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서 분야에서 이번주에 포커스로 다루어질 만한 저자는 단연 한형조 교수다. 조선 유학에 관한 논저 <왜 조선 유학인가>와 <조선 유학의 거장들> 두 권을 한꺼번에 출간했기 때문이다. 한겨레에서 자세한 리뷰를 옮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13918.html).

한겨레(08. 10. 04) 조선 유학 그 끝에서 길을 보다

조선은 왜 망했는가? 지난 10여년간 독창적인 시각과 활달한 문체로 한국 유학을 천착해온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새 책 <왜 조선 유학인가>는 제1장을 이런 제목으로 시작한다. 이 물음은 조선 지배계급 건국이념의 토대였고 나라가 존속한 500여년 동안 백성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지배했던 조선 유학(주자학)이 왜 망했는가로 바꿔 놓을 수 있다. 왜 망했을까?

<조선유학사>를 쓴 현상윤은 문벌을 중시해 인재를 경시하고 계급을 고착시킨 것, 배타적 가족주의, 당쟁 격화, 무를 경시하고 문약으로 흐른 것, 상공업을 천시한 것 등을 ‘조선 유학의 죄’로 지목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유학의 말기적 폐단이 유학 자체의 잘못이냐, 아니면 조선사람의 잘못이냐고 물었다. 한 교수가 보기에 그것은 유학의 죄라기보다는 조선 주류 유학의 죄요, 결국 사람의 죄다. 조선 주류 유학은 점점 초기의 근본정신을 배반하고 적응력을 잃어갔으며, 이를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한 비주류와 변경의 목소리들을 배척하면서 몰락의 길을 갔다. 이런 현상은 특히 임진·병자년의 침략전쟁을 겪은 뒤 돌이킬 수 없을 지경이 됐다. 상황이 바뀌었으면 이념의 지도도 바뀌어야 했다. 하지만 바뀌기는커녕 전쟁의 공포와 황폐에 짓눌린 주류는 더욱 경직되면서 기득권에 집착했다.

“허균의 한탄처럼 우연의 평화를 믿다가 왜적에게 강산을 유린당했고, 망해버린 명을 업고 정치적 이득을 챙기느라 오랑캐로부터 만고의 치욕을 당하고 백성을 어육으로 만들었으며, 이후의 역사를 혼란과 부패, 무능과 무질서로 끌고 갔다.” 한 교수는 여기서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경구를 떠올린다. “역사의 교훈을 잊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하여 똑같은 일이 다시 한번 일어날 것이다.”

산타야나의 경구는 현실이 됐고 조선과 조선 유학은 결국 망했다. 현상윤이 말한 말기적 폐단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한 교수는 우선 유생들이 직업을 갖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직업이 있었다면 오직 과거급제 뒤 관직에 진출하는 것이었으나 대다수 유생들은 거기서 소외됐고, 그들은 상공업적 이익을 천시하고 금기시했으며 농사도 직접 지은 적이 없다. 절박한 생계문제를 비롯한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학문은 관념화하면서 “헛기침과 체면치레가 자랐고, 번잡한 허식을 절대의 이름으로 고수하는 완고를 키웠다.”지독한 가난 속에 귀천이 분열되고 지배와 저항이 갈렸으며, 지배계급은 그들이 떠받든 경전의 일자일구도 바꾸지 못하게 했고 어떤 이의도 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학술을 죽이고 인재를 죽였으며, 지식과 학문과 경영이 부재한 가운데 부패와 무능 사이를 오갔다. “진시황의 분서갱유가 (오히려) 학문을 살렸고, 이후의 활발한 주석이 학문을 죽였다”며 유교가 가진 자들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한 현실을 한탄했던 정조는 거기에 칼을 대다 자신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조선 유학은 결국 자멸한 뒤에야 비로소 부활의 가능성을 열었다. 조선 유학의 르네상스를 꿈꾸는 한 교수는 그 실마리를 주류들이 배반하고 배척했던 초기 근본정신과 변경 비주류 유학에서 찾았다. 주자학의 전면적 재검토를 통해 기반 다지기 작업을 벌여온 한 교수가 지난 15년 동안 매만져온 또 하나의 새 책 <조선 유학의 거장들>이 율곡 이이부터 시작해 퇴계 이황, 남명 조식, 다산 정약용 등을 거쳐 혜강 최한기를 파고든 것은 그런 맥락 위에서다. <왜 조선 유학인가>는 자책, 방법, 스펙트럼, 지도 등 7가지 주제로 쓴 조선 유학에 대한 메타적 성찰들을 모은 것이고, <조선 유학의 거장들>은 조선 유학 최고봉들의 핵심적 아이디어와 그들 간의 사상적 격전을 통해 의외로 넓은 조선 유학의 스펙트럼과 뜻밖의 깊이를 드러내준다.


적어도 율곡·퇴계의 시대까지는 조선 유학이 열려 있었다. 이학(理學)의 틀 안에서 벌이는 주기(主氣)론 쪽의 율곡과 주리(主理)론 쪽 퇴계의 사단칠정 논쟁, 주리론 쪽에서 파생되는 북학파와 실학, 그리고 주자학의 토대를 무너뜨린 최후의 실학자 혜강의 기학(氣學) 간 길항이 날카롭다. 서인-노론으로 이어지는 정치지형 속에서 비록 권력에선 소외당했지만 독특한 빛을 발했던, 퇴계와 동갑이었던 단호한 실천가 남명이 빚어낸 무늬도 이채로웠다. 율곡은 16살 때 어머니 신사임당이 세상을 떠나자 삶의 허무를 이기지 못해 금강산 절로 들어갔다가 1년 남짓 뒤 하산한다. 바로 이 행적 때문에 율곡은 나중에 두고두고 이단 혐의를 받으며 고통을 당했으나 한 교수는 오히려 그 체험을 통한 실존적 자각이야말로 율곡이 “투명한 공적 자아로 사태의 원리를 탐구하고, 그 지식을 토대로 현실을 혁신해나가도록” 만든 더할 나위 없는 자산이었다고 본다.

1554년 그때 율곡이 한 암자에서 만난 노승과 나눈 선문답적 대화를 자세히 살피고 분석한 글은 불교와 유교의 동질성과 본질적 차이를 드러내는 글이지만, “유학의 르네상스는 아마 유교 문화권이 아니었던 곳에서, 혹은 전통의 격세유전을 통해서 기지개를 켤지 모른다”고 한 지은이의 남다른 의지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지은이 자신이 원래 유교 전통 바깥에서 성장했다. 기학의 근대를 거쳐 탈근대가 운위되는 지금 이학의 재발견, 근대가 잃어버린 인간 본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더 많은 사적 이야기들이, 편견과 독단을 무릅쓰고 풍성해지기를…. 조선 유학의 실체는,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현란한 언설들 사이에서, 무성한 변증과 격돌의 현장에서 피어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한승동 선임기자)

■ 지은이와 함께 /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한형조(50) 교수는 대학 철학과에서 불교 공부를 했으나 졸업할 때쯤 유교 쪽으로 바꿔 ‘다산의 인간관’으로 석사를, ‘주자학에서 다산으로의 철학적 전환’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왜 바꿨을까. “학부 초년 시절 휴학하고 무작정 절로 들어갔는데, 그쪽 얘기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 아무 문제도 아닌 걸 문제로 껴안고 고민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행적이 “율곡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공부를 마음의 본성에 낀 때를 벗겨내는 방편으로 삼는다는 점에선 불교가 주자학과 다를 바 없었으나, 불교엔 유교가 중시하는 플러스 알파가 없다는 생각을 그는 했다.

“주자학엔 2개의 코드가 있다. 심학과 예학인데, 심학은 주자학 쪽이 불교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서로 공통이다. 하지만 인간관계나 현실, 곧 문명의 질서, 문명적 구상을 다루는 예학이 불교엔 없다.” 율곡이 노승과의 선문답에서 얘기한 것도 바로 그 부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한 교수가 한때 산으로 들어갔다가 하산한 뒤 유교로 옮겨간 행적이 율곡의 그것과 닮은꼴이다.

한 교수는 10여년 전 <주희에서 정약용으로>라는 책을 낼 때 “이제부터는 <정약용에서 주희로>가 필요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학위논문을 쓸 때는 다산이 고전 재해석처럼 경학을 통해 경학을 재검토하는 방식의 주자학 비판을 발전사적 관점, 진보적 시각에서 점검을 했는데, 논문을 끝낼 때쯤 다산의 그런 주자학 비판이 전적으로 옳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혹시 다산의 관심사, 곧 다산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주자학을 바라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은 내가 아직 주자학을 잘 모른다는 거였다. 주자학의 내면적 맥락과 가치들을 본격적으로 다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런 얘길 했다.”

조선 유학의 르네상스를 꿈꾸는 그는 “나도 퇴계처럼 개인주의자여서 소명의식 같은 거창한 건 없고 공부와 개인 성장을 위한 훈련 방법, 나름의 가치 추구와 그를 위한 고찰이나 반성에 유익하다는 생각을 했고, 또 그런 게 나만이 아니라 현대인 모두에게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중요한 것은 강압이 아니라 공감과 감화인데,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 아니겠느냐”고 했다.

한 교수는 “상자 바깥에서 달리 생각하는 법, 전혀 다른 사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예전에 비하면 많이 자유로워졌고 풍요로워졌으나 개인적 공간은 별로 넓어진 것 같지 않다. 주류 바깥, 체제 바깥에서 생각해야 새로운 사고가 나온다. 특히 인문학은 공부해서 자기만의 것을 써낼 수 있으려면 30년은 걸린다. 좀 내버려뒀으면 좋겠는데, 논문 쓰기 위주 학사체계에 수업시간도 너무 많고 그것도 일방적인 수업이다. 학생들도 학교수업 소화하기 바쁘고 취직에 매달리니 성찰할 기회가 없다. 그러니 창의성도 없다. 이런 기업식 학문 추구 풍토에서는 주자학 연구자 같은 학계의 아웃사이더들이 제대로 성장하기 어렵다.”

최근 국내외에 ‘퇴계학’이 떠오르고 있는 이유는 뭘까. “퇴계는 노력가로 도산서원에서 오랫동안 충분히 주자학을 연마하면서 학자나 교사로는 최고의 수준에 올랐다. 그에 따라 제자들도 많다. 외국에서 특히 퇴계학이 환영받는 것은 퇴계가 심학 쪽을 받아들이기 쉽게 정리해놨기 때문이다. 예학 쪽은 외국인들로선 이해하기 어렵다. 이에 비하면 율곡은 천재과인데, 대개 그런 사람들이 제자나 후손이 약하다. 게다가 율곡은 노론의 종장으로서 정치적으로는 주자학 정통 주류가 됐으나 그만큼 비주류 쪽의 견제나 비판도 심했다.”

08. 10. 03.

주희에서 정약용으로

P.S. 기억에 내가 읽은 한형조 교수의 책은 <주희에서 정약용으로>(세계사, 1996)가 유일하다. 번역서로는 에드워드 콘즈의 <한글 세대를 위한 불교>(세계사, 1990)도 소장도서였다. 중간에 <왜 동양철학인가>(문학동네, 2000) 같은 책도 나왔었다는 건 이번에 알았다. 언제 도서관에서 찾아봐야겠다.

<조선 유학의 거장들>과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백민정의 <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사계절, 2007)과 곽신환의 <조선조 유학자의 지향과 갈등>(철학과현실사, 2005)를 들고 싶다. 전자는 공자 이후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의 대표적인 유학자들의 사상을 정리해주고 있는 책이다. 후자는 살펴보지 못한 책인데, 다루는 범위가 <조선 유학의 거장들>과 유사하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푸른바다 2008-10-05 20:11   좋아요 0 | URL
한형조 교수님이 드디어 조선유학에 대한 책을 내셨군요. 사실 기사 내용은 좀 실망스럽다고 느껴지는게, 왠지 기자의 '편견'이 강하게 반영되지 않았나 싶어서입니다^^ 한형조 교수님 책을 직접 읽어보지 않아 뭐라고 하긴 그렇지만 기사에 쓰여있는 "주리론 쪽에서 파생되는 북학파와 실학"이라는 말을 한형조 교수님이 책에 정말로 쓰셨는지 일단 의심스럽군요. 역사적으로 북학파는 율곡 계열인 '주기론' 즉 노론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학'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었던 사상운동이었는지에 대해서도 많은 문제가 제기된 바 있고, 현재까지 통용된 '실학'이라는 개념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 개념은 북학파를 포함하고 있는 보다 넓은 개념이기 때문에 '북학파와 실학'이라는 병칭에도 좀 의문이 드네요^^
"서인-노론으로 이어지는 정치지형 속에서 비록 권력에선 소외당했지만 독특한 빛을 발했던, 퇴계와 동갑이었던 단호한 실천가 남명이 빚어낸 무늬도 이채로웠다."는 말도 좀 정확성에 의문이 드는게, 남명 조식계열의 '북인'은 율곡계열의 서인과 퇴계 계열의 남인이 연합하여 인조반정을 일으키면서 동시에 소외시켰기 때문입니다^^

국내외로 퇴계학이 떠오르는 이유 (정말 그런가?^^)로 제시하셨다는 다음의 말씀 즉 “퇴계는 노력가로 도산서원에서 오랫동안 충분히 주자학을 연마하면서 학자나 교사로는 최고의 수준에 올랐다. 그에 따라 제자들도 많다. 외국에서 특히 퇴계학이 환영받는 것은 퇴계가 심학 쪽을 받아들이기 쉽게 정리해놨기 때문이다. 예학 쪽은 외국인들로선 이해하기 어렵다. 이에 비하면 율곡은 천재과인데, 대개 그런 사람들이 제자나 후손이 약하다. 게다가 율곡은 노론의 종장으로서 정치적으로는 주자학 정통 주류가 됐으나 그만큼 비주류 쪽의 견제나 비판도 심했다.” 도 정말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좀 의문이 드는게, 사실 율곡만큼 제자가 많은 유학자도 없지 않나 싶기 때문입니다. 율곡-김장생-김집-송시열로 이어지는 계보가 조선 시대의 사상면에서나 현실정치의 측면에서나 지방 토호로 남았던 퇴계-유성룡, 김성일 계열보다 훨씬 다채롭기 때문입니다.

'조선이 왜망했나'는 처음 질문도 사실 좀 부적절한게, 신유학을 지도이념으로 선포하며 출발한 조선이 500년이나 지속하면서 흥한적도 쇄한적도 있는데 '왜 흥했나'는 질문은 묻어두고 '왜 망했나'는 질문만 던지는 것은 좀 어폐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 망했고 로마도 망했는데, 그리스의 멸망원인을 플라톤 철학에 묻거나 로마 멸망의 원인을 기독교에 묻는 것과 유사하게 부당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좀 이런 '자학적인 질문'에 대해서 반성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형조 교수님 책은 흥미롭지만 왠지 기사를 쓴 기자가 부당한 편견을 많이 갖고 있지않나 하는 의심이 드네요^^ 현재 대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대중 역사서나 사극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말입니다. 한형조 교수님 첫책은 아마도 카마타 시게오의 책 '화엄의 사상' 번역본(1987년 초판, 고려원)일 것입니다. 그뒤로 콘즈의 책도 번역하셨고 '무문관 (여시아문)'이라는 불교책을 한권 더 내셨지요. 도올 김용옥 선생과 한국사상사연구소에서 함께 연구하시면서 '삼국유사와 한국통일'이라는 책에 논문도 내셨고 고사성어에 대한 책도 한권 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한국사나 한국사상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에게는 아직도 '사색당쟁'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하더군요. 대한민국에서 영남 정권이 득세하면서 조선시대 소외되었던 남인들의 '퇴계학'이 부각되고 노론에 의한 정조 독살설이 마치 역사적 사실인양 그려지고 있다더군요^^ 정약용의 붐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듯 싶습니다^^ 요즈음 정조의 왕권 강화 노력을 미화하면서 노론세력을 공격하는 대중 역사서들이나 사극들도 아이러니칼 한게, 이 설을 주장하는 분들 역시 영국 역사에서 있었던 의회파와 왕당파의 투쟁에서는 당연히 의회파를 지지할 테니까 말입니다. 영국 역사책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까... 사실 조선과 영국은 다른 정치 전통을 갖고 있고 정조=왕당파, 노론=의회파라는 도식에는 무리가 있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왕권 강화가 마치 무슨 정도인양 당연시 되고 있는 것도 좀 어이가 없고, 이러한 움직임들이 암암리에 박정희 독재의 정당화와 연결되고 있다는 것도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박정희 부활'의 풍조는 조선 시대 역사 해석의 문제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게 제 요즈음 판단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0-04 23:01   좋아요 0 | URL
근대화나 자본주의 맹아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실학이란 범주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상가들을 함께 구겨 넣은 느낌이 강하죠.흔히들 소외된 남인 계열을 실학으로 알고 정다산을 내세우지만 또다른 실학자 박지원 계열은 노론이니까요.요즘은 노론=보수,남인=진보 도식이 암암리에 유행되는 것 같은데 글쎄...좀 거시기합니다.
북한에서 나온 조선 철학사에서 제일 이상한 내용이 주기=진보 주리=보수 도식입니다.그래놓고도 정다산은 높이 평가하길래 이거 뭐 이러냐....하고 이상하게 여겼죠.사실 요즘은 주리 주기 도식이 하가 토오루가 분류한 것인데 이런 도식으로는 조선 사상사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학설도 나오고 있잖습니까...
남명학파는 지금도 비주류라고 봐야죠.남인 계열 향교에 가서 남명을 칭찬하는 말을 했더니 분위기가 험해지더라는 이야기가 지금도 있답니다.남명이 이퇴계와 문정왕후,보우 등을 싫어했다고 하니까요.남명 계열인 정인홍 파가 광해군 몰락 이후 멸문지화를 당하기도 했고...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의 아류들이 꽤 많습니다.영남 남인을 박정희와 연결하려는 우익들에는 이문열도 있죠.최근엔 송복이 유성룡 전기를 쓰면서 노론 때리기에 나섰는데,남인=실학=근대화=박정희 이런 식으로 강조하려는 것 같아요.그 매개로 정다산이 이용되는데,정조가 박정희라면 정다산은 누굴까요? 이선근? 박종홍? 여하튼 이런 작업이 꽤 먹힙니다.정조 독살되니 아쉽다...실제 독살되었다는 가정하에 쓰인 추리소설도 있고요.이러니,박정희의 죽음이 아쉽다...이렇게 되나요? 허허허...

로쟈 2008-10-05 08:53   좋아요 0 | URL
두 분의 댓글만 읽어도 재밌네요. 드라마 몇 편이 들어가 있군요.^^ '박정희' 숭배론/부활론이 조선조 당쟁에까지 연결된다는 것도 덕분에 알았습니다...

2008-10-04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0-05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0-05 16:06   좋아요 0 | URL
정조나 정약용은 보수,진보 양쪽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난리입니다만 저는 그다지...두 사람 다 주자학을 한발자국도 못 벗어난 것 같던데...

푸른바다 2008-10-05 19:08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지요... 보수던 진보던 조선시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선시대를 이상향으로 미화할 필요도 없지만 현재 조선시대에 대한 인식은 보수 진보 모두 왜곡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정적으로만 볼려고 하니까 이른바 재야 학자들이 주목을 받게 되고 그 대표 주자로 떠오른 것이 바로 '정약용'이겠지요. 역으로 조선 시대의 주류 세력이었던 '노론'은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구요^^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서부터 '송시열과 노론'은 나라를 말아먹은 세력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소위 의식있는 선생님에게서 였죠^^

제가 보기에 정조는 참으로 흥미로운 군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인류 역사상 군주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인물 중에서 가장 박식한 사람이 바로 정조였을 것입니다. 프레이져의 '황금가지'에도 정조가 언급되지요^^ 물론 단편적이지만^^ 아무튼 정조 시대의 조선 학인 중에서도 정조보다 학식이 깊은 사람은 없었고 아마 정조 본인에게는 노론이든 소론이든 남인이든 모두 유치하게 보였을 것입니다.정조 자신도 만인의 스승으로서 자임하면서 신하들을 가르칠려고만 하지요. 아무튼 조선시대 '聖學' 교육이 만들어낸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바로 정조일수도 있을 텐데 역설적으로 정조야 말로 '聖學' 혹은 성리학적 정치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인물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여기서 다 언급하기는 힘들지만...

정조도 송시열의 학문은 매우 존중해서 이퇴계나 이율곡에도 감히 부여하지 않았던 '자'의 타이틀을 송시열에게 부여하지요. 송시열의 문집에 '송자대전'이라는 명칭을 허한 것이 바로 정조였으니까요. 중국에서 공맹이래 '자'가 붙은 유학자는 '주자'가 유일하다면 조선 유학 역사에서는 '송자'가 유일한 셈입니다^^ 이와 같이 평가가 극으로 갈리는 우암 송시열은 조선 후기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로 생각되고 송시열과 그 일파 때문에 나라가 망했느니 하는 유치한 논쟁보다는 일단은 그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의 방대한 저서는 일부만이 번역되었고 그에 대한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합니다.

헌데 한국 미술사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간송의 최완수 선생은 우암 송시열로 대표되는 노론이야 말로 조선 성리학의 정화라고 이야기 하지요. 퇴계의 단계에서 주자 성리학이 이해되고, 율곡에 와서 주자성리학에서 벗어나 조선성리학으로 독자적인 사유의 전개가 시작되며 우암 송시열에 와서 완성이 된다는 것이죠. 이 분은 전공이 미술사이니 미술사를 통해 이를 예증하고자 하는데 겸재 정선의 진경 산수화가 가장 대표적인 예라는 것입니다. 겸재의 진경 산수에 와서야 중국 산수화풍을 벗어나게 되는데, 이 겸재야 말로 노론의 정통이요 진경 산수야 말로 조선 성리학의 독자적 전개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올 김용옥 선생은 퇴계가 주자학에 대해 다른 해석을 제시한 이단이요 (물론 주자학의 틀을 벗어난 건 아니고 퇴계 본인도 꿈에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율곡과 우암 송시열이야말로 주자학 정통이라고 이야기 하는 판이니 아직도 조선 사상사 연구가 가야할 길은 머나먼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한형조 교수님의 책을 주문해서 읽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기의 연구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되는 학자 중의 한분이나까요...

노이에자이트 2008-10-07 16:47   좋아요 0 | URL
실학 개념이 허구라고 주장하는 걸 보면 한형조 씨가 김용옥 씨와 비슷한 주장을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예전 한국사상연구원에서 같이 일하기도 했죠.요즘도 두 사람이 교유하고 있는지요?

푸른바다 2008-10-08 18:34   좋아요 0 | URL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