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권의 책을 살펴보려고 대형서점에 갔다가 손에 든 책은 리처드 레인의 <장 보드리야르>(앨피, 2008)이다. 덕분에 상기하게 된 거지만 어제가 작년에 세상을 떠난 보드리야르(1929-2007)의 기일이었다. 또 그 덕분에 떠올리게 된 건 작년 이맘때 급하게 청탁을 받아서 쓴 추모기사다(http://blog.aladin.co.kr/mramor/1082396). 몇몇 적임자가 거절하는 바람에 나한테까지 연락이 왔었고 또 어지간한 청탁은 거절하지 않는 편이어서(대신에 기한은 잘 못 지킨다) 나대로 또 '작문'을 했던 것. 레인의 책은 그때 참고하기 위해 교보에서 구입했었다. 국역본을 손에 든 건 그런 인연에서다(지난번에 나온 <리오타르>도 나는 바로 완독했다).

 

 

 

 

그런데, 이 페이퍼는 보드리야르를 위한 것이 아니다(레인의 책을 찾게 되면 몇 마디 적을 수는 있겠다). 요즘 나오는 인문 번역서들의 편집에 대한 몇 가지 불만을 적기 위한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도 전철에서 읽어나가다가 몇 번 눈살을 찌푸리게 됐는데, 번역이 아니라 편집상의 오류 때문이다. 맨먼저 이 책에서도 아직 생존해 있는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레비스트로스(1908-1991)'라고 표기됐다(38쪽). 이전에도 한번 지적한 바 있지만(http://blog.aladin.co.kr/mramor/1807030), 멀쩡히 살아있는 대학자를 '죽은 자'로 취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원서에는 생몰연대 따위가 들어가 있을 리 없다(는 아니고 표기돼 있다고 한다). 고유명사의 원어병기나 인물의 생몰연대는 보통 편집자가 '서비스' 차원에서 첨가해주는 것으로 안다. 그러니 문제는 '서비스의 질'이다.

레비스트로스만 하더라도 한 백과사전에 잘못 기재돼 있다는 설이 있는데 조금 전에 확인해보니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던 '네이버'에서도 '레비스트로스(1908- )'라고 수정돼 있다. 하지만 최근에 내가 읽은 책들은 모두 이 책과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보리스 와이즈먼의 만화책 <레비스트로스>(김영사, 2008)의 첫문장이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1908-1991)는 이 시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이다."(7쪽)이고, 지젝의 <HOW TO READ 라캉>(웅진지식하우스, 2007)에서도 "이런 분석의 대가는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1908-1991)다."(30쪽)로 돼 있다. 너무 친절한 편집자들이 이왕 나서는 김에 약간의 손품만 더 팔았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오류들이다.

 

 

 

 

일단 선입견을 갖게 되니까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에 나오는 '포래치'를 '포래치'라고 하거나 '바로레아'를 '바로레아'로 표기해놓은 것도, 설혹 역자가 그런 고집을 부렸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포트래치'나 '바카로레아'로 표기하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바타이유의 <저주의 몫>(문학동네, 2000)에서 '소모'로 옮겨진 'expenditure'도 단순히 '지출'로만 옮기는 건 독자의 이해를 도와주지 못한다.  

관련문헌을 소개하고 있는 '보드리야르의 모든 것'에서도 편집자는 굳이 안 해도 될 실수를 범하고 있다. 보드리야르의 저작 국역본이 있는 경우 병기해주는 '서비스'를 하는 과정에서, 저명한 연구자인 마이크 게인이 "의심할 바 없이 장 보드리야르의 가장 중요한 저작"이라고 평한 <상징적 교환과 죽음>의 국역본이 <불가능한 교환>(울력, 2001)이라고 엉뚱하게 적어놓은 것이다. 이 책의 원저명은 국역본 표지에 새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보드리야르를 다룬 최상의 비평적 해설"이라고 소개되고 있는 페파니스의 책 'Heterology and the Postmodern: Bataille, Baudrillard, and Lyotard'에 대해서는 국역본을 병기해주고 있지 않다. <이질성의 철학 그리고 바타이유, 보드리야르, 리오타르>(시각과언어, 2000)로 소개돼 있다는 걸 잊은 것이다.  

물론 실수나 착오는 누구나 범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줄여나가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조금 더 꼼꼼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홀대 받기를 원하는 독자는 없는 법이니까...

08. 03.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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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량 2008-03-08 18:55   좋아요 0 | URL
본문 검색을 통해 원서를 찾아보니, 원서에도 생몰연대가 나와 있긴 합니다. 모스(1872-1950), 라캉(1901-1981), 바르트(1915-1980) 식으로요. 원서엔 '레비스트로스(1908-)'라고 잘 적혀 있네요. 어쨌든 "원서에는 생몰연대 따위가 들어가 있을 리 없다"는 말씀은 사실과 다릅니다. 요즘 워낙 뒤숭숭해서 한 마디에도 조심하셔야 할 듯합니다. ㅜㅜ

로쟈 2008-03-08 18:5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제 책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그렇더라도 편집자가 쓸데없는 개입을 한 것이죠. 2000년에 나온 책에도 생존해 있던 양반을 1991년에 죽은 걸로 처리해놓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