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케 마코토-김훈-기타노 다케시

알라딘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마쓰오카 세이고의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추수밭, 2010)를 읽었다. 지난 금요일에 서점에 잠깐 들렀다가 무슨 책인가 싶어 펼쳐봤는데, 우연히도 이런 대목이 눈에 띄었다. 자신의 '링크를 늘리는 편집적 독서법'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니시다 기타로의 책과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책과 오오시마 유키코의 만화책과 에도가와 란포의 소설책과 롤랑 바르트의 철학책이 있다고 합시다. 제가 이 책들을 읽고 나면 거기에는 다양한 '메모' '강조' '내용 분류' '인용 대상'이 남게 됩니다. 이런 것들을 별도의 노트에 각 항목별로 옮겨놓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작업은 머릿속에서는 도저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조금만 해보면 알게 됩니다만, 니시다 기타로와 타르코프스키와 오오시마 유키코와 에도가와 란포와 롤랑 바르트의 일부 구절이나 문장은 놀랄 정도로 같은 항목에 속하거나 인접해 있습니다.(156쪽) 

이전에 읽은 나루케 마코토의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어라>(뜨인돌, 2009)와는 종류가 좀 다른 책이란 생각이 들어서 수중에 넣기로 했다. 가령 나루케와 달리 마쓰오카는 문학을 존중한다. 그가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꼭 읽었으면 하는 책'으로 추천하는 작가가 도스토예프스키이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한 에피스드도 털어놓고 있다. 나도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읽은 소설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다.   

여하튼 타르코프스키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서 그날 버스 안에서 반쯤 읽고, 오늘 저녁을 먹고 나머지 반을 읽었다. '지의 거인'(나루케 마코토)이나 '독서의 신'이란 평판을 얻고 있는 저자의 독서법을 일목요연하게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유익했다. '책쟁이'나 '독서가'라면 다른 명망가의 서재를 한번쯤 엿보고 싶은 호기심도 갖고 있는 것이니까. 읽다 보니 '다독술'보다는 그의 '편집공학', 그러니까 저작술이 궁금해서 <만들어진 일본>(프로네시스, 2008)이나 <지의 편집공학>(지식의숲, 2006)도 읽어보려 한다. 다독술 자체는 크게 새로울 게 없지만, 요즘처럼 원고에 치일 때 도움을 받을 만한 뭔까 뾰족한 (편집공학적) 글쓰기 수단이 있을까 싶어서다. 그런 게 있다면 좀 알아두어야겠다(밀린 일들 때문에 휴일마다 '우울증'에 시달리느니!).  

이미 리뷰들이 많이 올라온 책이라 내용에 대해선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것 같고, 두 가지 생각할 거리와 오류에 대한 지적만 챙겨놓도록 한다. 생각할 거리란 건 독서문화와 관련된 것인데, 먼저 북클럽 얘기. 마쓰오카에 따르면 서양과 달리 일본에서도 별로 발달하지 못한 게 북클럽이다.  

"북클럽은 일종의 독자 조직입니다. 물론 책을 읽고 책을 사랑하기 위한 조직이나 모임입니다만, 여기에서 책을 공동 구입하거나 배포하는 행위가 일어납니다. 독일에서는 연간 2,000만 권 정도가 북클럽을 통해 유통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도 이런 북클럽 회원이 약 1,000만 명 이상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258쪽)

일본에서는 왜 이런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는가란 원인을 분석하면서 마쓰오카는 그 중 한 가지로 교육 문제를 든다. "서양에서는 어린이 교육의 중심을 '다독'과 '토의'에 두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260쪽)라는 게 그의 주장이고 나도 전폭적으로 공감한다. '경쟁력 교육' 같은 헛소리를 늘어놓기 전에 '독서 교육'이나 제대로 하면 좋겠다.  

그리고 역자와의 대담에 나오는 것인데, 일본의 대형서점 마루젠 본점에 '마쓰마루' 서점을 오픈했다는 얘기. 마쓰오카의 '마쓰'와 마루젠의 '마루'를 결합한 이름으로 책의 분류나 배열을 모두 마쓰오카가 기획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일반서점의 도서 분류법 대신 새로운 방법으로 책을 배열하고 있습니다. 잡지나 단행본, 문고판, 고서, 수입서가 하나의 책장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책이 똑바로 꽂혀 있지 않고 일부러 옆으로 눕혀 놓은 책도 있고, 겹쳐서 꽂아 뒤의 책이 잘 보이지 않기도 합니다. 그리고 같은 책이 여기저기에 여러 권 꽂혀 있기도 합니다."(293쪽) 

개인 서가라면 모를까 일반서점에서 이런 독창적인 분류/배열을 시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대학로의 이음책방 정도가 떠오르는데, 규모가 너무 작다는 아쉬움이 있다. 서점마다 할인율이나 인테리어로 경쟁하기보다는 이런 개성적인 분류/배열 방식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오류라고 한 건 대단한 게 아니라 표기와 정보에 관한 것이다. 73쪽에서 니체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 '루 자로메'는 '루 살로메'가 우리의 통용 표기이고, 156쪽 각주에서 타르코프스키 소개에 나오는 <버찌 통조림>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작품이다. 무얼 잘못 읽어야 '버찌 통조림'이 되는 것인지? '벤야민'(73쪽)과 '베냐민'(214쪽) 표기에 혼동이 있고, 211쪽 각주에서 푸코의 책 <광기와 비이성>은 무얼 말하는지 모르겠다. <광기의 역사>라면 일본에서도 그렇게 번역되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215쪽, 도나 해러웨이의 <원숭이와 여자와 사이보그>는 <유인원,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동문선, 2002)로 번역돼 있다.  

끝으로, 일본 출판계에 대한 부러움을 갖게 한 책 두 권. 사실 일본책을 종종 들여다보면서 얻는 수확은 서지정보이다. 때론 본문보다도 그러한 '디테일'에 더 이끌리기도 한다. 마쓰오카의 강점은 과학책도 열심히 많이 읽었다는 것인데(하지만 대학은 불문과에 진학하는 '바보짓'을 했다), 그건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다. 어떤 식으로 읽었나?  

"처음에는 이른바 명저라고 불리는 책을 구하거나 도서관에서 찾아 읽어야 할 목록을 만듭니다. 양자역학은 폴 디락이나 도모나가 신이치로입니다. 전자기학은 역시 파인만이고, 상대성이론이라면 아인슈타인이지요."(71쪽) 

 

이런 책들이 처음엔 '이빨'도 들어가지 않지만 다른 참고서나 비슷한 유형의 책으로 보충해나간다는 것. 도모나가 신이치로는 1965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일본의 물리학자라 한다. 국내에도 <물리학이란 무엇인가>(사이언스북스, 2002), <유카와 히데키와 도모나가 신이치로>(범양사, 1994), <양자역학적 세계상>(전파과학사, 1974) 등이 소개돼 있다. 파인만이나 아인슈타인은 물론 국내에도 여러 책들이 나와 있다.    

  

문제는 폴 디락. 교양과학서에서 자주 이름을 접하지만 국내에 디락의 책이나 강의는 소개돼 있지 않다. 찾아보니 일본에서는 폴 디락의 <양자역학>이 1959년에 이와나미에서 번역돼 나왔다. 이게 현재의 '수준차'가 아닌가 싶다. 한 끝 차이일까? 사실을 말하면 두 끝 이상의 차이다. 자신의 독서일기 <센야센사쓰(千夜千冊)>(전7권과 부록으로 일단 간행됨)에 대해 소개하면서 마쓰오카가 다독술의 핵심인 '키북'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 

"그리고 제3권의 10장 '이미지의 극장'에서는 발트루 사이티스의 <환상의 중세>, 루돌프 비트코베어의 <이미지와 상징>, 프란시스 예이츠의 <세계극장>, 그리고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파사주)와 스기우라 고헤이의 <형태의 탄생>이지요. 이 책들에서는 몇 백 권의 책이 연쇄적이고 중층적으로 연결됩니다."(214쪽)

  

거명된 책 중에서 <아케이드 프로젝트>와 <형태의 탄생>은 우리에게도 소개되었다. 하지만 나머지 세 권은 먼 나라의 책들이다(비트코베어의 다른 책으로 <르네상스 건축의 원리>(대우출판사, 1997)는 검색이 된다).   

특히 '리투아니아의 상징주의 시인이자 번역가'로 소개되는 '발트루 사이티스Baltru Saitis'란 이름이 눈에 밟히는데, 일단 이름부터가 잘못 표기됐다. '요르기스 발트루사이티스Jorgis Baltrusaitis'다('발트루샤이티스'라고 읽는 게 발음에는 더 가깝다). 이름도 오기할 정도로 생소하니 소개됐을 리는 만무하다. 영어권에도 형태에 관한 에세이 한 권이 소개돼 있는 정도이고, 불어로나 책들이 좀 나와 있다. 아래가 불어본 <환상의 중세>. 이게 일어본으로는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것도 '격차'라면 앞으로 더 좁혀지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일본에서도 잘 안되고 있다는 북클럽을 좀 활성화해볼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고민들을 해보면 좋겠다... 

10. 04. 04. 

P.S. 독서가로서 마쓰오카 세이고가 떠올려주는 국내인은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과 장석주 문학평론가다. 두 사람의 편집공학과 다독술을 결합하면 얼추 마쓰오카가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마침 한기호 소장이 마쓰오카에 대해 소개한 칼럼이 있기에 참고삼아 옮겨놓는다.  

 

한겨레(07. 08. 04)[한기호의 출판전망대] 매너리즘 사고를 뒤집고 싶다면 

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대학 4학년 때 아버지가 상당한 빚을 남겨놓고 갑자기 돌아가셨다. 매달 대졸 초임 월급의 2.5배 정도를 갚아도 얼추 5년이 걸릴 정도의 거액이었다. 어머니는 울며불며 네가 빚을 갚아달라고 매달렸다. 순간 이것으로 인생 끝났구나 하는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여러 방안을 모색하다 그는 광고대리점에 취직했다. 딱한 사정을 들은 대리점 사장은 급여는 높게 책정할 수 없지만 커미션(마진)은 나름대로 생각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광고 하나씩 따내서는 결판이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생각해낸 것이 두 개씩 한 쌍의 광고를 따내는 것이었다. 맥스 팬터와 전일본항공, 산토리위스키와 토라야, 대의류옥과 BIC볼펜, 학생 원호회와 게키단 사계 등의 조합이었다. 화장품(맥스 팬터)과 비행기 타기(전일본항공)에서 ‘나들이’라는 연결점을 찾아냈듯이 두 회사나 두 제품 사이의 ‘어떠한 관계’, 즉 한 쌍으로 묶을 만한 무언가를 찾아낸 것이다.

문제는 한 쌍을 어떻게 관계 설정하는가였다. 그래서 밤마다 타깃을 몇 개인가 선정해 놓고 한 쌍을 선택해서 기획안을 짰다. 그러자면 전체 스케치도 필요했고 때로는 가상 캐치프레이즈나 카피도 붙여야 했다. 매일 철야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밤을 새워가며 아침까지 준비했다. 준비가 끝나면 두 회사에 기획서와 전체 스케치를 갖고 찾아갔다. 절대 사적인 인맥은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주위의 소개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일은 상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그렇게 즐기는 과정에서 예상했던 5년보다 2년이나 빨리 빚을 갚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돈보다 더 소중한, 인생 전체를 좌우할 무척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나아가 어떤 기업이나 상품(제품)은 모두 ‘새로운 관계의 상대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의 모든 실태와 책과 정보는 무언가와 연결되고 싶어서 좀이 쑤신 상태이다 보니 정보는 절대로 혼자서 존재할 수 없었다.

오늘날 하나의 업종은 종적 관계로, 시장은 철저히 세분화되어 있어 날개를 펼치기가 쉽지 않다. 또한 날개를 달아도 어디로 날아가면 좋을지를 알기 어렵다. 기업과 상품뿐 아니라 학문과 기술도 무언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지만 좀처럼 연결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광고를 따낸 경험을 통해 이러한 현실의 이면에는 어떤 질곡이 있음을 느꼈고 그것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어떤 것이든 ‘의미’를 갖고 있겠지만, 현실 사회와 경제에는 이러한 의미가 자유롭게 적용되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고, 어떤 영역의 어떠한 사물과 사정에도 적합한 ‘의미 확장 방법’을 생각해서 그 방법을 조금씩 형태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에디팅 프로세스(Editing Process)’라고 말할 만한 의미의 변용과정이 언제나 다이내믹하게, 또한 분류와 영역을 넘어서서 관련되어 있음을 밝혀냈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편집공학’(Editorial Engineering)이다. 이 사람은 <지知의 편집공학>(넥서스), <지식의 편집>(이학사) 등의 저서로 국내에서도 지명도를 얻고 있는 마쓰오카 세이고다. 녹슨 가슴과 매너리즘에 빠진 사고 습관을 확 뜯어고치고 싶은 분이라면 이 여름에 한번 그의 책을 펼쳐보기를 강력하게 권한다.(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이 2010-04-05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 떠오르는 페이퍼네요. 경영할만한 지식도 없는데 무슨 소용에 닿을까 싶어 회의하면서도 각 장을 덮을 때마다 이 책의 가장 훌륭한 리뷰는 실천이라고 다짐했었는데 방법적인 면에서 '편집공학'과 비슷한 것 같아요. 로쟈님의 마지막 문장 특히 '강력하게'에 기대어 반드시 읽어봐야겠습니다.

로쟈 2010-04-05 10: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다산도 편집공학의 원조쯤 되겠네요. '강력하게'는 제 추천은 아니지만, 지식생산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해요...

2010-04-05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6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