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좀 유치한 습성이 있어서, 8월이자 여름의 마지막날이 되면 이성복의 시집 <그 여름의 끝>을 떠올리곤 한다(10월의 마지막밤에는 '잊혀진 계절'을 흥얼거리고, 비가 내리는 날에는 '빗속의 여인'을 듣고, 그날이 화요일이면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을 하나 더 듣고 하는 식이다). 손에 잡히는 그의 시선집을 들춰서 몇 편의 시들을 서둘러 읽어보았다. 가령 표제시인 '그 여름의 끝'은 이런 식이다.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
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
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
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소위 '연애시편'들로 묶여진 <그 여름의 끝>은 표제작에서도 보듯이 몇몇 선명한 이미지들을 뽐내지만 나로선 관념적/추상적이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라고 시인이 말미에 적을 때, 나는 그 장난이 '연애'와 '연애시' 전체에 두루 해당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추상적 타자(=당신)를 두고 벌이는 감정의 자맥질은 비록 그것이 순도 높은 경우일지라도 맥빠진 서정에 불과하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거기에 비교되는 것이 시인의 데뷔시집인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이다(시집의 제목이 시인의 바람대로 '정든 유곽에서'가 되지 않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유감스럽다). 가령, 언제 읽어도 가슴 뻐근한 시 '여름산' 같은 경우는 어떤가?

여름산은 솟아오른다
열기와 금속의 투명한 옷자락을 끌어 올리며
솟아오른다 발등에 못 안 박힌 것들은 다 솟아오른다 저기
비행기가 수술톱처럼 하늘을 끊어낸다 은빛 날개가 곤두선다

그 여자는 불란서에 가겠다고 이번 여름엔 꼭
다녀와야겠다고 그 여자는 잠자는 벌레를 밟았다 모르고
밟았다 부서지면서 물 같은 피가 솟아올랐다 내가 거듭 밟았다
그 여자는 불란서에 가겠다고

나는 속으로 욕했다
따지고 보면 욕할 이유가 없었다
당신은 남의 가난이 얼마큼 당신과 관계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 여자는 내가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당신은 백 사람 중에 하나가 병들어 아프면 당신도 아프다고 생각합니까
그 여자는 부질없는 말이라고 대답했다

여름산은 솟아오른다
여름산은 땀 흘리지 않는다 힘쓰지 않는다
여름산 여름산 여름산 우리는 그늘에서 콜라를 마셨다
콜라를 마시며 불란서를 생각하고 울었다 우는 시늉을 했다
우리는, 시멘트포를 등에 지고 사다리 오르는 여인들을 생각하며 울었다
우는 흉내를 냈다 우리는, 바빌론에 묶여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생각하며 울었다 우는 척했다

여름산은 솟아오른다
한숨 쉬지 않고 솟아오른다 반짝임과 몽롱함을 뿌리며 솟아오른다
우리는 손을 잡았다 잡힌 손에서 물 같은 피가 흘렀다 살려줘요!

여름산은 무겁게 솟아오른다
솟아오르지 않는다 솟아오르는 모습만 보여준다
여름산 여름산 여름산 먼지, 매연, 악취로 부서지는
여름산 여름산
여름산

 

 

 

 

'여름산'에 등장하는 '그 여자'는 '당신'과 같은 추상적인 타자가 아니다(이성복은 '당신'이 아닌 '그 여자'에 관해서 쓸 때 그다운 시를 쓴다). 해서 여기엔 긴장이 있다. 그리고 (끝나지 않는) 절망이 있다. 그 절망은 가령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절망이다. "시멘트포를 등에 지고 사다리를 오르는 여인들"에 대한 절망이고, "바빌론에 묶여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절망이다. 그들을 생각하는 절망이고, 그런 생각을 하며 우는 척하는 절망이다(달리,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젊은 날을 고백하고 있는 아포리즘집 서두에 시인은 "나는 언저리를 사랑한다/ 언저리에는 피멍이 맺혀 있다"고 묘비명처럼 적었다. 이성복의 뜨거운 시들은 그 언저리에서 나온 피멍의 흔적들이었다. 그 흔적은 <그 여름의 끝>에서 "종이 위에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로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이 '물방울'의 흔적은 '피멍'에 비하면 약소하며 엄살스럽기까지 하다(연애시편들이야말로 엄살과 주책의 파노라마 아닌가?). '그 여름의 끝'에서 '여름산'이 다시 그리워지는 이유이다...

06.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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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8-31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파도치는 사진 넘 멋져요. 어떻게 하신 거에요? 정말 시원하네요

로쟈 2006-08-3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하는 건 아니고요, 그냥 그런 사진을 갖다 붙여놓았을 뿐입니다...

라이더 2006-08-3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도 그림 잘 보고 갑니다. 글은 머리가 아파서;; 좀 쉴려고 알라딘 왔기 땜시. 미안요.

푸른괭이 2006-08-31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성복은 그야말로 '타고난' 시인이었던 듯. 글구, 첫 시집은 뭣 때문인지 늘 <정든 유곽에서>로 각인되어 있네요. 어떻든, 안타깝게도, 이성복 시인도 더 이상 시를 쓰지는 못할 듯. 그렇게 보면, 김춘수, 서정주 같이 '평생' 시를 쓴 시인은 정말 대단해요.

로쟈 2006-08-31 16: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평생 쓸 수 있는 시들은 따로 있죠. 자신이 안 다치는 시, 가령 무의미시 같은...

lastmarx 2006-08-31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건네 주는 로맨스는 없나 보네요. ^^ 해마다 이성복을 읽으시는군요. 저도 그런 편인데. <그 여름의 끝>에서 제가 좋아하는 짧은 시 세 편입니다. http://blog.naver.com/lastmarx/70005165701

로쟈 2006-08-3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같은 건 태고적 이야기 같은데요(^^;). 연애를 밝히는 편도 아니고 소질도 없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