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시사인의 칼럼이 문득 생각이 나서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0). '에세이스트' 김현진씨의 연재칼럼인데, '우리 안의 이명박'을 먼저 퇴진시키지 않는 한 '촛불 투쟁'은 승산이 없다고 주장한다. 시각 자체가 젊은 논객답지 않게 노숙(?)하다. 오래전에 읽은 칼럼마저 생각나게 한다(그래서 같이 옮겨놓는다).

시사인(08. 06. 17) '우리 안의 이명박’부터 몰아내자

청계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노래 부르고 자유롭게 발언을 하는 촛불 ‘문화제’ 때는 두세 번 참석했을 뿐이다. 부끄럽지만 광우병에 대한 위협을 피부로 실감하지 못했고, 내 이웃과 가족이 뇌에 구멍이 송송 뚫려 쓰러지게 될 거라는 상상은 SF영화처럼 낯설었다. 거리로 본격 뛰쳐나가기 시작한 것은 결국 5월24일 이후였다. 처음에 거리로 나섰을 때는 어리둥절했다. 8차선, 4차선 도로를 사람들과 함께 걷는다는 것이 현실 같지 않았다. 함께 걷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놀라워하면서도 불안해하고, 또 무슨 일이 생겨날지 몰라 두려워했다. 그렇게 강제 진압이 닥쳐왔다. 바로 그날 이후부터, 퇴근 후 물먹은 솜 같은 몸을 말 그대로 질질 끌어서라도 광화문에 갖다두게 되었다. 그래야 직성이 풀렸다. 광우병은 멀었으나 물대포는 가까웠으므로.

처음에 구호는 “고시 철회 협상 무효” “너나 먹어 미친 소”가 대부분이었지만, 폭력 진압이 거듭될수록 군중은 “이명박은 퇴진하라”를 외치기 시작했다. 배후세력이나 지도부 없이 비폭력을 외치며 거리로 나선 사람들이지만 이들을 공통으로 묶어주는 분모는 분명히 존재한다. 먹을거리에 대한 근심, 국민의 말을 듣지 않는 정부에 대한 분노,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강렬한 증오심이다. 그에게 표를 주지 않은 사람은 억울한 마음으로, 표를 주었거나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은 고해성사에 참여하듯 촛불을 켰다.

그는 2008년의 대한민국에서 실로 운명적인 대통령이다. 온갖 불가사의한 어두운 그림자를 끌어안은 그에게 너끈히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것은 진짜로 경제를 살릴 줄 믿었던 국민도 아니고, 극렬 보수 지역 사람도 아니고, 그날 나 몰라라 투표 용지를 외면하고 놀러 가버린 사람도 아니다.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넘겨준 범인은 우리 안의 속물성이다. ‘내 아파트 값도 좀 확 뛰었으면’ ‘우리 아이는 자립형 사립고에 가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으면’ ‘나도 지금은 이렇게 살지만 이명박처럼 한가락하고 싶다, 아니면 내 자식이라도’ 하는 속물스러운 욕심, 저마다의 속물성이 이명박 대통령이 갖춘 온갖 속물성에 감응한 것이다. 그는 남녀노소 전 국민의 속물성을 자극할 만한 속물 판타지의 종합 선물세트와도 같았다.



속물은 그 자신만 알 뿐 누구의 편도 아니다

고학생에서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성공한 기업인, 아들을 히딩크와 함께 사진 찍게 해주는 아버지, 딸에게 건물 하나 안겨서 월세 받아먹고 살게 해주는 자상한 친정 아버지, 아내가 몇 천만원짜리 핸드백을 들고 다니다 사진 찍혀서 구설에 오르게 할 수 있는 재력가 남편,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고 테니스를 즐길 수 있는 럭셔리한 취미생활. 우리는 이런 힘센 그와 한편이라 믿고 싶었고 그가 누리는 것을 누리고 싶었다. 그 소망이 마침내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나 우리는 잊고 있었다. 속물은 결코 누구의 편도 아니라는 것을, 속물은 오로지 그 자신만의 편이라는 것을.

거리에 나오는 것만으로는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이명박 퇴진을 외치기 전에 먼저 숨통을 끊어놓아야 할 것은 ‘우리 안의 이명박’이다. 우리 안에 한 명씩 가지고 있는 음습한 이명박, 그를 먼저 끝장내야 한다. 100만명 아니 1000만명이 촛불을 들더라도 우리 안에 있는 이명박을 먼저 퇴진시키지 않는 한, 저 컨테이너 철옹성 안에 있는 진짜 이명박이 퇴진할 확률은 제로다.

시사인(08. 05. 26) 그래도 우리는 MB와 대화해야 한다

새 정권이 들어선 지 겨우 3개월이지만 벌써 2~3년은 지난 것 같다. 대운하에 영어몰입교육에 0교시에 이중국적 허용에 쇠고기에…. 일 년에 한두 개 터져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한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잘한 일을 꼽아보자는 이야기에 “투표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같은 대답이 우스개로 나돌 정도니 국민이 느끼는 암담함을 짐작할 만하다.

이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정권을 이루는 이들이 부자라거나 아파트를 많이 가졌다거나 하는 따위가 아니다. 어느 나라에나 부자 정치인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 나눌 수 있는 정상적인 대화의 틀에 진입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민을 배제한 채 쇠고기 협상을 진행한 뒤 “싫으면 안 사 먹으면 된다”라거나, 국민을 향해 손자 대하듯 “떼쓴다고 다 되는 것 아니다”라고 말할 리가 없다. 대통령의 측근도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땅 투기 의혹에 “땅을 사랑했을 뿐이다”라거나 “내 나이 11세 때 내 계좌에 있던 돈으로 아버지가 땅을 샀다”느니, 스칼렛 오하라에 워런 버핏이 따로 없을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상적인 패러다임 안에서 살았던 사람이 아니다. 시작은 고학생으로 미약했을지 모르나, 36세에 사장이 된 뒤 그의 인생은 심히 창대했다. 그는 자식을 위장 전입시켜 좋은 학교에 보냈고, 자기도 건축법 위반, 수뢰 의혹, 근로기준법 위반, 범인 도피, 사기 혐의 등으로 여러 사람 바쁘게 만들었다. 그는 또한 한 나라의 최고 공직자이자 동시에 아가씨 나오는 술집에 세를 준 건물 주인이며 교회 장로이기도 하다. 그가 살아온 세계에서는 이런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세계에서 자식을 좋은 학교 보내고 싶은 것이야 애틋한 부정일 터이며, 건축법과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거나 사기 혐의를 받는 것쯤은 사업하다 보면 흔히 겪을 수 있고, 선거법 위반은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만한 일이리라.

자기가 하는 거짓말을 참말로 믿는 ‘그들’

훌륭한 거짓말쟁이가 되는 방법은 자신이 하는 거짓말을 참말로 믿는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에 사는 저들이 거짓말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진실로 저들은 자기가 하는 말을 열렬히 믿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난 정말 땅을 사랑했다, 11세 때 내 계좌에는 정말로 돈이 많았다, 광우병 쇠고기가 무서우면 안 사먹으면 된다, 촛불 든 애들 공부하기 싫으니까 괜히 나와서 저런다, 집회 저거 배후 세력이 분명히 있다….

이 정권이 국민과 제대로 대화하지 못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자고로 사장과 직원 간 대화는 잘 안 된다. 사장은 직원을 끌어다 놓고 자기 이야기만 실컷 하고는 “아 오늘 정말 좋은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라며 흐뭇해한다. 그런 사장 노릇을 몇 십년 한 이 대통령이 한순간에 그 습관을 버리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습관을 반드시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한민국은 기업이 아니고 국민은 사원이 아니니까.

지금 상태에서 보면 그들을 정상적인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가 불가능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향한 대화를 포기할 수 없다. 희망이 안 보이면 끈질기게 버티기라도 해야 한다. 그들이 정말로 바라는 것은 우리가 그들과 대화하기를 체념하고 “원래 그런 사람들인가 보다” 하며 그들을 포기해주는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시사인(07. 11. 26) 아비 덕 못 본 자식의 부러운 눈빛

아버지와 대화하다 보면 과연 내가 이 사람의 직계비속이 맞는지 늘 의심하게 된다. 서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다투다가 같이 핏대 세우고 있는 얼굴이 내 얼굴과 판박이인 걸 보면 어쩔 수 없이 이 사람 딸 맞구나 싶다. 그와 나는 이렇듯 거의 모든 면에서 취향과 견해가 다르다. 그는 공부를 사랑하고 나는 먹물을 혐오하고, 그는 분명 내가 모든 선거 때마다 민노당에 투표한 걸 알면서도 걸핏하면 나를 ‘노사모’라고 부르니 이건 뭐 어디에서부터 평행선인지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서도 또 어영부영 잘 지내곤 하는 우리의 이 위태로운 평화는 최근 주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탓에 와장창 깨진다. 그가 서울시장 시절 서울을 하나님께 화끈하게 봉헌했을 때다. 신실한 개신교 목사로서 당시 그 발언을 ‘용기 있는 발언’이라고 평했던 아버지를 비롯해 모조리 독실한 신자인 이모들은 새벽마다 그가 대통령이 되라고 모여서 기도한다. 그런데 나는 그토록 뜨거운 기도를 받는 장로님이 하필이면 무대 위에서 성경을 찢고 생닭을 잡는 록 가수와 왜 그렇게 닮았는지 실없이 웃지 않고는 못 배겼다. 그러면 또 그들은 나를 몹시 못마땅해했고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웃기를 그칠 수 없어서 피차 매우 곤란했다.

이명박 후보는 이번에 자녀들 유령회사 직원 등록 건으로 또다시 나를 화끈하게 웃기고 말았다. 아들딸을 본인 사업체 관리인으로 위장 취업시켜 8800만원을 탈루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의 해명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딸이 결혼도 했는데 수입이 없어 집안 건물 관리나마 도우라 했고, 생활비에 보탬이 될 만큼 급료를 주었다”라는 것이다. 당신 일처럼 언짢은 얼굴을 하고 입을 꾹 다문 아버지 앞에 나는 그 집 자식들 부러워 죽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버지, 좋은 학교” 하면 위장 전입을 해서라도 좋은 학교 보내주고, “아버지 히딩크” 하면 히딩크와 사진 찍어주고, “아버지 돈이 없어요” 하면 “아버지 건물 관리나 해” 하는 아버지라니, 대통령 후보 이전에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식이 바랄 수 있는 아버지의 최대치가 아닌가.

“옳지 못한 것 부러워하는 것도 죄다”

한참 웃다가 나는 문득 얼굴이 굳어졌다. 그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내가 방금 내뱉은 말은, 100% 진심이었다. 한화 김승연 회장 사건 때도 “아이고 우리 아버지면 얼마나 좋을까. 나한테 못되게 군 남자들은 죄다 야산에 묻혔을 텐데” 하고 농담 삼아 지껄인 것도 돌이켜보니 다 진심이었다. 정의가 실종된 부끄러운 아버지들의 제국을 만든 데 일조한 것은 뻔뻔한 자식들이었고, 그 아버지들의 힘을 더욱 강고히 만든 것은 ‘내게도 기회가 온다면 사양하지 않으리라’ 는 자세로 그것을 바라본 나와 같은 ‘없는 집’ 자식들이었다.

옳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는 것도 죄였다. 내가 이 후보의 자식 사랑을 비웃을 수 있었던 것은 다만 내 아버지에게 그와 같은 권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버지가 너무 허약해서 기회가 없었을 뿐, 가능하기만 했다면 아버지가 먹여주는 단물을 얼마든지 빨았을 것이다. 제 가족, 제 집단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부끄러운 아버지와 그것을 얼른 받아 삼키는 뻔뻔한 자식이 이루는 부정한 톱니바퀴를 돌아가게 하는 근본에는 바로 나처럼 아비 덕 못 본 자식의 부러운 눈빛, 행여나 나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진다면 눈감아줄 준비가 언제라도 된 그 눈빛 역시 일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혁이란, 진보란, 좋은 날이란 이토록 호락호락한 마음가짐으로는 결코 올 리 없는 것인데도.

08.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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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부 2008-06-23 08:54   좋아요 0 | URL
퍼 갈께요^^

로쟈 2008-06-23 23:33   좋아요 0 | URL
^^

BRINY 2008-06-23 10:55   좋아요 0 | URL
언제부터인가 '속물이 뭐가 어때서? 다 그렇게 사는거야'라는 사람들이 주위에 가득해진 거 같습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일찍부터 그렇게 되어간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안그런 애들이 왕따 당하는 세상. 휴..

로쟈 2008-06-23 23:33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IMF가 결정타였다고 봐야겠죠...

기록인 2008-06-23 10:00   좋아요 0 | URL
우리안의 이명박...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정말 꼭 집어 쓴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로쟈 2008-06-23 23:34   좋아요 0 | URL
꽤 입소문이 나고 있습니다...

마립간 2008-06-23 18:11   좋아요 0 | URL
http://www.newstoon.net/sub_read.html?uid=9484§ion=section2
김진호 미친소시리즈9

로쟈 2008-06-23 23:34   좋아요 0 | URL
같은 컨셉이군요...

스위스 2008-06-27 15:27   좋아요 0 | URL
중간에 있는 딩크횽아 사진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