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요 신간은 역사분야의 책들이다. 대작이 눈에 띄는 건 아니지만 일독해볼 만한 책은 몇 권 된다. 마거릿 맥밀런의 <역사 사용설명서>(공존, 2009)도 그 중 하나다(제목은 얼핏 한윤형의 <뉴라이트 사용후기>를 떠올리게 한다). 원제는 니체의 에세이 제목이기도 한 '역사의 이용과 오용'(The Uses and Abuses of History)이고 국역본의 부제는 '인간은 역사를 어떻게 이용하고 악용하는가'.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국제신문(09. 11. 14) 역사를 악용하며 '역사의 평가' 뒤로 숨은 그들 

옥스퍼드 대학교의 역사학자인 마거릿 맥밀런은 전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역사를 오용하고 악용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참다못해 이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부시는 스스로를 필요에 따라 헤리 트루먼 대통령에 견주며 자신의 업적을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고 거들먹거렸기 때문이다. 부시만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발단은 부시에서 시작됐지만 역사 사용설명서에는 20세기와 21세기를 중심으로 전 세계의 주요 집단, 정치인, 국가가 어떻게 역사를 이용하고 악용했는지를 되돌아보고 있다.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정평이 나 있는 저자는 '역사가 좋게 또는 나쁘게 사용된 수많은 예들'을 방대하면서도 압축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펼쳐보인다. 여기에다 공정한 논평을 가하고 있어 모처럼 울림이 큰 책을 접한 기분이다.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일을 하면서도 툭하면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는 말로 핵심을 피해가는 사람들이 많은 우리 사회에서 무척 유용한 책이다. 물론 일부에서 과거의 나쁜 사례를 다시 악용할 목적으로 읽을까 두렵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역사는 '인기 품목'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서점가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를 소재로 한 베스트셀러가 즐비하다. 텔레비전에서는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선덕여왕'을 비롯해 흥미 위주로 역사를 비튼 사극이 판을 치고 있다. 그뿐인가. 지방마다 앞다퉈 역사를 기념하고 상품화하고 있으며, 이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데 '역사가 대중의 화젯거리로 비중이 커지자 전문 역사가들이 대부분 아마추어에게 자리를 내줬다는 사실은 너무나 안타깝다'고 한다. 역사의 인기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대개 전문 역사가가 아니라는 뜻으로 읽힌다. 저자는 그래서 아마추어들에게 자리를 내주거나 역사 악용에 동조한 전문 역사가들도 비판하고 있다. 역사를 왜곡하거나 악용하는 주체라면 개인, 집단, 민족, 국가, 이념, 종교에 상관없이 철저하게 비판받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누가, 왜 역사를 악용하는가. '독재자들은 대개 역사의 힘을 잘 알았다. 그런고로 그들은 과거를 고쳐 쓰고, 부정하고, 파괴하려고 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마오쩌둥은 중국 인민을 새로운 공산주의자로 개조하는 데 방해가 될 만하거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모든 기념물과 문화유산을 파괴하지 않았는가.

이라크 침공에 앞서 미국의 부시 행정부와 영국의 블레어 행정부는 후세인을 세계에 위협적인 인물로 그려내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쏟았는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사실 애초부터 사이가 나쁜 후세인(비종교주의자)과 오사마 빈라덴(광신자)이 "관계를 맺고 있다"는 부시와 블레어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빈라덴은 이라크인들에게 후세인을 타도하라고 거듭 촉구한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고고학자들이 왕실 무덤을 조사하려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는 일은 재미있다. 만약 무덤 조사에서 일본 왕들의 혈통이 이른바 '태양신의 직계'가 아닌 중국이나 한국과의 혼혈로 밝혀질 경우 우익 민족주의의 신화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 부분에 특별히 공감한다. '역사는 변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변할 수 없는 과거의 실제 일어난 일이다. 다만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일 뿐이다'. 광개토대왕 등 우리가 역사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영웅들은 어쩌면 당시 영토 확장 과정에서 침략과 지배를 당한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한 정복자였을 수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얼마 동안 프랑스와 영국에서 전사자들은 각국의 문명을 지키려고 싸우다 순직한 영웅으로 추앙됐다. 하지만 나중에는 전쟁에 대한 환멸이 커지면서 영국과 프랑스의 대중은 그들을 쓸데없는 싸움박질의 희생양으로 기억하게 됐다'. 시대와 사고방식이 세월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우리도 세월 따라 기억을 편집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역사의 이름으로 내세우는 거창한 주장이나, 진실을 단정적으로 내뱉는 자들을 경계해야 한다'. 저자가 들려주고 싶은 조언은 바로 이것이다. '역사를 사용하고 즐기되, 언제나 신중하게 다루어라'.(강춘진기자) 

09. 11. 14.    

P.S. 필요 때문에 오늘 오전에 주문하여 오후에 바로 배송받은 책은 영국 셰필드대학의 두 교수가 쓴 <코민테른>(서해문집, 2009). '레닌에서 스탈린까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가 부제다. 책의 의의에 대해서는 간단한 소개기사가 잘 정리해주고 있다. 

한겨레(09. 11. 14) 스탈린주의 걷어내고 본 ‘코민테른’

영국 셰필드대학 교수 케빈 맥더모트, 제러미 애그뉴가 쓴 <코민테른>이 번역돼 나왔다. 1996년 영문판 초판이 나온 이 책이 왜 뒤늦게 한국 독자를 만나야 했을까? 더욱이 우리는 이미 몇 권의 ‘코민테른’ 관련 번역서를 갖고 있는 터다.

역자인 대진대학교 황동하 연구교수는 그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다. 우선 기존의 번역본은 소련 공산당의 공식 입장으로 일관한 것이거나, 너무 간략한 것뿐이다. ‘세계혁명을 지도할 당’이라는 위상 아래 조직된 코민테른은 1919년 결성부터 1943년 해체까지 6개 대륙의 공산주의 운동을 포괄한 광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조직은 점차 후기로 갈수록 ‘세계혁명 추구’가 아니라 ‘유일한 사회주의 조국인 소련 보위’에 치중했다. 이 과정에서 코민테른 정신은 훼손됐다. 기존 번역본은 코민테른의 이런 ‘변질’과 ‘과오’를 덮어버리는 스탈린주의적 해석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게 역자의 평가다.

이 책은 그렇다고, “코민테른은 단지 스탈린 외교정책의 가엾은 도구”라는 비공산주의적 견해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소련 해체 이후 해금된 많은 비밀문서들을 참고한 저자들은, 코민테른은 많은 약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역 공산주의 운동에 전술 채택의 자율성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주장한다.

둘째로, 아직 우리 사회에서 변혁에 대한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믿는 역자는 ‘코민테른’이 “여전히 넘어야 할 산”임을 강조한다. 즉, 가장 폭넓게 공산주의 운동을 포괄했던 코민테른에 대한 평가를,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피해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김보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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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 2009-11-14 19:24   좋아요 0 | URL
인생 사용설명서(김홍신), 내몸 사용설명서(오즈), 역사 사용설명서(맥밀런); 누가 '인생'과 '내몸'과 '역사'를 잘 못 사용할 수 있다는 역설이군요.

로쟈 2009-11-15 12:24   좋아요 0 | URL
'사용설명서'들이 그렇게 많이 나와 있는 줄 몰랐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11-15 16:26   좋아요 0 | URL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에서는 코민테른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로쟈 2009-11-15 16:40   좋아요 0 | URL
하하, 제가 잘 모르는 쪽입니다. 연구가 되고 있는지도 의문이고요. 워낙에 공산주의 전체가 도매급으로 다 넘어가버려서요...

테레사 2009-11-18 10:31   좋아요 0 | URL
조르쥬 페렉의 "인생사용법"도 생각나네요.

로쟈 2009-11-18 19:0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그 책도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