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얽힌 에피소드와 프란츠 베르펠에 대하여...

 

 

어떤 여성이 탁월한 미모와 재능을 타고난 덕분에 당대의 저명한 여러 인물들과 폭넓은 교제를 갖는다는 건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또한 그녀가 뛰어난 미술가들의 영혼을 뒤흔든 끝에 세기적인 명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녀가 단지 몇몇 유명한 그림에 등장하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당대를 주름잡았던 세계적인 음악가와 건축가와 문학가와도 두루 함께 살아 보기도 했다면? 그것도 세 번에 걸친 정식 결혼을 통해서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오스트리아의 빈에서는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던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알마 말러였다. 그녀가 미술 작품의 실제 모델이라고 알려진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와 오스카 코코슈카의 그림 <바람의 신부>였다. 우선, <바람의 신부>라는 유명한 그림부터 간단히 살펴 보자. 그녀의 '바람 같은 삶'이야말로 '바람'과는 결코 떼어놓을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바람의 신부> 혹은 <폭풍우>, 1914년. (출처 : 위키백과)

 

 

폭풍처럼 강렬한 사랑을 격정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오스카 코코슈카(1886~1980)의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코코슈카는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운동의 대표적인 화가로 특유의 개인적이고 독창적인 표현주의 미술을 선보였다. 《바람의 신부》 혹은 《폭풍우》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 이 작품에서 코코슈카는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감정을 거친 붓 터치와 차고 어두운 색채에 실어 화폭에 담았다.

이 작품이 유독 격정적으로 읽히는 것은 그림 속의 연인이 바로 화가 자신과 그가 열렬히 사랑했던 알마 쉰들러를 모델로 하였기 때문이다. 알마는 당대의 유명한 화가 에밀 야곱 쉰들러의 딸로 미술과 음악을 공부하였으며, 타고난 미모와 지성으로 뭇 남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스물두 살 꽃 다운 나이에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를 만나 결혼하였고, 말러가 사망한 이후에는 바우하우스를 창설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재혼하였으며, 다시 작가 프란츠 베르펠의 아내가 되었다. 구스타프 클림트 역시 한 때 이 여인과 연인관계였다.  

 - 네이버 지식백과, <바람의 신부> 

 

 

알마 말러(Alma Mahler: 1879-1964)

 

 

그렇다. 알마 말러는 화가의 딸이자 작곡가의 아내였다. 자신의 직업 또한 '작곡가'였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반에 걸쳐 음악도시 빈을 대표하는 지휘자이자 작곡가로 명성을 떨친 천재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가 그의 첫 남편이었다.

그녀의 이름 뒤에 말러라는 성이 따라붙지 않았을 때, 그녀의 이름은 알마 쉰들러였다. 그녀는 1879년 당대의 저명한 화가였던 에밀 야콥 쉰들러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말러와 결혼하기 전부터 이미 공연 감독 막스 부어카르트, 작곡가 알렉산더 쳄린스키, 그리고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와 염문설을 뿌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 가운데 클림트는 알마 쉰들러의 첫 키스를 차지한 남자로 알려졌고, 그 덕분에 그녀는 (뜻밖이면서도 영광스럽게) 클림트의 대표작인 <키스>에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예를 차지할 수 있었다.

 

 The Kiss (Lovers), 1907–1908.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 Vienna (출처 : 위키백과)

알마 쉰들러는 구스타프 클림트를 비롯한 여러 남성들의 구애를 뿌리치고 1902년 3월 9일 구스타프 말러와 결혼한다. 무려 20살의 나이차를 극복한 결혼이었다. 결혼 후 그녀는 작곡가의 꿈을 접고 두 딸의 어머니로 살아가지만, 첫 딸이 죽자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고,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깊은 관계에 빠진다. 말러도 이 사실을 알고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쓴다. '천인 교양곡'으로도 불리는 교향곡 8번은 바로 그 무렵에 그녀를 위해 쓰여진 곡이었다.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

 

구스타프 말러가 죽자, 알마 말러는 발터 그로피우스와 두 번째로 결혼하지만 첫 남편과 사별한지 한참이나 뜸을 들인 후였다. 그로피우스와 재혼하기 전까지 연인 관계로 지낸 또다른 남자가 오스카 코코슈카였다. 이 화가는 알마 말러가 건축가와 재혼한 이후에도 아주 오랫동안 그녀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보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알마와 헤어지자 코코슈카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 자진해서 입대했고, 이내 전쟁터에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 되돌아 온다. 사랑의 아픔을 잊기 위해 군대에 갔다가 몸까지 다친 셈이었다. 그는 옛 사랑을 잊지 못해 '알마를 닮은 인형'을 제작해서 함께 생활할 정도로 알마 말러에게 집착을 보였다. 심지어 오페라 공연을 갈 때에도 그 인형의 자리를 예약할 정도였다니 그의 집착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만하다. 그는 그녀에게 아주 많은 편지를 썼는데, 70번째 생일날에도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사랑하는 나의 알마! 당신은 아직도 나의 길들지 않은 야생동물이오.

당신의 생일을 준비하는 친구들에게 '덧없는 달력의 시간에 나를 묶어놓지 말라'고 하오. 대신 시인을 찾아요.
그래서 우리가 함께 무엇을 했으며 서로에게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후세에 우리들의 살아있는 사랑을 전할 수 있도록 그에게 이야기를 전해 줘요. 우리가 서로에게 불어넣은 그 뜨거운 열정과 비교되는 사랑은 없었으니까.

당신의 오스카.

ps : 코코슈카의 가슴은 당신을 용서하기에."

 

오스카 코코슈카(1886∼1980)

 

그토록 끈질겼던 코코슈카의 구애를 뿌리치고 1915년에 시작된 두 번째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로피우스의 잦은 해외 출장과 새로 태어난 아들의 '친부 논란'등이 문제였다. 그때 친부 논란을 일으킨 남자가 바로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프란츠 베르펠이었다. 그는 이미 공공연히 알마의 애인으로 소문나 있었다고 한다. 결국 두 번째 결혼 생활을 청산한 알마는 무려 10년 동안 베르펠과 동거하다가, 1929년에 이르러 그와 정식으로 세 번째 결혼식을 올린 뒤에는 그가 죽을 때까지 내내 함께 한다. 유태인이었던 부부는 나치의 박해를 피해 다녔고, 알마는 남편과 함께 유럽 각지를 전전하다가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여생을 보낸다.

 

프란츠 베르펠(1890∼1945년)

 

 

여담이지만, 몇 년 전에 나는 그림을 통해서나마 알마 말러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가 소장되어 있는 벨베데레 궁전에 갔을 때였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의식하지도 못한 채) 그녀와 입을 맞추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빈을 떠날 때 마침 클림트의 <키스>가 그려진 날렵한 커피잔이 눈에 띄었고, 지금까지도 매번 그때 집어 든 그 커피잔으로 커피를 마시기 때문이다.

 

 

벨베데레 궁전(출처 : 위키 백과)

클림트의 대표작인 <키스>, <유디트> 말고도 에곤 실레의 걸작 <죽음과 소녀>, <포옹>등이 소장되어 있다.

비록 <바람의 신부>는 없지만 오스카 코코슈카의 다른 작품들도 볼 수 있다.

 

 

그런데, <키스> 속의 그 여자가 '말러의 부인'이었다는 얘기는 어디선가 얼핏 들었던 것 같지만, 그녀가 코코슈카의 그림 <바람의 신부>의 주인공일 줄은 미처 몰랐다. 더군다나 어떤 책에서 우연히 발견한, 내게는 몹시 낯선 이름의 소설가에 불과했던 프란츠 베르펠이라는 사람이 그녀의 세 번째 남편인 줄은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을 평생 동안 무려 30번씩이나 읽었다는 바로 그 소설가 말이다. 이 모든 일들이 '빈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이해해야 옳을까.

 

 

  * * *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돼지 2018-11-29 12: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란츠 베르펠 같은 작가를 알게되는 경우가 바로 책을 읽는 묘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서로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되면 무슨 큰 비밀을 알아낸 것 처럼 마음이 막 설레이기도 합니다.
공연히 무릎을 탁 치면서 감탄하기도 하고 말이죠 ㅎㅎ

oren 2018-11-29 13:00   좋아요 1 | URL
프란츠 베르펠이 알마 말러의 세 번째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그 사람이 갑자기 전혀 낯설지 않은 인물처럼 느껴지더군요. 그가 평생 동안 그토록 자주 읽었다는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라는 소설에 대해서도, 알마 말러와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더군다나 그 작품의 주인공의 아내가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였으니 더더욱 그랬겠다 싶더군요.^^

카알벨루치 2018-11-29 13:02   좋아요 0 | URL
이런 귀한 작가를 또 알게되면 또 다른 세계가 저에게 열려지는 것이니 얼마나 환상적인지요! 오렌님 덕분입니다 ㅎ

oren 2018-11-29 13:05   좋아요 1 | URL
일종의 ‘간통 같은 독서‘라고나 할까요? ㅎㅎ
http://blog.aladin.co.kr/oren/7172342

카알벨루치 2018-11-29 13:06   좋아요 1 | URL
오렌님 표현이 급진적입니다요 ㅎㅎ

카알벨루치 2018-11-29 12: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란츠 베르펠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해요~ㅎ

oren 2018-11-29 13:01   좋아요 1 | URL
네.. 이번에 알고 보니 여러모로 관심이 가는 작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