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강사의 처우 문제가 어제오늘 제기된 것은 아니지만 개선될 기미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나 요즘처럼 강의 소득이 전혀 없는 방학 때면 우스개소리로 대리(운전) 알바를 뛰어야 한다는 얘기도 강사들끼리는 한다(그런데 우스개가 아니다!). '비정규직 800만' 시대라고 하니 '비정규적 강사'의 존재 자체가 스캔들인 것은 아니다. 어떤 사회적 지위/계층의 존재와 그에 대한 대우는 온전히 그 사회 시스템의 산물이다. 800만 비정규직과 6만 5천여 시간강사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기반으로 하여 한국이란 사회의 시스템이 돌아갈 수밖에 없다면, 그리고 다수가 그걸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한다면 하는 수 없는 노릇이다. 총파업이라도 하든가, 아니면 굴종하든가. 다만, 그것이 부당하며 부도덕한 시스템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저임금 착취를 등에 업고 자기 배를 불리는 자들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걸 지적하는 칼럼과 기사를 옮겨놓는다. 강명관 교수의 '고금변증설' 연재(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01994.html)와 경향신문의 '비정규직 800만 시대' 기획기사 중 시간강사에 관한 꼭지이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7281757155&code=210100). 이번주 신간 중 <여러분 참 답답하시죠?>(사회평론, 2008)의 저자 모모세 타다시는 한국이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이유로 “겉모양은 선진국인데 속에는 아직도 후진적인 생각, 가치관, 질서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일류 국가가 되기엔 품격이 모자란 사회”라는 것이다. 그것도 좀 많이 모자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하기야 현 정부에 와서는 아예 '품격'이란 말 자체가 사치스러워졌지만).

 

한겨레(08. 08. 02) 훈장 내쫓는 학부모, 강사 내모는 대학

박사과정을 마쳤으니 서둘러 학위논문을 제출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이 있다. 또 어렵사리 학위논문을 썼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논문을 써서 학문의 길로 일로매진했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전자는 학위논문을 쓰지 않는다. 후자 역시 계속 논문을 써 내어 자기 학문의 밭을 일구지 않는다.

전자는 학위논문을 쓰기에는 너무 바쁘다. 학위과정을 밟은 대학에서 시간강의를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만으로는 생계가 해결되지 않기에 다른 대학에서도 강의를 해야 한다. 어떤 경우는 과외도 한다. 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시간강의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거기에다 이 연구소 저 연구소, 이 프로젝트 저 프로젝트로 옮겨 다니며 연구비가 아닌 생계비를 벌어야 하기에 차분히 자기 연구를 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 곁에서 몇 해를 지켜보지만, 공부에 큰 진척이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 내심 답답하다. 문제는 공부하는 것을 평생의 일로 삼았지만, 그 일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백범일지>는 구한말의 사회 사정을 아는 데 아주 요긴한 책이기에 자주 들추어본다. 백범이 공부를 소원하자 아버지는 문중과 동네 사람들과 의논해 상놈 아이들을 위해 서당을 열어준다. 수강료로 쌀과 보리를 모아 주기로 하고 이생원이란 선생을 초빙한 것이다. 백범은 이생원을 따르면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그는 반년이 되지 않아 해고된다. 멍청한 손자를 둔 신존위란 사람이 백범이 공부 잘하는 것을 시기해 이생원을 쫓아낸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생원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것이었다. 백범이 실망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백범일지>의 이 부분에서 늘 짠하였다. 하지만 밥을 많이 먹는 것이 해고의 이유라는 것이 어딘가 우스꽝스럽기도 하였다. 한데 임형택 선생의 ‘이조말 지식인의 분화’(<전환기의 동아시아 문학>, 창작과비평사, 1985)란 논문을 읽고는 백범의 선생 이생원만 당한 일이 아니라 매우 보편적인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논문은 ‘대구훈장 원정(原情)’이란 글을 소개하고 있다. 원정이란 요즘말로 진정서다. 곧 대구의 훈장이 관에 올리는 진정서다. 무슨 진정서인가. 논문을 따라가면서 읽어 보자.

충청도의 한 선비가 서울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10년 세월을 놀다 보니 주머니는 바닥이 나고, 과거에 합격할 길도 아득히 멀어진다. 어쩔 수 없이 타관 객지 시골 서당에서 훈장으로 나선다. 그야말로 쥐꼬리만 한 보수를 받고 <사략> 첫째 권을 꼬맹이들에게 가르치노라니, 정말이지 신세가 처량하다. 한데 훈장을 초빙한, 제자들의 아비들이 “타관 양반인데, 예조(禮稠) 한 섬, 의자(衣資) 반 냥을 주지 않은들 어찌하겠느냐”며 그 쥐꼬리조차 떼어먹으려 든다. 훈장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는 가족들이 눈에 어른거려 다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궁한 사정을 하소연하자, 그들은 냉소를 하면서 지껄인다. “이 양반이 세상 물정도 모르는군. ‘생원의 문자’는 값이 대체 얼마요? 그동안 먹은 밥값으로 치면 될 터이지. 의자고 예조고 말도 꺼내지 마시오.” 이 말에 훈장은 관청에 진정서를 올린 것이다.

<백범일지>의 이생원이 밥을 많이 먹는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한마디 말도 못하고 해고되었듯, 대구 훈장 역시 보수를 주지 않는 학부형들에게 거세게 대거리를 하지 못하고 만다. 보수를 주는 쪽이 약자의 호소할 데 없는 처지를 십이분 이용하여 횡포를 부린 것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는 분들을 훈장에 견주어 대단히 송구스럽지만, 백범의 선생을 내쫓은 자와 훈장의 보수를 떼어먹은 자들이 한 짓거리가 지금의 대학이나 정부의 강사 대우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시간강사의 강의료라는 것은 말로 꺼내기에도 창피할 정도라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강의료를 올리고 신분을 보장해 달라는 요청은, 나도 20년 전에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왜냐고? 대학과 정부가 강사들이 절대적인 약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적극 이용하기 때문이다. 전국강사노조가 있지만, 이들이 한 목소리를 내기란 참으로 힘들다. 강사는 학기 단위로 위촉되기 때문에 그 학기에 한해서 강사 신분을 갖는다. 또 자신을 가르친 선생들이거나 아니면 이런저런 연고로 다 익히 아는 분들이 강의를 의뢰한다. 그분들의 안면 때문에 힘 있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그런가 하면 곧 시간강사를 그만두고 전임 자리를 얻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러니 강사노조에 힘이 모일 리 없다. 이런 약점을 대학은 십이분 이용하는 것이다.

먹고사는 일보다 절박한 일은 없다. 젊고 에너지가 넘치는 시절을 생계비 버는 데다 보낸다면, 그 뒤 무슨 정열과 힘이 남아 연구를 한단 말인가. 대학에서 쥐꼬리 같은 강사료를 받아서는 살 방도가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의 대학은 강사에게 정당하게 지급해야 할 강의료를 착취함으로써 자기 덩치를 유지하고 있다. 대학은 다른 어느 기관보다 도덕성이 요구되는 곳이다. 그런데 자신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의 노동력을 이토록 착취해서야 되겠는가?

대학마다 요사이 하는 말인즉 발전기금을 모은다, 세계적 대학을 만든다고 자랑이다. 좋은 말이기는 하지만 그 말에 별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자기 대학에서 가르치는 강사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대학의 행태는 훈장의 예조와 의자를 떼어먹는 아비들의 짓거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이 언필칭 내세우는 발전과 개혁이란 구호가 위선이 되지 않으려면, 강사 처우 문제부터 해결하시기 바란다. 그게 학문 후속세대를 키우고, 대학을 발전시키는 지름길이다.(강명관/부산대 교수·한문학)

경향신문(08. 07. 29) [비정규직 800만 시대]“대학 교육 절반 담당… 월급 60만원대”

28일로 326일째.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는 대학 시간강사들의 천막농성이 열리고 있다. 처음 스무 명으로 시작한 농성인원은 이제 다섯 명으로 줄었다. 1주일의 절반은 대구에서 올라오는 강사 3명이, 나머지 절반은 서울지역 강사 2명이 돌아가며 천막을 지키고 있다. 먹고 자는 일을 모두 천막 안에서 해결해왔지만 최근 폭우가 쏟아지면서 천막을 지키는 일조차 힘들어졌다. 이들이 폭우와 무더위 속에서도 천막을 지키는 것은 대학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 확보를 위해서다.

대학 시간강사들. 이들은 현재 대학 교육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는 비정규직이다. 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07년 전국 4년제 대학의 전임교원(정규직 교수)은 5만5612명으로 시간강사 6만5399명보다 적다. 하지만 교양강좌의 경우 전임교원 강의(5만636개)보다는 시간강사 강의(7만8204개)가 훨씬 많다. 계약기간이 정해진 비전임교원들의 강의(2만5381개)까지 합하면 전임 교원 강의 수의 두 배에 이른다. 그러나 노동자로서 이들의 처지는 일반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와 다를 게 없다. 그보다 더 못한 경우도 흔하다. 시간강사들은 따로 고용계약서가 없고 시급을 적용받는다.

교수신문이 전국 30개 대학을 조사한 결과 2008년 평균 시급은 4만1000원. 보통 한 학기에 두 강좌씩 맡는 것을 기준으로 하면 한 달에 16시간을 강의(강좌당 1주일에 2시간 강의 기준)하고 받는 월급은 64만원 정도다. 학교에 따라 연이어 강의를 하면 한 학기를 쉬거나 학교별로 한 사람의 강의 숫자를 제한하고 있어 시간 강사들의 수입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교통비와 숙박료를 부담해가며 강의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4대 보험 가입률도 낮다. 고용보험이나 산재보험에만 가입되고 이마저 허용하지 않는 대학도 14곳이나 된다.



서울 소재 사립대학 두 곳에서 강의하고 있는 김영곤씨(61)는 “대학만큼 악랄한 사용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A대학에서 시간당 5만300원씩 1강좌, B대학에서 3만원씩 2강좌를 하는 김씨의 한 달 급여는 88만2400원이다. 방학 때는 계절학기 강좌를 잡지 못하면 수입은 0원이 된다. 적은 월급보다 더 힘든 것은 다음 학기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김씨는 “어떤 설명도 없이 다음 학기 시간표에 이름이 없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말했다. 당장 다음 학기의 수입을 예상할 수 없으니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어렵다.

1995년부터 시간강사로 일해 온 한수경씨(42·가명)는 “50대가 되어서도 이렇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면 불안하다”고 말했다. 한씨는 “공부가 좋아 적게 벌어도 공부하며 늙자고 생각했는데 한 달에 50만~60만원 수입으로는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한씨는 “강사 자리는 알음알이로 채용되기 때문에 그나마 있는 강의라도 잘리지 않으려면 단체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 시간강사는 “다들 쉬쉬하지만 시간강사들의 이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1999년 이후 시간강사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열악한 처우가 몇 차례 사회문제화됐지만 그때뿐이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시간강사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으나 현실은 그대로다. 학교 노동자라는 특성상 이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서는 근로기준법 외에 특별법을 따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법과 노동법 사이에 끼어 어느 쪽에서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강사의 교원으로서의 법적 지위 확보가 시급하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2004년 국가인권위에서 차별개선에 대한 권고안을 교육부에 냈으나, 교육부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지방의 한 국립대에서 10년 가까이 시간강사로 일해 온 하모씨(49)는 “대학은 해고도 편하고 임금도 적은 시간강사들을 쉽게 쓰고 버리고 있고, 정부는 모른 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애 교원법적지위쟁취특별위원장은 “시간강사는 일반 직장인보다 10년 늦게 사회에 진출하게 된다”며 “학문이나 직업의 특수성은 전혀 인정되지 않고 다른 길을 찾기도 힘든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반항할 겨를도 없이 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했다.(장은교기자)

08. 08. 01.

P.S. 시간강사 문제에 대해서는 두 차례로 나뉘어 게재된 한겨레21의 르포기사가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대학의 작은 지옥'(http://h21.hani.co.kr/section-021046000/2008/08/021046000200808070722057.html)과 '정규직 교수가 비극을 끝내라'(http://h21.hani.co.kr/section-021046000/2008/08/021046000200808140723013.html)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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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정규 교수가 쏘아 올린 작은 공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25 21:21 
    이번주 신간 국내서 중에는 작년에 비정규 교수(시간강사) 문제를 다룬 프레시안의 연재 '벼랑 끝 31년, 희망 없는 강의실'을 묶은 책도 포함돼 있다. 해가 바뀌어서 제목은 <비정규 교수, 벼랑끝 32년>(이후, 2009)이 됐다. 따로 서평이 뜨지 않아서 프레시안의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프레시안(09. 04. 25) 32년 동안 모두 알면서 말하지 않은 정답  때때로 묻
 
 
paviana 2008-08-01 23:47   좋아요 0 | URL
며칠전 시간강사인 친구를 만났는데 백수인 제가 술값을 계산했어요. 방학이잖아요.사정 뻔히 아는데 계산하게 둘 수가 없더라구요.에이참..

람혼 2008-08-02 01:23   좋아요 0 | URL
갑자기 눈물이 울컥... ㅜㅜ

로쟈 2008-08-02 17:52   좋아요 0 | URL
저도 어디 가서 계산하는 일은 드뭅니다. 강사들만 있을 때를 빼곤.^^;

porori 2008-08-02 01:24   좋아요 0 | URL
제생각엔요...강사료가 저렇게 저임금이라면 열심히 강의 준비를 하는 사람은 드물것 같습니다. 특히 교양과목이라면 학생들이랑 농담하면서 딱 60만원어치의 정보와 지식을 주지 않을 까요?? 학생들은 또 지적 소득없이 학점만 따 갈테고요... 또, 좋은 학점을 위해 학생들은 교수/강사에게 약간의 굴종을 해야 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왠지 악순환 같은데요..
학생입장에선 학점 때문에 돈을 지불 하면서 '굴종'을 겪으니, 저로선 학생이 가장 약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털세곰 2008-08-02 16:34   좋아요 0 | URL
할 말은 아니지만 강사료 비싼 학교의 수업은 솔직히 신경 더 많이 씁니다. 강의평가도 있거든요. 강사로 싼 곳은 주는 만큼 한다는 생각으로 가끔 태업도 합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학생에 대해 약간의 "권한"을 갖고, 그것을 행사하기를 때로는 꺼리지 않는 제 자신을 발견하면서 상당히 놀라고 있습니다

로쟈 2008-08-02 17:55   좋아요 0 | URL
그게 요점입니다. 사실 학교와의 관계에서 강사들은 '약자'이기 때문에 선뜻 나서질 못하는데요. 학생들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수업료를 내므로 교육 '소비자'입니다. 약자가 아니예요. 당연히 강사들 수업은 안 듣겠다고 당연히 보이콧해야죠! 대학에선 자질이 안되서 전임으로 못 뽑는다고 하니까...

anathema 2008-08-02 08:58   좋아요 0 | URL
작년에 시간강사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왕복 차비(저희 집에서 학교까지 왕복 6시간)와 강사료가 같아서...

로쟈 2008-08-02 17:56   좋아요 0 | URL
그걸 대단찮게 생각하는 대학이 문제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2 16:06   좋아요 0 | URL
여기도 댓글들이 슬프네...제가 학교 다닐 때 29살 먹은 남자가 전임강사로 온 적이 있었는데 이젠 이런 일은 없겠죠?

로쟈 2008-08-02 17:57   좋아요 0 | URL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강사들이 담당하고 있는데, 대우는 반에 반 수준도 안되는 게 문제입니다. 그걸 감수하는 강사들의 '마인드'도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되구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2 20:23   좋아요 0 | URL
더 슬퍼요...

로쟈 2008-08-03 00:31   좋아요 0 | URL
최석하의 '죽'이란 시가 생각나네요.ㅠㅠ

천재뮤지션 2008-08-03 11:26   좋아요 0 | URL
그 놈의 BK21. 휴...
전 그래서 이제는 민간차원의 지원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은 잘 모르겠지만...

(자선의 정치.)

로쟈 2008-08-03 20:29   좋아요 0 | URL
구체적인 방안이 떠오르면 알려주시길.^^

노이에자이트 2008-08-03 20:20   좋아요 0 | URL
그리고 우리나라 호칭문제인데 같은 나이라도 교수는 무슨 무슨 교수인데 시간강사는 무슨무슨 씨라고 해서 구별을 짓더라구요.우리나라 호칭에 직함이나 직업 붙이는 관행이 굉장히 잔인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사실 저는 모두 씨를 붙이는 평등호칭을 찬성합니다.시사잡지 보면 80년대까지 그랬거든요.

로쟈 2008-08-03 20:28   좋아요 0 | URL
미시정치죠.^^ 퇴직하거나 사직해도 '전(前)교수'라고 붙이죠. 장관이나 의원처럼. 예전에 교수가 드물던 시절에는 사회적 예우였겠지만(검사들이 영감님 행세하던 시절) 요즘은 그저 '관행'으로 남은 듯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03 20:50   좋아요 0 | URL
예...그 전 장관이니 교수니 그런 것 좀 없앴으면 좋겠어요.특히 라디오 시사프로에서 진행자가 그렇게 부르면 진짜 이상해요.그런 관행 때문에 직함이나 이런 걸 강조하는 풍토가 안 없어지죠.인간 자체를 존경하는 호칭이 없어요. 저는 어린이에게 존대말 쓰자는 방정환 님의 뜻을 따르고 있죠.

로쟈 2008-08-04 13:13   좋아요 0 | URL
한국어 경어체계는 미덕과 악덕을 고루 갖춘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