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에 어제 읽은 한겨레21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읽은 시집 <배꼽> 얘기다. 보다 구체적으론 '이것이 날개다'란 시 얘기다. 한 장애인의 죽음을 소재로 한 시인데, 평론가와 마찬가지로 나도 이런 소재의 시를 좋아하지 않지만 시인의 (의도하지 않은?) 반어법은 기억해둘 만하다. "좋겠다, 죽어서…"

한겨레21(08.04. 24) 좋겠다, 죽어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이 4월11일부터 시행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속으로 놀랐다. 이런 법이 여태 없었단 말인가. 실은 놀랄 자격도 없는 것이다. 언제 관심이나 있었던가. 나는 장애인이 아니다.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저 가끔, 내가 갑자기 장애인이 되어도 그녀는 나를 사랑할까, 하는 철없는 생각이나 해본다. 드문 일이지만, 장애인들의 일상을 TV로 엿보면서 훌쩍거리기도 한다. 알량한 눈물이다. 그들의 삶이 아파서 흘리는 동정의 눈물은 내가 ‘정상’임을 안도하는 감사의 눈물과 은밀하게 뒤섞인다. 최근에 읽은 시 한 편 때문에 이런 서론이 필요했다.

문인수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배꼽>(창비·2008)이 출간됐다. 1945년 출생, 1985년 등단. 등단도 늦었는데 무명의 시간도 길었다. 시인의 이름이 문단에 회자되기 시작한 게 불과 몇 년 안 된다. 그 몇 년 동안 이 시인은 어느 한 대목에서는 꼭 한 번 낮은 한숨을 쉬게 만드는 시들을 써냈다. 그 시들이 이번 시집에 고스란히 묶였다. 내키는 대로 아무 데나 펼쳐 읽다가 ‘이것이 날개다’라는 제목의 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시를 읽는데, 기습처럼 눈물이 고여들어, 그 눈물이 잦아들 때까지 가만히 도사려야 했다. 문태준의 ‘가재미’ 이후 처음이었다.

“뇌성마비 중증 지체·언어장애인 마흔두살 라정식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 친구들 여남은 명뿐이다./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 중이다./ 떠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첫째 연이다.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을 제외한다면(이 구절, 참 야속하고 절묘하다) 죄다 덤덤한 진술로만 돼 있다. 시인이 이런 식으로 시치미 떼면 읽는 쪽이 외려 조마조마해진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ㅒ#@!$#*? (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주실 거죠?)/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뜨렸다./ $#?&@\?%, *&#…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둘째 연이다. 빈소의 아수라장 앞에서 자원봉사자 그녀의 마음이 이미 위태위태한데, 장애인 이정은씨가 힘겹게 말을 밀어내자 그녀는 끝내 운다. “좋겠다, 죽어서…” 아, 뭔가를 무너뜨리는 말이다. 뭔가를 쑤셔박는 말이다. 이 구절에서 아득했다. 너무 슬프면 그냥 화가 난다.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마지막 연이다. 이제야 시인이 끼어든다. 정식씨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다.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겨우 말했다. 몸에서 빠져나와 날아오르려 몸부림쳤던 일생이었는가. 그리 되어서 라정식씨의 얼굴은 이제 이토록 고요한가… 시인은 이렇게 이해해버렸고, 읽는 나도 수긍해버렸다. 그래야 망자의 영혼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으니까.

천성이 모질어서인지 본래 이런 소재의 시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의 슬픈 삶을 한없이 슬픈 눈으로만 들여다보아서 기어이 영영 슬픈 삶으로 만들어버리는 시들이 거북했다. 사회적 약자를 재현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다. 시의 의식이 동정의 눈물을 흘릴 때 시의 무의식이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사태를 힘껏 막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는 어떤가. “좋겠다, 죽어서…”라는 아픈 말을 모질게도 옮겨놓았고,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시를 마무리했다. 이 덤덤한 듯 원숙한 기교 아래로 사무치는 진심이 저류한다. 시인이 끝내 절제한 그 문장을 경박한 내가 대신 써야겠다. “세상의 모든 정은씨, 살아서, 꼭 살아서 행복하십시오.”

08. 0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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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4-25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제가 지금 막 한겨레 21에서 이 글을 읽고 왔습니다.이런 우연이...

로쟈 2008-04-25 21:55   좋아요 0 | URL
동선이 비슷하군요.^^

마노아 2008-04-25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친구가 장애로 인한 비뚤어진 자세로 허리신경이 손상이 됐다고, 너무 아파 입원했다고 전화가 왔어요. 뭐라... 할 말이 없더라구요. 이 시를 보니, 참 먹먹하네요...

로쟈 2008-04-25 21:55   좋아요 0 | URL
그게 그렇습니다.--;

Joule 2008-04-25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해서 장애인에 대해 저는 차별해요. 인간극장을 즐겨 보지만 그마저도 장애인이 나올 때는 아예 보지 않아요. 그래서 잘 써진 저 시와 기사를 읽으며 저는 또 안절부절해요. 내가 장애를 갖게 되어도 장애자를 가진 사람으로서의 나를 저는 잘 용납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해요.

로쟈 2008-04-25 21:56   좋아요 0 | URL
여하튼 직시하기도 회피하기도 어려운 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