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의 가치혁명을 위하여

어제 중앙게르마니아 강연이 끝나고 뜻밖에도 인디고 팀원들에게 이번에 나온 국제판 <인디고>(2010년 봄호)를 선물로 받았다. 안 그래도 어제 오전에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이다. 지난번에 <가치를 다시 묻다>(궁리, 2010)도 나를 놀라게 한 책이었는데, 깔끔한 장정의 국제판은 한번 더 놀라게 한다. 다음 세대 인문학에 대한 걱정은 내 몫이 아닌 듯하다. 하긴 지젝의 <시차적 관점>을 읽는 중학생도 있다고 하니 그저 놀라울 따름. 잡지 창간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국일보(10. 04. 30) 부산 청소년들이 만드는 국제 인문학잡지 '인디고' 창간 

부산의 인디고서원은 국내 하나뿐인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이다. 수영구 남천동 학원가에 자리잡은 이 책방은 2004년 8월 문을 연 이래 놀라운 실험들을 해왔다. 참고서나 상업적 베스트셀러는 팔지 않는다. 서가는 온통 인문학 책 차지다. 더 좋은 세상과 참된 삶을 고민하고 실천하려는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양분이 될 책들만 엄선해 꽂아놓았다.

그동안 해온 활동은 더 인상적이다. 저자를 초청해 대화를 나누는 '주제와 변주', 주말의 독서 토론 모임, 자유ㆍ저항ㆍ진실 등 인문학적 가치를 주제로 토론하는 '정세청세' 등은 중고생이 주축이다. 23호를 낸 격월간 인문 교양지 '인디고잉(INDIGO+ing)'도 인디고 아이들이 직접 만든다. 입시 지옥에서 점수의 노예로 사는 한국 청소년의 현실을 생각하면 꿈만 같은 일이다.

인디고서원이 또 한 번 혁명적 발걸음을 내딛었다. 인디고 아이들이 전세계 지성들과 함께 만드는 국제판 인문학 잡지 '인디고(INDIGO)' 를 창간, 29일 1호를 선보인 것이다. 전세계로 보내는 영어판 계간지다.

잡지를 통해 인문학적 가치와 실천을 위한 국제적 담론을 펼치고 공유하려는 연대의 장에 편집위원장을 맡은 철학자 겸 평화운동가 브라이언 파머(스웨덴 웁살라대 교수)를 비롯해 세계적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등 6대륙에서 11명의 지성인과 실천가들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이메일 교류와 인터뷰 등을 통해 인디고서원의 활동을 알고 적극 응원하게 된 이들은 창간호에 무보수로 글을 썼다. 한국의 고등학생과 대학생 등 청소년들의 글이 나란히 실렸다.

이 잡지 발행인은 인디고서원 대표 허아람(39)씨. 그는 부산 지역에서 올해로 21년째 청소년 독서 지도를 통해 인문학 운동을 하고 있다.

국제판 '인디고'의 한국인 편집진은 편집장 박용준(27)씨를 포함해 3명이다. 박씨는중학생 시절부터 허씨가 이끄는 모임에서 인문학 책을 읽으며 성장한 청년이다. 그는 "국제판 '인디고'는 전지구적 변화를 꿈꾸는 새로운 인문적 연대의 시작이자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려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라고 말했다.

파머 교수는 국제판 '인디고' 창간호에 기고한 글에서 "병 속에 담긴 편지나 풍선에 달린 편지처럼 이 잡지가 전세계로 전달되어 대의와 희망을 향한 소통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인디고 아이들이 세계의 지성들과 교류하게 된 데에는 파머 교수의 역할이 컸다. 세계 지식인 16명과 하버드 대학생들의 대화를 정리한 <오늘의 세계적 가치>가 2007년 1월 국내 번역 출간되자, 인디고 아이들이 거기 참여한 파머 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책 내용을 비판하며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적해줘서 고맙다며 오라고 했다. 그해 4월 인디고 아이들은 스웨덴으로 가서 파머 교수를 만났다. 인디고의 대의와 활동에 감탄한 그는 노엄 촘스키 등 세계의 지성과 실천가들을 소개해줬다.

창간호 특집은 '가치를 다시 묻다'. 인디고서원이 8월에 여는 제2회 인디고 유스 북페어의 주제이기도 하다. 올바른 가치는 무엇이며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책을 중심에 놓고 토론과 강연, 공연 등으로 풀어가는 행사다. 외국에서 40여명의 지성들이 와서 인디고 아이들을 만날 예정이다. 



이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인디고 아이들과 청년들은 세계의 지성과 실천가들을 찾아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최근 나온 단행본 <가치를 다시 묻다>는 그들을 인터뷰하고 책을 읽으며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국제판 '인디고' 창간호는 당시 만났던 미국의 진보적 지성 하워드 진을 표지인물로 실었다. 그는 올해 1월 27일 세상을 떠났다. 인디고 팀과 생애 마지막 인터뷰를 한 지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인디고서원 허 대표는 " 국제판 '인디고' 창간은 어느날 갑자기 벌어진 놀라운 게릴라전이 아니라 인디고서원이 지난 6년 간 걸어온 길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자본의 세계화를 뛰어넘는 인간적 가치를 공유하며 전지구적 변화를 일으키는 공론의 장으로서 이런 잡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요즘같은 인터넷시대에 웹진으로 만들지 않고 굳이 종이책으로 내는 것은 더 많은 이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한국 인구의 75%가 인터넷을 사용하는 반면, 아프리카에서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0.5%밖에 안 된다고 그는 부연했다. "쓰레기더미에서 먹을 것을 뒤지다가 발견한 잡지 한 권으로 인생이 바뀐 아프리카 소년의 이야기처럼, 우리 잡지가 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삶의 변화를 이끄는 매체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오미환기자) 

10. 05. 01.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그레이효과 2010-05-01 10:40   좋아요 0 | URL
시차적 관점을 읽는 중학생이라. 와 ^^. 정신이 번쩍 드네요.

로쟈 2010-05-01 10:50   좋아요 0 | URL
네, 지젝을 읽는 고등학생까지는 제가 아는데, 갈수록 청출어람입니다.^^

아포지 2010-05-01 12:51   좋아요 0 | URL
중학생에게 "너나 잘 하세요..."라고 한 마디 들은 것 같습니다.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로쟈 2010-05-02 16:56   좋아요 0 | URL
요샌 외국어를 잘하는 초등학생도 많고, 인문서를 읽는 중학생도 많다네요. 편차가 크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요...

미지 2010-05-01 18:55   좋아요 0 | URL
우리 중학교 때, 그러니까 70년대에 사르트르나 까뮈를 읽었거든요... 근데 요즘 너무 암울한 상황과 경쟁 논리에 몰리다 보니, 그때 우리 나이의 요즘 아이들이 그런 책을 당연히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못하는 불구 상태에 제가 빠져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오네요. 참 반가운 소식입니다. 인디고 이끄시는 허선생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비판 정신과 함께 긍정적 실천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요.. 머리를 한 대 꽝 맞은 느낌입니다.

로쟈 2010-05-02 16:57   좋아요 0 | URL
네, 인디고 같은 성공사례가 더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