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동물학 읽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펴내는 월간지 '책&'(393호)에 실은 이번달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주제로 한 책들을 골랐다.  

  

책&(11년 4월호) 동물과 인간의 공존

“한 국가가 얼마나 위대하며 도덕적으로 진보했는지는 동물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주 인용되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과연 한국은 얼마나 위대하며 도덕적으로 진보했을까. 우리는 동물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런 물음이 조금 사치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우리의 실상이다. 전례 없는 구제역 사태로 가축 350만 마리를 살처분했고, 게다가 매몰지의 침출수로 인해 또 다른 재앙이 예고돼 있는 것이 우리의 처지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대책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이어서, 공장식 밀집사육의 문제점이 다시금 지적되고,  가축의 면역력을 키우는 친환경 축산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은 인간과 동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당장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돼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건 강제할 수 없을뿐더러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다만 동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함께 ‘육식주의’를 반성의 도마 위에 올려놓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때 몇 권의 책이 도움을 줄 수 있겠다.  

멜라니 조이의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는 ‘육식주의를 해부한다’는 부제대로 육식주의를 정면으로 문제 삼는다. ‘육식주의’란 말 자체가 ‘채식주의’에 견주기 위한 저자의 신조어다. 그는 “특정 동물들을 먹는 일이 윤리적이며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체계”를 육식주의로 정의한다. 그리고 그런 명명을 통해서 육식주의가 하나의 입장이자 이데올로기이며 동시에 폭력이라는 걸 시사한다. 한국인에게선 큰 차이가 없기는 하지만, 쇠고기와 개고기에 대한 태도가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가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내면화된 육식주의’의 인식이 동물의 대상화와 몰개성화, 이분화를 통해서 작동한다고 말한다. 동물을 생명체가 아닌 ‘살아있는 물건’ 정도로 간주하고 독립된 개체이지만 추상적으로 뭉뚱그려서 그들을 인식하며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눈다. 고기는 즐겨먹어도 송아지 고기를 먹는 건 반대한다거나 개고기를 먹는 건 혐오스럽다고 여기는 태도는 그래서 가능하다. 하지만 똑같이 육식주의를 공유하고 있을 뿐이며 그 결과 미국에서만 한 해에 100억 마리의 동물이 도살당한다. 초당 317마리 꼴이다. 이러한 현실이 바뀔 수 있을까? 저자는 수십억 마리의 동물이 겪는 극심한 고통을 직시하고 공감하고 증언하는 일이 변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함께 느낌’, 곧 공감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 새로운 관계는 어떤 것일까?   

동물행동학자 마크 베코프는 <동물 권리 선언>에서 ‘온정으로 맺어진 공동의 연대’를 제안한다. 사실 성서의 동물관에 따르면, 동물은 인간보다 열등하며 인간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 당연하게 간주됐다. 서양에서는 그러한 차별이 동물은 이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당화돼 왔다. 하지만 오늘날의 과학은 동물의 지각과 감성능력에 관한 놀라운 사실들을 계속 발견해내고 있으며, 저자는 이러한 발견에 근거해 우리의 가치체계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살해당한 해변가의 하니걸을 추모하는 듯 행동한 수컷 바다거북이나 죽은 새끼를 품에 안고 깊은 슬픔에 빠진 어미 고릴라의 모습은 동물에게 인간의 정신적 특성을 부여하는 ‘앤스로포몰피즘’ 혹은 의인관(擬人觀)이 과연 인간의 고안품인가를 되묻게 한다. 그들이 우리처럼 느낄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가까운 존재로서 그들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동물과 그렇게 온정적으로 공존함으로써 우리가 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우리의 삶도 더 윤택해질 거라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당장에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뭔가 현실 가능한 것 그리고 온정을 베풀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새로운 학문으로서 인류동물학의 권위자인 할 헤르조그는 <우리가 먹고 사랑하고 혐오하는 동물들>에서 동물에 대한 우리의 사고와 성찰의 지평을 더 확장시킨다. 그는 15년 동안 채식주의자로서 도덕적 지조를 지켜온 한 인류학 박사가 구운 뇌조고기 맛에 반하면서 단번에 채식주의에 등을 돌린 사연도 들려주고, 자신이 애완용으로 키우는 보아뱀 샘에게 과연 고양이를 먹이로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는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서는 흑백논리적 윤리로 재단할 수 없는 ‘괴로운 중간지대’가 있다는 것이 그의 문제의식이다. “우리가 사랑하고 혐오하며 잡아먹기도 하는 동물에게 우리가 보이는 태도와 행동, 유대감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함을 보여주는 학문이 바로 인류동물학”이란 저자의 결론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사실 삶의 근원적인 복잡함을 사유하는 것이 철학의 몫이라면, 인류동물학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철학이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이렇게 바뀌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동물을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11. 04. 10.  

 

P.S. '동물철학'과 관련하여 내가 먼저 떠올리는 책은 데리다의 'The Animal That Therefore I am"이다. 언젠가 동물철학에 관한 책들을 몇권 모으면서 구한 책인데, 분량도 얇기에 번역되면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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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먹을수록 죽는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4-20 18:04 
    육식 혹은 육식주의를 비판한 책들이 여럿 출간된 바 있는데, 결정판이 나왔다. 최소한 제목상으로는 그렇다. <고기, 먹을수록 죽는다>(현암사, 2011)니까. 부제는 '육식에 관한 10가지 논점과채식주의를 향한 선언'이다. 육식 문제가 점점 흡연 문제와 동일시되지 않을까 하는 전망도 불가능하진 않을 듯싶다. 공공장소에서는 육식을 금하는 것 같은. 여하튼 고기를 먹어도 이젠 목숨 걸고 먹어야 하는 듯하다. 영화 <카페 느와르>에서 햄
 
 
푸른바다 2011-04-10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동물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 같네요. 그런데 어째 피터 싱어가 완전히 빠졌네요. 모든 사람을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는 동물 철학에서 충분히 중요한 사상가일텐데요...^^

로쟈 2011-04-11 23:40   좋아요 0 | URL
네, 코너가 최근에 나온 책들에 대한 리뷰여서요. 싱어의 <동물해방> 등은 전에 다룬 적이 있어서 포함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