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페인의 시인 가르시아 로르카가 태어난 날이라고 한다. 언젠가 <사랑의 시체>(솔, 1995), <강의 백일몽>(민음사, 1994/2003) 등의 시집을 뒤적거려본 게, 그리고 책을 만들면서 몇 마디 인용한 게 개인적인 '인연'의 전부이지만 왠지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름이다(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 <데스 인 그라나다>는 보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최근 선보인 펭귄 클래식의 1차분 11권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건 그의 산문집 <인상과 풍경>(펭귄클래식코리아, 2008)이었다. 로르카가 스무 살 때 쓴 것이라 하니 그의 '스무살, 내 청춘'이라 할 만하다. 장마가 끝나면 햇볕 아래서 읽어볼 만하겠다.

한국일보(08. 06. 05) [오늘의 책<6월 5일>] 인상과 풍경

1898년 6월 5일 스페인의 시인ㆍ극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태어났다. 로르카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그의 시 한 편을 발견했다. 작가 고 이병주가 대하소설 <지리산>에 인용한 로르카의 시다. ‘어디에서 죽고 싶으냐고 물으면 카탈루냐에서 죽고 싶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어느 때 죽고 싶으냐고 물으면 별들만 노래하고 지상에선 모든 음향이 일제히 정지했을 때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유언이 없느냐고 물으면 나의 무덤에 꽃을 심지 말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다.’ 로르카 시의 울림에 놀라고, 그를 인용한 이병주의 박학에 놀란다. <지리산>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로르카의 생은 38년으로 짧았다. 프랑코가 스페인 내전을 일으킨 1936년, 그 해 8월에 로르카는 그의 고향인 그라나다를 점령한 파시스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는 화가 살바도르 달리, 영화감독 루이 브뉘엘 등과 교유하며 20대 때부터 천재시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스페인의 전통과 정서가 담긴 희곡을 잇따라 발표해 스페인 민중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면서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떨치고 있던 로르카는 이미 좌파 인민전선을 지지하는 지식인 서명운동에 동참한 터였다. 그를 눈엣가시로 보았던 프랑코 정권은 로르카의 사후에도 20여년 동안 그에 대한 논의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로르카의 3대 비극으로 불리는 <피의 결혼> <예르마>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한국에서도 연극과 무용으로 지금도 공연되고 있다. 그의 시집 <강의 백일몽>을 번역한 정현종 시인은 세계 3대 시인으로 괴테와 네루다, 그리고 로르카를 꼽을 정도다.

최근 펭귄클래식 번역판으로 나온 <인상과 풍경>은 로르카가 카스티야, 안달루시아 등지를 여행하면서 보고 느낀, 조국 스페인의 지역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상을 담은 산문집이다. 로르카가 스무살 때 출간한 첫 책인데, 아직 덜 여문 청년의 우수와 정열이 짙게 느껴지면서도 그 나이에 쓴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섬세한 시선과 내면, 그것을 표현하는 문장이 놀랍다.(하종오기자)

08. 06. 05.

P.S. 앤디 가르시아가 로르카 역으로 연기한 영화 <데스 인 그라나다>(원제는 '가르시아 로르카의 실종')의 한 장면은 http://kr.youtube.com/watch?v=O8-eQLb8p3A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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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6-05 17:20   좋아요 0 | URL
천재시인에 잘생기기까지 했지만 세상은 공평한지 그에게 단명이란 핸디캡을 줘버렸군요.^^

로쟈 2008-06-06 12:04   좋아요 0 | URL
'장수한' 시인이란 말은 왠지 어색하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06-05 23:40   좋아요 0 | URL
전두환의 심정을 대변하겠다며 자진해서 나선 이병주 씨...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임은 분명하지만 로르카의 치열한 삶과는 전혀 대조적인 기회주의자! 그가 스페인인이었다면 프랑코를 미화한 전기를 썼을 겁니다.

로쟈 2008-06-06 12:13   좋아요 0 | URL
공지영씨의 회고는 좀 다르던데요. "이병주…. 나는 그를 생각하면 하는 수 없이 나의 이십대를 함께 생각하고야 만다. 1980년대 초,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아래서, 젊은 날이 하염없이 한심해지고 있을 때 도서관 안에 도피하듯 틀어박혀 읽은 것이 그의 소설들이었다. 이 세상에서 되고 싶은 것도 하나 없고 되어야 할 것 하나 없던 것 같은 시절, 과연 생을 걸고 우리가 도전할 만한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 하는 고민이 아마도 세상은 어차피 불의하고 불우하다는 확신으로 나른하게 굳어져 가고 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라로 2008-06-06 01:45   좋아요 0 | URL
제목을 보니까 갑자기 카잘스가 생각이 나네요~.^^;;
잘 지내시죠???(뜬금없는 인사에도 끄떡 없으실 로쟈님,,,)

로쟈 2008-06-06 12:14   좋아요 0 | URL
네, 그냥저냥 지내고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6-07 00:24   좋아요 0 | URL
공지영 씨가 이병주 소설을 탐독하고 있었을 무렵.이병주 씨는 이미 전두환 씨를 비롯한 5공의 실력자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었습니다.그래서 5공 비리 청문회로 사면초가일 때 전두환은 가장 친한 문인이었던 이병주를 불러 자기의 심경을 구술하게 했습니다.그 무렵 검은 세단에서 두 사람이 같이 내리던 광경이 눈에 선합니다.
그가 타계 1년 전인 1991년에 <대통령들의 초상 우리 역사를 위한 변명> 서당 을 냅니다.박정희 시절 투옥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인지 박정희 욕은 많이 하지만 이승만과 전두환에 대한 평가는 후합니다.이승만에 대한 이병주의 평가는 관두고...
전두환에 대한 평가는 이렇습니다-한 마디로 전 대통령은 꾀를 부릴 줄 몰랐다.약은 데라곤 조금도 없었다.이를테면 직정경행이다.옳다고 믿는다면 추진하는 성미이다.술책을 꾸민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내가 그의 실수로 치는 언론통폐합이 바로 그 증거이다.언론통폐합을 위한 이유와 근거가 없진 않았겠지만 언론을 건드린다는 것은 벌집을 쑤셔놓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중략..아무튼 전 정권의 언론통폐합이 실수였다는 것은 6공이 들어서자마자 폐합된 신문사들이 부활운동을 시작한 것을 봐서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또한 전두환에게 꾀가 없었다는 것,약은 구석이 없었다는 것의 증거가 된다. 위의 책276-277쪽에서
5공 비리에 대해선 특히 친인척 비리에 대해선...
효도와 우애가 넘쳐 나라의 체통을 크게 상했다거나 국고를 비웠다거나 했을 지경이면 문제는 달라지겠지만 다소의 무리가 있었다고 해서 그것을 꼬투리로 잡아 나라의 수장이었다는 사람을 비리로 몰아부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위의 책 282쪽에서
한길사에서 이병주 전집을 낼 때 임헌영 씨같은 인사가 그의 작품에 대해 찬사 일변도의 추천사를 냈는데 저는 좀 거시기했습니다.

로쟈 2008-06-07 00:31   좋아요 0 | URL
부분적인 인용은 장정일의 책에서 읽어본 거 같네요. 문단은 원래 '좌우 합작'도 잘하는 곳이죠...

노이에자이트 2008-06-07 01:08   좋아요 0 | URL
이 책이 꽤 희귀본인데 장정일 씨는 독서일기에서 저보다 훨씬 더 살벌하게 이병주를 욕했죠.이 책도 이병주 특유의 그 현란한 박학다식을 늘어놓았기 때문에 문헌 해독력이 부족한 이들 넘어가기 딱 좋게 되어있습니다.불어를 잘하기 때문에 사르트르,레이몽 아롱,루이 아라공 등을 들먹이고...

로쟈 2008-06-07 12:01   좋아요 0 | URL
언제 한번 찾아보고 싶군요.^^

연두부 2008-06-07 13:20   좋아요 0 | URL
우연히 들렀다 두분의 댓글에 댓글..감동받고 갑니다...쩝

로쟈 2008-06-07 19:54   좋아요 0 | URL
의도적으로도 들러주시길.^^

노이에자이트 2008-06-07 23:43   좋아요 0 | URL
이인모 씨가 출옥한 뒤 이병주의 <지리산>을 읽고 엄청나게 분노했어요.역사허무주의라고...장기수들이 그때 출옥해서 제일 많이 읽은 책이 이태<남부군>과 이 책이었는데 역시 하나같이 분노하더라는 겁니다. <이인모 전 인민군 종군기자 수기> 이인모 기록 신준영 정리 (주)월간 말1992 153-154쪽에서

로쟈 2008-06-08 22:18   좋아요 0 | URL
<지리산>, <남부군> 모두 20년쯤 전에 회자되던 책들이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6-10 00:17   좋아요 0 | URL
네...그렇습니다.
그리고 로르카 전기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그의 친구인 네루다 전기는 나왔는데...스페인 내전에 대해서 의외로 스펜인인에 대한 책이 별로 없어서요.두루티 전기는 나왔는데...프랑코 전기가 있어서 그럭저럭 도움이 되긴 한데(대현출판사 간)...너무 얇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