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우리시대의 명저50'에서 조혜정(조한혜정) 교수의 <한국의 여성과 남성> 꼭지를 옮겨놓는다. 아주 오래전에 들춰봤던 듯한데 그다지 강한 인상은 받지 못했다. 오히려 나로선 저자의 최근의 인터뷰나 기고기사에 더 눈길이 간다. 남녀간의 성차보다는 계급차나 세대차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탓이겠다. 그럼에도 사회과학서가 거의 20년 동안 절판되지 않고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명저50' 가운데 '현역'으로 남아있는 책들이 몇 권이나 되는지 의심스럽기에 더욱 그렇다). 관련기사와 인터뷰, 그리고 최근 기고기사를 함께 모아놓는다.

한국일보(07. 09. 20) 억압과 착취 구조의 뒤틀린 유산을 일갈하다

가부장제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가장 교묘하게 인간성을 억압해온 제도이며, 여성 억압은 인간에 의한 자연의 착취와 맥락을 같이 한다.” 조혜정 교수가 1988년 발표한 <한국의 여성과 남성>(문학과지성사 발행)이 당시 지식사회에 던진 충격파는 컸다. 6ㆍ29선언으로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서울올림픽이 열리면서 세계화가 화두로 떠올랐지만 가부장제를 가족관계의 본질로 여기는 통념은 여전히 유효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책은 가부장제는 가족관계의 본질이 아니라 조선시대 사대부의 권력 확장을 위해 고안된 역사적 구성물이며 이를 통한 여성의 억압은 곧 남성도 ‘남성다움’의 굴레에 갇히게 만드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고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모성(母性)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라는 주장은 가히 선동적이었다.

김영옥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가부장제나 모성의 신화, 억압과 착취에 기반한 남녀관계의 기원 등을 역사적인 맥락 아래 검증한 최초의 저작”이라며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성을 잃지 않는 저자의 혜안과 선 굵은 문제의식이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여성학의 고전이 된 책이지만 편협한 여성주의에 머물지 않고 여성과 남성이 다 함께 행복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하고 구체적인 성찰을 담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큰 미덕”이라고 덧붙였다.

저자는 한국의 남성과 여성이 이뤄온 생활세계를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여성해방 이론가이자 운동가로서 구상하고 실천해온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분석적 토대를 이 책에 담고 있다. 저자가 처음 시선을 둔 것은 ‘여성 차별과 비하의 근원인 가부장제가 어떤 과정을 통해 생활세계를 지배하게 됐나’ 하는 문제다.

조선 초기에는 재산 분배나 제사 상속도 받을 만큼 비교적 평등한 지위를 누렸던 여성들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부계 순수혈통의 원리가 절대화되면서 ‘2등 백성’으로 전락했다. 그 이유를 저자는 왕권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양반관료층들이 유교 이념을 교조화하면서 남존여비 이데올로기를 심화했기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가부장적 지배는 빈곤과 혼란기를 거치면서 불변적 남성우월주의로 고착됐고, 발전 이데올로기가 주도한 근대 공업화 시대와 산업자본주의 사회를 거치며 ‘국가와 일터를 위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남성의 공적 영역과 그를 위한 ‘휴식처’로 전락한 가정의 관장자로서 여성의 사적 영역을 명확히 가르는 데 이용된다. 공ㆍ사의 명확한 구분과 고정된 성 역할 관념은 제도의 차원이 아닌 일상의 문화로 강력한 의미를 지닌 채 존속된다. 가부장제 아래 여성들은 인격이 아닌 어머니로서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자발적으로 체제의 협력자가 되면서 스스로의 역할과 공간을 제한했다. 이른바 ‘도구적 모성’의 탄생이다.

저자는 부부 역시 권력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파악한다. 특히 경제적 능력 여부에 따라 지배와 복종이 정확히 갈리고, 경제력이 없는 여성들은 자녀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대리만족하면서 가족 내 존재감을 획득한다. 저자는 “가정에서 소외된 남편, 과도한 교육열 등은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에 안주하는 여성들의 계산된 헌신의 산물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면서 “부부관계가 애정과 신뢰를 잃을 경우 자녀의 도구화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고 경고한다.

가정에 안주하지 않은 여성들은 그럼 행복할까. 저자는 “전통사회에서 여성이 배제되었다면 현대에 들어서서는 배제의 정도가 줄어든 대신 보이지 않는 통제는 더욱 체계화되어 여성의 삶은 더욱 교묘하게 왜곡되고 있다”고 갈파한다. 소위 ‘성공적인’ 전문직 취업여성일지라도 남성중심적인 조직문화의 이방인으로 전문직의 역할 수행 이외에 여성에게 기대되는 성역할을 수행하느라 기진맥진하게 된다. 결혼을 했을 경우는 가정과 일터 모두에서 늘 ‘약간씩 모자란 느낌’을 갖고 자식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저자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고도의 산업화가 진행중인 사회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결혼과 가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해진다”며 “특히 결혼과 자녀 출산 시기 및 자녀의 수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 무리함이 없도록 조정하는 것, 경우에 따라서는 자녀를 낳지 않는 것도 하나의 정상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여성과 남성>은 씌어진 지 30년이 됐지만 불평등한 남녀관계가 잉태하는 가족해체, 저출산, 고령화사회 등 우리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들을 정확히 꼬집어내고 있다.

저자는 여성과 남성이 다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간의 유대를 강화할 것, 여성을 남성과 똑같이 사랑 존경 즐거움 성취 권력에의 욕구를 가진 인간으로 대할 것, 남성은 가부장적 부권을 포기하고 가족구성원으로서 소통과 보살핌의 노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한다. 가족간의 소통과 감정교환이야말로 행복한 삶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학계의 성과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 책은 인문ㆍ사회과학 전문서로는 드물게 현재까지 14쇄를 찍었고, 2002년에는 일본 법정대 출판부가 <한국사회와 젠더 연구>라는 제목으로 번역서를 출판하기도 했다.(이성희기자)

"신정아 사건은 일터에서의 남녀관계가 동료라기보다는 여전히 연애의 대상으로 환원되고, 성취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 조직문화도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거죠."

연세대 교정에서 만난 조혜정 교수는 "<한국의 여성과 남성>을 쓸 때만 해도 남녀 모두 행복한 세상이 곧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1980년대는 국내 사회학이 꽃핀 시기였고, 여성해방주의자들 사이에서 남녀가 모두 주인공인 일상의 문화를 새롭게 짜보자는 움직임이 활발했어요. 83년에 여성학자 조형, 조옥라, 고(故) 고정희 시인 등과 함께 대안문화운동단체인 '또하나의 문화'를 결성하면서 이들과 토론하고 싸우며 얻은 성찰들이 책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조 교수는 그러나 "지금은 사회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접었다"고 말했다. 여성운동이 성숙하면 남녀평등사회가 구현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알파걸, 킹콩걸, 골드미스 등 여성파워를 상징하는 용어들은 쏟아지되 남녀간의 적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해졌기 때문이다. "여성은 '피해 볼 일은 절대 안 하겠다'는 의식으로 무장하고, 남성은 기득권을 빼앗긴 박탈감에 시달리면서 '사이버 마초' 같은 감정적 대응을 일삼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사회구조에 있는데 서로 감정싸움만 되풀이해요. 남녀 문제만 나오면 너무나 단세포적인 반응을 쏟아내는 사회가 된 것이죠."

조 교수는 '누구도 승자가 되기 어려운' 초경쟁 시장경제와 그로 인한 인간의 개체화를 이렇게 분열된 사회의 주범으로 꼽는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주체적인 각성을 바탕으로 대안문화나 대안학교 운동 등을 유연하게 받아들였던 사람들도 IMF사태 이후 개별적 생존경쟁에 내몰리면서 지금은 오로지 일류대학을 목표로 한 무한질주에 동승한다. 동료든 친구든 가족이든, 기본적으로 경쟁자일 수 밖에 없다.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은 24시간 그야말로 '빡센' 노동에 시달립니다. 잡지 않으면 잡히는 사냥꾼의 시대에 들어선 거죠. 이렇게 경제논리가 압도하는, 극도로 도구화ㆍ개체화한 사회에서 자란 세대는 과연 행복할까요?" 조 교수는 시장경제체제의 제도는 숨가쁘게 변화하지만, 의식의 변화는 여전히 지체상태라면서 '지속 가능한' 사회에 대한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가깝게는 호주제 폐지 이후의 삶에 대한 광범위한 인식의 공유가 필요합니다. 호주제 폐지 이후 가족의 정의는 어떻게 내려야 할지, 누구랑 살지 하는 문제 말이죠. 그리고 양극화사회에서의 육아의 사회화 만큼이나, 군 복무도 사회적 책임을 함께 지는 차원에서 여성이 공유하는 문제 등을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해요. 소통과 상호 돌봄을 통해 남녀가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사회만이 지속가능성을 갖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지요."

 

경향신문(07. 08. 29) IMF 목격한 불행한 청년들 ‘88만원 세대’ 우리가 껴안자

“부유한 50대여, 파이팅!”이라는 주간지 표지 글이 눈길을 끈다. 내용은 청년기에 통기타와 청바지, 팝송을 들으며 성장한 50대가 이제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고 패션을 주도하는 신소비군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제목을 본 청년이 “다 가지셨으니 어련히 잘 하겠수~”라고 툭 한마디를 던진다. 그의 말대로 지금 50대는 많은 돈과 시간과 건강을 가진 세대이다. 반면 그 자녀 세대는 시간에 쫓기고 늘 불안하다. 안정된 직장을 얻기 힘들고 직장이 있더라도 독립할 집을 마련하기 어렵다. 어릴 적에 갖게 된 소비수준을 유지하려면 부모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고, 이런 경제적 의존성은 젊은이들을 나약한 기회주의자로 만들고 있다.



최근 한 경제학자와 신문기자는 현 시대의 20대들은 월 88만원으로 일상을 꾸려가야 하는 세대라면서 그들의 곤궁한 삶에 대한 논의의 불을 지폈다. ‘너희는 고생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이들 ‘88만원 세대’는 어린 나이에 IMF 금융위기 급보를 접하고 일찍이 암울한 미래가 온다는 것을 감지한 ‘불안 세대’다.

이들은 1990년대에 대중문화와 인터넷의 주역으로 잠시 부상하였지만, 그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서 가장 배려받지 못한 계층이었다. “너희는 왜 패기가 없느냐?”라는 핀잔을 듣지만 불안정한 고용상황과 끊이지 않는 재난과 소통불능 상황에서 패기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연봉 억대를 버는 변호사나 대기업 사원들은 행복한가? 타고난 낙관주의자거나 그 세대에는 드물게 헝그리 정신을 가진 경우를 제외하고 이들 ‘잘나가는’ 청년들 역시 위장장애와 조울증으로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좋은 미래가 올 거라는 믿음이 가지 않는 시대에, 생각할 틈도 없이 일해야 하는 자신이 마치 ‘소모성 건전지’ 같다는 것이다.

‘잘 팔리는’ 인재건, 하루 종일 방안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면식수행’하면서 지내는 백수건, 공무원 시험 자료집과 법전암송 오디오북, 다이어트 비디오를 공짜로 다운로드해 보면서 취업준비를 하는 반백수건, ‘88만원 세대’라는 별명을 갖게 된 이들에게 미래라는 단어는 거북스럽다. 청년들은 부모나 어른 세대의 말을 들어야 돈이 나오는 세상에서 그들의 말에 순종하거나 숨어드는 생활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긴 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것이 적응력 있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방콕 생활’은 불화와 불균형이 만들어낸 구조적 산물이며, 애초부터 위장장애와 공황장애를 앓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를 방치할 때 국가는 거대한 ‘기생 국민’을 떠안는 부담을 안게 된다. ‘88만원 세대’의 저자들은 이들 ‘청년존재’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제기하면서, “20대를 위해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미국에서는 클린턴 정권 때 노동정책을 담당했던 로버트 라이시 장관이 청년기금을 마련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는 ‘고용 없는 성장’ 정책을 고수할 경우에 초래될 사회적 파탄에 대해 경고하면서 하나의 해결책으로 모든 젊은이가 18세가 될 때 일정한 금융자본금을 주어서 계속 공부를 하건, 벤처를 시작하건,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건, 증권이나 채권을 사건 각자의 생각대로 재투자를 하게 하자는 제안을 했다. 국가의 미래를 청년들과 함께 만들어가자는 초대장인 셈이다.

‘경제 대통령’ 논의가 분분해지고 있다. 개발 독재시대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자는 주장은 지루하고 경제성장을 해놓고 보자는 논의는 무지하다. 전문가들은 돌봄과 창의적인 노동이 후기 근대 경제의 핵심 노동이라고 말한다.

그간 한국의 많은 청년들은 인디와 언더 문화, 인터넷과 대안교육 영역에서 기존 경제학에서는 노동으로 계산되지 않는 돌봄과 소통과 나눔이 가능한 창의적인 노동을 하면서 사회 이곳저곳에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뿌려왔다. 대통령은 바로 이들의 ‘비물질 노동’의 잠재력을 인지하고 이를 체제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바뀐다고 세상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사자 젊은이들이 더 깊은 늪에 빠져들기 전에 스스로를 돌보기 시작하면 좋겠다.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건, 선후배간 자원을 공유하며 대학 동아리를 부활시키건, 동네에 카페를 차리건, 바리케이드를 치건 조상이 물려준 물적, 비물적 공공재를 챙겨내기 위해 이제 슬슬 방에서 나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불안은, 정말이지, 영혼을 잠식한다.(조한혜정/ 연세대교수· 문화인류학)

07. 09. 26.

P.S. 기사를 읽으면 혼자 음미하고 말 일이지 이렇게 옮겨오는 것도 '습관'이다. 끽연자들이 하루 한 개비씩 담배를 줄이는 것처럼 앞으론 줄여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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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9-26 22:23   좋아요 0 | URL
^^ 기사를 소개해주시면 쉽게 접할 수 없는 좋은 글을 볼 수 있어 좋아요. 한국일보는 제가 구독하고 있어 거의 보는 편이지만.

로쟈 2007-09-26 23:49   좋아요 0 | URL
저로선 기회비용의 문제라서요.^^;

심술 2007-09-27 19:25   좋아요 0 | URL
정말 고생 많으십니다.^^

로쟈 2007-09-27 22:38   좋아요 0 | URL
제가 푸념한 셈이 됐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