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저녁을 잘 먹고 소화 안 되는 기사를 읽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미술평론가 아서 단토의 신작이 출간된 건 반갑고, 게다가 그 책이 지난달에 기대를 표한 <앤디 워홀>(2009)이라면 놀라울 정도인데, 정작 '번역서'라고 나온 <앤디 워홀 이야기>(명진출판, 2010)는 엉뚱하게도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의 하나로, 앤디 워홀의 전기를 소설처럼 꾸며서 간추린 책이다.
청소년들에게 21세기가 원하는 롤모델을 소개시켜주는 '청소년 롤모델' 제10권 '앤디 워홀 이야기'. 미국 원로 미술평론가이자 예술철학자 아서 단토가 일상과 예술, 그리고 산업 사이를 가로막는 벽을 허문 '팝 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의 창조적 인생 속으로 청소년들을 초대하고 있다. 류머티즘 무도병으로 인해 병약했으나 특유의 예술 세계의 바탕을 다져간 어린 시절부터 따라간다. 특히 앤디 워홀의 인생 속에는 21세기를 움직이는 가장 핵심적 가치인 '다양성'과 '컨버전스'가 생생하게 살아숨쉼을 보여준다. '멀티 플레이 창조인'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롤모델이 되어줄 것이다. 앤디 워홀은 자신이 사는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게 예술과 비즈니스를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상업미술가이자 순수미술가로서 성공을 거두었다. 스스로를 '예술 공장 공장장'이라고 부르면서 회화부터 영화까지 풍부한 예술 작품을 남겼다.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도 부수어내, 평범한 사람들도 그것을 마음껏 향유하도록 인도했다. 특히 코카콜라 병마저도 예술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등 평범한 것을 예술로 승화시켜 새로운 것으로 창조시켰다.(아시아경제)
일단 이런 소개기사에서 "미국 원로 미술평론가이자 예술철학자 아서 단토가 일상과 예술, 그리고 산업 사이를 가로막는 벽을 허문 '팝 아트'의 대가 앤디 워홀의 창조적 인생 속으로 청소년들을 초대하고 있다"는 말은 '작문'이거나 '거짓말'이다. 원저의 서문을 읽어보니(물론 번역본엔 번역돼 있지도 않다) 단토는 그런 걸 의도하지도 않았다. 여러 훌륭한 전기를 토대로 자신의 예술철학에 영감을 준 워홀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것이 책의 취지다.
그렇게 해야 '팔리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식으로 원저자와 판권계약을 한 책인지, '아서 단토 지음'이란 말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하다. 편집자주에 따르면, "원저작물에 어려운 부분이 많아 엮은이를 따로 두었"다. 차라리 편집자를 '저자'로 해서 책을 냈으면 훨씬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원저와는 관계가 없는 책이니까. 청소년 롤모델로서 '앤디 워홀'이 불만스럽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책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고, 나는 말릴 생각이 전혀 없다. 하지만 불만은 왜 엉뚱한 저자의 책을 망쳐놓느냐는 것이다(정식 계약을 한 책이라면, 단토의 이 책은 다시 번역될 수 없다. 최소한 수년간은). 이런 게 출판의 '롤모델'인가?
기대했던 책이 어이없게 출간돼 더없이 불쾌하다...
10. 0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