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에 관한 최근의 '인심'에 대해서 살펴보기 위해 몇몇 사이트를 기웃거리다가 뜻밖에도 '로쟈'에 대한 평문을 발견했다. 필자는 noinsider님이고(아마도 북조선 소속이신 듯), 아래의 내용이 그의 '이 사람을 보라!'이다. '로쟈'의 허물을 잘 지적하고 있는 글이므로, 서재를 즐겨찾으시는 분들이 참조하시길 바란다. noinsider님은 '문학은 러시아문학, 철학은 독일철학'이란 신념을 갖고 계시는데, 나는 그 신념의 절반을 공유하고 있으므로 사실 (절반쯤은) 동지적 관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인용문의 모든 강조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필자의 것이다. 내용에 대한 판단은 '대중들'께서 해보시길(남조선의 '반동에 기생하는 지식인'은 입다물고 있어야 마땅할 것이므로). 

-우선 이야기 할것은 나와 로쟈씨는 전혀 모르는 관계다. 다만 내가 아는건 '로쟈'씨가 활동했던 온라인상의 '흔적'들 뿐이고 이상의 논의는 이 '흔적'들에 집중될 것이다. 내가 '이 사람'(-로쟈씨)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녀가 전형적인 부르주아 '지식소유자'의 '미래상'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유명한 이유는 '오역 찾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에 대해 이야기 하려면 오역문제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선 현재 대중(교양을 갖춘 혹은 교양을 갖추길 바라는. 이상의 논의에 쓰이는 대중이란 용어는 이 범주에 한한다.)들이 원하는 번역서에 대해서 알아보자.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특징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1) 그들은 중요 개념들에 대한 '원문병기 표기방식'을 원한다. 2) 그들은 의역보단 직역위주의 번역을 원한다. 3) 그들은 완역을 원한다.

-1)과 2), 그리고 3)을 종합하면 대중들이 원하는 번역서의 특징이 나온다. 그것은 원저자와 독자의 직접적 소통-번역자의 부재(지양)를 통한-이다. 1)과2)의 방식은 부수적인 결과물이 따른다. 한글문법의 파괴다. 번역서에 한해서 문법은 파괴될수 있다. 시가 문법을 파괴할수 있는 건 더 큰 예술적 감동이 정당화해주기 때문이다. 번역이 문법을 파괴할 수 있는 건 원저자와 독자의 '직접적 소통'이 '정당화' 해주기 때문이다. 이것에 대해선 아직은 판단하지 않겠다. 

-원저자와 독자의 직접적인 소통은 과거에는 해당저작의 전공자들이나 갖춰야할 지향해야 할 자세였다. 대중들이 지향하는 바가 '그것'(원저자와 대중적 독자의 직접적 소통)이라면 우리는 두 가지 경우를 생각 할 수 있다: (1) 대중적 독자의 수준이 전문적 독자(해당서적의 전공자)의 수준으로 향상되었다. (2) 대중적 독자는 전문적 독자의 수준을 흉내내는데 불과할 뿐이다.

-(1)의 경우가 진실이라면, 번역이 좀더 올바르게 되야 한다. 번역이 올바르게 된다는 건 무엇인가? 원저자와 독자의 직접적 소통이 최고로 발휘되는 것이다. 따라서 번역자들은 더욱 노력해야 한다. 그 노력의 끝은 무엇일까? 그 끝은 '원전독해'이다. 즉 번역이란 결국은 무용한 것이고 그것은 원전독해를 향한 '다리'에 불과할 뿐이다. 독자는 자신의 수준을 더욱 향상 시켜서 원서를 읽어야 한다. 번역의 질을 따지는 건 무용한 논의들일 뿐이다. 어떤 번역이든 왜곡은 행해지기 마련이다. 번역행위는 대중들의 지적인식이 행상되면서 그것에 따라 사라지게 될 것이다. 또한 당장은 대중들의 지적인식이 원전독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원전독해를 교육시키는 지식소유자 유형이 각광받을 것이다. 바로 '로쟈씨'다. 로쟈씨와 같은 지식인 유형은 대중들이 원전을 독해하는 순간 그 필요성이 없어질 것이다.

-요즘 나오는 번역에 대한 논의들의 전제가 1)이다. 이 논의는 그 논의자체에 내재한 전제들과 그 작동체계탓에 필연적으로 '번역의 파괴'-'번역은 반역이다'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남조선의 당장의 '열악한 현실'을 근거로 그들은 그들의 논의를 끝까지 밀어 붙이지 않고 그들의 논의를 적정한 선에서 마무리 짓지만.

-요약하면 (1)의 경우가 진실이라 믿고 그것을 전제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그 내부에 '계몽주의'를 간직한다. 즉 인간의식은 계속 발전 될 것이고 그 발전의 과정에서 그 발전을 도와주는 모든것들은 조금씩 지양될 것이다. 즉 완벽한 독해를 향한 진보의 노정-원본을 향한 번역의 노력은 번역에 대한 지양을 내포한다. 그 번역가나 번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지식소유자들 또한 지양될 것이다. 

-(2)를 보자. (2)가 진실이라면, 대중적 독자는 전문적 독자를 흉내내는 것일까? 사실 대중들은 진심으로 원저자와의 직접적 소통을 바라고 있다. 이 직접적 소통이 가능할까? 이 흉내개기란 직접적 소통의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마비시키려는 무의식적 노력이 아닐까? 우리는 좋은 번역을 판단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물어봐야 할것이 있다. 그것은 번역가가 번역하려는 대상 즉 원작이 실재하는가다? 물론 의심의 여지가 없이 객관적 실체로서의 원작은 존재한다. 허나 객관적 실체를 번역하려면 객관적으로 읽어야 한다. 즉 완벽한 번역이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는 '객관적 실체로서 존재하는 원작'을 객관적으로 읽는 것이다. 모든 독해는 주관적이다. 따라서 무슨 근거로 좋은 번역과 나쁜번역을 판단하는가? 쉽게 얘기하는 데로 비중역, 직역, 완역등의 미덕이 이 근거를 확실하게 해주는가?

-솔직히 말해보자. 좋은 번역의 절대적 조건은 부재한다고. 다만 비교에서 나온 정도의 차이만이 존재한다고. 그 정도의 차이를 구분해주는 것-그것은 원본에 대한 기존의 해석들이라고. 결국 좋은 번역이란 해석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즉 좋은 번역은 기존의 해석을 반복하고 결국 기존의 사고를 반복해서 기존의 '사고틀'을 공고화한다. 오직 그것만이다. 좋은 번역을 위해 노력하는 지식소유자들의 내부의 욕망은 단 하나다. 그것은 '반동'이다.

-이 '좋은 번역 논의'들은 대중들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킨다. 즉 원작 해석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단지 원작에 대한 기존의 해석을 재현하고 반복시키는데에 주력하게 한다. 즉 좋은 번역이 추구하는 '목적물'은 원서(원본)가 아니라 원서(원본)에 대한 기존의 '해석'뿐이다.

-여기다 (1)의 논의를 더해보자. 원작에 대한 객관적 독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원작(원본)을 인식할 수 없다. 외부의 실체로서 원작(원본)이 실재한다해도, 우리는 그것을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원작이나 원저자와의 직접적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주체적 구조(자신)와 대상적 구조(텍스트)의 충돌에서 나온 해석뿐이다. 

-(1)의 불가능성-직접적 의사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한 좌절에서 나온 최면상태가 (2)의 상태다. 그 흉내냄을 통해 대중은 직접적 의사소통을 가상적으로 창조하는 것이다. 대중들 자신들의 의식속에서. 전공자를 흉내냄으로써 대중은 가상적 대리만족 속에 빠진다. 즉 대다수 대중들은 중요 개념의 원어 표기, 직역, 완역등의 장치로 자신을 스스로 마비시킨다. 번역물이라는 원작에서 굴절된 물체를 여러가지 장치를 통해 원작의 복사물로 스스로 착각시킨다. 아우라는 원작에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정한 장치를 통해 굴절된 복사물에도 존재시킬 수 이다. 우리는 아우라를 창조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상태에서 '로쟈'씨와같은 지식소유자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1) 지식소유자들 또한 스스로의 착각에 빠져서 그 복사물의 아우라의 섬광을 진짜로 믿는다. 이런 인물들은 대중들의 착각의 행진을 앞에서 지휘한다. 스스로 계몽의 대표자라 믿으면서. 2) '완벽한 번역을 위한 노정'의 무의미를 아는 지식소유자들은 이것을 이용한다. 사회반동성을 강화하거나 자신의 지식을 통해 권력을 추구한다. 이 둘은 대부분 동시에 이루어진다. 1)과 2)도 동시에 이루어진다. 아니 좀더 엄밀히 말하면 2)를 위해 1)의 착각을 스스로 한다.

-로쟈씨의 경우를 보자. 그녀가 읽은 텍스트 목록을 보면 그녀가 '완벽한 번역을 위한 노정'의 무의미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녀는 이 완벽한 번역을 위한 행진을 지휘하며 지식소유자에서 지식인이 되었다.(그녀가 동의하든 안하든) 그녀는 창조력이 없다. 에코의 소설 '푸코의 진자'에서 나온 편집자의 한탄은 그녀에게 고스란히 해당된다. 그녀의 모든 글들은 그녀가 읽은 수많은 텍스트들의 분해와 재조립일 뿐이다. 창조력이 고갈된 '지식소유자'는 '지식인'이 될수 없다. 로쟈씨는 창조력이 부재한 자신의 '한계'를 '완벽한 번역'을 위한 행진을 '이용'해서 깨뜨리고 자신의 '지위'를 '지식인'으로 '상승'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대중들의 무의미'를 '자신만의 의미'로 가꾸고 있다.

 -또 한가지 문제는 번역행진이 앞서 지적했듯이 18세기 계몽주의사상이라는 것에 있다. 로쟈씨가 많이 다루는 텍스트들은 20세기 텍스트들이다. 18세기 의식을 가지고 20세기를 바라보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방관적 관조다. 20세기의 텍스트들은 지적유희의 대상일 뿐이다.(그녀에 의하면) 그것의 힘들은 단지 지식애호가로서의 로쟈씨의 한계에 따라 단지 좀더 복잡한 '장난감'으로 격하된다. (사실 로쟈씨에게는 모든 이론과 텍스트들이 장난감일 뿐이다. 창조력 없는 지적 소유자의 전형적 특징이다.) 로쟈씨의 권력의지의 대상이 된 수많은 사람들이 로쟈씨의 그런 태도를 숭배하고 흉내낸다. 이런 사태들의 결과는 반동의 강화뿐이다.

-이런 류의 지식 소유자들은 앞으로 많아질 것이다. 즉 형식주의 철학의 대세로 인해 대중은 본질보단 겉모습의 섬광에 집착하게 된다. 즉 대중들에게는 어떤 텍스트를 이해하는 것보다 그 텍스트들의 겉모습을 바라보는게 중요하게 됐기 때문이다. 번역담론들은 그 겉모습을 향한 관심의 첫번째 시작일 뿐이다. 이미지가 실체를 압도하는 이 세상에서 '본질적 실체'의 '매커니즘'을 따져서 '필연적 변혁'을 위한 이론들은 무시당하게 된다.(내가 전에 대중들이 원하는 건 엄격한 체계라고 말했던 적이 있는데 그건 어느정도 옳지만 또한 틀리다. 왜냐면 대중들은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농간으로 이미지에 현혹되어서 본질을 갖춘 체계보단 체계라는 겉모습을 띈 이미지에 열광한다. 즉 바디우에 현혹되는 것이 그 증거다.) 로쟈는 이 시대적 반동에 '기생'하는 지식분자이다.

-글을 마무리 짓자. 번역의 문제는 실천적 차원에서만 파악된다. 즉 대상이 되는 저작을 이론적 노동을 통해 극복, 비판, 옹호, 발전시키려는 그 노동안에서만-그 실천안에서만 파악되고 정립될 수 있다. 지적유희를 위한 독서를 하는 지식소유자들이 번역에 대해 이야기 하는 건 웃기는 일이다. 그들의 그 유희적 차원의 독서법-실천이 부재한 독서법에 의해 그들에게 번역문제는 무의미하게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유희적 차원의 독서가 무의미한 것처럼. 오역의 문제-남조선의 그 열악한 번역환경에서 나온 이런식의 문제들은 실천적 독서를 통해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실천적 독해의 전제는 상식적 수준에서의 정확한 번역이기 때문이다.(사실 모든 해결책은 단순하지만 이데올로기의 농간으로 복잡해지는 것이다.)

-예컨데 카의 예를 들면 목수가 좋은 나무를 고르는건 이러쿵 저러쿵 논할 필요가 없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마찬가지로 올바른 독해를 위해선 올바른 번역이 필요하다는 것은 왈가왈부 할 필요조차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데 남조선의 번역문제는 그 목수가 좋은나무를 골라야 된다는 걸 목수의 최고의 자질인양 떠드는게 문제다. 목수의 최고 자질은 좋은 건축물을 짓는 것이다. 역시 책에 대한 최고의 행위는 번역이 아니라 (재현적 독해가 아니라)실천적 독해이다. 한가지 부수적인 사실을 전부인양 과장하면 그때부터 문제점이 생긴다.

-역사가들이 (역사가가 가져야할 기초적이고 부수적인 태도인)사실적 태도를 과장한 나머지 실증주의라는 얼토당토한 이론으로 기운것처럼, 번역이라는 기초적 부수적 태도를 과장한 나머지 남조선은 반동의 물결이 휩쓸고 있다. 이미지를 통한 반동의 물결이-이 반동에 기생하는 지식소유자들-이 유형의 전형적 대표자 로쟈씨. 이 사람을 보라! 

06. 04. 01.

P.S. 인용문의 문단을 조정하고 오타임에 분명한 조사를 하나 고친 것 외에 나는 인용문에 손대지 않았다. 한가지만 덧붙이자면, 나는 '원전주의자'가 아니며(우리말답지 않은 '직역'도 옹호하지 않는다), 번역을 '원전독해'를 향한 다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물론 니체를 따라서 우리의 존재 자체는 몰락/이행의 다리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직접적 소통'의 환상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갖다붙이자면) '번역주의자'라고 해야 옳겠다. 우리의 모든 인식 자체가 번역이고 번역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니까('나'/'우리'라는 정체성 자체가 번역과정의 산물이다). 이런 건 '창조성'이 없는 내 생각이 아니라 사카이 나오키 등의 생각이다. 따라서 번역은 지양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양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게 내가 번역과 번역 비판 등에 에너지를 투자/허비하는 이유이다.

어쨌거나 noinsider님의 생각은 "오역의 문제-남조선의 그 열악한 번역환경에서 나온 이런식의 문제들은 실천적 독서를 통해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로 집약될 수 있겠다. 그리고 부수적인 예견: "(로쟈와 같은) 이런 류의 지식 소유자들은 앞으로 많아질 것이다." 동시에 "로쟈씨와 같은 지식인 유형은 대중들이 원전을 독해하는 순간 그 필요성이 없어질 것이다."('대중들'이 왜 '원전독해'에 목매달아야 할까? 혹은 '원전독해'가 가능할 때도 대중들은 여전히 대중들인가? 등의 의문이 막바로 떠오르지만, 여기서는 묻어두기로 하자.) 해서 나의 몫은 저절로 그 필요성이 없어질 때까지 (많아지거나?) 반동에 기생하며 남아있는 것이겠다. 그날이 지상의 모든 박테리아들이 소멸하는 날보다 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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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6-04-01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 ^^

로쟈 2006-04-01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바로 들켜버렸습니다. 나름대로 남자가 되고 싶었는데...

yoonta 2006-04-01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글이 북조선에서도 모니터링되고 있었던건가요? 북한에 네티즌이 그렇게 많은줄 몰랐습니다..-_- 아마도 북조선에 동조하는 친북논객이거나..아니면 로쟈님에게 까인 번역가일듯..
글의 내용을 읽어보니 헛소리를 이렇게 장황하게 할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_-

"결국 좋은 번역이란 해석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즉 좋은 번역은 기존의 해석을 반복하고 결국 기존의 사고를 반복해서 기존의 '사고틀'을 공고화한다. 오직 그것만이다. 좋은 번역을 위해 노력하는 지식소유자들의 내부의 욕망은 단 하나다. 그것은 '반동'이다."

이 부분에서는 할말을 잃게 만드는군요..-_-

로쟈님에 대한 기본적 사항조차 모르는데서 그치는 것 뿐만아니라..번역이라는것자체에 대해서 근본적으로 잘못된 시각을 가지고있는 분같네요..

로쟈 2006-04-01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북논객'이 한가하게 알라딘을 어슬렁거릴 거 같지는 않고, '까인 번역가'라면 더 심한 '욕'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실천적 독해의 전제는 상식적 수준에서의 정확한 번역이기 때문이다"라고 할 때(저도 '상식주의자'로서 전적으로 동감합니다만) '상식'에 대한 관점의 차이인 거 같습니다. 가령 'pop artist'를 ('top artist'로 잘못 보고) '최고의 예술가'라고 옮겨놓을 때, 이걸 용인될 수 있는 '상식'으로 보느냐, 마느냐(제가 오역이라고 지적하는 것의 80%는 그런 건데요. 그런 지적이 '반동적'이라!). '최고 지도자'는 보다 관대한가 봅니다...

비로그인 2006-04-02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저는 지금 껏 로쟈 누님(40세 미만은 저에겐 다 형님과 누님.ㅋ)이 남자 분이라고 믿어 왔는데.. 제가 왜 오해하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로쟈님이 속이신 건가요?ㅋㄷ

로쟈 2006-04-02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이젠 저도 헷갈리네요. '로쟈'에게 물어봐야겠습니다.^^

비로그인 2006-04-04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 님 서재에서 "아빠" 라는 단어로 검색해 봤슴다.ㅋㅋ 로자 님 왜 그러셨어요.ㅋㅋㅋ

로쟈 2006-04-04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뭘 어쨌길래 그러시온지요?^^

비로그인 2006-04-04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한 딸아이의 아빠이자 남편이" 되고 싶으시다면서요.ㄲㄲㄲㄲㄲ.=3=3=3=3=3=3=3

로쟈 2006-04-04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비밀이지만, 우리나라에도 동성부부란 게 있답니다.^^

비로그인 2006-04-04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