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are you?

화제성에서는 리비아의 전쟁과 일본 대지진마저도 잠재운 듯 보이는 것이 '신정아 신드롬'이다(알라딘에서는 단연 더 그렇다). 베스트셀러로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정의란 무엇인가>와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이어서 자전에세이 <4001>은 한국사회의 무의식을 보여주는 지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정아 신드롬 원인을 살펴본 기사와 과거 '신정아 게이트'의 의미에 대해 짚은 문화평론가 이택광 교수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사안이 미술계의 병폐와 연애 스캔들에서 사회 전반으로 번진 느낌이다.    

한국일보(11. 03. 25) 신정아 자서전 신드롬 왜 

"신정아의 책 한 권이 서울의 종이값을 올리고 있다."

지난 22일 출간돼 유례없는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신정아씨의 자전에세이 <4001>을 두고 항간에 도는 말이다. 이틀 만에 1쇄 5만부가 모두 팔려나갔고 추가 인쇄될 책을 구하기 위해 서점들은 출판사에, 사람들은 서점에 줄을 섰다. "출판계에서 통상적인 경우는 아니다"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신씨의 책에 이토록 열광케 하는 것일까.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는 "선정성과 정치성이라는 두 요소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집계에 따르면 출간 후 이틀 동안 신씨의 책을 가장 많이 구입한 층은 50대 남성(17.4%)이었는데, 이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두 분야에 큰 관심을 보이는 층"이라며 "여기에 민감한 세대의 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30대 여성(16.3%)도 높은 구매력을 보였다"며 "이는 신씨와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이 흔히 보이는 애증의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신씨를 시기하고 질투하면서도 같은 여성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동병상련의 정도 함께 느낀다는 것이다.

책의 인기 비결을 설명하는 데는 관음에 대한 독자들의 욕구도 빠지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신과 전문의는 "과거 연예인 X파일이 폭발적이었던 것은 결국 실명이 나왔기 때문"이라며 "이번의 경우에도 정운찬 전 총리 등 다수의 권력층, 지도층 인사들의 실명이 거론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책의 서술 방식도 '차 안에서 추행 당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웃옷 단추를 어떻게 했다'는 식으로 매우 구체적"이라며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한국 사회에 정의 열풍을 일으킨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과도 연결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택광 교수는 "일방적인 주장이라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신씨의 책에 진실이 들어 있다고 본다면 이는 그 만큼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된다"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기를 끄는 책들은 대개 부조리와 정의에 관한 이야기인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신씨의 '용기 있는 행동'도 책이 인기를 끄는 이유로 분석됐다. 문학평론가 김갑수씨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신정아씨의 입장에 대입한다면 많은 경우 소리없이 지내다 세상으로부터 잊혀지기를 바랄 것"이라며 "하지만 신씨는 여성을 업무상의 파트너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보는 남근주의 사회의 병폐를 온몸으로 겪은 한 여성으로서 이를 세상에 고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복수 차원을 넘어서는 사회정의 구현이라는 측면도 있다는 분석인 셈이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신씨의 복수극이 책의 인기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택광 교수는 "책 제목으로 자신의 수감번호를 선택한 것은 '당신들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신씨는 과거 속죄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쓰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지만, 실제로는 복수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신분석학자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감옥에 갔다 온 사실을 전면에 내세울 수 없다"며 "신씨는 책을 통해 '난 죄수가 아니다, 피해자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책 내용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일방통행식의 폭로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도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정신과 전문의 이창한씨는 "신씨는 자신의 책을 통해 세상의 한복판에 보란 듯이 다시 섰다"며 "터뜨리면 세상의 주목을 받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인생역전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갑수씨는 "'좋은 게 좋다'며 나쁜 것들은 감춰놓고 보는 우리 사회가 보다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정민승기자)   

경향신문(07. 09. 21) 卞·申이 진짜 보여준 것

갑자기 사건의 양상은 학력위조에서 섹스스캔들로 바뀌어버렸다. ‘신정아 게이트’라는 표현 자체가 이 사건의 스펙터클을 더욱 자극한다. 상류층 인사들이 신정아라는 ‘팜므 파탈’을 두고 치정극을 벌인 것처럼 몰고 가는 분위기다. 때는 바야흐로 대선국면. 신정아씨에 쏠린 관심 때문에 여권 대선후보 경선에 차질이 빚어져서 검찰이 이 사건을 빨리 종결지으려 한다는 소문도 있고, 그 반대로 야당이 여당의 대선구상을 망쳐놓기 위해서 신정아 스캔들을 부풀리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말들도 각양각색이다.

-내용없는 스펙터클 잔치 전락-
그러나 그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다. 신정아씨에 대한 언론의 전언은 언제나 뜬금없다. 오늘은 동국대 이사장이 신정아씨에게 거액을 줬다는 보도가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 어떻게 줬는지 알 길이 없다. 이사장이 아무리 해명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기대한다. 언론은 이런 욕망에 화답하고, 이야기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든다. 이 미궁에서 길을 잃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자. 이 사건이 어떤 의미에서 이토록 중요한 사안인가? 정치권이 이 사건을 어떻게 이용해먹든, 그건 시간이 지나면 시시비비가 가려질 문제다.

여기에서 정작 주목해야 할 건 이 사건이 이른바 한국 미술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사실이다. 신정아씨는 변양균씨를 ‘예술적 동지’라고 불렀는데, 바로 이 점에서 이들이 말하는 미술이라는 게 두 사람의 스캔들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이 판명 난다. 내가 보기에, 이 대목이 훨씬 의미심장하다. 이 둘이 어떤 사이이든, 이 둘이 연인 사이라는 그 ‘결정적 물증’이 무엇이든, 변양균씨가 신정아씨에게 노골적인 e메일을 보냈든 말든, 오직 문제가 되는 건 이들이 ‘예술을 위해’ 의기투합했다는 사실이다. 이 사적이고 은밀한 관계로 인해 신정아씨는 시장성 있는 ‘스타급’ 큐레이터로 포장될 수 있었던 거다.

도대체 이들이 함께 뜻을 모을 수 있었던 그 예술은 무엇일까? 사실 예술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에게 신정아씨와 변양균씨의 예술은 남의 나라 얘기에 불과하다. 신정아씨가 ‘예술’을 위해 한 일이라곤, 원로들에게 싹싹하게 대하고, 변양균씨 같은 고위급 공무원과 뜻을 모아, 돈도 벌고 명성도 쌓은 거다. 신정아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처벌하는 문제와 이 문제는 엄연히 다른 사안이다. 오히려 후자가 더 긴박하고 심각한 건지도 모른다. 법적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미술계에 이런 사적 관계의 은밀한 거래를 제어할 능력이 없다는 걸 이번 사건은 명확하게 보여줬다. 이와 더불어 명문대 학벌이 경쟁의 도구로서 막강한 능력을 과시한다는 세간의 믿음을 재확인시켰고, 엉뚱하게도 방송 연예계에 허위학력 문제가 만연해 있다는 점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런 걸 보면, 신정아 사건의 후폭풍은 참으로 거셌다. 평소에 신정아가 누군지도 몰랐던 애먼 이들이 파편에 맞아 나가떨어졌다. 허위로 쌓아올린 거대한 성곽의 실체가 드러났던 거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 대한 반성도 없이, 오직 언론은 이 사건을 스캔들로 만들어 세간의 시선을 더 끌어보고자 열성을 부리고 있다. 이게 정치적인 꿍꿍이 때문이든, 아니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순수한 기자정신 때문이든, 이 사건은 이제 내용 없는 스펙터클의 향연으로 전락해버렸다.

-인맥에 휘둘린 미술계 현실-
예술이 근대화의 견인차 역할을 한 적이 없는 한국에서 이번 사건은 필연적으로 예견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만난 어떤 미술인은 신정아씨 때문에 그나마 성장의 기미가 보이던 미술계가 초토화되었다고 했지만, 나는 그 성장의 기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걸 이번 사건이 증명하는 게 아닌가 한다. 지금 한국 미술에 필요한 건 성장이라기보다, 미술계가 사사로운 인맥과 금전주의에 휘둘리는 현실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라고, 이번 사건은 웅변하고 있는 거다.(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어학부) 

11. 03. 25.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itty 2011-03-25 17:35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미친듯이 팔리는 대한민국이 무섭습니다.

로쟈 2011-03-27 18:05   좋아요 0 | URL
MB를 대통령에 뽑은 거에 비하면야...

헌내 2011-03-25 21:54   좋아요 0 | URL
노이즈 마케팅의 진수군요... -_-
한국 사회도 이해가 안 되고요..

로쟈 2011-03-27 18:05   좋아요 0 | URL
알고보면 다 이해되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세실 2011-03-26 08:45   좋아요 0 | URL
어제 수업시간에 이 책을 도서관에 비치하느냐 마느냐로 잠시 토론을 했어요.
전 개인적으로 사기 보다는 차라리 도서관에 비치하는 쪽이 맞다고는 생각하지만
읽고 싶지는 않아요. 왠지 상술에 놀아나는 느낌이랄까. 선데이서울 읽는 느낌일꺼 같아요.

로쟈 2011-03-27 18:07   좋아요 0 | URL
비치불가용까지는 아닌 듯한데요. 이용자들의 수요가 있다면요...

비로그인 2011-03-27 09:09   좋아요 0 | URL
많이 배운 사람도 까놓으면 시정잡배랑 별 다를거 없다는 식의
반지성주의 반지식인주의도 이런 책 인기에 한몫합니다.

철학책보다는 철학자의 사생활과 스캔들, 이중성을
다룬 책이 나오면 훨씬 잘 팔리겠죠.

로쟈 2011-03-27 18:07   좋아요 0 | URL
반지성주의이기도 하지만 반권위주의이기도 해서 양면적인 듯합니다...

하영-이룰수없는아련한첫사랑- 2011-03-29 19:17   좋아요 0 | URL
너무 많은 책들의 홍수속에서.... (늘 세상에 필요없거나 의미없는 존재는 없다고 믿지만)
정말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뻥하게 만드는 책들의 홍수속에 있으면
가끔은 나오지 말았으면 아니 나올 필요가 없는 책들은 좀 사라져 주길 바라곤 합니다.
(오역되어 원래의 가치를 흐리는 책들을 물론 포함해서요)
이 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보지 않아서 판단하기 힘들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 정도밖에 안되는 에세이나 잠시 비치된 잡지에 실릴 만한 읽을꺼리 정도인데 '책'이 되어 '출판'되고 심지어 '무수히 팔려나가기'까지 하는 건 아닌가요?
그걸 확인하기 위해 읽을 이유는 저한텐 없지만, 혹시 그래야 하는 분들에겐 '책 값'이 아까울 지 모르니 도서관엔 비치하심이^^
('그런 정도의 책'이 워낙 많이 나오는 우리 사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