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프만과 인문학의 미래

미국의 저명한 니체 번역자이자 연구자였던 월터 카우프만의 <인문학의 미래>(동녘, 2011)가 다시 번역돼 나왔다. 과거 <인문학의 미래>(미리내, 1998)라고 한번 출간된 적이 있지만 미진한 번역으로 구설에 올랐던 책이다. 에드먼드 윌슨이나 한나 아렌트 같은 '저널리스트'에 대한 비판으로도 유명한데, 실상 초점은 '인문학의 무덤'이 된 1970년대 미국 대학을 향하고 있다(그리고 이 점이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보게 한다). 재번역되길 기대했던(그리고 직접 독려하기도 했던) 1인으로서 출간소식이 반갑다.

  

경향신문(11. 10. 29) 탐색하라, 질문하라, 그리고 비판하라

괴테는 ‘통찰가’ 유형에, 한나 아렌트는 ‘저널리스트’ 유형에 속한다. 이 책의 저자인 월터 카우프만(1921~1980)의 구분에 따르자면 그렇다. 20세기 미국의 대표적 인문학자인 그는 “철학과 문학, 종교와 역사, 음악과 미술”을 인문학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이어서 네 가지 유형으로 인문학자들의 태도를 구별한다. 통찰가와 사변가, 저널리스트와 소크라테스 유형이 그것이다.

예컨대 “프로이트, 아인슈타인, 베토벤, 미켈란젤로, 플라톤”은 ‘통찰가’다. 저자 카우프만에 따르자면 “그들은 외로운 사람들”이다. “자기 시대의 일반적 상식과 단절된 채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고, 자신들의 비전을 알리기 위해 계속 시도”하는 이들이다. 반면에 ‘사변가’는 “자신의 엄격함과 전문성에 자부심이 있으며, 자기 분야의 공론이나 공통의 노하우를 지나치게 신뢰”한다. “동시대의 통찰가들, 그중에서도 특히 자기 분야의 통찰가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적대시하는” 특징을 드러낸다. 카우프만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거의 모든 인문학이 대학에 소속된 이후, 대부분의 대학 교수들”이 바로 그런 축에 속한다고 꼬집는다. 

‘저널리스트’ 유형도 비판의 도마에 올린다. 카우프만은 이 유형에 대해 “첫눈에 사람들의 흥미를 끌 만한 원고를 제공하지만, 몇 년 지나면 그것에 대한 흥미가 사라진다”면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안다고 주장하는 부류”라고 설명한다. 예컨대 미국의 문학비평가 에드먼드 윌슨을 “2차 저작물에나 의존할 뿐 아니라 책의 곳곳에 숱한 오류를 남기는 사람”이라고 비판한다. 유대인 출신의 사상가 한나 아렌트의 저서 <전체주의의 기원>에 대해서는 “전체주의의 가장 중요한 근거인 종교재판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플라톤의 <국가>와 <법률>에 나오는 야간의회에 관한 내용을 완전히 무시했다”고 공격한다.

카우프만이 인문학자의 유형을 이렇듯 넷으로 구분하는 까닭은 ‘무너지는 인문학’에 대한 안타까움 탓이다. 그는 통찰가와 소크라테스가 사라지고, 사변가와 저널리스트 유형이 판치는 현실에 대해 애통한 심사를 감추지 않는다. “(인문학자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로 점점 사변가가 되어갔으며, 소크라테스적 에토스는 절멸했다”고 강조한다. 특히 카우프만이 응시하는 과녁은 인문학의 무덤이 된 ‘대학’이다. 그는 “오늘날의 대학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토론과 비판을 중시하는 소크라테스적 유형”이라고 강조한다. 물론 그가 이 책을 집필했던 시기는 1970년대였다. 하지만 인문학의 붕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21세기적 상황은 한층 열악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문화’를 앞세운 대학들이 통찰가와 소크라테스를 몰아냈다는 그의 지적은 오늘날의 현실에서도 적확하다.

이 책은 카우프만이 스스로 밝힌 대로, 모든 인문학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쓰여졌다. 예컨대 교수와 서평가, 편집자와 저널리스트, 번역가 같은 이들을 염두에 뒀다. 그래서 책을 읽는 방법과 서평을 쓰는 태도, 번역가와 편집자를 향한 비판과 고언 등을 에세이적 문체로 풀어놓는다. 카우프만은 책의 말미에서 “위대한 고전을 보존하고 양육하며, 그것을 통해 인류의 대안과 비전을 탐색하는 것”으로 인문학의 존재 이유를 정리한다. 이어서 ‘탐색과 질문, 비판’을 인문학의 ‘정도’(正道)로 제시하면서, 교수와 언론인, 편집자 등의 지식인들에게 “너 자신을 한 번 돌아보라”고 권유한다.

카우프만은 독일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후, 프린스턴 대학에서 33년간 철학을 가르치면서 5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특히 니체 전문가로 명성이 높았다.(문학수 선임기자) 
 

11. 10. 29. 

 

P.S. 니체 번역서 외 카우프만의 주저는 <니체, 철학자, 심리학자, 반그리스도>인데 니체 '열풍'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선 번역될 기미가 없다. 개인적으론 <실존주의, 도스토예프스키에서 사르트르까지> 같은 선집도 카우프만이란 이름을 기억하게 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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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문학자의 마음가짐과 인문학의 미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11-07 20:04 
    이번주부터 격주로 주간경향에 북리뷰를 싣는다. 첫번째 책으로 고른 것은 월터 카우프만의 <인문학의 미래>(동녘, 2011). 이미 소개기사를 옮겨놓은 적이 있는데, 서평에서는나대로 중요하다 싶은 대목을 간추렸다.주간경향(11. 11. 15) 인문학자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인문학의 미래가 인류의 미래다!” 미국의 저명한 인문학자 월터 카우프만이 <인문학의 미래>에서 던지는 메시지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것은 예언이나 확신이 아니라 희
 
 
헌내 2011-10-29 14:21   좋아요 0 | URL
관련 기사가 생각나서 링크합니다.... ㅠㅠ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logId=4699773&userId=kyoungbin


로쟈 2011-10-29 17:58   좋아요 0 | URL
몇달 전인가 이슈가 됐던 내용이군요...

노이에자이트 2011-10-30 17:13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서는 한길사에서 <헤겔>이 번역되어 헤겔 전문가로 알려진 인물인데 요즘 그 책 구하기가 영 힘들군요.영어권은 독일 철학에 약해서 카우프만이 몇 안 되는 헤겔 전문가잖아요.

로쟈 2011-10-30 17:16   좋아요 0 | URL
영어권이 독일철학에 약하다는 건 좀 옛날얘기 아닐까요?^^ 카우프만이 활동하던 시기였다면 모를까. 찰스 테일러 같은 이도 걸출한 헤겔 전문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10-30 20:56   좋아요 0 | URL
찰스 테일러 것(헤겔철학과 현대의 위기)은 구해놨는데 카우프만 것이 없어서 아쉬워요.그외 영미권 철학자 중 헤겔철학에 정통한 사람이 있으면 알려주세요(핀카드 것은 너무 비싸서 도서관에서 빌려볼까 합니다).그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헤겔 관련서적을 꽤 많이 사모았는데 영미권 것은 찰스 테일러 것밖에 없습니다.<이성과 혁명>은 영어로 나온 것이긴 하지만 마르쿠제를 영미권 학자라고 하기엔 좀 그렇고요.

로쟈 2011-10-30 21:09   좋아요 0 | URL
제가 제일 좋아하는 철학자는 지젝이죠.^^ 저는 대학의 '전문가'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푸른바다 2011-11-06 21:49   좋아요 0 | URL
찰스 테일러의 <헤겔 철학과 현대의 위기>는 일종의 축약본이고 방대한 Hegel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테리 핀카드가 정신 현상학 새로운 영역본을 인터넷에 공개했습니다. 쉽게 다운 받아서 볼 수 있습니다.^^ 영미권이 독일 철학에 약하단 건 정말 옛날 이야기고 제가 알기론 독일보다 독일 철학 연구가 더 발달해 있는 걸로 압니다.^^ 미국이 아직 학문의 세계에선 앞서가고 있습니다.^^

푸른바다 2011-11-06 22:06   좋아요 0 | URL
카우프만의 <니체>가 아직 번역되지 않았었군요... 저도 원서는 갖고 있습니다만. 카우프만은 <정신의 발견>이란 책으로 제게 기억에 남았습니다. 프로이트, 아들러, 융을 비교한. 그는 프로이트 지지자였죠...

로쟈 2011-11-07 07:55   좋아요 0 | URL
<정신의 발견>은 말씀하시니 생각나네요. <니체>가 번역되지 않은 건, 국내 니체 수용이 찻잔속의 태풍이 아니었나란 생각을 하게 돼요. 프랑스판 '새로운 니체'만 수용된 감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