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드리면 덧나는 문제이긴 한데, 성매매 문제와 관려하여 스크랩해놓은 기명 칼럼 몇 개를 옮겨놓는다. 며칠전 한겨레에 김기원 교수의 칼럼 '성매매 여성의 인권'이 게재되었는데, 그가 이전에 쓴 칼럼 '성매매 처벌법의 허와 실'을 나는 읽은 바 있고 많은 대목에서 공감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송경숙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전국연대 대표의 반론이 제기됐었던 모양이다. 생각할 자료서의 가치가 있는 듯하여 모두 옮겨놓는다.
한겨레(06. 07. 28) 성매매 처벌법의 허와 실
-성매매 처벌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되어간다. 성매매처벌법으로 성병검진 대성 여성이 준 게 질병관리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최근 발표도 물의를 빚었지만, 이 법을 둘러싸고는 지금까지 뜨거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시장논리에 어긋난 법률이라고 비난한 학자가 있는가 하면, 재계총수는 사회의 하수구가 있어야 한다고까지 이야기했다. 중산층여성을 위해 한계층여성을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한 여성운동가도 있다. 반대로 여성단체는 엄격한 법집행을 요구한다. 도대체 어느 쪽이 옳을까.
-인간의 서비스는 대부분 훌륭한 상품인데 유독 문제가 되는 것은 성적 서비스다. 세계적으로 성매매는 옛날엔 합법적이었으나 현대에 와서 여권신장과 더불어 사정이 달라졌다. 우리나라도 광복 이후 비로소 공창제도를 폐지하고 1960년대에 성매매를 불법화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불법은 기껏 교통신호 위반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성매매처벌법은 그런 관행을 바꾸어 징벌을 강화하는 조처였다.
-그러면 이 법률의 효과는 어떠한가. 먼저 다른 나라의 예를 보자. 미국은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 주만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있다. 거기선 성매매를 단속하는 다른 주에 비해 성매매의 거래량은 많다. 하지만 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공개장소에서 영업을 하며 정기적 검진을 실시하므로 성병 등 거래행위에 따른 위험은 현저하게 낮다. ‘어느 업소는 어떻더라’는 소문을 들을 수 있고, 서비스에 문제가 있을 때는 업주에게 항의할 수 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부당한 착취도 줄어든다.
-성매매가 불법화한 주에서는 성병 걸린 성매매 여성들이 거리를 배회한다. 음성적 매춘행위에 대해선 서비스의 질을 보장받기가 어렵다. 그리고 여기선 폭력이나 부패와 같은 범죄가 자라나기 쉽다. 폭력배가 불법 매춘업에 기생하며 관련 업주들이 단속공무원에게 뇌물을 상납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집창촌 지역을 담당했던 김강자 서장이 공창제도를 주창한 것도 이런 폐해들 때문이다.
-스웨덴이나 네덜란드는 둘 다 선망의 복지국가다. 그런데 성매매에 대한 시각은 판이하다. 스웨덴은 성매매를 불법화했고, 네덜란드는 성매매를 양성화했다. 그 결과는 미국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다. 성매매여성 비율은 네덜란드가 훨씬 높은 반면, 스웨덴에선 성매매여성이 뚜쟁이에게 종속된 정도가 크고 위험에 노출되는 확률이 높다.
-요컨대 성매매의 양적 축소를 중시하느냐, 아니면 성매매와 관련된 성병과 범죄의 축소를 중시하느냐 하는 가치판단에 따라 성매매 단속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양쪽 입장 다 일리가 있다. 이런 게 모의 국민투표의 대상이 아닐까. 물론 어떤 방향으로 가든 성매매 여성에게 다른 생계수단을 제공해야 하고 건강한 노동의식도 함양시켜야 한다. 또 사회의 투명화로 술자리 접대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장애인과 같은 성소외자에 대한 배려도 빠져선 안 된다.
-성매매처벌법 시행 이후 우리 집창촌 종사자 숫자는 줄었다. 하지만 성매매가 더욱 음성화한 것도 분명하다.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법 제정 때 여론수렴이 충분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이 역시 졸속정책의 사례가 아닌지 모르겠다. 또한 엄중단속의 방향을 선택하더라도 시행시기를 잘 잡았어야 했는데, 하필 경기가 나쁠 때였으니 부작용이 크고 저항도 거셌다. 조폭관련 업소부터 단속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집행단계도 신중히 밟아 나갔어야 했다. 이런 부분들을 경시해 정부는 결국 법도 흐지부지되게 만들었고 관련 하층서민의 지지도 잃었다. 지금이라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한겨레(06. 08. 12) '성매매 처벌법 논란'의 남성주의
-7월28일치에 실린 김기원 방송대 교수의 ‘성매매 처벌법의 허와 실’이라는 칼럼을 보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는 이에 앞서 ‘셩매매 특별법과 남신숭배’(6월23일치)라는 제목의 외부필자 칼럼에서도 성매매 방지법 관련 내용을 다루면서 법의 문제를 제기하는 차원을 넘어 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을 실었다.
-김 교수의 칼럼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 방지법) 중 처벌법에 대한 문제를 주로 짚고 있다. 물론 법이 만능은 아니고 현행법 또한 한계가 있는데, 법 취지에 맞게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에 대한 인권보호와 자활지원이 확실히 보장되고 있는가에 대한 법 집행력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근거가 불분명한 내용과 추측에 기반하여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김 교수는 마치 성매매가 합법화한 나라에서 여성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잘 관리가 되어 범죄 발생이 줄어든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성매매를 합법화해서 여성들을 관리하는 것이 범죄 축소에 효과적인 양 선전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문제의 본질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성매매 합법화가 여성들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대안이 아니라는 점과 오히려 합법화한 나라에서 불법 영역이 확대되고 국제적 인신매매 범죄의 온상지가 되고 있는 사실에 눈감으면서 다른 한쪽의 입장만을 옹호하는 것은 옳지 않다(*어느 주장이 팩트인가?).
-어느 성매매 여성도 대안이 제시된다면 성매매를 지속하지 않겠다고 한다(*미용사가 대안인가?). 성적 서비스를 직업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또한 대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전세계적인 ‘빈곤의 여성화’로 수많은 여성들이 성매매와 인신매매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이들을 노리는 알선업자들은 돈벌이를 위해 여성들을 모으고 이동시키면서 착취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오히려 합법화가 대안인 양 선전하는 것은 또다시 모든 이에게 거짓된 환상을 심어주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칼럼은 또한 성매매의 주요 원인이기도 한 성차별적인 남성 중심의 성 의식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성 구매자인 남성들의 안전을 위한 성병 검진의 필요성과 장애인(남성)의 성적 욕구 해결에 대한 요구가 그것이다. 남성의 성적 욕구를 해결해주는 성적 서비스로서의 성매매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쓰인 이 글은, 성매매와 성 구매자로 인해 오히려 심각한 각종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성매매 여성의 건강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장애인 남성의 성을 살 권리(?)를 논하기 전에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먼저 살펴보길 바란다.
-성매매가 합법화하지 않아서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것이 아니라 ‘성매매는 필요악’이라고 허용하면서도 동시에 여성들에 대해서는 도덕적 낙인을 가하는 이중적인 남성 중심적 성 의식과 문화가 성매매 구조를 만들어내고, 그 구조에 유입된 순간부터 여성들은 인권침해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송경숙 /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전국연대 대표)
한겨레(06. 08. 18) 성매매 여성의 인권
-성매매처벌법을 다룬 필자의 7월28일치 칼럼을 두고 송경숙씨가 8월12일치 신문에서 반론을 제기했다. 반가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토론이 활발해져야 성문제를 제대로 처리하는 사회가 앞당겨진다. 다만 송씨의 글에는 필자의 뜻을 오해하고 사실을 왜곡한 부분이 있어 이를 해명하면서 논의를 진전시켜 보자.
-성매매에 관한 필자의 글이 남성주의라고 몰아세우면 남성이라는 원죄(?) 때문에 대응하기 난처하다. 하지만 필자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성매매처벌법이 중산층 여성을 위해 한계층 여성을 희생시킨다는 어떤 여성운동가의 지적과, 주류 여성계의 냉대 속에 성매매 여성들이 50일 동안 단행한 천막농성이었다. 여성 전체가 남성에 의해 차별받지만 동시에 여성 사이에도 차별이 존재한다. 이는 자본에 의해 차별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을 연상시킨다(*여성 내부의 차별은 남성중심사회의 필연적인 결과인가? 때문에 나중에 처리되어야 하는? 혹은 남성중심적 사회구조를 혁파하면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성매매 불법화는 송씨의 주장과 달리 해당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보다 침해할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 성매매 여성 중 에이즈 감염자는 성매매가 합법인 네바다주엔 거의 없는데, 불법인 워싱턴과 뉴저지주엔 절반가량이다. 또 합법인 네덜란드에선 투명한 거래 덕분에 인신매매 등 관련범죄가 잘 드러나는 반면, 불법인 미국에선 은폐되기 쉽다. 불법인 경우에 화대 갈취나 단속 공무원 부패도 더 심하다.
-성매매는 술이나 마약처럼 사람들이 효용을 과대평가하고 폐해를 과소평가하는 비가치재(demerit goods)다. 비가치재에는 국가가 여러 규제를 가한다. 성매매의 폐해는 성병 감염, 결혼제도에 대한 위협, 인간관계의 황금만능화다. 그런데 술은 극소수 국가만 금지하고 마약은 극소수 국가만 허용한다. 성매매는 그 중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서른 나라 중 네 나라에서만 불법이다. 근래 유엔도 모든 성매매를 범죄시하던 과거의 태도를 바꿨다. 다수파가 항상 옳지는 않지만 다수 선진국이 성인의 자발적 성매매를 인정한다면 우리도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사랑 없이 재벌가문에 시집가는 것과 성매매를 하는 것은 어떤 점이 다를까. 결혼여성은 전속 매춘부고 성매매 여성은 프리랜서 매춘부라고 말한 과격한 여성운동가도 있지만, 성매매 여성보다 더 열악한 처지의 주부도 없지 않다. 중요한 문제는 성적 거래를 포함한 남녀관계의 실제상태다. 군산 매춘여성이 숨졌을 때 정부는 거래상태를 개선하는 대신 업종을 폐쇄하는 성매매처벌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 법은 성매매를 더욱 음성화하고 관련 하층서민의 생활을 악화시켰다.
-한국의 성매매 여성 비율은 네덜란드의 네 배, 미국의 두 배가 넘는다. 불법인 미국이 합법인 네덜란드보다 비율이 높고, 또 한국은 그들보다 더 높다. 성적 서비스에 자원배분이 과다한 현실을 시정하는 데 처벌이 능사가 아닌 셈이다. 북한처럼 인민의 삶을 철저히 통제할 수도 없다. 사회보장 제도의 충실화, 사회의 투명화가 관건이다. 그를 향한 과정에서 대안도 없으면서 성매매 여성을 내몰아선 안 된다. 또 송씨는 장애인 남녀의 성욕을 하찮게 여기는데, 그래도 되는 걸까. 성욕은 억압대상이 아니라 관리대상이다. 성매매가 합법인 네덜란드에서 장애인에 대한 성적 자원봉사도 활발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양대 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성매매 여성을 외면했다. 이처럼 지지기반조차 챙기지 못하니 헤매는 게 당연하다. 성매매처벌법 재검토를 용기있게 제기할 다음 대선 후보가 있을까. 정치인은 민감한 문제를 피해 간다. 하지만 양극화에 신음하는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란 성매매 여성 같은 서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인물이 아닐까.(김기원 방송대 교수·경제학)
06. 08. 21.
P.S. 송경숙 대표의 이어지는 반론을 기대한다. 해법은 당위와 현실의 이분법을 넘어서 현실적합성을 갖는 당위를 찾아가는 데 있지 않나 싶다. 혹 이 문제에 해법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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