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설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50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송태욱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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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자키 준이치로(1886∼1965)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나쓰메 소세키(1867∼1916)보다 20년쯤 늦게 태어났다. 나쓰메 소세키가 메이지(재위 1868∼1912)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였다면,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그보다 한참이나 뒤늦게 활동했던 작가처럼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는 메이지 유신 이후 다이쇼 시대를 거쳐 점차 팽창하는 제국으로 변모하던 쇼와(재위 1926∼1989)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작가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의 국력이 한창 기세좋게 뻗어나가던 시기에 부유한 도쿄 상인의 집에서 태어났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가난에서 미처 벗어나지도 못하던 시절에 이미 고도로 서구화된 도쿄의 도회적 분위기를 만끽하며 자랐으나, 도쿄제국대학 졸업을 앞둔 무렵에는 급작스럽게 가세가 기울어 등록금조차 대지 못해 퇴학을 당했다.

 

그의 인생은 관동 대지진이 일어난 1923년(38세)을 기점으로 크게 변한다. 당시 요코하마의 외국인 거주 지역에 살았던 그는 대재난의 충격 때문에 아내와 자식까지 버리고 혼자서 오사카로 이주하는데, 그때부터 간사이 문화에 깊이 매료된다. 오사카는 도쿄보다 일본의 전통 문화를 지키려는 보수적인 경향이 강했고, 서구풍의 유행과 패션이 넘쳐나고 물질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던 도쿄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는 이내 열렬한 오사카 매니아로 변모한다.

 

작가의 이같은 독특한 인생 내력은 차츰 당대의 일본 사람들이 겪고 있는 일종의 문화적 긴장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간다. 일본 전통 문화에 대한 짙은 향수와 물질 문명 중심의 서구 문화에 대한 반감은 때로 『여뀌 먹는 벌레』(1928년)에서 보듯이 전통과 현대의 갈등을 견디지 못하는 결혼 생활로 그려지기도 하고, 『세설』(집필 1942∼44년, 발표 1946∼48년)처럼 간사이 문화에 대한 짙은 애정이 담긴 결혼 풍속 소설로도 그려졌다.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성(性)과 결혼 문제를 다룬 소설을 유난히 많이 발표한 덕분에 '동양의 D H 로렌스'라는 별칭까지 얻을 정도였다. 그의 대표작인 『세설』 또한 그런 명성에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전세계의 주요 문학 작품 가운데 '결혼 문제'를 다룬 작품만을 따로 헤아려 본다면 이 소설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작품 속의 등장 인물들 대부분이 '혼기를 놓친 노처녀의 결혼 문제'에 온통 매달려 있는 데다가, 혼담이 있을 때마다 온 가족들이 매번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비상한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에서 보자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못지 않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세설』속에는 혼담을 통해 신랑 후보감이 신규로 등장할 때마다 매번 반복되는 온갖 세밀하고도 까다로운 사전 조건 탐색이나, 맞선 이후로 바쁘게 전개되는 관련 인물들 사이의 분주한 대화와 서신들, 혹은 만남이 진척될수록 더욱 복잡하고도 미묘하게 굴절되는 심경 변화와 심리 묘사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소설의 무대는 오사카와 고베 사이에 낀 아시야라는 좁은 동네가 중심이지만, 넓게 보면 오사카와 고베뿐 아니라 교토와 나라 등지를 포함하는 간사이 지방 일대를 두루 아우르고 있다. 그 지역이야말로 도쿄와 요코하마로 대표되는 간토 지역과 뚜렷이 대비되는 특별한 고장이며,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이 끊임없이 불편을 느끼고 긴장감을 늦추지 못했던 도쿄와는 달리 언제나 한가로운 기분으로 옛 추억들을 떠올리며 안온하게 살 수 있는 장소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오사카에서 대대로 부유한 상업 가문으로 명성을 떨치다가 이제 막 쇠락으로 접어든 마키오카 가(家)의 네 자매들이 핵심이다.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 미묘하면서도 꽤나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을 떠안고 있다. 가업을 이을 상속자가 없어 양자 신분으로 입양되었다가 마키오카 가(家)의 맏딸과 결혼한 다쓰오 부부는 자식을 여섯이나 두는 바람에 가문의 대소사를 챙길 여력조차 부족하다. 둘째인 사치코는 경제적 능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는 든든한 남편과 함께 딸 하나를 키우며 살지만, 미혼인 두 여동생까지 거두느라 신경 쓸 일이 한둘이 아니다. 셋째인 유키코는 아리따운 외모를 지녔지만 성격이 활달한 편이 아닌 데다가 혼기마저 놓친 노처녀로, 주위에서 걸핏하면 혼담을 주선하지만 번번이 허사가 되면서 사람들의 애를 태운다. 막내인 다에코는 네 자매 가운데 가장 활달하고 재주도 많아서 사회 생활도 왕성하지만, 10대 시절에 벌써부터 겉멋만 번지르르한 부잣집 아들과 애정의 도피 행각까지 벌일 정도로 철부지인 데다가, 미혼인 언니한테 가로막혀 결혼도 못하고 차츰 집안의 골칫덩이로 전락한다.

 

이 소설 속엔 등장 인물들 사이의 극심한 갈등이나 드라마틱한 사건 전개와 같은 요소는 별로 없다. 그래서 네 자매의 일상이 계절따라 꽃잎이 피고 지는 것처럼 아주 평화롭고도 차분하게 흘러간다는 느낌을 준다. 바깥 세상이 온통 전쟁통에 난리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고요하고도 평화로운 분위기는 더욱 극적으로 대비된다. 그래서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독자 스스로가 세밀한 감각으로 문장들 사이로 흐르는 미세한 결들까지 음미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가령, 다음의 짧은 대목 하나만 보더라도 작가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문장들의 틈새 사이로 쉽게 흘려 넣으면서도 사태의 미세한 차이들을 얼마만큼 능숙하게 표현해 낼 줄 아는 것인가.

 

사치코의 바로 아래 동생 유키코가 어느새 혼기를 놓치고 벌써 서른이나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이렇다 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면, 큰집 언니 쓰루코도, 사치코도 또 본인인 유키코도 노년인 아버지의 호화로운 생활, 마키오카라는 오래된 집안의 명예, 요컨대 지체 높은 집안이었다는 옛날의 격식에 사로잡혀 집안에 어울리는 혼처를 바랐다는 데 있었다. 처음에는 혼담이 빗발쳤으나 모두 어딘가 좀 아쉬운 듯해서 거듭 거절해 버리자 그 뒤로는 사람들도 점차 정나미가 떨어졌는지 혼담도 뜸해졌고, 그러는 동안 가세도 더욱 기울어 갔던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 일은 생각하지 마시라>는 이타니(미용실 여주인이자 중매인)의 말은 정말이지 상대를 위해서 해준 친절한 충고인 셈이었다.(16쪽)

 

 

이런 식으로, 잊을 만하면 어디선가 불쑥 등장하는 '새로운 혼담'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도 매번 특이한 신랑 후보자와의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모처럼의 부푼 기대와 어이없는 불운과 느닷없는 교착으로 이어지다가 끝내 파경을 맞는다. 그러면서도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 다른 작품에서는 흔히 느낄 수 없는 몇 가지 특이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 느낌들 가운데 첫 번째로 꼽고 싶은 건 바로 이상하리만치 짙게 풍겨 나오는 <여류 문학풍>의 소설 분위기이다. 소설을 이끌고 가는 핵심 인물들이 (수시로 화장을 고치고 옷을 갈아 입는) 네 명의 자매들인 데다가, 유키코의 혼담을 진행하는 과정이나 막내인 다에코의 연애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숱한 인물들도 거의 대부분 여성들이 중심을 이루며, 심지어 네 자매들과 교류하며 지내는 몇몇 외국인들조차 거의 대부분이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슈토르츠 부인이나 그녀의 딸 로제마리, 혹은 러시아 처녀 카테리나 등등만 봐도 그렇다.

 

그런데, 다니자키 문학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 바로 일본 문학에 면면히 흐르는 에로티시즘의 전통이고, 거기에 혼재된 이상 성욕이나 악마주의적인 경향까지도 포함하는 '여성 숭배'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런 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특히나 '위대한 예술은 통속적이면서도 고급 문학이어야 한다'는 게 다니자키의 예술론이고 보면 '여자들'을 제쳐두고 도대체 무슨 문학이 가당키나 했던가 싶은 작가의 생각도 염두에 둘 만하다.

 

미시마 유키오는 「다니자키 준이치로」라는 글에서 <만일 천재라는 말을, 예술적 완성만을 기준으로 삼아 결코 자기 자신의 자질을 오판하지 않고 계속 그것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면, 80 평생을 통해 자기 자신의 자질을 오판하지 않았던 다니자키야말로 천재>라고 했다. 그리고 이토 세이의 말대로 <남성이 여성을 숭배하는 것도 사상>이라면 다니자키의 소설들은 <남성이 여성을 숭배>하는 그 하나의 사상으로 수렴된다. 그의 실제 인생도 오로지 그 사상을 현실화하는 데 바쳐졌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그가 숭배하는 대상, 즉 그를 둘러싼 여성들을 보지 않을 수 없다.(924∼925쪽)

 

 - 다니자키 준이치로, 『세설』, <다니자키와 여자들, 그리고 발> 중에서

 

 

이쯤에서 문득 다니자키의 실제 결혼 생활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해도 결코 무리는 아니다. 다니자키는 맨 처음엔 한때 기생이었던 치요코와 결혼하는데, 결혼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치요코는 다니자키보다 열 살 아래였다. 치요코는 다니자키의 기대와 달리(?) 현모양처였던 탓에 사이가 멀어졌고, 그때 나타난 사람이 치요코의 여동생인 열네 살의 세이코였다. 이때 다니자키의 집에 드나들던 문인 사토 하루오가 남편 한테 구박 받던 치요코를 동정하게 되고, 두 사람은 결국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게 그 유명한 <오다와라> 사건이다.

 

 

이번에 우리 세 사람이 합의하여 치요코는 준이치로와 헤어져 하루오와 결혼하기로 하였기에 알려 드리오며, 준이치로의 딸 아유코는 어머니와 같이 살기로 하였습니다. 물론 쌍방의 교류는 종전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가까운 시일 안애 적당한 중매인을 내세워 결혼 피로연을 갖고자 하며, 그 일은 추후 통지해 드리겠습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

                  치요코

           사토 하루오

(「아사히 신문」 1930년 8월 19일자)

 

 

이 사건이 있고 난 이듬해인 1931년에 다니자키는 도미코와 두 번째로 결혼한다. 그녀는 문예춘추사 기자였고, 다니자키보다 스무 살 연하였다. 이 결혼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고, 1935년에 마침내 '숙명적인 사랑'을 느낀 네즈 마쓰코와 세 번째로 결혼한다. 다니자키는 그 결혼을 <주종 관계>를 맺는 것으로 표현했고, 식사도 한 식탁에서 하지 않고 그녀의 식사 시중을 든 후에 혼자 먹었다고 한다. 『세설』 또한 마쓰코 부인의 자매들을 소재로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그의 이상적인 여성은 어머니 '세키'였다고 한다. 소문난 미녀였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그의 여러 작품에 등장하며, 그 어머니와 가장 닮은 여성이 마쓰코 부인이었다고 한다.

 

『세설』이 여느 소설들과 다른 두드러진 특징을 하나 더 꼽자면 그건 '시류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 소설이 쓰인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이었고, 소설 속 시간들은 대략 1936년부터 1941년까지였다. 그 기간 동안에 일본은 중일전쟁(1937∼1945)이 한창이었던 데다가 나중에는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었고, 유럽에서는 나치 독일이 전세계를 상대로 거대한 전쟁을 벌이던 때였다. 『세설』속에도 어쩔 수 없이 '세상이 온통 전쟁에 휩쓸린 분위기'가 느껴지긴 하지만, 그저 스쳐 지나가는 토막 뉴스에 불과할 뿐이다. 전쟁 자체가 온갖 풍성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다른 작품들과는 너무나 달라 독자들이 도리어 당황스러울 정도다. 다니자키는 이 작품을 통해 시종일관 간사이 지방 특유의 느낌이 가득한 '당시의 풍속'을 잔잔하게 전할 뿐이다. 다른 목적은 없다.

 

『세설』은 무척 세심하게 쓰인 소설이다. 극적인 사건보다는 사계의 흐름과 함께 실제 생활처럼 소설 속의 시간도 천천히 지나간다. 봄의 벚꽃 구경, 여름밤의 반딧불이잡이, 가을의 단풍 구경, 후지 산, 가부키, 피아노, 인형, 프랑스어 교습, 무용 교습, 무용 공연, 각기병, 장티푸스, 주사, 약, 만주, 홍수, 기모노, 사진기, 전화, 도쿄 말과 간사이(오사카) 사투리, 미용실, 파마, 호텔, 병원, 학교, 셋집, 독일인, 백계 러시아인, 갖가지 일본 음식들, 피아노, 커피, 제과점, 백화점, 신혼여행, 해수욕, 온천, 기차, 연애, 맞선, 여객선 등이 계절의 변화와 함께 쓰루코, 사치코, 유키코, 다에코의 주위를 파노라마처럼 지나쳐 간다. 그런 세세한 풍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부끄러워서 걸려 온 전화조차 받지 못하는 유키코가 여동생 다에코에게 설교를 해대는 당찬 모습, 그리고 맞선을 보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진행시켜 나가는 유키코의 의뭉스러운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930쪽)

 

 

『세설』이 다른 소설들과 구별되는 또다른 특징이라면 '자연에 대한 묘사'가 극히 절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계절 따라 바뀌는 다양한 바깥 풍경들을 자주 묘사하기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계절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통해 '시간이 좀 더 흘렀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쪽에 훨씬 가깝다. 정원에 핀 가지각색의 꽃들이나 교토의 벚꽃놀이를 묘사할 때조차 풍경 자체보다는 그 풍경 속에 담긴 등장 인물들의 내면에 대한 심리 묘사가 중심일 정도로, 작가는 등장 인물들의 '세심하고 복잡한 마음 속 미로'를 탐구하는데 집중한다.

 

특히나 셋째인 유키코의 혼담을 두고 양가의 중매인들이나 가까운 가족 구성원들이 주고 받는 대화나 편지 속에는 '말해야 할 것과 숨겨야 할 것'에 대한 미묘한 선택지들이 얼마나 구불구불한 선들을 따라 미세하게 이어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세설』이 일본판 『오만과 편견』이라는 평을 듣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싶다. 소설이 시작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길게 이어지는 '유키코의 다양한 혼담 진행 상황'을 보노라면, 마침내 한 쌍의 커플이 결혼에 골인할 때까지 검토될 수밖에 없는 온갖 미묘하고도 세세한 고려사항들이 총망라된 느낌이 들 정도다.

 

『세설』과 외견상 비슷한 느낌을 주는 소설로는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도 빼놓긴 어려운데, 두 작품 모두 유서 깊은 상업 도시에서 '사업'으로 오랫동안 번창했던 가문이 몰락하는 모습을 다룬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무척이나 닮았다. 그러나 토마스 만의 소설이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시 말해서 오랫동안 번창했던 가문이 마침내 '어떤 원인과 과정'을 통해 몰락하게 되는가를 (유전적인 분석까지 포함하여) '남자들의 세계'를 중심으로 세밀하게 그려냈다면, 다니자키의 소설에서는 이제 막 가문의 쇠락이 시작될 무렵의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만을, 그것도 여성들의 세계를 중심으로 섬세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극명하게 비교된다.

 

『세설』은 서구 문학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일본 특유의 전통과 문화와 아름다움이 녹아 있다. 벚꽃놀이 하나만 하더라도 오사카와 교토의 풍경이 다르고, 교토에서도 기온의 밤벚꽃 다르고 헤이안 신궁이 또 다르다. 후지산의 풍경 또한 어디서, 누구와 함께 보느냐에 따라 느낌이 매번 달라진다. 일본의 다양한 전통 무용과 악기와 의상들에 대한 느낌도 그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오사카 지방 고유의 사투리나 억양, 혹은 고베의 도미맛까지도 도쿄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세세한 차이까지도 아주 세밀하게 그려놓은 작품이 『세설(細雪)』인데, 일본을 그저 주마간산 격으로 몇 차례밖에 구경하지 못한 독자로서는 그런 차이까지 두루 자세히 음미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다니자키가 몇 년만 더 살았더라면 그가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을 뻔했다는 말은 결코 지어낸 풍문이 아니다.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작가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였다. 그는 다니자키가 죽은 뒤 3년이 지나서야 그 상을 받았다. 그런데 다니자키가 죽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무려 5년 연속으로 노벨상 후보에 올랐던 작가는 정작 다니자키였다고 한다. 사르트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사 제쳐놓고 교토 근교에 있는 다니자키의 묘에 참배했던 것도 그의 문학적 위상을 반증한다. 제국 시대의 일본은 중국과 미국까지도 한꺼번에 맞붙어 상대할 정도로 욱일승천의 기세였다. 그런 난리통에 이처럼 고요하고도 세심하면서 아름다운 작품이 쓰였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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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12-29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가문의 대립이 있었던 17세기 이전부터 오사카로 대표되는 관서지방과 관동지역의 문화에는 차이가 있는 듯 합니다. 이처럼한 나라 안에서도 다른 자연환경으로 인해 생기는 문화차이를 보자면, 자연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되네요. 감사합니다 ^^:)

oren 2018-12-29 20:25   좋아요 1 | URL
생각해 보면 일본만큼 지방색이 저마다 뚜렷하게 구별되는 나라도 드물지 싶어요. 나라의 생김새부터가 아래위로 길쭉하게 펼쳐져 있으니까요. 단지 다른 나라 사람들이 그런 차이를 그들만큼 자세히 구분할 줄 모를 뿐이겠지요. 『세설』을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하는 사람들이 가장 애를 먹는 것도 그런 지역적인 차이들, 가령 ‘간사이 사투리‘ 하나만 하더라도 그걸 제대로 옮길 방법이 없다는 것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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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나이 들면 모두 강심장이 되지. 내가 아는 기타(北)의 게이샤가 있는데, 그 사람은 벌써 마흔이 넘은 노기야. 그런데 도쿄에 가서 전차를 타면 일부러 오사카 사투리로 <내립니더> 하고 큰소리로 외친다나. 그러면 반드시 내려 준다는 거야.」(216쪽)

syo 2018-12-29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 혹시 다른 매체나 지면에도 투고하고 계신가요?? 알라딘 서재에만 무료로 풀어놓기에는 아까운 글을 항상 쓰시니까요....

oren 2018-12-29 20:34   좋아요 0 | URL
여기서도 어쩌다 한번씩 겨우 글을 올리는 형편인데, 어딜 감히 다른 델 기웃거릴 여력이나 있을까 싶습니다^^

박균호 2018-12-29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알라딘 서재에 흔히 보이는 트렌디(?)한 서평 비스무리한 글과는 차원이 다르군요. 품격있고 지성미 넘치는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이래야 알라딘 서재인데요.

oren 2018-12-29 20:41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박균호 작가님. 신통찮은 제 글에 너무 과분한 글을 남겨주셔서 제가 도리어 당혹스럽습니다.

알라딘 서재든 어디든, 요즘엔 쌔고 쌘 게 서평글이고 독후감인지라, 어떻게든 남들과는 조금이라도 다른, 저만의 감상을 담은 글을 써 보려고 애써 보지만, 늘상 그게 쉬운 게 아니라는 사실만 더욱 절감하고 있답니다.^^

격려의 댓글 담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균호 2018-12-29 2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oren님이 추천하신 책을 정신없이 담았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광란의 쇼핑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oren 2018-12-29 20:50   좋아요 1 | URL
와... 제가 흥미롭게 읽었던 책들을 박균호 작가님께서도 한꺼번에 왕창 사들이셨다니, 저도 몹시 기쁘고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