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13일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분신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때맞춰 각 언론마다 지난 40년의 세월과 현재의 노동현실을 재조명하는 특집기사을 마련하고 있다(경향신문의 '왜 다시 전태일인가' 연재 참조). 이 40주년의 의미를 되새겨볼 만한 책 세 권에 대한 리뷰기사를 모아놓는다(<서울과 노동시>(실천문학사)는 미간이다).      

경향신문(10. 11. 02) 노동자 피땀으로 세워진 빈곤과 차별의 도시 서울

“나는 평화시장의 일급 미싱사/ 손이 안 보이도록 옷을 만들지…이 옷을 누가 입을까 나는 관심이 없어/ 죽어라 뺑이치며 미싱만 밟을 뿐/ 이 옷이 얼마에 팔릴까 나는 몰라/ 하루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밀려드는 잠 쫓으려 타이밍을 먹고/ 입술을 깨물고 허벅지를 꼬집어 옷을 만들지/ 미싱을 타는 지금은 철야 이틀째”(김해자 ‘미싱사의 노래’)

1970년 11월13일 청계천 평화시장의 재단사였던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몸에 불을 붙였다. 전태일의 죽음은 노동운동에 불을 붙였고, 70년대 이후 많은 노동시들이 쏟아져나오게 된 모태가 됐다.

전태일 40주기를 맞아 실천문학사에서 일제 시대인 192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서울을 배경으로 한 노동시들을 한데 모았다. 청량리와 서울역, 평화시장과 구로공단, 이태원에 이르기까지 서울의 도시 공간이 노동의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노동시를 통해 바라보는 작업이다. 실천문학사는 오는 13일 ‘서울과 노동시’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같은 제목의 시집을 출간할 계획이다.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임화부터 <노동의 새벽>의 박노해, 최근 시집을 출간한 송경동 시인까지, 192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90년에 걸쳐 서울을 배경으로 창작된 노동시 300여편이 수록됐다.

1920년대부터 경성을 배경으로 한 도시빈민과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다룬 노동시들이 본격적으로 창작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식민지 수도 경성은 근대적 도시로 변화하고 있었으며 한쪽에서 거대한 건물이 세워지고 새로운 거리가 생겨나는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가난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올라온 도시빈민들이 토막을 짓고 살았다. 이 시기에는 ‘카프’를 중심으로 한 작가들이 ‘프로시’라는 이름으로 프롤레타리아적 입장에서 시를 창작했다. 문학평론가 이성혁은 “노동시와 경성의 만남은 농촌의 빈곤화와 경성의 근대화 과정이 중첩되면서, 경성에 모여든 농촌 출신 빈민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데서부터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이 시기의 대표적 시가 임화의 ‘네 거리의 순이’, 백철의 ‘날은 추워오는데’, 오장환의 ‘수부’ 등이다.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는 노동시의 ‘침체기’였다.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박정희 정권이 집권하면서 진보적 목소리는 억압당했고 노동시들은 ‘서랍속의 불온시’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많은 시인들이 노동자와 도시를 둘러싼 다양한 모습들을 시로 표현해냈다. 이시영은 ‘후꾸도’에서 도시에서 좌판을 벌여 먹고 사는 사내의 과거로 독자들을 끌고 들어가 농촌공동체의 따뜻함을 도시의 삶과 대비시킨다. 농촌과 도시라는 긍정과 부정, 낙관과 비관으로 자리잡는데, 이는 정호승의 ‘마지막 편지’에서도 드러난다. 또한 박노해의 ‘이불을 꿰매며’, 정희성의 ‘어머니, 그 사슴은 어찌 되었을까요’는 여성노동자와 남성노동자의 차이와 차별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 작품으로 꼽힌다. 노동의 생산성과 활력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도 쓰여졌다. 김광규는 ‘쓰레기 치는 사람들’에서 쓰레기에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존재들로 노동자들을 형상화했고, 김지하는 ‘서대문 101번지’에서 흙과 노동의 싱그러움을 노래했다. 문학평론가 박수연은 “70년대의 노동시들은 직업 시인들에 의해 쓰여지며 미학적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노동이 발휘할 수 있는 힘과 성과에 대해서 침묵하며 정치·사회적인 것과 계급노동자의 얽힘에 대한 분석이 결여돼 있다”고 분석했다.

 

1980년대에 들어와 노동시는 ‘르네상스’를 맞는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1982),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1984)이 이 시기에 출간됐다.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1980년대는 군사정권의 파시즘 체제와 자본의 무한 확장이 결속하여 만들어낸 시대”라며 “이를 심층에서부터 비판한 것이 노동시”라고 말한다. 박노해, 백무산이 대표 주자였으며 박영근도 “노동이란/ 굶주림의 추억으로부터 사슬의 두려움으로부터 일어나/ 사람의 일을 하는 것이다/ 사람의 땅에 서는 것이다”(‘노동2’)라고 읊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 황규관, 송경동, 문동만, 김사이 등의 시인들은 도시의 불모적 삶과 노동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담아낸 시편들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송경동은 “아침이면 다시 지하방에서 솟아오른 사람들이 공단으로 피와 땀을 팔기 위해 활기차게 넘던 그 고가, 그 길밖에 없었던, 젊은 날들을 다 보낸, 지금은 테크노 디지털 밸리가 된 굴뚝 공단에 흉물처럼 남아 있는, 나처럼 남아 있는, 나는 아직도 그 불우하고 불온했던 삶의 고가에서 내가 잊혀질까 두렵다”(‘이 삶의 고가에서 잊혀질까 두렵다’)고 노래했다. 안현미는 “여상을 졸업하고 높은 빌딩으로 출근했지만 높은 건 내가 아니었다 높은 건 내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꽃다운 청춘을 바쳤다”(‘거짓말을 타전하다’)며 노동과 시쓰기를 병행해온 여성 시인의 성장통을 선명하게 담아냈다. 또한 최근 하종오 등의 시인들은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고 있는 사회 변화를 반영해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을 포괄한 시편들을 선보이고 있다. 유성호는 “서울에서 쓰여진 노동시편들은 길음동, 이태원, 평화시장, 화곡동, 구로동, 아현동을 돌면서 고되고 핍진한 노동 현실을 일관되고 견고하게 증언해왔다”고 평했다.

<서울과 노동시> 편집에 참여한 문학평론가 고명철은 “노동자로서의 계급 의식이 선명하지 않았을 당시의 서울, 노동자 계급의 명확한 인식을 하고 있었을 무렵의 서울, 계급에 대한 인식이 유연해진 서울, 계급 자체에 대한 인식보다 계급이 갖는 욕망에 주목해야 하는 서울 등 노동자와 서울의 관계는 단순하지 않다”며 “서울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삶의 양상과 욕망의 풍경을 통해 서울을 과장되지 않게 정직하게 응시했으면 한다”고 말했다.(이영경 기자)  

문화일보(10. 11. 01) [AM7] ‘88만원 세대’ 노동의 의미를 묻다 

올해 11월13일은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을 사실상 최초로 주도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평화시장에서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지 4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근로 기준법은 노동자가 인간다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한 최저의 기준이다. 그러니 전태일의 외침은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위대한 선언이었다.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등 네 인문사회과학 출판사가 힘을 합해 우리 시대의 전태일을 응원하기 위한 ‘너는 나다’(손아람, 하종강 외)라는 책을 펴냈다.

우리나라는 OECD에 가입한 나라들 중에서 저임금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이 ‘영광스럽게도’ 1위다. 1,600만 노동자 중 비정규직이 절반이 넘어선 유일의 나라다. 1990년대에 비정규직을 많이 늘렸던 나라들이 2000년대 들어 장기적으로 국가경제에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비정규직 수를 점점 줄이면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도 줄여가고 있지만 우리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불명예 1위는 또 있다. 연간 노동 시간, 성별 임금격차, 인구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 수 등도 모두 1위다. 40년 전 전태일은 하루 열다섯 시간의 중노동을 줄이기 위해 투쟁했다.

그러나 경제규모가 세계 10위를 자랑할 정도가 된 지금, 젊은이들은 노동시간을 더욱 늘리기 위해 투쟁한다. 청년 실업자가 100만 명을 넘어선지 오래고, 전체 노동자 가운데 청년층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은 여전히 30%대다. 전국 600여 개의 편의점을 조사해보니 66%가 넘는 곳에서 4110원의 법정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다’는 소리를 일상적으로 들어야 하는 청년들이 편의점이나 할인마트의 ‘알바’를 동시에 여러 개 뛰어도 적자인생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니 몸 혹사를 자처하는 것이다.

이 책은 저임금에다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는 20대 중반의 청년들이 등장해 개인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생존조차 힘겨운 사회적 구조를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학점, 자격증, 토익, 자기계발, 외모 등에 어떤 세대보다 열심이지만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열에 아홉은 어떤 일을 해야 행복할 것인가라는 ‘사치스런(?)’ 고민이 아닌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라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전태일의 후예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공론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이 책은 이 시대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되묻고 있다.(한기호_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Weekly경향(10. 11. 02)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펴낸 엄기호씨 

<이것은 왜 청춘이…>는 문화인류학 강사인 엄기호씨(39)가 덕성여대·연세대 원주캠퍼스에서 강의하면서 학생들과 20대의 삶, 즉 정치와 경제, 가족과 연애, 돈과 소비 등을 토론하고 공유한 기록이다. 20대를 다룬 책은 많다. <88만원세대> 이후 꽤 많은 ‘20대’를 다룬 책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런데 왜 또 20대일까. 



책을 쓴 이유는.
“나 역시 그동안 출판된 20대, 대학생에 대한 담론 대부분을 섭렵했다. 솔직히 나는 그 ‘20대 담론’이 불온하다고 생각한다.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지금 20대는 이렇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그 사람들, 그리고 그 20대는 도대체 누구냐는 것이다. 이를 테면 지금의 20대가 소비지향적이 되었다든지, 탈정치화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학교에서 강의하면서 내가 만나본 학생 중에서 이를 테면 G세대로 호명되는 그 20대는 없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누구냐는 것이 내 문제의식이다.”

비판의 대상에는 <88만원세대>도 포함되는가.
“<88만원세대>가 훌륭한 책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돌려서 생각해보자. 왜 갑자기 88만원세대가 사회문제가 되었나.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과거에는 잘 먹고 잘 살았던 애들이 못살게 되었기 때문 아닌가. 사실 명문대를 제외하고 지방대는 1997년 IMF 이전에도 88만원세대다. 부당하지 않은가.”

그러니까 실제의 보편적 대학생들은 각종 세대론에서 묘사되고 있는 그 20대와 다르다는 건가.
“이를 테면 20대는 돈 귀한지 모르고 소비지향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건 부모님에게 돈을 받아 쓰는 조건에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지금 대학생은 일부 잘사는 집을 제외하고 다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비도 워낙 비싸니까 부모가 주는 돈으로 감당 못한다. 생활비도 높다. 아주 기본적인 휴대전화나 교통비만 하더라도 훌쩍 10만원이 넘어간다. 그렇다고 그 학생들에게 휴대전화도 갖지 말고 버스도 타지 말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20대는 항상적 빈곤상태에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내 문제의식은 이것이다.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요즘 애들’은 누구냐는 것이다. 불온하다고까지 느끼는 것은 애들을 질타하는 목소리다.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너희는 왜 그러냐’는 건 자기네들 살고 있는 삶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처럼 쓰는 것이다. 제대로 비교하려면 지금 쟤네가 어떻게 사는지 비교해야 하지 않나. 나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기들(20대를 비난하는 윗세대)도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면 솔직하게 각자가 어떻게 지금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는지 드러내야 한다. 서로가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그 다음에 그렇다면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가가 논의될 수 있다.” 

10. 11. 02.  

 

P.S. 벌써 오래전 영화가 돼버렸는데(영화 촬영 장면을 직접 보기도 했건만)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의 한 장면을 찾아봤다. 이 영화의 각본은 당시 조감독이던 이창동 감독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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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1-03 09:40   좋아요 0 | URL
사회가 그때나 지금이나 불공정하긴 매 한가지라서가 아닐까요?

자꾸때리다 2010-11-03 17:39   좋아요 0 | URL
20대는 돈 귀한지 모르고 소비지향적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전히 유효한 말 아닌가요? 다만 유복한 가정 아이는 부모 카드로 핸드백 사고 돈 없는 아이는 뼈빠지게 알바해서 핸드백 사고... 소비지향이라는 건 변함 없죠. 한 사람의 20대로서 20대 개x끼론은 맞는 것 같습니다. 절망적이게... 그게 20대 자체의 문제이건 486의 탓이건...

커뮤니티활동시 2010-11-03 19:44   좋아요 0 | URL
소비 지향적인 것은 다분히 20대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네요...뼈빠지게 알바해서 핸드백을 산다기보다 오히려 생활비 학비 대는 데도 급급한 게 문제 아닐까요?
 

북한의 3대 권력세습에 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데, 개인적으론 나도 칼럼에서 다뤄야 할지 아직 정하진 못했지만(아직 두 주의 여유가 있다) 몇몇 기사와 칼럼을 주목해서 읽어보았다. 그 중 인터넷 논객 한윤형의 칼럼을 한겨레 훅(hook)에서 옮겨놓는다(http://hook.hani.co.kr/blog/archives/13785). '코미디'가 아닌 '상식'을 담고 있어서다.     

한겨레 훅(10. 10. 12) 황장엽과 리콴유, 어떤 반민주주의자들의 판타지 

공교롭게도 황장엽은 노동당 창건 65주년 되는 날에 세상을 떠났다. 적국으로 망명 온 (전향도 하지 않은) ‘주체사상의 창시자’의 죽음은 한반도 이북에 있는 권력집단의 정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조선노동당은 황장엽과 함께 욕실에서 사망했고, 저 텔레비전 화면 속의 열병식의 주최자는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회의하게 되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온 황장엽은 주체사상의 체계화에 기여를 했지만, 조선노동당이 ‘맑스-레닌’을 벗어던지고 ‘김일성의 당’임을 선포하게 되는 시대 변화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어찌됐건 황장엽의 망명은 북한 체제가 그들이 말하는 ‘우리식 공산주의’에서도 이탈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장례는 ‘통일사회장’으로 치러지고 있고, 정부는 그를 대한민국을 위해 몸바쳐 싸운 이들이 묻혀 있는 대전 현충원에 안장하고 싶어 한다. 남한 망명 후 여생을 암살의 위협 속에서 살아온 그에게 인간적 정리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황장엽이 대한민국을 위해 무엇을 공헌했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황장엽은 수십 년의 생애를 대한민국을 절멸하려는 욕망을 가진 저 북쪽 ‘공화국’의 ‘리론가’로써 호의호식하며 살았다. 그가 망명 후 북 권력집단의 추악한 실체를 폭로한 ‘공로’는 있겠으나, 그렇다고 자신의 과거를 반성한 것은 아니다. 반성하기는커녕 자신이 만든 주체사상은 문제가 없는 아름다운 사상이었는데, 김일성이 이것을 개인적인 우상숭배에 활용하면서 북한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다는 식의 주장을 해왔다. 안기부는 황장엽이 망명한 직후 ‘황장엽의 주체사상’에 대해 설명하는 해설서까지 내주었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황장엽에 대한 한국의 자칭 ‘보수 우파’들의 반응은 그들의 머릿속에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그들은 곧잘 자신들을 ‘자유민주주의자’라고 칭하지만, 이때 그들이 말하는 것은 이념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북한 체제를 부정한다는 차원에서의 ‘자유민주주의’다. 그들은 대체로 ‘밥 먹이는 독재자’를 찬양의 대상으로 삼고, ‘밥 굶기는 독재자’를 경멸하려 든다. 이것이 그들이 박정희/전두환과 김일성/김정일을 변별하는 방식인 것이다. 따라서 황장엽이 북쪽에서 가지고 내려온 ‘주체사상’이 지도층에 대한 인민의 희생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이념이란 것은 이들에게 큰 문제는 아니다. 이들에게 문제는 김정일이 밥을 굶기고 있다는 것이고, 밥을 굶기지 않으려면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수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인민들이 사유재산을 늘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동하면서 북한 김정일 체제를 규탄하는 정부의 입장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는 “자본주의와 결합한 주체사상 이념의 정권”이 한국 사회의 ‘보수 우파’들의 바라는 사회상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이들에게 반대하는 소위 민주화 세력, 김대중과 노무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바라는 사회는 어느 정도에 와 있는가? 황장엽이 사망하던 날의 열병식과 함께 공식화된 북한 체제의 ‘3대 세습’ 문제는 이미 그 이전부터 남한 ‘진보 세력’의 화두가 되어 있었다. 북한 체제에 대한 내정간섭이 부당하다는 민주노동당의 논평에 대한 경향신문 사설의 비판이 있었고, 이에 맞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국가보안법의 논리’로 사태를 재단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몇몇 지식인들이 갑론을박했지만 그중 가장 놀라운 것은 프레시안에 실린 역사학자 김기협씨의 글이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국 현실에 맞는 ‘진보’를 추구했다고 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노무현이 보수면 뭐 어떠냐?’라는 앞뒤가 안 맞는 질문으로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좌파’들을 질타했던 이 노무현 지지자는, 싱가포르 리콴유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세습은 절대악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의 권력세습 문제를 우리 잣대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김기협의 주장은 좌파나 진보주의자들은 물론, 김대중·노무현 지지자들의 일반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발언에 경악을 금치 못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김기협의 발언은 ‘인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리콴유의 권력세습’으로 ‘인민을 굶기는 김정일의 권력세습’을 옹호할 수는 없다는 기본적인 오류 이상의 큰 의미를 지닌다. 이를테면 소위 ‘민주화 세력’이 한국 보수 우파들이 독재자를 변별하는 방식과 다른 방식의 잣대를 가지고 있는지가 의문시 되는 것이다. 대체로 리콴유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은 박정희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해왔다. 박정희의 ‘위인전’을 완성한 월간조선 전 편집장 조갑제씨 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리콴유와 박정희는 ‘지도자’를 좋아하는 아시아인들이 흔히 내세우는 ‘위대한 지도자’들이다. 우익들이 박정희/전두환과 김일성/김정일을 변별하는 방식이 ‘밥’이라면, 김기협에겐 무엇이 있는가?

차라리 김기협이 아예 박정희까지 긍정해 버린다면 그의 발언을 ‘소신있는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 박정희의 경제성장의 공로를 인정하되 그의 방식이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사회에선 통용될 수는 없고 이제 우리에겐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런데 김기협은 <뉴라이트 비판>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를 긍정 평가하는 뉴라이트 역사학자들을 매섭게 쏘아붙인 사람이다. 뉴라이트를 비판한다고 박정희를 전면 부정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김기협의 저술에서 박정희의 경제성장의 공로를 인정하는 구절을 찾지는 못하였다. 더구나 다른 것도 아니고 리콴유의 ‘세습’을 옹호하는 것은 박정희의 경제성장의 공로를 옹호하는 것보다도 훨씬 독재자에게 친화적이다. 언론자유를 부정하고 도시의 청결함에 과잉집착하는 그의 통치행위는 전두환의 3S정책보다도 더 이전에, 장발족과 미니스커트를 단속하던 박정희 시대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는 “발전된 자본주의와 결합한 박정희식 ‘한국적 민주주의’의 체제”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적어도 한국 사회는 3S 시대를 넘어 문화산업 정책을 펼쳐낸 지난 ‘잃어버린 10년’ 동안 싱가포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자생적인 대중문화를 보유한 국가가 되었다. 어떤 진보주의자들은 이 대중문화의 자본친화성에 눈살을 찌푸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대중문화가 김기협이 그렇게 신봉하는 ‘삶의 질’을 높여주는 있다는 점도 사실이다. 김대중은 1990년대 후반 ‘아시아적 특수성’을 주장한 리콴유에 맞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동반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더랬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어느 노무현 지지자의 리콴유 찬양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어떠한 지반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를만큼 몰역사적인 거다.

이 두 개의 반민주주의적 판타지의 실상을 들춰보니 현기증마저 느껴진다. 주체사상과 한국적 민주주의의 대립, 한반도의 1970년대를 남북으로 가르던 그 대립이 한반도 남부를 동과 서로 가르며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웃긴 것은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이들이 ‘주사파’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믿는 그 집단인 것이고, ‘한국적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이 ‘독재자의 딸’에 이를 벅벅가는 그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 김기협의 논리는 김대중·노무현 지지자들의 일반적인 논리가 아니고, 김대중·노무현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서적으로라도 박정희를, 리콴유를, 그리고 박근혜를 싫어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다. 김기협이 가지고 있는 1970년대의 환상은 우리가 말했던 ‘민주화’가 민주주의 이론을 제대로 체현한 것이 아니라, 독재자들의 ‘무능함’을 민주화 세력이 대체할 수 있다는 차원의 논리였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와 리콴유를 규탄할 때라도, 김대중과 노무현을 예찬할 때 우리는 은연 중에 그런 관점을 가지고 그들을 과거의 독재자들과 비교한다. 그리고 두 민주화 세력의 지도자들이 독재자들보다 ‘유능’했던 점은 역시 ‘시장자유’를 더 제대로 인정했다는 점에 있는 바, 우리의 민주화는 곧바로 ‘신자유주의’를 향해 돌진하게 되는 것이다. 김기협의 ‘오버’는 그가 속한 집단의 일반적인 정서를 대변하지 못하지만, 어째서 민주화 세력의 지지자들이 ‘신자유주의 개혁’을 앞장서서 추진하고 지지하게 되었는지를 드러내는 외설적인 대상이다. 그리하여, 2002년에 노무현을 지지했던 이들은 2007년엔 이명박을 지지하게 되었던 것이고, 오늘날엔 다시금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를 이명박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한윤형)  

10.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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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2 14: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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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3 08: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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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3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꾸때리다 2010-10-12 17:15   좋아요 0 | URL
도대체 무슨 당을 찍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한나라당은 일단 열외로 하고, 민주당은 권력욕에 눈이 먼 철새 신자유주의자가 대표랍시고 뽑혔고(도대체 그에게 한나라당 시절과 사상적 변화가 생겼다는 건지 노무현 비석에 무릎을 꿇더군요...당적 바꾼거?) 민노당은 김정은에게 충성할 기세.jpg이고 진보신당은 존재감도 없는데 자기들끼리도 갈피 못잡고 있고. 얼마 전에는 진중권이 김규항하고 싸우다 삐쳐서 탈당했더군요. 이건 뭐 "멍하니 그냥 가만히 보다보면은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어"요...

로쟈 2010-10-13 08:10   좋아요 0 | URL
민노당이 그 정도로 '호의적'인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우학모)에 관한 기사를 오랫만에 옮겨놓는다. 이유야 물론 한글날 맞이다. '남의 말' 대신에 '우리말'로 학문하자는 주장에 직접 공감하기보다는 '외국어' 대신에 '한국어'로 학문하자는 정도로 눅여서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여하튼 '학문어'의 문제에 대해선 관심과 자각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한겨레(10. 10. 07) “남의 말 아닌 우리말로 학문합시다” 

우리 역사에서 말과 글이 일치했던 시기는 해방 뒤 지금까지 단 두 세대 동안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우리 생활에 오래 뿌리박은 한자어와 일본어의 영향으로 말글의 일치를 제대로 이뤄냈다고 자랑하긴 어렵다. 남의 것을 받아들여 지식으로 삼아왔던 학문 영역이 특히 그렇다. 개념을 가리키는 말들은 외래어투성이고 이를 해석하고 풀이한 말들은 한자어투성이라,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지난 5일 서울 강남역 근처에서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우학모) 소속 네명의 학자들을 만났다. 2001년 만들어진 우학모는 ‘남의 말’을 우리말로 고쳐 그 뜻을 제대로 새기고, 우리말에서 비롯되는 학문을 펼치기 위한 노력을 주로 기울여온 단체다.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최봉영 한국외대 교수(철학)는 철학과 한국학을 접목한 새로운 인문학 찾기에 몰두해왔으며, 전 회장인 정현기 세종대 교수(국문학)는 우리말로 된 비평이론을 연구해왔다. 유재원 한국외대 교수(그리스어)는 국내에 독보적인 그리스 연구가로서 학문의 주체성을 강조해왔으며, 구연상 숙명여대 교수(철학)는 철학이란 말을 ‘슬기 맑힘’으로 풀이하는 등 우리말로 된 개념어 찾기에 초점을 맞춰왔다.

우리말로 학문하기에 대한 이들의 고민은, 단지 ‘한국사람이면 당연히 한국말을 써야 한다’와 같은 당위적인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말은 생각을 규정하는 프로그램과 같기 때문에, 말을 따지는 문제는 학문의 본질을 따지는 문제와 맞닿는다고 한다. 서양인들은 근대로 넘어오면서 제나라 말을 바탕으로 삼아 생각의 세계를 묻고, 따지고, 풀어서 학문의 세계를 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들이 만든 것을 받아서 쓰느라 제 나라 말로써 생각을 다듬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봉영 교수는 “남의 말로 할 때에는 흐릿하던 생각이, 우리말로 할 때에는 뚜렷해지기 마련”이라며 ‘배울 학’(學)을 사례로 들었다. ‘배우다’라는 말이 ‘배다’(스며들다, 버릇이 되어 익숙해지다)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따진 뒤에야, 학문·학습 등 추상적이기만 한 한자어의 뜻을 제대로 새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우리말은 독창적인 생각을 다듬게 한다. 겉으로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알아내는 행위를 뭐라고 해야 할까? 껍데기를 ‘깨어서’ 본질에 ‘닿는다’는 뜻으로 ‘깨닫다’라는 탁월한 표현이 있다. 독창적인 우리말인 ‘화병’이 서양 의학계의 관심을 모았던 것처럼, 우리말에 바탕을 둔 생각들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말로 학문하기는 학문의 주체성 회복과 연관된다. 그리스어로 박사 논문을 쓴 유재원 교수는 “말은 ‘누구를 위한 학문이냐’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한국인인 자신이 그리스어로 쓴 논문은 그리스어를 생활어로 쓰는 사람들을 위한 학문이 되지만, 한국어로 쓴 논문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을 위해 쓰인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한문이 지배계층인 사대부를 위한 학문으로 쓰였고, 일제 강점기 때 일본어가 제국주의를 위한 학문으로 쓰였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한자어나 일본어가 아직도 우리 학문언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정현기 교수는 “우리 학문이 우리말을 생활언어로 쓰는 민중들을 위한 학문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라며 “기득권층의 노예의식을 깨야 한다”고 비판했다. 우리말을 제대로 써보지도 않고 우리말에 대해 ‘개념어가 빈약하다’, ‘학문에 적합하지 않다’ 등의 왜곡된 평가를 내리는 습관 역시 그런 노예의식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지금 우학모의 가장 큰 걱정은 우리 사회에 몰아닥치고 있는 ‘영어 광풍’이다. 영어로 쓰여진 국제학술지 등재 논문이 아니면 아예 제대로 취급도 하지 않는 국내 학계의 풍토가 학문어로서 우리말을 사라지게 만들 것이란 걱정이다. 대학사회에 영향력이 큰 <조선일보>가 영국의 대학평가 회사인 큐에스(QS)와 함께 지난해부터 펼치고 있는 대학평가의 내용을 보면, 한국어 논문은 아예 점수를 받지 못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유재원 교수는 “영어를 쓸 줄 아는 지배계층과 그렇지 않은 피지배계층이 나뉘고 있다”며 “조선시대 한자를 아는 사대부와 그렇지 않은 민중들이 갈렸던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했다.

구연상 교수는 “영어로 쓰는 논문은, 학문 자체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업적을 평가받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며 “진정한 국제화를 바란다면, 영어로 논문을 쓰라고 강요할 것이 아니라 우리말 학문과 그에 걸맞은 번역을 제대로 대접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말 강조를 국수주의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우리말을 통해 누굴 위해 어떤 학문을 할지 돌아보자는 얘기다. 또 지난 9년 동안 우학모가 스스로의 공부에 치중했다면, 앞으로는 대중적으로 우리말 학문의 확산에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우학모는 9일 한국외대에서 ‘한글날 기림 말나눔잔치(학술대회)’를 연다. 우리말의 힘과 생산성을 주제로 삼아, 학술어와 일상어 그리고 외국어가 제대로 어울리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최원형 기자) 

10. 10. 09.  

P.S. 전에 한번 다룬 적이 있는데,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에서 펴낸 책은 세 권 정도인 듯싶다. '사무침'에서 '고마움'을 거쳐 '용틀임'까지. 다음 차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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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10-10-09 00:22   좋아요 0 | URL
전 가끔 이런 주장을 접할 때마다 일종의 언어적 순혈주의가 아닌가 싶어요. 철학이란 단어를 슬기 맑힘으로 쓰자는 식의 주장은 오히려 학문을 일반 대중과 소통 불가능하게 몰아넣는 아이러니를 연출할 수 있지 않은지

자꾸때리다 2010-10-09 00:31   좋아요 0 | URL
의학도 돌창자니 빈창자니 하는 용어로 공부하다 보면 배우는 사람도 골치아프고 일반인에게도 그저 생경하죠. 그냥 차라리 jejunum, ileum 쓰고 말지. 그리고 병원에서는 어차피 공장, 회장이라고 환자에게 설명할 거면서.

로쟈 2010-10-09 08:03   좋아요 0 | URL
이공계에서 한국어는 이미 학문어의 역할을 상실한 거 같고, 인문사회과학쪽도 절반은 그래 보입니다. 저는 '우리말'보다는 '한국어'에 방점을 찍고 싶어요...

2010-10-09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0 0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겨레에서 이번주 '백원근의 출판동향계'를 스크랩해놓는다. 과문한 탓에(아동도서에 무심한 탓도 있다) '북스타트'라는 독서 및 육아지원 운동이 있다는 걸 칼럼을 보고서야 알았다. 2년 전에 첫 전국대회가 열렸고 확산돼 가는 추세라고 한다. "책과 더불어 인생을 시작하자"는 운동 취지에 전폭적인 공감을 보낸다('책을 읽을 권리'는 갓 태어난 영아들에게도 주어져야 한다!).

 

한겨레(10. 09. 04) 지역공동체와 독서생태계 키우는 ‘북스타트’ 

9월은 독서문화진흥법이 정한 ‘독서의 달’이다. 그래서 매년 9월이면 다양한 독서 관련 행사가 전국의 도서관과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열린다. 이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것이 10일부터 이틀간 충북 제천 기적의도서관에서 열리는 ‘2010 북스타트 전국대회’이다. 2년 전 서울에서 첫 전국대회가 열린 뒤 지방에서 처음으로 개최하는 북스타트 축제이다.  

북스타트(Book Start)는 ‘책과 더불어 인생을 시작하자’는 취지를 담아 출생 후 1년 미만의 영아와 그 양육자를 대상으로 지역사회가 실시하는 독서 및 육아지원 운동이다. 지역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에게 탄생 축하의 그림책 2권과 도서관 이용 안내 등이 들어 있는 북스타트 가방을 선물하고, 가정마다 그림책을 매개로 아기와 소통하는 행복한 시간을 갖도록 계기를 마련한다. 맹목적인 조기 독서교육과는 뿌리가 다른 ‘책 읽기의 즐거움’과 ‘독서 평등’을 선사하는 사회적 모성의 실천이다. 그래서 시민과 행정기관이 협력하여 시행하는 민관 협력의 모범 사업으로 꼽히기도 한다.   

영국, 일본에 이어 2003년 시작된 한국의 북스타트는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대표 도정일)이 주도하여 조직한 북스타트코리아와 전국 활동가들의 노력, 정부·지자체 후원에 힘입어 현재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절반에 가까운 곳에서 시행중이다. 여기에는 <한겨레>의 기획기사 연재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제천시와 북스타트코리아의 지원으로 출범한 제천북스타트는 2005년 5월에 발족하여 올해로 6년차를 맞이했다. 매주 목요일을 ‘북스타트 데이’로 정하고, 제천시에 태어난 모든 아기들에게 첫 선물로 그림책 두 권과 손수건, 가방, 안내 책자로 꾸려진 북스타트 가방을 자원활동가가 도서관, 보건소에서 배부한다. 책 선물에 그치지 않고 2개월 과정의 체계적인 정규 부모교육 과정을 만들어 아기와 양육자(엄마 등)가 친교하며 아기의 사회성을 길러준다. 북스타트 후속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33개의 ‘품앗이 공동육아 동아리’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며 ‘나의 아기’가 아닌 ‘우리의 아기’를 함께 키운다. 육아 스트레스도 날려버린다.  

제천북스타트는 무엇보다도 ‘찾아가는 북스타트’에 중점을 둔다. 즉 북스타트에 관심을 갖기 어려운 다문화가정, 장애우 및 소외지역 가정의 아기들 모두가 그림책을 보고 자라며 인생을 시작하도록 자원활동가 엄마들이 산 넘고 물 건너 집에까지 정기적으로 방문해 그림책을 읽어준다. 이러한 ‘얘들아, 그림책이랑 놀자’ 프로그램과 연계된 북스타트의 진화, 공동육아 동아리는 선진국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운 한국 시민사회의 놀라운 활동력을 보여준다. 제천북스타트 위원장인 김수연 교수(대원대학)의 최근 연구를 보면, 북스타트를 접한 아기들과 그렇지 않은 아기들 사이에는 책에 대한 태도와 창의력 등 여러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시민의 힘을 바탕으로 품앗이 공동육아와 함께하는 책 읽기 문화 조성으로 건강한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제천, 이외에도 진해를 비롯한 전국 여러 지역의 사례는 우리 사회의 희망이자 독서 생태계 발전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번 전국대회를 계기로 북스타트 미실시 지역의 관심과 참여가 더욱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책 읽는 사회야말로 삶의 질이 높은 성숙한 민주사회를 만드는 첩경이기 때문이다.(백원근 재단법인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10. 09.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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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10-09-04 09:32   좋아요 0 | URL
학생때 북스타트가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요. 92년도에 도서관사서 였던 웬디 쿨링이 제안한 아이디어(보건소에 갓 태어나 건강진단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이 뜬 꾸러미를 무상으로 선물하자는~)로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제가 다니고 있는 도서관에서도 이제 북스타트 도입하는 과정중에 있는데... 2003년도에 시작되었으니 약간은 늦은 감도 없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지만, 준비하시는 선생님이 잘 하고 계시니 준비가 잘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도서관(만 해당되는 건 아니겠지만요.)에도 빨리 도입이 이루어 진다면 좋겠네요...ㅎㅎ

로쟈 2010-09-04 10:44   좋아요 0 | URL
네,모범적인 운영사례가 나오는 걸 보면 나름 잘 해보자는 '경쟁'도 있는 것 같아요. 지역주민들에게 흐뭇한 일입니다.^^

루체오페르 2010-09-04 12:15   좋아요 0 | URL
정말~ 마음에 들고 바람직한 취지의 운동이네요! 어떤 식으로든 잘 되길 저도 응원합니다.

로쟈 2010-09-04 12:25   좋아요 0 | URL
허접한 뉴스들 틈에서 그래도 청량감을 전해주는 칼럼입니다...
 

낼모레면 9월이고 개강이다. 대학강의는 이번 학기에 줄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부담과 분주함이 교차한다(기대나 반가움은 옛말이다). 그래봐야 손과 머리로 할 수 있는 일은 얼마 되지 않음에도. 어제 우편물 때문에 옛집에 들렀다가 이번주 교수신문에서 '어느 연구교수의 안타까운 죽음'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하이데거 번역자와 연구자로 내게도 이름이 익숙한 신상희 박사가 얼마전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한눈 팔지 않고 번역/연구에만 매진한 성실한 학자에 대한 사회적 보상이 겨우 이 정도인가 다시 한번 탄식하게 된다. 더불어 지난주에 읽은 김상봉 교수의 칼럼을 떠올렸다. 대학강사에게도 총장선출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무리한 주장인가? 그것이 무리한 주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통념이 바뀌지 않는 한, 대학사회에 미래는 없다는 쪽에 내기를 걸겠다...     

 

경향신문(10. 08. 25) [김상봉칼럼] 대학강사에게 총장선출권을 

나는 해직교수였다. 그때가 이른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쳤던 바로 다음 해 봄이었는데, 나라 경제가 온통 위기 상황이었을 때 직장을 잃었으니 가진 것 없는 살림에 염려가 없을 수 없었다. 그 무렵 도서출판 한길사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김언호 사장이 차라리 잘되었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김 선생, 책 열 권만 쓰면 먹고 사는 거야 걱정 안 해도 되잖아.” 책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말이 몹시 고마워 그 후 나는 7년 동안 혼자 이름으로만 다섯 권의 철학책을 썼다. 당시 처음 시작해서 열심히 활동했던 ‘학벌없는사회’ 일이 없었더라면 아마 두세 권은 더 썼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는 5년 전 전남대로부터 부름을 받아 다시 교수가 되었다. 이제 원 없이 연구하고 책을 쓸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웬걸 지나고 보니 5년 동안 혼자 이름으로 쓴 책이 두 권밖에 되지 않는다. 처음 한두 해는 다시 학교로 돌아와 환경이 바뀌고 할 일도 많아졌으니 그럴 만하다고 위로했으나 이즈음에 와서는 다시 해직이라도 당해야 온전히 학자의 삶을 살 수 있으려나 하는 자괴감까지 든다. 적어도 내 경우만 두고 보자면 교수 시절보다 강사 시절의 내가 훨씬 더 훌륭한 학자였다. 모든 교수가 강사보다 열등한 학자라고 일반화시켜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강사라고 해서 교수들보다 열등한 학자라고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방학중 홀로강의 막는 것은 모욕
아무리 교수채용과정을 공정하게 운영한다 하더라도 누가 교수가 되고 누가 강사로 남느냐는 많은 경우 실력보다 운이 좌우한다. 어차피 사람을 한 가지 잣대로 줄 세우는 것이 가능한 일이 아닌 데다가, 강사의 전공분야와 학과가 필요로 하는 전공분야가 일치하지 않아서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그러다 보면 나이가 맞지 않아 유능한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내내 강사로 지낼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하물며 한국 대학에 만연한 학벌 및 성차별과 연고에 따른 교수채용의 불공정성을 고려한다면 교수가 강사보다 학문적으로 더 훌륭해서 그 자리에 있게 되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많은 교수들이 자기가 남들보다 훌륭해서 교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오해 때문에 대학이 강사들을 제도적으로 차별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예를 들면 내가 일하는 대학에서는 강사들이 방학 중에 계절학기 강의를 맡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교수가 같이 강의를 한다면 강사도 계절학기 강의를 할 수 있다. 누가 이런 제도를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강사들이 홀로 강의를 할 수 없을 만큼 열등하다고 믿지 않는다면 이런 모욕적인 제도를 만들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한 사회가 잘난 체하는 소수가 아니라 성실한 대중의 열정을 통해 유지되듯, 미래에 대한 아무런 보장도 없이 학문의 길을 걷는 수많은 학자들과 학문후속세대들이야말로 대학과 학문의 참된 토대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학문의 미래를 염려한다면, 바로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삶을 안정시켜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해묵은 강사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예산 문제를 생각하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된다. 하지만 다른 문제도 그렇지만 이 문제를 돈 문제로 환원시키는 한 우리는 결코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돈이 아니라 돈을 쓰는 사람의 마음이 문제이다. 대학에 아무리 많은 돈이 넘쳐난다 하더라도 대학 총장들이 지금처럼 사람보다 건물과 시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 강사들의 운명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 마음이 바뀌겠는가? 오직 한 가지밖에 없다. 강사들에게 총장선출권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총장 선거가 두세 번만 지나면 우리가 염려하지 않아도 강사들의 처우는 저절로 개선될 것이다.

처우개선, 돈보다 마음의 문제
많은 대학에서 학내 구성원들이 총장을 선출할 때 교수나 직원 그리고 학생대표까지 투표에 참여하는데 대학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강사들이 배제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불합리한 일이다. 강사들에게 총장선출권을 주기 위해 특별히 예산이 들 일도 없으니 돈 때문에 안된다 말하지는 못할 것이다. 도리어 강사들이 총장선출에 참여하게 되면 총장직선의 부작용도 완화될 것이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더 늦기 전에 권위를 내려놓고 상생의 지혜를 찾을 때다.(김상봉| 전남대교수·철학)  

교수신문(10. 08. 23) 비좁은 학문현실 좌절하다 별이 된 철학자 

“모두가 잠든 깊은 밤, 홀로 몇 시간이고 앉아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곤 했어요.”
밤하늘을 응시하던 한 철학 연구자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것은 밤하늘의 별빛만이 아니었다. 아내는 남편의 깊은 사색 저편에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가 오랫동안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국내 대표적인 하이데거 연구자인 신상희 건국대 연구교수(철학)가 만 50세의 이른 나이로 지난 달 4일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1992년 하이데거 수제자인 폰 헤르만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교수 밑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신 교수는 귀국 이후에도 하이데거 연구에 몰두해 왔다. 『하이데거의 언어사상』(1998), 『시간과 존재의 빛』(2000), 『하이데거와 신』(2007)등의 저서와 『동일성과 차이』(2000), 『사유의 사태로』(문동규 공역, 2008), 『숲길』(2008) 등 하이데거 번역서를 발간해 하이데거 연구에 가장 정통한 학자로 손꼽혀 왔다.

신 교수의 실질적 은사이자 국내 하이데거 연구의 전문가인  이기상 한국외대 교수(철학)는 “하이데거 저작이 제대로 번역돼 있지 않던 시절 신 교수의 번역은 국내 하이데거 전공자들의 입문서 였다”고 그의 작업을 평가했다. 그러나 학계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했던 것은 학자로서 신 교수에게 닥친 가장 큰 불행이었다. 1993년 이후 시간강사를 전전하며 수차례 대학의 전임교수 채용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셔야 했다. 최종 면접의 문턱에서 좌절하기도 수차례였다.

“한번은 단독으로 최종면접에 오른 적이 있어요. 혼자였기 때문에 기대가 컸지만 학교는 결국 아무도 임용하지 않았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거듭 임용이 좌절됐어도 신 교수는 좀처럼 희망을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꾸준히 강의를 해왔던 한국외대의 강의가 2007년 이후 끊기며 그나마 있던 시간강사 자리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모교인 건국대 명저번역 사업에 학술연구교수로 참여하며 학교와의 끈을 겨우 이어갈 수 있었다.  



신 교수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기 2주 전인 지난 6월 말, 함께 하이데거 번역 작업을 진행하던 문동규 순천대 연구교수(철학)를 찾아갔다. 문 교수와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던 대화 역시 더 이상 미래를 가늠하기 어려운 학자로서의 불투명한 삶이었다. 문 교수는 “더 이상 전임교수가 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죠. 더 이상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한숨에 그저 힘을 잃지 말자는 위로밖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학계에 대한 신 교수의 회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감지되던 것이었다. 오랫동안 신 교수와 번역 작업을 함께 해 온 한 출판편집자는 “지난 3월 학계를 떠나려고 하니까 책을 빨리 냈으면 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은 적이 있다”며 당시의 기억을 더듬었다.

신 교수의 안타까운 죽음에 철학계의 한숨이 깊다. 그를 좌절시킨 ‘철학자의 고단한 삶’은 비단 한 학자의 비극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학에 전임교원으로 자리 잡지 못한 다수의 철학 연구자들은 여전히 최저 생계비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학자로서 앞이 보이지 않는 삶을 감내하고 있다.

특히 1990년 중·후반 학부제가 도입된 이후 철학과의 폐과 현상은 가속화됐다. 2009년 기준 최근 10년 간 8개 대학에서 철학과가 폐과됐으며, 전국 177개 4년제 대학 가운데 철학과가 남아있는 대학은 55곳에 불과하다. 이기상 교수는 “학자로서 최소한의 생활, 연구 여건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학문 하는 사람들의 자존심을 꺾는다”고 지적한다. 이 같은 모순이 비단 철학만의 현실이 아닌 이상 우리 학계의 ‘학문적 타살’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이데거는 ‘나의 철학은 신을 기다리는 것’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평생 외골수로 하이데거만을 파고들었던 신 교수. 발 딛었던 현실의 각박함에서 벗어나 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간 지금 그는 평화로운 사색에 잠겨있을까. 이제 내년 나남과 도서출판 길에서 출간을 앞두고 있는 하이데거의 『사유의 경험으로부터』, 『언어로의 도상에서』, 『회상』 등 세 권의 유작 번역서를 통해서만 그를 느낄 수 있게 됐다.(우주영 기자) 

10. 0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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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0 16: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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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0 17: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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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10-08-30 17:23   좋아요 0 | URL
저도 얼마 전 신상희 선생님의 안타까운 부고를 듣고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한 명의 훌륭한 하이데거 학자뿐만 아니라 또한 한 명의 성실하고 탁월한 철학 연구자를 너무 빨리 잃은 것 같아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2010-08-30 17: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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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0 18: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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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0 21: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른바다 2010-08-30 17:58   좋아요 0 | URL
참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저도 그분의 하이데거 번역본들을 몇권 소장하고 있고 그 성실하고 생산적인 결과물들로 보아 당연히 정식 자리를 갖고 계신 줄알았습니다... 성실한 연구자를 이렇게 한 사회가 방치했다는 데 대해 깊은 분노를 느낍니다.

로쟈 2010-08-30 21:19   좋아요 0 | URL
'공정한 사회'를 뇌까릴 자격들이 못 되는 것이죠...

2010-08-31 14: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꾸때리다 2010-08-30 18:06   좋아요 0 | URL
하이데거 수제자에게 공부하고 돌아온 탁월한 학자 분이 이렇게 안타깝게 가시니...씁쓸한 마음이 들고 또 한편으로는 철학으로 밥벌이 하지 않을 제 자신에 대한 알량한 위안도 드는 사건이네요.

로쟈 2010-08-30 21:20   좋아요 0 | URL
문제는 그렇듯 양면적입니다. 하지만 성실한 연구자와 학문후속세대를 사장시키는 '학문공동체'라면 진작에 공동체도 뭐도 아닌 것이죠...

오감독 2010-08-30 23:35   좋아요 0 | URL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그렇게 보내서는 안될 분인데... 이런 저런 글들, 저서들로만 만나지만 그래도 여러 선배 선생님들께, 그렇게 단단히 서 있어주어서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이렇게 감사드리며 공부하는 어린 연구자들이 많습니다. 당신들의 닳아버린 구두 뒷굽에서 우리는 삶의 비루함이 아니라 당신들의 긍지를 읽습니다... 신상희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2010-08-31 0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여울목 2010-09-01 11:03   좋아요 0 | URL
신상희선생님의 뛰어난 번역이 있었기에, 저는 몇년의 세월을 아낄수 있었습니다. 학문의 열정만으로 살아오신 분이 학문외의 문제로 얼마나 고심하셨을까 생각하니, 슬픔을 넘어 선생님 같은 분에게 변변한 대우를 하지 않은 조직사회에 심한 분노를 느낌니다... 제가 할수 있는 일이라곤 선생님의 삶과 맞바꾼 선생님의 저서를, 감사를 드리며 읽는 일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