 나오던 볼펜도! 그래서 글씨가 번져 보인다. 그에 비하면 일기장은 얼마나 품질이 좋은지!), 1,2년 사이에 글씨체가 참 많이도 바뀌었다는 걸 느낀다.

 

 

 

그런데 이제는 손글씨를 쓸 일조차 거의 없다. 이제는 글을 손가락으로 두드려 쓴다!

 

 

"오오, 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오오, 멋진 신세계여!"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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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9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젊으실땐 필사광이셨군요 그리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굿뜨~☕️

oren 2019-02-09 20:46   좋아요 1 | URL
암튼 원문이 한자로 된 책을 베껴보기는 『채근담』이 처음이지 싶어요. ㅎㅎ

syo 2019-02-09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 같은 자는 태어나기도 전에 oren님은 이미 벌써 오늘날의 저를 꿀떡 씹어드실 만큼의 소양을 갖추신 상태셨군요.....

oren 2019-02-09 22:36   좋아요 0 | URL
오, 오, 오십이 넘은 자를 두려워 마오~~
모름지기 옛말에 후생이 가외라 하였으니, 그저 후생이 두려울 뿐입니다...
* * *
“자왈 후생가외 언지래자지불여금야 사십오십이무문언 사역부족외야이(子曰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공자가 말했다. 뒤에 태어난 사람이 가히 두렵다. 어찌 오는 사람들이 이제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으랴. 40이 되고 50이 되어도 명성이 들리지 않으면, 이 또한 두려워할 것이 못될 뿐이다.)”

막시무스 2019-02-09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씨체가 너무 부럽습니다! 힘차고 자신감이 강해 보이네요!

oren 2019-02-09 23:33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입대 이전에 쓴 글씨들은 어딘지 모르게 초딩스러워 보여서 별로 마음에 안 들고,
입대한 뒤로 조금씩 가다듬은 글씨체는 그나마 차분한 느낌이 들어 조금 나아졌다 싶기도 합니다.^^

페크pek0501 2019-02-15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참 잘 쓰십니다. 필체가 좋습니다. 볼 줄 모르지만 필체에서 꼿꼿한 정신이 느껴집니다.
한 번 마음먹은 일은 꼭 하는 형, 원칙을 중요시하는 형.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형 같습니다.
혹시 오렌 님은 의지의 사나이 이십니까? ㅋ

oren 2019-02-15 14:42   좋아요 1 | URL
그런데 페크 님께서는 아주 캐캐묵은 옛날에 써 놓은 글씨체 하나를 보고 사람을 너무 지나치게 확대해석하시는 거 아닙니까? 거, 유행가 가사에도 나오잖습니까. 지금 우린 그 옛날의 우리가 아니라고 말입니다!!
* * *
지금 지금 우리는
그 옛날의 우리가 아닌 것
분명 네가 알고 있는 만큼 나도 알아
단지 지금 우리는 달라졌다고 먼저
말할 자신이 없을 뿐

농부 2019-12-20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채근담 읽어보고 싶어요 !

oren 2019-12-20 20:46   좋아요 0 | URL
네... 채근담 꼭 읽어보세요~~

ULYSSEZ 2020-06-19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바상입니다..
지금도 알라딘에 글을 올리시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좋아했던 ‘채근담‘ 에서 멈춰서 다 읽고 감사한 마음에 흔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링크를 알게되었지만, 기억해 두었다 보고 싶을 때 또 오겠습니다.

2020-06-13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이라는 상품

 

작가님의 글을 읽으니 문득 『월든』을 쓴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첫 작품 출판에 얽힌 아픈 일화가 겹쳐 떠오릅니다. 소로우도 작가적 재능은 탁월했지만 (『월든』으로 대박이 나기 전까지는) 늘상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는 작가였고, 초판 흥행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작가님과는 비교도 하기 어려울 만큼 참담한 실패를 겪었던 인물이기도 하고요.

 

오로지 자신의 처녀작 집필에만 전념하기 위해 일부러 월든 호숫가로 나가 오두막을 짓고 글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소로우는 자신의 처녀작을 인쇄해 줄 출판사마저 구하지 못했고,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간신히 돈을 빌려 자비로 출판한 초판 1,000권 중에서도 4년 동안에 팔린 책이 겨우 294권에 그쳤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기증본 75권이 포함된 수치라고 하고요. 그에 비하면 작가님의 첫 소설집은 정말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작가님이 번역하신 책들은 워낙에 큰 출판사에서 밀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이니만큼 앞으로도 오랫동안(!) 흥행에 큰 어려움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아무쪼록 건투를 빕니다.^^

 

 * * *

 

얼마 전에는 한 원주민 행상이 우리 동네에서 상당히 유명한 변호사의 집에 바구니를 팔려고 왔다. 원주민은 "바구니를 사시겠습니까?" 라고 물었지만 "아니요, 우리 집에는 바구니가 필요 없어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자 원주민은 "뭐라고요! 우리를 굶겨죽일 생각입니까?" 라고 소리치고는 대문을 박차고 나갔다. 원주민은 주위 백인들이 열심히 일하면 잘사는 걸 보고, 특히 변호사가 변론을 잘 짜내기만 하면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재물과 지위가 따르는 걸 보고 '나도 사업을 해야겠다. 바구니를 짜야겠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원주민은 바구니를 짜면 자기 일을 끝낸 것이 되고 그렇다면 백인들은 당연히 바구니를 사야 하는 걸로 생각했던 것이다. 백인들이 살 만한 가치 있는 바구니를 만들거나, 적어도 백인들이 바구니를 가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살 만한 다른 물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몰랐다. 나도 가늘게 쪼갠 나무로 바구니 같은 것을 엮어본 적이 있었지만, 백인에게 팔 만한 것으로 만들어 내지 못했다.102 하지만 나는 바구니를 엮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남들이 살 만한 바구니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는 대신 내 바구니를 굳이 팔지 않아도 괜찮은 방법을 연구했다. 사람들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칭찬하는 삶은 그저 삶을 살아가는 한 방법에 불과하다. 그런데 다른 모든 방식의 삶을 짓밟아가며 하나의 삶만을 과대평가할 이규가 어디에 있는가?(54∼55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 달린 월든』중에서 

 

주석)

 

102. 소로우의 첫 책,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 을 가리킨다. 이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 때문에 소로우는 출판사에 빚진 290달러를 갚는 데 4년이나 걸렸다. 소로우는 1853년 10월 27일의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엉뚱하게 '출판업자'라 불리는, 내 책을 출간해준 출판사가 아직 팔리지 않은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 재고들을 어떻게 처분해야겠느냐고 묻는 편지를 지난 한두 해 동안 가끔 보내다가, 재고들이 차지한 공간을 그들이 급히 싸용해야 할 일이 생겼다고 내게 알려왔다. 그래서 나는 전부 여기로 보내달라고 부탁했고, 그 책들이 속달로 오늘 도착했다. 짐마차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았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4년 전에 먼로에게 사서 그 이후로 조금씩 값을 치렀지만 아직 완납하지 못한 1,000권 중 남은 706권이었다. 그 책들이 마침내 내게 보내졌고 이제야 내 물건들을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됐다. 그 책들을 등에 짊어진 채 층계참을 돌고 두 계단을 올라, 그것들이 원래 있었을 곳과 비슷한 공간까지 옮겼다. 290권 남짓한 책들 중 75권은 기증하고 나머지가 겨우 팔린 것이었다. 이제 나는 거의 900권에 달하는 책이 있는 서고를 갖게 됐지만, 그중 700권 이상이 내가 쓴 책이다. 저자가 자신이 기울인 노고의 열매를 지켜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내 책들이 내 방 한 귀퉁이에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다. 내 오페라 옴니아(opera omnia, 모든 저작물-옮긴이)다. 내가 원작자고, 내가 머리를 짜내 빚어낸 작품이다.(일기 5:459)

 

 

 

자신의 처녀작 출판을 도와줄 곳을 찾지 못해 끝내 자비로 - 그것도 에머슨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 출판한 첫 책이 저토록 참담한 실패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일기에 저런 내용을 남겨 놓는 여유를 즐겼다. 그런 내공들이 쌓이고 쌓인 끝에 불후의 걸작인 『월든』이 탄생한 것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월든』에서 방금 인용한 문장에 잇따라 이어지는 다음 대목은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로 간 진정한 까닭'을 밝히는 부분이므로 덧붙여 인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뜻밖에도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서 홀로 오두막을 짓고 살게 된 진짜 이유에 대해서 너무나 자주 오해하기 때문이다.(물론 소로우가 직접적으로 사태를 설명하는 대신에 일부러 다른 일에 빗대어 말장난처럼 표현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와 함께 호흡하는 시민들이 내게 법원의 일자리나 목사 보조 등 그 밖의 먹고살 만한 자리를 제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내 힘으로 먹고살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여느 때보다 열심히 숲으로 얼굴을 돌렸다. 숲에서는 내가 그런대로 얼굴이 알려진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평소대로 자본금이 모이기를 기다리지 않고, 수중에 있는 빈약한 수단을 사용해서 곧바로 내 사업103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월든 호수로 간 목적은 돈을 들이지 않고 살려는 것도 아니었고 거기에서 힘들게 살려는 것도 아니었다.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개인 사업104을 하고, 상식도 없으며 계획을 해서 사업을 꾸려갈 만한 재능도 없어 어리석게는 보여도 그만큼 한심하게는 보이지 않을 일을 하는 데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였다.(55쪽)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주석 달린 월든』중에서

 

주석)

 

103. 여기에서 '사업하다'는 어떤 경제적 이득이나 생활의 향상을 위해 일하겠다는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관심 있는 일이나 신경 써야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힘쓰겠다는 뜻이다. 뒷 문장에 쓰인 '개인 사업'과 맞추어 말장난한 것이다. 

 

104. 개인 사업은 1842년 파상풍으로 사망한 형에게 바친 책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을 쓰는 것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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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9 0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오노 나나미는 “신은 세부에 깃든다”란 말을 했는데 진짜 디테일에 강하신 오렌님^^ 굿밤하소서~

oren 2019-02-09 13:35   좋아요 1 | URL
시오노 나나미가 저런 고상한 말도 남겼군요.^^
저랑 그다지 큰 연관은 없는 얘기겠습니다만,
그래도 뜨거운 격려의 말씀이라 생각하겠습니다.^^

카알벨루치 2019-02-09 14:23   좋아요 1 | URL
늘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오렌님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

oren 2019-02-09 14:27   좋아요 1 | URL
늘 성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2-09 08: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oren님께서 알려주신 소로우의 일화에 오늘 페이퍼의 글까지 읽으니 한결 이해가 깊어진 것 같습니다. 소로우가 월든 숲으로 간 것이 개인 사업과 삶을 위한 것임을 알고나니, 깨달음을 위해 반드시 가톨릭의 ‘피정‘이나 불교의 ‘동안거‘가 필요한 것이 아님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oren 2019-02-09 13:48   좋아요 2 | URL
아무리 그래도 하버드 졸업식때 졸업생 대표로 연설을 할 정도로 탁월했던 젊은 청년이 ‘속세의 성공‘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호숫가에 외딴 오두막을 짓고 홀로 살면서‘ 불후의 작품을 쓰겠다고 한 걸 보면 대단한 결심과 비범한 실천력을 갖춘 인물임이 분명한데,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쓴 처녀작이 참담한 실패를 했음에도 굴하지 않고 『월든』으로 승화시켰다는 사실이 더 감동적이더군요.

처녀작을 에세이로 쓰기 전에는 랄프 왈도 에머슨으로부터 오랫동안 개인 과외 교습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작시(作詩) 훈련을 받았으나, 마침내 ‘자신의 시재(詩才)가 어느 정도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스승의 말을 듣고, 수많은 자작시들을 단칼에 모조로 불태웠다고 하고, 그 시들은 지금까지도 전해지는게 없다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