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피지 쪽들에 호메로스가 다 담기다니!

일리아스와 오뒷세우스의 그 많은 모험이

프리아모스 왕국의 적이었던 오뒷세우스 말야!

그 모든 것이 양피 한 조각에 갇혀 버리다니

겨우 자그마한 몇 장으로 접은 양피 조각에!

 - 마르티알리스

 

 * * *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언제부턴가 두꺼운 책들을 조금씩 넘보기 시작했더랬다. 아마도 내가 태어나서 거의 맨 처음으로 도전했던 두꺼운 책들은 지금 되돌아 보더라도 그저 '단순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책이었던 듯하다. 설사 조금 더 후하게 쳐준다고 하더라도 '괜한 의무감' 때문이었다는 말을 덧보탤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내가 처음으로 무모한 도전에 나섰던 두꺼운 책들은 무려(!)『일리아스』, 『오뒷세이아』, 『몽테뉴 수상록』, 『까라마조프 형제들』 등이었기 때문이다. 바둑으로 치자면 겨우 5,6급 정도의 실력밖에 안 되는 초급자가 프로 기사에게 맞바둑을 두자고 덤빈 꼴이였다고나 할까.

 

어쨌든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의 상당히 기나긴 '특별 무소속 기간' 동안 이들과 거친 씨름을 벌이기로 작정을 했더랬다. 비록 자세는 영 볼품없었지만 말이다. 1970년대의 엄혹한 시절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탓에 나에게 두발 자유화는 그저 먼 나라 이웃 나라의 얘기일 뿐이었다. 입시가 끝나고 입학이 다가올 때까지 겨울 내내 무방비 상태로 무럭무럭 자라도록 내버려둬도 두발 상태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까까머리에서 차츰 벗어나는 듯한 어중간한 모습으로, 대학생으로는 도저히 봐줄 수 없는 그런 어설픈 시골 총각의 머리 모양새로(한 마디로 말하자면 '촌놈'으로) 나는 용감하게도 '트로이 전쟁'에 뛰어들었던 셈이다. 군불을 넉넉히 지핀 시골집 온돌방에 배를 깔고 하루 종일 이불 속에서 엎드렸다 누웠다를 반복하면서.

 

입시 과목과는 전혀 다른 책들인지라 어쨌든 꽤 여러 날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 책들을 읽었다. 그리고 그 책들은 오랫동안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들을 남겨 주었다. 사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온갖 흥미로운 얘기들이 그 당시에 나에게 얼마나 재미있게 다가왔었는지는 지금도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온갖 고대의 이름 모를 신들과 지명들과 인명들만 하더라도 내겐 얼마나 벅찼는지 모른다. '이걸 도대체 언제까지 읽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던 순간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을 정도다. 그나마 한가지 다행스러운 점이 있었다면 그 당시에는 독서 환경이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훌륭했다는 점이었다. 책을 읽는 데 방해될 만한 요소는 일부러 찾을래야 찾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TV라고 해봐야 기껏 서너 채널밖에 없었고 그것도 밤 시간에만 볼 수 있었다. 신문조차 구독하는 게 없었고, 흔해빠진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은 그 당시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절이었다. 그런 환경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럭저럭 그 두꺼운 책들을 꽤나 오래도록 붙들고 읽었더랬다.

 

그 책들을 끝까지 다 읽었는지는 자세히 알 도리가 없지만 아마도 완벽하게 다 읽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나마 『까라마조프 형제들』은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독후감까지 끄적거려 놓은 게 지금까지도 남아 있긴 하다. 그래도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때의 무모한 도전이 내심 흐뭇하기도 하고 가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 나이에 도대체 뭘 얼마나 안다고 그런 책들을 붙잡고 그토록 낑낑댔을까. 다시 생각해 봐도 내게 '두꺼운 책들'은 그저 호기심이나 의무감의 대상이었지 처음부터 흥미의 대상은 결코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숱한 걸작 소설들 가운데 하필이면 『까라마조프 형제들』을 선택한 이유 또한 별 다른 건 딱히 없었다. 그저 우리집에 남자 형제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이었다.

 

사진 1_호메로스, 몽테뉴

내가 예전에 읽었던 책들은 당연히(?)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없다. 『까라마조프 형제들』은 새 책으로 장만하지도 못했다. 그토록 인상 깊게 읽었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그 당시의 독서 경험이 두고두고 나에게 지속적으로 어떤 영향들을 끼치고 있다는 것만큼은 아주 분명히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이 책들만 보면 이내 '고향집, 1980년 겨울'로 곧장 달려가곤 한다. 거기가 내 몸과 마음의 영원한 고향이므로.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해서도 '두꺼운 책들'에 대한 괜한 욕심이 다시 발동했다. 그래서 찾아 읽은 책들이 (다시) 『몽테뉴 수상록』, 홉스의 『리바이어던』,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허먼 멜빌의 『모비딕』, 스탕달의 『적과 흑』, D.H.로렌스의 『아들과 연인』, 괴테의 『파우스트』 등이었다. 플라톤의 『국가』, 막스 베버의 『사회경제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 슘페터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 등도 읽었다. 다른 얇은 책들도 더러 읽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보잘 것 없는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봐도 왠지 나는 그 나이에 그다지 썩 어울리지 않게(?) 웅편거작들에 꽤나 욕심을 냈던 것 같다.

 

사진 2_플라톤, 막스 베버

군대에서 읽은 책들도 이제는 단 한 권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 때의 경험 때문에 다시 읽은 책들도 플라톤과 베버 정도다. 그래도 그 당시의 독서 경험이 내겐 소중했다. 심지어 알라딘에 처음으로 글을 올린 것도 '그때의 경험' 덕분이었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해서 성립.발생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넓혀준 대작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학한 이후로는 아주 오랫동안 이상한 담을 쌓기 시작했다. 책과 나 사이에 쌓인 담은 아무런 노력 없이도 저절로 계속 높아만 갔다. 이래저래 '사회생활'로 아주 바빴던 탓도 있었고, 책 없이도 충분히 즐길 만한 일들이 제법 많았는지도 모른다. 술 마시는 데만 하더라도 엄청난 시간을 쏟아부었으니 말이다. 그런 시기에 대작들을 읽는다는 건 아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 시기에 내갸 읽은 '장편'이라고 해 봐야 겨우(?) 이문열의 『 삼국지』나 조정래의 『태백산맥』정도가 고작이었다. 한때는 『소설 목민심서』, 『소설 동의보감』까지도 괜스레 대작으로 여길 정도였다. 이때의 독서 편력은 이를테면 '중세의 암흑기'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그러다가 다시 책읽기에 살금살금 빠져든 게 대략 10여 년 전부터였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나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너무나 흥미롭게 읽혔고, 그 여세를 몰아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물론이고,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에 쓰인 작품들이라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던 듯하다. 까마득한 옛날에 세계사 책에서나 가까스로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쓴 아주 오래된 고전들이 어찌나 재미있던지, 갑자기 '르네상스'를 맞이한 기분마저 느껴졌다. 호메로스, 헤로도토스, 투퀴디데스를 만나고 나니 내가 새로이 만나야 될 흥미로운 인물들이 책 속에서 마구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해서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를 만나고, 키케로와 세네카와 플루타르코스를 만나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와 베르길리우스와 오비디우스를 잇따라 만났다.

 

 

 

사진 3_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크세노폰, 타키투스, 카이사르, 에드워드 기번

고대 서양의 역사뿐 아니라 서양 세계의 '온갖 다양한 뿌리들'이 헤로도토스와 투퀴디데스의 책 속 곳곳에 박혀 있다. 그들이 '역사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훗날의 역사가들은 대부분 이들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사진 4_헤시오도스, 아리스토텔레스, 아우렐리우스, 키케로,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세네카, 아폴로도로스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빛낸 시인들과 철학자들의 영향력은 일반적으로 생각보는 것보다는 훨씬 뿌리가 깊다.

 

사진 5_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메난드로스

숱한 문학 작품의 '발원지'와 같은 작품들이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을 통해 '고대 그리스 비극'의 심오한 철학적 깊이를 거듭 탐구했고, 플라톤 또한 '아리스토파네스가 없었다면' 어찌 삶을 견딜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쯤에 이르니 두꺼운 책들이나 어렵게 느껴지는 책들에 대한 두려움이 차츰 가시는 대신에 책 속에 담긴 묘한 비밀들이 차츰 엿보이기 시작했다. 그건 다름아닌 '텍스트와의 연관성' 때문이었는데,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차츰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인물이나 이야기'를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마주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간통 같은 독서) 가령 단테의 『신곡』속에서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만 만나는 게 아니라, 트로이 전쟁에서 맹활약하던 아킬레우스와 오뒷세우스를 만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서 몽테뉴가 했던 이야기를 다시 만나고, 톨스토이의 소설 속에서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속에 등장한 이야기를 다시 만나는 식이었다.

 

사진 6_단테, 베르길리우스, 아리스토텔레스, 몽테뉴, 톨스토이

단테는 타락한 민중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신곡』을 썼다기 보다는 탁월한 '문학작품'으로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그려냈다. 그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평생의 스승으로 흠모했다는 사실이야말로 '책'이 지닌 마법과도 같은 위력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책'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수로 그토록 서로 다른 태양과 공기 속에서 살았던 낯선 인물들을 서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스승과 제자 사이' 혹은 '절친한 친구 사이'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경험들은 차츰 철학으로도 번졌다.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속에서 무수한 고대 철학자들을 만나게 되니 자연스레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그리스 철학자 열전』을 찾아 읽게 되고, 오랫동안 정들었던 쇼펜하우어와 헤어지자 말자 이내 니체를 찾게 되고, 니체의 작품들 속에서 다시 고대 그리스의 비극시인들과 철학자들을 다시 만나는 식이었다.

 

사진 7_쇼펜하우어,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루크레티우스

 

 

사진 8_니체

니체는 언제나 강인하고 격렬하면서도 과격하다. 그러나 니체를 만나고 나면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왜곡'인지에 대해 훨씬 더 깊이 배울 수 있다. 그만큼 수많은 분야를 아주 활기차게 자유자재로 훨훨 넘나든 철학자도 드물다. 철학, 종교, 도덕, 역사, 음악, 문학 등등등.

 

 

이런 경험이 극한까지 치달았던 건 무엇보다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만났을 때였다. 그렇다고 내가 아무런 사전 준비작업도 없이 무모하게 제임스 조이스를 만나러 곧장 뛰어든 건 아니었다. 누군가로부터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소개받은 적이 이미 있었고, 그 풍요로운 『월든』 속에서 다시 호메로스, 헤로도토스, 오비디우스, 소포클레스는 물론 몽테뉴, 조너선 스위프트, 다니엘 디포, 허먼 멜빌 등등을 다시 만났고, 그런 교유 덕분에 비로소 나는 어른들이 읽는 『걸리버 여행기』와  『로빈슨 크루소』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런 얽히고 설킨 만남 덕분에 나는 마침내 제임스 조이스를 만나러 갈 수 있었다고 믿는다. 어렵사리 그를 만나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웅편거작에 대한 공포심'이 거의 다 사라진 듯한 느낌이 찾아왔다. 그토록 어려운 난관마저 뚫고 나왔는데 내 앞을 가로막을 책들이 더이상 뭐가 더 있단 말인가 싶은 '엄청난 자신감'이 와락 다가왔다고나 할까.

 

사진 9_제임스 조이스, 조너선 스위프트, 다니엘 디포

제임스 조이스에게는 너무 일찍 다가갈 필요가 없다.『율리시스』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그럴 만나기 위해 너무 늦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클리프턴 패디먼의『평생 독서 계획』속에 담긴 책을 대략 3할 정도 읽고 나서 『율리시스』를 만나는 건 꽤나 좋은 타이밍일지도 모르겠다. http://blog.aladin.co.kr/oren/8597281

 

 

사진 10_헨리 데이빗 소로우, 랄프 왈도 에머슨

소로우는 자연을 벗삼아 평생을 콩코드에서 살았지만 '독서'를 통해 무수한 사람들과 아주 활발한 교류를 나눴던 사람이었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은 같은 콩코드 주민이었던 랄프 왈도 에머슨이었다.

 

고귀한 지적 운동으로서의 독서

사람들은 장부를 기입하고 장사에서 속지 않기 위해서 셈을 배운 것처럼 하찮은 목적을 위해서 읽기를 배운다. 고귀한 지적 운동으로서의 독서에 대해서 그들은 거의 또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 그것만이 진정한 의미의 독서인 것이다. 자장가를 듣듯이 심심풀이로 하는 독서는 우리의 지적 기능들을 잠재우는 독서이며 따라서 참다운 독서라고 할 수 없다. 발돋움하고 서듯이 하는 독서, 우리가 가장 또렷또렷하게 깨어 있는 시간들을 바치는 독서만이 참다운 독서인 것이다.(P150)


더 현명한 사람들과 사귀기를 갈망한다.

나는 우리 콩코드 땅이 배출한 인물들보다 더 현명한 사람들과 사귀기를 갈망한다. 비록 그들의 이름이 이곳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내가 플라톤의 이름을 듣고도 끝내 그의 저서를 읽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플라톤이 바로 우리 마을 사람인데도 내가 그를 한 번도 만나본 일이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이며, 그가 바로 옆집 사람인데도 그의 말을 들어보지 못하고 그 말의 예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플라톤의 《대화편》은 그의 영원불멸한 지혜를 담은 책이며 바로 옆 선반에 놓여 있는데도 나는 그 책을 거의 들추지 않는다.(P154)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고 나서는 '두꺼운 책들에 대한 두려움'이 일순간에 모조리 제거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마음 속에만 담아 왔던 대작들을 향해 겁없이 뛰어들 수 있었다. 단김에 소뿔 빼듯이 덥석 붙잡은 게 『전쟁과 평화』였다. 이미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통해 '무모한 용기'에서 비롯되는 거대한 감동의 쓰나미를 충분히 맛본 터여서 더더욱 『전쟁과 평화』가 '전쟁 보다는 평화 쪽으로' 아주 순조롭게 풀려나갔다.

 

사진 11_세르반테스, 톨스토이

이들 두 작가는 인류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불려도 결코 손색이 없는 인물들이다. 두 작품 모두 어머어마하게 긴 분량을 자랑하지만 책의 두께보다 훨씬 더 거대한 감동을 지닌 걸작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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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뛰어난 장군이자 외교관이자 웅변가로 맹활약했던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를 그린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에 대한 오마주이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침공에 대한 '러시아 민중들의 저항'에 대한 오마주로 볼 수 있다면, 후세 사람으로부터 영광스럽게도 '최후의 그리스인'으로 불린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이들 두 작품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왜냐하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야말로 고대의 무수한 전쟁터에서 실제로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평화로운 시대를 살다 간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불굴의 용기와 지혜를 발휘한 위대한 인물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실 플루타르코스의 탁월한 문장력에 대한 명성은 이미 『몽테뉴 수상록』을 통해서도 눈과 귀가 아프도록 익히 들어왔던 터였고, 이미 발췌 번역본인 천병희 선생님의『플루타르코스 영웅전』까지 읽었던 터라 '영웅전 전집'에 대한 심리적인 장벽 같은 건 별로 느끼지 못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그토록 방대한 책을 단숨에(?) 완독하고 나서 곧바로 다시 집어들고 나서 (두 번째인 만큼) 아주 느긋하게 즐기면서 재독했던 일은 다른 책들에서는 좀처럼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다.

 

사진 12_플루타르코스

도서출판 숲에서 펴낸『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영웅 10명'만 담은 발췌 번역본이다. 완역본을 읽으면 발췌본에서 모자이크식으로 따로따로 움직이던 인물들이 어느새 여기저기서 동시에 한꺼번에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만 하더라도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루쿨루스, 세르토리우스, 술라, 키케로, 카토, 브루투스, 안토니우스 등과 동선이 겹치는데 『영웅전 전집』에는 이들의 전기가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읽고 나서도 왠지 모르게 '두꺼운 책들'에 대해 여전히 미진한 듯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던 건 순전히 셰익스피어 때문이었다. 인류 최고의 시인이라고 불러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는 이 위대한 시인의 작품들을 읽지 않고는 어딘가 구멍이 뚫린 듯한 허전함을 도저히 메울 길이 없을 듯했다. 더군다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는 동안에 내가 셰익스피어를 미리 만나지 못했던 일을 가슴 깊이 통탄했던 일들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셰익스피어를 미룰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랄프 왈도 에머슨이 쓴 『위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서 이미 셰익스피어에 대한 이야기를 제법 자세히 소개 받은 터였고, 에머슨이 남긴 명언까지도 심심찮게 떠올렸던 터였다.(☞ 기어이 만날 수밖에 없게 된 셰익스피어)

 

“만일 전 세계의 도서관이 불타고 있다면 나는 뛰어 들어가 『셰익스피어 전집』과 『플라톤 전집』 그리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구해낼 것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사진 13_셰익스피어

최종철 교수가 '전10권'을 목표로 출간한 『셰익스피어 전집』시리즈. 전집 1권, 4권, 5권 , 7권에 담긴 작품들(모두 16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걸작들이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무엇보다 셰익스피어 전공 교수의 '운율을 살린 운문 번역'이면서 '가장 최신의 번역'이라는 점이다.

 

사진 14_셰익스피어

민음사 판 <셰익스피어 전집 시리즈>로는 아직 출간되지 않은 작품들은 다른 번역자의 판본으로 읽었다. 신정옥 교수가 '전작품'을 완역한 '전예원' 판은 번역된지 너무 오래된 상태여서 '외국어 표기'가 눈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고, 산문체 번역이어서 '시적인 대사'를 감상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동서문화사의 번역들도 대체로 무난했다.

 

 

셰익스피어를 읽고 나니 아주 잠깐 동안은 '두꺼운 책들에 대한 갈망'이 일순 가시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그건 순전히 착각일 뿐이었다. 그건 마치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에 나오는 주인공인 23세의 청년 한스 카스토르프가 스위스의 다보스에 있는 폐결핵 요양원인 베르크호프에서 자주 겪었던 '수은주의 변덕'을 닮았을 뿐이었다.

 

10월도 여느 달과 마찬가지로 시작되었다. 그 자체로는 완전히 겸손하고 소리 없는 시작이다. 신호도 표시도 없이 슬그머니 들어오는 바람에 눈을 부릅뜨고 주의하지 않으면 이를 쉽사리 놓쳐 버리게 된다. 시간에는 사실 눈금이 없고, 새로운 달이나 해가 시작될 때 천둥이 치는 것도 아니고 나팔 소리가 울리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될 때 예포를 쏘거나 종을 치는 것도 인간뿐이다.(434쪽)

 

 - 토마스 만, 『마의 산_상권』, <제5장_수은주의 변덕> 중에서 

 

 

그랬다. 셰익스피어를 때론 힘겹게, 때론 너무나 가슴이 벅차 오르는 희열로 신나게 내달리는 기분으로 읽을 때도 있었으나, 현실 속의 나는 아직도 기껏 토마스 만의 『마의 산』도 구경하지 못한 터였다. 아,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곧장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과 『마의 산』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소설계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찰스 디킨스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들인 『위대한 유산』, 『데이비드 코퍼필드』, 『황폐한 집』을 내처 읽었다.

 

사진 15_토마스 만, 찰스 디킨스 

 

아... 그런데... 찰스 디킨스의 소설들은 너무나 재미있는 소설이면서도 예상 외로(?) 분량 또한 엄청났다. 도대체 찰스 디킨스의 소설들은 얼마나 긴 걸까? 이렇게 긴 데도 조금도 지루할 틈이 없어도 좋단 말인가?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서머싯 몸'이 '세계 10대 소설'로 꼽은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생각보다 그리 많이 읽지 않는 걸까? 게다가 많은 문학평론가들로부터 찰스 디킨스의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황폐한 집』은 또 어떻고? 말 그대로 '황폐한 집'으로 내팽겨 친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그렇다고 이게 꼭 찰스 디킨스만의 문제일까? 톨스토이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아니, 그렇다면 마르셀 푸르스트의 그토록 악명높은 길이를 자랑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도대체 얼마나 긴 걸까? 여기에 대한 합리적인 공통의 잣대는 없을까?

 

이런 얄궂은 생각들이 마구 스쳐갔던 게 벌써 스무 날이나 지난 과거가 되었다. 그래서 나중에 '언젠가는' 꼭 한 번쯤 시도해 봤으면 싶었던 '나만의 작업'을 슬금슬금 시작했다. 굳이 이 작업에 대해 따로 제목을 붙이고자 한다면 '름난 웅편거작들의 작품 길이에 대한 소고'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글쎄, 그런 말은 너무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니 그냥 대충 넘어가자. 아무튼 재미삼아 만들어 본 결과물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이 도표를 만들 때 '나만의 독창적이면서도 자의적인 판단'이 상당히 많이 개입됐다. 그걸 미리 밝힌다. 이런 표는 결국 '나 자신의 과거의 독서 경험과 미래의 독서 계획'을 일정 부분 반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점을 미리 충분히 확인한 뒤에 이 표를 살펴야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을 듯하다.

 

1. 이 표는 이름난 걸작들을 똑같은 잣대를 써서 '물리적인 작품의 길이'를 서로 비교해 보는 게 주목적이다.

   그래서 똑같은 판형으로 출판된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총 275권)'를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2. 여러 작품을 '합본'한 경우는 최대한 배제했다.

    예), 쇼펜하우어의 『세상을 보는 지혜』(1,023쪽),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국가/향연』(824쪽),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정략론』(665쪽), 카프카의 『성/심판/변신』(610쪽) 등

 

3. 여러 작품을 모은 '합본'이지만 (너무 중요한 작가여서) 예외적으로 포함시킨 작품은 딱 둘만 넣었다.

   예), 셰익스피어의 다섯 작품을 모은 책(655쪽), 니체의 다섯 작품을 모은 책(1,030쪽)

 

4. 단일 작품으로서의 통일성이 부족하거나, 비평가들로부터 평가가 다소 엇갈리는 작품들은 제외했다.

   예) 『아라비안나이트』(전5권, 5,336쪽), 『솔로몬 탈무드』(810쪽), 『그림동화전집』(1,344쪽) 등

 

5. 분량이 방대한 작품을 중심으로 길이를 비교하는 게 주목적이어서 '인위적인 하한선'을 둘 수밖에 없었다.

    공교롭게도 널리 알려진 세 작품( 『일리아스』, 『오뒷세이아』, 『위대한 유산』)이 모두 560쪽이었다.

 

6. 대작이지만 '동서문화사 월드북 시리즈'에 아예 없는 작품들은 제외되었다.

   ex)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등

   또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526쪽)는 축약본의 번역본이어서 제외했다.

 

7. 지나치게 어려운 작품이거나 지나치게 대중적이다 싶은 작품은 일부러 제외했다.

    ex) 칸트의 『순수이성비판』(770쪽),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686쪽), 밀턴의 『실낙원』(644쪽),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332쪽) 등

 

 

이렇게 도표로 어렵사리 비교한 결과를 '한 눈에' 볼 수는 없을까? 물론 있다! 챠트로 만들면 된다!

 

이 얼마나 놀라운 그림인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인류의 천재들이 빚어낸 불멸의 걸작들이 이 챠트 하나에 다 담기다니!

 

까마득한 옛날에 내가 처음으로 도전했던 '몹시도 두꺼운 책들'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 혹은 『몽테뉴 수상록』을 붙잡고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가 먼 미래에는 이런 그림까지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건 결코 아니었다. 어쩌면, 어쩌다 보니 그럭저럭 여기까지 왔다는 말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

 

혹은, 까마득한 옛날에 어느 책에서 얼핏 스치듯이 보았던 서머싯 몸의 <세계 10대 소설 목록> 가운데 내가 읽은 작품이 단 하나, 『까라마조프 형제들』밖에 없을 때 느꼈던 당혹감이 어쩌면 나를 여기까지 몰래 이끌고 왔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에 와서 문득 뒤돌아 보니 <세계 10대 소설>에서 어느새 두 작품만 내게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놀랍다.

 

어쩌면 내가 쓰는 이 글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을 덥석 붙잡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그런 책들이 아직까지도 몹시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그보다 부담이 훨씬 덜한(?)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으로 살짝 방향을 틀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시도가 누군가에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런 측정 불가능한 미래의 자그마한 가능성들이야말로 이런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가장 진지하면서도 호의적인 반응일 테니까 말이다.

 

사진 16_서머싯 몸이 선정한 <세계 10대 소설>에 포함된 작품들

사진에 없는 '10대 소설' 작품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형제들』, 허먼 멜빌의 『모비딕』, 헨리 필딩의 『톰 존스의 모험』등이다. 내가 여태껏 읽지 못한 두 작품은 『폭풍의 언덕』과 『톰 존스의 모험』이다.

 

 

카프카는 책이 얼음을 깨뜨리는 도끼가 아니라면 왜 그런 책들을 읽어야 하느냐고 말했다. 너무나 좋은 비유가 아닐 수 없다. 나도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자랄 때는 '얼음'과 아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은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는 데 시간을 보냈지 얼음을 깨는 데 애를 쓴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릴 땐 얼음 위를 미끄러지는 기분만큼 신나고 상쾌한 일도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가끔씩은 얼음 위에서 미끄러져 꽈당 넘어질 때도 있었다. 얼음이 너무 매끄러우면 넘어지기 싫은 데도 아주 쉽게 벌러덩 넘어지는 수가 있다. 그런데 정말로 얼음을 깨트려야 할 때도 가끔씩은 있었다! 얼음 아래에서 살고 있는 물고기를 잡을 때였다!

 

그렇다. 그럴 때 가장 필요로 하는 무기가 바로 도끼였다! 도끼만 있으면 아무리 추운 한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얼음도 아주 쉽게 깰 수 있었다! 얼음이 너무 단단하다거나 너무 매끄럽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얼음은 결국 얼음일 뿐이다. 그 얼음을 깨트릴 도끼는 이미 셀 수도 없이 많이 만들어져 있다. 얼마만큼 훌륭한 도끼로 얼마만큼 두꺼운 얼음을 깨트릴 것인가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나는 몹시도 두꺼운 책들이 두꺼운 얼음을 깨트리는 데 아주 유용한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 번 느꼈다. 이토록 두꺼운 책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무슨 수로 '얼음'처럼 매끄럽고 단단한 표면들을 지닌 『마의 산』 같은 데를 오를 생각이나 했겠으며, 장차 저토록 방대한 풍모를 자랑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쪽으로 나 있는 길을 찾아 나설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이제 다시 책을 붙들 시간이 다가온다. 이런 글을 쓰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나는 왜 이런 글을 끄적이고 있을까. 이런 책들과 함께 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못내 그립고, 이런 두툼한 책들을 볼 때마다 그들이 못내 고맙기 때문이다. 이 글에 담긴 책들이 나에게 안겨준 즐거움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컸지만, 그들이 내게 고통을 안겨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어찌 내가 틈날 때마다 이 책들을 거듭 보듬고 쓰다듬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접힌 부분 펼치기 ▼

 

몇 년 전에도 두꺼운 책들에 대해 기나긴 글을 쓴 적이 있었다. 그때 함께 올렸던 음악이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이었다. 그 음악은 들을 때마다 심장이 고동친다. 무슨 어려운 일이든 능히 해낼 수 있을 듯한 '대책없는 자신감'도 무럭무럭 솟는다. 이런 글을 쓸 때 괜히 덧붙이고 싶은 음악이 아닐 수 없다.

 

예전에 썼던 글 속에 담긴 책들 가운데 '그때까지 읽지 못했던 책들'을 이제는 어느새 '나도' 읽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보람이 느껴진다. 이런 글을 쓸 때마다 '온갖 책들을 사진에 다시 담아 보는 일'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작업이 아무런 댓가조차 없는 건 아니다. 책장에 꽂힌 책들이 세월 따라 조금씩 변해 가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 책들을 대하는 나 자신까지 조금씩 변해 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사진에 담아본 두꺼운 책들 2012-12-24 20:16:00

밑줄긋기와 필사(筆寫)에 대하여... 2016-02-01 15:58:00

책을 읽는 순서에 대하여... 2016-06-16 00:03:00

평생 독서 계획 점검 2017-05-03 01:46:00

 

펼친 부분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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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권에 대한 '알라딘 상품넣기'는 내가 읽은 책들 혹은 내가 앞으로 읽고 싶은 판본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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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4-15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거대한 스케일의 포스팅을 만날 때마다 움찔합니다. 이런 글 쓰라고 있는 공간에서 난 도대체 뭘 써대고 있나 싶어서.....

정말 잘 읽었습니다. 존경스럽네요. 읽으신 것도, 쓰신 것도 전부 다요!

oren 2018-04-15 21:00   좋아요 0 | URL
물론 처음부터 제가 이렇게 거대한(?) 글을 쓰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그저 이 책 저 책들을 살피며 쪽수를 계속 적다 보니 그만 일이 조금 커지고 말았던 거예요.

그리고, 알라딘을 이용하는 목적들은 사람들마다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을 듯해요. 저마다 자신들에게 알맞는 방식으로 알맞게 활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봐요. 다만, 예전에 비해 너무나 경박(輕薄)해지고 단소(短小)해지는 느낌을 떨치긴 어렵지만요...

겨울호랑이 2018-04-15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oren님의 독서 여정과 앞으로의 중장기 계획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저도 oren님처럼 정리하면서 읽어야 하는데, 아직은 많이 모자라네요... 새벽 사이 내린 눈 위로 나 있는 한 사람의 발자국을 보면서 따라가는 것처럼 oren님의 계획을 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행복하 하루 되세요.!

oren 2018-04-15 21:07   좋아요 1 | URL
저 또한 겨울호랑이 님께서 엄청난 규모와 속도로 읽고 쓰시는 다양한 책과 글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곤 한답니다. 사람들마다 저마다의 취향은 서로 다 다르게 마련이니, 제가 어지럽게 이리저리 제멋대로 내디딘 발자국만 믿고 너무 바싹 뒤따라오진 마시길요~

포스트잇 2018-04-15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장대하십니다..
겐지이야기가 저렇게 딱 두 권으로 정리되는군요.
번역과 출판사에 대한 생각을 한번 접으면 선택지가 더 열리는 경지^^
동양권 저서들에 대한 oren님의 장정 계획도 있으신가요?
부럽습니다...

oren 2018-04-15 21:26   좋아요 0 | URL
<겐지 이야기>는 어떤 판본으로는 무려 10 권짜리로 나온 것도 보이더군요. 저도 동서문화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뢰하는 편이 아닌데, 이름난 고전들 가운데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이 아예 없거나 그다지 신통치 않을 경우에는 여간 고마운 게 아닐 때도 많더군요.

동양권 저서들도 읽고 싶은 책들은 많은데 무슨 까닭인지 여태 좀처럼 가까워지기가 쉽지 않더군요. 사마천의 『사기』를 펼쳐 보다가 관중과 포숙의 이야기,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를 보고 ‘이미 아는 식상한 얘기들뿐‘이라는 인상을 너무 강하게 받았던 것 같기도 해요. 아니면 40대에 다시 읽었던 ‘온갖 권모술수로 가득찬‘ 『삼국지』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탓인지도요. 그래도 <겐지 이야기>, <마하바라따> 등등 읽을 거리는 얼마든지 널려 있다고 봅니다.^^

혜덕화 2018-04-15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듭 되는 찰스디킨스 예찬에, 드디어 오늘 위대한 유산과 세익스피어 1권, 4권 주문했습니다.
요즘 농사 짓느라 거의 책을 읽지 못하고 있는데, 두꺼운 책 시도라도 해 봐야겠어요.
레미제라블은 대학 1학년때 학교 도서관에서 정말 두꺼운 책 3권짜리 읽은 기억이 있어요.
그것도 한 페이지에 삼단으로 다단 인쇄 되었던 것 같은데....
정말 눈물과 한숨과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던 제 인생의 책이었습니다.
님 덕분에 고전에 눈을 돌려 봅니다.

oren 2018-04-15 21:40   좋아요 0 | URL
아... <위대한 유산>은 결코 실망스럽지 않을 거예요. 셰익스피어 전집도 마찬가지일 테고요. 『전집 1』에 있는 <베니스의 상인>과 <좋으실 대로>는 특히 강추합니다. 두 작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포셔와 로잘린드가 너무나 사랑스럽기 때문이지요. 『전집 4』에 담긴 작품 중에는 <줄리어스 시저>가 <햄릿> 보다는 훨씬 더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옛날에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세로쓰기에다가 ‘2단‘ 또는 ‘3단‘ 구성도 더러 있었던 것 같아요. 그토록 두툼한 『레 미제라블』을 대학 1학년 때 독파하시고, 두툼한 고전에 대한 희열까지 만끽하셨다니 괜스레 동지애를 느낍니다.^^

카알벨루치 2018-11-15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렌님 이건 파노라마, 다큐멘터리 입미다 우아~거대한 서사시 paper ....!!!👍👍👍

oren 2018-11-15 23:44   좋아요 0 | URL
너무 격한 댓글이네요. ㅎㅎ

kavinlee 2018-12-13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혹시나해서 검색한 두꺼운 책 키워드에 이런 대단한 분이 계셨다니 놀랍고 부럽고 가슴이뛰네요..모든 책을 다 도전하려고하ㅡ는데요...혹시 읽으신 책중에 반드시 읽어야하는 5권만 추천해주세요...그것부터 시작해보렵니다

oren 2018-12-13 23:42   좋아요 0 | URL
제가 읽은 책 중에 ‘반드시 읽어야 하는 5권‘ 같은 건 따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가 읽은 책들 가운데 우선순위가 아예 없을 수는 없을 터이므로, 제 나름의 추천 목록을 덧붙여 봅니다.

<추천 도서_소설 분야>

1.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2.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3.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
4. 에밀리 디킨슨, 『폭풍의 언덕』
5. 찰스 디킨스, 『데이비드 코퍼필드』

<추천도서_비소설 분야>

1. 몽테뉴, 『수상록』
2.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3. 플루타르코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4. 헤로도토스, 『역사』
5.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조재연 2019-09-24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oren님의 서평을 봤습니다. 방대한 서재, 색인까지 만드는 노력.. 서평 포스팅에서 대단한 내공이 느껴집니다.
특히 서재는 부럽습니다.. 혼자 있어도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을듯.

oren 2019-09-25 12:15   좋아요 0 | URL
별로 대단한 게 없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