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서점에서 <마르스의 두 얼굴>(연경문화사, 2007)이란 책을 보았다('마르크스'란 말이 들어간 표지들에 익숙해진 처지라 뭔가 빠진 듯하다는 게 첫인상이었다!). 다른 여러 신간들 틈에서였기 때문에 크게 주목하진 않았지만 뭔가 두툼하다는 게 인상적이었다(그런 두툼한 책으로 클라우스 헬트의 <지중해 철학기행>(효형출판, 2007)도 눈에 띄는 책이다). 거기에 저자가 '마이클 월저'라는 것. 철학자 '마이클 왈쩌'와 동일인인가 하는 게 잠시 가져본 궁금증이었다. 세계일보의 리뷰를 보고서 검색해보니 '월저'가 그 '왈쩌'였다(고유명사들은 웬만하면 통일해주는 게 좋을 터인데). 그리고 생각보다는 비중있는 책이라는 판단이 들어서 따로 자리를 마련한다.  

세계일보(07. 07. 28) '정당한 전쟁'이라도 무고한 시민 희생은 부당하다

세계는 지금 전쟁 중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세계사는 전쟁사와 동의어로 쓰일 정도로 인류 역사는 전쟁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종교전쟁, 이념전쟁, 민족전쟁, 영토확장전쟁, 식량확보전쟁 등등.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전쟁은 정치·경제·외교·정보 등 국력의 제반 수단을 이용해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 사용하게 되는 ‘최후의 수단’이다. 전쟁 개시의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나 총리 등 민간인 군통수권자가 하게 되지만 수행은 군인들 몫이다.

문제는 정치·외교·군사적 목적 달성 혹은 방어적 성격의 전쟁이라 할지라도 그 피해는 어린이와 여성을 비롯한 무고한 민간인들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민간인 봉사단원들이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단체에 납치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가까운 예다. 아프간전쟁의 후유증이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 출신인 아미클 월저가 1977년 쓴 ‘마르스의 두 얼굴’은 전쟁 도덕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 집필한 전쟁이론의 고전이다. 마르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군신, 즉 전쟁의 신을 뜻한다. 원제는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역사적 예증에 근거한 도덕적 논거’. 미국 각군 사관학교와 하버드대 등에서 교재로 채택되고 있다. 저자는 상대 국가가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될 경우엔 예방 차원의 공격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9·11 이후 전개되는 대테러전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과연 ‘사랑과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격언은 유효한 것인가.

책에서는 아테네의 멜로스 공격, 1870년의 보불전쟁, 제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때의 미라이 양민학살사건, 제1·2차 걸프전 등 다양한 전쟁에서의 도덕의 문제, 특히 전쟁의 정당성과 부당성 측면을 집중 분석해내고 있다. 책은 침략전쟁과 자위 차원의 전쟁, 국제사회에서의 국가의 권리, 정치적 공동체의 자결권, 간섭과 불간섭의 원칙, ‘예방전쟁’과 선제공격, 중립, 유용성과 비례성의 원칙, 군사적 행위의 ‘필연성’, 전시 민간인과 비전투원의 권리, 부당한 행위에 따른 책임의 문제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개별 주제와 관련해 2개 이상의 역대 전쟁에 돋보기를 바짝 갖다 대며 전쟁의 정당성 여부를 깊게 파헤친다. 저자는 ‘정당한 전쟁’도 ‘전쟁의 정당성’과 ‘전쟁에서의 정당성’으로 구분해 설명한다. ‘전쟁의 정당성’은 외세의 침략에 대항한 자위 차원의 전쟁 등 도덕적 측면에서 정당한 경우이고, ‘전쟁에서의 정당성’은 전쟁을 정당한 수단과 방법으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1차 걸프전 이후 CNN과 인터넷 중계를 통해 전쟁 상황을 세계인들이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전쟁의 수단과 방법을 고려한 전쟁 계획은 필수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오늘날 정당한 전쟁에 못지않게 정당한 전투행위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군통수권자가 군인을 순조롭게 전장에 동원하기 위해선 분명한 혹은 그럴 듯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때론 정보를 조직해서라도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전쟁 명분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군인들이 목숨 걸고 싸우느냐 그러지 않느냐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므로 전쟁의 정당성은 중요하다.

저자는 ‘정당한 대의(Just cause)’ 작전이라 불리는 미국의 1989년 파나마 침공을 정당하지 않은 전쟁이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명분 없는 침략전쟁을 성전이니 해방전쟁으로 부르는 것에도 반대한다. 즉, 자신의 ‘정당한 전쟁’ 이론이 부당한 전쟁을 방어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불쾌하다고 밝힌다. 저자는 또한 국가 간 혹은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적 간섭’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한다. 특히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을 제압한 후 일본헌법 제정에 간섭함으로써 일본에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이식한 것을 지지한다. 즉, 타의에 의한 정권 교체를 지지함으로써 적잖은 논란도 낳았다.

책은 이 밖에 한국전쟁을 내전이라는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을 일갈하고, 북한 핵 문제와 독도 및 간도 문제 등 우리의 현안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에서의 법과 질서’ 코너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조정진 기자)

07. 07. 28.

P.S. 수년 전에 석학초청강좌를 위해 내한하기도 했던 마이클 월저(왈쩌)(1935- )는 존 롤즈(롤스)와 함께 각각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내지는 내가 그렇게 알고 있다). 그간에 알게 모르게 이런저런 책들이 많이 번역/소개됐었는데,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이번에 출간된 <마르스의 두 얼굴>이 가장 흥미로울 듯하다(원제는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

공역자들이 모두 사관학교 출신으로 국방대학 등에 몸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책은 미국의 사관학교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관학교(혹은 국방대학)에서도 교재로 쓰이는지 모르겠고. 찾아보니 지난 77년에 출간된 책은 현재 4판까지 나와 있고(국역본에 4판 서문이 들어 있다) 맨왼쪽은 작년에 나온 페이퍼백이다. 월저는 그밖에도 <전쟁론(Arguing About War)>(2004) 등의 저작들을 더 갖고 있는데, '정의'의 문제를 전쟁을 통해서 사유한다는 점에서 독보적이지 않나 싶다(롤즈의 칸트식 정의론과 대비된다).

소개에 따르면, 그는 "미국의 베트남전 이후 반전운동의 지도적 인물 중 한 사람이기도 했으며, 2001년 9.11사태 이후에는 '야만의 방식이 아니라 문명의 방식으로 답하자'(뉴욕타임즈 2001년 9월 21일자)는 기고를 통해 사뮤엘 헌팅턴을 필두로 한 보수적 지식인과 에드워드 사이드, 노암 촘스키 등의 진보적 지식인들을 동시에 공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까지 월저(왈쩌)의 책들은 5권이 나와 있는 듯하다(나는 두 권을 갖고 있다). 특히 <해석과 사회비판>(철학과현실사, 2007)은 바로 지난달에 나온 책이다. 이 정도면 월저식 정의론과 사회철학을 한국어로도 읽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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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의로운 전쟁은 어떻게 가능한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9-10 20:21 
    지난주 신간 가운데 리뷰가 뜨길 기다렸던 책은 마이클 왈저의 <전쟁과 정의>(인간사랑, 2009)이다. 이미 '정당한 전쟁과 부당한 전쟁'을 논한 <마르스의 두 얼굴>(연경문화사, 2007)이 소개된 터여서 의외의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9.11이 낀 주이기도 해서 겸사겸사 한번쯤 손에 들어봄 직하다.    연합뉴스(09. 09. 10) 전쟁에 정의의 잣대 들이대기  오늘날 많은
 
 
마늘빵 2007-07-28 13:10   좋아요 0 | URL
매우 끌리는 책이 번역되었군요. 롤즈를 읽고 마이클왈쪄를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주제는 롤즈보다는 왈쪄가 더 끌리는데, 아무런 기반도 없이 덤벼들 수 없엇, 논문은... 음... (.. )

로쟈 2007-07-28 14:16   좋아요 0 | URL
'정의'를 추상적인/이론적인 사변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사례(전쟁!)를 통해서 접근해가는 게 월저의 장점인 듯합니다. 저도 처음 안 것이지만...

마늘빵 2007-07-28 15:05   좋아요 0 | URL
근데 그의 이전작들은 껍데기가 허섭한데, 이번건 깔끔합니다. 보고 싶게 만들어졌는데요?

로쟈 2007-07-28 15:07   좋아요 0 | URL
철학과 현실사의 책들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쪽은 주로 '철학'에만 신경을 쓰는지라...

未知生焉知死 2007-07-28 15:07   좋아요 0 | URL
공리주의를 배척하고 계약론의 입장에서 '정의'를 규명하려는 롤즈의 규범적 구성주의는 처음 이론이 나왔을 때보다 여러 학자들의 비판으로 더욱 형이상학적이 되면서 이해하기가 어려워졌는데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정의에 접근한다니 읽어봐야겠군요.

로쟈 2007-07-28 15:10   좋아요 0 | URL
네, 말씀대로 그게 장점일 거 같습니다. 헌팅턴과 촘스키를 모두 비판할 수 있는 포지션도 궁금하구요...